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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장례 때도 못 봤던 눈물...성호 아버지가 펑펑 우셨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1주기 - 고 김성호씨 이야기] 하루 세 번, 부모님께 "사랑해" 외치던 아들

  • 소중한(extremes88)

고 김성호(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씨의 부모님 김영필·김경숙씨를 만나 지난 23일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고인의 친구인 기자가 쓴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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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의 아버지 김영필씨가 지난 23일 광주 자택에서의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억하라 1229'라는 문구가 적힌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 소중한

성호에게.

 

네 아버지가 우셨다. 1년 전 너를 떠나보낼 때도 보지 못했던 모습인데, 네 단골 세탁소 이야기를 하시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성호 보내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길을 걷다 성호가 다녔던 세탁소가 보이더라고. 언젠가 밥 먹고 오다 '아버지, 잠깐 세탁소 좀 들렀다 갑시다' 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래서 무작정 세탁소에 들러 '김성호 아버지입니다' 했지. 주인 아주머니가 '아이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청년인데 왜 안 옵니까'라며 찾아갈 옷을 주더라고. 그래서 말씀드렸지. 이번 참사로 그렇게 됐다고. 아주머니가 나를 부여잡고 펑펑 우셔. '그렇게 인사성 좋은 착한 청년이 없었다'면서."

출처 입력

 

네 정장과 와이셔츠 한아름을 어깨에 지고 오던 그날을, 아버지는 "가장 마음 아팠던 날"이면서도 "위안이 됐던 날"로 기억하신다. 널 위해 눈물 흘려주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감사함 때문에, 그리고 '아들놈 헛살진 않았네'라는 생각에.

 

어머니는 오늘도 옷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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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의 생전 마지막 여행이 담긴 사진이 참사 약 1년이 지난 23일 그의 방에 놓여 있다. ⓒ 소중한

 

사람 하나하나가 우주라더니, 네가 깃든 곳곳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박지성 영상이 뜰 때면, 고3 때 등교하자마자 흥분하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중한아, 박지성이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엘 갔어야! 맨유여, 맨유!"

 

네 누님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여전히 네 사진과 "울집베컴♥"이란 문구로 채워져 있다. 그래, 우리 참 맨유와 베컴을 좋아했었지. 엊그제도 네 방에 손흥민 사진이 놓여 있는 걸 보고 "슛돌이답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새도 너를 "슛돌이"라고 불렀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종종 네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고3 때로 돌아가 네 목소리를 떠올린다. "내가 살다가 한국인이 맨유에 가는 걸 보다니!" 이놈아, 앞으로 살면서 봐야 할 것이 얼마나 더 많은데 뭣이 급하다고 갔냐.

 

너희 집 안방엔 아직 네 옷이 촘촘히 걸려 있다. 어머니는 이따금 옷장을 열어 옷 냄새, 아니 네 냄새를 맡으신다. "지옥 같은 세월"을, "살을 갈기갈기 찢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옷에 깃든 네 냄새로 달래신다. 반찬을 만들다가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다가도 어머니는 너를 떠올리신다. 어머니의 시공간이 너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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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의 부모님 김영필·김경숙씨가 지난 23일 전남 담양의 한 추모관에 안치돼 있는 아들을 찾았다. ⓒ 소중한

 

이런 네 가족의 삶을 전달할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께선 "죽은 채 사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죽은 채 산다"는 모순이, 말이 안 되는 이 말이 지금 네 가족의 일상이 되고 말았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인지, 눈을 뜨고 있어도 뜨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 내가 차라리 독종이었다면, 악녀로 태어났다면 조금은 덜했을까. 차라리 그런 인간이었다면 이 고통을 감당했을 텐데.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더 아프고, 그 아픔이 더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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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시간이 약이라는 그 망각의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김성호'라는 고유명사를, 그리고 네 가족의 삶을 그저 기록하기로 했다. 기록은 망각의 적이자 기억의 단초이고, 기억은 진실을 향한 동력이므로. 나아가 우리가 진실에 다가갔을 때, 그래서 네 가족을 비롯한 많은 유가족이 '이제 됐다'고 생각할 즈음에야 시간은 약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네 부모님이 나를 아들의 친구가 아닌 기자로 만난 까닭도, 이 편지를 모든 사람이 보도록 용기를 내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

 

1년이나 흘렀는데 왜 제자리일까

 

인터뷰를 위해 네 집에 가기 며칠 전, 사실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네 부모님과 누님을 우연히 만났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열린 '서울 시민추모대회' 현장이었다. 제발 계시지 않았으면 했던 곳에서 젖은 우의를 입은 네 가족을 마주했다. 1년 전 네 이름을 희생자 명단에서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참사 유가족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하지만 내 오만이었다. 네 가족은 1년 내내 "진상규명 요구"란 이름의 현장을 단단히 지켰고 힘주어 목소리를 냈다. 되레 어머니는 그날 내 손을 꼭 잡고 "비도 오는데 여기까지 왔는가"라며 우의를 챙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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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의 부모님 김영필·김경숙씨가 지난 20일 서울 보신각에서 진행된 '서울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해 있다. ⓒ 소중한

 

네 가족, 그리고 참사 유가족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지난 1년 동안 애타게 염원해 왔다. 당연한 것이 염원이 돼버린 부조리 때문에, 유가족들은 거리로 나섰고 머리를 깎았으며 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났던 아버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가 대통령보다 위"라며 분노를 쏟아내셨다.

 

"국토교통부 밑에 있는 항철위는 이 참사를 단순한 사고로 몰아가고 있네. 조종사의 실수를 강조하면서. 이 참사의 원인은 복합적이잖나. 새떼와 충돌한 것도, 조종사의 운항에도, 보조 배터리가 없어 전자 시스템이 죽어버린 것도 여러 원인 중 하나겠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둔덕. 그런데 이 둔덕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네."

출처 입력

 

지금 아버지를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건 유가족이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사 후 만든 특별법에 분명히 명시된, 아니 특별법이 없더라도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유가족의 정보 접근권이 아버지의 염원이 돼버렸다. 진상규명으로 가는 길의 시작 중의 시작인 "정보를 달라"는 요구를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껏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고개를 숙인들, 그것은 사과가 아닌 '잊으라'는 요구일 뿐이다.

 

그렇게 아끼던 조카의 생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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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는 누나, 그리고 여동생과 매우 돈독했다. 삼남매의 어릴적 사진이 참사 후 약 1년이 지난 23일 그의 방에 놓여 있다. ⓒ 소중한

 

지난주 화요일, 네가 있는 곳에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다. 어머니께서 손으로 만든 하트를 머리 위로, 가슴 위로 연신 얹었다가 네게 보내신다. 네가 어머니께 자주 하던 것이라면서.

 

"아들이 나를 또숙이라고 불렀어. 집에 있으면 성호가 '또숙아 뭣허냐' 그래. 내가 쳐다보면 '사랑해' 그러면서 하트를 이렇게... '사랑해, 사랑해, 엄마 사랑해'를 하루 세 번 말해줬는데. 그랬으니 내가 지금 어떻게 살겠어. 울지 않는 날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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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어머니의 눈물을 아버지가 네 봉안함을 보며 애써 말리신다. "성호야, 엄마 혼 좀 내라. 그만 울라고. 꿈에 나와서 혼 좀 내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떨린다. "성호야, 요샌 왜 꿈에도 안 나오냐. 왜 안 나오냐."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은 이렇게 추모관을 찾아 네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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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의 어머니 김경숙씨가 지난 23일 광주 자택에서 아들의 옷이 걸려 있는 옷장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그래도 꿈속의 아들을 대신해, 너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어머니에게 네 이야기를 자주 전하고 있다. 지난달엔 네 집에 잔뜩 모여 어머님이 해주신 밥을 맛나게 먹고 갔단다. 네 봉안함 옆, 회사에서 준 공로패에 "투철한 사명감과 남다른 열정"이라는 문구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나 보다. 너와 관계를 맺었던 이들 모두, 네 부모님께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떠난 게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부모님께선 "아들이 잘 살고 갔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얻고 있다.

 

네가 그렇게 아끼던 조카가 생일 때 편지를 두고 갔던데, 혹시 봤니. "삼촌 생일 축하해요. 삼촌이 앞으로도 하늘나라에서 건강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네가 떠난 후, 어머니께서 밥을 해두면 조카가 접시에 반찬을 담아 옆에 가져다 두고 "삼촌, 맛있게 드세요" 그런단다. 어머니의 휴대폰엔 너와 조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영상으로나마 어머니는 네 목소리를 듣고, 조카는 "보고 싶은 삼촌"을 되뇐다.

 

아참, 너 결혼했다며. 49재 마치고 지금 네 옆에 있는 ○○씨와 영혼 결혼식을 했다고 들었다. 너와 ○○씨의 마지막 여행 사진이 네 휴대폰에 담겨 있더라. 두 사람 웃음이 참 맑던데, 그곳에서도 행복하길.

 

친구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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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는 축구를 좋아했다. 참사 후 약 1년이 지난 23일, 그의 방엔 여전히 손흥민 선수의 얼굴이 그려진 액자(왼쪽)가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을 찾아 찍은 사진이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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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호씨와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여자친구의 봉안함이 지난 23일 전남 담양의 한 추모관에 나란히 놓여 있다. ⓒ 소중한

 

#제주항공#무안공항#여객기#참사#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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