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판사재판제도에 도입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안
법률판단과 사실판단의 구별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려하는 배심제도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법률과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배심원이 그 어려운 법률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회의적인 시각은 완전히 잘못된 오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시민 참여재판이 판사의 보조역할에 그치고 있고, 또 이용율이 저조한 이유는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배심제도에서는 법률문제는 판사가, 사실문제 판단은 배심원이 하는 것으로 구분되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배심원에게 사실판단 권한을 부여하고 판사는 법률판단 권한을 가지는 식으로 사법권력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직업적 법관이 사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는 것으로 기본 제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법률과 사실관계 이슈를 나누어서 판단하지 않고 모두 묶어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배심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재판절차에서는 이를 구별해서 진행한다.
필자의 관찰로는, 법률과 사실판단을 기준으로 사법권을 나누고 이를 재판제도에서 실행하고 있는 미국의 배심제도는 시민이 사법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된다면 직업법관제도에서 볼 수 있는 편향된 시각 문제를 시민들이 견제하고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겠다. 형사사건에서 증거능력의 판단, 예컨대 수사기관에서 수집한 증거가 위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어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는 법률전문가에 의한 직업법관이 판단하고, 이후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 판단은 배심원들의 판단에 맏긴다. 이는 법관과 배심원들이 재판권을 나누어 행사하는 제도 운영이 될 것이다. 민사사건에서 교통사고 피해보상의 예를 들면, 가해 차량에게 법률이 요구하는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는 직업법관이 판단하게 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과실을 몇 퍼센트로 나눌 것인지 여부는 일반 시민들이 판단하게 한다면, 이는 법률과 사실판단을 나눠서 하는 경우다.
민사재판의 경우, 실제 법원에 제출되는 케이스의 30퍼센트 정도는 (주장하는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가정하더라도 법률적으로 구제받을 수 없는 성격이어서) 초기단계에서 종결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 재판제도에서는 끝까지 진행된다. 미국의 재판제도에서는 그럴 경우 소장답변서 단계에서 기각판결을 해버리는 것과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소장을 초기에 종결하는 절차는 디스커버리(Discovery. 미국 등 영미법계에서 발달한 제도로, 재판 전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이 가진 증거와 정보를 미리 공개하여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쟁점을 명확히 하여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이끌어내는 증거개시 절차)의 남용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데 우리나라의 재판제도에는 활용되지 않다. 이는 디스커버리 도입과 운용 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소/수사과정에서 시민의 참여 및 재판과정에서의 시민의 결정권
미국의 배심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현재 우리나라 형사재판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인데, 배심원들이 판사/검사들에게 조언을 하는 (advisory) 역할이 있다. 이는 미국의 경우 기소/수사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대배심 (Grand Jury)이라고 한다.
미국 연방법원의 형사재판 기소는 (검사가 아닌) 대배심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검사는 기소를 하기 전에 대배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대배심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승인해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연방대배심의 기능을 통과의례에 불과한 불필요한 절차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뉴욕 시 검사장인 르티티아 제임스 (Letitia James)를 대배심에서 기소하기를 거부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배심이 기소를 거부할 권한도 있다. (르티티아 제임스는 뉴욕 시의 검사장으로 뉴욕시민을 대표하여 트럼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고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권에서 보복성 기소를 하려고 했는데 대배심이 이의 승인을 거부했다)
주법원의 기소는 연방법원과 약간 다르다. 주법원에서는 수사기관인 경찰에서 공소제기를 (검찰이 아닌) 법원에 직접 하고, 법원에서 기소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의 주 형사재판절차에서 법원에서 기소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검사는 기소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수사기관이 법원에 넘긴 케이스와 관련해 법원의 기소결정을 얻어내기 위한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이 때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의 판사는 (우리나라에는 치안판사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검사역할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공개된 법정에서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피고인에게도 증거조사를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검사는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단계에서부터)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모두 공개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피고인은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나라에서 보는 조서가 없다는 점이다. 치안판사가 보는 데서 공개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피고인/증인 신문이 모두 녹음되어 이게 조서 역할을 한다. 판사 주재로 공개법정의 정식절차를 거쳐 기소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검사실에서 모든 절차가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제도와 비교해 보면) 놀랄만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큼 검사의 권한이 강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치안판사의 심리가 끝나면 정식기소를 하기 이전에 대배심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 치안판사와 대배심이 기소를 위해 하는 역할은 각 주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때 대배심의 역할은 순수한 조언자의 역할이다. 케이스가 기소하기에 충분한 혐의가 있는지 여부는 치안판사가 공개된 법정에서 증거조사 절차를 거친 뒤 판단한 것이어서 대배심은 별다른 이의 없이 모두 승인해준다. 이때 대배심은 조언자 역할을 하며, 이는 참심제(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참심원이 직업 법관과 함께 재판부[합의체]를 구성하여, 형사 사건의 사실 인정[유무죄]과 양형[형벌 결정]에 대해 토의하고 결정하는 제도)에서의 시민의 역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수사과정에 대배심이 관여하는 경우에는 대배심이 결정권자 역할을 한다. 대배심 절차는 검사가 시민들의 감시/승인을 받아 조사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대배심 절차를 거치는 수사는 규모가 있거나 중요한 케이스들에 한정된다. 예를 들면 공직자의 뇌물, 대규모 사기 횡령 기타 정치적인 형사사건들은 대배심의 승인절차를 받아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때의 대배심은 결정권이 있다. 유명한 케이스로 2023년 트럼프에 대한 형사기소를 들수 있는데, 그때 검사는 대배심 절차를 거쳐서 조사를 진행했고 대배심의 승인을 얻어 뉴욕시 법원에 기소했다. (대배심의 승인을 얻으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법원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기소를 할 수 있다) 이런 케이스에서 검사들은 피의자 증인 소환 압수 수색을 모두 대배심의 승인을 얻어서 진행한다.
일반인의 고소/고발 케이스들과 관련한 케이스의 진행도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경찰에서는 일단 사인간의 분쟁일 경우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일반인은 경찰 외에 법원을 통하여 직접 고소/고발을 접수할 수 있지만, 위에서 본 치안판사의 공개 법정 변론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치안판사의 공개 변론절차를 거쳐야 하고, 또한 피고소/고발인에게도 증거조사 및 증인신문을 충분하게 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고소/고발이 있다고 해서 바로 기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개인이 고소/고발을 하는 것은 자유롭게 허용되지만 기소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치안판사 주재의 공개 재판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 검사는 기소결정권은 없지만 공소유지에 관련해서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가 공소유지를 거부하는 케이스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공소유지를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형사사법절차의 사인 소추는 우리나라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유죄협상으로 알려져 있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수사에 협조[다른 범죄자 정보 제공 등]하는 대가로 검찰이 더 가벼운 혐의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주는 '유죄협상제' 또는 '사법거래')의 전제조건은 기소결정 이전 단계에서부터 피의자/피고인에게 디스커버리와 적극적인 증거조사권을 부여하여 검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것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검사가 일방적으로 피의자/피고인 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증거수집을 독점하고 피의자/피고인은 방어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는데, 이런 불평등한 조건에서 진정한 플리바게닝은 도입되기 어렵다고 본다.
시민들이 결정권을 가질 때의 개선점들
다음으로 법원절차에서 이용되는 배심제도는 배심원들이 판사와 완전히 독립하여 결정권을 행사하는 (decision maker)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배심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절차에서 미국식의 배심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현재와 비교해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있을 수 있는 인맥에 의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배심원은 무작위로 선정되고, 소집된 배심원 중에서 다시 최종배심원들을 재판 당일날 선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판진행을 잘하는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증거법과 디스커버리 등 발전된 사법제도들이 필수적으로 도입돼 운영될 것이다. 배심원들이 듣고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하는 증거자료들을 사전에 거르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그게 증거법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증거법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미국의 경우 로스쿨 1학년의 필수과목으로 증거법이 중요시되고 증거법이 단일법으로 별도로 제정되어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소송법에 일부 들어 있을 뿐이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따라서 증거능력의 판단에서 많은 부분이 법관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루 빨리 현대화된 증거법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배심제도에서는 배심원이 듣게 되는 증거자료들을 사전에 상대방에 공개하고 또한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디스커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역시 전적으로 판사의 권한으로 되어 있는데 배심제도에서는 당사자에게 증거조사에 관한 많은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
성폭력 케이스를 예로 들면, 미국의 형사재판제도에서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예외적으로 증거법상의 특별 예외규정이 있긴 하지만) 반드시 법정에 출석하여 반대신문에 답변해야 하기 때문에 2차 가해는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고 박원순 시장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런 경우 미국의 법정에서는 피해자를 반대신문하지 않고 유죄판단을 할 수 없다. 또한 참고인/증인 역시 법정에 출석하여 피고인의 반대신문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고인/증인의 법정외 진술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하지 않는다. (부연하면 고 박원순 시장의 경우 본인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증거법상으로 약간 다른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법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을 한 번은 거쳤어야 증거법의 원리에 맞다).
배심원들은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용납하지 않고 사회질서유지 차원에서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액수를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배심원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우리나라의 불법행위 관련 민사재판은 손해배상액수도 적을 뿐더러 피해자에게도 과실상계를 하고 있어서 전혀 현실과 맞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가 이익을 보게 하는 재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현실과 많은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에서 제대로 해결이 안되니까 피해자들은 고소/고발에 의한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아주 뚜렷하고, 이 때문에 수사기관이 권력기관이 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배심원재판에 의한 민사법정에서 불법행위 가해자에게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수사기관에서는 사회정의를 해치는 범죄행위의 단속 예방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해악이 되는 불법행위의 척결에 배심재판제도가 거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사재판제도와 배심제도: 효율과 비용 절약
미국식의 배심제의 비판으로 비용과 효율 측면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배심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이다. 배심제에서는 모든 재판을 집중심리제로 진행한다. 배심원들을 한 번 소집해서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케이스가 시작되면 배심원에 의한 최종 재판일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추어서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재판절차가 지연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판사재판의 특징은 불필요한 변론을 자주 여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판은 거의 기계적으로 변론을 속행하고 불필요하게 변론을 열어준다. 우리나라 판사재판에 의한 재판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생각해보면 그 답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에서 준비서면이라는 서면교환을 하는데, 이는 법정에 가지 않고도 당사자간에 주고 받으면 되는 것이다. 준비서면 진술을 위하여 변론을 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변론기일에 귤껍질 벗기듯 조금씩 증거를 제출한다. 재판을 무슨 게임하듯이 한다.
배심재판제도에서는 이런 비효율적인 절차는 전혀 볼 수 없다. 재판절차가 진실 발견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당사자들에게 디스커버리를 통하여 증거수집 기회를 주고, 이후 수집된 증거들 중에서 필요한 증거를 한꺼번에 제출하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 이게 배심재판제도에서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법률적인 이슈가 있을 경우에 한정해서 변론을 열어준다. 법률적인 이슈가 없으면 배심원에 의한 최종재판에서 한꺼번에 판단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재판진행이 가능하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증거수집의 기회를 충분히 가지게 한 뒤 최종재판으로 한꺼번에 해결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또한 경제적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미국식의 재판제도를 선호하여 미국법원을 이용하고 있는 사례가 계속 소개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배심재판을 기본으로 운영되는 미국식의 재판방식이 더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판명이 되었다.
판사 인사이동 시기에 재판이 지연되는 일은 배심제에서는 있을 수 없다. 배심원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복잡한 케이스라면 배심원의 최종판단까지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 때문에 변론을 속행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점도 우리나라의 판사재판제도와 다른 점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케이스들은 배심제에 의한 재판을 하지 않고 법관에 의한 재판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즉 배심제로 진행하는 케이스들과 배심제가 아닌 직업법관이 진행하는 케이스로 나누어서 법원의 구조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합의부 재판에 배심재판을 도입하고, 단독재판은 직업법관에 의한 재판진행으로 하는 것이다. 또는 사실관계가 복잡한 고의 과실 케이스들과 비교적 간단한 계약위반 케이스들을 기준으로 구별해서 따로 진행할 수도 있다) 즉 미국에서도 모든 케이스가 배심재판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법정에서는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판사의 사전 승인이 없이도) 증거조사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당사자 원하는 증인은 (본인신문 포함) 얼마든지 법정에 불러서 증언을 들어볼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다. 배심원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최대한 많은 증거들을 접해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 의한 사법권력의 참여 및 판단으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법정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권력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존중하는 문화, 판사 검사가 가진 권력을 시민들이 나눠가짐으로써 사회전반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배심제와 참심제의 차이점
필자는 시민들이 조언자 역할을 하는 참심제가 아닌 결정권자 기능을 하는 미국식의 배심제도가 더 좋은 제도라고 감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참심제를 채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에는, 법률문제에 관한 판단에서 직업법관이 일반 시민보다 더 잘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법률판단과 사실판단을 구별해서 재판진행을 한다면 시민들에게 훨씬 더 많은 직접 참여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수준이 높다. 우리보다 못한 미국에서 하는데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판사재판이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사법민주주의이고 미국식의 배심제도의 장점을 활용하는 첫걸음이다.
주민선거로 선출되는 미국의 사법인사제도
미국의 인사제도 역시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연방검사는 대통령에게 임명권한이 있지만 주검사장은 주민의 선거로 선출된다. 주보다 아래 행정단위를 구성하는 카운티 검사장도 역시 주민의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다. 필자가 직접 만나본 이 곳 카운티 검사장은 본인을 뽑아준 주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며 주지사가 어떤 명령을 해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의 임명절차는 각 주별로 많이 다르다. 공통적인 특징은 우리나라처럼 시험을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동료들의 평가, 그 동안의 소송수행 실적, 변호사협회에서 공개토론을 통한 실력검증을 거치고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임명이 되는데, 주기적으로 의회의 검증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각 주별로 판사/검사/경찰에 관하여 불만이 있는 시민들이 직접 불만제기를 할 수 있는 위원회들이 독립기관으로 설치되어 있는 등 시민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판사/검사/경찰들의 업무를 감독할 수 있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최근에 현직 판사가 변호사들의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 의회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퇴직한 사례가 있다.
미국 전직 법관/검사들의 변호사 업무
미국에서는 판사/검사 퇴직 이후 변호사를 개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실정법은 없다. 하지만 판사가 퇴직 후 법정출입을 하는 변호사 일을 하는 것은 미국전역을 통하여 전혀 사례가 없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일부 로펌에서 자문역할을 하는 사례가 있고 조정인이나 중재인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은퇴하면 (주법원의 시니어 법관제도는 예외) 세속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필자가 실제 현직 판사와 전관의 변호사 개업문제에 관련해서 얘기를 나눠보았는데 현직 판사들은 전직 판사의 변호사개업을 죄악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가리고 응징한다고 하면서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검사들은 변호사 개업하는데 제약이 없지만 검사의 업무성격이 기소권조차 없고 다만 공소유지 권한에 불과하기 때문에 케이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없어서 인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법원에서는 은퇴한 판사들을 시니어 판사로 고용하고 있는데, 시니어 판사들은 각 법원에서 재판을 담당할 판사들이 부족할 경우 이를 커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법원 사정으로 재판에 공백이 생기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검사가 현직에서 가지고 있는 권한이라는 것이 공소유지 외에 결정권이 거의 없다는 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기소는 수사기관에서 직접 법원에 하거나 대배심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검사는 이후 수사과정에서도 그 역할이란 것은 법률적인 조언자 혹은 대배심의 조사과정을 도와주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소결정 과정 및 기소 이후 정식재판 과정에서도 주된 결정권은 판사에게 있고 검사는 피고인의 변호사와 반대입장에서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역할에 그친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검사와 비교해서 권한이 현저하게 적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을 허용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검사 또는 수사관에게 부여하고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현직에서의 권한 행사가 지금처럼 결정권이 있는 지위라고 한다면 (기소여부 혹은 수사종결권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검사에게는 변호사 개업을 허용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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