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인터뷰 통편집... 12.3과 미국 관계는 반드시 응답해야 할 주제”
“NSA 감청망, 한국 안보실 도청은 드러난 ‘스모킹 건’일 뿐”
“미 대사가 자고 있었다? 소가 웃을 일”
“미국에 중요했던 것은 민주주의 가치가 아니었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해영 교수와 ‘윤석열 쿠데타를 미국이 과연 몰랐을까’라는 주제로 2시간 가까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실제 방송에서는 두 컷 남짓만이 방영되었을 뿐, 나머지 발언은 모두 ‘통편집’되었다. 이에 본지는 방송되지 못한, 그러나 우리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미 정보기관의 실체와 12.3 쿠데타의 이면을 이해영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다. [편집자]

“SBS 인터뷰 통편집... 12.3과 미국 관계는 반드시 응답해야 할 주제”

이해영 교수는 인터뷰 시작과 함께 방송 편집에 대한 아쉬움과 의무감을 토로했다. “SBS 측에서 먼저 제안해 장시간 인터뷰를 했지만, 속사정은 알 길 없이 대부분 편집됐다”며, “하지만 이 주제는 언젠가 반드시 응답해야 할 주제이기에 그 골자라도 기록해 둬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몰랐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NSA 감청망, 한국 안보실 도청은 드러난 ‘스모킹 건’일 뿐”

이 교수는 윤석열의 쿠데타 과정을 3단계(전조-결심-실행)로 구분하며, 미 정보기관의 개입 여부를 설명했다.

1단계 '전조' (2022년 하반기~): 이 단계에서는 NSA(미 국가안보국)의 감청(SIGINT)이 주효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군, 정치인, 행정부 핵심 관료 등 주요 인물의 모든 통화 내역은 그냥 다 감청한다고 보면 된다”며, 과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드러난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문건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그 문서는 NSA가 도청해서 작성한 것이며, 동일한 표기 방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2단계 '결심' (2023년 9월~):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인사이동을 통해 쿠데타가 구체화되던 시기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 국가 요직에는 CIA의 휴민트(HUMINT, 인적 정보)가 작동하고 있다”며, 이 단계에서 이미 이상 징후가 미 NSC(국가안보회의)까지 보고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단계 '실행' (2024년 12월 3일): 이 교수는 “실행 직전 미국이 포착한 것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당시 아프리카 순방 중이던 바이든 대통령이 “방금 보고받았다”고 말한 것은 정식 보고 절차일 뿐, 이미 국방·국무장관급까지는 정보가 공유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미 대사가 자고 있었다? 소가 웃을 일”

이 교수는 필립 골드버그 미 대사의 행보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표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볼리비아에서 쿠데타 시도에 연루되어 추방당한 전력이 있고, 필리핀에서도 쿠데타 시도설이 있는 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는 미국의 정보력을 과거 사례와 비교하며 현재의 ‘모른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10.26 당시 박정희 사망 시간 20분 만에 미 8군 지하 벙커에서 비상회의가 소집됐고, 5.16 때는 실행 45일 전에 이미 미국이 파악하고 있었다”며, “지금 미국의 정보자산은 그때와는 비교 불가 수준인데 몰랐다는 것은 파렴치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미국에 중요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침묵했는가. 이 교수는 그 답을 ‘국익’에서 찾는다.

“미국에게 중요했던 것은 바이든이 표방한 가치외교가 아니라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동맹)이라는 실체적 국익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후에도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던 점을 주목하며,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것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미숙한 음모가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진화”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이번 친위쿠데타의 실패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는 촛불 시민의 저력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진화 수준과 복잡성”이 쿠데타를 좌초시켰다고 보았다.

“이번 사태는 군부, 행정부, 동맹국 그 어디로부터도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소수 음모가 중심의 쿠데타였다”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를 감당하기엔 그들이 너무나 미숙했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를 통해 “결국 한국의 주권이 미국의 정보망 아래 완전히 포획되어 있음이 역설적으로 드러났다”며, “한 20년이 지나 정보공개를 통해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어야 그 실체가 온전히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문 일답 요약본]

Q: 교수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가 거의 통편집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강조하셨던 ‘미국의 인지’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해영 교수: 질문 자체가 우문입니다. 우리가 추적해야 할 본질은 ‘미국이 알았나 몰랐나’가 아니라, ‘미국의 누가, 어느 기관이 인지했고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가’입니다. 미국이 몰랐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Q: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평택 미 8군 501 정보여단 같은 자산이 윤석열의 움직임을 놓칠 리 없다는 말씀인가요?

이해영 교수: 그렇습니다. 현재 미국의 정보 자산은 5.16이나 10.26 당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입니다. NSA(미 국가안보국)는 한국의 군, 정치인, 행정부 핵심 관료 등 주요 인물의 모든 통화 내역을 그냥 다 감청한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평택 미 8군 501 정보여단에 파견된 NSA 인력들이 이를 실시간으로 포착합니다. 과거 안보실 도청 사건이 그 명백한 ‘스모킹 건’입니다.

Q: 쿠데타 징후를 단계별로 나누어 본다면, 미국은 어느 시점에 개입했습니까?

이해영 교수: 사건은 3단계로 구분됩니다. 1단계 전조(2022년 하반기~) 단계에선 이미 NSA의 감청망에 걸려들었습니다. 2단계 결심(2023년 9~10월~) 단계에선 CIA의 휴민트(인적 정보)가 작동했습니다. 한국 권력 핵심부와 주요 부처 곳곳에 뻗어 있는 미국의 인적 네트워크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미 NSC(국가안보회의)까지 보고했을 것입니다.

Q: 실행 당일, 골드버그 미 대사는 “자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해영 교수: 지나가던 소가 웃을 소리입니다. 골드버그 대사는 과거 볼리비아에서 쿠데타 연루로 추방당했고, 필리핀에서도 쿠데타 시도설이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런 자가 실행 직전 바이든에게까지 보고된 긴박한 상황에서 자고 있었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당시 대사관 공식 트윗이 상황을 ‘유동적’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입니다.

Q: 45일 전에도 쿠데타를 알았던 미국이 왜 이번에는 ‘몰랐다’고 강변하며 파렴치한 태도를 보일까요? 무엇을 숨기려는 것입니까?

이해영 교수: 결국 ‘미국의 국익’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국익은 민주주의나 주권이 아니라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이었습니다. 미국은 쿠데타 실패 이후에도 집요하게 이 군사협력을 확인하고 관철시켰습니다. 민주나 인권은 그들에게 언제나 후순위입니다.

Q: 이번 사태가 한국 주권이 미국에 완전히 포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해영 교수: 이번 사태로 우리 안보 체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친위쿠데타는 한국 사회의 진화 수준과 복잡한 경제적 토대를 감당하지 못한 미숙한 소수 음모가들의 자멸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의존적인 안보 체제를 극복하고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이재명 정부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실체는 언제쯤 명확히 드러날까요?

이해영 교수: 5.18 관련 ‘체로키 파일’처럼 한 20년쯤 지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문서들이 공개되어야 그 실체가 온전히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우문을 멈추지 말고 본질을 캐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