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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떠받친 한국, 정작 반도체는 '헬륨'에 달렸다

한은 "나프타 한 달 만에 68% 폭등", 4년 만에 최대 폭… KIET 시나리오 '11.8% 생산비 상승' 현실화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에 '핵심광물'만 적혀… 반도체 공정 필수 가스는 누락

국책연구기관·국회예산정책처·중앙은행·외국 금융기관까지 4곳이 서로 다른 각도로 같은 경고

2026-04-22 15:17:36
 

삼성전자가 4월 7일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을 발표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SK하이닉스는 4월 23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증권가는 32조~40조원 영업이익을 예상한다. 두 회사 1분기 합산만 100조원에 근접한다. 21일 코스피는 2.72% 올라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22일 장중에는 6,400선을 돌파하며 또 신기록을 썼다. 반도체가 중동 전쟁 여파 속에서도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같은 날인 22일 오전, 한국은행은 3월 생산자물가지수를 발표했다. 전월 대비 1.6% 상승. 2022년 4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그 안에 더 눈에 띄는 수치가 있다. 나프타 가격이 한 달 만에 68.0% 올랐다. 경유는 20.8%, 석탄·석유제품은 31.9%, 화학제품은 6.7% 상승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최상류 원료다. 플라스틱·비닐·페트병·전선 피복·비료의 출발점이다. 한국은 나프타 수입의 82.8%를 중동에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불안해지자 가격이 먼저 움직였다. 생산자물가는 통상 2~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한 달 만에 68%, 업계에는 이미 경고음

 

이달 초 한국전력이 연 전선 수급 대책회의에서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주요 제품 생산 차질 가능성을 전달했다. 나프타 수급 불안이 실물 공급망으로 이어지는 첫 신호다. 4월 들어 브렌트유는 배럴당 95달러 수준으로 3월 말 112달러 고점 대비 15% 내렸다. 이란 종전 협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3월 통계에 박힌 나프타 68%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2~3개월 뒤 시민의 지갑으로 온다.

 

산업연구원(KIET)은 3월에 보고서를 두 번 냈다. 사흘 간격이다. 3월 16일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1차 분석에서는 유가 10% 상승 시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0.71% 오른다고 제시했다. 석유제품 산업은 6.30%, 화학제품은 1.59% 올랐다. 3월 19일 「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 심화 보고서에서는 한국은행 산업연관표를 기반으로 한 균형가격모형을 써서 3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최악의 3단계, 호르무즈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유가는 배럴당 150~180달러, 극단적으로 200달러까지 오른다. 이때 제조업 생산비는 11.8% 상승한다. KIET는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위기는 그동안 반복돼 온 구조적 리스크"라고 적시했다.

 

반도체가 달린 하나의 가스, 카타르 65%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의 공식 수입통계를 보면 중동 의존도가 눈에 띄는 품목이 네 가지다. 나프타 82.8%, 원유 약 70%, 무수암모니아 약 43%, 그리고 헬륨이다. 헬륨만 구조가 다르다. 중동 전체가 아니라 카타르 한 나라에 65%가 몰려 있다. 나머지는 미국 27%, 러시아 6%, 중국 2%다.

 

헬륨은 반도체 공정의 필수재다.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극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데, 온도가 조금만 올라도 회로가 틀어진다. 헬륨이 공정을 냉각한다. 반도체 내부의 미세 누설 검사에도 헬륨이 쓰인다. 분자가 작아 미세한 틈도 빠져나간다. 대체재가 없다.

 

헬륨은 별도 공장에서 뽑는 자원이 아니다. 천연가스를 액체로 만드는 LNG 공정의 부산물로 나온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인 카타르가 세계 최대 헬륨 공급국이 된 이유다. LNG가 멈추면 헬륨도 멈춘다. 구조적으로 묶여 있다.

 

3월 24일 카타르에너지는 LNG 장기공급 불가항력을 공식 선언했다. 로이터가 보도했다. 불가항력은 전쟁 같은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공식 방어막이다. 손해배상 책임도 면제된다. 수출 배가 뜨지 않으면 저장고가 찬다. 저장고가 차면 액화 공정을 멈춰야 한다. 그러면 부산물인 헬륨도 연쇄 중단된다. 21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며칠 내 이란 하르그섬 원유 저장고가 가득 찬다"며 "이란 유정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고 공식 성명을 냈다. '경제적 분노 작전(Operation Economic Fury)'의 일환이다. 다른 나라, 다른 이유, 같은 구조다.

 

2022년 네온가스 대란 때는 중국과 미국으로 다변화해 극복했다. 지금 헬륨에는 갈 곳이 없다. 2021년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이유로 전략자원 헬륨 수출을 축소했다. 러시아는 전쟁국이다. 중국은 소량이다. 결국 카타르다.

 

석유엔 플랜, 가스엔 공개된 플랜이 없다

 

이재명 정부는 석유 분야에 빠르게 움직였다.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3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필요하면 자동차 5부제, 10부제 등 수요 절감 대책을 조기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3월 31일 추경 발표 당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KBS 인터뷰에서 "나프타 플랜 A, B, C 3가지 대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정 가스에 대해서는 4월 현재까지 공식 대책이나 관련 간담회 기록이 공개되지 않았다. 산업부, 기획예산처, 정책브리핑 자료에도 없다. 김 장관이 석유·나프타에 대해 "플랜 A, B, C"를 언급한 수준의 공개 발언이 헬륨·특수가스 분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부가 3월 31일 발표한 추경 26조2000억원 가운데 '산업 피해 최소화와 공급망 안정'은 2조6000억원이다. 정책브리핑 공식 자료를 보면 공급망 안정 항목에 나프타 수급 안정 5000억원, 석유 비축 확대 2000억원이 적혀 있다. 그 뒤로 희토류 재자원화 시설 확충, 요소 수입선 다변화가 이어진다. 품목 이름이 명시된 건 나프타·석유·희토류·요소 네 가지다. 헬륨이나 반도체 공정 가스는 없다.

 

국회에 제출된 세입세출예산명세서(547쪽)를 보면 정부 인포그래픽에 없는 사업이 하나 더 있다. '소부장공급망안정종합지원' 6084억원이다. 산업통상부 성과계획서에 따르면 이 사업은 6개 과제로 구성된다. 수입처 다변화, 공급망 정보 분석, 컨설팅, 고위험 경제안보품목 국내생산 촉진, 중소·중견 투자, 글로벌 매칭이다. '고위험 경제안보품목'의 구체적 품목 리스트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6084억원 중 반도체 공정 가스에 얼마가 배정됐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법 본문에 가스류는 없다

 

한국에는 2025년 2월 제정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이 있다. 공급망 위기 시 무엇을 지킬지 정한 법이다. 산업통상부 성과계획서에 법의 적용 대상이 명시돼 있다. "이차전지·반도체·항공 분야 공급망 안정화에 필요한 핵심광물 확보 및 국내외 핵심광물 생산기반 확충 지원. 리튬·니켈·타이타늄·텅스텐 등." 여기서 법이 보호하는 건 '핵심광물'이다. 리튬·니켈·타이타늄·텅스텐 같은 이차전지 관련 광물이다. 헬륨·네온·크립톤은 광물이 아니다. 가스다.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의 보호 대상에서 구조적으로 빠져 있다.

 

정부는 소부장 특별법이나 하위 시행령으로 가스류를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에 명시되지 않으면 위기 대응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분산된 법망보다 법 본문 명시가 예산 배정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은 이차전지 공급망 보호를 중심으로 설계됐고, 가스류는 처음부터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2026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보고서(741쪽)에도 사각지대가 확인된다. 보고서에서 '이란' '호르무즈' '카타르'는 20회 이상 등장한다. 반면 '헬륨' '네온' '크립톤' '특수가스' '희귀가스'는 0회다. 국회 독립 기관의 공식 분석 보고서에서도 반도체 공정 가스 리스크가 한 줄도 다뤄지지 않았다.

 

4기관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NABO는 이번 추경의 재원 구조에 대해 "반도체 업종의 역사적 호황이라는 특수한 경기 요인에 기인한 법인세로, 일시적·비반복적 성격의 재원"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추경 26조2000억원 중 초과세수는 25조2000억원이고, 그중 법인세 증가분은 14조8000억원으로 전체 재원의 59%를 차지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3월 31일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에 기댄 재원"이라고 밝혔다.

 

2023년에는 세수 결손이 56조4000억원에 달했다. 직전까지 반도체 호황이었다. NABO는 당시 원인으로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입 원자재 수급 불안"을 지목했다. 그해 지방교부세 불용액은 7조1700억원이었다. 2024년에도 2조500억원이 불용됐다. 중앙 세수가 흔들리자 도로·복지·지역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지방 사업이 함께 흔들린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4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급 충격"이라는 표현을 썼다. 같은 날 외국 민간 금융기관 ING는 한국 경제 분석 보고서에서 "현재 정부의 에너지 보조금이 지금처럼 강력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비용이 크고 효과도 줄어든다. 정부 재정 지원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와 IT 제품의 누적된 물가 압력이 몇 달 뒤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으로 가시화될 것"이라고 썼다. KIET는 3월에 두 번, NABO는 4월 초, 한은과 ING는 4월 10일. 네 곳의 독립 기관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 반도체의 역사적 호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반도체 공정이 헬륨 하나에 달려 있고, 그 헬륨의 65%가 카타르에 몰려 있으며, 카타르는 3월 24일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에는 가스류가 명시되지 않았고, 추경 세부 예산 중 반도체 공정 가스 배정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2023년 세수 결손 56조원의 기억은 3년을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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