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창신 신부 말, '연평도' 아니라 '이것'이 과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1/26 11:08
  • 수정일
    2013/11/26 11: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편집국에서] 대통령 사퇴 주장의 '역편향'

임경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26 오전 8:38:42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센 세 사람이다. 이들이 작은 말 실수 하나를 빌미로 한 원로 종교인에게 돌아가며 몽둥이찜질을 해댔다. "조국이 어딘지 의심스럽다"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비난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겁박했다.

무얼, 얼마나 잘못했기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원로신부의 22일 강론을 꼼꼼히 다시 읽어봤다. 논란이 된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에 관한 발언은, 문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꼬투리잡기다. 전형적인 지엽말단의 침소봉대다. 무엇보다, '사실(fact)'에 입각해볼 때, 박 신부가 일방적으로 돌팔매를 맞아야 할 발언인지 의문이다.

정부 주장을 믿지 않으면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는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걷어내면, 천안함 사건은 엄밀하게 말해 '미제 사건'으로 보는 게 객관적이다. 북한의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정부 발표는 민간 전문가들에 의해 과학적 반론이 제기됐다. 중국과 러시아 등도 우리 정부의 조사 결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박 신부가 언급한대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배가 운항 중에 쫙 갈라지기도 한다"고 폭침설을 부인하는 듯한 말을 한 것도 사실이다.

NLL 문제도 그렇다. 1953년 8월, 당시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통설에 따르건, "유엔사가 1950년 중반 일방적으로 선포했다"고 적힌 1973년 12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비밀문서에 의하건, NLL을 북한과 합의해 설정했다고 명시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나아가 'NLL=영토선' 주장은 헌법과도 배치된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렇게 그어진 NLL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NLL은 남북간 유혈 사태의 화약고가 되었고, 두 번의 서해 교전을 거쳐 2007년 남북의 정상이 마주앉은 자리에서도 골치 아픈 주제가 됐던 것이다.

적어도 NLL의 역사적 유래에 관한 '사실'에서 박 신부를 "사제복을 입은 종북주의자"로 낙인찍을 근거는 전혀 없다. 굳이 연평도 발언이 문제라면, 박 신부의 요령 없는 '주장'에 있겠다. 한미 군사행동이 위협적이었다 해도, 사람 사는 섬에 포격을 가해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 희생까지 부른 북한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일본의 독도 침략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단순 비교한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 박 신부가 서해 충돌의 한 당사자인 북한의 잘못까지 지적했다면 이 정도로 극우 인사들의 먹잇감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딱 그 정도다. 세속의 군사적 관점보다는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남북의 위정자들을 향한 평화의 메시지가 원로 종교인의 시국 강론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종북몰이로 안성맞춤인 천안함-연평도 사건 관련 발언만을 콕 찍어 공격한 박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은 그래서 치졸해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교계 일각의 비판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청와대


사제단과 박 신부의 주장의 본질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의 책임을 지고 박 대통령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사제단과 박 신부에게 동의하기 힘든 건 이 대목이다. 박 신부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으로 "정권교체의 꿈이 깨졌다"고 했다. 실패한 선거에 대한 '미련'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투사한 인식이 엿보인다. 이건 위험하다.

사제단의 지적처럼, 지난해 대선에 심각한 선거 부정이 자행된 흔적이 어마어마하게 포착됐다.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 국정원과 정부, 새누리당의 은폐, 축소, 물타기가 이어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게 사건의 전모라고 보기도 어렵게 됐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뒷짐만 지고 진실을 규명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조 탄압과 종북몰이로 공안 정국을 조성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박 대통령이 사퇴해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라고 거리낌 없이 단정할 수 있을까?

국가기관의 비방 댓글과 트윗과 리트윗이 없었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건 주관적인 '믿음'이다. 수군거릴 수 있어도 증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정원 등의 대선 개입을 직접 지시했거나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아직까지 없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수사는 끝나지 않았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법외 단죄는 성급하다. 박 신부의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야권 일각의 대선 불복 심리는 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교란하는 또 다른 방해 요소였다.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는 것이냐"는 박 대통령의 강한 부정과 정반대에 선 역편향이다.

내전에 가까운 현재의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시켜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가 다방면에서 퇴행의 징후를 드러낸 것도 우려스럽다. 그러나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노의 마음만으로 그의 사퇴를 공개 요구하는 것도 일종의 여론 재판이다.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불호에 갇히면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이라는 본질도 사라진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통령일지라도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헌법과 법률을 현저하게 위반하지 않는 한 5년의 임기를 맡기는 게 우리가 채택한 대통령 단임제다. 불교계와 개신교의 시국선언이 예고된 지금, 종교계의 진심어린 충정이 자칫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부를까 싶어 해본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권이 이 '역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저열한 계산'이 아니라면, 박창신 신부를 포함한 일부 종교계를 향한 '종북' 여론몰이를 끝내야 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단체의 고발로 검찰이 박 신부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검토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전에 가까운 현 상황의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임경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