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윤석열을 지지한 국민의힘 당원이었습니다."
귀가 번쩍 트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출판기념회와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열리던 때, 이런저런 인연으로 참석한 어떤 진보정당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 만난 한 청년. 자신을 '과거' 국민의힘 당원이자, '현' 진보정당 당원이라고 소개했다.
국민의힘 당원이라면 진보정당과 가장 먼 거리에 있을 것 같은 이 시절에, 순간이동 같은 이 변신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전향일까, 아니면 일관된 어떤 원칙과 철학에 따른 결과일까? 수많은 여론조사는 20대 남성의 극우화 추세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세대론으로 퉁칠 수 없는 다양성과 이질성이 존재한다. 어쩌면 그를 통해 대한민국 20대 남성의 단면을 엿볼 수도 있겠다.
지방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24일, 드디어 그를 만났다.
"생애 첫 정당은 시장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편의상 그를 Y라 부르자. 그는 서울 유명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졸업도 하기 전에 금융업에 취직했다. 나이는 올해 만 27세. 동기들이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들 나이니, 나름 성공한 사회 진출이다. Y가 별난 20대 남성인지, 아니면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표본인지를 추측하려면 삶의 궤적을 슬쩍 들여다봐야 한다.
Y의 어린 시절은 여느 386세대 가정과 유사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부모님(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보수정당 지지자가 되었다고 한다-기자 말) 손을 잡고 촛불시위에 간 경험이 있고,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상향식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싹텄다. 또래보다 이른 나이에 정치에 관심이 생겼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구체적인 색이 입혀졌다.
"중학교까지는 또래 친구들도 정치색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일베에서 쓰는 말들이 일상으로 쓰였는데, 꼭 무슨 의도가 있다기보다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말들이었어요. 부정적인 의미로 '너네 아빠 문○○ 같아', '너네 엄마 추○○냐?' 이런 말을 사용하고.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까 대부분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생각을 하게 되죠."
Y는 고등학교 때 법과 정치, 경제 과목을 들으면서 정치에 참여해 민주주의 성장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생일이 지나 법적인 성인 자격을 획득하자마자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의 후신으로 2017년 2월 14일부터 2020년 2월 18일까지 존속했으며 후에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진 보수정당-기자 말)에 입당했다.
아무리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후에 자유한국당 입당이라니. 그러나 Y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에 대해선 정치인들에게 이용만 당하다 버려졌다고 생각해서 측은지심이 더 컸다. Y는 시장경제, 공정한 경쟁, 자유라는 가치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고, 자유한국당은 이런 가치를 가장 분명하게 추구하는 정당이었다.
2021년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현실 정치에 대한 Y의 생각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2021년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으로 보궐선거가 있었던 해였어요. 선거에 나온 여당 후보가 내세운 공약들을 보면서, '이거 너무 현실성 없고 무능한 것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저런 사람을 내세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반면에 오세훈 후보는 서사가 있잖아요? 과거의 영웅이 움츠려 있다가 다시 등장한 느낌? 나름 보수정당에서 꾸준하게 개혁을 외치고 있었던 이준석도 (오세훈 후보를) 지원하고 있었고. 돌아보면 이때부터 보수정당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크게 높아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보수정당에 대한 Y의 지지는 더 굳건해졌다. 당연히 윤석열도 적극 지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핍박받던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나오는 영웅 서사가 그럴듯해 보였다. 물론 윤석열은 정치 초보지만, 무능한 문재인 정부에 비하면 최소한 현실을 더 나쁘게 만들지는 않겠다 싶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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