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필요 없어진 북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박인규 : 두만강 하류를 통한 출해권이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의 투사라는 부분이 중국이 원하는 것이었고, 합의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전략적 지위도 높아졌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라면 남한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세현 : 이번 시진핑 방북을 통해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고 북한이 중국의 품을 떠날 수 없도록 딱 묶어두고,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시권 내에 들어오지도 않고 하면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에 별로 의지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2018년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다른 말로 북미 수교인데 이미 트럼프에게 뒤통수 맞은 적 있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트럼프를 만나봐야 그 약속이나 합의가 언제 또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란 전쟁을 보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신도 커졌을 것이고.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 다리를 놓을 필요도 없지만, 이걸 성사시켜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없다. 오히려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되면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인중(人中)의 비수(匕首)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우리와 거리를 두고 담장을 높이 쌓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 관계도 좀 개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바늘 구멍이라도 뚫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한 때 했었는데 이번 일로 그 꿈은 접어야 될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가 좀 힘들었는데 이번에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풀린다고 보면 미국 또는 남한과 무엇인가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배경에는 제재 해제라는 목적도 있었다. 그게 상당한 인센티브였는데 이번에 국경 지역의 통상구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으면 북미관계 개선도 크게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이미 북한이 '러-우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여 석유나 식량, 무기, 현금 등이 들어오고 있다면 러시아도 유엔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 된다. 사실상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무너진 상황에서 시진핑의 방북으로 더 크게 제재의 벽이 무너졌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제재 해제를 기대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동시에 남쪽으로부터의 대북 지원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고. 그동안 남북 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실질적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비료 등을 지원하면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갔는데 이제 그런 갈증 내지는 수요를 중국이 상당한 정도로 들어주면 우리가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박인규 : 1995년 쌀 지원에서 시작해서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때까지가 말하자면 남한의 대북 지원이 일정한 레버리지를 발휘하던 시대였는데 그게 끝난 것 같다.
정세현 : 그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공동 성장은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중국이 해버리니까 우리의 대북 레버리지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대북지원경험이 있는 민간단체들이 제3국에서 북한측 인사들과 만나 뒤지다시피 하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지난 4~5월에 제주도가 신장투석기와 부자재를 북한에 보냈는데, 이걸 참작해서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북한의 수요를 조사하라고 하고 정부는 그걸 뒷받침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고 싶다고 하는데,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뚫으려고 하지 말고 민간을 앞세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선민후관(先民後官)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다. 평화공존에 돈 안들이고 무슨 일이 되겠는가? 퍼주기?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전쟁준비 하는 것보다는 돈이 적게 들 것이다.
박인규 : 상징적일 수는 있지만 국호 문제도 있다. 이제 저쪽에서는 우리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있지 않나? 그래서 우리도 그러면 아예 체제에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정식 명칭은 서로 불러주고 적대적이지 않은 두 국가로, 좀 실무적이고 '쿨한' 단계로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
정세현 : 옛 이름 버리고 새 이름 지어서 호적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자꾸 옛날 이름 부르면서 같이 놀자고 하면 되겠는가? 정부가 북한의 국호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1991년12월 남북 총리급 회담에서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에 6.15 정상회담, 10.4 정상회담, 4.27 정상회담, 9.19 정상회담 전부 다 남북이 각자 자기 정식 국호 써가면서 회담도 하고 합의서와 공동성명도 발표했었다.
다만 그때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은 북한이 통일을 하지 말자면서 남북이 두 국가로 살자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오지 않나? 이번 3월에 헌법 개정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특수관계를 복원하자는 얘기는 할 수가 없게 됐다. 또 북한은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해버렸다.
북한이 이처럼 나가버렸는데 우리 혼자 옛날로 돌아가자고 해봐야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호주의 차원에서 우리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길게 부르기 싫으면 조선이라고 불러주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그나마 남북 접촉이나 대화의 바늘구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탈냉전 초기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Butros Butros-Ghali)가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국제정세는 아직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고 했었다. '차가운 평화'라는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남북이 일단 '차가운 평화'라도 구축한 다음에 '뜨거운 평화'를 꿈꿔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각각 정식 국호로 교신하고 접촉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남북 접촉과 대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격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의 이름에서도 '한반도'라는 용어를 계속 쓸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또 남북 평화공존도 한조 평화공존, 아니면 아예 국호 빼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 정도로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미중 관계가 바뀌면 중국의 대북 지원은 또 줄어들 수 있다. 국제 정치에서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도, 한미관계도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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