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를 두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기대를 품었던 국민들이 많다. 한국 외교는 오래도록 외교가 아니었다. 미국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움직이는 유사 외교행위였다. 한미동맹은 정책이 아니라 신앙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려 했고, 브라질 룰라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았으며, 인도 국빈 방문으로 미국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신호를 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한 번도 따로 만나지 않은 미국의 혐오국 3인방이다. 한국 외교의 방향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고 볼 소지가 있는 대목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2월 미 공군의 서해상 무단 훈련에 경고음을 낸 일, 전작권 조기 회복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일, 이스라엘의 국제적 폭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인권,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외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이른바 ‘3불 무관용’ 방침이다. 작년 9월의 ‘3불 원칙’, 곧 이면합의·국익침해·불공정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놓고 보면, 이재명 외교에는 분명 자주외교의 싹이 돋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0일 한-EU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그 기대를 한순간에 흔들었다. 불과 이틀 전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조선 핵문제에 대해 현실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비핵화를 협상의 문턱에 세워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조선은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ICBM 기술을 고도화한다. 그러므로 당장의 목표는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핵물질 해외 반출 저지, 탄도미사일 기술 고도화 중단이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조선의 핵은 협상장에서 지워버릴 문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말이었다. 미국식의 ‘이상론’에 선을 긋는 언사였다.
그런데 한-EU 공동성명은 정반대의 문법으로 돌아갔다. 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했으며, 조선이 NPT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법적으로만 따지면 두 발언이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핵능력의 존재를 현실로 인정하는 것과 핵보유국 지위를 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법률 문장이 아니다. “현실을 보자”고 했다가 이틀 후에는 “너는 결코 핵보유국이 아니다”라는 문서에 서명했다면 조선은 어느 쪽을 이재명의 진심으로 읽겠는가. 그리고 조선이 언제 NPT 인정을 원했는가.
이번 공동성명의 문제는 조선 핵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성명은 조선-러시아 군사협력을 ‘규탄’한다고 했다. 외교 문서에서 규탄은 가벼운 말이 아니다. 한국은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의 입장이 어떠하든 한국이 그 언어를 그대로 받아 적을 이유는 없다. 유럽은 유럽의 전쟁을 말한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생존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성명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브뤼셀의 문장만 선명하다.
대만해협 조항도 마찬가지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인도·태평양에서의 일방적 현상변경 반대라는 문장은 중국을 겨냥한 말이다. 중국과 관계를 복원하겠다던 정부가 왜 유럽의 대중 견제 문구를 자신의 선언문에 담는가. 한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아무 입장도 갖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외교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 대중 경제관계,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 조선 문제의 관리가 한국의 직접 이해다. 유럽의 가치외교 문장을 빌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습관이다.
6월 13일 조선 외무성은 한-EU 공동성명에 대해 “이는 우리 국가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 엄중한 적대행위로서 지금껏 입 닳도록 떠들어 온 ‘체제존중’, ‘적대행위 불추구’와 같은 위장간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한국의 집권자가 거치장스럽게 쓰고 있던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고도 말했다. 6월 8일 이 대통령이 조선 핵의 ‘현실론’을 언급한데 대해 냉소를 보내던 조선이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는 공동성명의 내용이 기존 한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결국 ‘도루묵’인 것인가.
조선의 맹비난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세를 흩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기존 한국의 입장’이란 언제 시점의 입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인가. 누가 조선 외무성의 ‘위장간판’과 ‘가면’ 지적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성명이 우리의 과거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는 그 ‘관계자’는 우리 외교의 진보를 원점 회귀시키려는 숭미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이 대통령이 이들의 의견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비틀댄다면 그 동안의 이른바 ‘자주’ 행보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실용외교라는 이름하에 ‘숭미의 숲’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이렇게 한쪽의 입장만 전적으로 표현한 사례는 희귀하다. 한국은 EU의 안보 언어를 고스란히 수용했다. 반대급부라면 기껏해야 무관세 철강 수출 쿼터를 덜 줄인다는 얘기다. 그걸 얻겠다고 우리의 외교 목소리를 송두리째 상대에게 넘겼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설명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사전 협상을 담당한 외무 관리들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숭미 관료들의 의도적인 반란의 가능성이다.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다. 주인국에 대한 숭미인들의 충성은 갸륵하기 짝이 없다.
오디세우스의 배를 떠올리게 한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배가 암초로 향하지 않도록 몸을 돛대에 묶었다. 한국 외교의 배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선장은 암초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잡이들은 다시 익숙한 노래 쪽으로 키를 돌렸다. 워싱턴과 브뤼셀에서 들려오는 낡은 비핵화 주문, 러시아 규탄의 합창,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의 구호가 그 노래다. 더 큰 문제는 선장이 그 키를 빼앗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외교는 선언이 아니라 문서로 남는다. 기자회견의 현실론보다 정상성명의 문구가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말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에 비추어 보아도 이번 성명은 해명되기 어렵다. 어디에 국익이 있고 어디에 실용이 있는가. 한반도 문제에서는 조선에 대한 유럽의 규탄 언어를 받아들이고, 러시아 문제에서는 유럽의 전쟁 언어를 받아 적고, 대만해협 문제에서는 중국 견제의 언어를 받아들었다. 주권의 언어가 아니라 유럽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번 성명은 대형 사고다. 이 사고는 조선에는 불신을, 중국과 러시아에는 경계심을, 한국 국민에게는 혼란을 남겼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의 자주적 행보를 지지하고 성원해온 국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의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걸었던 길, 말로는 자주를 말하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동맹의 문장에 포획되었던 그 실패를 다시 반복하려는가. 숭미의 숲에서 빠져나오려 고독하게 싸운 지난 1년을 변절로 마무리할 것인가. 우선 한-EU 공동성명의 경위와 책임을 따져야 한다. 대통령의 뜻과 다른 것이었다면 철저히 문책해야 하고, 대통령의 뜻이 그런 것이었다면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주의 싹이 튼 줄 알았던 땅에서 우리는 다시 숭미의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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