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핵능력은 이미 현실이 됐다. 국제 군축·안보 통계도 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여전히 조선을 핵개발 초기 단계의 국가처럼 다루고 있다. 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는 ‘단계적 비핵화론’의 근본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통령이 설명한 단계적 접근법은 북핵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보다 목표를 나눠 접근하자는 구상이다. 우선 조선의 핵물질 추가 생산과 외부 이전을 막고, ICBM 기술 개발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핵·미사일 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차단한 뒤, 체제 위협을 낮출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장기적으로 비핵화로 나아가자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현실적 해법처럼 보인다. 당장 완전한 비핵화가 어렵다면 우선 동결부터 추진하자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제재 해제에 앞서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고, 지금은 핵동결을 먼저 요구한다. 적대관계 해소와 군사적 긴장 완화보다 조선의 핵능력 제한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이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못 해서 아쉽다”고 이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중요한 현실을 드러낸다. 미국도 한국도 조선의 핵능력이 이미 현실화됐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제 군축·안보 통계는 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6년 연감에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조선, 이스라엘을 9개 핵무장국으로 분류했다. 또 조선이 약 60기의 핵탄두를 조립했을 가능성이 있고, 최소 30기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 반핵단체 ICAN도 전 세계 핵무기 지출 보고서에서 조선을 9개 핵보유국 중 하나로 포함한다. ICAN 보고서의 취지와 별개로, 이 분류 자체는 조선의 핵보유 현실이 국제 통계에서 하나의 사실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2013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천명했고, 2022년에는 핵무력정책 법령을 채택해 핵무력의 사명과 지휘통제, 사용조건을 구체화했다. 최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은 G7의 비핵화 공동성명에 대해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핵보유를 주권과 헌법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반면 한미는 핵작전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다. 2023년 한미 정상은 워싱턴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 NCG를 신설했다. 2024년에는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을 승인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6차 NCG 회의에서는 핵·재래식 통합, 위기 시 핵협의 절차, 공동훈련, 전략적 메시지 등을 점검했다.

한쪽에서는 조선에 비핵화와 핵동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 핵전력에 기반한 한미 핵작전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핵위협이 줄어드는 환경이 아니라 핵대결 구조가 강화되는 환경이다.

이 조건에서 조선이 먼저 핵능력을 동결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 핵동결은 단순한 기술 조치가 아니다. 조선 입장에서는 핵억제력의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다시 전면에 올리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북핵 문제가 강조되면 대북 제재, 한미연합훈련 강화, 미국 전략자산 전개,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가 뒤따른다. 이는 조선의 반발과 상응조치를 부르고, 한반도 긴장을 다시 끌어올린다.

그 비용은 한국이 떠안는다. 군사적 긴장은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기업과 자본은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계산하고, 국민은 전쟁위기의 부담을 떠안는다.

단계적 비핵화론은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접근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연한 핵보유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결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비핵화론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지난 비핵화 구호의 변형이 아니라, 한반도 적대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