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일본군 장성과 공사관원들의 함께 찍은 기념 사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일본군 장성과 공사관원들의 함께 찍은 기념 사진

장지연은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의 논설을 싣고 을사늑약을 통곡하며 규탄한다. “이 날에 목 놓아 크게 운다”는 뜻이다. 장지연은 일본의 을사늑약을 “동양 평화”의 이름으로 포장한 침략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을사오적과 대한제국 대신들을 통렬히 꾸짖으며 그들을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로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권 상실을 민족 전체의 노예화로 인식한다. 조약은 단순한 외교 문서가 아니라 “2천만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사건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던 그는 10년이 가기 전에 철저히 변절한다.

이광수는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2·8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국으로 서야 한다는 요구였다. 2·8독립선언은 국내 3·1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광수는 이후 상하이로 가서 신한청년당에 참여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도 맡았다. 그러던 그가 1938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전향을 선언한다. 이후 그는 황민화운동과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대동아공영권을 지지하면서 징병제를 찬양하고 학병 지원 권유에도 참여했다.

최남선은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사람이다.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세계에 선언하고, 조선 독립을 인류 평등, 민족자결, 세계 평화의 원칙 위에 세우려 했다. 최남선은 이 선언서를 작성한 일로 체포되어 복역했다. 그러나 그는 15년이 지나 완전히 변절한다. 그는 1936~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로 활동했으며, 일제 말기에는 「나가자 청년학도야」 같은 글을 『매일신보』에 싣고, 일본의 조선인 유학생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선배 격려단’에도 참여했다.

시인 김동환의 대표작 <국경의 밤>은 두만강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서사시다. 일제 식민지 아래 국경 지대 조선 민중의 불안한 삶, 가난, 비애, 민족적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그 역시 일제 말기에 친일 문학과 전쟁동원 활동으로 급격히 기운다. 1943년 징병제가 시행되자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를 발표한다. 『친일인명사전』 기준으로 4,776명이 일제에 부역했다. 1942년 기준으로 조선의 관공리 수가 약 17.7만 명이었다는 연구에 따라 이들을 전부 부역자로 산입한다면 암담한 숫자다.

2023년 12월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임명됐지만, 과거 노인 비하 발언 등 논란으로 하루 만에 사퇴한 민경우라는 자가 있다.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1995~2002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즉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력도 있는 인물이다. 통일운동권에서 그는 ‘반미·자주·통일운동의 실무 책임자급 인물’이자, NL 노선 내부의 경험을 언어화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2009년 무렵 NL 노선의 한계와 재구성을 주장하면서 운동권 비판 보수 논객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대판 대표적인 변절이다.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41.15%의 득표율을 얻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변절의 정치인이다. 노동운동, 사회주의, 반미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이 보수적 한미동맹론자로 전환한 사례다. 그는 2025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자신이 과거 “대한민국을 싫어하고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주의자”였다고 말했고, “지금은 미국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는 취지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한미동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평화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제19·20·21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서울 중구·성동구을 경선에서 이혜훈에게 패해 공천을 받지 못한 하태경도 과거 주사파 운동권 출신에서 변절한 사람이다. 한겨레는 2012년 하태경의 변화에 대해 “말 그대로 전향”이었다고 보도하면서, 그 이유로 사회주의 몰락과 민중당 실패 등을 거론했다. 그는 예컨대 2019년 지소미아 파기를 두고 “한미동맹 파기 선언이자 반미 선언”으로 규정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을사늑약은 느닷없이 떨어진 벼락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사람들은 이미 외세 의존을 경계했고, 밀실 조약을 의심했으며, 황무지라는 이름으로 국토를 넘기는 일을 국권 상실의 징조로 보았다. <시일야방성대곡>은 그 모든 예감이 현실이 된 날의 통곡이었다. 1898년 독립협회와 관민공동회는 「헌의 6조」를 발표하고 “외세에 기대어 정치를 하지 말라”, “외국과의 조약이나 이권 양여를 밀실에서 처리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1904년 일본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해서는 유생 21명이 배일통문을 전국에 돌리며 반대했다.

 

1904년 2월 체결된 한일의정서는 을사늑약의 전 단계였다. 이 조약은 일본이 대한제국 안에서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용할 수 있게 하고, 대한제국이 일본 승인 없이 제3국과 협약을 맺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담았다. <황성신문>은 1904년 2월 24일 한일의정서 체결 내용을 보도했다가 게재금지 명령을 받자 이에 항의해 삭제된 기사의 활자를 거꾸로 인쇄했다. 을사늑약 체결 직전 일진회가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선언서를 각 단체에 보냈을 때 국민교육회와 헌정연구회가 이를 반송하는 일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있다. 과거에도 변절자는 있었다. 그러나 한일의정서와 을사늑약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외국 군대가 조선의 땅을 군사전략의 공간으로 삼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감지했고, 밀실 조약과 이권 양여와 보호국화의 위험을 경고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체제로 주권이 압살당하고 있음에도 정치적 저항은 희박하다. 자주와 통일을 말하던 자들은 미국을 주인국으로 떠받들고 있다. 식민의 전조 앞에서 저항했어도 조선이 나라를 잃은 판에 오늘의 상황은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한일의정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흡사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조의 핵심 문구는 이렇다. “대일본제국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형편에 따라서 수용할 수 있다.” 일본군이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항구, 철도부지, 도로, 통신시설, 병참기지, 주둔지, 창고, 요새화 가능한 지역 등을 강제로 점유·사용한다는 얘기다. 조선의 독립과 영토를 지켜주는 대신 일본이 필요하다고 보는 땅은 그들이 마음대로 차지해 쓰겠다는 뜻이었다. 대한제국의 영토주권은 이 때 무너졌다. 한일의정서 이후 대한제국은 이미 식민지화 과정에 들어갔고, 군사적으로는 사실상 일본의 점령지처럼 다루어졌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미합중국의 육군·해군·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안과 그 부근에 배치할 권리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그 배치는 상호 합의에 의하여 결정된다.” 핵심은 “수락”이다. 부탁을 받아들여 승낙했다는 말이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라는 말은 주권 국가 간의 외교문서처럼 구색을 맞춘 것에 불과하다. 이승만은 자발적으로 미국에 그들 군대를 우리나라 영토에 마음대로 들일 권리를 준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갑과 을이 명확히 나뉜 순간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아니라고 해도 미국은 우리를 식민지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이 그 순간에 이미 결정되어버렸다.

을사늑약 이전 일본이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차지할 수 있었던 조항이 대한제국의 군사주권 붕괴를 뜻했다면, 오늘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역시 한국 영토가 미국 군사전략의 배치공간으로 편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차이는 하나다. 그때는 강압적 보호국화였고, 지금은 동맹이라는 이름의 합의된 종속이다. 군사주권의 관점에서는 식민성이다. 한국은 법적으로 미국의 식민지는 아닐지 몰라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체제는 한국 영토와 군사주권 일부를 미국의 세계전략 안에 편입시키는 구조다. 사실상의 식민지라는 말이다.

과거에는 저항이라도 했다. 저항 없이 숭미만 남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 명실상부한 식민의 길이다. 길을 막으려면 자주를 말해야 한다. 동맹보다 주권이 앞선다는 뚜렷한 의식과 원칙을 세워야만 한다. 미국의 허락 속에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자기 판단과 자기 책임으로 서는 진짜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변절자들의 매국을 또 다른 이름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분명하고 더 힘찬 자주의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