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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 밀리는 아이들 밥값…왜 추경으로 반영되나

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

- 관악뉴스(지역언론사) 조태희의 관악을 담소 칼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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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10.01 09:00

  • 댓글 0

경기도 추경 지연, 당장 학교급식 중단되진 않아

11월까지 배정된 예산, 남은 12월치는 추경으로

재정이 어려울 때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말일 즈음 학교에서 보내오는 다음 달 식단표에는 한 달의 시간이 들어 있다. 지난 밤 아이는 식단표의 메뉴를 읽어 보이며, 좋아하는 메뉴를 기대하고, 이건 내가 쫌 안좋아하는데, 이건 지난 번에 매웠었는데 하며 벌써부터 걱정을 하고 있다. 월요일의 국과 화요일의 반찬, 금요일의 과일이 작은 칸마다 적혀 있다. 아이는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는 날을 기다리고, 부모는 그 종이를 보며 아이가 낮에 먹을 한 끼를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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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칸을 예산으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점심시간이 되면 밥이 나온다는 것.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적어도 그 한 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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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창시절의 점심은 도시락이었다. 매일 아침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며 반찬 걱정을 하셨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날이면 도시락 반찬은 누가 봐도 달랐다. 새 학기를 앞두고 새 도시락을 사러 갔던 기억, 등굣길 문방구 앞에서 기웃거리다 도시락을 두고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친구들의 반찬을 곁눈질하며 투덜거렸던,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초라했던 기억까지 스쳐 지나간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그날 집안의 사정이 그대로 드러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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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은 그 차이를 식판 위에서 지웠다. 경기도의 무상급식은 2010년에 시작됐다. 오늘 내가 보는 아이 학교의 식단표는 메뉴를 알려주면서, 학교가 아이와 부모에게 건네는 약속이기도 하다.

 

지난 달 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의 식단표 (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올해 아이들 학교의 운영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학운위는 학교급식을 심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교급식 예산이 부족하다는 소식은 단순히 다른 지역의 재정 기사로만 읽히지 않는다. 예산서의 숫자와 식판 위의 밥은 결코 떨어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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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밥은 당장 끊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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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학교급식 지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도가 기존 사업 5465억원을 깎아 추경안을 짜자, 도의회는 산후조리비와 교통약자 이동지원 등 줄거나 빠진 민생예산을 되살리자고 했다. 도는 빚과 이자 부담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본회의 상정은 무산됐다. 추경안에는 유·초·중·고등학교 급식비 지원 584억원이 포함돼 있다. 경기도는 세수 부족 등 재정난으로 올해 본예산에 필요한 예산 일부를 담지 못했고, 추경에서 이를 확보하려 했다.

 

지난달 18일 경기도의회 제393회 임시회 본회의. 제2회 추경안은 끝내 상정되지 못했다. (경기도의회)

물론 당장 10월부터 아이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9일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교육행정은 3월을 기준으로 분기를 나눈다. 그래서 도내 학생 156만명의 9월부터 11월까지 급식 예산은 이미 25개 교육지원청에 배정돼 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도 당장 급식이 중단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12월 급식 예산은 추경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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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분은 중요하다. 아이들이 곧 굶게 된다는 말로 사태를 부풀려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앞세우면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이 뒤로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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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1월까지 밥이 나온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그러나 12월에도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물어야 할 것은 급식이 멈추느냐가 아니라, 12월의 밥값이 왜 처음부터 비어 있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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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으로 나중에 채우는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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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억원은 갑자기 생긴 돈이 아니다. 올해 경기도 본예산은 재정난을 이유로 무상급식 지원비를 1년이 아닌 9개월치만 담았다. 남은 석 달, 10월부터 12월까지의 몫이 584억 원이다. 연말에 학기가 이어진다는 것을 예산을 짤 때 몰랐을 리 없다. 결코 줄이면 안될 필수 예산과목 중 하나인데도 해마다 필요한 밥값의 일부를 나중에 마련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방식은 얼마나 안전한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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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처음 예상했던 세입이 달라질 수 있고, 미처 헤아리지 못한 지출도 생긴다. 한 해의 살림을 중간에 고치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처음부터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던 비용을 추경으로 넘겼다면, 그 사이를 건널 계획도 있어야 한다. 재원을 언제 확보할 것인지, 예정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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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식이 늘 안전한 것도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9개월치만 담겼던 산후조리비는 이번 추경안에서 끝내 채워지지 못했다. 10월부터 지원이 끊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반발이 일었고, 복원하는 방안은 지금 협상 테이블 위에 있다. 나중에 마련하겠다던 돈이 나중에도 마련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올해 본예산은 지방선거 전에 짜였고, 그 빈칸은 새 도정의 추경으로 넘어왔다. 뒤로 미룬 비용은 결국 다음 사람이 떠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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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비는 교육청만의 돈도 아니다. 연 1조 8천억원 규모의 경기도 무상급식에서 도가 부담하는 몫은 2400억원가량이다. 도의 살림이 흔들리면 교육청이 짜 놓은 급식 계획도 함께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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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살림의 우선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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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살림이 어렵다는 사정도 함께 봐야 한다. 세수는 줄었고, 빚에는 하루 4억원 가까운 이자가 붙는다. 돈이 부족한데 모든 사업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빚을 내는 일에도 책임이 따른다. 그렇다고 이미 누군가의 생활을 받치고 있는 사업을 줄이는 일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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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의 교착에는 이상한 대목이 있다. 584억원은 쟁점이 아니다. 도가 추경안에 넣었고, 도의회도 깎자고 하지 않는다. 다툼은 다른 사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추경안은 한 묶음이어서, 한쪽에서 합의가 안 되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예산까지 함께 멈춘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가장 먼저 확정돼야 할 돈이, 지금은 가장 늦게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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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점심은 갑자기 생긴 사업이 아니다. 올해만 특별히 제공하는 혜택도 아니다. 학교가 문을 여는 날마다 필요한 비용이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이런 지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보장하는지가 예산의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무엇을 깎을 것인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먼저 확보해 두었어야 했는지, 부족해질 것을 알면서 뒤로 미룬 비용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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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학교현장, 식단표 뒤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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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식재료를 주문하고, 납품받고, 조리하는 시간이 있다. 의회의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다음 주의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쌀을 사고 채소를 씻고 국을 끓이는 일에는 다음 회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어렵다.

 

학생들로부터 카네이션 선물받는 부산의 한 급식실 노동자들 (연합뉴스)

아무 일 없이 점심시간을 맞았다면, 그날도 누군가는 식재료를 확인하고 수량을 맞추고 조리 시간을 지켰을 것이다. 밥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과정의 어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행정이 해야 할 일은 그 수고에 기대어 위기를 넘기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달에도 같은 걱정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산 처리가 늦어질 때 그 불확실성을 누가 먼저 감당하는지까지가 행정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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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표의 마지막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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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급식 예산을 두고 아무도 논쟁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식재료의 질과 단가, 예산 분담과 집행 방식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밥이니 더 잘 따져야 한다. 다만 그 논의가 아이에게 한 끼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불안으로까지 내려와서는 안 된다. 부모가 식단표를 펼쳤을 때 예산 협상의 진행 상황까지 함께 걱정해야 하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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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학교급식은 당장 멈추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정확히 전하는 것과, 남은 급식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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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경은 어떻게든 처리될 것이다. 진짜 시험은 그다음이다. 11월이면 2027년 본예산안이 도의회에 올라온다. 내년 예산서에 급식비가 열두 달치로 담기는지, 아니면 또 아홉 달치에 '추경 예정'이 붙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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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분과를 맡아 자문의견을 쓰며, 나 역시 무엇을 더 담을지를 먼저 고민해 왔다. 새로운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일만큼, 이미 약속한 일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다. 눈에 띄는 새 사업이 없어도 한 해 동안 필요한 급식비가 제때 마련됐다면, 그것은 충분히 설명할 만한 행정의 성과다.

 

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의 9월 30일 점심 급식 메뉴 (학교 홈페이지)

다음 달 식단표가 오면 부모들은 다시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찾을 것이다. 아이는 급식실로 가고, 조리실에서는 점심 준비가 시작될 것이다. 12월 식단표의 마지막 주에도 메뉴가 적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예산의 결론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그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데 필요한 돈을 제때 마련하는 것, 어려운 살림을 책임 있게 꾸린다는 건 그런 일이다. 그리고 식단표를 읽는 우리 아이의 걱정은 매운 반찬 하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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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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