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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판 <종북용어사전>, 당신도 종북입니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30 09:48
  • 수정일
    2013/12/30 09:4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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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을 싸잡아 종북으로 모는 새누리당의 이 같은 낙인찍기는 '이석기 사건'이 불거진 후 계속돼왔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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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 씹던 껌이 됐다. 북한을 추종하는 행위나 그 세력을 뜻하는 무시무시한 말, '종북'을  박근혜 정부는 숱하게 써먹었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종교계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등 정부 여당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꺼내 문 '종북'이란 단어는 1년 동안 지독하게도 소비됐다. 종국에는 단물이 모두 빠져나간 후다. 

이제 면역력이 생긴 야당은 쏟아지는 '종북' 지적에 '종박(박근혜 대통령을 따르는)'이나 신경쓰라고 일갈한다. 누리꾼들은 "대한민국 용어 1.평화주의자=종북좌빨 2.반친일파=종북좌빨 3.반불평등FTA=종북좌빨 4.정치비판=종북좌빨 5.반여당=종북좌빨 6.구럼비보호=종북좌빨...세상천지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트위터, RageP***)라고 한탄한다. 

"'종북'이 북을 따라 사는 걸 말한다면, 북처럼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는 새누리당 정권이 꼴'종북'"(트위터, actorm***)이라며 정부 여당을 향해 역공을 펴기도 한다. 가수 백자는 "종각 가서 '종'을 보고 서점에 가서 '북'을 보고 콘서트에 참가하라"며 '종북 예술제'를 열기도 했다. 

'내 편 아니면 종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반복되자 '종북'이라는 말이 갖던 어마어마한 힘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풍자 대상으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1년 내내 씹은 껌, 종북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 다시 입에 물기도 힘들 지경이 돼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종북'을 1년 동안 어떻게 소비했기에 이 단계에 이르렀을까.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의한 '종북'을 정리해봤다. 즉, 박근혜 정부판 <종북용어사전>이다. 정부로부터 '종북'으로 몰리기 싫다면, 아래 '사전적 의미'들을 유념해 두시라.

①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 정당화 됐다"

지난 11월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와 관련 "당의 설립 목적과 활동에 위헌성이 있고 당 전체가 '종북 정당화' 돼 존치할 경우 우리나라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당원은 당원에 가입했다는 그 자체로 '종북'이 되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에 앞선 지난 3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책임이 미국과 우리 정부에 있다는 통진당의 주장에 대해 "북한 감싸기로 종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통진당은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북한으로 가라"고 주장했다. 

② "민주당은 종북 숙주"

일찌감치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못박은 새누리당의 다음 먹잇감은 민주당이었다. 정부 여당은 '종북 숙주론'을 설파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일 "민주당이 이석기 사건과 관련 제명에도 반대하고 통진당 해산 청구도 반대했다, 사실상 싸고 도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종북 숙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통합진보당 국회 진출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원죄론'이다. 

지난 9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주의 훼손세력과 무분별하게 연대해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생해온 종북세력의 숙주노력을 하지는 않았는지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홍문총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죄가 이석기 의원의 죄보다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공개된 후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2007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민주당이 종북 좌파세력의 원천적인 근원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정상회담 회의록이 대선 전에 불법으로 유출 됐다는 논란이 불거진 때로, '불법 유출'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종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③ "신 야권연대? 종북 숙주"

국정원 개혁을 위해 야권이 한 데 뭉치자 조급해진 새누리당은 '종북 숙주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11월 심재철 최고위원은 "민주당·정의당·안철수 의원·시민단체·재야인사와 함께 내일 연석회의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묻지마 연대'의 백낙청 서울대 교수·함세웅 신부·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면면을 보면 '구 야권조합'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작년 총선 때 이른바 원탁회의를 구성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를 촉구했던 사람들이고, 민주당은 이 같은 요구에 따라 이른바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 이석기 같은 종북세력이 국회로 침투하는데 숙주 노릇을 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종북숙주론'은 참으로 광범위하게도 쓰였다. 

④ "이석기 체포 동의안에 기권·무효·반대표 던지면 '종북 의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9월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체포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나온 '기권·무효·반대'표를 모두 종북표로 규정했다. 그는 "반대는 완전 대놓고 종북, 기권도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이라며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 의원이 최소 31명"이라고 밝혔다. 

반대표를 던진 일부 의원들은 이 의원에 대한 혐의가, 민주당이 폐지를 주장해온 국가보안법 위반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임에도 김 의원은 일방적으로 '종북'이라 몰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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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영수 88회 탄신제' 도중 울려퍼진 "종북척결" 박근혜 대통령 어머니인 육영수씨의 생일인 29일 오전 동상이 세워져 있는 충북 옥천읍사무소 광장에서 육영수여사 생가보존회, 육영수여사탄신 숭모제례보존회가 주최한 '고 육영수 여사 88회 숭모제'에서 박해모(박력있는 해병대 모임) 봉사단과 대한민국서포터즈봉사단 회원들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를 '종북력'으로 규정하고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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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 당신은 종북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정부는, 천주교 신부들이 나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입을 열었다. '종북 사제단'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서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해 새누리당은 "종북구현 사제단이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1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일부 사제들이 22일 시국미사를 통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나아가 박대통령의 퇴진도 요구했다"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사제들은 이제 사제복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의 종북성향을 분명히 국민들 앞에 드러내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더 나아가 "북한 세습정권·통합진보당·RO·정의구현사제단, 이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한-미 FTA 반대·국보법 폐지·제주 해군기지 반대·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광우병 반미 선동·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실 부정·북한의 연평도 포격 정당화·박근혜 대통령 사퇴 요구까지, 이들은 똑같은 주장·행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신앙 뒤에 숨어 친북·반미 이념을 가지고, 또 종교 제대 뒤에 숨어 반정부·반체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종북의 길을 맹종하는 신앙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목소리 높였다. 

⑥ 남재준 국정원장이 잘못하고 있다고? 당신은 종북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남재준 원장은 정보를 아는 사람"이라며 "종북·친북 세력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남재준 원장에 반대 뜻을 표하는 이들은 종북 내지는 친북 세력이 되고 마는 격이다. 

⑦ '광명납작체' 글씨를 이용? 당신은 종북 

심 최고위원은 지난 1월 "12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선 수개표 요구 집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만들었다는 북한의 광명납작체 현수막이 등장해 충격"이라며 "이 폰트는 일반 네티즌들이 흔하게 사용하거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정단체나 세력이 대량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대선결과를 부정하고 나라의 근간을 흔들려는 종북세력이 재검표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글씨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수개표를 요구하는 이들은 졸지에 '종북세력'이 됐다. 

⑧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당신은 종북 

박상주 새누리당 부대변인은 지난 8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언제까지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이라 운운하며 징징거리는 정치를 할 셈이냐"며 "민주당의 그러한 노숙투쟁이 결국은 국가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는가, 왜 그리 친노와 종북 좌파의 강경 노선에 끌려 다니는가?"라고 일갈했다. 

지난 대선의 부정함을 외치며, 노숙투쟁이라고 불사한 것을 두고 '종북 좌파'의 강경 노선에 끌려 다닌 결과라 본 것이다. 

⑨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당신은 종북 

새누리당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에 '종북 세력'이 가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10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 된 와중에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종북세력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이 가세해서 공사현장의 갈등이 격해지고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세력은 제주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등의 문제에 때만 되면 나타나서 개입해 왔고,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갈등조장에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인 시민단체 등에 대해 '종북세력'이라는 올가미를 씌운 것이다. 

⑩ 햇빛정책 주장? 당신은 친북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야권의 지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햇볕정책은 친북'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유 위원장이 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친북 정책이 뭐가 있냐'는 질문에 "햇볕정책이 친북 정책 아니냐"고 답했다. 

이에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햇볕정책이 친북정책이면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이에 발맞춰 보조했던 클린턴의 미국, 고이즈미의 일본, 장쩌민의 중국과 국제사회가 모두 친북활동을 했다는 해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클린턴과 고이즈미와 장쩌민이 친북인사들인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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