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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민망한 중대 발표는 금요일에 합시다

2013년의 금요일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왼쪽부터),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김용판·원세훈 국정조사 출석,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희롱 사건 등 금요일에 터진 대형 사건·사고로 <한겨레> 토요판은 커버스토리를 교체하거나 편집을 급하게 변경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뉴스분석 왜?2013년 금요일의 사회사

▶ 올 한해 유독 금요일에 발표된 중요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검찰의 발표가 주로 금요일에 잡히면서, 법조기자들 사이에선 “신은 검찰을 위해 금요일을 창조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죠. 우연히 역사가 금요일에 이뤄진 걸까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금요일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토요판팀’의 기자가, 2013년 금요일의 한국 사회를 되짚어 봤습니다. 

 

 

지난 9월13일, 금요일. 불길하다는 13일의 금요일이었지만 <한겨레> 편집국은 조용했다. 지난해 1월 토요판 형식의 지면 제작이 시작된 이래 여느 금요일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최소한 오전까지는 그랬다.

 

기획기사 중심의 토요판이 발행되면서 <한겨레> 편집국의 금요일은 이전과 달라졌다. 당일자 사건기사 지면이 대여섯면으로 줄면서 금요일 근무인력은 이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평온한 분위기가 돌 맞은 유리창처럼 깨졌다. 오후 1시17분께 법무부가 출입기자들에게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실시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2시 법무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채동욱 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에 대해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30분 뒤에는 채동욱 당시 총장이 검찰 대변인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신문 지면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음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기사는 ‘채동욱 찍어내기, 청와대 직접 압박’이었다.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계획에 없던 기사였다.

 

 

만델라 서거·장성택 처형이야 그렇다 치고… 

 

2013년은 유독 금요일에 사건·사고가 많았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목요일 밤늦게 서거해 금요일 아침부터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북한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됐다는 소식도 금요일에 알려졌다. 담당 기자들은 사건 발생 직후 분주하게 기사를 작성했다. 국제부 기자들은 만델라의 생애를 조명했고,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장성택 처형의 이유와 북한의 동향을 살폈다. 불가피했던 이들 사건과 달리 일부러 금요일을 택한 부류도 있었다. 특히 법무부와 검찰은 상습적이었다. 이로 인해 법조기자들에게 ‘불금’은 ‘불타는 금요일’이 아닌 ‘불안한 금요일’이 됐다. ‘금요일에 발표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금요일 발표가 검찰이 아닌 ‘윗선’의 의지라는 방증이었다.

 

올 한해 검찰과 법무부가 중요한 발표를 금요일에 한 것은 모두 다섯 번이다. 시작은 6월14일. 검찰은 금요일인 이날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반대에도 검찰은 선거법 적용을 강행해 야권에 ‘대선 정당성 시비’의 빌미를 제공했다.

 

 

13일의 금요일에 벌어진 
법무부의 감찰 발표와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법조기자에게 ‘불금’이란 
‘불안한 금요일’의 줄임말 
경찰의 국정원 피의자 소환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감 출석도 
새누리당의 서청원 공천 확정도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도 
약속이라도 한 듯 금요일에 발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선거법 적용’ 강행으로 정부에 미운털이 박히자 이번엔 법무부가 금요일 발표를 이어갔다. <조선일보>가 9월6일 ‘혼외자식 의혹’을 보도하자 법무부는 9월13일 금요일 사상 최초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2주 뒤인 9월27일 금요일에도 언론사 마감시간이 임박한 오후 5시20분에 감찰 결과를 발표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날 법무부는 이미 사퇴한 채 전 총장이 혼외관계 의혹을 받는 임씨의 레스토랑을 자주 출입했고, 채 총장의 집무실에 찾아와 부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 임씨가 의혹 보도 하루 전에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감찰 결과 중에 의혹을 뚜렷이 밝힐 만한 근거는 없었다. 현직 검찰총장을 사퇴로 이끌며 시작한 감찰이라고 보기엔 초라할 정도의 결과였다.

 

채 전 총장에 대한 감찰 결과가 발표될 당시는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치던 때였다. 기초연금 공약 불이행이라는 이슈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와 맞물려 커졌고, 대통령의 사과에도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초연금과 연계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마침 이때 법무부는 이미 사퇴한 채동욱 전 총장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채 전 총장이 떠난 검찰은 금요일인 11월8일 감찰위원회를 열어 윤석열 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에 대해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윤 전 수사팀장은 트위터에 대선 관련 글을 올린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면서 내부보고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감찰을 받던 중이었다. 하지만 수사 진행을 막았다는 의혹을 받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외압의 실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일주일 뒤 금요일인 11월15일엔 검찰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조명균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대화록 초본을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은 여론의 반응이 부담스러운 내용을 연이어 금요일에 발표했다.

 

 

비판이 예상되면 금요일에 발표 

 

금요일 발표는 검찰·법무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경찰은 국정원 사건의 주요 피의자, 참고인을 소환하는 날짜로 금요일을 골랐다. 대선 직전 누리집 ‘오늘의 유머(오유)’에서 여론 조작에 나섰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는 올해 두 차례의 소환조사를 모두 금요일에 받았다. 취재를 담당한 <한겨레> 정환봉 기자는 1월4일 금요일 밤 12시를 넘어 새벽까지 수서경찰서 앞에서 김씨를 기다렸다. 정 기자는 “정씨에게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10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런 보람 없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귀가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활동을 도운 민간인 이아무개(42)씨와 또다른 국정원 직원 이아무개(39)씨를 소환 조사한 것도 2월22일, 4월5일로 모두 금요일이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금요일을 선호했다.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원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은 이들은 당초 국정조사 마지막 날인 8월21일 수요일에 출석한다고 밝혔다. 최대한 날짜를 연기해 출석을 피하려 한다는 야권의 비판을 받자 금요일인 8월16일에 출석했다. 김용판 전 청장은 오전 10시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거부했고, 원세훈 전 원장도 이날 오후에 국회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이들은 국회에 출석한 증인 가운데 헌정 사상 최초로 증인선서를 거부하며 “국민의 기본권인 방어권 차원에서 선서를 거부하겠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후보를 결정하는 날로 금요일을 골랐다. 새누리당은 애초 10월7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공천 후보를 정하기로 했으나 금요일인 4일로 앞당겨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의 공천을 확정했다. 이날 기습적으로 비리 전력이 있는 친박(친박근혜) 인사의 공천이 확정되자 당내에서조차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기 힘든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금요일 발표는 유행처럼 번졌다. 기획재정부는 7월5일 금요일 재원 마련 계획을 빼놓은 대선 지방공약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총 167개의 지방공약 사업 가운데 96개 신규 사업에 들어갈 84조원의 재원 마련 계획이 빠진 졸속 발표였으나 많은 언론사는 이를 토요일자 단신으로 처리했다. 교육부도 금요일을 골라 교과서 수정을 명령했다. 나승일 교육부 차관은 11월29일 금요일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지학사 등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7종에 대해 41건의 수정명령을 통보했다. 교육부는 수정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출판사는 교과서 발행을 정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고의로 발표한 내용 이외에 불가피하게 터진 사건조차 금요일에 알렸다. 중국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이 ‘올 한해 세계 8대 굴욕 뉴스’로 선정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성희롱 사건이 알려진 시기도 5월10일 금요일이었다.

 

그렇다면 정부와 검찰, 정치권은 왜 금요일 발표를 선호할까.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을 출입한 한 기자는 “박근혜 정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도 비판이 예상되는 수사 결과를 금요일에 발표했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은 2010년 7월16일 금요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2011년 4월15일)과 특검 수사로 진행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 터 헐값 매입 사건(2012년 6월8일) 등의 수사 결과를 금요일에 발표했다. 세 사건 모두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대개 중요한 발표를 할 때 금요일을 피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서 두 차례 전월세 대책을 발표했다. 두 발표 모두 취득세, 양도소득세 완화 면제 등으로 부동산 거래비용을 줄여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정부 발표의 내용을 인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때 정부가 고른 요일은 월요일(4월1일)과 수요일(8월28일)이었다. 기획재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날짜는 8월8일 목요일이었다. 서민에 대한 세 부담이 무거워진다는 여론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세제개편안의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시기는 월요일인 8월12일이었다. 국방부가 이어도를 포함한 새 방공식별구역을 발표한 시기는 12월8일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 발표하면 신문에는 월요일치에 실린다.

 

 

기자들의 대응도 소극적이었다 

 

이처럼 정부가 사안에 따라 다른 요일을 선호하는 모습은 뉴스의 생산 및 소비 형태와 관련이 깊다. 일단 토요일치 신문에는 당일자 뉴스 지면이 적다. 토요일엔 전체 지면의 수가 평일보다 4~8면 정도 줄어들고, 여기에 기획기사의 비중이 높아져 당일자 뉴스는 더욱 적어진다. 이런 경향은 지난해 1월 <한겨레>를 시작으로 국내 일간지들이 ‘토요판’을 잇달아 발행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한겨레>를 따라 <세계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등도 토요판을 발행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한국경제신문>도 ‘커버스토리’라는 문패를 걸고 기획기사의 비중을 늘렸다. 당일자 뉴스의 감소는 기자들의 근무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토요판이 보편화된 이후 금요일에 쉬는 기자들이 늘었다. 금요일에 큰 사건이 터질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방송사들도 주말엔 뉴스 시간을 10~20분가량 줄여 편성한다. 내용도 연성기사로 채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뉴스의 소비 형태도 정부의 금요일 발표를 부추긴다. 국내 대부분의 일간지는 가정보다 직장 구독 비중이 높다. 토요일에 신문을 받아 보지 못하는 직장인이 꽤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독자도 주말보다는 평일에 더 많은 뉴스를 소비한다. 지난 한달간의 <한겨레> 누리집 뉴스 조회수를 종합해보면, 주말에 뉴스를 조회하는 숫자(페이지뷰)가 주중의 60~70% 수준이었다. 또한 평일에 뉴스가 보도되면 이해 관계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후속 보도가 이어질 수 있으나 주말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이 때문에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에는 뉴스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다음주에 터지는 뉴스가 새롭게 부각되곤 한다. 마케팅 전문 업체인 뉴스와이어는 자사 블로그에서 ‘공휴일이 다가오거나 다른 뉴스가 진행되는 상황에는 보도자료 배포를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신문에 보도되기를 원한다면 금요일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권고한다.

 

악의적인 금요일 발표에 대한 기자들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검찰을 출입했던 한 기자는 “과거에 검찰이 악의적으로 발표를 금요일로 택하자 기자단이 단합해 엠바고(보도 유예)를 걸고 월요일에 일제히 보도한 적이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정부의 잘못된 전달 방식을 지적하고 개선하게 하는 것도 언론의 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6월8일 금요일에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 터 헐값 매입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오후에 발표를 접한 기자들은 검찰의 전달 방식을 문제삼고 월요일까지 보도를 유예해 평일자에 쓰기로 합의했다. 당시 합의를 이끈 이 기자는 “기자단이 보도를 유예해도 보안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위험이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기자들의 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새해 금요일은 어떨까. 적어도 <한겨레> 토요판은 내년 송년호에 한해의 금요일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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