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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대북압박 골몰 소중한 외교 기회 놓쳐

 한.중 공동성명 벗어난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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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4  09: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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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겨에서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은 한국식 용어들을 쏟아냈다. [사진출처 - 청와대]


박근혜 정부는 중요한 외교적 기회인 한.중 정상회담을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보다는 대북 압박의 장으로 이용하는데 골몰함으로써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스스로 저버렸다.

더구나 한.중 양 정상간 합의를 공식적으로 정리한 ‘한.중 공동성명’에는 담지 못한 대북 강경입장을 박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공동기자회견에서 쏟아내는 씁쓸한 진풍경이 빚어졌는가 하면, 일본을 향한 양국의 공조는 단 한마디도 명기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3일 오후 청와대에서 단독정상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현안과 북핵문제,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 논의했고, 양 정상간 합의 결과는 ‘한.중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됐다.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점과 “양측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동인식을 모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는 입장’을 한.중 정상 간에 최초로 명기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6월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유관 핵무기 개발이...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현했던 데에 비해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표현에는 만족하지 못했던 듯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오늘 회담에서 우리 두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고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며 “무엇보다 북한이 핵과 경제개발 병진노선을 고집하면서 최근 또다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핵실험 위협을 거두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한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19공동성명은 물론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서 조차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식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한국식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핵실험 반대’를 명기하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병진노선’을 적시해 반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공동’기자회견 취지가 무색하게 한국식 어법과 논리를 총동원해 공동성명의 톤과는 다르게 북핵문제에 대한 압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이유가 정상회담 시간이 길어진 탓만은 아닐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진행된 한.중 확대정상회담 모습. [사진출처 - 청와대]

이에 비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고 “6자회담 수석대표간에 다양한 방식의 의미있는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유화적 대목은 공동성명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읽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조건 없는 6자회담 대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는데 합의하고,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상 간의 공동인식을 표현했다”고 해석해 한국측 입장이 주요하게 관철됐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그간 조건 없는 즉각적인 6자회담 재개라는 북측 입장에 더 가까운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공동기자회견에서 “나는 드레스덴 구상이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지난 3월 핵안보정상회담 계기 독일방문 시 내놓은 ‘드레스덴 구상’을 언급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는 ‘드레스덴 구상’이 담기지 않았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드레스텐 구상에 대해서 반대하는 상황”때문에 중국측과 합의하에 ‘드레스덴 구상’을 명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으며, “드레스덴이라는 단어는 공동성명에 없지만 핵심 내용에 대해서 중국측으로부터 문서로 최초로 지지를 확보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해명했다.

공동성명에 “한국측은...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명기한 것을 두고 한 말이지만 이것도 “한국측은”이 주어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중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어 그나마 아전인수식 해석인 셈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기회를 남북관계 개선이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선용하기 보다는 중국을 끌어들여 한국의 대북 압박책을 홍보하는 장으로 악용했고, 그 결과 북핵문제 해결이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 방안은 전혀 제시되지 못했다.

특히 최근 북측이 7월 4일을 기해 상호 비방.중상을 중단하고 8월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를 중단하자고 중대제안을 내놓은데 대해 어떠한 호응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철저히 북한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최근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한국 이니셔티브’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압박책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무능을 스스로 드러냈을 뿐 소중한 역사적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단독정상회담 모습. 이 자리에서 어떤 논의가 오고갔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남재준 국가정보원 원장이 물러나면서 북한 불안정론에 기초한 사실상의 흡수통일을 지칭하는 ‘북한대박론’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과는 달리 박 대통령이 여전히 대북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은 결국 ‘전략적 인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FTA 연대 타결, 위안화 청산체제 구축, 2015년 해양경계획정 협상 등 한.중 경제협력을 심화시키는데 동의하면서도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등 정치.군사 문제는 미국과의 동맹에 기대는 이원적 기본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이 일본의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에 공동대응하지 못한 것도 '외교적 관례' 문제 뿐만 아니라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와 같은 심각한 도전을 미국의 구상에 따라 사실상 수용한 한국 정부가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놓은 결과라는 평가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양해각서 체결이나 한국의 MD(미사일 방어)체제 편입 등은 간과하기 어렵고, 한국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단독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일본에 대한 공동대응을 주문하는 한편,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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