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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우, 일본 극우에 완패

등록 : 2014.08.22 18:34수정 : 2014.08.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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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한 시민단체의 <산케이신문> 고발은 외신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외신들은 이 문제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예 문제가 아닌 언론자유의 문제로 보고 있다. 지난 1월6일 춘추관에서 열린 박 대통령의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 청와대 사진기자단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29) 고발당한 산케이신문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대통령은 시민이다. 대통령 개인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대통령도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여행을 하고 섹스를 하고 남들처럼 다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가슴 아린 로맨스를 한 토막쯤 흘린들 손가락질할 까닭도 없다. 성자가 아닌 대통령한테 도덕적 기준을 따로 두고 닦달할 일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 개인의 삶을 구속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시민 모두의 삶을 평등하게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대통령이라는 직업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이 만들어 준 5년짜리 임시직 공무원인 대통령은 화려한 법적 보호에다 엄청난 월급을 받는 만큼 온갖 옥죄임에다 눈치를 봐야 하는 팔자다. 한국 사회가 걸핏하면 본보기로 입에 올리는 미국과 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09년 대통령 당선자 바락 오바마는 백악관에 들어서면서 국가안보국(NSA)한테 개인 전화와 이메일을 빼앗겼고 그동안 즐겨 써왔던 블랙베리는 특수부호를 심은 다음에도 사적 통신을 20여명쯤으로 제한당했다. 대통령을 ‘감방 속의 권력’이라고 했던 건 괜한 말이 아니다.

 

“움직임 하나 말 한마디도 감시당하고 기록당하는 자리를 벗어나니 속은 후련하다.” 인도네시아 첫 민주대통령이었던 압둘라만 와히드(압두라만 와힛)가 2001년 정적들한테 탄핵당하고 한 여섯 달쯤 뒤 내게 했던 말이다. 타이 전 총리 추안 릭파이도 “경호와 의전 같은 게 도를 넘을 때가 많고 지켜야 할 일도 너무 많다”고 귀띔해준 적 있다. 모두 사적 영역을 제한당하는 고달픔을 털어놓은 말들이다.

 

 

‘산케이’만 반한이 아니다 
‘마이니치’와 ‘아사히’도 뿌리는 
모두 보수·우익·반한일 뿐이다 
한국 신문도 마찬가지 아닌가 
반일이란 대목에선 모두 똑같다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추적해 
책임 있다면 물어야 정상이다 
박근혜가 명예를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294명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서로 나라사랑 앞세운 진흙탕 싸움

 

이건 대통령이나 총리라고 제 맘대로 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대통령도 출퇴근 시간이 있고 직장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나라에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동사무소 고계장이 자리를 지켜야 하듯이 대통령도 벗어날 수 없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이 출근을 제때 하는지 또 근무시간에 일은 제대로 하는지 따위를 마땅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시민이 대통령 월급을 주며 나라를 잘 꾸려달라는 게 민주주의다. 마찬가지로 시민이 돈을 내고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지 따지고 알려달라고 맡긴 게 언론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회라면 대통령과 언론은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게 건강한 사회다. 세상 돌아가는 이 기본적 이치마저 이해 못한다면 대통령을 해선 안 된다. 지난 8월 초 시민단체가 대통령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을 기사로 다룬 <산케이신문>을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요즘 세상이 툭하면 고발질이니 시민단체가 언론사를 고발했다고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본디 시민사회가 언론을 감시해야 건강한 사회니까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고발이란 게 이성적 논리가 통하지 않고 합의점을 찾을 수 없을 때 써먹는 가장 질 낮은 문제 해결 방법이란 걸 생각해볼 만하다. 이번 고발 건의 성격이기도 하다. 고발자인 자유수호청년연합, 피고발자인 산케이신문, 그 신문이 기사 밑감으로 삼은 <조선일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펄펄 뛰는 청와대 그리고 드러나진 않았지만 바탕에 깔린 총리 아베란 자도 모두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들이다. 이번 고발 건의 본질이 바로 극우들끼리 나라 사랑을 앞세워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구석을 기대할 수 없었다.

 

고발자가 문제 삼은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란 자가 쓴 8월3일치 기사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란 기사는 조선일보 7월18일치 최보식 기자가 쓴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을 제목만 달리했을 뿐 고스란히 짜깁기한 수준이다. 산케이신문이 ‘조선일보를 인용했는데 왜 우리만?’이라고 물고 늘어지는 게 얌통머리 없는 짓이라면 아무 대꾸도 못 하는 고발자와 청와대도 다를 바가 없다. 조선일보도 가당찮다. 조선일보는 8월9일치 ‘일 산케이의 도발…연일 한국·박대통령 비하’란 제목 아래 산케이신문이 자신들 기사를 인용했다는 사실은 감춘 채 ‘증권가 루머 인용’이라며 비난했다. <동아일보> 같은 한국 언론들도 덩달아 산케이신문의 반한을 집중적으로 두들겼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비정상적인 외신 고발’ ‘국제사회에서 한국 이미지 손상’ ‘박근혜 정부의 특성’ 따위를 쏟아내며 산케이신문을 편들고 나섰다. 두 나라 언론 싸움으로 번지는 꼴이다. 반한으로 악명 높은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는 ‘한국인 살해는 불법이 아니다’ 같은 말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넘치는 저속한 반일 문장들과 그리 다를 바도 없지만, 아무튼. 일본 언론을 보자. 거긴 친한이 없다. 산케이신문만 반한이 아니다. <마이니치신문>이나 <아사히신문>을 달리 보기도 하는데 사실은 사안에 따른 ‘눈치진보’일 뿐 뿌리는 모두 보수·우익·반한일 뿐이다. 한국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성향은 달라도 반일이라는 대목에서는 모두 똑같다. 이게 두 나라 언론 현실이다. 두 나라 모든 신문들이 친일이니 친한으로는 절대 먹고살 수 없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어쩌다 친일이니 친한으로 찍히는 날에는 끝장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나라 신문들은 죽어라고 상대를 욕해왔고 그 밑감으로 대통령이나 총리만큼 좋은 게 없었다. 지금까지는 서로 그러려니 했던 게 아베 등장 뒤부터 두 극우 정부가 삐걱거리더니 이번 산케이신문 고발 건으로 폭발한 셈이다. 청와대는 고발 소식이 뜨자마자 얼씨구나 대변인까지 나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전의를 불태웠고, 일본 정부는 꼴 난 신문 하나를 놓고 외무장관이 나서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외교까지 들먹이며 따졌다. 이게 산케이신문 고발로 드러난 두 나라 극우들의 난투극 실상이다.

 

 

‘국격’의 좌표는 언론자유

 

나라를 사랑하고 박근혜를 사랑하는 극우들이 그래서 얻은 게 뭔가? 한 나라 대통령이 그깟 극우신문 하나와 실랑이 벌여서 뭘 얻겠다는 건가? 보라. 오히려 그 고발로 박근혜한테는 숙져가던 사안이 다시 도졌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나라까지 남세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 고발로 이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중국 언론까지 달려들었다. 외신판 상식으로 보면 한국 대통령이 걸린 이 사안을 기사로 날리지 않을 서울 특파원이 없다. 서울 외신판 움직임이 심상찮다는 소리가 벌써 방콕 외신판에까지 퍼지고도 있다. 앞으로 나라 안팎 언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법정도 큰일거리다. 외신판에서는 이 사안을 박근혜의 명예보다는 언론자유 문제로 다루고 있다. 국제언론이란 건 서로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사업적으론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언론자유 앞에서는 전투적 패거리의식을 보이는 습성을 지녔다. 한 나라 대통령의 명예쯤을 언론자유와 맞바꿀 국제언론은 없다. 마찬가지로 산케이신문이 고발당했다고 친박이나 친한으로 돌변하지 않을 게 뻔하고 일본 언론이 겁먹고 몸을 사릴 일도 없다. 내 경험이지만 버마 군사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16년 동안 입국 금지 당했고 또 기사들 때문에 미국, 이스라엘, 타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를 비롯한 온갖 정부한테 항의와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다.

 

타이 정부가 좋은 본보기다. 타이 정부는 그동안 <한겨레>와 <비비시>(BBC)를 비롯한 수많은 외신들을 짓누르고 쫓아내면서 악명을 떨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 오히려 비판 강도만 더 키웠을 뿐이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2014년 언론자유 지표에서 타이를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보다 두 단계 낮은 130위에 올려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도 심각한 상황까지 왔다. 57위다. 언론자유 지표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지만 국제사회가 한 나라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여긴다는 사실을 고발자나 청와대가 생각해 봤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국격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고들 하는데 바로 그 국격의 좌표가 언론자유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건 아베 정부고 일본 극우들이다. 한국 극우가 일본 극우한테 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극우들의 대통령과 나라 사랑법이 참 별나다는 말이다.

 

말이 난 김에 대통령의 명예와 부딪친 언론자유를 따져보자. 이건 세월호라는 배가 뒤집혀 아이들이 죽어가는 판에 대통령이 7시간이나 행적을 감추고 속인 데서 비롯되었다. 원인도 과정도 결과도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누구를 몰래 만났고 말고 따위는 조선이나 산케이같이 본디 그런 걸 즐기는 극우신문들이 걸고 나온 곁가지일 뿐이다. 건강한 시민들은 그런 데 관심도 없다. 그런 것보다는 온 나라가 침몰하는 마당에 경호나 기밀을 내세워 대통령 동선을 밝힐 수 없다는 권력남용이 문제였다. 대한민국 헌법과 경호법 어디에도 그런 상황에서 동선을 감추라는 항목이 없고 시민이 그런 권력을 대통령에게 쥐여준 적도 없다. 대통령한테 다가올 동선뿐 아니라 지나간 동선 가운데도 경호에 필요한 대목들이 있다는 것쯤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시민이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국회도 시민사회도 대통령 동선을 다 말하라는 게 아니라 그 7시간만을 떼내서 묻고 있다. 누가 봐도 대통령한테 그날만큼은 그 아이들 생명을 건져야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나서지 못할 만큼 경호상 중요한 일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은 마땅히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알아야 하고 책임이 있다면 물어야 정상이다. 산케이신문 보도로 박근혜는 명예를 잃었다고 여길지 모르나 우리는 300여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게 본질이다.

 

 

때로는 ‘조선일보’를 지지할 수 있는 이유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그래서 대통령의 명예보다는 시민을 지켜야 하는 언론자유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름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돋는 극우 산케이신문이지만 그런 부류들의 존재마저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게 비록 반한이든 극우든 그런 건 일본 쪽 사정일 뿐이다. 반일과 극우 챔피언인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듯이 산케이신문도 300만 일본 사람들이 본다. 시민은 신문 선택의 자유가 있고 시민사회에 필요한 건 언론자유다. 현실 속에서 언론자유보다 더 뛰어난 대통령 감시 도구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조선일보가 일본 총리를 나무라다 고발당한다면 나는 내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언론자유라는 대의 아래 조선일보 구조운동에 나설 용의가 있다. 원칙적으로 국내 언론이든 외신이든 차별이 없어야 언론자유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국제사회에서 한국 언론자유의 지표를 높이고 한국 언론이 보호를 받는 길이다. 그게 나라와 대통령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방법이기도 하다. 극우들의 나라 사랑법과 대통령 사랑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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