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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방울새 떼지어 눈터널 만들며 논다

 
조홍섭 2014. 12. 30
조회수 2937 추천수 0
 

모이통서 배 채운 뒤 눈 바닥에서 한 마리가 하자 모두 따라 해

먹이 찾거나 추위 대피도 아닌 그저 재미로…다른 동물도 놀이 흔해

 

dn26726-1_300.jpg» 보송보송한 눈 속을 홍방울새들이 뚫고 다니며 만든 고랑과 터널 모습. 사진=베른트 하인리히


개나 고양이가 아닌 야생동물도 장난을 좋아한다. 무슨 보상이 따르는 행동이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까마귀 가운데는 눈 비탈에서 몇 번이고 미끄러져 내리는 행동을 하는 종류가 있다. 재갈매기의 일종은 조개를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려 먹는 재주가 있는데, 종종 땅에 떨어지기 전 공중에서 낚아채는 놀이를 한다.

 

Acanthis_flammea,_Kotka,_Finland_3.jpg» 홍방울새. 북극 주변에 서식하며 한반도에도 겨울철 찾아온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북극과 툰드라에 주로 서식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에 관찰되는 홍방울새는 색다른 놀이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눈 속에 고랑이나 터널을 뚫으며 노는 것이다. 

 

베른트 하인리히 미국 버몬트대 명예교수는 메인주의 오두막에서 모이통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홍방울새 무리가 특이한 행동을 벌이는 것을 관찰했다. 모이통에서 해바라기씨를 배불리 먹은 홍방울새들이 눈 바닥에 내려와 뛰어다녔다.  

 

f01_n45.jpg» 모이통에서 먹이를 먹고 주변 눈 바닥에 내려앉은 홍방울새 무리. 사진=베른트 하인리히

 

그러다 한 마리가 갓 내린 보송보송한 눈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가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다른 새들도 비슷한 동작을 따라했다.  

 

눈밭에는 두더지 떼가 출몰한 것처럼  수많은 고랑과 터널이 생겼다. 새들이 만든 흔적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인리히 교수는 과학저널 <노스이스턴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홍방울새의 이런 행동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2년부터 두 번의 겨울 동안 4번 보았을 뿐이다. 100여 마리가 나흘 동안 252개의 터널과 고랑을 만들었다. 폭과 깊이는 5㎝, 길이는 6~20㎝ 정도 됐다.


red1.jpg» 홍방울새들이 눈밭에 남긴 고랑과 터널 모습. 사진=베른트 하인리히 

 

홍방울새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눈 속에 아무런 먹이도 없고, 모이통에서 두둑이 배를 채운 뒤여서 먹이를 찾는 행동은 아니다.  

 

관찰 당시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이었다. 그러나 새들은 밤에 숲으로 자러 갔기 때문에 눈 속에 대피소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새들은 눈 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목욕하는 동작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고개를 반복해 들어올리거나 몸을 털고 깃털을 다듬는 핵심적인 동작은 하지 않았다. 또 눈이 축축한 날에도 터널 파기를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교수는 이 모든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홍방울새가 놀이를 한다고 추정했다.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남들이 하니 따라 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런 행동이 북극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몹시 추운 날 눈 속에 들어가면 체온을 지킬 수 있다.  

 

단,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 뒤쥐 같은 천적을 만나거나 젖은 눈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 눈 속에 갇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그렇게 춥지는 않은 메인주에서 홍방울새는 눈 속에서 잠을 청하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rnd Heinrich, Redpoll Snow Bathing: Observations and Hypothesis, Notes of the Northeastern Naturalist, Issue 21/4, 2014, http://dx.doi.org/10.1656/045.021.040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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