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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와 을미사이 & 거짓과 진실의 사이

박근혜 정권의 조-조 코스프레는 실패했다
 
임두만 | 2014-12-31 12:56: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구속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슈퍼갑질을 하고 그것을 무마하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을 장막 안에서 행사했던 댓가다. 또 장막 안에서 조현아씨의 갑질을 도우며 출세를 기도했던 고위직급의 두 남자도 같이 구속되었다.

1.
이들의 구속을 지시한 서울 서부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인 김병찬 판사는 “혐의 내용에 대한 소명이 이뤄졌다”며 “사건의 사안이 중하고 사건 초기부터 혐의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볼 때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로써 비행기의 일등석에서 땅콩을 봉지 째 줬다고 화를 내며 승무원과 사무장을 욕하고 때리다가 화가 풀리지 않아서 기장에게 비행기를 돌리게 했던 슈퍼갑 여성은 감옥에 수감됐다. 그녀에게 적용된 죄명은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혐의였다.

사건이 불거진 뒤 “슈퍼갑은 잘못이 없고 마땅히 알아야 할 수칙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 매뉴얼도 숙지하지 못한 을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라며 당당하던 대한항공은 침통을 넘어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영장이 발부된 뒤 영장 집행에 응하던 날 밤 11시 경, 슈퍼갑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눈을 감은 채 “죄송합니”"라고 세 차례 말했다. 그리고 서울남부구치소로 가는 차에 올랐다. 누구도 법접할 수 없을 것 같던 슈퍼갑이 갑오년과 을미년의 사이 세밑을 감옥 안에서 맞게 된 것이다.

2.
이른바 정윤회씨의 국정농단이 담겼다는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에 연루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조응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엄상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1일 새벽 “범죄 혐의 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이 기각된 뒤 검찰 청사를 나온 조 전 비서관은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고 생각하는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데 대한 심경을 말해 달라” 등 취재진의 질문에 “많이 피곤하다” “오늘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짧게 답한 뒤 자신을 태우러 온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영장을 기각 당한 검찰은 권력층이 그린 그림을 훼손시키면서 인상을 구겼다. 권력층의 사건 수습과정 전체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측근인 조응천 비서관과 그의 지시를 받는 박관천 경정 등이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정윤회씨를 모해하기 위하여 전혀 있지도 않은 일을 꾸몄다”는 것이 그림이었던 같은데 훼손된 것이다.

3.
이 사안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아무리 권력자라고 거짓을 참으로 치환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킨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 경영진, 그 경영진에 종속된 고위직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권력을 마음껏 행사하면서 자신들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슈퍼갑임을 과시했다. 사건의 발생, 수습과정, 그리고 마지막 대외적 해명과정까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갑질에 대한 당위성을 강변했다.

하지만 진실을 요구하는 여론 앞에 이들의 조작과 강변은 통하지 않았다. 검찰도 법원도 진실을 요구하는 여론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의 최소 희생자로 이들 3인을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여론에 밀린 그들 슈퍼갑과 그냥갑들은 결국 그렇게 체면을 구겼다.

반면 또 다른 여론은 대통령 권력과 그 권력에 순응하려는 국가 소추권 대행자인 검찰에게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우리 국민들은 청와대라는 권력의 장막 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권력 투쟁에 대하여 알 수가 없다. 다만 역사의 교훈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특히 이 사건은 각종 언론들의 추측대로 대통령을 두고 벌어진 ‘물과 피’의 쟁투였으며, 이들의 은밀하고 추악한 힘겨루기가 어떤 식으로 벌어지는 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검찰은 자신들을 장악한 권력자가 그린 그림을 완성하고 전시하면서 큐레이터를 통해 그림을 설명하면 되었다. 그렇다면 관람객 대다수는 ‘그게 그렇구나’정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전혀 믿을 수 없지만, 설명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피카소의 이 그림은 이런 의미가 있다’고 큐레이터가 설명하면 ‘그렇구나’로 인식할 수밖에는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던 그림의 처음과 끝이 훼손된 것은 아무리 큐레이터가 설명을 잘해도 그 그림이 팔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결국 전시장 직원이 비토를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거짓을 참으로 치환하려는 작전이라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야 하는데 이 사건은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전시장 직원의 판단이 그림의 처음과 끝을 훼손시켜 버렸다.

4.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인 1594년(선조27년)이 갑오년이었는데 그해 조선은 극심한 가뭄으로 역사에 유래 없는 흉년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때 사람들이 너무도 배가 고파서 콩이 익어서 수확하기 전에 풋콩을 따다가 불에 구워먹으며 연명했다고 한다.

얼마나 흉년이었는지 조선왕조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숙종실록에 “갑오년의 흉년을 당하여 굶주려 죽는 사람이 날마다 쌓이므로, 선조께서 ‘먼저 죽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전교가 계셨는데...”라는 기록이 있다.

그 흉년 당시 풋콩을 구워먹던 관습 때문에 지금도 농촌에는 가을이 오기 전에 풋콩을 베어다가 구워먹은 관습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과거 케케묵은 얘기를 하면 곁에서 “갑오년에 꽁 까먹은 소리 작작하고…”라며 핀잔을 주므로 말을 막아버린다. “갑오년에 콩 까먹은 소리”라는 격언이 나올만큼 우리 역사에서 갑오년은 교훈으로 간직해야 할 기억이 많은 해란 얘기다.

가까운 예로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도 그렇다. 양반과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가 극심하던 때 결국 한 고을의 목민관이던 조병갑의 비리와 남형이 갑오농민혁명의 도화선이다. 그리고 120년 후 올해 갑오년도 역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해로 기록할 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 진실의 훼손…거짓의 횡횡…그런 기록들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필연적으로 갑오년이 가면 바로 을미년이 온다. 그 때문에 우리 역사는 또 을미년은 더욱 잊지 말아야 하는 교훈까지 남기고 있다.

국권을 침탈하려는 외국 군인들이 왕궁에 난입, 왕비를 죽인 사건이 벌어진 해도 을미년이다. 역사는 이를 ‘을미사변’또는 ‘명성왕후시해사건’으로 부르지만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은 ‘민비시해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갑오와 을미사이가 그렇다. 거짓과 참이 극명하게 갈리던 시기이다. 양반과 관리들이 민중들에게 극심한 착취도 모자라서 극한 형을 때리며 괴롭히던 남형들을 일삼았는데, 그 끝은 민중의 혁명이었으며 종래 권력의 패망이었다. 그 패망의 징조는 그리고 언제나 바로 뒤에 왔다. 갑오민중혁명 뒤에 을미사변, 이어진 국권찬탈…이게 19세기 말의 우리 역사다.

우리는 21세기인 지금 갑오와 을미 사이에서 거짓과 참을 그대로 목격하고 있다. 참을 거짓으로 치환하려던 한 재벌가 딸의 일탈은 재벌가 전체와 우리 사회의 갑들을 진면목을 보여줬다. 그러고 끝내 당사자는 감옥으로 갔다.

반대로 권력자의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참을 거짓으로 치환하고 싶은 검찰의 기도는 그나마 남은 판사의 법치주의 정신에 따라 좌절되고 있다. 그래서다. 거짓과 참의 사이…참과 거짓 사이…갑오년과 을미년의 사이 마지막 날, 나는 이 절절한 교훈 앞에서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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