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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고통, 숲 남기고 빚에 묻혀

 
조홍섭 2015. 04. 09
조회수 1724 추천수 0
 

임종국·민병갈 전 재산 들여 심은 나무, 유지·관리 하다가 빚더미에

민간 식물원·숲 공익 기능 무시에 국·공립 식물원 난립도 타격 줘

 

tree1.jpg»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프레데릭 백이 애니메이션의 만든 한 장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다. 원제는 “엘제아르 부피에, 내가 만난 가장 놀라운 사람, 희망을 심고 행복을 거둔 사람”이다.

 

고독한 양치기 부피에가 버려진 황무지에 40여년 동안 끈질기게 도토리를 심은 끝에 사람이 사는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었다는 줄거리다. 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에 알려진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실존 인물일까.

 

지오노는 책 발간 4년 뒤인 1957년 디뉴 시에 보낸 편지에서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가공의 인물입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 편지에서 저작권을 포기해 이 작품으로 한 푼의 돈도 벌지 못했지만 나무 심는 것이 가능함을 널리 알리는 뜻은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오노의 이야기가 실제처럼 생생한 것은 세계 곳곳에 나무 심는 데 삶의 전부를 던진 사람들이 여럿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종국(1915~1987)과 민병갈(1921~2002) 선생은 한국판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 할 만하다.
 

임종국_m11.jpg» 전남 장성의 벌거숭이 땅에 편백과 삼나무 등을 심어 숲으로 일군 임종국 선생.

 

임종국 선생은 배고프던 1950년대부터 20여 년 동안 헐벗은 전남 장성의 산 596㏊에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280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낙엽송을 심었다. 그 결실이 오늘날 치유의 숲으로 이름난 축령산 휴양림이다.
 

귀화 미국인 민병갈 선생은 군인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풍광과 인심에 반해 눌러앉은 이다. 1962년 가난한 농민의 딱한 사정을 듣고 덜컥 구입한 천리포의 모래 언덕 5000평을 시작으로 확보한 황량한 모래땅 18만평에 나무를 심었다. 일찍이 식물다양성의 가치에 눈뜬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모든 수입을 신품종 사들이는 데 썼다.
 

결국, 천리포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1만3000여 종의 식물을 지니게 됐고, 요즘 절정을 맞은 400여 종의 목련과 370여 종의 호랑가시나무는 세계적인 규모로 꼽힌다. 그는 평생 일군 54만㎡의 땅과 식물을 우리나라에 유산으로 남기고 타계했다.
 

천리포수목원IMG_7408-1.jpg» 2012년 4월8일 10주기를 맞아 자신이 좋아하던 목련 밑에 수목장으로 옮겨진 민병갈 선생의 동상. 사진=천리포수목원

 

임종국과 민병갈 선생은 수목장 제도가 도입된 뒤 좋아하던 나무로 오롯이 돌아간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전 재산을 탈탈 털어 나무를 심었지만 마지막에는 심한 재정난을 겪었다는 점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묘목을 사고 인건비를 대야 한다. 목재를 팔거나 관람객을 받아 수익을 내지 않는 한 깨진 독에 물 붓기로 돈을 집어넣어야 한다. 조림은 할아버지가 심어 손자가 거두는 3대에 걸친 사업이다.
 

임종국 선생은 나무를 담보로 빚을 얻고 논밭과 집까지 팔아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결국 1979년 자식처럼 기른 숲을 채권자에게 넘긴 뒤 이듬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2002년에야 산림청은 그 숲을 사들여 ‘고 임종국 조림지’로 이름 붙였다.
 

re IMG_6369-1.jpg» 지난 2일 천리포수목원에서 가장 일찍 피는 큰별목련 '얼리 버드'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렸다. 사진=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도 외환위기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다 민 원장이 2002년 세상을 떠나자 새 품종 구입은 물론 직원 월급도 못 줄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다. 마침내 2008년 공익법인으로 출범하고 일반 개방을 결정했다.

 

지난해 30만명이 찾는 등 수목원은 탐방객에게 인기를 끌면서 재정적 어려움은 해소됐다. 그러나 “나무가 행복한 수목원으로 만들어 달라”라는 설립자의 유언은 숙제로 남게 됐다.
 

03934070_R_0.jpg» 대나무와 전나무, 히말라야시다 등이 하늘을 가린 아홉산숲의 임도. 400년 동안 9대에 걸쳐 한 집안이 관리해 조성한 숲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유명하진 않아도 평생을 묵묵히 나무와 풀을 심고 숲을 관리해 온 이들도 많다. 이들은 하나같이 식물원이나 숲을 꾸려가기가 힘들다고 호소한다.

 

부산 기장의 아홉산숲을 400년 동안 9대째 관리해온 산주 문백섭씨는 마침내 올해 초 농업회사법인을 출범시켜 내년부터 일반에 숲을 공개하기로 했다. 더는 땅을 팔고 빚을 내 운영비를 대기 힘들어 내린 결정이다.
 

휴식과 체험학습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민간 식물원들도 재정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 국공립 생태원과 식물원을 잇달아 만들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

 

노영대 고운식물원 원장은 이를 “구멍가게와 슈퍼를 짓밟고 들어선 대기업 대형마트 같다”라고 꼬집었다. 국공립 식물원도 필요하지만 너무나 성급하게 많이 설립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03656061_R_0.jpg» 6월 부채붓꽃이 한창인 평강식물원의 습지원 모습. 멸종위기종 보전과 환경교육, 휴식 등 다양한 공익기능을 하는 민간식물원이 최근 국공립 식물원이 잇달아 문을 열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민간 식물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멸종위기종을 피난시킨 ‘서식지 외 보전기관’일 뿐 아니라 환경교육장이자 복합 웰빙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민간 식물원의 공적 기능을 정부는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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