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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형제자매, '너에게 보내는 편지'...

"다음 생에도 내 오빠로"... 광장 나온 희생자 형제자매

세월호 유가족 형제자매, '너에게 보내는 편지'... "참사 1년, 무엇이 바뀌었나요"

15.04.12 20:53l최종 업데이트 15.04.12 21:0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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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로 띄우는 편지... 얘들아 보고 있니' 12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 형제자매가 여는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부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열렸다. 사진은 참가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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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은 향 냄새로 가득했다. 세월호 유족 농성장이 있던 자리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영정사진이 빼곡히 붙은 분향소 뒷편 광장에 유가족 형제자매들이 섰다. 세월호 참사 후 1년, 이들 말대로라면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지금, 희생자 형제자매들 마음을 처음 표현하는 자리"였다.  

[3시 정각] 하늘로 편지를 띄운다, 돌아오지 못할 너에게 

이날 열린 추모행사의 제목은 '너에게 보내는 편지(부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발신인은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와 온라인 사전 신청을 한,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었다. 행사 진행자는 "유족 형제자매들은 아직도 언론에 노출되는 걸 두려워 한다"며 "너무 가까이서 형제자매들을 촬영하거나 말을 거는 것은 피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후 3시, 형제자매들과 일반시민을 합쳐 총 48명이 피켓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섰다. 이순신 동상 앞에 ㄷ자 형태로 서되, 행인들이 사진을 잘 볼 수 있도록 바깥 도로 방향으로 섰다. 피켓에는 유족 형제자매들이 다시는 볼 수 없는 형·누나·오빠·동생에게 쓴, 눈물 젖은 편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오빠, 다음 생에도 나의 오빠로 태어나 줘. 그 땐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게, 더, 더욱더 잘해줄게!" 
- 2학년 5반 고 이진환 학생, 동생


"단비 언니, 언니가 없는 밤이 너무나 외로워. 세월호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저녁시간 밖에 없었는데, 그 시간도 빼앗긴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나. 사고가 일어난 후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카톡 메시지 옆) 그 1이라는 숫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사춘기 핑계 대면서 말도 잘 안했는데, 언니가 먼저 다가와 줘서 너무 고마웠어. 너무 사랑해!"
- 2학년 10반 고 이단비 학생,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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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동생이어서 너무 좋았어"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사진은 고 유혜원 학생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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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없어도 시간은 흐르고..."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사진은 고 권순범 학생의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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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내가 보낸 카톡 언제 읽을거야'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사진은 고 이단비 학생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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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윤아, 깜비가 기다려... 빨리 와" 실종자 허다윤양의 언니도 다윤이에게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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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아, 잘 지내고 있지? 널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서 너무 힘이 드네... 네가 옆에 있을 때 더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형이 누구보다 널 좋아하는 거 알거라 믿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내 동생이어서 고마웠고, 자랑스러웠어. 사랑한다."
- 2학년 4반 고 김호연 학생, 형


"수인아, 12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네. 수인아. 니 몫까지 열심히 살고 니 몫까지 이모에게 신경쓰면서 살게. 그리고 네가 왜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게. 사랑한다 수인아."
- 2학년 7반 고 곽수인 학생, 사촌형
  

온통 "사랑한다", "보고싶다", "잘 지내"라는 안부인사로 채워진 편지였지만, 그 중에는 일반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들도 있었다. "저도 이런 큰 사고가 제 가족의 일이 될 줄 몰랐다, 외면하지 말아달라(2-1 고 김민희 학생의 언니)"거나, "노란색은 정치적 색이 아니라 기다린다는 의미다, 실종자가 모두 돌아올 때까지 '끝'이라고 하지 말아달라(2-6 고 권순범 학생의 누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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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없는 대한민국 떠나고 싶어요, 누나 살려내요"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사진은 고 정예진 학생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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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색, 정치적 아닌 기다림의 의미"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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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제게 이런 일 일어날 줄은..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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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댓글 다 보고 있어요... 특례법 원하지 않아요"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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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밝힌다고 동생이 돌아오진 않겠지만..." 유족 형제자매들은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생자들과 국민을 향해 보내는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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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페이스북과 뉴스 댓글 다 보고 있습니다. 너무 심한 말이나 근거 없는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대학 특례법 원하지 않아요. 우리 집엔 대학갈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다시는 이런 일이, 당신들에게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섯살배기 아들이 '삼촌 어디갔냐'고, '왜 죽었냐'고 물어보면 전 뭐라고 해야 하나요?"
- 2학년 4반 고 김건우 학생, 누나


"진실이 밝혀지면 동생이 돌아오나요? 안전한 사회가 되면 동생이 돌아오나요? 저희는 그저 저희같은 아픔과 슬픔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은 거예요. 그게 잘못된 일인가요?" 
- 2학년 3반 고 최윤민 학생, 첫째 언니
 

[3시 10분~3시 30분] 눈시울 붉힌 행인들... "가해자는 어디가고, 피해자만"

사진을 보는 행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리둥절해하며 광장을 지나가다 멈춰서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상하다는 듯 위아래를 훑어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들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 멈춰서서 한참을 서 있는 여성도 있었다.

편지들을 읽으며 눈물을 닦던 안아무개(여, 36)씨는 행사를 위해 강원도 양양에서 3시간이 걸려 왔다고 했다. "진실이 밝혀져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 안씨는 결국 행사 중간에 피켓을 들고 참가자들 옆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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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보는 행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리둥절해하며 광장을 지나가다 멈춰서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상하다는 듯 위아래를 훑어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여성은 아들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 멈춰서서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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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친구에게 행사 내용을 설명하며 사진을 본 양아무개(24, 고려대 재학 중)씨는 "사실 한국인으로서, 친구에게 이런 일을 설명하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다. "그 커다란 배가 바다에 빠졌는데, 국가가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다 빠져 죽었다는 게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함께 온 미국인 필립(24, 성균관대 교환학생)씨는 "뉴스에서만 접했지 이렇게 본 건 처음"이라며 "실제로 보니 더 비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인 박근화(여, 27)씨는 사진들을 훑어보는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하도 울어 눈 주변이 빨갛게 물든 박씨는 기자에게 "아이들이 잘못한 게 아니지 않냐, 잘못한 사람들은 다 어디 가서 숨어 있고, 피해자인 아이들이 나와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뭐라도 돕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3시 35분] 풍물패 공연에 더욱 모여든 사람들... 이어진 침묵의 시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드는 동안, 이들 뒤에서는 풍물굿패 '신바람'과 '우리마당' 등이 참여한 풍물 공연이 10여 분간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직사각형 틀을 커다란 비닐로 감은 뒤, 비닐 위에 붉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오빠 진실을 밝혀줄게", "다음 생에도 보고 싶다"고 쓰는 문화 예술 행동도 펼쳐졌다. 

꽹과리·장구 등 커다란 풍물 소리에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과 남녀 커플 등 행인들이 더욱 모여들었지만, 공연이 끝나자 이내 흩어졌다. 이후 광장에는 10여분간 정적이 흘렀다.

[3시 45분] "형제자매들의 슬픔 늦게 알아 죄송합니다" "손 잡고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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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을 너무 늦게 알아 죄송합니다" 행사 도중, 한 여학생이 종이를 들고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 종이에는 "형제자매분들의 슬픔과 고통을 늦게 알아 진심으로 죄송하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라고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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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45분. 조용한 광화문 광장에서, 갑자기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이 종이 한 장을 높이 들고 광장을 돌기 시작했다. 손에 든 A4용지에는 "형제자매분들의 슬픔과 고통을 늦게 알아 진심으로 죄송하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라고 써있었다. 여학생은 유족 형제자매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종이를 들어 보이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춘 뒤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굳은 표정의 참가자들도 이에 고개 숙여 화답했다.   

한 대학원생은 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쓴 뒤 같은 방식으로 광장을 돌았다. 추모행사를 지켜보던 대학원생 김아무개씨는 "훨씬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어"라며 "얘들아 서로 손 잡고 같이 가자, 형제자매 동생들 사랑해"라고 하트와 함께 쓴 A4용지를 들어보였다. 마스크를 쓴 참가자들은 따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짓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4시 16분] 네가 떠난 시간, 우리도 침묵을 접을게 

"지금은 아이들이 떠난 시간, 4시 16분입니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 피켓 퍼포먼스를 종료합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켓을 든 지 한 시간이 넘은 시간, 고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24)씨가 추모행사 종료를 선언했다. 행사 시작 당시 48명이던 참가자는 계속 늘어나 70명이 돼 있었다. 이어 참가 시민들과 유족 형제자매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마이크를 잡은 최씨는 "사람들은 보통 세월호 참사 피해자로 생존자만을 떠올리지만, 유족 형제자매들도 많이 아프다"며 "그 마음을 알리고 싶어서 이런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참가자들에게, "행사 중간에 풍물놀이 공연했을 때 사람들 관심과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끼지 않았냐"고 물은 뒤 "그게 바로 사고 이후 저희에게 쏟아진 관심이었다, 그러나 풍물패가 떠났을 때 느껴진 허전함과 공허함처럼, 저희들도 같은 허전함을 느끼며 요즘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날 참가자들은 다양한 연령대였지만, 특히 10, 20대 젊은 층이 많았다. 20대 중반의 남성 참가자는 "세월호 사건 터졌을 때 저는 군인이었고 지금은 전역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며 "저기(청와대) 높으신 분들은, 잊으라고 강요하진 않지만 잊혀지도록 놔둔다는 게 너무 화난다"고 말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제가 들고 있던 피켓은 고 이장환 친구(의 동생 편지)였는데, 제가 장환이가 잠시 되어 본 느낌이었다"며 "유족이 된다는 건 이 시대 가장 큰 짐인데 오늘 짊어져 보니 (그 짐을) 같이 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 제 스스로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고마워했다. 

최윤아씨는 이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사실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렵다, 셔터 소리만 들려도 누가 날 사진 찍는가 싶어 깜짝깜짝 놀란다"며 "(그럼에도 유족 형제자매들이 나선 것은) 부모님들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모님들께서 행진하고 삭발하고, 어디까지 하실지 몰라 겁이 났다"는 설명이었다. 

최씨는 이날 행사 참가자들에게 특히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며 "왜 정치인들이 거짓말하고 약속 안 지키는 게 당연한가, 어릴 땐 모두 잘못된 거라고 배우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동생을 잃기 전까지 저는 '착한아이 증후군'에 걸린 것 마냥 어른들 말이면 다 옳은 거라고 봤다"며 "동생을 잃고서야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여러분은 저처럼 너무 큰 걸 잃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추모행사는 4시 40분께 참가자들이 모두 박수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 편집|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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