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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지옥문은 닫히지 않았다!

후쿠시마 지옥문은 닫히지 않았다!

[초록發光] 3·11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본

장영배 공공연구노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지부장(후쿠시마)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2 오전 10:46:54

 

2012년 9월 중순부터 일본에서 연수 중인 나는 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 소속 후쿠시마 시청직원 노동조합의 초청으로 12월 10일과 11일에 후쿠시마 지역을 방문했다.

12월 10일 오후 신칸센으로 도쿄를 출발하여 약 1시간 30분 후에 후쿠시마 시에 도착하였다. 며칠 전에 눈이 내린 듯한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도착해서 바로 후쿠시마 시청직원 노동조합의 연구 모임('연구집회')에 참석하여,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다. 조합원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한국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 했다.

12월 11일에는 후쿠시마 시청직원 노동조합의 안내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주요 피해 지역의 하나인 미나미소마 시를 방문했다. 미나미소마 시는 전체 면적의 3분의 1 정도가 '경계 구역'(대규모 핵발전소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로부터 20킬로미터 이내의 지역)에 포함되어 있고 그 이외 지역 상당 부분도 '계획적 피난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오후 1시경 미나미소마 시청에 도착하여 미나미소마 시청직원 노동조합의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우선 오염 제거와 복구 작업 현황을 놓고 말문을 열었다. 우선, '경계 구역' 내부의 오염과 잔해 제거나 복구 작업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지진,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 당시의 피해 상태 그대로라는 것이다. 경계 구역을 벗어난 지역도 잔해 제거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언제 시작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방사능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오염과 잔해 제거 작업이 더 늦어지고 있으며, 잔해를 모두 치우는 것만 해도 아무리 잘 해도 3~5년 걸릴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진,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로 이 지역의 산업 기반(농업, 어업, 제조업)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될 수 없다고 한다. 핵발전소 사고 당시 미나미소마 시에는 7만3000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6만여 명이 피난을 갔고 나머지도 대부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계 구역 외부에서 가설 주택, 친지의 집, 월세 등으로 살고 있다. 피난민들을 위한 가설 주택은 미나미소마 시에 약 3000세대가 있으며 계속 짓고 있다.

미나미소마 시청을 나와 피해 지역을 직접 보기로 했다. 핵발전소 사고 피해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더욱 한적해졌고, 한동안 우리가 탄 차만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가 본 곳은 미나미소마 시의 오다카(小高) 구(區) 였다. 이곳에는 핵발전소 사고 당시 약 1만3000명이 살고 있었는데, 핵발전소 사고로 모두 피난을 갔다. 이 중 40퍼센트는 미나미소마 시에, 나머지 60퍼센트는 미나미소마 시나 후쿠시마 현을 벗어난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
 

▲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파괴된 미나미소마 시 오다카 구 해안의 방파제. 이 방파제를 따라 남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가 있다. ⓒ장영배

약 3600세대 중 500여 세대가 쓰나미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해안가 근처의 집들은 괴멸되어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1층이 기둥만 남고 뻥 뚫려 버린 2층 집들은 쓰나미가 어느 높이까지 들어왔는지를 알려주었다. 쓰나미는 약 10미터 높이(전봇대 높이)로 해안가 주택과 마을을 덮쳤다고 한다. 바닷물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들어오는 듯 했다고 한다.

▲ 쓰나미가 덮친 오다카 구 해안 마을에 남아 있는 집터. 이 집터는 해안에서 약 200미터 떨어져 있다. ⓒ장영배

오다카 역으로 길게 이어지는 오다카 구의 상가 지역은 사람이 전혀 없는 버려진 도시였고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쓰나미에 밀려 논밭에 쳐 박힌 차량과 생필품이 아직 치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있었고, 잔해물 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지진과 쓰나미로 부서진 가옥들은 해체 중이었고, 아직 해체되지 않은 무너진 가옥들도 여러 채 보였다. 오다카 구 전체가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도시처럼 보였다. 경계 구역 외부가 이런 모습이니 경계 구역 내부는 훨씬 더 참혹한 모습일 것이다.

▲ 오다카 구 상가 지역. 아무도 다니지 않는 텅 빈 거리가 되었고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장영배

무거운 마음으로 오다카 구를 벗어나서 피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설 주택'을 보려고 미나미소마 시로 출발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800여 명의 오다카 구 피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목조 가설 주택 단지였다.

이 가설 주택 단지를 둘러보던 중 이곳에 사는 피난 주민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곧 가설 주택 단지의 회의실(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 피난 주민들을 위한 미나미소마 시의 목조 가설 주택 단지. ⓒ장영배

본인을 71세의 '이누이'라고 밝힌 이 분은 오다카 구의 구청장을 역임한 분이었다. 그는 집이 경계 구역 내에 있어서 강제 퇴거 당하였다고 했다. 퇴거하지 않으면 10만 엔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했으며, 경찰이 강제로 퇴거시켰다고 했다. 그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에 울분을 토로했다.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다.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으로 너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는 피해자이고, 도쿄전력이 원인 제공자이자 가해자이다. 국책으로 핵발전소를 허가하고 추진한 일본 정부도 가해자이다. 핵발전소가 없고 자연 재해(지진과 쓰나미)만 있었다면 피해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가해자로서 생활 재건과 복구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 대답이 없다."

▲ 피난 주민들을 위한 목조 가설 주택 건물의 내부 복도. 양쪽에 보이는 문마다 한 세대씩 살고 있다. ⓒ장영배

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방사능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특히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 가까운 후쿠시마 현의 해안 지역은 쓰나미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고, 거기에 더하여 고농도 방사능 오염이라는 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쓰나미로 큰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구출이 지연되었고, 더 나아가 피해 지역의 복구와 재건 자체가 곤란해지고 있다. 오다카 구 지역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이누이의 생각은 이렇다.

"오염 제거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방사능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20~50퍼센트를 줄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50~80퍼센트는 남아 있다. 또 방사성 물질이 산에 많이 쌓여 있다. 이것은 제거하기 어렵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피해 지역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 2011년 지진으로 붕괴된 오다카 구 상가 지역의 한 건물. 해체 철거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위험하니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장영배

방사능 오염은 원상 복구를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주변의 고농도 오염지역에서는 피난이 불가피해 지역 커뮤니티 자체가 파괴되었다. 핵발전소 사고에 의한 방사능오염은 아주 장기간 계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활환경이 상실되어 버리게 된다. 이누이는 대를 이어온 고향이 붕괴되어 앞으로 다시 복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능 오염 때문에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이는 세대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피난 주민들 중 약 20퍼센트 정도만 살던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자치단체가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고 먹을거리, 의료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멀리 외지로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생활 여건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소 사고 이전의 지역 커뮤니티를 어떻게 복구할 수 있겠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피난민 생활도 큰 고통이다.

"강제 퇴거 시 살던 곳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옷 몇 점 들고 집에서 나왔는데, 벌써 1년 9개월이 지났다. 이 가설 주택에 들어오기 전에 네 번 이사를 다녔다. 열 번 정도 이사 다니다가 이곳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과정이다. 가설 주택에 들어오기도 이렇게 어렵다. 그러나 이곳 생활도 많은 문제가 있다. 생업이 없어져 시간 여유가 많지만,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몸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TV 보는 것으로 소일하는 경우가 많아 면역력이 떨어져 병드는 사람들도 나온다. 자기 힘으로 자기생활을 복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임시 대피 시설인 이곳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중장기적 생활 대책을 도쿄전력과 정부가 책임지고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도쿄전력은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사고 대책은 형편없었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 사후 처리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피해 지역을 찾아와서 피해 주민들과 대화, 협의하여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배상금 규모 등은 피해 주민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현재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소송이나 재판은 너무 오래 걸려 우리가 죽은 후에나 재판이 끝날 수도 있다. 이것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정부, 도쿄전력, 피해 주민들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조직이나 기구가 있으면 좋겠다."

이누이는 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하여 자신의 절박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부와 도쿄전력이 보상금 등 가능한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밝혀라. 그래야 피해 주민들이 막막한 상황이지만, 스스로 앞날 설계를 할 것 아닌가? 지금처럼 막연하게 복구와 재건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핵발전소 재가동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는 피해 당사자이다. 핵발전소 가동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것도 똑같은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 가설 주택 단지 회의실에서 피난 주민의 절절한 심정을 들려 준 이누이(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오른쪽 끝과 왼쪽 끝은 오다카 구 피해 지역 방문을 함께 해준 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 간부들. ⓒ장영배

이누이와 한 시간 조금 넘는 면담을 마치고 동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의실을 나섰다. 그가 살던 오다카 구의 처참한 모습이 그의 뒷모습과 겹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피난 주민들의 고통이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이누이의 고통은 정녕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후쿠시마 현에 다녀온 닷새 후 12월 16일에 일본 중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자민당의 압승이었다. 2030년까지 '핵발전소 제로'를 추진했던 민주당 정부는 괴멸적 패배를 당했고, 더 신속한 탈(脫)핵발전소를 주장했던 사민당, 공산당, 미래당도 기존 의석의 수가 크게 줄었다. 이제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의 핵발전소 정책 기조가 폐기되거나 크게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에서 다시 핵발전소 유지부활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은 다시 3·11 이전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장영배 공공연구노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지부장(후쿠시마)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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