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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와 ‘金田龍周(가네다 류슈)’ 그리고 역사

 
전쟁의 기술, 야당은 지금이 동숭동에서 나올 시기다
 
임두만 | 2015-10-27 10:27: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뉴스타파>는 2015년 10월 25일 오후 9시 “정부, 국정화 TF팀 비밀 운영…청와대에 일일보고”라는 제목의 특종기사를 보도했다. 이어서 자정 무렵 “국정화 비밀 TF팀 컴퓨터에 ‘BH’ 글자 선명”이라는 제목의 후속 기사를 3분 7초짜리 동영상과 함께 올렸다. 첨부된 동영상은 정부가 극구 부인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교육부의 ‘중고교 역사교과서 추진 테스크포스(TF)’임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뉴스타파의 보도화면

당시 동영상은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정의당 정진후 의원 등 야당의 교문위 소속 의원들이 교육부의 비밀 TF라고 의심되는 건물 안으로 진입, 현장확인을 하겠다면서 문을 열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 측은 경찰을 동원, 입구를 봉쇄하면서 야당 의원들 출입을 막는 모습이 찍혔다. 그리고 이 같은 대치상황은 결국 출동한 경찰에 의해 건물이 봉쇄되는 과정도 담겼다.

이후 이 사건은 여야 간, 여당과 교육부 간 팽팽한 진실게임 양상이 되면서 서로가 쌍방을 극단의 언어를 사용 비난하는 과정에 이르면서 26일 하루 종인 정국의 핵으로 작용했다.

▲도종환 의원 등 국회 교문위 의원들이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메이져 방송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25일 밤 야당 의원들이 밤샘농성을 하고 있는데 공중파 3사나 보도전문채널, 종편 4사 어디에서도 카메라가 등장하거나, 이를 속보로라도 방송한 매체는 없었다.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의 오마이TV가 자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중계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정부에 불리한 사건은 무조건 외면하고 보는 방송 언론의 현실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이 같은 열악한 야당의 언론환경 때문에 이런 현장에도 야당 국회의원이 뉴스타파라는 독립언론사 카메라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시비비에 대해 공정하게 대해야 할 경찰이 야당의원들의 문을 열라는 요구는 막은 채 교육부의 요구대로 건물 정문을 봉쇄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면서 안에서 증거를 인멸할 수 있도록 하는 모습도 비쳐진다. 교육부가 떳떳한 공무집행이면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을 불러서 출입을 막게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말로는 정당한 업무라고 하면서 정당한 업무인 것은 보여주지 않은 채 스스로 걸어 잠근 문을 두고 ‘감금’이란 적반하장을 말해도 이를 쌍방주장을 ‘균일하게’ 써주는 ‘기계적 중립’이 저널리즘에 충실한 양 포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상황은 지난 2012년 12월11~13일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 방문을 두고 안과 밖이 대치하면서 결국은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이 되어버린 것과 유사하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있는 대선막판… 여야는 사활을 걸고 표몰이에 열중이었다. 이 와중에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이 공권력을 동원, 인터넷 댓글공작을 하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리고 급기야 야당은 그 현장으로 의심되는 오피스텔을 알아내고 그곳을 방문, 문을 열라고 요구했으나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야당은 불법 선거운동 현장이라며 경찰에 신고, 강제 개문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안에서 불응한다는 이유로 강제 개문을 시도하지 않았다. 결국 야당 측은 문을 열 때까지 철수하지 않겠다며 문밖 농성에 들어갔으며 이런 대치상태는 이틀 동안 이어졌다.

▲당시 MBC뉴스 화면자료

국정원 측과 여당은 야당이 불법과는 전혀 상과없는 직원의 집을 막고 나올 수 없도록 한다면서 강제감금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안에 있는 사람이 여성임을 말하면서 ‘여성이 무서워서 문을 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사건은 대선이 끝난 뒤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이 되어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며 검찰은 강기정 의원 등 야당 의원 4명을 약식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사실로 드러났다. 국정원만이 아니라 군 정보사 등도 댓글공작 부대를 운영했음이 드러났다. 이후 당시 국정원장이던 원세훈씨와 군관계자 등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1,2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며 대법원에서도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한다는 일부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보도한 언론, 수사한 검찰 등은 공명정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언론은 양비론과 함께 검찰발표를 위주로 한 경마 중계식 보도 수준을 넘지 못했다. 검찰은 당시 채동욱 총장이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의지를 보였으나 뜬금없는 ‘혼외자’ 의혹이 터지면서 낙마했고, 수사팀장인 윤석렬 전 여주지청장 이하 수사팀은 한직 발령 등의 정치보복으로 고초를 겪었다. 때문에 무성한 의혹만 쏟아 낸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유야무야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당시 불법의 핵심인사로 지목된 ‘좌익효수’라는 이름을 쓴 국정원 직원은 원대복귀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건의 종결이 현 권력층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퇴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닉슨의 사퇴를 이끌어 낸 혁혁한 전과를 올린 워싱턴포스트의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그의 동료 칼 번스타인이라는 언론인, 콕스 특별검사와 그를 해임하라는 닉슨의 요구를 거부하고 스스로 사임한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닉슨의 도청 사실을 폭로한 워터게이트 보도의 주역인 칼 번스타인(왼쪽)과 밥 우드워드(오른쪽)

닉슨의 낙마를 가져 온 워터게이트 사건은 원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 경비원이 발견한 테이프 하나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 호텔 경비원은 묶인 테이프가 이상한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당시 호텔 내에서 민주당 대선본부 불법침입이 의심되는 5명을 한다.

체포된 이들은 자신들이 설치한 도청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재설치를 위해 침입했다가 발각된 것이다. 도청기 재설치 도중 기 도청된 테이프를 화수하여 잠시 방치한 실수였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실수는 그 중 1명이 자신들에게 일을 지시한 백악관 담당자 연락처를 기록해둔 수첩을 지닌 채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FBI는 수사에 들어갔으며, 사건 내용이 보도되자 닉슨 대통령 측의 지글러 보도담당관은 “3류 절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 백악관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은 백악관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FBI는 수사에 박차를 가했으며 닉슨 캠프가 깊숙이 가담한 정황을 계속 밝혀나갔다. 그러나 백악관은 CIA를 통해 FBI를 견제하면서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그때 워싱턴포스트의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는 동료 칼 번스타인과 함께 독자적으로 조사를 시작해, 사건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심층적으로 취재 신문에 발표했다. 여론은 일파만파로 커졌으며 닉슨과 캠프는 궁지에 빠졌다. 그리고 끝내 공작의 실체가 모두 폭로되면서 닉슨의 사임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미 도청은 성공했으며, 그로 인해 민주당 맥거번 대선후보 측의 모든 전략은 닉슨 측의 대항 전략에 요긴하게 쓰였다. 그런데 다 끝난 일이 관계자의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발각되었다. 하지만 발각된 뒤 이를 덮으려는 무리한 시도는 닉슨과 그 캠프, 그리고 백악관과 행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었다. 대선 상대였던 조지 맥거번이 여러 모로 닉슨의 상대가 되지 못하여 닉슨이 일방적 승리를 거둔 선거가 1972년 미국 대선이다.

미국 대선 역사상 최대의 표차라고 말할 수 있는 선거가 당시 선거였다. 재선을 노리는 현역 대통령 닉슨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맥거번은 급집 좌파로 몰리면서 자신이 주지사를 지낸 매샤추세츠주와 수도 워싱턴에서만 이기고 나머지 49개 주를 모조리 잃었다. 득표율을 38%였으나 선거인단은 단 17명만 확보했다. 반면 닉슨은 52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완승을 거뒀다. 이처럼 완승을 거둔 닉슨은 재선 대통령이며 모든 정보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실체를 끈질기게 추적한 한 저널리스트의 저널리즘 정신, 사건의 실세를 밝히라는 요구에 의해 임명된 특별검사의 책임완수, 그를 해임하라면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한 법무부 장관 등의 ‘자기 신념’은 거짓을 감추려는 닉슨을 좌에서 내렸다.

2015년 대한민국, 현직 저널리스트는 사직한 지 이틀 만에 청와대 대변인이란 직을 받았다. 그는 이제 권력자의 입을 자처하면서 언론을 쥐락펴락할 것이다. 앞서 거론했으나 경찰은 건물봉쇄가 임무인양 그 일에만 충실하다. 그리고 교육부 작원들은 자신들이 부른 경찰이 막고 있는 건물 안에서 ‘감금’운운하며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의 현역 의원들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경찰이 봉쇄한 건물…

이상돈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들 TF요원들의 작전은 이미 성공한 작전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론수렴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은 근무일수로 사흘여 남았으므로 이미 그 조직 요원들은 임무를 완수하고도 남을 시간이란 것이다. 앞서 거론한 국정원 댓글 공작원도 대선 일주일을 앞두고 발각되었다. 이미 공작은 끝난 상태였으며 그들의 공작은 앞서 수개월 동안 진행되었었다. 따라서 저들은 문을 열고 나와도 목적한 일은 완수했으므로 교육부의 행정고시는 절차대로 시행될 것이다. 즉 야당이 막아낼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도청을 알아내지도 막아내지도 못하고 완패했던 맥거번이 닉슨을 낙마시킨 것이 아니라 한 저널리스트의 집념과 특별검사의 신념이 닉슨을 끝내 견디지 못하게 했다.

마찬가지다. 야당은 막아내지 못하고 주류언론은 애써 외면하지만 독립언론 뉴스타파 소속 저널리스트들은 집념과 신념으로 사건의 실체를 쫓았다. 그 연장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부친의 일본식 이름이 ‘가네다 류슈’라는 것까지 밝혀냈다. 그 ‘가내다 류슈’가 ‘숙적 미영(美英)’을 쳐부수기 위해 반도의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선동하는 광고를 낸 사실도 밝혀냈다.

부친에겐 숙적이었던 미국이 아들 김무성에겐 “미국은 유일하고도 대체 불가한 동맹국”이다. 아버지는 일본 천황이 神이었고 아들 김무성에겐 미국이 ‘은인의 나라’다. 부친 가네다 류슈는 숙적 미영을 쳐부시기 위해 일본에 비행기를 사서 보내자고 하고 행동했으며, 아들 김무성은 미국에서 “F-22기 전투기를 얼마든지 사겠다”고 호언, 비행기 고객을 자임했다. 그가 지금 교과서를 국가가 만들어야 된다고 앙앙블락이다. 따라서 그의 내면은 그냥 밖으로 보인다.

이런 자들이 권력을 갖고 있으니 이 전쟁을 지금 이긴다고 이긴 것이 아니고 힘에서 밀렸다고 진 것이 아니다. 이 전쟁인 이미 이겨 있으며 질 수 없는 전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폭스 같은 특별검사이지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TF요원 21명 중에나 그 주변 누구라도 내부고발자가 다시 나타나 폭스가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지도 모른다.

거짓은 수명이 짧다. 오죽하면 2년짜리 교과서를 만들려고 이처럼 국론을 분열 시키는가?라는 전직 국사편찬위원장 말이 나왔겠는가? 지금 졌다고 진 것이 아니므로, 이제 야당은 동숭동에서 나와도 된다. 더 있다가 덤테기를 써서 총선이란 큰 게임을 망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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