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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지구 생존은 '기후변화 산수'에 달렸다

 
조홍섭 2015. 10. 26
조회수 2538 추천수 0
 

<마션>의 마크 와트니처럼 지구 위기의 진단과 해결책은 산수로 계산 가능

파리 기후변화 당사국총회 앞두고 개도국까지 저탄소 경제 대열에 나서는데

05414017_R_0.jpg» 영화 <마션>은 지구가 인류에게 공짜로 제공해 주는 물, 공기, 식량 등 생태계 서비스가 전혀 없는 곳에서 생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홀로 남겨진 화성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조달할지를 계산해야 했다.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생존 비결은 불굴의 의지, 뜨거운 동료애, 그리고 첨단과학에 앞서 산수의 힘이다. 앤디 위어의 원작 소설을 보면, 기지에 돌아온 와트니는 상처를 처치한 뒤 바로 계산에 들어간다.
 

1425일 뒤에 다음 화성 착륙선이 오는데 식량, 물, 공기가 그때까지 버틸지 따져본다. 기지에는 6명의 식량이 50일분 비축돼 있는데 혼자이니 300일, 식사량을 4분의 1 줄이면 400일을 버틴다는 식이다.

 

부족한 식량을 감자로 메우려면 기지 안에 얼마나 넓은 감자밭을 조성할지 또 계산한다. “내 목숨은 산수에 달렸다. 더하기 빼기를 착각하거나 덧셈을 틀리기만 해도 끝이다”라고 하면서.

 

Bill Anders-NASA-Apollo8-Dec24-Earthrise.jpg» 미국 달탐사선 아폴로 8호가 달 표면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우주 공간에 떠있는 우주선처럼 보인다. 사진=Bill Anders,NASA
 

세계적 경제 호황기였던 1960년대부터 한정된 지구가 무한정 성장할 수 있는지 걱정하던 이들은 ‘우주선 지구’라는 표현을 썼다.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한 척의 우주선이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조종하는 우주인이란 관점이다.

 

지구 차원의 환경재앙인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요즘 이 비유가 새삼 다가온다. 화성에서 생존전략을 짜는 마크 와트니와 우리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유엔과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재앙이 언제 어떤 형태로 올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세한 수치로 내놓고 있다. ‘기후변화 산수’는 요컨대 이렇다.

 

금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상승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4도 오르는데, 그것이 초래할 위험은 매일 전 세계에서 비행기 1만대가 추락하는 정도이다.

 

2도 상승을 달성하려면 대기 속에 배출된 이산화탄소 양을 3000기가 톤(1기가 톤은 10억 톤)으로 억제해야 하는데, 이미 2000기가 톤을 배출했으니 남은 것은 1000기가 톤이다. 이를 위해선 알려진 화석연료 자원의 4분의 3은 땅속에 그대로 둬야 하고 2050년까지는 세계가 탄소 제로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White House Photo by Pete Souza_Obama_COP15_Jiabao.jpg»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양자협의를 하고 있다. 이 총회는 새로운 기후체제에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양대국이 전형적으로 바뀐 올해 파리 총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사진=Pete Souza, 미국 백악관
 

2020년 이후 적용될 새로운 기후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이 1000기가톤의 배출량을 각국에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까를 논의하는 자리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149개국이 협상테이블 위에 2020년 이후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를 담은 ‘기여방안’(INDC)를 제출해 놓고 있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이 이제까지와 달리 적극적인 감축의사를 밝히는 등 실패로 끝난 2009년 코펜하겐 총회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각국의 기여방안을 봐도 새로운 기후체제 수립을 계기로 저탄소 경제로 체질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1위 배출국인 중국은 2030년부터 배출량이 감소세로 접어들도록 에너지 소비의 20%를 비화석에너지로 충당하고 탄소집약도(국내총생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를 65% 줄이기로 했다. 저탄소 경제로 방향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확보할 재생에너지 발전용량만 봐도 풍력 2억킬로와트, 태양광 1억킬로와트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현재 발전용량이 각각 55만킬로와트, 155만킬로와트인 것과 비교해도 얼마나 야심적인지 알 수 있다.

 

05314257_R_0.jpg» 중국은 2030년까지 1억킬로와트 용량의 태양광 발전소를 지을 예정이다. 사진은 저장성 통샹 지역의 태양광 발전소. 사진=로이터 연합


배출량 2위인 미국은 2025년까지 26~28% 감축 계획을, 28개국이 합쳐 세계 3번째 배출국인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40% 감축을 약속했다. 전기 없는 인구가 3억에 이르는 인도는 환경이 아직 경제 다음이지만 2030년까지 전기의 40%를 재생에너지로 만들고 탄소집약도를 35% 낮추겠다고 밝혔다.
 

브라질은 개도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배출전망치(BAU) 대비 감축이 아닌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37%를 줄이는 절대 감축안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줄이는 방안을 제출했다. 절대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증가추세를 누그러뜨리겠다는 것이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 노릇을 자임하지만 자세는 사뭇 다르다.
 

세계 5위 배출국인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소극적이다.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를 줄이겠다는 건데, 2013년은 역사상 2번째로 높은 배출량을 기록한 해였다.

 

일본 그린피스는 이 감축안에 대해 “세계가 재생에너지 미래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데 아베 정권은 멈춰 서 있다. 에너지 정책의 실패로 온실가스 대량 방출, 에너지 불안, 20세기형 화석연료 의존에 고착될 것이다”고 비판했다. 아베를 박근혜로 바꾸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다.

 

각국의 감축계획을 보면, 대다수 선진국과 개도국이 다음 10년 동안 돈과 일자리가 저탄소 경제에서 나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 원인 제공과는 거리가 먼 에디오피아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없이 경제규모를 2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을 정도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원자력과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 경제를 고집하면서 그런 대세를 거스르는 독특한 나라이다.

문제는 감축계획을 모두 합쳐도 2도 목표 달성을 위한 감축량의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3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약속을 다 지켜도 환경재앙이 불가피하다.

 

martian-gallery9-gallery-image.jpg» 영화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가 이륙 우주선까지 이동한 로버. 한정된 발전용량에 생존 필수품을 적재하기 위해 대대적인 감량이 필요했다. 사진=20세기폭스 코리아
 

화성인 마크 와트니는 구조대와 만나기 위해 로버를 타고 이륙용 우주선까지 3200㎞를 이동한다. 그는 모든 준비물을 점검한 뒤 부족한 동력을 얻기 위해 로버에서 불필요한 의자를 뜯어내고 에너지 낭비 장치를 고친다. 심지어 이륙용 우주선에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우주선 앞부분을 아예 떼어내고 천막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살아나려면 몸집을 가볍게 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우주인이 기억할 교훈인데, 지구의 우주인들이 이를 실천할 수 있을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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