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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농성장 찾아와…함께 울어준 산타들

세월호 농성장 찾아와…함께 울어준 산타들

등록 :2015-12-24 19:42수정 :2015-12-24 22:18

 

성탄전야 ‘고난의 현장’

노란 리본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 24일 오후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란 리본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 24일 오후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장 15절)

 

성탄을 하루 앞둔 24일 저녁, 잔잔히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며 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새벽송(성탄절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에 나섰던 기독교계 사회단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고난함께) 회원 20여명도 함께 훌쩍였다. “예은이가 새벽송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2년 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생각나네요.” 유 위원장이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영정사진 앞에서 “우리가 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울려 퍼지는 동안, 새벽송에 따라나선 전은수(9), 지수(6) 자매가 언니, 오빠들 영정 앞에 과자 선물을 올렸다.

 

2012년 성탄 전야 때 쌍용차 투쟁 현장 등 5곳의 농성장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고난함께 회원들은 매년 성탄 전날이면 고난받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성탄 소식을 전한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단 하루만이라도 산타클로스가 되어 고통으로 내몰린 이들과 ‘함께 울어주기’ 위해서다. 이날도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 일자리를 잃은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까지 서울 곳곳에 있는 농성장 8곳을 찾아 함께 캐럴을 부르고 기도를 올렸다.

 

 

기독교계 모임 ‘고난함께’ 회원들
서울거리 농성장 8곳 찾아가

 

새벽송 부르며 세월호유족 위로
기아차·풀무원 고공농성 현장도 가

 

“찾아갈곳 없어지길 바라는데
고난의 현장 점점 많아지네요”

 

79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들머리에서 방진복을 입은 채 기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79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들머리에서 방진복을 입은 채 기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성탄 전날 밤 찾아갈 현장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어째 가야 할 곳이 점점 많아지네요.” 진광수 고난함께 사무총장(목사)이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사라진 고난의 현장보다는 새로 생긴 고난의 현장, 고난이 길어지는 현장이 더 많이 늘어갔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기아차 노동자들이 머무는 옛 인권위원회 건물 광고탑과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이 있는 여의도 광고탑 앞에서 고난함께에 참여하고 있는 전남병 목사는 “하늘로 올라가는 이들은 누구도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신에게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이들이다. 그런 목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가 해결돼 이제는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는 현장이 있다는 얘기는 고난받는 이들에게는 희망이다. 전 목사는 이날 하이디스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지난해 이날 새벽송에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분들이 복직돼 찾지 않게 돼 기쁘다. 하이디스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응원했다. 학습지 교사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가 해고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2822일간의 기나긴 싸움 끝에 지난 9월 직장으로 돌아갔던 점을 얘기한 것이다.

 

진 사무총장은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을 ‘우리 사회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이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농성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내가 무너지면 앞으로도 같은 일이 생기고, 나같이 아픈 사람들이 또 생긴다고 말한다. 그들을 보면서 작은 예수를 본다. 그들이 진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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