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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이후 한국의 선거법이 이상해졌다

1958년 이후 한국의 선거법이 이상해졌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제20대 총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31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에서 한 시민이 자전거를 끌고가다 후보자들의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제20대 총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31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에서 한 시민이 자전거를 끌고가다 후보자들의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공직선거법 전문의 글자 수는 22만6264자. 원고지로 1443장 분량이 나온다. 형법보다 많은 분량이다. 조문은 277조에 달한다. 방대한 분량의 선거법을 “정해진 기간 내에, 정해진 사람만, 정해진 방식으로 선거운동하라”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선거의 혼탁과 과열을 막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현행 선거법은 정치 신인들의 정치권 진출과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막는다고 정치학·법학자들을 중심으로 비판 받아 왔다. 19대 총선 이후 검찰은 1906명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해 39명을 구속했으며, 국회의원 당선자 79명이 입건됐다. 전체 의원 정수의 26.3%다. 선거법 위반이 상대 후보 비방 용도로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한국 헌정사에 선거운동의 기간·자격·방식을 규제한 선거법이 등장한 것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국회인 제헌국회는 1947년 미 군정 법령 175호에 따라 마련된 ‘국회의원선거법’에 따라 실시됐고, 1948년 일부 조항 개정을 거쳐 최초의 선거법이 만들어졌다. 총 9장 55개조로 구성되었으며, 국회의원의 임기와 보궐선거, 선거 관련 쟁송 등 선거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사무를 담았다. 선거기간 제한 등의 조항은 없었다.

1952년 자유당 정권은 선거법 개정을 시도한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의원 정수의 60%를 무소속 의원들이 차지했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집권기간을 연장하려던 자유당 정권은 피난지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치깡패들을 동원해 의원들을 협박하면서 강제로 개헌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부산정치파동’이다. 그해 10월 24일 정부가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에는 선거기간 제한이 등장한다. 1953년에는 “종래 무제한으로 선거운동을 인정한 까닭에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했다며 “선거운동 기간, 선거운동원 제한, 운동방법의 합리화”를 제안했다. 이들 법안은 야당의 반대로 연거푸 부결됐으나 1957년 제1 야당이던 민주당은 자유당과 선거법 협상에 들어간다.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의 진보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민주당이 위기감을 느낀 것을 이유로 보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제한, 사전선거 금지, 기탁금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선거법은 1958년 만들어진다. 1937년 군국주의가 한창이던 일본 선거법에 담겨 있던 내용이었다. 이 선거법 도입 이후 치러진 4대 총선에서 무소속 의원은 3대 총선의 67명에서 26석으로 크게 줄었다. 자유당이 126석, 민주당이 79석을 얻어 현재까지 내려오는 양당체제가 구축됐다. 평상시 정치활동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이유로 제한되면 유권자들은 정보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거대 정당과 현역 의원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탁금 제도 등은 정치신인의 진출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선거학회지인 선거연구에 실린 논문 ‘제한적 경쟁의 제도화, 1958년 선거법 체제’에서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한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의 선거법 체제는 1958년 기본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민주주의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선거법이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근본적으로 1958년 도입된 선거운동 기간·자격·방식 3대 제한조항을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땜질 처방만 반복돼 현재의 선거법이 누더기가 됐다”고 평했다.

선거법에는 ‘다만’이 자주 등장한다. 선거법 제60조에서 선거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공직자, 중령 이상 예비군 간부, 만 19세 미만 등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제한한다. 다만 공직자나 예비군 간부라도 후보자의 가족인 경우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선거법은 법조항과 어울리지 않게 한 조항 내에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포함돼 모순과 충돌이 발생한다. 그럴수록 이를 해석할 권한이 있는 선관위의 입김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서 교수는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 선거법은 대대적인 개정과정을 겪었다. 군사정권 시절의 금품선거, 금권의 선거 지배를 타파하는 것이 개정 때마다 선거법의 주된 목적으로 등장했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확장시키려는 차원의 논의가 없지는 않았지만 ‘다만’이라는 방식으로 부칙을 달아 땜질하는 방식이었다. 문자메시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등장하자 이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불법인가 합법인가 논란이 됐다. 전에 없던 기술이라 선거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탓이다. 정치권과 선관위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문자메시지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은 할 수 있지만 횟수 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전선거운동 금지조항이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4년 예비후보자 제도를 만들어 120일 전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반면 예비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함 돌리는 일로 제한했고, 비판이 제기되자 명함을 돌리면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추가됐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2014년 한국정치연구에 투고한 논문 ‘예비후보자 제도와 선거운동 기회의 불평등성’에서 “예비후보자 제도 도입 이후 (탄핵 영향이 컸던) 17대 선거를 제외하고는 두 차례 선거에서 현직 의원의 당선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예비후보자 제도가 여전히 현역 의원과 도전자 간 선거운동 기회의 자유와 공정성을 침해하고 있으며, 선거운동 기간의 증가가 과열선거 및 부정선거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예비후보자 제도를 폐지하고 상시적인 선거운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선거법이 유지되는 이유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서 교수는 ”정치권력과 재계의 유착관계를 청산하는 과제는 정당정치와 정당체계를 더 경쟁적이고 개방적으로 만들어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과 경쟁을 제한하고 정당정치의 공간을 축소해 금권의 유인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있는데 후자를 택했다“고 평했다. 정치권만큼은 무한경쟁이 아니라 양대 정당이 과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여당뿐 아니라 제1야당 역시 그러한 구조에서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 교수는 ”정치선거법 58조와 59조가 사라지면 대한민국 정치가 부패의 온상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해 이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학자들이 정치 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냥 투표장에 가서 투표했느냐뿐 아니라 캠페인에 가서 참여하느냐. 후보자를 만나봤느냐를 중요한 활동으로 생각한다“며 ”현재는 유권자와 후보자의 만남 자체가 원천봉쇄된 상태다. 유권자와 후보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들을 더 만들어주는 것이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언제든지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 자체가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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