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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수도권 처참한 패배, 3가지 이유는?

[분석] '영남화' 새누리, 분노한 수도권 민심에 무감했다
 
| 2016.04.18 07:07:58



 

 

 

 

우선 반성으로 기사를 시작해야겠다.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수도권 절반 이상의 의석수를 새누리당이 가질 거라 감히 예측했다. 변명을 하자면 세 가지 근거에서 그랬다. 각종 접전지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우세를 가리키는 여론조사, '사실…160석 이상을 예상해'와 같은 새누리당 내부 인사들의 비공식 예측, 그리고 흉흉한 민심 속에서도 새누리당 승리로 번번이 끝났던 앞선 4.29 재보궐 등의 선거 결과 등. 나름 과학, 취재, 귀납적 추리를 종합한 예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예측에 실패했으니 평가라도 제대로 해야 할 일이다. 정치권,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란 점은 중론이다. 국민의당 출현에 따른 교차 투표의 확장과 두 야당의 '보수 표심' 흔들기가 먹혔다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반복되는 실정과, 국민의당의 출현, 그리고 두 야당의 '조금 더, 조금 더 오른쪽으로!'는 선거 전에도 눈으로 확인되는 현상이었다. 현상을 보기 좋게 서술하는 것은 제대로 된 평가라기보다는 약간의 분석을 곁들인 비평에 가깝다. 

놓쳤던 것은 이 현상들이 가진 '힘'의 크기였다. 이를 다른 말로 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 투표할 유권자의 수'다. 각종 안전사고나 전염병 예방 및 대처를 못 해 국민 몇 명이 죽어 나가든, 장기 불황 속에서 잘못된 경제 정책을 얼마나 반복하든, 국민적 반발 속에서도 과거로 회귀하는 교과서 정책을 강행하든, 당 지도부가 '막말'을 얼마나 일삼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표는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봤다. 보수 정권의 장기화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난 7.30 재보궐·4.29 재보궐 선거 결과 등으로 생겨난 과대망상이었다. 

선거 결과 그런 것은 없었다. 특히 서울 49곳 중 12곳, 수도권 전체 122석 중 35석(28.7%) 승리란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요약되는 이 표심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아일보>는 지난 15일 자 '與 승리 수도권 10곳도 野 합산 땐 열세… "실제보다 더 참패'" 기사에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승리를 거둘 자체 동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수도권 122곳 투표 결과를 살펴보니, 국민의당 득표율이 20%가 넘었는데도 새누리당이 야당에 패한 지역이 18곳이나 된다는 분석 끝에 내려진 결론이다. 

 

 

ⓒ연합뉴스

  
"수도권 전략 없다" 아우성 집어삼킨 여론조사 

정치인들은 종종 "민심을 잘 아는 것은 지역구 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란 얘기를 한다. '그런데도 그 모양이야?'란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이는 고백하듯 하는 얘기다. "지역을 돌아보니 민심이 뿔이 났는데 우리 당(대통령) 어떡하면 좋아"란 말의 다른 얘기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선거전 초입에만 해도 새누리당 수도권 후보들을 중심으로 해서 "당 지도부는 수도권 전략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이 빗발쳤었다. 지역을 다니며 느껴지는 뿔난 민심을 어르고 달랠 '당근'을 달란 얘기였다. 그러나 '수도권 선거 전략 부재'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도 이어졌다.  

과거 새누리당 또는 한나라당은 이렇지 않았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으로 '좌클릭' 했던 19대 총선·대선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한나라당도 친서민 중도실용 구호를 '뻥'으로나마 강조했었다. 한나라당의 17대 총선 압승 원인인 뉴타운 개발 정책도 대표적인 수도권 전략이었다. '새누리당 하는 짓은 미워도 내 자산은 키워주니 뽑아준다'는 표들로 야당은 번번이 선거에서 졌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정책 쟁점이라곤 최저임금 정도였고 그마저도 '말장난' 공약 논란으로 정리됐다. 새누리당의 '최저임금 9000원' 공약에 수많은 유권자들은 "또 거짓말한다"는 냉소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정책 선거를 견인하지 못한 것은 공히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이는 야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박근혜 심판론' 대 '야당 심판론'으로만 선거를 치른 결과 수도권 부동층과 20~40대 부동층은 새누리당을 외면했다. 부동산 열풍 바람을 탔던 서울 스윙보터 지역의 선거 결과는 참패 수준이다. 일례로 서울 마포갑에서 당선된 더민주 노웅래 후보와 2위를 한 새누리당 안대희 후보의 표 차는 1만6022표(18.7%p)다. 19대 (8294표차 11.42%p), 18대 (1680표·2.67%)와 비교해 엄청난 차이다. 

시계를 다시 되돌린다면 새누리당은, 아니 정치권은 어떤 민심을 제대로 읽어냈어야 하는 걸까. 서울 서초갑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의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당선자는 "초이노믹스(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를 하며 강행한 돈 풀기와 부동산 띄우기)로 경기가 좋아지기는커녕 전셋값이 뛰는 등 서민 주거 부담이 가중됐다"며 현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다수였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당을 뽑아주면 최소한 내 자산은 늘어난다는 환상은 다 깨져버린 셈이다. (☞ 관련 기사 : "전세 1억 올려달라"?…최경환 책임이다)

여기서 이미 많은 언론이 분석했지만 한 번쯤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초이노믹스나 박근혜 정부의 반복되는 실정으로 새누리당이 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를 미처 포착하지 못한 각종 여론조사들이다. 서울 지역에서 낙선한 한 새누리당 후보자는 수도권 전략 부재의 이유로 새누리당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를 지적했다. 그는 "선거 직전까지도 수도권에서조차 여연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었다"고 전했다. 여권표가 분열되고 있음을 직시 못 한 잘못된 여론조사가 '수도권 전략을 내놓으라'는 후보들의 아우성을 집어삼킨 셈이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심판' 총선 못 맞춘 여론조사, 왜?)

 

 

 

▲ 친박계 최경환 의원과 비박계 김무성 대표. 계파는 다르나 두 의원 모두 영남권 의원이다. ⓒ연합뉴스

 

  

색깔론에 경제위기 겁박까지…수도권 민심 모르니 필패


이렇게 새누리당에 투표를 해야 할 이유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가운데, 김무성 대표는 엉뚱한 얘기들만을 쏟아냈다. 수도권 지역 유세 중에도 그는 '이 후보 상임위원장을 시켜준다' '저 후보 국회의장을 만들어보자'는 희한한 감투 유세를 계속했다. 몸싸움으로 악명 높은 차명진(부천 소사) 후보의 유세장에서 "차 후보를 내세워 몸싸움을 해서라도 노동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제 살 깎아 먹는 발언을 했다. 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종북 세력과 손잡은 운동권"에 빗대는 색깔론, "새누리 과반이 무너지면 주가가 폭락한다"는 대책 없는 주장도 쏟아냈다. 코스피는 총선 휴장 다음날인 14일 2015.93으로 올 들어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처럼 수도권 민심에 둔감한 영남권 의원들의 광폭 행보로 일부 후보들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한 서울 지역 후보는 선거 기간이 한창일 당시 "김 대표가 다녀온 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좀 빠졌다"고 한탄했고, 선거 막바지에는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과 경합 중이었던 오세훈 전 시장이 김 대표의 선거 유세를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유세 현장에서 김 대표를 보고 '영도대교 위' 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감투, 몸싸움, 색깔론, 경제 위기 등을 외쳤던 그에게서 이번 총선의 '적극 투표층'으로 나선 20~30대는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젊은층의 조롱과 비아냥을 산 영남권 의원들은 또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조원진 의원 등 TK(대구-경북) 친박 의원들은 선거를 앞두고 대구를 찾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된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구 지역 친박 후보들은 단체로 무릎을 꿇고 '잘못된 공천에 죄송하다.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비박 학살 칼춤을 추고 2년도, 2달도 아닌 불과 2주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도권 캠프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한탄했다. '제발 그만 좀 하자'고 말이다. 

계파는 다르지만 김무성, 이한구, 최경환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영남권 의원들이다. 영남의 정서와 수도권 정서가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했던 한 수도권 지역 여성 후보는 "당의 영남화로 수도권 의원들의 입김이 당 지도부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패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비교적 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영남 중진 남성의원들의 무딘 감수성이 수도권 20~40대 유권자들의 외면을 불렀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TK와 PK(부산-영남)에서까지 돌아선 지지자들이 다수 나왔으니, 새누리당은 '입 관리'에 우선 충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이번 총선 결과를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선거 책임을 지는 지도부이자, 수도권 중진인 원유철 원내대표다. 경기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원 원내대표는 다른 누구보다 수도권의 민심을 제대로 읽고 이를 선거 전략에 반영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수도권이 참패에도 원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는 분위기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뻔뻔한 일(심재철)'이라는 반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이번 총선 결과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또다시 계파 내홍에 휩싸이면 이제는 사태가 정말 커질 것이다. 다음 선거는 2017년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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