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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망각과의 투쟁이다

<새연재> 임영태의 ‘한국 현대사, 망각과의 투쟁 1’
임영태  |  ytlim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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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3  0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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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과거사 청산은 근대 국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과거사 청산은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로써 왜곡․은폐된 과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기 위한 과거사 청산 노력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여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그 성과가 희미해지고 있다. 

역사는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진실은 공식 기록으로 표기되고, 교육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망각과의 투쟁이 필요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테러, 의문사, 고문에 의한 조작 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한다. / 필자 주

 

다시 민주주의가 문제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된 역사 되돌리기가 박근혜 정권에서 위험 수위를 벗어나 폭주하고 있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 직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가톨릭대학교의 안병욱 교수는 ‘박근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뿐이다’라고 했는데 그 예언은 적중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고 박정희의 치적을 부풀리려는 시도는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수준을 훨씬 넘어선 폭주를 거듭했다.
 

   
▲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과거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수준 미달의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승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역사교과서를 아예 국정화해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겠다고 나섰다. 박 정권은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바탕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횡행했던 국가주의와 반공애국주의를 재차 불러들이고 있다. 냉전시대에나 가능했던 '북한 위협론'을 바탕으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칼자루를 쥐어주었다. 국정원이 15년 전부터 그렇게도 열망해왔던 그 법이 통과됨으로써 국정원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에 버금가는 사찰과 공작을 할 수 있게 됐다.

국정원과 검찰․경찰 등 공안기관은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통용된 반공․공안논리를 동원해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경찰은 물대포를 마주잡이로 쏘아대고 컨테이너로 ‘산성’을 쌓은 채 민주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 국정원은 탈북자를 간첩으로 만들고,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를 감시, 사찰한다. 검․경 또한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통신내용을 마구 들여다보면서 시민을 감시하고 있다. 정부에 의해 언론이 통제되면서 공중파는 허수아비가 됐고, 언론의 자유는 끝없이 추락했다. 이런데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와 국정원 등 권력핵심의 지원․지시 아래 전경련으로부터 돈을 받아 반민주시위에 동원할 ‘할배’들의 일당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해방 직후 남한에서 기승을 부리며 무수한 사람들을 테러․살상한 ‘서북청년단’등 극우반공청년조직의 활동을 생각하게 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시절 정부의 조종을 받는 관제데모대가 떠올리게 된다. 불쌍한 탈북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에게 2만원씩을 지급했다고 하는데 그 액수가 수억 원에 달한다.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행정부와 국정원, 헌재가 공동으로 합작해 10년 이상 합법적으로 활동해온 진보정당을 하루아침에 해산시켰다. 헌재의 해산 결정 이유의 밑바탕을 지배하는 논리는 낡고 낡은 냉전시대의 ‘북한 위협론’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문은 국가보안법 판결문과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수구적 행태를 벌이는 것은 정권이 맞은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이용하려는 목적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건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종북딱지’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정권 차원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극우인사들을 내려 보내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한편, 정권에 비판적인 소셜미디어와 개인미디어에 대해서는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종편과 조중동의 ‘막장언론’이 활개를 치고 권력의 하수인이 상층을 장악한 KBS․MBC 등 공영방송은 정권의 시녀가 되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 건전한 비판과 여론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과 해외에 나가서 새마을운동을 선전하고,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집 무상보육’마저 국가 재정이 부족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떠넘기면서도 새마을운동 지원에 들일 돈은 있는 모양이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의 공적 부풀리기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를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려는’박근혜 대통령의 소박한 ‘효심’탓으로 돌리기에는 걸리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나아가 독재의 역사를 왜곡, 미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만에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이루어 놓은 민주화의 성과가 다 망가져 버렸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몇 가지를 제외하면 노태우 정권을 넘어서 전두환․박정희 정권 수준으로 전락했다. 민주주의는 한번 성취되었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보면서 마치 조지 오웰의 명언을 금과옥조로 삼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이 과거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미래까지 지배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가 그들의 미래 지배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걸 확인했다. 1970, 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대도 대부분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지만 오히려 그들은 왜곡된 역사를 부정하고 진실을 위해 투쟁했고, 결국 승리했다. 그렇게 해서 국가에 의한 ‘역사 해석의 독점권’도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 또 다시 무덤 속에 들어갔던 독재의 망령들이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관제데모대가 등장하고 국정교과서가 부활하고 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후대들’이 역사를 옛날로 되돌리는 무모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도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이 그냥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권력에 의한 역사왜곡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일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장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신채호 같은 역사학자는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역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역사를 지키는 일은 ‘역사를 기억하는 투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지금 우리의 가슴을 이렇게도 아프게 만드는 ‘세월호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갈 것이다. 10년만 지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호의 내용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절대로 잊혀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잊히면 또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그 사건의 진실을 찾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싸워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모든 일을 기록하여 후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했다. 역사도 민주주의도 결국 ‘망각과의 투쟁’, ‘기억을 위한 투쟁’이다.

망각과의 투쟁, 기억을 위한 투쟁

얼마 전 <한겨레>에 ‘희망도 슬프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김선주 전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봤다.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는 대통령의 극찬 이후 공영방송이 자사 드라마를 기다렸다는 듯 홍보하고 있다. 잘생긴 육군 대위가 청와대와 연결된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국가, 뭐 아무렇게 대하면 어때. 이렇게 내뱉고는 납치된 애인을 혼자서 구하러 간다. 며칠 전 읽은 세월호의 기록이 오버랩되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은 방대한 재판 기록과 증언 등 모든 사실을 토대로 시간대별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 “구할 수 있었다.”마지막 세 장에서 반복되는 결론이었다. 모든 상황이 구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것이다.
“이런 염병 해경이 뭔 소용이여. 눈앞에 사람이 가라앉는디. 일단 막 갖다대서 살리고 보는 게 이상적이제. 지시들었다가는 다 죽이는디.”세월호에서 이물을 무조건 들이대고 승객들을 잡아내려 20여명을 구한 어선의 선장이 내뱉은 말이다.
육군대위의 말과 선장의 말은 동의어였다.
대통령의 발언이 3월 21일이었고, 나는 그 뒤에 보았다. 애국심 고취와 국가관에 나쁜 영향을 주는 드라마라고 했어야 마땅했다. 의사와 군인을 극한상황에 놓고, 작가 말대로 판타지 러브 스토리를 펼치고 있는데, 애국심과 연결시킨 것은 모든 사안을 애국심으로 연결시키고 싶은 대통령의 애국심 판타지의 발로이다.(
1)

   
▲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인가’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존재인지 의심스럽다. 국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인간들의 행태에서 최소한의 사명감이나 책임의식도, 가장 초보적인 도덕성조차도 느낄 수 없다. 그런 나라에서 사는 국민은 불행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만 그런 나라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나라였고, 70년 동안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자기 국민을 죽이며 시작했고, 그 뒤에도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을 학살했다. 학살의 시대가 지난 다음에도 폭력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하고 처벌하는 군부독재, 인권유린의 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런 고통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를 성취했지만 또 다시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한국현대사를 들춰보면 그런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2006년 6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에 근무하면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무자비한 고문과 인권침해의 적나라한 실상을 들여다보았다. 진실위는 한국현대사에서 벌어진 반민주적․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을 조사하여 왜곡․은폐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이 국가권력기관의 과거 잘못을 파헤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인권국가, 선진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성찰과 반성의 노력이었다. 왜곡되고 뒤틀린 과거사를 바로잡지 않고는 소위 ‘일류국가’, ‘선진국가’로 도약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진실위는 활동내용을 조사보고서로 정리하여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외적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었는데, 그것이 나의 업무였다. 진실위는 왜곡․은폐된 현대사를 조사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했는데, 진실위의 활동 결과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진실위의 조사결과가 한국 현대사와 사회․정치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기초자료로 이용되기를 바랐다. 년 2회 발간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다음, 정부기관과 언론사,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 관련단체와 연구자 등에 배포되었다. 조사보고서는 전체 진실위 활동상황과 통계자료, 조사관들이 작성하여 진실위 회의에서 의결된 개별사건조사보고서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사보고서에는 진실위 활동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왜곡된 현대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실위의 주된 일이었고 그 성과는 고스란히 조사보고서에 담겼다.

나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진실위에서 의결된 모든 조사보고서를 검토했다. 개별사건조사보고서는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이 작성하여 소위원회와 전원위원회에서 위원들의 검토를 거쳐 의결되었지만, 대외에 공개되는 공식보고서 작성․발간 업무를 담당한 때문에 나는 모든 사건보고서를 최종적으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위의 보고서에는 대한민국의 국가범죄 행위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에는 생생했던 보고서의 내용들이 진실위 업무가 종료된 지 5년여가 지난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새삼 역사가 망각과의 투쟁, 기억을 위한 투쟁임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역사

진실화해위원회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과거사 정리 활동의 종결판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뤄진 국정원․경찰청․군의 자체 과거사정리활동(국정원과거사위원회, 경찰청과거사위원회, 국방부과거사위원회), 대통령 산하에 있었던 친일반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위원회, 의문사위원회, 거창위원회, 제주4.3위원회 등은 특정 부문이나 개별사건의 진실규명과 후속처리를 위한 과거사 기구였다. 반면,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전후시기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권위주의 정권시기의 인권침해사건,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과 해외동포사 등 한국현대사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다 다루는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기구’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년간 신청을 받아서 11,175건의 사건을 처리했고, 그 가운데 75%인 8,450건을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2) 다른 과거사 위원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사건수이지만 이조차도 실제로는 대상이 되는 사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민간인학살사건과 권위주의 시절의 인권유린 사건 가운데 재일교포사건과 납북어부사건이 제대로 신청되지 않았다.

민간인학살사건의 경우 냉전시대 진실규명에 나섰다가 공안기간으로부터 당한 피해경험 때문에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재일교포의 경우 해봐야 뭐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에 아예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재신청과 조사기간의 연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가 2009년 상반기에 건의한 최소한의 후속조치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3)
 
박근혜 정권의 역사에 대한 역주행이 심각한 이 시점에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다시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국정원은 과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저질렀던 과거사의 잘못을 스스로 정리하고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하기 위한 환골탈퇴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권위주의 시절의 정보기관으로 완전히 되돌아가고 말았다.

국정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인 원세훈이 원장으로 취임한 뒤부터 전교조, 시민단체 등 진보적인 단체에 대한 이념공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제압 공작, 반값등록금 반대 공작 등 불법적인 정치공작과 여론공작을 벌였다. 2012년 18대 대선에 개입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되돌리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국정원이 정부기관과 여당 국회의원, 극우보수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NLL(북방한계선) 논쟁,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작업과 더불어 ‘테러방지법’ 통과를 주도했다.

국정원이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비밀정보기관, 폭압적 인권억압기구로 되돌아가는 만큼 이명박․박근혜 정부 또한 과거의 독재정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한 권력기관의 퇴행과 더불어 진실화해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과거사 기구들이 왜곡․은폐 진실을 밝혀 바로잡은 불행한 과거사에 대해서도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를 비롯하여 극우인사들이 시도 때도 없이 4.3사건에 대해서 ‘폭도들의 반란’이라며 4.3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그 단적인 예이다.

역사의 기억과 반복적 교육의 필요성

역사는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반복해서 교육하고 재차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거꾸로 가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일본은 과거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에 대해 한국․중국에 제대로 된 반성을 한 적이 없으므로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반성과 사죄를 한 독일을 보더라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은 주변 국가들에 나치의 침략행위와 집단학살에 대해 반성하고 보상했으며, 내부적으로도 나치의 범죄행위를 알리는 기념물과 역사공간을 설치해 후대가 그러한 과거의 범죄행위를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폴란드 바르샤바 나치 유대인 희생자 기념탑 앞에서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독일은 나치의 범죄 행위에 대한 사과를 한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독일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재차 재삼 주변국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계속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나치의 범죄 행위를 알리는 교육을 계속하고 있고, 나치 범죄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영원히 추적해서 처벌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다. 이러한 투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후대는 나치의 범죄 행위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걸 알았던 세대도 기억이 희미해지고 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언제 또 다시 나치와 같은 전쟁범죄와 인류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재현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만 역사를 망각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기억하는 투쟁을 제대로 벌여야 한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며, 우리 내부의 국민을 향해 저지른 민간인 학살과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기억하고 반성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그나마 진척되었던 과거사 정리, 과거사 청산 노력도 금방 제자리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끄러운 역사에 관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그동안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진실이 밝혀진 사건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다른 과거사 위원회 사건을 포함하여 한국 현대사를 통해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학살과 인권유린 등 국가범죄 행위와 관련된 사건을 포괄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통해 너무나 많은 국가공권력의 범죄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개별 사건을 모두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사건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드러내는 데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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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한겨레>, 2016. 4. 6

2) 진실화해위원회, 2010,『종합보고서 1』, 32쪽

3) 진실화해위원회는 활동 후속조치(화해와 기념사업, 기록․연구사업, 조사․유해발굴사업 등)를 위한 ‘과거사연구재단’설립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특별법’제정 등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건의 내용은 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01』(2009)에 수록되어 있다.

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주력하고 있다. (사)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다.

저서로는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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