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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경비 20% 절감이 목숨보다 중요해?

한전, 경비 20% 절감이 목숨보다 중요해?
 
2016.05.30 19:38:30
스크린도어 사고는 약과? 고압선 수리 사망사고 속출
 

불과 19세 하청업체 노동자가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전동차에 끼여 숨진 사고는 이용자의 안전과 작업자의 안전보다 경비 절감이 중요하다고 보는 시스템이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하지만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 1조의 작업 매뉴얼'이 반드시 지켜지는 조건으로 허용할 수 있는 작업이라도 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작업이 허용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환경에서 반복되는 사고도 있다. 

스크린도어 사고와 함께 다시 주목받는 작업 현장에 '직접 활선공법'이 강요되고 있는 고압선 수리 작업이 있다. 활선공법은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정도보다 500배나 강한 2만2900볼트의 고압이 그대로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전력은 지난 2001년부터 도구를 이용해 전선을 만지는 게 아니라 직접 절연 고무장갑을 끼고 만지는 '직접 활선공법'을 채택하고 있다.  

활선공법이 도입된 이후 그 이전에 고압전기가 흐르지 않게 차단한 후 전선 교체 등의 수리작업을 했을 때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사고가 속출했다.  

지난 2014년 한전의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활선공법 때문에 13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고 140명이 화상, 손목·팔 전단 등 사고를 당했다.

 

▲ "법을 지켜라"면서 시위하는 전국건설노조.ⓒ연합뉴스

 

 

하청업체 전기 노동자, 감전사고 사망자만 수십 명 

 

하지만 전국건설노조는 한전이 사고를 낸 업체에 엄한 벌점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고가 전국적으로 은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전기안전공사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감전사고로 총 5928명이 사망했고, 그 중 송·배전 공사 중 감전사고로 549명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고의 80%는 협력업체의 비정규 근로자로 나타났다.

한전 측은 활선공법은 전선 교체를 위해 정전을 할 필요 없이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가능하게 하면서, 안전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문제가 될 게 없는 작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저가 수주로 부족한 인력으로 일을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매뉴얼 자체를 지키지 못한 채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스크린 도어 사고처럼, 실제 작업 현장은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30일 전국건설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고압, 지중 배전협력업체는 477개로 근로자는 5200명으로 3년 전인 2012년 5600여 명에 비해 400명 이상 감소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000명도 안된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작업현장을 기피하면서 평균 연령도 50대 이상으로 점차 노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분야별로 11명이 맡아야 할 공사를 2~3명이 맡는 등 안전을 도외시한 채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현장에서 안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안전복 등 안전보호장비 지급도 하청업체에 지급해도 장부 상에만 기재할 뿐 현장 근로자들에게는 원활하게 지급이 되지 않아 작업 시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절연 작업복이나 장갑 등은 오래 사용할 경우 절연 기능이 확연히 떨어져 주기 별로 교체가 필요하다.

건설노조 관계자들은 한전이 '직접 활선공법'을 강요하는 명분이 '안정적인 전기공급'이지만, 기존 공법에 비해 공사비를 20%가량 줄일 수 있다는 '경비절감'을 위해서라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한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기원노조는 지난 11일 전남 나주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전국에서 모인 2000여 명이 참석한 집회를 열고 '감전사고가 속출하는 직접활선 공법 폐지'를 촉구했다. 

노조는 집회에 앞서 고압의 전기에 노출된 채 직접활선 공법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감전사고는 물론, '저주파 전자기장'에 의한 '급성골수성 백혈병'과 갑상선, 당뇨 질환 발병이 의심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원으로 혈액검사도 실시했다. 노조는 "국제 암연구소(IARC)에서는 초저주파 전자기장의 제한적인 발암가능성을 기술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5월 대구에서 송전선 활선작업을 했던 조합원이 급성 백혈병에 걸린 뒤 조합원들이 건강에 대한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은 활선공법을 폐지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작업 환경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인 1조 작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매뉴얼만 지켜도 피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 사고가 반복되는 것처럼, 하청업체 스스로 원청업체에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목숨을 건 작업'에 내몰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의당 이정미 부대표는 30일 서울지하철 구의역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한민국은 OECD에서 인구 1만 명당 산재사망률이 6.8명의 압도적 1위로, 이는 일본과 독일의 4배, 영국의 14배"라면서 "우리 사회가 진정 수치스러워해야 할 숫자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산재사망 재난사고처벌강화특별법과 기업살인법 등 책임 있는 입법에 나서겠다"는 이 부대표의 말처럼, 목숨을 건 작업 환경의 개선은 기업의 자율로 맡길 수준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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