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직원들이 아프다. “일생을 의롭게 살며 간호직에 최선을 다한다”는 선서로 시작했던 이씨의 간호사 생활은 왜 죽음으로 끝난 걸까. 이씨는 병원 쪽으로부터 부서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낙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동료 간호사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3년 전 의료기관 평가 준비 업무에도 동원돼 격무에 시달리며 우울증까지 겪었는데 40대 후반의 그에게 부서를 바꾸라는 말은 다른 진료과목 업무를 새로 배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과 같았을 것”이라고 했다. 4주간 병가를 냈던 이씨는 복귀 시점인 금요일에 출근하지 않고 일요일 오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남대병원은 2006년에도 직원 4명의 잇단 자살로 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다. 이 병원 노동조합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10년이 지났지만 인권과 근무환경 문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병원 쪽에 업무상 재해 인정 등을 요구했다.
21일 광주 전남대병원 앞에서 19일 숨진 수술실 간호사의 업무상 재해 인정을 촉구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전남대병원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제공
보건의료노조의 2006년과 2015년 전남대병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언어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각각 60.8%, 58%에 이르렀다. 9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는 얘기다.
이씨의 또다른 동료 간호사는 “수술실 안에서는 욕설이나 모욕적인 꾸짖음 문제가 심각하다”며 “폭언이 심한 의사와 수술을 할 때는 심장이 뛰고 긴장을 하게 돼 오히려 더 실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술 중 의사가 가위가 잘 안 든다면서 던지거나 “닥쳐라”, “멍청하다”, “싸가지 없다”, “돈만 축내는 것들” 등 모욕적 폭언도 많다고 했다. 2005년 11월에 자살한 전남대병원 수술실 간호사의 경우 의사의 심한 꾸중과 욕설, 선배 간호사의 야단 등에 시달리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전남대병원 사례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전국 83개 병원 직원 1만8629명을 상대로 벌인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54.2%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상담 치료를 받았거나 필요로 한다’고 답했다. 20~30대 기혼여성 간호사 10명 중 1명은 유산 또는 사산을 경험(10.1%)했다. 이씨처럼 수면장애에 시달린다고 응답한 이도 5명 중 1명꼴(22.5%)이었다.
환자를 보듬고 치유하는 간호사들에게 병원은 과연 안전한 직장인가? 이씨의 죽음은 아프게 묻고 있다.
임지선 허승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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