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알바들의 1만 시간 단식

지금 국회 앞은 배고프고, 덥고, 비가 온다

[현장]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알바들의 1만 시간 단식

16.07.03 11:39l최종 업데이트 16.07.03 11:39l
기사 관련 사진
▲  비가 온다는 소식에 단식농성장을 정비하고 있다.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27도. 이 땡볕 밑에서 17일 째(7월 2일 기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부, 국회 앞에서 그들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기 위해 오늘도 앉아 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과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며.

이들은 모두 알바노조 조합원이다. 곡기도 끊고 햇빛과 비를 맞아가며 어둑해진 하늘 밑에서 자면서 농성 중인 이가현(25, 기자 이름과 동명이인 - 기자말)씨와 우람(24)씨는 벌써 단식 17일차가 됐다. 용윤신 사무국장(27)은 지난 6월 26일 단식 11일 차로 응급실에 실려 간 박정훈 위원장의 뒤를 이어 단식을 시작했다. 오늘로 5일 차다.

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보름 넘는 기간 동안 집 밖에서 밥도 안 먹고 침낭 하나에 의지하며 지내는데, 일상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천막 하나도 못 치게 하는 경찰
 

기사 관련 사진
▲  국회 앞에서 17일째(7월 2일 기준) 단식을 하고 있는 이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우람, 이가현, 용윤신.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 2일로 단식 17일차가 됐다. 현재 기분은 어떤가.
우람 : "기분? 좋다 나쁘다 할 것 없이 그냥 덥다. 무척 매우 상당히 덥다. 덥다는 걸 강조할 수 있는 형용사라면 다 쓰고 싶을 정도로 덥다. 보통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는다. 보도블록이 발에 닿으면 너무 뜨겁다. 그런데 12시부터 2시 사이엔 돗자리도 덥다. 햇빛이 따가워서 골프 우산도 써야 한다. 보통 우산을 쓰면 우산 사이로 빛이 투과돼서 효과가 별로 없다. 짱짱한 골프 우산이 최고다."

- 하루종일 그 땡볕에 앉아 있으려면 너무 덥겠다.
이가현 : "고작 하루종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이 매일 매일 있다. 내일도 덥겠지 생각하면 절망스럽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더운 적은 분명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그늘도 없이 더운 건 처음이다."

-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법은 없나.
우람 : "피난 밖에 없다. 가끔 국회의사당역으로 도망을 간다. 화장실 가려고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
이가현 : "에어컨을 하나 장만했다. 진짜 에어컨은 아니고 우리끼리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바로 분무기다. 더울 때 분무기에 물을 담아서 몸에 뿌리면 기화열로 잠시나마 시원해진다. 그 외에도 농성을 시작하니까 다양한 용품을 선물 받았다. 쿨매트, 아이스팩, 아이스 머플러, 팔토시. 그런데 사실 더울 땐 쓸모가 없다. 더울 땐 안 시원하고 밤에 추울 때 시원해진다."

 

 

- 단식이 힘든가, 더운 게 힘든가.
우람 : "더운 거. 그리고 경찰이 시비 거는 거."

- 경찰이 시비 건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우람 : "단식 농성을 하며 앉아 있으면, 두 명 이상이 모여있기 때문에 '불법집회다'라고 계속 와서 말한다. 자꾸 상대하다 보면 지친다. 초반에 단식 농성자들을 경찰들이 국회 앞에서 다 치워버린 적도 있었다. 그 이후에 출석요구서를 하루에 한 번씩 3일에 걸쳐 보내더라. 구청에서 와서 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으므로 자진 철거해 달라고 계고장을 보내기도 했다. 집회가 아니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데도 해산하라고 한다."

- 경찰 때문에 가장 화났을 때는 언제인가.
우람 : "비 오는 날 비닐 걷으라고 했을 때. 제일 황당했다."
이가현 : "새누리당 당사 앞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사람들이 기자회견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경찰 한 명이 기자회견 도중에 우리 사람들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피지 말라고 해도 "싫다"고 무시했다고 한다. 경찰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굶는 게 일상인 알바노동자
 

기사 관련 사진
▲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소식에, 돗자리에 비닐을 덧씌우고 있다.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 그럼에도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가현 :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 원을 2013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외쳐왔다. 그런데 지금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이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돈을 가진 것도 아니고. 또, 알바노동자는 사실 일상이 단식이다. 일하는데 쉬는 시간을 안 줘서 밥을 굶고 일하고, 돈이 없어서 굶고. 그런 이유로 단식을 택하게 됐다."
우람 : "현재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그런데 구조가 매우 사용자 친화적이고 폐쇄적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현재의 제도로는 최저임금 1만 원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국회는 국민이 국회의원을 직접 뽑기에 국민의 관심도가 높다. 지금의 최저임금위원회보다는 최저임금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에 훨씬 적합하다. 야당들 역시 당선 전에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걸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서 국회 앞 농성을 택했다."

- 단식농성을 하며 있었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우람 : "가끔 단식 농성장인데 먹을 걸 사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스크림 사 온 사람도 있었고, 이온음료도 종종 사 오신다. 저희가 단식 중이라 못 먹는다고 하면 '이것도 못 먹어요?' 하신다. 착한 마음에서 가져오시는 거 아니까 못 먹어도 좋다. 아. 가끔 중국집 배달하시는 분이 있는데 여기 지나가시면서 자꾸 홍보전단지 던져주고 가신다. 받으면 같이 한 10분은 음식 사진 쳐다보는 것 같다."
용윤신 : "어제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데 혼자 있었다. 이런 게 농성장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라면 재미일까(웃음). 나 빼고 나머지 둘은 화장실 가고 회의하러 갔는데, 그 사이에 갑자기 비닐 가운데로 비가 콸콸 샜다. 마치 어제 인터넷에 떠돌던 연세대 중앙도서관 침수 영상 같았다. 그래서 혼자 우비 입고 나와서 비닐 다시 씌우고, 돗자리 물 닦았다. 씁쓸한 재미라면 재미다."

- 난감했겠다.
이가현 : "어제는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비가 많이 오는 건 상관이 없는데, 비닐이 바람 한 번에 날아가고 이러니까 너무 허무하더라. 경찰은 천막도 못 치게 하고. 의지할 것이 얇은 비닐과 우산밖에 없다. 책도 옷도 다 젖었다."

- 가장 간절히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가
우람 : "아무거나. 다 먹고 싶다. 샌드위치도 먹고 싶고. 지금 상태라면 아무 간도 안 되어 있는 흰 죽이어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어제 핸드폰으로 티비를 보는데 곰탕이 나오더라. 나주 곰탕을 끓이는데 가마솥에 밑에 사골을 쫙 깔고 위에 사태고기를 탑처럼 쌓아가지고 끓이는데 너무 맛있어 보였다."
이가현 : "계란 프라이 올린 김치볶음밥. 스팸 이렇게 잘게 썰고 양파랑 김치랑 썰고. 파랑 또 뭘 넣을 수 있을까? 베이컨도 넣어주자. 베이컨도 넣어서 치이이이 착착 촥촥촥 (신나서 춤춤) 그리고 깨를 촵촵촵 뿌린 다음에 김 가루를 뽀스락뽀스락해서 위에 올리고, 이렇게 쓱싹쓱싹 한 다음에 계란 노른자를 툭 터트려서 계란 노른자를 한 숟가락 뜨고 거기에다가 김치볶음밥을 떠서 앙."
용윤신 : "둘 다 단식이 17 일차를 넘어가니 이제 일상의 음식이 그립나보다. 같이 농성장에 있다가 봤는데, 소금 먹으면서 '계란 맛이 난다'고 둘이서 대화하더라."

- 단식 농성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건가.
이가현 : "일단 몸 상태가 멀쩡할 리 없으니 병원에 갈 거고, 병원 가서는 잘 거다. 푹신한 침대에서 계속 잘 거다. 차 소리 없는 곳에서. 병원 침대에 누웠을 때는 "목표를 이뤄서 뿌듯하다"는 심정이었으면 좋겠다."

- 그러고 보니 차 소리 때문에 힘들겠다. 밤에도 계속 다닐 거 아닌가.
"차와 개미가 되게 많다. 먼지도 많고. 근데 상관없다. 이제 친구가 되었다."

이 단식 농성의 끝은 춥지 않길
 

기사 관련 사진
▲  알바노조를 지지하기 위해 박원순 서울 시장이 지난 6월 16일 국회 앞 단식 농성장을 찾아왔다.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이들의 단식농성에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야 3당 국회의원 68명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과 영세자영업/중소기업 지원, 근로감독 강화를 주장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최저임금 1만 원 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최저임금의 하한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들은 최저임금이 국회산하의 기구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알바노조의 입장을 수용했다. 20여 명의 국회의원은 알바노조를 지지하기 위해 농성장을 찾았다. 박원순 시장이 농성장에 찾아와 지자체 차원의 생활임금제도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알바노조 박정훈 위원장은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과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과 만나 의견을 전달하였으며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1만 원을 요구하며 공조하고 있다. 종교계, 시민사회에서의 발걸음도 잇따랐다. 300명 시민이 1만 시간에 이르는 동조 단식을 했다.

'내가 왜'라는 꽃다지 노래가 있다. 차 소리와 개미, 그리고 먼지와 친구가 되었다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인생도 춥더라."


이 단식농성의 끝은 춥지 않길 바라본다.

관련 기사 더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