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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다음은 <7년>, '해직언론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

 

[하성태의 사이드뷰] 1월 12일 개봉 맞춰 펀딩 시작한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지난 21일 서울 상암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YTN 해직언론인 3000일 행사와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

지난 21일 서울 상암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YTN 해직언론인 3000일 행사와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 인디플러그


"지금은 너무 멋있고 자랑스러운 아빠지만, 그땐 원망이 더 컸던 것 같아.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있게 된 건 아빠의 멋있는 선후배 아저씨들, 언니들 그리고 엄마 덕분이야. 모두 내게 아빠가 좋은 분이라고 말해주셨거든." 

지난 21일 서울 상암 롯데시네마. 한 해직 언론인의 딸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낭독되자 극장 안이 울음바다가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해직을 목도해야 했던 딸은 올해 고3이 됐다. 해직된 지 2999일, YTN 해직기자 노종면 '아빠'의 딸 혜민씨가 읽어 내려간 편지에 동료 언론인들이 눈물을 훔쳤다. YTN 해직언론인 3000일 행사와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 현장에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지난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인터뷰를 한 노종면 기자는 딸의 편지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얘기 말고는…. 다른 얘기 더 뭐 있겠습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3000일 전으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영화 같은 설정이기는 하지만 글쎄요. 굳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앞으로도 그런 선택의 순간은 올 거라고 생각하고요.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요? 딸이 지켜보는데…."

그 3000일 전인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지부장이었던 노종면 기자를 포함한 YTN 기자 6명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 구본홍 사장의 퇴진 운동을 벌인 끝에 '부당'해고 됐다. 

이후 지난 2014년 11월, 대법원은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 3명에게는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복직 후 YTN 사측은 같은 사유로 정직 5개월의 중징계를 처분했고, 이들 3인은 2심까지 가는 정직처분무효 확인 소송 끝에 법원으로부터 사측의 항소 기각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노종면과 조승호, 현덕수 기자는 아직도 해직 상태다. 

MB 정부부터 시작된 이 '해직언론인 잔혹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아래 <7년>)이 개봉(오는 1월 12일)을 앞두고 스토리펀딩을 시작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카피 아래 '이명박근혜정부의 해직언론인 양산 비화"를 그린 이 다큐에 해직언론인들과 언론계는 물론 망가진 지상파와 공영방송, YTN을 똑똑히 기억하는 이들이 성원을 보내는 중이다. 

"해직 언론인이란 말의 무게에 맞는 묵직한 다큐"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 인디플러그


"2014년 초로 기억합니다. 언론노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해직 언론인 다큐 연출 해보지 않겠어?' EBS를 퇴사한 지 얼마 안 돼 정신이 없었지만 '해직언론인'이란 단어에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다 갖는 부채의식이 저 역시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당시는 언론의 암흑기였습니다. 잊혀져가는 해직언론인들을 재조명함으로써 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억눌린 언론의 기도 세워보려는 요량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해직 언론인이란 말의 무게에 맞는 묵직한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스토리펀딩 1화 '징계 당하고 좌천당한 해직언론인들'의 서두다. 본인 역시 EBS <지식채널e>를 만들었고, 다큐 <반민특위>를 제작하다 수학교육팀으로 발령되며 좌천을 겪은 '해직언론인'이기도 한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이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한 2014년을 '언론의 암흑기'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제가 알던 해직언론인들은 뭔가 거창한 구호로 둘러싸인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의 이상은 높고 찬란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참혹하리만큼 비루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비루함 속에서 2000일을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싸워왔다는 걸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 전까진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YTN 해직언론인들만을 다룬 작품이라고 오해해선 곤란하다. <7년>은 YTN과 MBC에서 부당하게 해직된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정권에 의해 진행된 언론장악의 구체적인 과정과 그로 인해 붕괴된 저널리즘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이 부재한 공영방송이 왜 '기레기'라 불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해가는 다큐멘터리다. 김진혁 감독은 그 출발의 한축이 '세월호 참사'라고 말한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3주 뒤인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악명 높은 '전원 구조' 오보가 터집니다. 2012년 170일 파업을 통해 대량 해직은 물론,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징계 당하고 비제작 부서로 좌천되었던 바로 그 MBC에서 터진 오보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해직언론인들이 쫓겨난 공영 언론이 어떤 상태인지를 참혹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됩니다. 무려 300여명의 목숨을 잃고 나서야 말이죠. 그들이 언론에서 쫓겨난 걸로만 알았는데, 그들이 없는 7년 동안 우리 모두 언론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음을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죠.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들이 없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자백>의 뒤를 잇는 사회파 다큐,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다
 
 YTN 해직?징계 언론인과 김진혁 감독. (왼쪽부터)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 조승호 기자, 박진수 기자, 김진혁 감독.

YTN 해직?징계 언론인과 김진혁 감독. (왼쪽부터)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 조승호 기자, 박진수 기자, 김진혁 감독.ⓒ 인디플러그


<7년>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부문, DMZ 국제다큐영화제 한국다큐쇼케이스 부문, 사람사는영화제에 초청되며 이미 '입소문'을 탄 작품이기도 하다. 그건 EBS <지식채널 e>로 이름을 알리면서 2006년 한국 PD대상 실험정신상, 2008년 한국 PD대상 교양부문 작품상 등을 수상한 김진혁 교수의 이름값만큼이나 지상파를 비롯해 '이명박근혜' 정권이 망가뜨린 한국 언론의 비뚤어진 자화상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크다는 방증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7년>은 23일 펀딩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24일 정오 현재) 258명이 500만 원 이상의 후원 액을 보탰다. <7년>의 펀딩은 7천만 원을 목표로, 개봉주인 오는 1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앞서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연출하고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한 <자백>은 이 펀딩으로 4억 3천만 원을 모금, 화제를 모은 바 있다. 

<7년>과 함께 올 전주국제영화제에 나란히 초청됐던 <자백>은 이러한 성원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개봉 이후 14만 관객을 돌파했다. <7년>은 이미 영화제 상영 전부터, PD 출신 감독이 연출한 사회파 다큐로서 <자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으로 조명을 받아 왔다.  

한편 김진혁 감독은 지난 21일 시사회 자리에서 "영화를 찍는 동안 YTN, MBC 구성원들과 항상 함께 하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분들이 복직되길 바란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또 <7년>의 고영재 프로듀서는 "이명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을 그들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 하려고 얼마나 공작을 펼쳤는지 알아주셔야 최전선에서 싸우시는 분들께 힘이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많은 국민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같은 날, 100여 명의 연합뉴스 기자들은 "우리 젊은 기자들은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자사의 정부 편향적인 보도와 불공정인사를 비판한 것이다. MBC는 'JTBC 태블릿 보도' 흔들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KBS 양 노조는 파업 중이다. 

김 감독과 고 프로듀서의 말처럼, 해직언론인들은 아직 다 복직되지 않았고,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언론인들의 싸움 역시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7년>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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