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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갈망을 대신 짊어진 김...선...동

민중연합당과 김선동에게서 ‘희망’을 읽는 이유
 
김갑수 | 2017-03-27 09:03: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우리의 갈망을 대신 짊어진 김...선...동
- 자주여! 회오는 이제 그만, 소망을 노래하자


나는 몰랐다. 고백하건대 5년 전 ‘경기동부’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때, 웬 버스회사가 파업 같은 것을 한 줄 알았다. 그만큼 나는 바보에 가까웠다. 알고 보니 그것은 ‘자주’가 증발돼 버린 시대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자주의 불씨’였다.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다. 바보 같은 나였기에 그나마 진짜를 볼 수 있는 객관적 눈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라는 말을 석연하게 수용하지 않는다. 진보란 특정 이념이거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각성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해야만 하는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자주’는 ‘진보’보다도 더욱 원천적인 인간의 가치덕목이다. 그럼에도 진보는 난무하지만 자주는 희귀해진 이 시대의 아이러니를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자주’는 내 눈에 흙이 닥쳐도 양도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

진보가 횡행하는 시대에 유독 김선동이 보이는 것은 그가 진보이면서 자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선동을 잘 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여러 번 그를 만났고 같이 방송도 했고 함께 술 마시며 노래한 적도 있다. 누구는 그를 장비나 관운장에 빗대기도 하는데 나는 견해가 조금 다르다. 굳이 삼국지에서 모델을 찾는다면 김선동은 제갈공명에 가까운 인물이다.

요즘 진보세력이 사분오열하여 형세가 미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름이 아까운 신문 <한겨레>는 김진태의 출마는 기사화하면서 아직 김선동의 출마는 외면한 채로 있다. 그러나 자주는 원래 적었고 당분간도 적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 무장항쟁세력도 그렇지 않았는가? 분단이 고착된 상황에서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그들이 정권을 잡을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자주를 지지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김선동한테 미온적인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 불과 5년 전 그대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대표부를 우리 국회 안에 파견한 격이 됐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종북주의자의 공식적인 원내 진출이 이뤄졌다.” (한국외국어대 김지영 외래교수)
- 당내 패권세력이 다시는 정치에 입문할 수 없게 하도록 문제의 씨앗에 불을 지를 것이다. (부산 금정구 참여계 의원 이청호)
- 당이 국민들에게 사망 선고를 받은 정도가 아니고 (사형이) 집행된 거나 다름없다는 공통 인식이 있다.... 이 당은 국민들에게 해로운 당이 됐다. (유시민)
- 자기정파의 승리를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는 의식과 행태, 기가 막힌다. (조국)
어디 이뿐이랴?
- 이제 추태는 그만 부렸으면 한다. 무릎 꿇고 사과하고 눈물 흘리며 반성해도 시원찮을 판에, ‘언닌, 평양스타일’ 신나게 말춤이나 추고 있으니 정신병동을 보는 것 같다. (진중권)
-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는 무슨 염치로 대선에 나오려는 것인가. 국고보조금 30억 원을 노린다면 이정희 추방운동이 벌어질 것이다. (새누리당 논평)
얼마든지 더 있다.
-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합연대는 지금으로서는 어려울 것 같다. (문재인)
- 이정희는 대선 출마에 앞서 정파 변호사부터 그만 두어야 한다. (심상정)
- 이정희의 대선 출마는 당원과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능멸이다. (노회찬)

민노당과 통합진보당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여, 낡아빠진 이름 엔엘이여, 피디여! 지난 일을 회상한다 해서 우리에게 가슴을 쥐어박을 만한 회오(悔悟)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사실 우리에게는 별 잘못도 없지 않은가? 유수처럼 흘러간 세월, 아쉬움도 없지 않은가?

5년 전 통합진보당의 대선후보가 사퇴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이정희의 전격적 사퇴는 외부 개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문제는 그 ‘외부’라는 것의 정체를 확연히 모르겠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나는 사퇴 소식을 듣는 순간 전상국의 소설 <우상의 눈물>을 떠올렸다. 이 소설은 ‘물리적이고 표면적’인 폭력보다 ‘합리적이고 위선적’인 폭력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오해하지 마시라. ‘물리적이고 표면적인 폭력’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위선적인 폭력’을 말함이다. 오늘의 진보를 갉아먹는 주범은 바로 이것이다. 왜 우리가 비자주적인 자유주의자들에게 잘 보이지 못해서 안달들인가?

김선동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투표로써 자주 정당 민중연합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오늘(26일) 후보선출대회가 있는 것으로 안다. 기꺼이 목욕재계하고 참석하려 한다. 동지여, 친구들이여! 울분을 품고 대회장에 나가서 갈망을 풀어 보도록 하자. 우리의 갈망을 대신 짊어진 김선동이 여러분을 마중할 것이다.

 


 

민중연합당과 김선동에게서 ‘희망’을 읽는 이유
- 김선동 대선후보선출대회 관전기


“당원 동지들의 기대와 염원에 보답하기 위하여 온 몸을 다 바쳐,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대선 승리를 향하여 완주하겠습니다.”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은 ‘완주선언’으로 시작되었다. 2017년 3월 2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 모인 1,800명의 당원과 지지자들은 거듭거듭 “김선동”을 연호하며 그의 연설을 경청했다. (참고로 같은 날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정의당 전진대회’는 예상보다 약간 못 미친 25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내가 정치인의 연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것은 이번이 평생 두 번째 일이다. 그런데 감동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컸다. 내가 첫 번째로 경청한 연설은 1972년 장춘단에서 있었던 김대중의 것이었다. 또한 20대 초반의 김선동은 미국 문화원 점거 학생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 그들에게 미안했고 콤플렉스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연설 중반 김선동은 오늘의 보수야당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가 탄핵되는 역사적인 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서도, 단 한 건의 개혁입법도 통과시키지 못한 야당에게 과연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김선동의 말대로 오늘의 보수야당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어서 그의 연설은 ‘자주민주통일론’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진보정치의 부활이란, 곧 자주, 민주, 통일의 부활입니다. ‘자주 없는 민주주의’는 속빈 강정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 없이 미국의 압력에 굴종하여 한미FTA를 체결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나는 FTA와 사드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사심 없이 김선동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FTA와 사드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삶의 태도가 된다. (예컨대 FTA, 사드에 반대한다면서 문재인을 지지한다? 이렇게 ‘수상한 진보’는 ‘성조기’ 이상으로 해롭다.)

이어서 김선동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했고, ‘통일 없는 민주주의는 가짜’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고 종북몰이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사회를 어떻게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김선동은, “우리가 언제까지 남의 논에 소작을 지어야겠습니까? 자기 논에 자기 모를 심어야 추수도 자기 몫이 됩니다. 남의 농사 쳐다볼 것 없습니다. 우리 농사 잘 지으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김선동에게 주는 표는 결코 사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하는 정치도 시간문제다. 중국인민혁명은 1921년 9명이 모여 시작했다. 1차 국공합작한 그들은 장제스의 위약과 불의의 공격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마오는 불과 1,000명도 안 되는 패잔병을 수습하여 정강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머잖아 권토중래했다. 지금 중국 공산당의 당원 수는 1억 명을 육박한다. 조만간 그들은 세계의 지도자급으로 부상하려고 준비 중이다.

1956년 쿠바 시에라마트라에 살아남은 젊은이는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포함하여 12명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불과 3년 후 혁명에 성공하여 카스트로는 총리, 체 게바라는 산업부장관으로 올라섰다.

그러니 기껏 해야 3,4만도 안 되는 이른바 ‘운동권 진보’에만 연연하지 말라. 내가 보기에 그들 중의 상당수는 타성에 젖어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진보보다는 보수 설득하기가 더 쉽다.

이 나라에는 4,000만이 넘는 유권자가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 중의 99%는 민중이다. 그러니까 ‘진보 대중화’니 ‘생활 진보’니 하는 옹졸한 수사법으로 진보를 미화하는 데에 눈길을 줄 필요도 없다.

스케일을 확 벌려 ‘민중의 바다’로 곧장 뛰어들어야 한다. 대선까지는 50일이 남았다. 민중연합당 당원 수는 3만이 넘는다고 한다. 돈 없는 소수는 진지전보다는 유격전이 유효하다. 선거에서 유격전이란 직접 만나서 각개격파하는 것이다.

3만 명 개개인이 하루 한 명씩만 목표로 삼아 표 작업을 한다면 대선일까지 150만 명 이상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150만 표, 즉 4~5%만 득표하면 망외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부언] 대회 행사가 시종일관 대단히 수준 높고 원활하게 치러지는 것을 보고 민중연합당이 불과 1년 사이에 크게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한 노력이 집체된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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