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주요 뉴스 모음에는 반드시 부동산 관련 기사가 한 꼭지씩 자리를 잡고 있다. 개중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게 해선 안 된다는 트집부터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감히 꺾을 수 있겠냐는 몽니도 보인다. 가끔은 유체이탈화법을 시전하며 단순히 집값이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를 예측하며 자신의 앎을 뽐내는 기회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정확히 살펴보면 언론들이 무성의하게 이름 진 '8.2 부동산 대책’은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결국 ‘집’에 대한 얘기다.
‘집’ 하면 즉시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해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라는 외국의 민요를 동무들과 합창했던 아카시아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봄의 교정, 수십 번 펌프질 해서 얼음처럼 차가워진 물에 오이지를 띄우고 텃밭에서 딴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더위를 식히던 마루 위의 여름 밥상, 마당에 파논 구슬놀이 구멍을 밤새 떨어진 낙엽이 메워 버려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지런히 싸리 빗자루를 놀리던 기억...
집 하면 누구에겐 판타지 영화 속 나니아 못지않은 환상을 제공 했던 유년 시절 다락방의 추억이, 또 누구에겐 하루하루가 꿈결 같던 신혼의 추억이 ‘집’이란 단어를 통해 떠오를 것이다. ‘집’이란 낱말과 연관되는 단어와 기억이 ‘세대 분리’, ‘재테크’, ‘양도세’, ‘절세’, ‘공동명의’, ‘분양권 전매’와 같은 단어 꾸러미로 튀어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에 눌러 앉은 천박한 자본논리와 그놈에 돈타령이 계속 되었다가는 ‘집’이란 낱말은 돈을 가진 자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자들이 욕망하는 그것 이상으로 남지 않을 판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8.2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반가운 이유기도 하다.
말랑말랑한 생각만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서 우선 이번 주택시장 안전화 방안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 우리네 삶 속에서 어떤 변화들이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시의적절한 정책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무분별한 재건축과 의도적으로 안이했던 부동산 정책, 초이노믹스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자행된 박근혜 정권의 대출끼워팔기식 부동산 정책은 가계부채를 '임계점'까지 끌어 올렸다.
이미 일본이 보여준 부동산 버블의 몰락이 초래했던 장기불황과 미국이 겪었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더라도 부동산 버블은 반드시 붕괴되고 강제적 조정국면을 맞게 되며, 그 고통은 투기 당사자 뿐 아니라 온 국민이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탐욕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제 몸까지 다 먹은 후에 이빨만 남고 나서야 멈춰버린 그리스 신화의 에리식톤의 이야기처럼 최악의 상황에 닿기 전까지 멈출 수 없는 것인지라 정부의 시장 개입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과거 집값은 언젠가 떨어질 거라는 경제학자들의 얘기를 비웃으며 사재기에 나섰던 사람들은 그간 언제 집값이 떨어졌냐고 조롱했다. 이런 모욕적인 비아냥거림이 득세한 이유는 당시 경제학자들이 단서를 명확히 달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그 단서를 한 마디로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집값은 정의로운 정부와 깨어있는 시민들이 출현하는 순간 떨어진다.
그 시작점은 바로 지금이고 더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의 이번 주택시장 안전화 방안은 시의적절했다.
우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토대로 하고 있는 통계들은 다주택자들의 투기 억제가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당시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자료를 살펴보면,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 중에 43.7%는 이미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구매형태의 유주택자(1주택 이상)들은 10년 전보다 12.7% 증가했음이 확인됐다. 주택을 사는 사람들의 절반이 이미 집이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불패를 믿는 투기세력은 꾸준히 건재했으며, 이를 강력하게 제어할 정부의 역할을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방기한 것은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의 주택 관련 규제정책 발표 후 항상 나오는 반론은 건설사의 공급량 축소로 인해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인데, 정부의 8월 2일 발표 자료내 통계를 보면 서울은 2005~2014년간 공급량 평균 6만 3천호의 주택이, 2015~2016년에는 평균 8만 8천호가 공급되었다.
서울의 인구수가 2016년에 이르러 천만 아래로 내려가고, 지난 7월 행정안전부의 발표 자료로는 서울 인구가 이제 991만 명이라니 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거들떠 보지 않던 공공주택 보급만 조금 신경 써도 공급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규제보다 공급을 늘려야 할 시기라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공급의 문제로 접근해도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탐욕의, 자본의 편에 서서 기득권 지키기에 전전긍긍했던 언론들이 내놓는 우려와 근거 박약한 예상들에 더는 현혹되지 말아야 할 텐데, 목소리 큰 놈들이 이기는 싸움판의 법칙(?)을 생각해보면 걱정이 앞선다.
이번 정책으로 내 집 마련이 좀 수월해질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첫째, 투기세력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율 인상, 대출규제 등 다양한 억제책을 내놓았고, 주택거래신고제의 부활, 심지어 투기 의심자에 대한 세무조사까지 촘촘한 그물을 짰기 때문이다.
보유세를 빼고 양도세만 건드려서는 투기세력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예상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상태에서 보유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인상만은 안 할 것이라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되려 이번 정책의 강력한 메시지 때문에 정부에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보유세의 인상은 언제 할 것인가가 문제이지 할까 못할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의 주택공급 확대 방안이 서민주택 공급에 기여할 것이다.
잠깐 프랑스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프랑스는 도시계획법상 공용주택(아파트, 빌라 등)을 지을 때 임대주택을 25%~30% 수준으로 의무적으로 건축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공용주택 안에 자기 집을 사서 입주한 주민과 집을 분양받지 않은 임대주택 거주자들이 섞여 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임대주택에 대한 지역민들의 차별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공용주택 안에서 임대주택일지라도 외관상으로 어떠한 차별이나 불평등을 못 주게 되어 있다. 주민들이 같이 융화되고 조화롭게 살 수 있게끔 건축허가 사항에 명시되어 있고 정부는 시공사가 이를 제대로 따랐는지 엄격하게 확인한다.
[EBS 다큐프라임, 행복한 주거 중, 임대주택과 일반주택이 함께 섞여 건축된 공용주택 ]
여기까지 보고 나면 역시 프랑스가 선진국이라 다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또한 유사한 제도가 있다. 원주민들이 내쳐지는 재개발 사업의 폐해를 막기 위해 재개발 사업시 수도권은 전체 세대수의 0~15%를 이외 지방은 0~12% 범위 내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이 ‘범위’의 맹점을 악용해 왔다. 재개발 사업시 임대주택 의무공급비율을 0%로 고시하는 것이다. 어쨌든 0%도 범위 안이니까. 이번 8.2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에서는 이런 꼼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의무공급비율의 하한을 서울 10%, 이외 지역 5%로 못 박아 개정하기로 했다.
현 정부의 공적임대주택 연간 17만호 공급 (5년간 총 85만호) 계획은 이렇듯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 두 배에 가까운 공급량 확대에도불구하고 지난 정권에서 유야무야 했던 공적임대주택정책과는 천양지차인 것이다.
투기세력에 대한 강력한 억제 의지의 천명, 그리고 정부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공적임대주택의 공급 확대로 인해 서민들의 순수한 내 집 마련은 좀 더 일찍, 좀 더 적은 돈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 예상을 하면서도 우려가 남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함께 뜻을 맞춰나갈 수 있냐는 것이다. 그간 일부 지자체가 중앙정부가 집값을 잡는다고 하면 되레 재개발을 들쑤셔서 정부의 권위를 깎아 버리고, 실무적으로는 앞서 본 것과 같이 임대주택의무 공급비율을 법의 허점을 찾아 무력화시키는 등의 행위를 공공연히 해왔기 때문이다.
2018 지방선거가 채 1년이 남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언젠간 자기도 부자가 되고야 말거라는 안일한 환상에 빠져 무분별한 재개발과 재건축에 표를 행사할지, 아니면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을 꼼꼼하게 제시하는 단체장에게 자신의 표를 밀어줄지, 그 결과에 따라 이번 정부대책이 순항할 수도 암초를 만날 수도 있다.
정부정책 발표대로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으로는 주택안정화는 요원한 일이다. 적어도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다.
정말 이번에는 부동산 투기를 잡고 대한민국은 나아질 것인가?
정책의 필요성과 실효성을 검증하고 나니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선뜻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기 어렵다. 서민주거안정이 청년층이 포기했던 결혼과 출산에 장기적으로 기여를 할 것이라 믿는다.
처음에야 법망을 피해 투기과열지구를 피해 아파트 사재기를 하려고 들겠지만 결국은 투자용처로 주택은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자본이 산업으로 흘러들어 스타트업과 경제 절반의 활력소가 되리라 믿는다. 결국 주택에서 시작한 개혁이 사회정의와 상식을 되돌리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다.
그럼에도 우려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지난 정권들이 사회 곳곳에 뿌려 놓은 혐오와 분노의 씨앗을 걷어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주체의 욕심을 그저 비난하거나 내버려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고추농사가 잘 되면 너도 나도 고추를 심어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으로 농사를 망치는 우매한 농부들이 있었다. 그저 돈이 벌고 싶었던 것 뿐이고 그 욕심에 수요와 공급을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우매한 농부들에게 학자와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가르치고 공급자의 힘을 키우기 위한 협동조합법인 공동출하를 가르친다. 지자체와 기업들은 확정가격의 구매계약을 통해 가격의 등락에 상관없이 폭리는 아닐지라도 안정하고 일정한 수준의 이윤을 갖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결국 농부들은 거짓정보로 작물에 투기를 하도록 이끌었던 피리 부는 사내를 따르지 않게 되고 더 발전해서 자신의 고추를 더 상품성 있는 명품작물로 만들어 내게 됐다. 무식하고 욕심뿐인 농부들이라고 그들을 비난할 뿐 어떠한 대책이나 퇴로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위의 농부의 예와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 조무래기들(?)은 사실 비슷한 점이 많다. 정권의 수뇌들이 도시 개발을 통해 천 배, 만 배의 이익을 얻는 상황에서 그 졸개들이 얻어먹은 부스러기들이 부러워서, 가파른 경제성장률로 좁은 국토에서 어느 땅이든, 집이든 사놓으면 오르던 시절의 향수에 젖어, 거짓 재테크 정보에 속아 부모의 시골집과 땅을 팔고 대출로 집을 사들여 부자의 꿈을 꿨던 헛똑똑이들이 있다.
그들을 비난하고 혐오할수록 그들은 기득권과 적폐세력과 연대할 뿐이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업 등록을 하고 수익에 맞는 세금을 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연착륙이 이루어지려면 공동체의 관용이 필요하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혐오가 되려 시장 질서를 바로 잡으려 하는 현 정부의 대책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날뛰는 주택시장의 고삐를 누가 쥘 것이냐는 첨예한 판국에서 현재는 정부가 공세적 입장이다. 하지만 끝없이 공격만을 퍼부을 수는 없다. 공수는 교대될 것이고 기득권과 언론은 사회구성원 간의 분열과 혐오를 바로 역공의 기회로 사용할 것이다. 언제까지 정부의 과감한 정책 입안에 들떠 있어서만은 안 될 일이다.
어려운 경제용어와 세금 얘기 때문에 골치 아프다면 정말 쉽게 간단하게 현 시국을 가늠해 보자. 초보농구선수 강백호가 농구를 제대로 알게 된 후 바뀐 행동은 무엇이었나? 바로 동료선수들에게 백코트를 외친 것이다. 백코트 하자. 적폐기득권과 그들 못지않게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기득언론들이 온다.
[참고]
1. 2017. 8. 2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정부발표문
2. EBS다큐프라임, 행복한 주거
워크홀릭
트위터 : @CEOJeonghoonLee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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