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훈련을 받고 독일사관학교에 유학까지 한 장군들이 왜 이리 썩었는가. 그 기원을 추론해 본다.
장준하가 근무하던 (중국 내 일본군) 부대에서 한국인 학도병들의 탈주가 잇따르자 감시의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학도병들의 생활은 더욱 괴롭게 됐다.
어느 날 같은 한국인 학도병 하나가 한인 초년병 몇이 남아 있는 내무반 안에서 칼을 뽑아 들고 격한 어조로 소리 질렀다.
“이제 또 누가 도망치겠느냐? 이제 또 도망가는 놈은 내가 찔러 죽일 테야!”
그전에 이런 지저분한 일도 있었다. 일본군 고참병들이 먼저 배불리 먹고 선심 쓰듯 남은 밥을 밀어주면 (대학물을 먹었다는) 조선인 병졸들이 “개, 돼지에게 던져주듯이 던져주는 그 밥 한 그릇을 우르르 몰려들어 받아먹는 그 치사하고 밸 없는 꼴들.”
그래서 장준하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잔반불식동맹’을 맺고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으나, 예의 그 (칼을 흔들었던) 학도병은 “고참병이 먹다 남은 밥을 던져주면, 그 그릇째로 뺏기 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숫제 두 손을 밥그릇에 넣어 먼저 밥만을 움켜쥐고 돌아서서 그 더러운 밥을 먹곤 했다.”
장준하는 그의 저서 ‘돌베개’에서 이 자의 이름까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후에 다른 자리에서 이 자가 바로 5.16 쿠데타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이였음을 밝혔다.
일반 병사로 지원입대한 장준하는 장도영이 ‘같은 동료’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마도 장도영은 장준하가 탈주한 후에 장교가 된 모양이다.
장도영 직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송요찬은 지원병으로 입대해서 종전 당시 일본군 준위였다. 이후 제3공화국이 끝날 때까지 12년 동안 육군 참모총장은 학병출신 일본군 소위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어받았다.
학병 출신 장교들이 자발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진기록은 진기록이다. 이들의 통수권자는 일본 육사를 나온 정규 일본군 장교 출신 다카끼 마사오였다.
그렇다면 제1~3공화국에서 육군 참모총장 19개, 합참의장 11개, 국방부 장관 18개를 합쳐서 48개 군부 요직 중에서 광복군 또는 학병 탈출자 출신은 몇 개 자리에 올랐을까? 정답은 ‘단 한 개’다.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이범석이 1948년 8월부터 1949년 3월까지 국방부장관을 지낸 게 유일하다.
해방 후 70년이 넘은 대한민국 군대. 아무리 장교들이 미국식 훈련을 받고, 그중 일부는 ‘독사파(독일사관학교 유학파)’라고는 하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여전히 군국주의 일본군에 두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부하 장졸을 노예, 혹은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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