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무주택 가구와 1주택 가구를 합친 비율이 전체 가구의 85.38%입니다. 그리고 2주택은 248만 1515가구로 11.13%, 3주택 이상자는 77만 8060가구로 3.5%입니다. 그런데 전체 가구의 3.5%에 불과한 3주택 이상자가 전체 주택 수의 37%에 해당하는 855만 2246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2주택 이상 소유자의 잉여 주택이 1103만 3761호입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주택소유지분별 주택소유 가구수]라는 항목을 2015년도부터 작성한 탓에 2015년 이전과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아파트 3채 이상 소유자가 박근혜 정부에서 73.2% 증가”했다는 2018년 10월 10일자 뉴데일리 기사로 미루어 보건대, 2010년경 3주택 이상자가 소유한 주택은 대략 400만 호 정도로 추정됩니다. 위 통계치가 시사하는 가장 강력한 사실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증가한 주택 수 338만 700호 중에서, 2주택 소유 주택이 90만 5,800호 증가했고, 3주택 이상 소유 주택이 107만 4,962호가 증가하여, 다주택자에게 10년 동안 약 300만 호가 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주택 소유’는 ‘무주택자의 권리’를 빼앗는 약탈적 행위
경제학에서 ‘트레이드-오프(trade-off)’는 ‘희소한 자원 때문에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지를 포기해야 하는 관계’라고 정의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경제주체를 기준으로 발생하는 ‘선택의 상충관계’로 설명되는데, 예를 들어 공부 대신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고 가정할 때, 포기하는 행위 자체가 트레이드-오프, 포기한 것의 가치가 기회비용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2001년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그의 저작 <자유의길 : 경제학은 어떻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에서 복수의 경제주체 사이의 상충관계를 ‘트레이드-오프’의 또 다른 사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말은 이 문제를 잘 보여 준다. “늑대를 위한 자유는 흔히 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10).…한 사람의 자유가 종종 다른 사람의 부자유가 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종종 다른 사람의 자유가 희생된다는 것이다(30).…자유롭고 고삐 풀린(unfettered) 시장은 ‘선택할 권리’보다 ‘착취할 권리’에 가깝다. 착취는 피착취자의 희생으로 착취자를 풍요롭게 만든다(41).
대한민국의 주택시장은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설명한 트레이드-오프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좁은 국토로 인해 그 공급이 절대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소수가 선제적으로 주택을 독점하여 그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폭등시키고, 이로써 나머지 무주택자들로 하여금 주택구매를 불가능하게 만든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토지와 주택을 다량으로 모으는 행위는 봉건시대 귀족이 무력으로 장원을 선취한 것과 경제적으로 유사하며, 그래서 그로 인한 이득은 지대(rent)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첫째 다주택 소유는 무주택자가 집 1채를 소유할 기회를 방해함으로써 무주택자의 권리를 침해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비정상적인 경로로 집값은 폭등하는 데에 반하여 무주택자의 전세금 가치는 인플레이션과 동반하여 하락함으로써 ‘부의 상대적 전이’, 즉 약탈행위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주택 소유는 위와 같은 두 측면에서 ‘무주택자의 권리’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침해하였습니다.
시야를 돌려 35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 1채를 소유한 A와 6억 원짜리 아파트 5채, 합계 30억 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B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B씨가 A씨보다 더 비난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1가구가 1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이고, A로 인해 무주택 가구가 주택소유 기회를 잃은 것도 아니어서 A를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단지 A씨 소유의 주택가격 자체도 앞서 본 것같이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상승한 것이므로, A씨가 주택을 매각할 때 세법에 따른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문제는 B씨입니다. 그가 잉여 주택 4채를 소유함으로써 무주택 네 가구가 주택매수 기회를 박탈당했으며, 무주택 가구는 자산가치 상승에 반비례하는 전세금 가치 하락의 손해를 입었습니다.
기본권 충돌과 기본권 제한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부자유가 되는 ‘경제학에서의 트레이드-오프 현상’을 헌법학에서는 ‘기본권 충돌 사례’라고 부릅니다. ‘기본권 충돌’이란 서로 다른 기본권이 동시에 주장되면서, 한쪽 기본권을 완전히 보장하면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본권 충돌이 발생한 경우, 헌법은 침해하는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이를 조정합니다.
좁은 국토로 인해 주택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제한되는 우리의 경우, 무주택 상황이 보편적으로 해소되기 전까지 ‘주택 여러 채를 소유할 자유’는 불가피하게 ‘무주택자가 최소한 집 한 채를 소유할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최근 20년 사이에 정부가 유주택자에게 유리한 대출 정책을 시행하여 유주택자의 주택 추가매수가 이루어지고, 이로써 집값이 더욱 폭등했다는 점에서 ‘다주택을 소유할 자유’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국민 과반에 육박하는 무주택 가구가 존속하는 상태가 가져올 사회적 불안과 갈등비용을 비교할 때, 다주택 소유를 보장해야 할 경제적 가치는 없습니다. 즉 1가구 1주택이 보편적으로 확립되기 전까지, ‘다주택을 소유할 자유’는 이사야 벌린이 말한 ‘늑대를 위한 자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형성되어 발생한 수익을 세금으로 환원시키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조치 및 보유세 강화는 대한민국헌법 제119조 제2항 및 제37조 제2항에 근거한 기본권 제한 조치입니다.
대한민국헌법
제37조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제119조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2026년 3월 1일 “집을 팔고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이 이익이나 손실이 되게 할지는 정부가 정할 수 있다”고 밝힌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은 지극히 합헌적인 주장입니다.
<장동혁 겨냥?...李대통령 “다주택, 팔기 싫으면 둬라. 정부정책 불신 선택, 이익 없게 할 것”>(2026년 3월 1일자 헤럴드경제)
이재명 대통령은 “집을 사 모으거나 팔지 않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는 것이 이익이 되도록 정부가 세금, 금융, 규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결국 투기는 투기한 사람이 아니라 투기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든 정치인, 정부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세금, 금융, 규제 등 국가 제도를 운용함에 있어 부동산 투기가 불가능하도록, 집을 많이 가지거나 살지도 않을 집을 보유하고 초고가 주택에 사는 것이 경제적 이익을 낳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부작용에 상응하는 부담이 되게 했다면 부동산투기는 일어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다주택이나 투자용 비거주 주택의 매도를 유도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정부의 실패 또는 방임을 믿으며 이익을 취해 온 그들에게 불의의 타격을 가하지 않고 피해를 회피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그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선택이 손실이 되도록 세금, 금융, 규제를 철저히 설계할 것이고 그 어떤 부당한 저항과 비방에도 흔들림 없이 시행할 것이라 새로운 합리적 선택의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객관적으로 올바른 정책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책 수혜자인 국민 다수의 입장에 서서 그 이익에 부합하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지금까지 극단적 소수가 누렸던 ‘다주택을 소유할 자유’를 제한하고, 나머지 대다수가 원했던 ‘최소한 집 한 채를 소유할 자유’를 보장하려는 것입니다. ‘늑대를 위한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나머지 대다수 사람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올바른 조치이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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