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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VIP 파티보다 더하다, 미국서 벌어지는 섬뜩한 일들

[세계의 극우] 테크노그라트와 미국 정치... 좌와 우가 아닌, 위와 아래의 싸움이다

26.03.03 06:49최종 업데이트 26.03.03 06:49

바야흐로 '극우의 시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배타주의와 인종주의를 극대화하며 세계를 혼란에 몰아넣었고, 유럽에서는 이민자들을 몰아내려는 정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남미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선 극우 지도자가 선출되는 모습도 심상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이후 극우세력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한국의 상황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세계의 극우> 기획은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평화적 질서를 무너트리는 극우의 모습을 추적하며, 이에 맞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2020년 1월 6일 남부연합기를 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가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조 바이든 차기 대통령 인준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던 중 상원회의장 밖에서 찍힌 모습. EPA/연합뉴스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러닝을 위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요란한 컨트리 음악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소리 나는 쪽을 두리번거리는데 요란한 국기가 펄럭이는 중형 트럭 하나가 다가오고 있다. 성조기, 파란 X가 박힌 남부연합기와 더불어 붉은 글씨로 'TRUMP 2026'을 인쇄한 깃발이 가장 앞에서 펄럭인다.

뭔가를 더 얘기하고 싶어 안달인 낡은 트럭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운전석에 앉아 있는 백인 남자 둘이 가운뎃손가락을 쳐들고는 클랙슨을 울리며 지나간다. 방금 내가 본 게 뭐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공포가 엄습했다. 세상이 험악해지면 가장 먼저 총을 들고 설칠 이들이 방금 내 앞을 지나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 나라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어지는 영웅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1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의 추모식 무대에서 연설하고 있다.AFP/연합뉴스

"그는 미국의 위대한 영웅이자 순교자였습니다."

2025년 9월 21일, 7만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애리조나 글린데일 스테이츠팜 스타디움에선 국장급 규모의 장례식이 펼쳐졌다. 시신은 미 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 투로 운구됐고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행정부 고위인사들과 유명 보수 언론인들이 추도 연설자로 나섰다. 5시간에 걸친 장례 행사는 미 전역에 생방송 됐다.

십 여일 전, 유타주 밸리 대학 교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탕 소리와 함께 모여있던 3천여 명의 학생들 앞에 연설하던 남자가 고꾸라졌다. 나이 서른 하나의 찰스 제임스 커크(찰리 커크)는 130m 거리에서 쏜 스물두 살 청년의 총에 급소를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는 보수주의 단체 터닝 포인트 USA를 설립·운영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가장 저명한 인사 중 한 명이자, 극우 성향에 가까운 보수주의 정치의 대표 격인 인물이었다.

대선 캠프 내내 긴밀히 협력하며 선거 운동과 메시지 확산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젊은 인플루언서의 죽음에, 트럼프 대통령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고 자유를 위한 전사였다고. 죽은 커크에겐 대통령이 주는 자유 훈장이 수여됐고 미 전역엔 조기가 게양됐다. 사흘 동안 미 곳곳의 관공서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와 주민 시설들에서도 찰리 커크의 조기가 펄럭였다. '위대하고 전설적인' 찰리 커크가 세상을 떠났다는 대통령의 트윗처럼, 극우 보수 인사였던 서른한 살 남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순교자'가 되었다.

우익단체 창립자 찰리 커크의 2025년 1월 연설 모습AFP/연합뉴스

찰리 커크는 18살에 자유주의 성향의 미국 대학가에, 보수적 가치를 확산시키겠다는 취지로 터닝 포인트 USA를 만들었고, 수백 곳의 대학에 지부를 두는 성과를 거두었다. 나아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이나 기후 변화에 대한 반감 등 오랜 세월 미국이 일궈온 인문학적, 과학적 성찰에 반기를 들어, MAGA 운동의 풀뿌리 지지층 확장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후, '찰리 커크'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은 피살 직전 380만 명이던 구독자가, 현재는 570만 명으로 더 늘어났다. 현재 미 보수 정치 유튜버 중 여전히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그의 아내가 단체와 계정 운영을 이끌고 있는 중이다.

미 연방 검찰은 사건 발생 이틀 후 체포된 범인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암살 동기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

극우들의 해방구, ICE

미국 매체 <슬레이트>의 로라 제디드 기자는 텍사스에서 열린 ICE(미국이민세관국) 채용박람회에 참석했다.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기사를 써왔고, 이와 관련된 SNS 글도 수없이 올렸기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굳이 제대로 된 이력서를 작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빈칸을 그대로 둔 허술한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확히 6분 후, 그는 합격 메일을 받는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ICE 형사사법 전문가 직무에 최종 선발 되었습니다."

첨부된 문서에는 서류에 사인을 하면 바로 1만 불의 입사 축하 보너스를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가 ICE 요원들을 어떻게 모집하고 관리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월 8월, 세 아이의 엄마인 미국 시민권자 르네 니콜 굿이 실랑이하던 ICE 요원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난 괜찮아요. 당신 때문에 화나지 않았어요"였다. 하지만 차를 빼고 돌아가려던 이 여성에게 총을 쏴 살해한 요원의 대시캠에 기록된 말은 "빌어먹을 년"이었다.

ICE 요원에게 밀침을 당해 넘어진 여성을 도우며 알렉스 프레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Are you okay?(괜찮아요?)" 그런 프레티를 끌어내 얼굴에 최루가스를 뿌리며 바닥에 제압한 5명의 요원들은 몸수색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10발의 총을 발사해 그를 사망케 한다. ICE 주변에서 핸드폰을 들고 활동 상황을 찍고 있었을 뿐이었던 37살의 알렉스 프리티는, 보훈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간호사였다.

지난 1월 24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 요원들이 한 남성을 체포하려다 여러 차례 총격을 가한 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연방 요원들이 시위자를 체포하고 있는 모습.EPA/연합뉴스

지난 1월 4일 <가디언>은 2025년 한 해 동안 ICE에 의해 구금 중 사망한 이가 32명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 조치와 함께 사상 최대 규모의 구금 작전이 벌어지며 발생한 결과였다. 그중 '호세 카스트로 리베라'라는 25살 청년은 홈디포(집수리 관련한 물건을 파는 대형 마켓) 매장에 들이닥친 단속원들을 피해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미국 이민 위원회(American Immigration Council)에 따르면 2월 11일 기준 올해에만 벌써 6명이 ICE에 의한 구금 중 사망했다. 르네 굿이나 알렉스 프리티처럼 대중이 지켜보는 장소가 아닌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상황이다.

현재 ICE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이민 단속 인원을 대규모 충원 중이다.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ICE 신규 지원자가 20만 명을 돌파했다며 대대적인 혜택을 자랑했다. 최대 5만 달러의 채용 축하금, 학자금 대출 상황을 비롯해 근무 가산 수당의 경우 기본급의 25%가 추가 지급된다. 더불어 지원 연령 제한도 18세 이상으로 완화한다. 혜택에 비해 자격 요건은 허술하다. ICE가 극우 보수 청년들에게 최고의 스펙이 되고 있는 이유다.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억만장자들

지난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발언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기술 관료'라 순화해 부르는 이들은 '과학자, 엔지니어, 경제학자 등 기술 전문가로서, 고위 행정직이나 정부직을 맡아 정치적 고려보다는 데이터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미리엄-웹스터 사전 정의).

선거제도와 우편투표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며 '깨어있는 엘리트'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 제도를 조작하는 엘리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일론 머스크는 2024년 트럼프 당선에 누구보다 앞장선 인물이다. 현 시스템이 민주주의 본질에서 벗어나 관료주의적 폭정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는, 트럼프 정부 시작과 함께 정부 효율성 부서(DOGE) 수장으로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무리한 인력 감축으로 정부 역할의 급격한 저하라는 비판과 함께, 테슬라 주가와 판매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머스크는 취임 4개월 만에 사퇴했지만 그는 초기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파워맨 중 하나였고 그 영향력은 지금도 무시할 수 없다.

일론 머스크와 함께 페이팔을 만든 팔란티어 공통 창업자 피터 틸. 실리콘밸리에서 트럼프가 인기 없던 2016년부터 일찌감치 트럼프를 지지한 인물이다.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호환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2009년 에세이를 통해 민주주의에 흥미를 잃었다는 발언을 하던 그는, 머스크와 함께 현 정부의 군사 계약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팔란티어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정부로부터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 등 서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은 지금까지 겨우 2%가 공개되었다고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속 VIP 파티는 장난으로 보일 일들이 정말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커넥션의 정점에서 법과 규율과 도덕 위에 군림하는 이들이, 미국 정부가 소유한 정보·기술·자금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야만 하는 시점에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25년 3월 21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컬럼비아 법대 교수인 팀 우의 칼럼 '일론 머스크는 정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부패시킨다'는 제목부터 섬뜩하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미국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우려해야 할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위를 올려다보지 말고, 서로 싸워라"

한국이 내란의 내홍을 겪고 있을 무렵, 도서관에서 빌려 온 영화 하나를 보고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린 적이 있다. 1시간 49분 상영 시간 내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했던 '공포' 영화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제작사 A24가 만든 <시빌 워>.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치 뉴스나 진지한 토크쇼에서 왜 이 저예산 로드무비 영화가 이렇게까지 큰 화제였는지, 보는 내내 고통스럽게 실감했다.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어느 쪽 미국인이냐?")

3선에 성공한 독재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위해 워싱턴 D.C.로 향하던 주인공 기자 일행은 시신을 집단 매립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무장 군인들과 마주친다. 두 손을 올리고 자신들은 미국인이라고 말하지만 빨간 고글을 쓴 AR-15 반자동 소총을 든 남자는 태연히 묻는다. "어느 쪽 미국인?"

출신 지역을 묻는 거라 짐작하고 하나씩 답하는 기자들. 콜로라도, 미주리... 홍콩 출신인 토니에서 대답은 막히고 떨고 있는 이 아시안 기자를 향해 남자는 가차 없이 자동 소총을 난사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긴장되고 경악스러운 장면이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어느 후미진 공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보였다.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은 치열했던 선거의 승리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억만장자 계급은 시간당 30달러를 버는 사람들에게 시간당 20불 버는 사람이 적이라고 믿게 만들려고 합니다."

텍사스주 하원의원 제임스 탈라리코가 지난 26일 텍사스주 리처드슨 소재 텍사스대학교 댈러스 캠퍼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의 검열로 자신이 출연한 CBS 심야 토크쇼가 방영되지 못했다고 주장한 민주당 소속 제임스 탈라리코 텍사스주 하원의원(상원의원 후보자)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돕고 소외된 자를 사랑하라 했지, 교실 벽에 십계명을 붙이고 이교도를 차별하라 하지 않았다"라고.

우리를 정당별로, 인종별로, 성별로, 종교별로 갈라놓는 이들이 있다. 그래야 학교 예산을 깎고 건강보험을 파괴하며, 자신과 부유한 이들의 세금을 감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분할 통치' 아닌가라고.

이렇게 영화처럼 어느 편인지 묻고 있는 미국인들의 싸움에 탈라리코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분열은 좌와 우의 대결이 아닙니다. 위와 아래의 대결입니다... 억만장자들은 우리가 위를 쳐다보는 대신, 좌우로 서로를 쳐다보며 싸우길 원합니다."

왜 지금 미국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지고, 서로 혐오하며 죽이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ICE #TECHNOCRAT #탈라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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