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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입학식 복종 서약은 받지 말아주세요

민주시민, 민주시민 교육과는 거리가 먼 교칙(생활규정)을 중심으로 학생자치의 실태,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 문화 등을 두루 살피며 학생과 학교를 짚어보려고 한다.

곧 3월이요, 개학이다. 봄꽃 피듯 일제히 모든 초중고교에서 입학식을 '거행'할 것이다. 새로운 학교 구성원을 맞이하는 환대식이자, 통과의례의 입문 의식이 입학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학교는 신입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구성원을 '환대'할까.

안타깝지만 학교 입학식에서 환대는 없다. 교문이나 입학식장에서 '신입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거나 '입학을 축하합니다' 혹은 학교 이름을 붙여 'ㅇㅇ인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등과 같은 현수막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입학식은 '식순'에 따라 진행된다. '개회사-국민의례-애국가 제창-내빈소개-입학허가선언-신입생 선서-학교장 축사-담임소개-교가제창-폐회' 등의 차례이다. 일장기 대신 태극기, 기미가요 대신 애국가로 바뀐 것 말고는 식순이 일제강점기와 같다. 졸업식도 마찬가지다. 일제 잔재는 건재하다.

입학식 식순은 전국 모든 초·중·고교가 거의 비슷하다.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일본 학교들 역시 이와 동일한 식순으로 입학식과 졸업식을 하고 있다). 심지어 종교 기반으로 설립했다는 사립학교들은 입학식을 종교 의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신앙이 없거나 다른 신앙을 지닌 신입생들에게는 날벼락일 수 있지만 학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주 사나운 방식의 환대다.

어느 고교의 신입생 선서 장면. 신입생 모두는 오른손을 들고 '선서'로서 교장에게 다짐과 맹세를 바쳐야 한다. ⓒ 임정훈

[장면 1] '학교장 입학 허가 선언' 안 하면 입학 취소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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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사립, 초·중·고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식순은 따로 있다. 첫 번째가 '학교장 입학 허가 선언'.

내용은 아주 짧고 간명하다. 단상에 오른 학교장이 신입생들을 향해 "○○○○학년도 신입생 △△△외 00명의 □□□학교 입학을 허가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입학식에서 학교장이 입학 허가 선언을 하지 않으면, 신입생들의 입학은 불법이거나 불가능할까. 신입생들은 이미 법적 절차에 따라 혹은 시험에 합격해 해당 학교에 배정받거나 구성원으로서 자격과 권리를 갖췄다. 더욱이 의무교육 과정은 헌법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학교장은 입학식이 돼서야 생뚱맞게도 이들의 입학을 '허가'한다고 '선언'까지 하는 것일까. 학교장은 헌법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가.

[장면 2] 충성과 복종 강제하는 서약 '신입생 선서'

'학교장 입학 허가 선언'에 바로 이어지는 다음 차례가 '신입생 선서'다. 새로운 학교의 구성원이 돼 처음으로 하는 공식 행위다. 학교장이 입학을 허가했으니 신입생 모두는 오른손을 들고 '선서'로서 교장에게 다짐과 맹세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입생-새로운 구성원'으로서 공식 지위와 자격을 부여받는다.

'신입생 선서'의 내용도 학교 급별을 가리지 않고 전국이 대체로 비슷하다. 실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선서! 저희 ○○중학교 신입생 00명은 교칙을 준수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정직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0000년 0월 0일 신입생 대표 000."

"선서! 오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입학을 허가받은 저희들은 00대학교 부설 000학교 학생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교칙을 준수하며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0000년 0월 0일 00대학교 부설 000학교 신입생 대표 000."

이 밖에도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00인이 되겠"다거나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는 등의 내용을 더한 학교도 있다. "본교 3년 과정을 마치기 전에 2개 이상의 국가기능자격증을 취득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라며 1960~1970년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마이스터고도 있다.

모두 '교칙 준수'와 '학생 본분을 지켜 성실히 학교생활 하겠다'라는 내용이 '신입생 선서'의 핵심 내용이다. 학교가 정한 규칙에 따라 학교와 국가의 명예를 위해 성실히 공부하겠다는 복종 서약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양심의 자유, 신입생 개인에 대한 존엄이나 주체성, 개인의 권리 등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기이하게도 이 선서문은 신입생 대표는 물론 신입생 어느 누구도 직접 쓴 게 아니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학교 측에서 미리 준비한 것을 시키는 대로 식순에 따라 낭독할 뿐이다. 입학식에서 거행하는 '민주시민 교육'의 실상이기도 하다.

대학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난 2025년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도 신입생 대표 학생이 '우리의 다짐'이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했다고 한다. '진리 탐구와 지적 성장, 융합적 사고, 사회적 책임과 공감, 미래를 향한 용기' 등의 포부를 밝히며 이를 신입생 모두 함께 다짐하고 약속하는 집단의식이다. 아마도 입학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자신들이 이런 내용의 다짐과 약속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들이 왜 똑같은 다짐과 약속의 집단의식을 거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이들도 있지 않았을까.

입학식 선서는 물론 동일한 내용의 종이 서약서 제출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강요하는 학교들도 있다. '서약서' 혹은 '입학 등록 서약서' 같은 이름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명해 제출하도록 강제한다. 이 역시 일본 학교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요구하는 서약서는 '입학을 허가받았으므로 학교 규칙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한다'라는 내용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약(서)을 받는 행위는 일제 강점기 보통학교 때부터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를 통제하고 식민통치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통제장치로 기능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 학교에서 이를 왜 해야 하는가?

어느 학교의 신입생 선서문. '교칙 준수'와 '학생 본분을 지켜 성실히 학교생활 하겠다'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학교가 정한 규칙에 따라 학교와 국가의 명예를 위해 성실히 공부하겠다는 복종 서약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 임정훈

민주시민교육의 지향점 : 부적절하고 부당한 학교 권위 삭제

입학식에서 거행하는 '학교장 입학 허가 선언'과 '신입생 선서'는 식민 교육 통치 방식을 비판적 검토 없이 받아들인 결과다. 일제강점기 이래 한국 학교가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시민 교육의 가치와 지향에 대해 학교가 여전히 무지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때는 교육부가 앞장서서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중요한 교육활동"이라면서 '서약식'을 하라고 공문을 시행하기도 했으니 이제라도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부적절하고 부당한 학교의 권위를 삭제해야 한다. 민주시민 교육의 지향점이다.

계엄과 내란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교육 당국과 전국의 학교장에게 바란다. 당장 3월 입학식부터 '학교장 입학 허가 선언'과 '신입생 선서'라도 하지 말자. 서약 강요하지 말자. 신입생을 규칙 준수와 복종의 대상이 아닌 양심과 환대의 주체로 인정하자. 결코 어려운 일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내용 중 일부는 필자가 쓴 책 <학생자치 민주시민 교육의 마중물>을 인용했습니다.

#민주시민#민주시민교육#학생자치#입학식#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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