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질병의 예방과 건강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접촉하는 의료와 공중보건, 즉 보편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고 효과적인지를 뜻하는 1차 보건의료 접근성 및 품질(HAQ) 지수 평가에 의하면, 스웨덴은 4위이고 일본은 11위, 우리나라는 23위이다(2015년 기준, 195개 국가 대상). 특히 의료 보장 차원에서 의료 혜택의 범위와 정도는 두 국가 간에 큰 차이가 있다.
스웨덴에서 의료는 기본적으로 무상으로 제공되며, 의료비 개인 부담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훨씬 낮아 국민은 의료비에 대해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의료비의 부담은 빈부의 차이에 따라 다르지만, 약간의 진료비와 약값을 내는데, 이 금액은 연간 약 56만 원을 넘지 않는다. 외래 진료는 연간 약 19만 원. 입원은 일일 1만7000원 정도이다. 약제비는 연간 약 38만 원 정도가 자기 부담의 상한액이다. 중증 질환의 경우 때로는 수천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우리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18세 이하는 응급 의료를 제외하고 모두 무료이다. 치과도 무료이다. 돈이 많이 드는 치아 교정도 무료이다 보니 스웨덴에 오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아이의 치아 교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스웨덴에서는 상병수당도 지급된다. 질병이 들어 휴직을 하면 급여의 80%가 제공된다. 심지어 자녀가 입원해서 부모가 휴직을 해도 자녀를 돌보기 위한 수당이 지급된다.
물론 이런 혜택이 공짜로 제공되는 건 아니다. 스웨덴의 의료는 세금에 의해 지탱되는데, 세금 부담이 좀 많다. 수입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국민에게 소득세 30%가 부과된다. 간접세인 소비세도 25%에 이른다. 세금 부담은 많지만 만족도는 높다. 자신이 낸 만큼 충분히 혜택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거부감도 적다. 오히려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그 근저에는 이런 제도를 관장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스웨덴의 고령화와 노인 케어에서 우리가 배울 것들
올해 하반기 들어 이미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의 비율이 14%가 돼 본격적인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2000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중이 7%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지 17년만의 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앞으로 9년 후인 2026년에는 노인인구의 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되기까지 총 26년이 걸린 것이다. 이에 비해 스웨덴은 일찍이 1887년부터 고령화가 시작되어 2015년 초고령사회로 되기까지 127년이 걸렸다. 현재 스웨덴은 노인 케어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최상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와 더불어 늘어만 가는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 기회의 공평성과 노인 케어에 대한 문제 등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도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효율적이고도 질 높은 의료 및 요양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스웨덴의 사례는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우리나라가 참고해야 할 모범 사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구의 고령화는 만성질환의 증가에 따른 의료비 증가와 노인 케어에 대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인한 경기 침체 등으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초래하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스웨덴에서는 1980년대부터 노인 케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시도가 계속되어 1985년 스톡홀름에 정신과 의사에 의해 세계 최초의 치매 노인을 위한 케어 시설이 탄생했다. 이후 이것이 그룹 홈(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이후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등을 기초자치단체인 코뮨이 일괄하여 전개하고 관리하고 있다.
1992년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의 감소로 보건의료와 복지서비스를 통합해 하나의 행정체계로 일원화함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광역자치단체가 담당했던 노인요양 및 복지 서비스 업무를 분리하여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코뮨으로 이관했다. 그리고 각 코뮨은 독자적인 징세권을 갖고 노인 관련 업무에 대한 재정과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에델 개혁'으로 노인 케어의 대상을 65세 이상에서 80세 이상의 후기고령자로 전환하고 시설 위주에서 재가 케어로 전환하여 삶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소요 예산도 절감하도록 한 것이다. 노인이 되면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가능하면 자기가 살던 집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안심하고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제도와 서비스가 필요하다(ageing in place). 이 점에 있어서 중앙 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지역 주민에 관한 정보와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주민의 생활을 관장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노인 케어와 관련한 모든 정책은 재가 케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노인케어에서 시설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양원을 서비스 하우스라고 하며, 가능하면 집에서 모든 케어가 가능하도록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재가 케어 지원센터를 두어 주민들의 노후를 돌보고 있다. 서비스 하우스라고 하는 노인 시설에 가보면 시설에서 제공하는 가구가 아니라 집에서 평소 자기가 사용하던 가구를 가져오는 게 인상적이다. 평소 자기가 사용하던 가구는 잔존 능력 자극과 훈련에도 도움이 되고, 환자가 예전의 기억을 되살린다든가 경험을 되새기는 역할을 하며 시설 수용으로 인한 위화감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은 치매 관리에 있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올바른 치매 환자 케어를 위해 솔선수범하고 있다. 치매 노인 관리에 있어 특기할 만한 점은 왕실이 선두에 나서 치매 노인 케어에 관한 연구와 교육, 시설 운영, 각종 프로그램 개발 등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나서 치매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일찍이 실비아 왕비가 주축이 되어 관련 재단을 설립하고 치매 노인 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양질의 프로그램 보급과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실비아 왕비가 설립한 '실비아 헤멧' 재단에서는 '실비아 너스'라는 치매 전담 간호사 제도를 시행하고, 스웨덴 최고의 의과대학인 캐롤린스카 대학과 협조하여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매 전문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실비아 왕비는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로 어려움을 겪자,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생겨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치매 환자 케어를 지원하기 위한 왕립재단을 만들고, 스웨덴 최고의 인력과 노하우를 동원한 치매 관련 연구와 전문 간호 인력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게다가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 치매 시설의 운영에까지 관여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실비아 왕비는 우리나라에도 치매 관련 프로그램 보급을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다녀간 적이 있으며, 전 세계에 스웨덴의 선진 치매 관련 노하우와 교육 콘텐츠를 보급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 2008년 방한한 바 있는 스웨덴 실비아 왕비. 실비아 왕비는 치매 노인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세계 최저의 출산률과 세계 최고의 고령화 진전 국가다.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비드 콜만 교수는 이를 '코리아 신드롬'이라고 명명하고, 한국이 저출산 및 고령화로 사라지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학자는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핵폭탄보다 더 파괴력이 클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의 핵도 문제이지만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정치, 경제, 산업, 의료, 복지 등에 대한 문제의 해결도 시급한 사안으로 대대적인 개혁과 개편이 필요하다. 이 거대한 노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만성적인 불황과 대혼란에 직면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 정치의 중요성을 배워야
지금 우리 국민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녀 교육, 연금, 의료, 노후의 요양, 실업 등의 문제이다. 스웨덴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일찍이 사회 전체가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은 별로 없다. 스웨덴은 개인 성취 지향의 미국과 달리 공동체 지향의 복지선진국으로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실시하며 출산이나 실업 등에 대해 갖가지 수당을 보장하여 남녀가 평등하게 근로하며 큰 어려움 없이 자녀를 교육하고 양육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스웨덴에서 교육비는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료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언제든지 자기가 원할 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졸업 후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힌다든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스웨덴의 사회 제도 전반에 흐르는 기조는 평등이다. 스웨덴에서는 480일의 유급 육아 휴가가 인정되고 있는데, 부부가 절반씩 1년 정도 육아 휴가를 얻는 게 일반적이다. 남성의 육아 휴직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부부 평등으로 남성도 여성과 똑같이 육아와 가사에 참여한다. 항간에 '스웨디쉬 대디'란 말이 회자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합계출산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탁아소 등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무리 없이 육아에 임할 수 있다. 무조건 출산을 장려하기보다 이런 제도를 갖추면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반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료 분야에서도 선진국의 의료 관련 제도나 서비스 체계를 참고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일본을 통해 많은 부분을 도입하고 참고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도 급격한 고령화와 더불어 급증하는 의료비 및 보험 재정의 고갈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민간 위주의 서비스 공급 체계에도 많은 모순점이 생기고 있다. 지금의 체제로는 대량의 의료난민과 재활난민이 생기리라는 걱정도 있다. 일본의 이런 아픈 한계는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급증하는 고령화와 더불어 우리나라도 전면적인 의료전달 체계의 개편과 수가 제도의 손질이 불가피하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국민은 질 높은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으며, 지금의 체제로 국민이 만족할 만하고 효율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제도와 서비스의 체계는 다르지만 각종 지표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스웨덴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법률과 제도를 만드는 정당 정치의 투명성과 정치가에 대한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2016년도 국가 청렴도 순위에서 스웨덴의 국가 청렴도는 4위이고 우리나라는 52위였다. 세금을 더 내려고 해도 정당 정치와 정치인을 믿지 못해서 그 혜택이 돌아올까 국민이 걱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증세를 통한 복지국가는 성립될 수 없다.
스웨덴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는 공무 수행에 대해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국회의원은 정책을 입안하는 데 단 한 사람의 보좌관도 없이 의정 활동을 혼자서 수행한다. 그렇다고 스웨덴의 국회의원이 다른 나라의 국회의원보다 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특권도 없다. 그저 정치가들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책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특권 없이 그 힘든 일들을 감당해 나간다.
물론 스웨덴이라고 해서 모든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교육비가 무료라고는 해도 교사의 질에 큰 문제가 있다든가, 이혼율이 높기 때문에 모자 가정도 많고,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은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1992년에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로 시작된 의료 개혁(에델 개혁)의 내용은 비용의 효율화를 목표로 한 민영화인데, 이 때문에 오히려 지출이 더 늘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스웨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이다. 고복지-고부담과 함께 경제의 고성장이 양립하는 체제로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룬'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나라로 우뚝 서 있다. 그리고 의료 분야에서도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눈부신 성과와 세련된 다양한 의료의 질 개선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국제적 지표에서 드러난 높은 성과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앞으로 문재인 케어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 참고할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남상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유한대학교 U-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스웨덴 룬드대학 보건과학연구소 초빙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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