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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북 미사일로 사우디 맹폭격 sbs뉴스 분석종합

예멘, 북 미사일로 사우디 맹폭격 sbs뉴스 분석종합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8/04 [22: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예멘에서 사우디를 향해 북의 스커드미사일(화성 6호)를 발사하는 모습     © 자주시보

 

▲ 스커드 미사일 한 발이 사우디에 떨어지자 거대한 화염과 함께 인근 땅이 완전히 요동을 치고 있다. 축구장 몇 개 넓이는 바로 초토화될 위력이었다.  북을 폄하하는 보수진영 전문가들은 날아다니는 전봇대니 뭐니 하더니, 실제로는 북의 미사일이 이렇게 위력적이고 무서운 무기였던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이런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든지 전쟁은 막아야 한다.    © 자주시보

 

▲ 예멘의 스커드와 북의 스커드 미사일은 같은 미사일이라고 보도하는 sbs 뉴스     © 자주시보

 

▲ 북에 이런 스커드 미사일이 수천, 수만발이 계열별로 지하에 차곡차곡 생산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해 시험발사에만 100여발을 동원할 정도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전쟁이 나면 북의 방사포와 이런 스커드 미사일로 남녘 전역이 불바다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     © 자주시보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105489

 

3일 sbs 8시 뉴스에서 예멘에서 사우디에 보복공격을 가한 무기가 바로 북에서 수입한 스커드미사일(화성6호로 추정)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사우디에서 예멘 반군 거점에 폭격을 가해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자 예멘 반군이 20여발의 북에서 수입한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하여 사우디에 보복타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단체 사람들이 그 날아다니는 전봇대에 불과하다는 그 미사일이다. 특히 지난해 북이 이런 종류의 미사일 100여발을 낮과 밤, 동과 서 해안과 내륙 등지에서 연속 발사하여 그 성능을 시험한 바 있는데 이번에 sbs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발사 장면은 물론 지축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는 명중장면까지 소개하여 충격을 더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엠디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가동하여 40%정도 막아냈다고 밝혔다고 하지만 나머지 60%는 사우디의 목표물을 명중한 것이기에 사우디와 엠디 방어망을 수출했던 미국이 받았을 충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이 스커드 미사일에는 전술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도 장착할 수 있는 것이기에 다 막고 단 한발만 막지 못해도 그 피해는 실로 어머어마할 수밖에 없다.

 

이번 동영상은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받은 도시의 주민들이 촬영하여 공개한 것으로 보였다. 스마트폰 등 이런 촬영장비가 널리 확산되면서 이젠 미국도 언론 통제를 통해 자신들 무기의 약점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지난 6월 22일 본지에서 보도했던 “예멘 미사일공격으로 사우디공군기지 점령사건의 진실”이라 기사의 기본자료였던 독립신문 베테랑투데이의 보도가 정확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6월 17일 베테랑투데이에서는 당시 국제법적으로 비법화되어 있는 무기(이스라엘의 전술핵무기로 추정)로 예멘 반군 기지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사우디 칼리드 공군기지를 스커드탄도미사일과 사케르 순항미사일을 동원하여 정밀폭격을 가해 미국 엠디망을 무력화시키고 사우디 공군사령관과 그 휘하 지휘관들이 회의하고 있던 장소를 직격하여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 20명을 포함한 83명의 장교와 병사들이 즉사하고 35명이 체포된 바 있다는 보도를 했었다. 이때 사우디 공군사령관도 희생되었다. 

 

 

이번 sbs 보도를 통해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었음이 발사되는 스커드 미사일과 목표물에 명중하는 미사일 화염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2157

 

미국의 무기 우위 신화가 세계 곳곳에서 맥없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이렇게 똑똑히 확인하게 된다.

러시아 미그-29 전투기가 시리아에서 친미반군과의 전투에서 초저공 비행을 하며 맹활략을 하고 있는 영상도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미군 전투기들은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저공 공격 장면을 담은 영상이 거의 없다. 대부분 고공에서 전자장비를 가동하여 원거리 폭격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재밍에 의해 바로 무력화될 수 있으며 자칫하다가는 통신을 주고 받는 행위가 자신의 위치를 타마라 레이더와 같은 상대 요격미사일 시스템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되어 치명적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최근 이라크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수입하기로 했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를 대거 도입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도 미국 무기의 인기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고 북과 러시아 중국의 무기들이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미국은 군인의 용감성으로 전쟁을 하는 나라가 아니라 첨단 무기로 전쟁을 하는 나라이다. 그 첨단무기가 무력화된다는 것은 특히, 미사일이나 전투기 방어망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도 이제 때리면 무조건 얻어터지는 약체가 되었다는 말과 같다. 그것도 북이 값싸게 전 세계에 뿌리 스커드 초기 모델 미사일도 40%밖에 막지 못했다면 말 다한 것이다. 미국은 이제 끝장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외교력도, 기축통화 달러의 경쟁력도 결국 군사력에서 나온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미국의 첨단 무기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면 외교력도 경제력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우리 정부와 당국자들은 이런 세계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미국 무기체계로 떡칠을 한 상태에서 북과 대화는 하지 않고 그저 흡수통일, 원점 타격만 노래할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과 북의 시급한 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북이라고 미국 무기가 별거 아님은 왜 모르겠는가. 이젠 정말 북미 간에 긴장이 격화되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으로 치달아가 가고 있다. 북이 연일 내뱉는 호전전이 말이 결코 허풍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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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해킹직원 정말 죽었나?, 한겨레tv의 강력한 의혹제기

국정원 해킹직원 정말 죽었나?, 한겨레tv의 강력한 의혹제기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8/04 [12: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김어주의 파파이스 61회]

 

▲ 국정원 임모과장 부인이 실종신고와 취소를 거듭한 통화내역     © 자주시보
▲ 국정원 임모 과장 부인 통화내역     © 자주시보

 

▲ 경찰의 녹색번호판이 희색으로 변하는 실험 사진의 콘트라스를 낮춰보니 파란색만 선명했다. 이는 조작없이 불가능한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찰은 무엇때문에 이런 조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가.     © 자주시보

 

방송 바로가기


http://www.hanitv.com/?mid=tv&category=52596

 

7월 31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김어준의 파파이스#61] 국정원 자살사건의 미스테리#2”에서 김어준 씨는 국정원 해킹사건 관련 자살한 것으로 보도된 임모과장이 사실은 자살을 가장한 연극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방송 앞부분에서 김어준 씨는 국정원 직원의 마티즈 차량 녹색 번호판이 하얗게 보이는 경찰 실험을 정밀 분석한 결과 조작의 흔적이 역력하다면서 굳이 이렇게 애써 하얗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지 말고 근처 다른 화질 좋은 감시카메라의 영상을 공개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녹색이 하얗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몸부림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정확하게 재현 실험을 하려면 모든 번호판이 흰색이로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 경찰이 공개한 흰색 표지판에 검은색 글씨 그리고 범퍼가드가 보이지 않는 영상이 나올 수 있는지 실험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경찰이 공개한 영상은 번호판과 글씨가 모두 다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었고 심지어 버스정류장의 녹색마저도 흰색으로 변색되어 나타는 것이었다. 다만 범퍼보호대는 또 선명히 보였다. 그래서 녹색을 흰색으로 의도적으로 보이게 조작한 실험이 아닌가 누구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이나 국정원에서 뭘 하나 공개하면 할수록 의혹이 더욱 늘어만 가는 형국이다.

 

이어 방송에서 김어준 씨는 지난 회에서는 자살극 유도를 통한 타살설 가능성을 지적했었는데 1주일 동안 추가로 확보한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해킹사건을 덮고 가기 위한 꼬리자르기식 타살이었다면 가족들이 지금처럼 그렇게 국정원에 협조적으로 나올 수가 없고 임모 과장의 부인의 신고 과정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이 아주 많아 이젠 죽은 노숙자 등의 시신을 가져다 놓고 벌인 연극이 아닌가 강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방송에서는 정청래 국회의원이 나와 직접 담당 경찰서를 방문하여 확보한 자료 등을 공개하였으며 그런 자료를 참조하여 김어준 씨는 이런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핵심 근거는 임모 과장 부인이 전화로도 신고할 수 있고 자신 집 3분 거리에 경찰서가 있는데 굳이 더 먼 용인 동백파출소에까지 직접 가서 실종신고를 했다는 점, 임모 과장은 국정원 직원이라 신분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기에 40대 무직 혹은 회사원 실종으로 신고했을 텐데 가출 5시간만에 실종신고를 했다고 해서 소방서에서 바로 출동한 점, 그 출동한 소방서가 담당 용인소방서가 아니라 최고 상급기관인 경기도 소방본부에서 직접 출동했다는 점, 사건현장에 소방관들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무전기를 끄고 기록에 남지 않는 휴대전화(소방관들 은어로 거미줄)로 계속 통화한 점, 국정원의 MDM시스템으로 국정원 직원들의 모든 휴대전화는 실시간 위치추적이 가능하기에 자살 사건 당시 임모 과장의 휴대전화가 켜져 있어 국정원이 얼마든지 직접 가서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실제 국정원 요원이 현장에 출동했는데도 부인에게 시켜 실종신고를 하게 하고 소방서를 출동시키고 난리 법석을 피운 점 등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점들이 너무나 많은 사건이라는 것이 김어준 씨의 지적이었다.

 

특히 결정적으로는 임모 과장 부인이 경찰 112에 실종신고를 한지 3분만에 신고 취소 전화를  하고 다시 약 5분 뒤에 “경찰이 취소접수가 안 되었다고 한다. 꼭 취소해 달라”며 재차 신고 취소 전화를 112에 걸었다. 취소 접수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려주는 경찰은 없다. 아마 실종신고를 하라고 부인에게 지시했던 국정원을 부인은 경찰이라고 지칭했을 것이다.


그 후 약 15분 뒤에 부인은 다시 112에 전화를 해서 실종신고를 또 다시 접수하면서 위치추적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런 부인의 행동은 납득이 되지 않는 비정상이다. 특히 신고 접수를 국정원 본부에서 부인에게 지시했다고 이미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납득이 안 되는 행동도 국정원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어준 씨는 소방관들과 달리 경찰들은 현장에서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얼굴 조회가 가능한 장비를 가지고 있어서 소방관보다 먼저 오면 안 될 상황이 아니었겠는가 생각이 든다며 바로 차량의 시신과 실제 임모 과장이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국정원 직접 임모 과장이 자살하면서 삭제한 50여건의 문서를 복원했더니 국내사찰은 없고 대북사찰과 장비 실험 가동 등 전혀 문제가 없는 내용이었다고 최근 밝혔는데 그렇게 아무 문제가 없는 활동을 해놓고 왜 그것을 삭제하고 또 자살까지 하겠냐며 국정원 자체의 발표만 봐도 이번 자살 사건은 도대체 단 한 구석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김어준 씨는 강조하였다.

 

사실 임모 과장 장례식도 완전히 비공개로 진행했다. 발인 당시 언론에 공개된 영상 중에서 통곡하는 가족은 임모 과장 어머니가 유일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직접 보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자살이라고 믿고서 그렇게 통곡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후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알리면 아들에 대한 보호본능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는 무덤까지 그 비밀을 가져갈 것은 자명하다.


국정원 조직운영을 놓고 봐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요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기에 김어준 씨의 추론이 과도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본지에서도 사건 초기부터 자살 위장설을 강하게 의심했었다. 국정원 직원의 얼굴은 비밀이기 때문에 절대로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 일부가 직접 시신 사진을 봤다고 하지만 그게 실제 임모 과장인지 무슨 수로 확인한단 말인가. 모든 게 다 비밀인 국정원 요원인데...

 

자살 위장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 국정원은 심각한 사기 저하에 빠질 것이다. 심리적 압박을 가해 자살을 유도했건, 자살극 연출로 타살을 했건 국정원 직원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런 조직에 몸을 바쳐 일하고 싶겠는가. 국가의 비밀을 다루는 비밀요원들이 조직을 믿지 못하는 순간 콩가루가 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모사드 등 비밀정보기관에서는 요원들의 안전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며 만약 자국 요원이 테러라도 당하면 끝끝내 찾아내어 100배로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정원이 설마 해킹 사건을 덮기 위해 직원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겠는가 싶다. 아무래도 자살극을 연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한겨레TV의 추리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대선 국정원 댓글 작업을 했던 여성 직원문제만 봐도 국정원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도 결국 한 국정원 간부의 자살기도로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못했고 대부분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난 것만 봐도 국정원이 명백하게 잘못한 직원들까지 보호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만 죽음으로 낸 몬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 RCS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운영한 나라들은 모두 독재억압 저질국들이라고 지적하는 이번 사건을 폭로한 외국의 전문가     © 자주시보

 

물론 범법행위를 한 직원까지 무조건 감싸는 것은 옳지 않다. 국정원이 직원들을 보호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런 범죄행위까지 감싸고 돈다면 국법질서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해킹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극악한 독재정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 이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대부분의 나라가 독재정치로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는 저질 나라들이었다. 그런 나라에 한국이 끼었다는 점에서 국정원은 정말 쪽팔리는 짓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젠 거듭나야 할 것이다. 정말 요즘 우리 국정원이 하는 일을 보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다.


아래 직원들을 희생양 삼아서 국면전환이나 꾀할 생각을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국정원이 아예 정치에서 손을 떼고 진정한 국가 안보 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정원 고위간부들이 결단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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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국정교과서’ 배경은 유신

박근혜와 김무성이 원하는 ‘국정교과서’ 이런 겁니까?
 
 
 
임병도 | 2015-08-04 09:03:3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미국 방문 중에 교민들을 만나 ‘한국 진보좌파 세력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좌파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청와대에서도 국정교과서 추진을 당.정.청 회동에서도 다루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박근혜 정권 내에서 국정교과서가 나올 듯합니다.  
 
사실 국정교과서라는 말은 별도로 없습니다. 1종 , 2종, 7종 등의 호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가 1종, 즉 ‘국정교과서’가 된 것은 1974년 박정희 정권 때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가 국정으로 바뀐다는 문교부 기사. 출처:동아일보

1973년 문교부는 검인정으로 되어 있는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1974년부터 단일책, 즉 국정교과서로 발행한다고 발표합니다. 1974년 국정교과서로 바뀌기 전에는 중학교 11종, 고등학교 11종의 국사 교과서가 존재했었습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총 22종의 다양한 국사 교과서를 딱 하나만 남기고 없앤 것입니다.


“박정희, ‘국적있는 교육’을 명령하다”

박정희가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꾼 배경에는 유신이 있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며, ‘국적있는 교육’을 통해 10월 유신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1972년 3월 24일 대구에서는 박정희와 국무위원, 전국 77개 대학 총장, 전문학교장, 중고등학교 교장,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장 및 문교부 공무원 등이 참가하는 ‘전국교육자대회’가 열렸습니다.

박정희를 위해 박수치는 연습까지 마친 교사와 교장, 총장 등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박정희는 ‘국적있는 교육’을 ‘명령’했습니다. 도대체 ‘국적있는 교육’이 무엇이었는지, 당시 전국교육자대회의 결의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국교육자대회 결의문>

① 안보교육체제 확립
우리는 국가의 안전과 겨레의 생존을 지키기 위하여 총력안보체제를 확립해야 할 국가적 요청에 교육의 전기능을 집중시킨다.

② 새마을운동 추진
우리는 자립과 번영을 위한 거족적 노력에 보조를 맞추어 방방곡곡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마을 운동에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십만 교육자와 팔백만 학생이 다 함께 전진한다.

③ 국민총화 저해요인의 제거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불신과 부조리를 제거하는데에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것이며, 학풍을 바로잡아, 나라가 요청하는 인재를 기르는데 우리의 정성과 열정을 다 바친다.

④교육풍토 개선
교육자는 겨레의 스승으로서의 품위와 자질과 권위를 스스로 바로 세워 교권을 확립하고, 학교와 가정과 사회의 일치 협조로써 학원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충만하도록 교육풍토개선에 과감한 노력을 펴나간다.

 

전국의 교사와 교장, 총장, 교육부 관계자 등 8천 명이 모여 낸 결의문을 보면, 무슨 반공단체의 결의문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마치 북한 인민 전당대회에 나오는 결의문과 흡사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결의문을 통해 문교부는 1974년 장학목표를 <국적있는 교육과 생산적인 교육을 추진하여, 유신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한국인 육성>으로 세웠습니다. 

박정희가 ‘국적있는 교육’을 명령한 결과 나온 것이 반공 교육과 새마을 운동의 확산, 그리고 비판 기능을 제거한 유신 과업 수행을 위한 기계적 인재 양성이었습니다.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국정교과서’

박정희가 명령한 ‘국적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1974년 나온 국사교과서는 한 마디로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교과서였습니다.

박정희가 만든 국정교과서를 보면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표기했습니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5.16쿠데타를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하여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하여 뜻있는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4.19의거는 독재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혁명’이었고, 5.16쿠데타는 ‘혼란과 공산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혁명’이었다고 주장하며, 4.19의거와 5.16쿠데타를 동일한 혁명이라고 서술했습니다.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했으며, ‘한국 민주주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국정교과서는 이처럼 5.16쿠데타와 10월 유신을 찬양하는 홍보지에 불과했습니다.

박정희가 만든 국정교과서는 단순한 쿠데타 찬양에 그치지 않고, 아예 역사를 왜곡해버렸습니다.5.16쿠데타에 나온 혁명공약 6조를 보면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79년 국사 교과서를 보면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로 바뀌었습니다. 
박정희의 유신 국정교과서는 박정희의 장기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역사적 증거가 있는데도 그 증거를 왜곡한 것입니다. 이것이 박정희가 22종의 국사 교과서를 없애고, 국정교과서를 만든 목적이었습니다.


‘박근혜와 김무성이 원하는 국정교과서의 모습’

김무성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국정교과서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과거 물의를 일으켰던 교학사 교과서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① 교묘한 역사서술
 
교학사 교과서에서는 ‘5.16’에 대해 ‘5.16 군사 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라고 명시했습니다.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후 문장을 보면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은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고 서술했습니다.

‘인정’, ‘지지’, ‘인정’이라는 단어를 통해 비록 5.16 군사쿠데타지만 인정받은 혁명처럼 착각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육사 생도 지지 시위를 누가 주도했습니까? 전두환입니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쿠데타 진압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② 불리한 역사 삭제
 
교학사 교과서의 ‘5.16혁명 공약’ 자료를 보면 다섯 가지의 혁명 공약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혁명 공약은 여섯 가지입니다. 왜 여섯 번째를 삭제했을까요? 이유는 앞서 말한 박정희 시대의 ‘국정교과서’와 똑같은 이유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한다.’ 스스로 말해 놓고 공약을 파기한 사람이 박정희와 쿠데타 세력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박정희를 볼까 두려웠나 봅니다.

③ 친일파 미화
 
교학사 교과서를 보면 친일파 청산에 대한 부분은 불과 한 단락에 불과합니다. 반민특위 해체 과정도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 세력의 소탕에 경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 해산에 ‘반공’을 이용했다고 표현했어야 합니다.

미군정의 귀속 재산 불하를 ‘친일파 청산의 과제’ 옆에 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친일파들이 일본인들이 세운 공장이나 토지를 불하받아 ‘재벌과 부자’의 기틀이 됐던 상황을 미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농지 개혁의 출발점도 될 수 있지만, 친일파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이유도 됐습니다.


편리를 위해 교육을 말살하겠다는 ‘국정교과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움직임에 많은 시민, 교사들이 걱정과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걱정은 이미 1974년 박정희 정권의 국정교과서 정책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각계이견, 출처:동아일보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서도 국정교과서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계속 있었습니다. 특히 신문에서조차 국정교과서가 문제라는 시각과 비판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국사의 획일에서 오는 (대학입학시험 혼란방지) 이점은 있으나, 정확한 지식의 전달이란 점에서 무모, 국정교과서가 가장 좋은 책이란 보장 없어’ 
‘사고의 폭을 넓혀주고 융통성을 길러주는 것이 고등학교 교육, 국정교과서는 암기교육을 더욱 강조하는 폐단도 초래’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역사연구의 중요성이 사건의 단순한 기술보다 올바른 이해와 해석에 있기 때문, 국정교과서는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 찾는 위험한 발상’

1974년 교육 전문가들이 내세운 국정교과서의 장점은 ‘대학입학시험’의 편리성입니다. 그러나 교육적인 측면에 의한 다양성과 사고력 배양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국정교과서를 비판했습니다.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은 JTBC ‘뉴스 9’에 출연하여, 국정교과서에 대해 ‘역사교과서가 하나로 통일되어 사교육이 줄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염동열 의원의 주장은 마치 1974년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대입시험의 편리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편리성을 위해 정작 중요한 교육은 배제한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1974년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찬양하기 위해 유신형 인간 배양을 목적으로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었습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미화하기 위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특정인을 위해 왜곡되거나 미화될 수 없습니다. 
 
‘역사는 법률로 밝히고 법률은 역사로 밝혀야 할 것이다.’ (클레망 몽테스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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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 가면 10분만에 혈압이 떨어진다

 

 

2015. 08. 03
조회수 1872 추천수 0
 

영국 플리머스대 연구진 국립해양수족관서 실험, 수축기 혈압 5㎜Hg 감소

숲과 마찬가지 치유효과 밝혀져…치과 대기실, 도시 사무실 등서 응용 기대

 

03948115_R_0.jpg» 수족관은 산림과 달리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을 체험하는 것이지만 심리적, 생리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부산아쿠아리엄 모습. 사진=박미향 기자

 

숲 속을 거닐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숲은 치유공간이다. 나무가 풍기는 피톤치드를 맡고 시냇물이 흐르고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속 자연은 어떨까. 물고기의 화려한 색채와 약동하는 모습, 수초가 하늘거리는 맑은 물을 바라보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영국 플리머스 대 연구자들은 이런 궁금증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이곳에 있는 영국 국립해양수족관이 재단장을 하면서 초대형 수족관의 내용물을 전면 교체하게 된 것이다.
 
연구자들이 수족관에 물과 장식물만 채웠을 때와 해양생물을 절반쯤 넣었을 때, 그리고 모두 넣었을 때 관람객이 보인 심리적, 생리적 반응을 비교 분석한 결과가 과학저널 <환경과 행동> 최근호에 실렸다.

 

Purple -1280px-Plymouth_aquarium_shark.jpg» 영국 플리머스에 있는 국립해양수족관 내부 모습. 이 수족관의 전면개수를 이용한 실험이 이뤄졌다. 사진=Purple,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수족관은 길이 14m, 폭과 높이가 각 6m인 초대형인데, 바닷물을 넣어 3주일 동안 안정화시킨 뒤 1차로 물고기 10종 80마리를 넣고 이후 4주일에 걸쳐 19종 138마리로 해양생물을 늘렸다. 연구자들은 빈 수족관과 단계별로 풍부해지는 내용물이 탐방객에게 어떤 효과를 끼치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통제된 실험 장치를 얻은 셈이다.
 
흥미롭게도 해양생물을 집어넣기 전부터 이를 바라본 탐방객에게 심리적·생리적 효과가 일부 나타났다. 물을 채운 수족관에는 자연광을 비추고 인공 해초와 산호에 물살을 일으키는 상태였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족관을 본 탐방객의 생리적 변화는 두드러졌다. 혈압과 심장박동이 현저히 떨어졌다.
 
수축기 혈압이 평균 115.71㎜Hg이던 탐방객의 혈압은 물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수족관을 바라본 10분 뒤 113.54㎜Hg로 떨어졌다. 물고기가 반쯤 찬 수족관을 본 탐방객은 평균 114.21㎜Hg에서 109.67㎜Hg로 하락폭이 훨씬 컸다.
 
물고기가 완전히 찬 뒤 수족관에서는 혈압은 114.50㎜Hg에서 111.67㎜Hg로 떨어졌다. 하락폭은 물고기가 덜 찼을 때보다 작았다. 연구자들은 물고기를 모두 채웠을 때 날씨가 궂고 관람객이 붐볐던 것이 하락폭을 줄인 이유였을 것으로 보았다.

 

04816725_R_0.JPG» 국립생태원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의 하나가 수족관이다. 수족관은 심리적 복지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에 대한 가치를 인식해 보전활동으로 이끌도록 하기도 한다. 사진은 살아있는 산호를 기르는 생태 순환형 수조. 사진=조홍섭 기자

 
눈길을 끄는 것은 수족관을 바라보고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기까지의 시간이 대개 5분이면 충분했다는 사실이다. 탐방객의 분당 심장박동수는 5분 만에 물고기를 절반 채운 수족관에서 77회에서 71회로, 물고기를 모두 채운 수족관에서 82회에서 77회로 줄어들었다.
 
연구자들은 “수족관은 자연과의 접촉 기회와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기회를 준다. 가정의 소규모 수족관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이번 연구로 자연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 인공적 자연 체험에서도 심리적, 생리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라며 치과 대기실 등 보건기관과 도시의 사무실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eborah Cracknell et. al., Psychological Well-Being: A Preliminary Examination of Dose.Response Effects in an Aquarium Setting, Environment and Behavior, DOI: 10.1177/0013916515597512,http://eab.sagepub.com/content/early/2015/07/27/0013916515597512.abstract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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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정보사도 감청?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8/04 11:54
  • 수정일
    2015/08/04 11: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국방부 자문위원 부인회사 통해 해킹 기술 문의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4 [05: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JTBC 보도화면 갈무리



 

국정원 불법 감청 의혹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군 정보사 출신으로 현국방부 자문위원인 한 아무개씨가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에 해킹 기술과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JTBC는 지난 3일 단독보도를 통해 취재 결과 국군 정보사 출신의 국방부 자문위원도 해킹 기술과 관련해 문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JTBC가 입수한 국내 회사의 한 아무개 씨가 이탈리아 해킹팀에 보낸 메일에는
"우리는 한국 정부와 연관되어 있고 당신의 상품들과 유사한 기술들을 알아보는 역할을 한다"며 "한국 정부는 제품 확인 과정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돼 있다.

 

이 방송이 확인 결과 한씨는 국군 정보사에서 여단장을 지낸 사이버 전문가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JTBC 취재 기자는 해킹팀과 교환한 이메일에 나오는 회사명을 추적해 한 씨의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간판 조차 없는 회사는 대표가 한 아무개씨 부인으로 돼 있고, 나머지 직원 두 명도 한 씨가 현재 재직중인 한 대학을 졸업한 제자였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그러면서 국정원이 나나테크를 통해 감청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것처럼 한씨가 이름만 있는 회사를 세워 국방부의 대리인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해킹 관련 문의를 했던 한 씨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국방부와 상관없다고 했고, 
국방부는 국방부와 무관하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씨가 본인 스스로 정부기관과 연관이 있다고 하면서 접근했고 현 국방부 자문위원이라는 점에서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예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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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회원 목숨 건 단식투쟁중! ... 묵비단식9일째, 갑상선암투병중에 생명 위험한 상황

  • [사회] 김혜영회원 목숨 건 단식투쟁중! ... 묵비단식9일째, 갑상선암투병중에 생명 위험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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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이 현재 사투중이다. 김혜영회원은 오늘로 묵비단식9일째를 맞고있다. 헌데 월요일 서울구치로소 송치될 예정이었는데 보수대(서울시경보안수사대)가 수사를 2일 더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오늘도 10시부터 보수대에서 남대문서에 유치된 김혜영회원을 옥인동대공분실로 끌고가 강압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김혜영회원은 2번이나 갑상선암수술을 받았으며 매일매일 약을 먹지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건강상태다. 헌데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원칙적으로 투약도 중지하지않으면 안됐다. 그래선지 지금 심각한 구토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갑상선호르몬이 민감하게 작용하는 심장에 이상이 생길 지 모르는 위급한 상태다. 
     
    이런데 보수대는 현재 체포영장이 떨어진 다른 동료들을 잡겠다며 유일하게 수사중인 김혜영회원을 무리하게 강압수사를 벌이려 하고 있다. 원래는 보수대도 김혜영회원의 건강으로 자칫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까봐 우려돼 월요일에는 송치시키려 했다. 허나 지금은 모험을 해서라도 추가수사를 해야겠다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발상으로 김혜영회원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갑상선환자와 장기단식자에게 가장 위험한 고도의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현재 김혜영회원은 과거 전두환군사파쇼독재에 항거하며 옥중에서 40일단식투쟁을 벌인 고 강희남범민련의장의 결사항전의 정신을 따라 끝까지 묵비단식투쟁을 전개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김혜영회원은 보수대의 잔인한 강압수사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에 코리아연대측이 1) 오늘 정오즈음 해서 옥인동대공분실앞에서 강력한 규탄집회 2) 경찰청·서울시경·옥인동대공분실·남대문서앞 동시다발1인시위(남대문서는 철야1인시위) 3) 항의방문단 조직 4) 시민들의 항의전화조직 5) 규탄성명 6) SNS홍보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수대의 야수적인 만행을 폭로규탄하고 김혜영회원의 생명을 구원하는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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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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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운동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영화 <암살>, 보고 즐기는 것은 자유지만…
 
김갑수 | 2015-08-03 14:04: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영화 <암살>을 오락으로 즐기거나 영화적 리얼리즘에 공감하는 것에 유감을 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 영화의 픽션을 역사적 사실인 양 거론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사람 눈에는 이 영화가 재미있거나 진지해 보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므로(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영화로 인해 우리의 독립운동과 무장항쟁이 왜곡되어 알려지는 것 같아 노파심에서 이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 글에서 나는 우리의 객관적인 독립운동사를 최소한으로 요약, 평가해보려 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크게 셋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상해에서 중경에 이르는 임시정부 중심 세력, 광동봉기에서 대장정 그리고 연안에 이르렀던 중국인민혁명 참여 세력, 마지막으로 (오는 8월 8일부터 시작되는 민갑 답사 노정과 거의 겹치는) 간도 즉 동북만 반일무장투쟁세력이다.

이 셋을 편의상 각각 상해파, 관내파, 동북파라고 호칭한다. 상해파는 광복군, 관내파는 조선의용군, 동북파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만들었다. 요즘 북에서 말하는 ‘백두산 혈통’은 바로 이 동북파를 가리킨다.

다만 이렇게 단순히 3분법으로만 논의하다 보면, 국내 항일 의병의 뚜렷한 지도자였던 왕산 허위 선생과 동북에 가서 미리 투쟁했던 이상설 선생과 안중근 의사와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 홍범도 그리고 김좌진과 이범석 등을 놓칠 수가 있고, 이른바 북경파로서 무정부주의와 관련되는 이회영. 신채호 선생 등을 또한 놓칠 수가 있다.

그리고 양세봉 장군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 조선혁명군 지도자로서 ‘군신’ 칭호를 얻은 탁월한 무장투쟁가였다. 양세봉 장군은 이념을 배격했다. 어느 면에서 그는 가장 순수한 무장투쟁가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유일하게 남과 북 국가묘지에 동시 안장되어 있다.

상해파의 최대 공로자는 예관 신규식과 백범 김구이다. 신규식은 상해임시정부를 만든 분이고, 김구는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킨 분이다. 제국주의 군부에 인상 깊은 테러 공격을 감행한 윤봉길의 상해홍구공원 거사는 백범 김구의 작품이었다. 참고로 연길 동북항일연군기념관에는 상해파 중에서는 유일하게 신규식 선생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상해파의 약점은 무장투쟁보다 외교노선에 치중했던 점이다. 또한 무장투쟁 역량이 없다 보니 간헐적으로 테러공격을 수단화하기도 했다. 신규식 선생은 국내에서는 의병투쟁을 했고 중국에 가서 손문혁명대에 투신하여 무장투쟁을 했는데 임시정부를 창업한 이후 임시정부의 분열에 항변하는 단식 끝에 작고했다.

한편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윤봉길 거사를 중국군 몇 개 사단의 공로 이상으로 치하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김구에게 “일본군 장군을 하나 죽이면 또 하나의 일본군 장군이 뒤를 이을 뿐”이라며 테러공격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해파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아무튼 이들은 8.15 이후 국내로 돌아가, 정확히 말하면 이남으로 가서 또 다른 시련에 봉착한다. 여러분은 한독당, 즉 한국독립당을 알 것이다. 그들을 궤멸시킨 세력이 누구인가? 미군정과 친미 이승만 세력이었고 여기에 친일지주세력 한민당이 야합했다. 이승만이 만든 자유당은 오늘날 새누리당의 전신, 또 다른 친일세력 한민당은 오늘날 민주당 즉 새정치연합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비극이라면, 민족주의 독립운동 세력이었던 한독당이 망해버린 데에 있다. 반대로 말해서 친일세력이 득세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민국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극이자 모순이다. 한독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는 8.15에서 불과 4년도 안 되어 안두희의 흉탄에 숨졌다. 그런데 안두희의 배후는 누구였나? 김구 암살은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과 한민당의 합작이었다.

독립운동 세력의 제2열이라고 할 수 있는 관내파와 제3열인 동북파는 8·15 이후 북으로 귀환한다. 관내파에는 오성륜과 박영과 김산 등이 있었다. 박영은 광저우에서 만난 김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선혁명이 완성되기 전까지 내게 평화는 단지 고통일 뿐이다.”

김산의 본명은 장지락으로서 흥미로운 책 <아리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밖에 중국인민혁명군가를 작곡한 음악가 정율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욱 본격적인 관내파로서 조선의용군과 관련되는 양림과 무정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중국혁명군 내에서도 크게 인정받은 우수한 혁명 열사들이었다. 특히 무정은 중국 인민혁명군 전체의 ‘포병대장’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 약산 김원봉을 추가할 수가 있다. 이들은 이북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작업에 참여했다가 몇 년 후 김일성에 의해 정리된다.

독립운동의 제3열, 3열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하며 체계적이고 자주적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한 세력이다. 리홍광, 이동광, 허형식, 최용건, 김책, 김일성, 최현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살아남은 최용건 김책 김일성 최현 등은 조선인민공화국의 건국 핵심이 되었다.

이들은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군과 합작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조선인들의 자질이 워낙 출중하여 따로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호칭이 부여되기도 했다. 김일성이 지휘한 항일유격전 중에서 보천보 전투와 간삼봉 전투는 특히 유명하다. 김일성은 친화력과 리더십이 있어서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모두 인정받았다.

최용건은 김일성보다 13살, 김책은 김일성보다 9살이나 많았지만 러시아 령 하바로프스크에 합류한 이후부터 줄곧 그를 지도자로 받들며 협조했다. 이것은 중국 인민혁명 과정에서 주덕과 주은래가 후임 마오쩌둥을 끝까지 보위한 경우와 비슷하다. 김일성이 첫 부인 김정숙과 결혼한 것도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동북 반일항쟁파의 강점과 미덕은 첫째 무장투쟁의 방식이었다는 점, 이것은 독립운동의 본격성을 의미한다. 둘째 유격투쟁 방식이었다는 점, 이는 즉 뛰어난 전략 전술성을 의미한다, 셋째 투쟁 과정의 높은 도덕성에 있다. 그들은 전혀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극한상황,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약탈, 테러, 단식, 이밖에 비인간적인 기만행위 등을 삼갔다.

1958년 북의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민일보>는 아래 글을 사설로 내놓았다.

 

중국 인민은 북벌의 전화(戰火) 속에서, 장정(長征)의 길에서, 항일의 간고한 세월 속에서, 장개석의 통치를 뒤엎는 승리의 진군에서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중국인민과 공동투쟁을 했으며, 자기 생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중국혁명과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을 원조한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1958. 11. 22자 인민일보)

 

그렇다. 신해혁명의 혁혁한 조력자 신규식 선생, 광동봉기에 참여한 오성륜, 박영, 김산 그리고 8,000km 대장정에는 1,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참여했으며, 항일무장투쟁에는 2만 명의 조선 젊은이가 참전했고, 국공내전에는 무려 7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전투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무공을 세웠다.

일신교도들은 ‘신의 역사’를 말한다. 반면 한국의 사학자 김준엽은 ‘역사의 신’을 말했다. 내 개인적 소회로 ‘신의 역사’는 터무니없지만 ‘역사의 신’은 그럴듯해 보인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숱한 역사 왜곡으로 역사의 신을 모독하고 있다. ‘신의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의 용어를 빌리면 ‘독신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장악하여 미래를 지배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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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강정과 평화는 계속 이어진다

"강정, 쓰러지지 마라…전 세계에서 응원"
[언론 네트워크] 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강정과 평화는 계속 이어진다
 
 
 

생명평화마을 제주 서귀포시 강정. 지난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에서 주민 1200여 명 중 불과 87명만이 참석한, 그것도 마을 정관까지 어겨가며 소집된 임시총회를 통해 '박수'로 해군기지가 유치 결정된지 어언 3000일. 강정을 생명평화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길고 험난한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범국민문화제-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 평화콘서트 현장에 이동편집국을 마련해 강정마을의 생생한 생명평화 기운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 강정마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2015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하 대행진)이 5박 6일의 일정으로 무사히 끝났다. 무더위 속 고된 행진을 평화의 마음으로 즐겁게 감내한 참가자들은 강정천 운동장에서 열린 평화콘서트로 그동안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리며 다시 한 번 '강정의 평화'를 기원했다.

올해 대행진을 갈무리한 평화콘서트는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강정천 운동장 특설무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평화콘서트의 부제는 '함께 온 길! 강정평화 3000'이다. 전체 주민 1200여명 가운데 87명의 박수로 결정된 해군기지 유치에 분개하며 강정주민들이 일어선지 3000일, 그 동안의 험난했던 여정을 위로하며 앞으로의 3000일 역시 '함께 가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 2015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5박 6일의 행진에 이어 8월 1일 열린 평화콘서트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제주의소리

 


1일 낮 12시 30분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만난 동진·서진 행렬은 서로의 손을 잡는 인간 띠 잇기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고, 강정천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쌓인 피로와 이야기 거리를 풀었다. 이후 준비된 식사와 풍성한 프리마켓으로 기분전환에 나섰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평화콘서트는 1부 해단식과 2부 공연으로 나눠 진행됐다. 해단식은 춤비숨비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동진 단장 강동균 전 마을회장과 서진 단장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소장의 행진 마무리 인사, 대행진 영상 관람, 국제 참가자들의 연대 발언, 인디밴드 액트(ACT)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2부는 본격적인 공연으로 꾸려졌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모인 '쌍차 노래패',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창,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의 비눗방울 퍼포먼스, 격려기금 전달, 가수 반하리,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가 순서대로 무대에 오른 후 모두 함께 '강정 댄스'를 추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 평화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한 꽃다지의 공연. ⓒ제주의소리


그야말로 '목이 완전히 가버린' 두 단장은 해단식에서 아무 탈 없이 따라와 준 동지들에게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강동균 단장은 "어린 친구들, 학생들이 어느 때 보다 많이 참여해 감격했다"며 희망을 주목했고, 홍기룡 단장은 "이 시간이 끝나서 각자 생활 속에 돌아가도 함께 했던 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대행진은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 전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특히 해외 참가자는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마리아나 군도 티니아 섬 등 대부분 전쟁과 군사기지로 몸살을 앓는 지역에서 왔다.

미군과 수십 년을 싸워온 오키나와, 마찬가지로 미군과 갈등을 빚어온 필리핀, 중국·미국의 힘 싸움 가운데 놓인 대만, 태평양전쟁 당시 군사기지가 있던 티니아 섬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실은 B-29기가 출격한 지역이다. 

연대 발언에서 강정과 끈끈한 관계인 오키나와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대행진에 참여하겠다는 든든한 마음을 전했고, 대만에서 온 인원은 3000일간의 투쟁에 대한 찬사로 "GangJeong is Amazing!"(강정은 정말 놀랍다)이라고 외쳤다.

필리핀 참가자는 불끈 쥔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어느 누구도 여러분(강정주민, 지킴이)의 영혼을 빼앗을 수 없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티니아 섬에서 온 인원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여러분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부디 (해군기지 투쟁을) 멈추지 마라. 포기하지 않고 연대할 때 우리는 언젠가 승리한다"고 밝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어 대행진 종료 소감을 밝힌 문정현 천주교 신부는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올까' 걱정이 앞섰지만 수백 명이 신청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며 "(여러분이 있기에) 나는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정을 지키자. 우리의 불꽃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행진 참가자들에게 반갑게 고마움을 전하는 문정현 신부. ⓒ제주의소리


2부 공연은 지친 피로를 씻어주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열정의 시간이었다. 

3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 극단 '새벽'의 단원들로 구성된 인디밴드 액트(ACT)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쌍차 노래패는 강정, 용산, 밀양, 세월호 모두 함께 싸워가는 동지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대표곡 '함께 꾸는 꿈'을 열창했고, 성인가요 가수 '반하리'는 뛰어난 무대 매너와 구성진 목소리로 흥을 듬뿍 불어넣었다.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는 멋진 비누방울 퍼포먼스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2부 순서 가운데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됐다. 강정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잠시 떠난 평화운동가 실버, 파코가 6주 동안 미국 10개 도시를 돌며 모금한 강정투쟁기금을 전달한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실버는 "미국에서 강정을 알리면서 느낀 점은 강정에서 함께 싸웠던 평화운동가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서도 강정을 위해 어떤 역할이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했다.

소중한 정성을 받은 조경철 마을회장은 "비록 우리도 싸우고 있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강정이 되겠다"며 3000일에도 굴하지 않은 '강정인'의 의지와 성숙함을 보였다.

다시 이어진 공연은 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와 국내 대표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무대로 절정을 향했다.

강정을 포함해 많은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 '바위처럼'을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진 꽃다지는 원조다운 실력을 뽐내며 큰 호응을 받았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2007년 강정에 공연하러 왔다가 경관에 매료돼 앨범 사진까지 이곳에서 찍었다는 남다른 사연을 자랑했다. 
 

▲ 마임이스트 이경식 씨의 비누방울 퍼포먼스에 환호하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강정에 평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들. ⓒ제주의소리


리더 최철욱 씨는 "3000일 동안 꿋꿋하게 걸어오셨는데 저희 음악이 강정에 작은 위로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모두를 일으켜 세운 킹스턴 루디스카의 신나는 무대가 끝나고 평화콘서트는 '강정댄스'로 대미를 장식했다. 다 함께 노래 '바위처럼', '강정마을 좋아송'에 맞춰 춤추는 장관이 연출됐다. 

불안으로 시작한 대행진은 희망으로 끝이 났다. 작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참가자들과 넓어지는 구성은 강정이 아직 살아있음을 입증했다.

여전히 비난의 화살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돈 받고 온 것 아니냐', '더운데 생고생이다'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것은 '조건 없이 함께 하는 연대를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존재들의 슬픈 질투'일 뿐임을 대행진 참가자들은 말이 아닌 몸으로 일축시켰다.

물론 강정천 운동장을 채운 1000여명이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쳐도 다음 날 아침이면 공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진행된다. 당분간은 공사를 멈추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강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강정이 쓰러지지 않기를 전세계에서 바라기 때문이다. 그 바람의 증명이 바로 생명평화대행진이다.

평화콘서트는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와 어른이 손을 잡았다. 강정 그리고 평화는 손에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그렇게 이어졌다.

'강정아 너는 비록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강우일 주교)
 

▲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의 합창. ⓒ제주의소리

 

▲ 쌍차 노래패. ⓒ제주의소리

 

▲ 평화운동가 실버(맨 왼쪽)와 파크(가운데)가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에게 투쟁기금과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다함께 강정 댄스를 추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평화콘서트 마지막 무대에서 즐겁게 강정 댄스를 추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제주의소리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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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녘 독도, 일본 순시선이 다가왔다

등록 :2015-08-02 19:12수정 :2015-08-03 01:15

 

광복 70돌의 해인 올해 6월11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의 동도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도가 수직으로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독도/김정효 기자 <A  data-cke-saved-href="mailto:hyopd@hani.co.kr"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광복 70돌의 해인 올해 6월11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의 동도 헬기장에서 바라본 서도가 수직으로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독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① 독도에서 본 광복 70년

 

독도에 파랑이 일었다. 너울이 허연 거품을 앞세워 동도 선착장 너머로 거칠게 밀려 들어왔다. “오늘은 배가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고, K2 소총을 멘 채 동남쪽 바다를 지켜보던 한 경비대원이 말했다. 심상한 표정과 어투였다. 파도가 치면 1주, 2주 갇히기 일쑤인 독도의 날씨를 일상으로 겪으며 밴 심상함일 터이다.

 

과연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배들은 이날 선착장에 닿지 못한 채 독도를 한바퀴 돌고는 되돌아갔다. 6월12일 속절없이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주 2회 독도 한바퀴 돌아나가 
그때마다 해경 경비정은 
밀어내기 대치로 막아내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뒤 
일, 집요하게 ‘영유권 주장’

 

 

다음날에도 짙게 낀 구름은 새벽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의 말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에도, 독도경비대 2층 상황실에는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나중에 전해들었다. 새벽 5시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독도 동쪽 영해선을 향해 접근해왔다. 독도 동도 꼭대기 98.6m 지점에 설치된 레이더가 이를 포착했다. 레이더병은 일본어와 영어로 배가 한국의 영해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고 영해선을 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당직관은 곧장 해경 경비정 5001함과 해군·공군 부대로 상황을 전파했다. 24시간 독도 주변을 돌고 있는 해경 경비정이 즉각 일본 순시선 쪽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순시선은 여느 때처럼 12해리 영해선을 넘지 않은 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독도 주변을 한바퀴 돌아 울릉도와 독도 사이 공해로 빠져나갔다. 일본 순시선은 주 2회가량 독도로 접근한다. “그때마다 해경 경비정이 영해선 안쪽에서 밀어내기 자세로 대치하며 따라 돈다”고 송지원 독도 주둔 경찰경비대 지역대장(경감)이 말했다.

 

일본 순시선의 독도 접근은 장구한 기간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미군 포고에 따라 일본 선박들은 한동안 독도 해역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1951년 한국이 빠진 채 연합국과 일본 사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 순시선들이 독도에 출현했다. 1953~54년 일본은 한국의 영토 표지를 2차례 제거하고, 4차례 일본령 표지를 세웠다. 한국도 그때마다 이를 뽑아냈다. 53년 7월12일에는 울릉도경찰서 독도순찰반이 영해를 침범했다가 달아나는 일본 순시선을 향해 경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하기도 했다.(정병준 <독도 1947>) 한국전쟁의 한편에서 한때의 식민 강점국 일본과 신생 대한민국 사이에 독도를 둔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독도는 작고 외로우리라는 선입견을 깨고 우뚝했다. 울릉도에서 망망대해를 두시간여 배로 달리면 수직으로 치솟은 서도가 먼저 눈길을 잡는다. 168.5m지만, 바다 위에 돌출해 한층 웅장했다. 승객들이 너나없이 “와” 하는 탄성을 토했다. 서도를 마주보며 동도는 151m 거리에 밀착해 있다. ‘국토의 솟을대문’(이근배 ‘독도 만세’)이라는 시인의 묘사는 적확해 보였다.

 

일본은 대한제국 영토 중 가장 먼저 독도를 강점했다. 바다 한가운데 솟구친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러시아의 방해로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했던 일본은, 10년 뒤인 1904년 2월 대한제국에 다시 군대를 진주시키면서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1905년 1월2일에는 뤼순 요새를 함락시키고, 러시아 극동함대(제1태평양 함대)에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그 직후인 1월28일 일본은 각의 결정으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복속시킨다. 발트해의 기지를 떠나 동해로 향하던 러시아 최강의 제2태평양 함대를 감시할 망루를 독도에 세우려는 목적에서였다. 당시 내무성에서는 “지금의 국면에 한국 영지로 생각되는 황막한 일개 불모지 바위섬을 접수하여 여러 외국에 우리나라가 한국 병합의 야심이 있다는 의심을 키운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야마자 엔지로 외무성 정무국장은 “이러한 때에야말로 영토 편입을 급선무로 해야 할 것이라, 망루를 건설하고 무선이나 해저 전신을 설치한다면 적함 감시가 매우 좋아질 것”이라고 일축했다.(와다 하루키 ‘독도의 역사적 의미와 해결법’)

 

 

독도, 우리 국토의 ‘솟을대문’…군사적 가치 커 일본 일찍이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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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전초기지’ 전략성 중요성 알고 
집요한 영유권 주장 억지 
방위백서, 독도에 ‘빨간 동그라미’ 

한국전쟁 와중에도 
독도 둘러싸고 한-일 충돌 기록도

 

 

독도를 삼킨 일본은, 220일 동안 지구 둘레 4분의 3인 2만9000㎞를 돌아오느라 지친 러시아 함대를 쓰시마 해협에서 대파했다. 이어 달아나는 러시아 함선들을 울릉도 동남쪽 독도 인근 해역까지 추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러시아를 이긴 일본은 미국이 중재한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러시아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일본은 곧이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5년 뒤인 1910년에는 한반도 전체를 강제병합한다. 독도를 잃은 대한제국은 나라까지 빼앗겼다. 2차대전 패전으로 한반도에서 물러나고도 끝까지 독도 영유권만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일본의 욕망이 불길한 이유다.

 

독도를 일본령으로 삼아 군사적 전초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44년 뒤 미국에 의해 부활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준비 과정에서 미국은 초반에는 줄곧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는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1949년 11월 주일본 미정치고문실의 윌리엄 시볼드 정치담당관이 “리앙쿠르암(독도의 서구 명칭)에 대한 재고를 요청함. 이들 섬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유효한 것으로 보임. 안보적 고려에서 그곳에 기상 및 레이더 기지를 상정해볼 수 있음”이라는 의견서를 낸다. 독도를 불안정한 한국보다 만만한 일본 영토로 만들어 대소련 전초기지로 손쉽게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쪽으로 180도 입장을 뒤집고 만다. 이후 일본이 두고두고 ‘미국도 독도가 일본 땅임을 인정했다’며 독도의 분쟁지역화에 나서게끔 만든 배경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노골적 책동에도 독도는 꿋꿋이 한국 영토로 서 있다. 첫째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 의지를 뚜렷이 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 체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1947년 시행된 일본 평화헌법 제9조는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 및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했다. 1953년 독도 충돌 때 일본도 무력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안에서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헌법 금지 사항”이라며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평화헌법 체제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미-중 패권 다툼 가능성이 부상하는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신념에 따라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며 미·일 군사일체화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중국 또한 이에 맞서 ‘대국굴기’의 ‘중국몽’을 꿈꾸며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팽창시키고 있다. 한국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 미-일 동맹의 확장판으로서 한-미-일 삼각공조 구축에 한국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는 점은 급변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복잡성을 배가한다.

 

더불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7월20일에는 11년째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 기재했다. 한·중·일 방공식별구역 표시 지도에는 ‘다케시마’에 영유권을 뜻하는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과거사 역주행 속에 영토 야심은 폭주하는 양상이다.

 

그 결과는 110년 만에 다시 한번 동아시아 지정학의 ‘열점’으로 독도가 부각되는 지금의 형국이다. 애초 독도는 460만년 전 지각의 틈을 뚫고 마그마가 분출하는 지질학적 ‘열점’의 생성물로 태어났다. 국가 간 힘과 의지가 충돌하는 열점의 운명이 다시금 독도, 나아가 한반도를 덮치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광복·분단 70돌을 맞아 ‘징비’의 의미를 가장 먼저 ‘독도’에서 떠올린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겪고, 또다른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삼가는 기록’ <징비록>을 남겼다. 광복 70돌, 구한말 격랑의 그림자가 다시금 어른거린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지식인 500여명은 7월29일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과거사를 둘러싼 충돌이 민족주의 충돌로 이어지고 영토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 회귀는 전쟁 위기와 안보 불안으로 확대되고 각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망국의 그때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나라로 성장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난제를 여전히 품은 위에 열강 다툼의 파열음도 높아가고 있다. 묵은 과제와 새 도전이 한데 몰아치고 있다.

 

류성룡은 변화를 미리 읽지도, 자강하지도 못한 조선의 비극을 징비했다. <징비록> 연구서를 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닐 것”(<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지정학의 격랑을 이겨낼 것인가? 광복 70돌의 해에 독도 선착장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보며 동아시아의 격동을 헤쳐나갈 담대한 상상력을 묻는다. 13일 오전 10시30분께 파도가 조금 순해진 틈을 타 접안한 울릉행 여객선에 올랐다. 독도에는 주민 2명과 등대원 3명, 경비대원 45명, 수를 셀 길 없는 갈매기들이 남았다.

 

 

독도/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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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괴뢰 대결 광분 댓가 참혹"경고

 
 
"병진 노선 헐 뜯는 것은 악랄한 정치적 도발" 비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8/02 [18: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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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시킬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을 비난하며 자신의 노선을 헐뜯는 남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언론들은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이날 '대결광신자들은 대화상대로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조선괴뢰들이 대화를 극성스럽게 외워대는 그 입으로 우리의 노선과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방미 중인 김무성 대표의 우드로윌슨센터 오찬연설을 지목해 "김무성 역도는 상전 앞에서 온갖 아양을 다 떨며 북이 병진노선을 포기하도록 외교안보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망발을 줴쳐댔다"고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괴뢰통일부 대변인이라는 자도 우리의 병진노선에 대해 감히 그 무슨 '삶의 질 향상과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느니, 개탄이니 하며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자주와 존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얼간망둥이들과 어떻게 민족의 운명를 논하는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대결을 구하는 남조선괴뢰패당은 우리의 대화상대로 될 수 없다"고 피력했다. 

 

논평은 "괴뢰들이 대화를 떠들면서도 우리의 병진노선을 헐뜯는 악담질에 미쳐돌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대화가 아니라 대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단정했다.

 

특히 "우리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키는 것은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갈 전략적 노선"이라고 주장하고 "괴뢰역적패당이 병진노선에 대해 시비질하며 못된 수작을 늘어놓는 것은 우리에 대한 악랄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은 "우리의 자주적 노선과 존엄 높은 체제에 감히 도전하는 자들과는 애당초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며 "남조선 괴뢰들은 대화 상대방을 함부로 헐뜯으며 대결에 광분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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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공동대표 11일째 묵비단식투쟁 ... 암투병 김혜영회원 8일째 묵비단식

  • [사회] 이상훈공동대표 11일째 묵비단식투쟁 ... 암투병 김혜영회원 8일째 묵비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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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가 11일간이나 완강한 묵비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31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됐으나 이상훈공동대표는 국가보안법철폐, 보안수사대·국가정보원해체, 박근혜폭압<정권>퇴진을 요구하며 묵비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상훈공동대표는 또한 코리아연대에 대해 이적단체혐의를 들씌우고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개악해 이적단체로 판결나면 강제해산하려고 하는 박근혜<정권>의 파쇼적 음모를 폭로하며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투쟁하고 있다. 
     
    현재 이상훈공동대표는 보안수사대의 강압수사로 인해 앉아있기도 힘들정도로 건강이 상해있다. 
     
    한편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도 지난 26일 연행된 이래 오늘로 8일째 역시 인정심문도 거부하고 철저히 묵비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김혜영회원은 암수술을 2번이나 받았으며 지속적으로 투약해야 하는 몸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단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투약을 중단하고 있다. 그로 인해 심각한 구토증상을 보이고 있으나 고통을 감내하며 묵비단식투쟁을 완강하게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헌데 김혜영회원이 수감된 남대문경찰서는 일요일이라고 생수반입을 금지하는 등 상식이하의 반인권적 행태를 보여 코리아연대회원들과 시민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있다. 
     
    남대문경찰서는 그렇지않아도 지난 4월말 코리아연대회원들을 연행한데 대해 항의하는 여성회원을 성추행하고 회원들을 폭행한 사건으로 현재 법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에 코리아연대측은 오늘부터 그동안 종로서에 집중했던 1인시위를 남대문서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후 가장 강력히 항의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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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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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유신공주로 자기 세계에 갇혀...
박 대통령 기본개념 전혀 없어"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창간15주년 인터뷰]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15.02.13 11:16l최종 업데이트 15.08.03 00:50l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향년 73세. <오마이뉴스>는 김수행 교수의 생전 인터뷰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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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지난 2년 박근혜 정부에 대해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과 좀 다를 것 같았는 데, 금세 본색을 드러냈다"며 "경제는 더 나빠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그동안 뭐 한 것도 없지 않았나"고 평가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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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지금 지옥이에요, 지옥…. 뭐하나 제대로 가고 있는 게 있나 봐. 정치도, 경제도, 복지도 그렇고….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종북'이라고 딱지를 붙여 버리고 말야. 이런 사회에서 무슨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어요."

그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했다. 그의 입에선 '지옥', '엉터리', '나쁜 놈', '말도 안 되는 소리' 등의 단어가 계속 터져 나왔다. 백발의 노(老) 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72)다. 예전에도 그와 수차례 인터뷰를 했던 기자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라며 "지금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에요"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그는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프랑스대혁명 시절에 있는 것 같다"면서 "그게 1789년 이야기인데, 그때나 볼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래서야 되겠어요?"라며 다시 되물었다.

지난 2월 6일 오후 고려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국내 최대의 마르크스주의 포럼인 '맑시즘 2015' 첫날 강연을 마친 다음이었다. 문과대 202호 강의실은 학생과 직장인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김 교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하얀색 칠판 위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자본론을 강의했다. 그는 당초 예정됐던 1시간 30분의 시간이 못내 아쉬웠던 것 같았다.

- 강의 후에 학생들 질문이 많았던 것 같던데요.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여러 고민들도 보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이 부족했지. 이런 강의는 항상 그래요. 어느 외국인도 질문을 하던데, 나중에라도 좀더 토론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 지난해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국내에 소개되고, 장하성 교수도 '한국자본주의'를 펴내면서, 불평등과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은 말그대로 부(富)를 말하는 거예요. 맑스의 '자본'과 다르지. 다만 피케티 주장의 핵심은 분배 문제인데, 그동안 자본주의 병폐가 불평등과 양극화 잖아요. 그것을 수백년의 자료로 입증해 보인 거예요. 주류경제학 입장에선 그의 주장에 '쇼크'를 먹은 거지."

김 교수의 말은 계속됐다. 이미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는 "이미 지난 수십 년동안 미국 등에선 부자감세를 비롯해 사회보장제도가 해체되면서 빈부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했다. 양극화에 따른 부의 불평등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이미 맑스가 살던 시대부터 개혁과제를 내놨어요. 1848년 공산당 선언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위해 소득 누진세를 도입하고,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상속 제한 등 말이에요. 무상 교육도 있었고…. 나중에 서구국가들이 1950년대에 들어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고…."

"복지를 줄인다고? 여기는 지옥이야, 지옥...."

그는 이어 "당장 자본주의가 없어지거나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복지 논쟁도 마찬가지였다. 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박근혜 정부 2년 평가로 흘러갔다.

- 박근혜 정부가 만 2년이 지나고, 3년차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그래, 벌써 그렇게 됐어.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과 좀 다를 것 같았는데, 금세 본색을 드러냈어. 그냥 MB 것 거의 그대로 했는데…. 경제는 더 나뻐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그동안 뭐 한 것도 없지 않아요?"

- 애초 내걸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공약이 줄줄이 사라지고, 인사파동으로 시간만 보냈다는 지적도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말이에요. 내가 보기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든, 경제든 기본적인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머리가 없어요. 그냥 유신공주로서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아. 내가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세월호 사고를 보고 저 사람이 대통령인가 싶기도 하고…."

그는 '세월호 사고'를 꺼냈다. 작년 4월 기자가 김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관련기사: "박근혜 대통령 자격없다, 집권층 무너져도 혼란없어"). 김 교수는 "정말 자기 자식 죽은 부모의 심정을 그 사람(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해결해줘야 하지 않은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올들어 연말정산 파동으로 증세와 복지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지금 청와대나 여당 모두 결국 복지 지출 줄이자는 거 아니에요. 오이시디(OECD)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복지 지출에서 거의 꼴지라고 하는데, 지금 무엇을 얼마나 쓰고 있길래 줄이자고 하는지…. 내 생각엔,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복지를 안 하고 있는 게 문제야."

- 여당에선 무상급식이나 보육 등에 들어가는 부담이 크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돈이 없다고 하면서 이미 증세로 서민들한테 돈을 거둬가고 있잖아. 담뱃세부터 말이야. 그런데 부자들은 모두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기업들도 마찬가지고…. 부자들부터 제대로 세금을 거둬야지."

"MB의 4대강 등 그 아까운 돈들을... 정말 나쁜 놈들"

-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 해서 고용 늘리면 세금도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고개를 흔들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민간기업들은 이윤을 볼 수 있는 정도만 사람을 고용하잖아. 거기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실업자야. 기업들은 실업률 같은 거 신경도 안 써요. 정말로 실업률 낮추고, 일자리 만들려면 정부가 나서야지."

김 교수의 비판은 계속됐다. 다시 그의 말이다.

"정부 1년 예산이 수백조 원이에요. 그것부터 제대로 잘 쓰면 돼.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와 복지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쓸데없이 돈을 써버리잖아.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4대강 사업한다고 22조 원인가 쓰고, 자원외교한다고 수조 원 날리고…. 그 피 같은 국민들 돈을 말이야…. 정말 나쁜 놈들이야."

-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극복했다고 썼는데요.
"(목소리를 높이며) 무슨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자기가 무슨 옛날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는 모양이구만. 4대강사업 한다고 그 돈을 대기업들한테 다 나눠줬는데, 무슨 위기를 극복했다고…."

- 요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면서, 조기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자업자득이지. 누가 좋아하겠어. 지금 사람들 사는 것이 지옥이에요, 지옥. 그래도 처음에 무슨 복지국가한다고 했으니 기대라도 했지만, 아니잖아. 청와대서 나오는 이야기 보면 무슨 지들끼리 권력싸움이나 하고 있질 않나, 그 사람들한테 국민들이 안중에도 없어요."

"참으로 더티한 나라, 과거로 후퇴한 민주화, 다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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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보수 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복지공약으로 표를 모을 것"이라며 "야당이 보다 선명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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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여전한데요.
"야당에 있는 친구들이 말이에요. 새누리당과 같은 수준의 복지 이야기를 하면 안 돼. 좀더 진보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줘야지. 지금 실업,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요. 정말 기업들이 맘대로 해고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를 하든지, 노동조합의 권한이나 지위를 대폭 높여서 기업들과 대등하게 해주든지."

김 교수는 "아마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에도 정권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복지공약으로 표를 모을 것"이라며 "야당이 선명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 민주화의 후퇴를 가장 우려하며 "후퇴가 정치·경제·사회 등 우리 전반에 걸쳐 있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표현의 기본 자유가 침해받는 현실을 두고 "참으로 더티한(dirty, 더러운) 사회"라고 평가했다. 1시간을 훌쩍 넘는 인터뷰 내내 그의 직설은 계속됐다.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를 물었다.

"(웃으면서) 3년이나 남았나. 어떻게 하겠어, 계속 이야기를 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얻은 민주화인데, 지금 이렇게 후퇴해 버리면 되겠어요? 사상적으로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말이야. 참으로 더티한 사회야.  그래도, 이래선 안 되니까, 계속해서 정치든, 경제든 다시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싸워야지. 그래야 바뀌지 않겠어. 나부터, 당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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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協, 주말 도심서 ‘82대 과제’ 브리핑 나서

 

수중 속 선체 영상 공개.. “정부, 시신 유실방지 조치 약속 어겼다”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안전사회 대안마련·추모지원을 위한 ‘82대 과제 길거리 브리핑’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1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는 15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4.16 가족협의회와 4.16 연대가 진상규명을 위해 제시한 ‘82대 과제’ 길거리 브리핑에 함께 했다.

브리핑에 나선 4.16 가족협의회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박 변호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심사 당시 제출된 자료를 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명시돼 있다”며 “실제로 청와대가 참사 당시 계속 지시를 내렸고 나중에 와서 말을 바꾸며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123 정장만 검찰이 기소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감사원에서 감사만 했다. 목포해양경찰서장은 현장지휘 태만으로 해임했고 서해지방해경청장은 사전구호조치소홀로 강등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목포해경 서장은 해임되었다가 서해지방청으로 옮겼고 서해지방청장은 정년퇴임했다”며 “유정복 당시 안행부장관은 중대본의 책임자임에도 작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사임했고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청와대도 A4 2장의 확인서를 감사원에 준 것으로 감사가 끝났다”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그러나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해경청장에게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한다’는 지시를 내린 10시 30분, 그와 동시에 민경욱 대변인이 통화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며 “대통령의 전화를 실시간 도감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이 두 번째 지시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김혜진 4.16연대 운영위원도 안전사회 대안마련과 추모지원을 위한 과제들과 관련, 시민들에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김 위원은 “550만명의 서명을 만들어서 특별법을 만들고, 특별조사위를 통해 진실을 규명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정부는 예산을 지급하지 않고 쓰레기 시행령을 만들어 냈다”며 “메르스 사태를 통해 국민안전처가 절대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우리는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의료민영화라고 비판해 온 원격의료 등 안전 돈벌이만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있으면 되는 일이 없고, 특조위에만 맡겨서도 되는 일이 없겠죠?”라고 반문했고, 시민들은 “그렇다”고 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은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선체의 수중 촬영 영상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며 온전한 인양을 위해 왜 가족들이 직접 수중 촬영을 주장하고 나섰는 지 강조했다.

앞서 지난 29일에도 피해 가족들은 뚫린 창문에 차단봉과 그물망이 설치되지 않은 장면이 담긴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며 “시신 유실방지 대비를 철저히 해 세월호를 봉인하겠다던 정부 약속과 달리 유실 방지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유 집행위원장은 “400명이 탄 대형 여객선에 배가 침몰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겨우 해경 대원과 20여명이 탈 배 한척을 보내는 해경과 정부였다”며 “자동차 사고 시 달려오는 렉카차보다 못한 해경과 정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양 업체 선정 등 모든 과정에 유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유가족들이 납득 못하는 과정들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투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양수산부가 수중 촬영에 허가하고 말고 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해야 할 도리를 하기 위해 허가 사안이 아님에도 여러 차례 공식·비공식적으로 의견을 보냈다”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면 허가와 관계없이 선체 촬영을 위해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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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특혜받는 박정희 일가 ① 설악산 케이블카

 
 
‘박정희 사위 일가, 44년간 설악산 케이블카 독점’
 
임병도 | 2015-07-31 08:48: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설악산에 새로운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정상 부근에 관광호텔과 레스토랑을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 중입니다. 7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지속성장 방안 마련 세미나’를 주최한 전경련은 ‘설악산 산악종합관광 조감도’를 제시했습니다.

전경련의 ‘설악산 산악종합관광 조감도’를 보면 설악산 산장과 대피소 중간에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4성급 관광호텔 수준의 숙박시설을 조성해 개별 객실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습니다. 오색케이블카 사업과 연계한 설악산 개발 사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전경련 측은 ‘일반적인 숙박 시절이 아닌 비상시 대피를 위한 대피소를 숙박시설로 제공하여 공간이 협소하고 시설이 열악해 여성 및 외국인의 이용이 어려우며 쾌적한 휴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1
 
설악산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제217호인 산양의 서식지입니다.2 인간이 조금 편하자고 자연을 파괴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악산 개발과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보면 아버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벌어진 일과 비슷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를 어떻게 따라 하고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34년 만에 부활한 박정희의 수출진흥위원회’

2014년 8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확정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건설을 빨리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거나 설악산에 케이블카와 호텔 등을 건설하기 위한 ‘산지관광 특구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아버지 박정희가 주재했던 ‘수출진흥회의’를 정례화시킨 것입니다.3 박정희 사망 이후 유명무실했던 회의를 딸이 34년 만인 2013년에 부활시킨 셈입니다.4
 
박정희의 ‘수출진흥회의’나 박근혜 대통령의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비슷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규제도 풀어주겠다는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박정희는 기업들이 수출이나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그 규제에 대한 정확한 검토 없이 무조건 허용했습니다.

특히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이미 2012년 2013년에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두 번이나 거절당한 사업입니다. 환경을 위해 규제되어야 할 사업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신청됐고,5 앞으로 본격적인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강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 사위 한병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승인 특혜’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현재 설악산 오색리에서 대청봉 인근 끝청까지 3.5km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입니다. 기존 케이블카에서 훨씬 산 정상으로 가까워지고 길어집니다.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정당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 1월 13일 동아일보는 5월이면 설악관광주식회사 (대표 한병기)가 착공했던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된다고 보도했습니다.6 한병기는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의 딸인 박재옥과 결혼한 인물로 박정희의 사위입니다.  
 
1972년 박정희는 ‘제3차 5개년 개발계획’의 하나로 산지개발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한병기 (속초,양양,고성) 공화당 의원이자 박정희의 사위가 정책연구에 나섭니다. 대한민국 산지를 구분해 개발할 곳은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7
 
설악산 케이블카는 1971년 8월에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한병기가 7월에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지 한 달만이었습니다. 한병기가 1965년에는 천연기념물로 1970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설악산에 케이블카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의 사위였기 때문입니다.

산지개발을 지시하고 특혜를 줬던 박정희와 산지개발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이 비슷해 보입니다.


‘박정희 사위 일가, 44년간 설악산 케이블카 독점’
 
케이블카 설치가 국민의 편리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설치됐던 설악산 케이블카를 보면 국민이 아닌 특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설악산케이블카를 독점해 42년 동안 수백억을 벌은 박정희 사위 일가 ⓒ민중의소리 유동수 디자인실장

설악산 케이블카의 대표는 한태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입니다. 박정희의 사위 한병기가 ‘설악케이블카 회장’이었고 아들 한태준, 한태현이 ‘설악케이블카(주)’의 대주주입니다.8

한병기가 회장인 ‘설악케이블카(주)’의 매출액 99%가 케이블카 운행으로 벌어들이는 돈입니다. 2011년 순이익이 37억 원이니 44년간 벌어들인 돈만 계산해도 수백억 원이 넘습니다. 단지 박정희의 사위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녀들까지 특혜를 대물림받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은 엄연히 국민의 재산입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권력을 통해 가족에게 특혜를 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그 특혜를 몰수해야 함에도 과거를 잊고 설악산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지난 7월 28일, 국회에서는 ‘2015 친환경 케이블카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8월에 열리는 오색케이블카에 대한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겨냥한 세미나입니다. 국회 케이블카 심포지엄 입구에는 ‘국세청장’, ‘통계청장’, ‘관세청장’이 보낸 화환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케이블카 심포지엄에 국세청장이나 통계청장, 관세청장이 화환을 보낼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미 설악산 케이블카의 특혜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무조사를 해야 할 국세청장이 오히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화환을 보낸 것입니다.

‘필요하고 가능한 공존’이라고 주장하며 추진 중인 오색케이블카 사업, 과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어떻게 승인됐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공존’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공존’이 아닌 ‘특혜’가 될 케이블카 사업은 승인보다 감사가 우선입니다.


1. 설악산 정상인근에 관광호텔 추진, 환경파괴 불가피 미디어오늘 2015년 7월 27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218 
2.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예정지에 '산양' 서식. 오마이뉴스 2015년 2월 17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001 
3. 이명박 정권 때도 열렸지만 정례화되지 못했다. 성장 다급한 정부, 수출에 올인? 한겨레 2008년 5월16일. http://english.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288079.html 
4. 1965·2013 … 박 대통령의 '수출 DNA' 코리아데일리(중앙일보)뉴스. 2013년 5월 1일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668545 
5.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논의 본격화…환경단체 '반발' 뉴시스강원 2015년 6월 13일.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612_0013725031&cID=10805&pID=10800 
6. 1970년 1월 13일 동아일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0011300209207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0-01-13&officeId=00020&pageNo=7&printNo=14848&publishType=00020 
7. 매일경제 1972년 4월 5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4050009920301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2-04-05&officeId=00009&pageNo=3&printNo=1871&publishType=00020 
8. 박정희 사위 일가, ‘설악산 케이블카’ 42년 독점·특혜운영 민중의소리. 2012년 11월1일.
http://www.vop.co.kr/A000005568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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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

지난 26일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동행 의원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6일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동행 의원들. 사진 연합뉴스 등록 :2015-07-31 20:38수정 :2015-08-01 09:44

 

 

[토요판] 커버스토리 / 김무성과 아버지 김용주

더 상세히 드러난 아버지 친일행적
아들은 왜 미국에서 큰절을 했을까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여느 정치인이 아니라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이기에 더욱 그렇다. 커다란 몸집과 당당하던 태도는 태평양을 건너자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넙죽넙죽 올리는 ‘큰절’은 환영은커녕 비웃음만 사고 있다. 아프리카 추장 같다거나 아예 부채춤을 추라는 조롱마저 날아간다. 그런데도 그는 내년에 또 큰절을 하겠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김무성 대표 아버지의 친일 행적에서부터 발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료를 뒤적여보기 시작했다. 아뿔싸. 선친 김용주의 과거 친일 의혹은 빠르게 지워져가고 있었다. 대신 절세의 애국자로 변모하고 있다. 친일이 애국으로 둔갑하는 현실을 막아보고자 김 대표 부친의 과거 친일 발언을 공개한다. 천황폐하를 위해 자식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고약한 내용이며 A4 용지 3장 분량이다. 그런 부친의 과거를 바꾸려는 시도나 미국에서 하는 큰절이나 모두 한뿌리에서 나온 콤플렉스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천황폐하 찬양…아들은 미국 장군묘에 “감사합니다”

 

 

▶ 김무성 대표의 선친 김용주의 일제 때 발언을 보면 그가 상당한 인텔리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대사부터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역사를 넘나들며 일본과 조선이 한민족 한뿌리임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발언의 귀결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태평양전쟁에 용감하게 나서라는 것이다. 화랑 관창처럼, 사육신 성삼문처럼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다만 그 충성의 대상이 일본 천황일 뿐이다. 천황을 위해 벚꽃같이 지라고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미국을 방문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기행’을 보면서 “왜 저러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국내 보수층의 지지를 다지려는 의도’라고들 많이 분석하는데, 선뜻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김 대표는 이미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부동의 1위 아닌가. 표를 얻으려면 왼쪽으로 가야지 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만 가는지 설명이 안 된다. 분명히 손해 보는 짓인데 말이다. 그래서 ‘아! 계산이 아니라 본능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김 대표가 초대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장군의 묘 앞에서 큰절을 두번 올리고 나서 묘비에 묻은 진흙과 새똥을 직접 손수건으로 닦으며 “아이고, 장군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는 기사를 보고 퍼뜩 든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평가한 친형 이상득의 말도 떠올랐다.

 

“그런데 저래도 되나?”라는 게 이어진 의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김무성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1985년 작고) 전 전남방직 회장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김용주 회장은 일제 때 친일 행적이 분명한 사람이다. 해방 뒤에는 미군정청의 지원을 받았고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 전남방직을 전쟁중에 불하받아 부자가 되었다. 유시민 전 장관은 그런 가계도 때문에 김무성 대표를 ‘친일-반공-보수세력의 총아’로 지칭한 적이 있다. 그러니 김 대표는 심리적 부담 때문에라도 눈에 드러나는 친미 행위는 피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영 반대로 가고 있어 의아해한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6일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내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한 뒤 묘비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6일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내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한 뒤 묘비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는 2년 전 ‘친일행적’ 정정한 적 없어

 

하도 이상해서 네이버에 김무성, 김용주, 친일 등의 단어를 쳐놓고 검색을 해봤다.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김용주 회장은 친일을 의심받기는커녕 절세의 애국자로 둔갑해 있었다. 각종 기사와 블로그 글들이 김용주의 친일을 해명하고 애국을 칭송하고 있는 거다. 2년 전쯤 분명히 같은 검색어로 찾아봤는데 그때하고는 하늘땅 차이였다. 글들을 클릭해서 읽어보고는 더 놀랐다. 그런 변화에 나 ‘김의겸 기자’가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년 전쯤 ‘백년전쟁은 계속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김무성 대표를 거론하면서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비판한 것이다. 김 대표는 즉각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는데 내 나름으로는 김 대표의 요구를 선선하게 받아줬다.

 

내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칼럼에서 “김 의원이 ‘빨갱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표현했는데, 알고 보니 종북주의자, 좌파, 김정일의 꼭두각시라고는 했어도 빨갱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라고 정정해줬다.

 

부친의 친일 행적 부분도 반론을 보도해주는 걸로 쉽게 합의를 봤다. 그래서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 조선인 농민들의 편에 서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였으며, 김 의원의 부친은 사재를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고 일본 자본에 맞서 조선상인회를 설립하는 등 애국자적 삶을 살았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없으므로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라는 반론보도 문구를 김 대표의 변호사와 함께 작성했다. 반론보도는 정정보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정보도는 기자가 사실보도의 착오를 인정하고 내용 자체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보도는 양쪽의 주장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방어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기자인 나야 사실관계가 틀림이 없고 친일파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아들인 김무성 대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 반론할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칼럼을 쓸 당시는 김무성 대표의 행위(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NLL) 발언 왜곡)에 분개했지만, 돌아가신 부친까지 끌어들인 건 나도 나중에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이런 곡절을 거쳐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가 지면에 실렸다. 그 직후 김 대표가 출입기자들에게 돌린 문자가 나한테도 한 다리 건너 전달이 됐다. 김 대표가 반론보도문의 성격을 자기한테 너무 유리하게만 해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더 이상 보도가 확산되는 걸 막으려는 걸로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경악하기 전까지는.

 

2년 동안 생산된 기사나 블로그 글들의 제목을 몇 가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김무성 “우리 부친은 친일파 아닌 애국자”

 

-김무성 친일 논란 정리, 해촌 김용주 선생의 애국활동

 

-김무성 대표 부친,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

 

-김무성 대표 아버지가 친일파가 아닌 13가지 이유!

 

-“아버지가 친일파라고…차라리 나를 모욕하라” 김무성 의원이 직접 말하는 ‘나의 개인사와 가족사’

 

2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는 김 대표의 가족사를 거론하며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 대표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어느 인터뷰에서 선친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무시하거나 관용으로 대했지만 이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고소 등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대응이 방어 차원을 넘어서 아예 공세로 넘어간 모양새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해명을 넘어 애국자, 애국활동으로까지 미화되고 있다. 김 대표 쪽의 적극적인 언론 접촉과 논리 제공이 있었을 테고, 가까운 언론매체나 지지자들이 글을 양산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이런 환경 변화에 힘입었는지 김무성 대표의 공식사이트에도 ‘나의 아버지’가 비중있게 소개되는데, 부제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해촌 김용주’다.

 

경이로운 변화다. 게다가 내가 내보낸 ‘반론보도문’이 이런 세태 변화에 공헌하고 있다는 게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김 대표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당시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해촌 선생이 친일행적을 보였다고 보도하자 김 대표는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애국자적 삶을 살았다’고 강조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을 요청했다. 결국 한겨레는 지난 2013년 10월 언론중재위 조정에 따라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를 냈다.” 정정을 해준 건 빨갱이 부분일 뿐인데 이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마치 친일 부분이 정정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어서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은 특정세력의 명백한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한다. 기자인 내가 졸지에 공작 정치의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 김 대표 부친의 친일 의혹을 간단하게 거론하는 <오마이뉴스>의 어느 기사를 보니 중간에 엉뚱하게 내가 작성한 반론보도문이 끼어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원문이 아니라 첨삭이 된 문장이었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쪽에 기사 정정을 요구하며 그 반론보도문을 들이댄 모양이다. 내가 별생각 없이 합의해준 반론보도문이 나도 모르는 새 다른 언론의 재갈을 물리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겨레와 내가 조롱감이 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느 기사에서는 이런 치욕적인 글귀를 발견했다. “한겨레는 이전에도 김무성 대표와 관련된 기사에서 오보를 게재한 적이 있었다. 김무성 의원의 부친이 친일파라는 보도와 김무성이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는 허무맹랑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도 정정보도를 낸 적이 있었다.” 내가 허무맹랑한 기자가 되는 건 문제가 아닌데 회사마저 망신을 사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 여당 대표
선친의 친일행적 의식했다면
방미 중 발언과 행위 안 나왔을 것
친일 콤플렉스 떨쳐 버린건가
굴욕적 친미발언과 큰절이라니

 

“진정한 내선일체…충실한 황국신민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질 영광”
‘미영 격멸’ 공직자대회 보도한
1943년 10월3일치 <매일신보>와
대회기록집에 김용주 상세 발언

 

 

A4 용지 3장 분량으로 드러난 김용주 발언

 

알고 보니 김무성 대표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도 김 대표의 부친이 ‘친일인명사전에 대표적인 친일파로 등재됐다’고 논평을 냈다가 뒤늦게 동명이인임을 깨닫고 김 대표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김용주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니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러니 “김무성 부친 친일인명사전 민주당 거짓말! 사실 부친 김용주는 애국자” 등의 글들이 즐비하게 된 거다.

 

인터넷 경제전문지인 <스페셜경제>는 당시 “김무성 대표 부친 ‘친일 의혹’…거짓 속에 묻혀버린 진실. 알고 보니 애국자였다…친일 의혹 ‘명백한 공작’”이라는 단정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 기사에서는 “아울러 배 대변인의 거짓 논평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 역시 친일 의혹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면서 김 대표 부친의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김 대표 선친의 친일 행적을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사정을 몰랐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알고 나서도 계속해서 침묵한다면 나는 역사 왜곡의 공범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친일을 감추고 싶어하는 것과 친일을 애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또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한겨레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다.

 

1941년 12월7일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 김용주 경북도 도회 의원이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가결됐음을 알린 <매일신보> 12월9일치 3면 기사.
1941년 12월7일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 김용주 경북도 도회 의원이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가결됐음을 알린 <매일신보> 12월9일치 3면 기사.
나는 사실 김무성 대표 선친의 친일 행적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자료를 이미 2년 전에 확보하고 있었다. 김 대표가 “법적 대응에 임할 것”이라며 내용증명까지 보낸 판이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1941년 12월9일치 <매일신보> 말고도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론중재위원회에 나가서 새로 입수한 자료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확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미군정-전쟁-독재로 이어지는 뒤틀린 우리 역사에서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 후손들을 다 문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정서에서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다’가 아직도 기본적인 내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가 여느 정치인인가. 집권 여당의 대표이고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차기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선친의 친일 행적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방미 중의 발언과 행위가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친일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쳐버렸기에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굴욕적인 큰절이 나오고 “우리는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발언을 태연하게 뱉을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또 친일 타령이냐’거나 ‘웬 연좌제냐’는 얘기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건 <매일신보> 1943년 10월3일치 2면의 기사다. 징병제 시행을 고마워하며 미국과 영국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를 다룬 기사로서, 제목은 ‘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2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 각 의원들의 열론’(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이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일본명 金田龍周, 경북도회 의원)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敬神崇祖 報恩感謝)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3년 10월2일 징병제 시행 감사와 미국 및 영국의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를 보도한 <매일신보> 10월3일치 2면 기사. 이 자리에서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가 간단해서 더 구체적인 자료가 없을까 찾다가 이 대회 사무국이 1944년 1월에 발간한 <징병제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을 발견하게 됐다. 그 책자에는 김용주의 발언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옮기고 보니 A4 용지로 3장이 넘는 분량이나 몇가지만 추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회의에서 첫번째 의제는 “징병제 실시에 즈음하여 그 완벽을 기함과 함께, 2천500만 민중에게 고마우신 성지(聖旨)를 철저하게 젖어들게 하도록 구체적 시책 의견”이었다.

 

김용주는 박수를 받으며 등단해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고 말하며 구체적 방책들을 제안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 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이다. 그는 이어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부모들이 천황폐하를 위해 기꺼이 자식의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면 단위마다 신사를 세워 신앙심을 고취시키자는 고약한 내용이다. ‘일본동맹통신사’에서 발간한 자료를 보면 김용주는 말만 내세운 게 아니라 실제로 대구신사를 건립하는 데 2천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온다.

 

더 심한 건 신라시대 화랑 관창과 조선시대 사육신 성삼문의 사례를 들며 “우리는 이처럼 의용충렬한 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자손인 자가 분투하여 굳건한 각오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논리를 편다. 우리 조상들의 충성심과 의기를 오늘에 되살려, 일본 천황을 위해 떨쳐일어나자는 얘기다.

 

 

2년 전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행적 비판한 ‘한겨레’ 칼럼
반론기회 줘 반론보도문 게재
그뒤 인터넷 포털에서 김용주는
친일은커녕 애국자로 둔갑했다

 

김무성 대표 쪽은 언론중재위에서
“매일신보 믿을 수 없다”고 반박
한데 그 아버지는 “매일신보가
반도의 민지 계발에 공헌한다”며
한글판 추가발행까지 제안하기도

 

 

김용주는 자서전에서 친일행적 숨겨

 

김용주는 이어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한글판을 매주 1회 발행하자고 제안하며 그를 통해 “영미화란의 과거 수백년 동아침략의 실정 및 과거 현재에 통틀어 약소하고 전쟁에 패한 국가민족의 말로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고 애달기 짝이 없는 것인지를 명시하여 정부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일억 국민은 굳게 단결하여 죽어서라도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맺는다.

 

김용주는 두번째 안건에도 등장해 발언을 한다. 안건은 “대동아전쟁 바야흐로 저편과 이편이 결전양상으로 바쁘고 어지럽고 맹렬하게 됨을 돌아보고, 더욱 미영격멸의 결의를 새롭게 하고 조선서 필승 신념을 고양하며, 전력증강, 전시생활의 확립을 한층 심화 철저히 하는 건설적 의견”이다.

 

그는 이 의제와 관련해 “반도 2천500만의 반수인 부녀자의 생산방면 활동”을 높이기 위해 “취사는 아침 밤 2번으로 하고, 점심은 도시락제로 할 것” “요릿집, 음식점 등 유흥음식 시간을 미영격퇴까지 당분간 2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 자료를 통해 <매일신보>를 바라보는 김무성 대표 부자의 시각차가 드러나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는 2년 전 칼럼에서 1941년 12월9일치 <매일신보>를 근거로 “김무성의 부친인 김용주는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썼다. 실제 그날치 신문 기사를 보면, 김용주는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다. 거기서 그는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했고, 이는 만장일치로 가결된다. 그리고 그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에 선출되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 쪽은 “<매일신보>가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고 당사자가 작성하지 않은 기고문조차 매일신보 기자가 임의로 작성해 보도한 사례가 있는 만큼 믿을 수 없다”고 언론중재위에서 반박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매일신보>는 반도의 민지(民知) 계발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다”며 <매일신보> 한글판을 추가로 발행하자고까지 했으니 우리 역사의 씁쓸한 한 단면이다.

 

김용주도 해방 이전 자신의 행적을 숨긴다. 그는 작고 1년 전인 1984년 <나의 회고록: 풍설시대 80년>을 펴내는데, 일제 말 행적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이러한 시국하에서는 만사에 있어 조심스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1943년부터는 일제 치하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 후퇴하여 8·15 해방에 이르기까지 칩거생활로 들어간 것이다.” 1943년의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 발언은 깨끗하게 지운 것이다.

 

 

긍정적 평가할 대목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자료로 인해 김용주 전 회장이 단박에 ‘친일파’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용주 전 회장의 일대기 가운데 후손들이 평가해야 할 대목 또한 많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교육받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경영난으로 존폐위기에 처한 영흥학교를 새롭게 설립한 점이 그렇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당시 주일공사였던 김용주가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 5대 궁궐과 4대문 등을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해가며 우리 역사 유물과 주요 문화재들을 보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하니 크나큰 공로다. 단지 이 자료를 계기로 있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시인 김수영이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거대한 뿌리>)고 노래했듯이 친일과 독재라는 우리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고쳐나가려는 용기만이 우리를 진창의 역사에서 구원해줄 거라고 믿는다. 큰 꿈을 꾸는 김무성 대표가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라야 열강의 틈바구니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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