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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콧수염 단 메르켈' 나타난 까닭?

 
[주간 프레시안 뷰] 그리스 위기의 정치경제학
 
 
그리스는 어디로?

열흘 전,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는 "무조건 항복"이라고 할 만한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거기엔 그리스 자산의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지출 삭감 등등 전통적인 IMF '구조개혁' 프로그램이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제정된 법은 되돌릴 수 없고, 새로운 정책은 IMF나 채권단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공공연하게 주권을 훼손하는 조항도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 국민투표의 결과인 "오히(No)"를 배반한 겁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더 이상의 긴축정책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아도 합리적인, 어쩌면 유일한 해법을 지지한 겁니다. 더 강한 긴축은 그리스의 총수요를 줄여서 그리스 경제를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뜨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이후의 여론조사를 보면 70%의 응답자는 동시에 유로존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긴축을 완화하면서 유로존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이 둘을 양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채무재조정, 즉 부채 탕감입니다. 아르헨티나 사태 때처럼 어떤 금융기법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본질은 상당 액수의 빚을 깎아 주는 겁니다. 그래야 그리스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동시에 빚을 갚을 가능성도 생깁니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무릎을 꿇었고, 국내외의 보수 언론은 메르켈 독일 총리의 결단을 예찬하기 바빴습니다. 우리 보수언론들은 고집 센 여성 총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영국 대처 총리에 대한 열광 또한 그랬으니까요. 

이 항복문서를 집행할 국내 개혁입법안도 그리스 의회를 무난히 통과했습니다. 집권 정당인 시리자의 일부 의원과 극우 황금새벽당이 반대했습니다만, 과거의 여당인 '중도좌파' 정당들이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치프라스 총리의 지지율은 60%를 넘어 야당 정치가들의 인기를 10% 포인트 가량 앞서고 있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자존심을 적당히 회복하고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라는 엄청난 모험을 피한 데 대해 안도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치프라스 총리는 정권의 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한 거죠(이제 위기를 불러온 그리스 지배계급에 대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대반전이 벌어진 걸까요? 우선 우리 언론들의 상찬하는 바대로 독일의 옹고집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선 구조개혁, 후 채무협상"입니다. 치프라스의 항복 선언 이전에 이뤄진 바루파키스 전 재무부 장관의 인터뷰는 그 동안의 협상에서 독일, 또는 채권단(유로그룹)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바로 가기)

한 마디로 바루파키스는 협상장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어떤 논리를 내세워도 그들의 답은 포괄적인 '구조 개혁안'에 먼저 서명하라는 거였죠. 몇 가지 합의할 수 있는 개혁안(세금 등)을 먼저 시행하면서 나머지를 논의하자는 제안도 물론 통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이 협상 게임은 기묘한 모습이었습니다. 양쪽 다 그렉시트로 상대를 위협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리스 쪽에선 금융시스템이 이미 마비된 상태였고 독일 쪽에선 '게으른 베짱이의 응징'이 국내에서 가장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이런 불균형을 깨려면 그리스의 "그렉시트" 위협이 믿을 만하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이 게임이 치킨게임이라는 걸 기억하시나요?). 하지만 인터뷰를 보면 바루파키스 측근의 4,5명이 대책을 논의했을 뿐, 정부 차원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루파키스는 이후 치프라스의 항복 문서를 "제2의 베르사이유 협약"이라고 맹공했습니다만, 인터뷰를 할 때 이미 이런 결과를 예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미련 없이 사임했었던 건지도 모르죠. 

유럽의 꿈은 어디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지한 "유로존 잔류와 부채 탕감"이라는 해법은 물 건너갔습니다. 독일의 결정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 또는 전략적인 것이었습니다. 메르켈보다 더 완고한 것으로 알려진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통독 당시 서독 측 협상대표였다고 합니다. 쇼이블레는 협상 조건이 가혹할수록 동독 지역의 수많은 자산을 헐값으로 인수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체험한 사람입니다. 또 바늘 끝 같은 틈도 없이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전략은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나아가서 바루파키스는 그리스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대표들이 가장 적대적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스가 유리한 협정을 이끌어 낸다면 이들 나라의 현재 집권세력은 바로 실각할 테니까요. 독일 쪽에선 스페인의 포데모스당이 제2의 시리자가 되고, 연이어 '남쪽'에서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는 게 가장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아주 엉뚱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지난 30년 간 이른바 "IMF 조건"(IMF Conditionality,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조건)을 강요해서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줄푸세')를 전파해온 IMF가 현재의 협상안에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IMF는 채권단이 1) 상당한 규모의 부채탕감, 2) 30년의 지불유예, 3) 매년의 보조금 등 세 가지 중 택일하지 않으면 구제금융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이들 세 수단의 조합도 가능하겠죠. 

치프라스 총리는 막판 협상에서 IMF가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오히려 IMF가 그리스 국민의 편이 된 겁니다. 현재 160억 유로를 떠안고 있는 IMF가 철수한다면 최대 860억유로의 구제금융도 물 건너 가게 되니까 이건 분명 '신뢰할 만한 위협'입니다. 

어쨌든 IMF 변수가 어떻게 처리되는가가 남았을 뿐, 현재 그리스의 사태는 독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완벽한 승리는 앞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힘을 만끽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불안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자 슈피겔은 나치의 친위대와 메르켈 총리가 함께 서 있는 합성사진을 표지에 올렸습니다. 블로메, 뵐, 쿤츠 등 8명이 함께 쓴 이 장문의 기사 제목은 "제4제정(The Fourth Reich)"입니다. 메르켈의 독일은 신성로마제국, 비스마르크의 제2제정, 히틀러의 제3제정에 이은 제4제정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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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대포가 아니라 유로를 앞세운 독일은 사실상 유럽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독일은 자신의 규율(긴축)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군기반장(discipliner)"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한 나라의 주권을 여지없이 짓밟는 것이었고 그리스 국민이 겪은 모욕감은 아주 오랫동안 상처로 남을 겁니다. 그리스나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데모에는 '히틀러의 콧수염을 단 메르켈'이 꼭 등장합니다. '남쪽'의 시민들은 현재 독일의 태도에서 나치를 연상하고 있습니다. 치프라스가 만일 그리스의 빚을 제대로 받으려 한다면 2차대전 때의 배상부터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문제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유럽을 지배하려 하지만(dominate), 이끌려 하지는(lead)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독일을 "절반 헤게모니(semi-hegemon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히 유로존 위기와 관련해서 이 태도는, 독일 특유의 "질서자유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경험에서 나온 중앙은행의 독립성, 알뜰살뜰 아껴서 위기를 극복한 경험(긴축)이라는 독일의 규범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동시에, 유로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남쪽의 빚을 나눠서 부담하지는 않으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의 통합을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하버마스에게 현재의 위기와 독일의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울 겁니다. 그는 메르켈이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해서 경제적 폐해를 끼칠 뿐 아니라(이 노학자는 '독극물'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유럽통합의 대의인 연대를 해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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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관한 첫 편지에서 말씀 드렸듯이, 생산성 격차가 나는 나라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구조적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는 환율메커니즘이 없는 상태에선 적자국의 임금과 물가가 내려가야 합니다. 적자국에게 재정보조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사전에 "안정성장협약(stability-growth pact)"을 맺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유로 출범 후 10년 동안 금융은 이 불균형을 메우고 또 은폐했습니다(골드만삭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라이시 교수의 글(☞바로 가기)을 참조하십시오.)

케인스가 브레튼우즈 협상에서 제안했던 "청산동맹"(경상적자국 뿐 아니라 흑자국에도 벌금을 물리는 제도)은 유럽의 이런 불균형뿐 아니라 글로벌 불균형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청산동맹"의 다양한 변형이 해결책으로 각광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불균형은 심해질 것이고 아름다운 유럽의 꿈은 신기루로 판명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스트렉(Streeck, Wolfgang)은 하버마스를 '경제문맹'이라고 비판했죠.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진정으로 필요한 건 유럽시민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연대와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긴축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시켰습니다. 이런 태도를 지닌 리더가 과연 존경을 받을까요?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이, 100년이 넘은 유럽의 꿈(1905년에 레닌도 "유럽합중국에 대하여"라는 칼럼을 썼으니까요)은 백일몽이 되는 중입니다. 
 

▲ 지난 2010년 한국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당시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연합뉴스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

요즘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한 주 동안 일어난 주요 경제 사건의 맥을 짚는다는 '주간 프레시안 뷰'의 기획 의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금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이번 주에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자세히 해설할 여력이 없으니까요. 
(☞바로 가기)

우리의 가계부채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태, 특히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고소득층의 부채가 많아서 괜찮다고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거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이들이 제일 위험해진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데 혈안이 된 정부의 정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죠. 

그래서 정부는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지속되면서도 가계부채는 늘어나지 않고, 동시에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경우에 대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첫째, "처음부터 나누어 갚아나가는 방식"(분할상환)으로 대출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가계의 대출 증가 속도를 줄이는 겁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갚아야 할 돈이 꽤 크다면 돈을 능력 이상으로 빌리지는 못할 테니까요. 둘째, "상환능력 심사방식을 선진국형으로 개선"해서 금융기관의 대출을 줄이고 셋째, "제2금융권의 비주택 대출이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 강화"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넷째로는 "관계기관 합동으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즉 돈을 빌리는 가계, 빌려주는 금융기관, 그리고 감독기관 3자가 모두 자제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만시지탄이라고 할까요? 이들 정책의 방향은 옳습니다. 하지만 "빚 내서 집 사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며 한껏 빚을 늘려 놓고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부동산경기를 살리면서 동시에 가계부채도 관리한다는 모순된 목표를 추구하느라 우왕좌왕하는 중입니다. 

물론 무소불위, 박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경제성장입니다. 괜찮다면 빚을 내도록 방치하고, 구조개혁 없이는 성장도 있을 수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4대 개혁을 촉구하는 모습은 어딘가 콧수염 단 메르켈을 닮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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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 전통이라는 이름의 학대

 
게시됨: 업데이트됨: 
SAN FERMIN

 

 

 

 

 

 

 

 

 

 

 

 

 

 

지난 7월 14일, 스페인 북부 나바라 (Navarra) 주의 주도(州都)인 팜플로나(Pamplona)시에서는 9일 간 열린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가 막을 내렸다. 이 축제에서 열리는 '소몰이' 행사는 전세계에서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있는 반면, 국제적인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스페인어로 '엔씨에로(Encierro)'라고 하는 소몰이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에도 등장한다.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아침 8시 그날 오후에 투우에 쓸 소 여섯 마리를 거리에 풀어 질주하게 만드는데, 이 소들 사이에서 흰 옷에 빨간 천을 두른 수천 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함께 달리는 행사다.

단순히 '소와 함께 달리는' 행사라면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가 있다. 소에게 정신적인 혼란을 주기 위해 그 전날부터 암흑 속에 가둬 두는데,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소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앞도 안 보이는 데다 수많은 군중에 휩싸여 좁은 길을 달리면서 소가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러지거나 벽에 부딪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소를 모는 과정에서 술에 취한 군중들이 소를 발로 차거나 신문지를 만 것 등으로 때리며 자신의 용감함을 과시하는 것도 놀이의 일부분이다.

군중들 중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하기는 매한가지다. 1924년부터 총 15명이 산페르민 축제에서 목숨을 잃었다. 올해에는 사망자는 없지만 열 다섯 명이 뿔에 찔려 부상을 당했다. 올해 7월 스페인 동부 알리칸테(Alicante)의 작은 도시의 축제에서는 44살의 프랑스 관광객이 소 뿔에 찔려 숨졌다.

술에 취한 인파들로 인한 사고도 잦다. 영국 가디언지(The Guardian)에 따르면 특히 올해에는 한 여성이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동물보호단체뿐 아니라 여성단체들에게도 원성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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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민 축제의 소몰이 장면. 소와 군중 모두 부상당하는 일이 속출한다. (c)GUIA ILUSTRADA

산페르민 축제의 소몰이 영상 (c)League Against Cruel Sports

용감한 싸움? 연출된 동물학대?

소몰이에 끌려 나온 소들은 '플라자 데 토로(Plaze de Toro)' 원형 경기장으로 몰아넣어진다. 경기장에서 소들은 부상당한 몸으로 한참을 군중들에게 놀림 당하다가, 같은 날 오후 투우 경기에 사용된다.

투우는 스페인어로는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 직역하면 '소의 질주(running of bulls)' 정도로 불린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불파이팅(bullfighting)' 이라고 한다. 로마 시대에 사람과 맹수의 싸움을 즐기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투우는 17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페인, 포르투갈, 남프랑스 일부 지역과 멕시코, 콜럼비아, 에쿠아도르, 베네주엘라, 페루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남아있다.

전통적인 투우는 총 세 개의 무대로 구성되고, 무대마다 다른 종류의 투우사가 등장한다. 첫 번째 무대에는 말을 탄 '피카도르(Picador)'가 등장해 소의 목에 '피카(Pica)'라고 불리는 창을 내리 꽂는다. 소가 피를 잃으면서 힘이 빠지도록 하고, 목 근육의 힘을 약화시켜 남은 경기 동안 목을 잘 가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세 명의 '반데릴레로(Baderillero)'가 각각 두 개, 총 여섯 개의 알록달록한 작살을 소의 어깨에 꽂는다. 이쯤에서 소는 상당히 많은 양의 피를 잃게 되고 점점 탈진해 가며, 공포심에 날뛰게 된다.

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주역인 '마타도르(Matador)가 검과 '물레타(Muleta)'라고 하는 막대기에 감은 붉은 천을 들고 등장한다. 이 단계에서 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출혈과 자상, 골절 등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거의 미쳐버린 초죽음 상태다. 마타도르는 마치 스페인 전통 춤과도 같은 동작으로 소를 유인하고 몸을 교묘히 빼는 퍼포먼스로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장내의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마타도르가 소의 심장에 검을 찔러 죽이면서 경기가 끝난다.

규칙대로라면 심장에 칼을 꽂아 즉사시켜야 하지만, 반 톤이 넘는 덩치의 소가 단 칼에 죽는 일은 드물다. 보통 세 번, 네 번씩 폐와 심장을 칼로 난도질 당하는 동안 소는 어김없이 피를 토한다. 소가 쓰러져 경기가 종료된 다음에도 몸만 마비 상태일 뿐 의식이 남아있는 채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마타도르가 훌륭한 싸움을 했다는 의미로 청중의 반 이상이 흰 손수건을 흔들면 마타도르는 소의 귀를 칼로 잘라 상으로 갖게 되는데, 이 역시 의식이 붙어 있는 상태로 행해진다.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에게 존엄한 죽음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소는 뿔이 말에게 매달아진 채로 짐짝처럼 경기장 내를 질질 끌려다니고, 이미 피를 보고 흥분한 관중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패배자'에게 종종 맥주캔이나 쓰레기를 던지며 야유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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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소는 말에 매달려 경기장을 끌려다닌다. 의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c)Tomas Castelazo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

경기에 출전하기 전 소들을 깜깜한 상자 속에 하루에서 이틀을 꼼짝할 수 없도록 가두어 두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투우사의 인명피해를 막고 손쉽게 죽일 수 있도록 신체를 훼손하는 '조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행화된 지 오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간지각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뿔을 갈아내거나, 목을 잘 쓸 수 없도록 목 힘줄을 자르는 것이다. (1997년 전문 투우사 230명이 소속된 스페인 투우사 협회(the Confederation of Bullfighting Professional)는 이에 대한 수의학적 조사를 반대하기 위해 파업을 한 적도 있다.) 시야를 흐리게 하기 위해 눈에 바셀린을 바르고, 잘 듣지 못하도록 귀를 젖은 신문지로 틀어 막거나 콧구멍에 솜을 집어넣어 호흡을 제한하기도 한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리에 부식성 용액을 바르거나, 민감한 생식기에 바늘을 꽂아두어 움직임이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소의 성향에 따라 흥분제나 진정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즉, 투우 경기에 나오는 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코에서 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힘이 세고 폭력적인 야수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불안한데다, 이미 당할 대로 당한 고문으로 아프고 지쳐있는, 극도로 겁에 질린 동물일 뿐이다. 깜깜한 곳에 갇혀 불안함에 떨던 소는 경기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 살기 위해 빛이 보이는 곳으로 온 힘을 다해 질주한다. 그러나 고통의 끝인 줄로만 알았던 불빛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은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고문과 자신의 죽음 앞에 환호하는 관중들이다.

투우사 혼자 맨손으로 건강한 소와 소위 '맞짱'뜨는 것도 아니고, 창, 작살, 칼로 무장한 장정 여섯 명 대 이미 겁에 질리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소의 싸움이라니. 어쩌면 '싸움(Fight)'이라기 보다는 '학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카탈루니아, 2010년부터 '투우 금지'

'전통'이라는 주장과 '동물 학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투우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스페인 카탈루니아 의회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3년 5월 멕시코 소노라 시에서도 금지되었으며 2011년 에콰도르에서는 오락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3년 10월 프랑스 녹색당은 소를 죽이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투우 경기의 숫자도 매년 감소 중이다. 스페인 문화부(Ministry of Culture)의 집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간 열리는 투우 경기의 횟수는 3.650회에서 2,290회로 감소했다. 계속되는 불황과 카탈루니아의 금지법 발효 등으로 최근에는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 국민들 대부분도 세금이 투우를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의 의뢰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퍼센트가 투우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고 답했고, 투우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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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민 축제에서 투우 반대 시위를 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들(c)PETA UK

'전통'은 악습에 면죄부 주는 마법의 단어 아니다.

'전통이냐, 동물 학대냐'의 논란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진정한 '전통'의 의미다. 수 백 년, 수십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해서 모두 '전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투우와 비교할 수 있는 예로는 영국에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행해지던 '곰 미끼놀이(베어 베이팅,Bear-baiting)'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 스포츠는 곰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훈련된 개들이 공격해 뜯어먹게 하는 것을 군중들이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1835년 동물학대금지법이 영국의회를 통과하면서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아마 요즘 세상에 영국에서 '전통'이었기 때문에 베어베이팅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회교도 국가에서 여성의 성욕을 억제하고 혼전순결을 지키게 하기 위해 여성의 성기 일부를 절단하는 여성 할례는 무려 기원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비록 '종교적 관습'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자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전통'이라며 나서서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송나라 때부터 명,청나라까지 이어진 전족(纏足) 도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전통'은 살아있는 생명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폭력을 가하는 행위에 전부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가는 시대의 상식에서 벗어난 과거의 관습은 '예전에는 그랬었지'하며 역사책 속으로 떠나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인류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대대손손 물려 줄 가치가 인정되는 문화 만이 노력과 비용을 들여 계승할 가치가 있는 진짜 문화이고 전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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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원장, "피는 피로써, 미제 총대로 결산"강조

 
 
신천박물관 신축 현지지도 "복수심의 발원점"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3 [10: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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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금 미제의 기만 선전에 넘어가 미국을 평화와 인권의 수호자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현실"이라며

 

"미제의 야수성과 교활성을 우리가 고발하고 결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들은 23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오는 27일 정전협정 62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만행을 전시한 신천박물관을 8개월만에 다시 찾아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신천박물관이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일떠섰다"고 소개하고 "김정은 동지가 새로 건설한 신천박물관을 현지 지도했다"고 밝혔다.

 

신천 박물관은 6.25 당시 전쟁 당시 미군이 신천군 주민 3만5천여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며 이 박물관을 '반미교양'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이곳을 방문해 신천박물관을 새로 건설할 것을 지시했으며 북은 곧바로 설계에 들어가 지난 2월26일 착공, 철야 공사 끝에 거의 4개월만에 박물관 신축 공사를 완공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이 '전승절(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기념일(7월27일)을 앞두고 박물관이 건축미학적으로 손색 없이 새로 지어진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신천박물관은 계급교양의 거점이고 복수심의 발원점이며 미제의 야수적 만행을 낱낱이 발가놓는 역사의 고발장"이라며 박물관을 통한 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 것을 당부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제가 제놈들이 저지른 죄행을 감춰보려고 아무리 교활하게 놀아대도 이 땅에 남긴 피의 흔적은 절대로 지울 수 없다"며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하며 미제와는 반드시 총대로 결산해야 한다"고 검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또한 "원쑤들에 대해 털끝만한 환상이라도 가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신천 땅의 피의 교훈"이라며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의 '반제반미교양'을 강화하는 것이 '조국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미제의 기만 선전에 넘어가 미국을 평화와 인권의 수호자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현실"이라며 "미제의 야수성과 교활성을 우리가 고발하고 결산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흙 한삽 한삽을 미제와 계급적 원쑤들의 가슴팍에 멸적의 총창을 박는 심정으로 군인건설자와 인민들의 노력으로 우리의 혁명진지, 계급진지의 사상적 보루가 솟아오르게 됐다"고 치하하며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 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기남 당 비서, 
리재일 당 제1부부장, 김여정 당 부부장, 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이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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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보며

남북물류포럼 칼럼

2015. 07. 23
조회수 17 추천수 0
 

 전현준박사.jpg

 7월 들어 북한 고위급 인사가 탈북했다는 내용을 전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이들 보도들이 사실인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북한의 핵심비밀이 밝혀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 고위 탈북자들이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비밀을 어느 정도 제공했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노동당 39호실이나 제2경제위원회 출신 고위인사가 맞다면 상당한 정도의 기밀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39호실이나 제2경제위원회는 북한체제의 핵심기구들이다. 그만큼 속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비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북한 군사비가 어느 정도이고 핵무기 개발비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 등은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은 일반 탈북자들은 알 수 없는 부문이다. 따라서 금번 고위급 탈북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비밀들이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언론보도로 본다면 탈북자의 계급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탈북자는 약 27,000명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 신분이 노동자․농민이었다. 인민군 계급도 거의 인민군 상좌(중령급) 미만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고위급 탈북자들은 일반 탈북자와는 달리 우리의 차관급들이다. 북한의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김정은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 부서의 주요 인물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북한 핵심계층에도 ‘잠재적’ 저항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과 앞으로 ‘제2의 황장엽’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셋째, 북한 체제 변화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유의미한 일이 발생한 점이다. 그 이유는 북한 체제 유지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통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관료 및 주민들에 대한 사상적, 육체적, 물질적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왔다. ‘공포에 의한 지배’ 정책인 것이다. 김정은이 등장 이후 리영호․장성택․현영철․마원춘 등 최측근을 숙청한 것으로 밝혀지거나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은 철저히 김일성․김정일 노선을 따르는 ‘경로 의존적(path dependency)’ 통제방식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Machiavellis)t’인 것같다. 마키아벨리는(Machiavelli)는 “군주는 존경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부터 유지된다”라고 강조했고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고위급 탈북 사건들이 확인된다면 그러한 김정은의 공포를 통한 지배 정책을 무색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유념해서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북한의 통제장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국가안전보위부는 그 어느 독재국가들의 통제기구보다 막강하다는 데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보위부에 조차 맹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의한 지배는 피지배자들이 이를 충실히 따랐을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이에 저항하면 소용이 없게 된다. 오히려 지배자가 역공을 당하게 된다.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이 공포스런 지배에도 불구하고 민중혁명이나 군부 쿠데타에 의해 타도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통제기구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김정은도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 체제의 변화 문제와 관련해 어떤 판단도 성급하게 내려서는 않된다. 그 이유는 최근의 탈북자들을 보더라도 자유주의 혁명 사상에 무장되어 있는 것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탈북한 이유가 이들이 자유주의 혁명 사상을 공부하여 “군주도 과오를 범하면 타도될 수 있다”라는 사상 때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김정은의 통치행태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아니면 일정한 과오가 있는데 김정일 시대같으면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김정은이 조그만 과오도 숙청하는 것을 목도한 후 겁이 나서 탈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조차도 그들의 탈북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고위급 탈북 사건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단발적이고 비조직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부서가 서로 다르고 시기나 장소도 다르다. 이들이 사전 모의에 의해 탈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촘촘한 상호감시망을 가지고 있다. 북한 국내나 해외나 일정한 지위 이상은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거의 모두 도청당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통제가 느슨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있고 전반적인 통제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사전 모의나 상호 통화가 이루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북․중 국경을 통한 대량탈북은 아니다. 대량탈북이었다면 역사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후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게 된 배경이 동독 주민들의 인접국인 헝가리로의 대량 탈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은 개별적이며 극히 일부다.

   따라서 북한내에 대안 사상과 대안 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 사건들을 김정은 정권 붕괴나 북한 체제 변화와 직접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이를 무리하게 연계하면 잘못된 대북 정책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김정민, 고영환 등 중간급 인사 탈북, 1997년 당 서열 21위였던 황장엽 비서 망명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me=bbs_detail&idx=1471&cur_page=1&sP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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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국정원, 임씨 가족에까지 조사 범위 확대”

“큰딸·부인에 임씨 근황 물어”…네티즌 “특검만이 답이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죽음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숨진 직원 임모씨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그의 가족에게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고된다.

23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국정원이 사망 수일 전부터 해킹 프로그램 논란과 관련 임씨에 대한 강도 높은 감찰을 진행했으며, 이런 중에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임씨의 큰 딸에게도 국정원 감찰 담당자의 연락이 닿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임씨가 국정원 내 감찰반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국정원에서 큰 딸에게도 아버지의 최근 상황을 묻는 등 연락을 취하고 임씨의 부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내용을 조사하면서 더 큰 심적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머니투데이>는 사망 전 임씨는 해킹 프로그램 논란에 따른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자책감, 이에 따른 조직의 감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면서, 감찰 과정에서 가족들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가장으로서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머니투데이>는 육사 생도로서 향후 공직에 복무하게 될 큰 딸이 해킹 프로그램 논란과 관련해 임씨의 ‘실수’로 혹시 모를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구성원들의 ‘조직 반감’이 고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평소 강직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적지 않은 신뢰를 받아왔고, 유서를 통해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조직을 보호하는 사명감을 내비쳤는데 ‘가족까지 불안하게 만든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머니투데이>는 전했다.

다른 사정당국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직원들의 자살 또는 자해 사건들은 주로 특유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에서 비롯된 반면 이번에는 강도 높은 감찰을 통해 사실상 ‘조직이 직원을 사지로 내몬 것’”이라며 “수년간 국정원의 잇단 ‘실책’과 더불어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라고 신문에 밝혔다.

임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그의 가족에게까지 조사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전해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책임질 사람은 위에 버젓이 있는데 실무자만 압박하여 죽음으로 몰았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이 밖에도 “본질을 흐려서 시간끌며 진 빼겠다 그거지”(개들*****), “이 정권의 주특기인가? 조작, 모사, 위조”(최**), “국정원 하는 짓이 조폭의 내부 조직원 단속하는 짓과 다를 게 없다”(dan****), “언제나 독재시대에는 많은 애통한 죽음들이 있었고 남겨진 가족들이 고통을 받았다”(cat*****), “특검밖에 없다”(범**), “양심선언이 필요합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정상적일 때 하는 말이지 나라 말아먹는 범죄행위까지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du**) 등의 반응들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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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민간단체, 오늘 개성서 논의...정부 접촉 승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7/23 10:08
  • 수정일
    2015/07/23 10: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광복 80주년 민족공동행사로 개최되나
 
남북 민간단체, 오늘 개성서 논의...정부 접촉 승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3 [08: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8.15 민족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사전 접촉이 오늘 개성에서이루어져 민족공동행사가 순조롭게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내. 외신들은 정부가 지난 22일 광복 70주년 8·15 남북공동행사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민간단체의 사전접촉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남북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되면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이후 10년 만에 8·15 공동행사가 개최되게 된다

 

남측의 '광복 70돌, 6·15 공동선언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남측 준비위)는
지난 6일 북측의 '6·15 공동선언 15돌·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북측 준비위)에 8·15 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제안했고, 지난 20일 북측이 이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북측은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다음달 13∼15일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남측의 각계각층에 문이 활짝 열려있다며 초청의사를 보였다.

 

민족통일대회는 백두산 자주통일 대행진 출정식과 평양과 판문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모임, 자주통일결의대회 등의 행사로 구성된다.

 

남.북측 준비위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함께 문화행사와 학술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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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된 변호사, 그는 죄가 없다

[주장] '경찰폭행' 혐의 민변 변호사, 24일 1심 재판부 무죄 판결 내리길

15.07.22 21:23l최종 업데이트 15.07.22 21:59l

 

 

지난 7월 6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피고석에 낯익은 이들이 대거 서 있었다. 이들의 직업은 모두 변호사. 평소 같으면 당연히 법정 우측 변호인석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그 자리가 아니었다. 피고인석에 나란히 선 이들 중 유난히 흰 머리가 눈에 들어오는 변호사가 있었다. 바로 이덕우 변호사였다.

이덕우 변호사.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994년 12월 24일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당시 나는 재야단체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부장이었고 그는 인권 위원이었다. 그렇게 처음 그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지난 21년간의 인연은 참으로 깊고 진했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이덕우 변호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권 변호사 중 한 명'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1987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시국사건에 늘 '이덕우' 석자를 올렸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시국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중 나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1998년 판문점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었다.

집요한 사람, '인권 변호사' 이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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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년간 '인권 변호사'로 일해온 이덕우. 그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주요 시국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일이 없다. 특히 용산참사는 그에게 잊지 못한 아픔이었다. 참사 5주기를 맞아 추모위원에 참여해 달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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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어느 날,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서울 명동의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실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바로 그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 중 하나로 언급되는 '판문점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이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만 17년째, 이덕우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한 번도 손을 떼지 않았다. 그 세월동안 이 변호사는 아들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김훈 중위 아버지의 전쟁'에 든든한 전우였다.

이덕우 변호사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2002년 12월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제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다가 업무가 종료된 후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덕우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뜬금없이 "요즘 뭐하냐"고 묻더니 "나하고 같이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세상 없이 바쁜 분이 난데없는 여행을 제안하니 뭔가 이상했다. 알고보니 역시나였다. 2002년 12월 그해, 경남 창원의 한진중공업에서 배달호 노동자가 사측의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고자 분신 자결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변호사는 나에게 그 사건 진상 조사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함께한 진상 조사단 방문 길에서 나는 이덕우 변호사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늘 합리적이고 상냥한 성품, 누구에게 모진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그러다 술 한잔 마시면 늘 허허실실 웃는 착한 사람. 그런 이미지의 이덕우 변호사가 한진중공업의 관리자 건물 앞에서 보인 분노는 나에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배달호 노동자가 분신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면서 사측의 입장도 듣고자 했다. 이에 사전에 면담 요청을 마친 후 약속한 시각에 한진중공업 관리자 건물을 방문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측 관리자가 아니라 굳게 닫힌 철문이었다. 그들은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황량한 벌판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여러차례 문을 두드리며 면담 요청을 거듭했다. 하지만 닫은 철문은 끝내 침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이덕우 변호사의 눈물 섞인 괴성이 내 귀에 들려왔다. 굳게 닫힌 그 철문을 향해 분노의 발길질을 하며 분신한 배달호 대신 외치는 눈물이었다.

"이 놈들아. 사람이 죽었다. 너희를 위해 일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말이라도 좀 해달라는데 이것조차 못하겠다는 것이 사람이냐. 어서 문을 열란 말이다. 문을..."

그날, 이덕우 변호사의 외침은 그 넓디넓은 100만평 한진중공업 벌판 위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덕우 변호사의 진심을 봤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 나에게 이덕우 변호사는 그런 사람으로 남았다. 

고시 공부중 갑자기 돗자리 챙기며 나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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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에 참석한 이덕우 변호사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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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대 77학번 출신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법조인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잘 나가는 금융 투자회사에 취직하여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가 1984년. 그러나 그러한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채 1년이 되지 않은 1985년, 이덕우는 아내와 아버지에게 "회사를 그만 두고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판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리고 이어진 3년간의 고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1차 시험 합격후 2차 시험을 연거푸 낙방. 결국 처음부터 다시 1차 시험을 봐야 했는데 다행히 1987년 실시된 1차와 2차 시험을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2차 시험을 두 번이나 실패한 후 다시 처음부터 도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느낀 좌절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고시 준비 때도 이덕우 변호사의 일상은 남달랐다.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이 어느 땐가 나에게 들려준 그때의 특별한 일화가 있다. 고시 준비를 할 당시 이덕우 변호사가 살던 곳은 서울 돈암동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이었다. 3년이나 고시에 매달리는 남편을 내조하며 기약없는 내일을 애타하던 그때, 갑자기 공부하던 남편이 법전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더니 아내에게 "돗자리를 챙겨 따라오라"며 앞장서더라는 것. 매일 법전만 파고 있으니 자기도 답답해서 어디 물 좋은 곳에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알고 내심 부인은 반가웠다고 한다. 

그래서 앞장 서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쫓아가니 도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사는 옆 동네 철거촌. 1987년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이 확장되던 그때, 서울 돈암동에서는 철거민들의 싸움이 치열했다. 당시 고시생이었던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웃었다. 고시 공부하다가 뜬금없이 찾아간 곳이 전혀 상관없는 남의 동네 철거민 농성장이라니. 

그 후 고시생 이덕우는 공부를 하다가 자주 철거민들의 농성장을 찾아 갔다고 한다. 그리고 가져간 돗자리를 깔고 부부가 앉아 철거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를 불렀다고 한다.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은 "덕분에 그곳에서 민중가요를 배웠다"며 웃었다. 그런 사람이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연수원에 들어간 때는 1987년.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가는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인권 변호사로서 들어선 첫 계기는 그곳 연수원에서 '인권학회'라는 서클을 만들면서였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연수생들과 함께 인권 운동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그는 인권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훗날 '인권운동 사랑방'을 만든 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에게 받은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우리나라 인권 운동의 큰 획을 긋는 인권변호사로 일해 왔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연대를 하면서 늘 수임료를 받지 못해  '돈 못 버는' 변호사로 유명하다. 돈 많은 사람이 소위 변호사를 '산다고' 하는데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은 변호사 한 명 만나는 것이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덕우 변호사는 인권단체를 통해 함께해왔다.

그런 이덕우 변호사가 지금, 변호사 자격을 박탈 당할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그 계기가 된 사건 역시 이덕우 변호사가 해오던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연대'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그 사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서울 대한문에서 집회를 할 때 일어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불법 행위에 이 변호사가 항의하던 중 발생한 일을 검찰이 문제 삼고 나서면서였다.

이덕우 최후진술 '나는 다시 거리로 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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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우 변호사는 진보정당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민주노동당 때부터 진보신당, 그리고 지금의 노동당까지. 보편적 복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중인 모습이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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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과 8월.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한 집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이 과정에서 절망에 빠진 해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덕우 변호사는 이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해고자의 복직을 촉구하고자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불청객이 있었다. 경찰이었다. 문제가 발생한 날에도 경찰은 신고된 집회 장소의 1/3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합법 집회를 방해하고 있었다. 경찰의 집회 방해 행위를 놓고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이덕우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이 경찰의 팔을 잡아 끄는 등의 행위를 했다며 형사 기소했다.

그리고 이어 검찰 측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자신들이 기소한 변호사들을 징계해 달라고 청구한다. 이번 기회에 각종 공안사건에서 눈엣가시처럼 활동해온 인권 변호사들을 억압하겠다는 과도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검찰로부터 이들 변호사들의 징계 청구를 받은 대한변호사협회는 징계 결정을 형사재판 결과 후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지난 7월 6일.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10월 불구속 기소된 이덕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에 대해 검찰이 1심 구형을 내렸다. 이 날 검찰은 이덕우 변호사에게 징역 2년을, 김유정(35), 송영섭(43) 변호사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년 6월을, 그리고 김태욱(39) 변호사에 대해서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들 변호사들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유죄를 주장했다. 반면 민변 측은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헌법상 기본권과 법치주의 수호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면서 "검찰이 이들 변호사들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집회 장소의 1/3을 차지하면서 집회를 방해한 경찰을 기소해야 마땅하다"며 강력 비판했다.

그리고 이날, 1987년 사법고시 합격 후 지금까지 누군가의 억울함을 변호하고자 25년간 섰던 변호인석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이덕우는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최후 진술을 남겼다. 

"변호사 등록 취소가 될 수 있는 피고인이 되자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 그리고 일부라도 보았던 여러 사람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정성이 모자라지 않았는지 성찰하였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만났던 이들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입니다. 이 사건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저는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이날 이덕우 변호사의 최후 진술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검찰이 처음 자신을 형사 기소한 날, 이덕우 변호사의 첫 마디는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광입니다"였다. 그러면서 이어진 그의 말.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쌍용차 해고, 광우병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그리고 이라크 파병 등을 반대하고자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시민들이 기소되고 처벌 받았다"며 "그러한 수많은 촛불 중 하나로 우리 변호사도 인정해 줬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이덕우, 그는 무죄다

이덕우 변호사의 말에서 나는 잊었던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정희 유신 독재하에서 조작한 '민청학련' 구속자 김병곤씨의 최후 진술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김병곤씨는 이철, 유인태, 황인성 등 같은 구속자들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유신 독재하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는데 누구들 두렵지 않을까.

그때 민청학련 구속자 중 가장 어린 사람이 서울대 상대 출신의 71학번 김병곤씨였다. 그러나 마지막 최후 진술을 위해 피고인석에서 일어선 김병곤씨의 첫마디는 눈물속에 공판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김병곤의 첫마디, "영광입니다"였다.

"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사형이라는 영광스런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김병곤씨가 사형을 구형받은 유신독재시대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흘렀지만 민주주의 현실은 또 다시 역류하고 있다. 그 엄혹했다던 유신 독재하에서도 다행히 김병곤은 사형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검찰은 '변호사 신분에 있어서는' 사형과 다르지 않은 징역 2년을 이덕우 변호사에게 구형했다. 만약 이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된다면 우리는 '인권 변호사' 이덕우를 잃게 될 것이다. 변호사가 금고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이덕우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인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오는 24일 오후 1시 50분. 이날 서울 중앙지방법원 합의 28부 재판부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나는 주장한다. 

이덕우 무죄! 김유정, 송영섭, 김태욱 각 무죄!

이덕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인의 무죄를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해달라. 우리의 염원과 기도가 이 나라, 메말라 버린 민주주의의 땅에 단비로 내릴 때까지 함께해 달라. 나는 정의와 진실이 바로 잡히는 그날까지 '인권을 위해 끝까지 싸운'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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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길 키리바시, "마지막 한 조각 땅 살리겠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7/22 11:14
  • 수정일
    2015/07/22 11: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수 2015. 07. 22
조회수 14 추천수 0
 

인터뷰/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
불안한 기후난민 전락 원치 않아, 교육 통해 ‘존엄한 이주’ 준비 중
주권국가 포기 못해, 미래 식량확보 위해 피지에 24㎢ 땅 구입도

 

IMG_4365.JPG»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대통령이 15일 타라와섬 바이리키 지역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선학평화상위원회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인구 10만5000여명의 키리바시는 국토 대부분이 평균 해발고도 2m의 작은 산호섬들로 이뤄져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특히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2003년부터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아노테 통(63)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제사회에 2050년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우리라 전망되는 자국의 실상을 알리며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어내려고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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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011__Photo-_Erin_Magee_-_DFAT.jpg» 키리바시 군도를 2011년 비행기에서 본 모습. 사진=Erin Magee/DFAT

 

이런 공로 등으로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로 오른 데 이어 지난달 인도의 생물학자인 모다두구 굽타 박사와 함께 선학평화상위원회가 주는 제1회 선학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선학평화상위원회 주선으로 키리바시 현지에서 아노테 통 대통령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15일 키리바시 수도 타라와의 대통령 집무실과 집무실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사저에서 이뤄졌다.

 

IMG_7918.JPG» 아노테 통 대통령이 15일 집무실에서 동쪽으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사저 앞 바닷가에서 손녀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키리바시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어떤 상황인가요?

 

해안 침식 때문에 마을들이 사라지고, 밀려드는 바닷물로 담수 지역이 오염되고, 농작물 생산에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는 적도 주변에 위치해 허리케인 피해가 없었던 곳인데, 올해 3월 바누아투를 강타한 사이클론 팸으로 키리바시의 몇몇 섬에서도 많은 집들이 바다로 쓸려나가는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이런 현상들은 키리바시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키리바시 정부에서는 계속되는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해수면이 상승하더라도 계속 우리 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서 지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사회가 우리의 모든 섬들을 다 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지원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섬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국민들 일부가 이주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에는 재원이 없어 기후변화 대응의 많은 부분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달려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나서주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 인구가 이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Luigi Guarino.jpg» 키리바시 해안가 모습. 사진=Luigi Guarino,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래서 ‘존엄한 이주’라는 정책을 추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존엄한 이주’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시지요.

 

나는 우리 국민이 ‘기후 난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격이 내려가는 것이고, 존엄성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더라도 존엄성까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국민들은 새로 들어가는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이 돼야 합니다. 그 사회에 부담을 주고 특별한 배려를 구하는 2등 시민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존엄한 이주’는 우리 국민이 교육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시민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지난해 피지에 약 24㎢의 땅도 구입하셨지요?

 

그 땅을 산 것은 미래의 식량 확보를 위한 투자입니다. 종종 ‘그 피지 땅에 국민들을 이주시킬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데,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미래에 누군가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있겠지요. 피지 정부는 필요한 경우 우리 국민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국제사회에 요구해온 인류애입니다.”

 

Erin Magee_DFAT.jpg» 티리바시에서 가장 높은 타라와의 해발고도가 3m임을 표시하고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이 섬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표지판. 사진=Erin Magee/ DFAT,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수면이 상승해도 키리바시에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해결책, 예를 들면 섬을 높이는 것 같은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입니다. 한국 정부에도 기술진을 파견해서 검토한 뒤 해결책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데 문제는 비용입니다. 우리는 동원할 재원이 없습니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와야 합니다. 키리바시의 문제는 매우 긴급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이주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권국가로서 키리바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어떤 형태나 크기로든 국가로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의 땅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국민을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이주한 사람들이 ‘저기가 우리나라다’라며 가리킬 수 있는 땅은 남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바다에 막대한 자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지구의 파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문제는 가장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고 기꺼이 자신들의 복지와 사치를 희생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Angela K. Kepler_Vostok_Island_AKK.jpg» 키리바시의 33개 섬 가운데 하나인 보스토크섬. 산호초로 형성된 낮은 고도의 전형적 모습이다. 사진=Angela K. Kepl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엔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현재까지의 협상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국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단 하나의 집을 가진 지구 시민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어떻게 될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 영향을 줄까’ 이런 것들이 불행하게도 많은 토론을 이끌어 왔습니다. 사실 올해 말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회의에서 어떤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 합의되든 그것은 우리의 운명에는 아무 차이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두 배인 국가입니다. 한국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우리와 같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들에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수익과 손실을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점은 이해합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겨울을 나느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을 너무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라와(키리바시)/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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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죽어서라도 복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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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에 나서는 여승무원들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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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 3월의 새벽이면 아직 어두웠을 시각. 그녀의 절망만큼이나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방에는 세 살짜리 아이와 남편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는 그녀들은 억이 막힌 채 꺽꺽 소리를 내며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설움이 북받쳐 가슴이 막히는데 야단맞을까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슬픔도 체한다. 눈물에도 때가 있다.

울 땐 울어야 보내지고, 슬퍼할 땐 슬퍼해야 덜어진다. 누구보다 슬프고, 놀랐고, 같은 피해자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따뜻이 위로받아야 할 그녀들은 죄책감의 사슬에 발목이 패이도록 묶여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조여드는 수갑처럼 울면 울수록 심장을 파고드는 사슬. 내겐 금식씨의 죽음이 그렇다. 하필 일본에 있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추모제 한 번을 못 지내고 장례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죽음.

길에서 금식씨랑 뒷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따라가기도 하고, 상규형이 입원했을 때 금식씨한테도 알려야 하는데 생각하다 흠칫하고, 전체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선 요새 왜 금식씨가 안 보이지 무심코 생각하다 또 가슴이 선뜻해진다. 미처 이별도 못했는데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파기환송'에 내내 울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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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안고 다시 거리로 나온 KTX 승무원 대법원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전 KTX 승무원에 대해 1·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 조합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부당판결을 규탄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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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선고가 있던 날. 멀리 충청도에서 그녀가 왔더란다. '파기환송' 선고에 내내 울다가 눈물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아이 때문에 서둘러 다시 먼 길을 떠났다 했다. 그 모습이 그녀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따뜻한 인사라도 건넸다면, 모래알 같은 밥이라도 한 그릇 나눠먹고 헤어졌더라면 덜 아팠을까. 그랬다면 덜 미안했을까. 재판에 지면 물어내야 한다는 8640만원. 그 후 그녀들의 통화의 주제는 가압류니, 명의이전이니, 이혼이니 이런 사나운 단어들이 생경스럽게 오갔다.

불안하지만 간신히 지탱되던 일상이 발밑에서 다시 흔들리는 예감. 일상을 빼앗겨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지. 신들의 나라에서 지축이 흔들려 수천 명이 거대한 무덤에 묻힌 건 천재지변이었지만, 수백 명의 희망과 간절한 소망과 십년세월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건 인재였다. 약자의 마지막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법이라는 인재.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에서 상식과 정의를 외면한 참사.

2심에서 이기던 날. 그녀들은 말했다. 

"그동안 우릴 비난했던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우린 시험쳐서 정규직이 됐는데 니들은 떼를 써서 정규직이 되려하냐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2년만 있으면 정규직 해준다고 약속해놓고 그 약속을 어긴 철도청은 마치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진실이었던 게 밝혀졌잖아요. 우리가 옳았다는 게 증명된 거잖아요."

그 기쁜 말조차 그녀들은 펑펑 울면서 했다. 그게 다시 뒤집힌 거다. 십년의 눈물이 외침이 절규가 외면당한 처절한 절망. 이제 어느 거리에 서서 어떤 말로 다시 외쳐야 하나. 얼마나 더 울어야 하나.

무죄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재판받으러 간 자리에서 법정구속이 선고되고 그 자리에서 철컥철컥 수갑이 채워지고 오랏줄에 묶이면 그럴까. 그 경우엔 그래도 형기라도 있다. 얼마를 살면 풀려난다는 기약이라도 있다. 기약없는 절망만큼 무릎이 꺾이는 일이 또 있을까. 저들은 그녀들이 각자 물어내야 하는 돈이 8640만 원이라고 살뜰히 계산했지만  25층에서 몸을 던진 그녀의 절망은 얼마치였을까. 십년세월을 잃고 세 살짜리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늦겨울 새벽의 25층 난간에 섰던 그녀의 슬픔은 얼마짜리였을까.

2년을 다니고 4년을 싸웠다. 그리고 4년을 기다렸다. 우리의 요구는 2년후에는 정규직을 시켜주겠노라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니 길어봐야 한 달을 넘지 않으리라 믿었던 싸움이었다. 경찰들에게 사지를 들려 끌려가기도 하고,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닭장차에 실려 연행되기도 했다.

건국 이래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의 정부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가 사장으로 있던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들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참한 일들이 눈앞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졌다.

'차라리 쭉 지는 게 나을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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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안부 묻는 KTX승무원 대법원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전 KTX 승무원에 대해 1·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3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 조합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부당판결을 규탄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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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날마다 울었던 싸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었던 싸움. 집회, 단식, 삭발, 천막농성, 점거농성, 고공농성. 안 해 본 게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졌고 1심에서도 이겼고, 2심에서도 이겼다. 같은 대법관(고영한 주심)에 의해서 파기환송당한 쌍차해고자가 그랬다. 차라리 쭉 지는 게 나을 뻔 했어요.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니까 정말 힘드네요.

이미 4개월이 지나 있었다. 뒤늦게 찾은 공원묘지. 그날은 공교롭게 내가 해고된 지 딱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동생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차안에서, 기력이 딸리면 끊어졌다 한웅큼의 기력이 채워지면 다시 이어지곤 하던 큰언니의 울음소리처럼 비가 내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듯하게 늘어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묘지석들. 저 중에서 서른다섯살의 새파란 무덤을 찾아야 한다. 처음엔 꽃이 놓이고 화분이 놓인 '예쁜' 무덤들을 찾느라 무덤들 사이를 두 바퀴를 돌았다.

왜 그랬을까. 왜 무덤마저 예쁠 거라 생각했을까. 노숙농성의 와중에서도 늘 단정하고 모자 하나도 반듯하게 각 맞춰 쓰고 단체티를 입고도 저마다 반짝거리던 모습이 남아서였을까. 가장 쓸쓸하고 텅 빈 묘지. 거기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결혼식 때 찍은 걸로 보이는 손톱만한 사진. 분명 웃고 있는 사진이련만 빗물이 번져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2015년 3월 16일 졸. 대법판결 18일 후였다.

이름과 생몰 일시 외에는 텅 비어있던 묘지석. 10년을 외쳤으나 끝내 외면한 세상에 남긴 기나긴 침묵. 엄마를 기다리다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쓰러져 잠든 어린아이 같은 하얀 국화꽃이 그 쓸쓸한 묘비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존재를 부정당하고 영혼이 으깨지는 듯 했던 2월 26일의 대법판결은 잊은 채 훨훨 하늘로 갔을까. 피를 토하듯 울었던 그 무수한 눈물들은 다 마른 채 갔을까. 가슴이 미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던 그 숱한 순간들은 다 내려놓고 갔을까. 죽어서라도 정규직이 됐을까. 생애 가장 벅찬 순간이었고, 온가족의 자랑이었던 승무원으로 죽어서라도 복직을 했을까.

올해 만 30년을 해고자로 사는 난 더 나이가 들어 혹여 치매가 오더라도 다른 기억은  다 잊어도 한진으로 가는 길은 안 잊을 거 같다. 30년 다니고 정년퇴직한 아저씬 치매에 걸리면 고향을 찾아갈테지만 5년 일하고 30년을 해고자로 산 나는 한진중공업을 근방을 뱅뱅 맴돌 거 같다. 우리조합원들마저 날 잊고 노동조합도 날 잊는다 해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살아있는 

단 하나의 세포. 그게 해고자다. 해고자는 그렇게 산다. 늘 미완인 삶.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삶. 편하고 행복하면 불안해지는 삶. 어느 집 파스타가 맛있고, 어느 브랜드의 구두가 잘빠졌더라는 친구들의 수다에 문득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드는 삶.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먼 바다 홀로 동동 떠있는 섬이 되는 삶.

서른 넷에서 하나가 줄었으니 서른 셋. 그마저도 결혼으로, 육아로 형편과 마음이 여의치 않아 열댓명이 다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얼마나 서글프고 얼마나 신산스러웠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다시 서는 그녀들이 고맙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대로 일요일 오후 부산역엘 나가 볼 생각이다. 걸리적거리는 거 외엔 딱히 다른 용도가 없더라도 그냥 곁에 서 있기라도 할 생각이다. 멀리 충청도로 이사가 살면서 세 살짜리 아이가 딸린 그녀가 "낼 모레 부산역 일인시위에 갈께요"라고 마지막 카톡을 남겼다는 그 자리.

3년 전 가봤던 베트남 구찌터널을 그녀들과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작은 땅굴. 그러나 땅속은 개미굴보다 복잡하고 치밀했다. 몸뚱아리가 가장 작은 부피로 접힌 채 한참을 들어가 숨이 막힐 때 쯤 넓은 공간들이 나왔다.

땅속에 식당도 있고, 주방도 있고, 회의실도 있고, 병원도 있고,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를 낳는 조산원이 있다는 것. 세상에 전쟁 중에, 그것도 땅굴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니!

놀란 우리에게 안내해주시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삶이라고. 삶은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진다고. 전쟁엔 승패가 있지만 삶에는 승패가 없다고.

7월 24일, 그녀들의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그녀가 죽어서라도 복직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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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 65 의무연대 생화학 실험실 존재"?

"용산 미군 65 의무연대 생화학 실험실 존재"?
 
탄저균 국민조사단, "박시장 용산 실험실 의혹 밝혀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2 [09: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탄저균국민조사단이 용산미군 기지내 65연대 생화확 실험실에 대한 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탄저균 국민조사단이 서울시가 용산미군기지내 생화학 무기 실험실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원순 시장이 탄저균 실험실 조사에 나서라고 밝혔다.

 

국민조사단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 탄조균국민조사단이 기자회견 뒤 박원순 시장에게 탄저균 실험에 대한 면담 신청서를 전달하기 위해 서울시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용산구 내에 위치한 미군 부대내에 있는
65의무연대 121 후송병원에서도 주피터 프로그램에 의해 생화학전 실험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피터 프로그램 자료에는 실험실이 위치한 기지로 용산, 오산, 평택, 군산 미군기지가 특정되어 있다면서 .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오산기지의 실험실은 1998년에 건설되었고, 용산과 군산은 정확히 알지 못하며 평택의 실험실은 현재 건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들은 용산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 전문을 게재한다.

 

[기자회견문]

 

박원순 시장은 용산미군기지 탄저균실험실 의혹을 조사하라!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서울시에 위치한 용산미군기지 내에 있는 65의무연대 121 후송병원에도 주한미군의 생화학전 실험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013년 한미 양국은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세계 최초로 국가 간 생물무기 대응 공조체계인 생물무기감시포털(Bio surveillance Portal, BSP) 구축에 대한 협약을 맺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는 탄저·두창·페스트 등 10여 가지의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는 것을 사전에 감시·탐지·대비·대응하기 위한 한미 공조체계다.

 

2015년 5월 7일, 미국방산협회에서 진행한 <화생 방어능력 증강에 대한 포럼>에서 발표된 
주피터 프로그램 자료에는 실험실이 위치한 기지로 용산, 오산, 평택, 군산 미군기지가 특정되어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오산기지의 실험실은 1998년에 건설되었고, 용산과 군산은 정확히 알지 못하며 평택의 실험실은 현재 건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들은 용산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은 반환 이후 공원이 들어서는 용산미군기지 내부 오염문제에 대한 서울시측의 조사요청이 거부될 경우, "1인 시위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었다"고 미군기지 오염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에 따라 서울시는 한미SOFA 환경분과위원회에도 직접 참여하면서 기지 내부 조사를 같이 진행해왔다.

 

하지만 서울시는 용산미군기지 탄저균 실험실 의혹에 대해서는 입장이나 자체 조사계획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국방부는 2007년 용산미군기지 반환 부지 중 탄저균 실험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65의무연대 121후송병원 1만6245평을 잔류시킬 것을 요청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용산공원추진단 김병수 사업추진부장은 “잔류 미군기지나 미 대사관 부지로 공원이 줄어들지만, 이는 한·미간의 협약에 따른 것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용산미군기지가 반환되더라도 탄저균 실험실이 계속 잔류하는 끔찍한 상황이 조성된다.

얼마 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란트슈툴시에서는 시장과 시의회에서 탄저균 반입 사건을 강력히 항의했고, 
주독미군에 대한 지자체 수준의 제재도 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러자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서울시도 적극적으로 용산미군기지 탄저균실험실을 조사해야한다.
탄저균 실험실이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핵시설이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급하게 용산미군기지 탄저균 실험실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착수하여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탄저균 국민조사단은 탄저균 실험실 의혹 조사에 관한 박원순 시장 면담과 공개간담회를 요청하는 바이다.

2015년 7월 21일
탄저균 국민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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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밀반입을 막으려면


<칼럼>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유영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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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2  0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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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탄저균 불법 밀반입

탄저균 불법 밀반입과 관련하여, 한․미 당국은 지난 7월 11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합동위 산하에 합동실무단을 구성했다고 한다. ‘한미 생물방어 협력과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샘플 배달사고(5.27) 관련 사실관계 파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한미 합동실무단(JWG)’이 그것이다. 살아있는 탄저균 불법 밀반입 사실이 알려진 지 무려 40여일이 지난 뒤다.

탄저균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제1급(Category A)’으로 분류할 만큼 인간에게 가장 유해한 생물작용제(무기)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따르면 탄저균은 10kg 만으로도 최대 6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메르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세균이다. 그런데도 메르스에 대한 전 국민적 공포의 여파로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 문제가 묻혀왔다.

구성된 이 기구는 ‘조사단’이 아니라 ‘실무단’이다. 그 한계가 이름에서부터 뚜렷한 것이다. 활동 범위도 사실상 5월 27일의 밀반입 사건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및 재발방지책은 이달 중으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측의 자체 조사결과와 이를 바탕으로 한 합동실무단 활동, SOFA 합동위 등을 통해 최종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미측의 자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합동실무단이 활동한다니. 게다가 이 기구에 참여하는 민간 전문가는 소수이고, 그나마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배제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살아있는 탄저균 배송사건에 대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참으로 오만하고 뻔뻔한 태도다. 이는 주한미군이 두 여중생을 깔아 죽인 궤도차량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릴 때와 똑같은 주장이다. 이런 조건에서 합동실무단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미측의 조사결과를 추인해주고 한미당국이 노력했다는 생색을 내는 것 밖에 할 게 없을 것이다.

SOFA 개정 여부와 관련해서는, SOFA 합동위 공동위원장 간에 서명한 'Agreed Recommendation'(합의 권고문)을 개정할 모양이다. 한국 당국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미 소파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생화학무기의 한국 반입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데, 고작 합의 권고문을 개정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미국의 한국 주권 유린과 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시가 뚜렷이 드러난다. 독일의 경우 탄저균 반입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미군기지가 들어선 지역의 시장과 주 총리가 강력히 항의했고,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고 하니 양쪽의 대응이 우리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와 함께 세월호와 메르스 대응에서 보았던 것처럼, 미국 뒤에 숨은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적극적인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정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은 생물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을 금지하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양도”를 금지하고 있는 생물무기 금지조약 위반이다. 또한 생물무기(작용제)의 “(개발)․제조․획득․보유․비축․이전․운송을 금지한 화학무기․생물무기 금지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기도 하다. 비록 한미소파 제9조 5항이 미군의 ‘군사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를 면제하고 있으나 세관 검사의 면제가 곧 미군의 한국으로의 물품 반입이 국내법 위반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근거는 없다.

오히려 한미소파 제7조에 따라 미군이 국내법을 준수하도록 한미소파를 운용해야 한다. 이에 국내법에 위배되는 탄저균과 같은 미군의 물품 반입은 한미소파 개정되기 전이라도 한미소파 제7조의 취지에 따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생화학전 교리와 작전계획 등 폐기해야

일각에서는 한․미 소파의 개정이 주한미군 생화학무기 반입의 근본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 당국의 생화학전 교리와 전략, 그에 따른 작전계획과 훈련 등이 중단되지 않으면 한․미 소파의 개정은 생화학무기 반입과 실험을 합법화하고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은 2011~2012년에 사후대응보다 사전대응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생화학전 교리와 작전계획을 강화했다. 이후 한․미 군당국은 한․미 생물방어훈련 등 생화학전 훈련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주한 미2사단 제1기갑여단을 대신해 9개월간 한국에 순환배치되는 미3군단 예하 1기갑사단 제2기갑여단은 한국에 배치되기 전 미국 종합훈련소에서 집중적인 생화학무기 공격 대처 훈련을 진행했다.

한․미 당국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에 대비한 방어무기의 개발과 훈련의 필요성을 들어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생화학무기는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무기로서, 적국이 생화학무기로 공격한다고 해도 생화학무기로 반격하는 것은 불법적인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더욱이 생화학무기에 대한 방어무기의 개발은 곧 공격무기 개발이 된다. 생화학무기 개발의 특성상 방어무기 개발은 공격무기의 개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 방어훈련은 그 자체로 공격훈련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탄저균 등 생화학무기의 한국 반입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시민사회단체가 포함된 진상조사단 구성, 주한미군 제23 화학부대 등이 훈련을 펼치는 영평 로드리게스 훈련장을 비롯한 생화학무기 실험과 훈련장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모든 지역과 장소에 대한 철저하고 성역없는 조사, 책임자의 처벌과 불평등한 소파 개정, 대북 공세적인 생화학전 교리와 전략의 폐기, 생화학전 관련 작전계획와 훈련의 중단이 필수적이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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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해킹사태’ 안철수 시대 다시 여나?

“국정원 직원일동 성명은 정보기관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
 
임두만 | 2015-07-22 08:39: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 때 ‘안철수 현상’이란 정치쇄신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하지만 그는 정치경력 미흡에 따른 식견 부족과 정치권의 새 인물 견제라는 이중의 덫에 스스로 빠져 2선으로 물러났다.

▲12일 부산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안철수 대선후보가 ‘부산에코델타시티 현안과 친수법폐지안’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성민 

이후 그는 새로 시작한다며 현안을 ‘정치 신인’의 자세로 접근했다. 그러나 한 번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버린 바람은 그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안철수에게 다시 기회로 볼 수 있는 사안이 터졌다.

의사출신, 그도 임상의가 아니라 연구직 의사인 안철수로서 ‘메르스 사태’는 물실호기였다. 하지만 안 의원은 이 ‘메르스 사태’에서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때문에 세간은 그를 ‘초선 안철수’로 보는 눈이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정원에서 전 국민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는 의혹을 살만한 ‘해킹 의혹’사태가 터졌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지적했지만 이 사태는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도청사태’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다.

그리고 그의 소속당인 새정치연합에는 IT와 관련, 그만한 인물은 없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는 거의 당연하게 안 의원을 ‘진상조사위원장’에 임명했다. 새정치연합은 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로 명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안 의원이 받은 직책의 풀네임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안 위원장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에서 전문가의 자질을 유감없이 내 보였다. 그는 이 기자회견에서 “국가정보원이 구매·운용한 해킹프로그램인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의 모든 로그파일을 포함한 7개 분야 30개 자료를 국정원 및 SK텔레콤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본 컴퓨터가 타깃 단말기를 어떻게 해킹했는지, 무엇을 해킹했는지 모든 정보가 로그파일 형태로 남는다”고 해설하면서 ‘로그파일’을 핵심 자료로 지목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국정원과 SK텔레콤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로그파일을 분석하면 타깃 단말기의 모델명, IP주소, 통신사, 접속일시를 알 수 있고 이 정보를 통신사에 문의하면 타깃 단말기의 소유자를 알 수 있다”며 “결국 로그파일을 분석하면 (해킹 대상이) 국내 민간인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국정원이 “내국인은 해킹하지 않았으며 사찰하지 않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직원 임모씨의 유서를 바탕으로 매우 공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데 대한 반격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는 “모든 공작은 플랜A의 실패에 대비해 플랜B, C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기본”이라며 RCS 외에 핀피셔, 페가서스, TNI, RAVS 등 유사 해킹프로그램 구매 및 운영에 대한 자료 제출도 요구했다. 또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훼손한 디스크 원본, 복구한 파일, 해당 직원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서와 감사 조사서도 제출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안 위원장은 “국정원이 악성 프로그램을 심은 국내 IP 주소 휴대전화 3대 관련 자료를 SK텔레콤에 요청한다”면서 "응하지 않는다면 검찰 수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해킹팀과 국정원이 주고받은 이메일 일체, 국정원 예산 품의서, 새누리당에만 보고하는 국정원 정보원 및 보고내용 일체까지 필요하다”며 “RCS 운용 관련 자료인 감청 단말기수 및 인원, 감청 내역 및 조치사항, 유사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개발 내역, 국정원 조사현장에서의 감청 시연, 운용 실무자 면담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안 위원장은 대통령 또는 법원의 감청 영장 개수 및 내역, 도감청 관련 내부 매뉴얼을, 해킹팀과 국정원을 중개한 '나나테크'와 이태리 회사의 접촉 경위, RCS 구입 경위, 납품내역 등을 요구하면서 “이들 자료는 구체적으로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국정원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SK텔레콤에 각각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안보상 필요하다면 정보위를 통해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구체적인 자료 요구 및 압박은 그가 안랩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바이러스를 잡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 위원장은 국정원 현장조사에 대해서는 “전문가를 대동하지 않고 국정원 현장에서 서너시간만 주고 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증거 은폐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며 자료 제출과 청문회가 선행돼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이어서 자료 분석 작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해킹팀 유출자료 400기가바이트(GB) 분량에 새로운 사실이 없는지 파악 중”이라며 “이번 주 내로 진행상황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 누구나 의혹을 가질 만한 합리적 의심에 대해 국정원은 근거없는 의혹으로 매도하고 자해행위로 규정했다”고 질타했다. 그리고는 “국정원은 진실규명 노력을 정치공세로 몰아세우는 공작을 멈추고 자료제출 요청에 성실히 임해달라”고 촉구했다.

따라서 이번 국정원 해킹사태를 통해 안철수라는 정치인의 값이 다시 높아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시작은 매우 당차고 확실하게 하고 있다. 특히 그가 이 사태를 대하는 ‘정치인’적 자세도 칭찬할 만하다.

그가 회견에서 “국정원과 여당은 정쟁을 중단해”라”고 말한 것은 여당이 정쟁으로 진상조사를 방해하려는 작태를 견제한 발언이다. 또 "국정원은 국가정보기관인데도 매우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그 사례로 “정보기관으로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인 ‘국정원 직원 일동’ 성명 발표”를 들었는데 이는 국정원이 정보기관이 아니라 권력기관임을 지적한 것으로서 “국정원은 요구한 자료에 대해 성실히 임해달라”고 하는 등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또 자신은 “제대로 일하는 국정원 만들기 위해 위원장을 맡았다”며 정쟁할 뜻이 없음도 언급했다. 즉 철저히 전문가적 입장에서 국민을 위해 조사에 임할 것이란 행보로 볼 때 안 위원장이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국민적 각광을 받을 것인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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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당신을 찾는 방법…처음엔 코 다음엔 눈

 
조홍섭 2015. 07. 20
조회수 2257 추천수 0
 

50m 밖서 후각으로 이산화탄소 감지, 시각으로 목표 찾아

1m 안쪽선 체온과 체취로 표적 결정…눈에 띄는 옷 피해야

 

Aedes_aegypti_biting_human.jpg» 모기는 먹이를 찾아 무작정 날아다니지 않는다. 주도면밀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전략을 채용하기 때문에 모기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모기행동을 실험적으로 연구한 결론이다. 사진=실험에 쓴 것과 같은 종의 이집트숲모기, 사진=미국 농우부

   
모기는 포유동물이 호흡할 때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해 피를 빨 목표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람에 쉽사리 흩어지는 이산화탄소를 멀리서 감지해 그 원천에 접근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수수께끼를 정교한 실험장치로 푼 연구결과가 나왔다. 플로리스 반 브뤼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박사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모기가 후각, 시각, 열 감각 등을 목표물과의 거리에 따라 별도로 동원해 숙주를 찾아낸다고 밝혔다. 
 
풍동에서 배고픈 암모기를 2만 번 이상 날리면서 3차원 위치추적 장치를 가동해 진행한 실험에서 드러난 모기의 행동은 이렇다.

 

fig.jpg» (a) 모기가 바람을 거슬러 날며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는다. (b) 바람에 흩날려 냄새를 놓친다. (c) 지그재그로 비행하며 냄새를 찾는다. (d) 눈에 띄는 물체에 접근해 본다. (e)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눈에 띄는 물체에서 체취를 맡는다. (f) 체온을 감지한다. 열, 습기, 냄새를 추적한다. (g) 충분한 단서가 확보되면 기회를 노려 목표에 내려앉아 흡혈한다. 그림=반 브뤼겔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먼저, 모기가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으면 위로 솟아오른 뒤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냄새를 지그재그로 비행하면서 추적한다. 모기는 50m 밖에서도 이산화탄소를 감지한다.

 

이산화탄소를 찾아내 여기에 자극받은 모기는 이번엔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물체를 탐색한다. 모기는 5~15m 떨어진 곳에서 시각을 이용해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처음부터 시각을 동원하지 않는 까닭은 엉뚱한 물체를 표적으로 삼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때 주변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물체가 포착되면 이에 접근한다. 1m 안쪽으로 접근한 모기는 체취나 체온, 습기로 최종적인 공격 대상을 정한 뒤 기회를 노려 내려앉아 피를 빤다.

 

Vlieg _Muggensilhouet_2.jpg» 유리창에 앉아 쉬고 있는 모기. 모기를 피하려면 눈에 띄는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사진=Vlieg,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후각, 시각, 열 감각을 독립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감지해 반응하는 모기의 숙주 탐색 전략은 “약오를 정도로 강력하다.”라고 밝혔다. 모기를 피하기 위해 숨을 완전히 참을 수도 없지만, 설사 체온을 낮추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더라도 옆 사람의 호흡이나 시각적 단서마저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논문은 “모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위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책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밝은 셔츠처럼 눈에 잘 띄는 옷을 입지 않거나 그런 사람 옆에 있는 것도 방법이다.
 
연구자들은 단속적인 냄새 단서에 이어 안정적인 시각 단서로 먹이를 찾는 행동이 모기뿐 아니라 초파리, 박각시나방 등에서도 나타나, 이것이 곤충 일반의 오랜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최고 위험 동물' 모기, 왜 내 피만 좋아할까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an Breugel et al., Mosquitoes Use Vision to Associate Odor Plumes with Thermal Targets, Current Biology (2015),
 http://dx.doi.org/10.1016/j.cub.2015.06.0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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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당국 대화제의 거부, 8.15대회 일방 결정

8.15행사, 서울·평양 교차방문 ‘쉽지 않을 듯’<초점> 北, 당국 대화제의 거부, 8.15대회 일방 결정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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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9: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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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 모습. 남북해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마지막 8.15민족공동행사가 되고 말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최근 남측 당국의 연이은 회담 제의를 ‘추악한 정치적 농락물’이라며 거부한 북측이 20일 ‘조국해방 70돌 기념 민족통일대회’ 방침을 밝혀 그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올해 6.15 민족공동행사를 함께 추진했던 남측 민간 ‘광복70돌, 6.15공동선언발표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광복70돌 공동준비위원회)’가 올해 8.15민족공동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되 남쪽 행사에 북측 인사들을 초청한다는 방침 아래 북측 준비위원회와 실무접촉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발표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측은 이날 <노동신문>을 통해 올해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조국해방 70돌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진행되며, 대회는 백두산에서 ‘자주통일대행진’출정식을 시작으로 평양과 판문점에서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환모임, 자주통일결의대회’ 등 행사가 펼쳐진다고 밝혔다.

대회에는 해내외 각 계층 대표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지지하는 세계 인사들이 참가하며, 참가를 희망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민족통일대회는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전체 조선민족의 드높은 기상과 의지를 힘 있게 과시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김정은 원수님의 영도 따라 뜻 깊은 올해에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와 신심에 넘쳐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9일 발표한 서기국 보도를 통해 국방부가 초청한 제4차 서울안보대화(SDD)와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안한 남북 국회의장회담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조평통은 “북남대화가 열리고 북남관계가 진전되자면 무엇보다 마주앉을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한다”며, “이제라도 대결정책을 버리고 이미 북과 남이 합의한 북남공동선언들을 인정하고 이행하겠다는 입장부터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이날 <통일뉴스>와의 통화에서 “어제 오늘 북측 기류로 볼 때 조만간 남측 민간과 8.15행사에 대한 접촉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계획을 확정한 북측이 일방적으로 통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8.15 계기에 남북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금의 상황전개가 20년 전인 1995년 북측 주도로 판문점에서 진행된 '8.15대축전'과 '8.15대민족회의' 개최 당시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광복50주년 행사는 남북 당국간 협의가 깨지면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범민족대회, 범청학련 1차회의, 통일음악회 등이 ‘분단50년을 통일의 원년으로!’라는 구호아래 진행됐다.

정낙근 여의도연구소 정책연구실장도 이날 “북측이 집중하는 10.10. 당창건 70돌까지는 정부 측 회담제의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 대표단이 교차방문하는 것은 파격적이긴 한데 지금 분위기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정 실장은 남북 당국간 대화가 교착을 면치 못하는 현재의 상황은 양측 모두 적극적인 대화 제의를 건의할 수 있는 실무그룹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순수한’ 남북교류와 ‘진정성’있는 북측 태도 등을 유난히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 대담한 대화제의가 나오기 어렵고 이를 북측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대담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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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 된다면 새로운 대한민국 열릴 것"

 

[한의대생과 만난 이재명 성남시장①] 공공의료와 청년배당 문제

15.07.20 20:43l최종 업데이트 15.07.20 21:4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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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과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만났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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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이 가천대학교 한의대 학생들과 만났다. 이번 만남은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차기 정치지도자로 주목받는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면서 성사되었다. 한의대 학생들은 이 시장을 직접 만나 그가 추진하는 정책과 정치 철학, 미래의 꿈 등을 듣고 싶어 했다. 학생들의 바람을 전해들은 이 시장은 일정을 취소하고 시간을 냈다. 

13일 오전, 시장 집무실에서 이 시장은 한의대생과 1시간30여 분 이상 대화를 나눴다. 학생들이 묻고 이 시장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자치단체장을 처음 만나는 한의대 학생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 시장이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간간히 농담을 섞으면서 분위기를 띄웠기 때문이다. 이 시장의 거침없는 입담에 학생들은 종종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만남은 가천한의과대학 학생회, <오마이뉴스>, 문턱없는 한의사회가 함께 마련했으며, 권용민(본과 3년 휴학 중, 전 학생회장), 강세현(본과 2년, 부학생회장), 서남현(본과 2년), 장재훈(본과 2년), 권태우(본과 2년) 학생이 참여했다. 허우영(가천 한의대 졸업, 레지던트 3년차) 한의사가 참관했다.

대화가 끝난 뒤 학생들은 "시장님은 재미있는 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허우영 한의사는 "학생들 질문이 좀 더 공격적이었다면 (대화가) 훨씬 더 역동적이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정부, 무상공공산후조리원 황당한 이유로 반대"

학생들은 이 시장에게 메르스 사태,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무상산후공공조리원에 대한 질문과 함께 논란이 되었던 가수 유승준 입국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학생들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도 물었다. 

또한 학생들은 이 시장이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차기 정치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점에 주목, 대통령이 되고 싶은지 여부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물었다. 이 시장은 학생들의 질문을 피하거나 에두르지 않고 소신 있게 답변했다. 

이 시장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 "국방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 전염병에는 돈을 쓰지 않아 메르스를 막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며 "한 마디로 국가 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남시의 메르스 대책에 대해서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성남시가 추진하는 무상공공산후조리원에 대해 "심각한 사회 문제인 저출산을 극복하고 서민 경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는 것인데 정부가 황당한 이유로 반대한다"며 "(정부가) 불합리한 태도를 고수하면 지방정부의 주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법에 따라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는 강경한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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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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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의 정치인생 출발점은 성남시립의료원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민운동을 했고, 공공의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2004년 3월에 성남시의회에 상정된 '시립병원설립조례'가 47초 만에 부결되면서 이 시장의 정치 인생이 시작됐다. 이 시장은 회의장을 점거하면서 수배자가 됐다. 

수배자가 된 이 시장은 피난처에서 시장 출마를 결심한다. 이 시장은 그 날을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였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11월, 성남시장으로서 시립의료원 기공식 버튼을 눌렀다.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라서. 2017년에는 성남 시립 공공의료원이 탄생하게 된다."

"공공의료, 국민보다는 의료 기득권자 보호 경향 강해"

이 시장은 이날 우리나라 경제와 공공의료의 문제점 등을 짚고 해결방법까지 제시했다. 또,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이 시장은 "공공의료가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지킨다는 생각보다는 의료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힐난했다.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국가, 특히 보건복지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국민이 관심 없으면, 자기들 편익만 위하게 된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지방정부라도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이 시장은 경제 활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 기회 등의 불평등·불공정과 이윤의 지나친 쏠림현상으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등을 꼽았다. 이 시장은 "국가가 불평등·불공정, 부의 쏠림 현상을 없애야 이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국가가 힘센 사람 편에 서 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이 시장은 활력을 잃은 경제가 청년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청년 인턴십 확대, 해외 취업 지원 등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을 "언 발에 오줌 누기, 돈만 낭비하는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성남시에서 추진 중인 '청년 배당'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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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과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만났다.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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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배당은 말 그대로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소득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성남시는 취업을 앞둔 청년들이 취업 준비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허비하는 시간, 즉 기회비용을 줄여주는 조치로 청년 배당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시장은 청년 실업을 비롯한 청년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바로 투표다. 정치를 바꿔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청년들은 정치적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착취하기 쉽고 정치적 배려도 안 한다"며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투표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시장의 가난한 어린 시절도 한의대생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시장은 "무척 가난했다고 알려진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는 장재훈(가천한의대 본과 2년) 학생의 질문에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시원하게 풀어 놓았다. 

이 시장은 이날 기초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대선 후보로 거론될 만큼 인기가 있는 비결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밝혔다. 이 시장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될 가능성은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정말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온갖 부조리, 비정상, 불공정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면 공정한 질서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기회를 누리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다."

☞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기사 보기

이어지는 기사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나온 대화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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