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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 스님이 운 뜻은

 
조현 2015. 04. 28
조회수 429 추천수 0
 

티베트불교 수행자 용수 스님 인터뷰

 

 

용수스님 불상옆-.jpg 

서울 종로구 경운동 종로경찰서 옆 영어불교도서관에서 

티베트불교 명상을 가르치는 용수스님

 

 

용수스님이 세살 때 헤어진 어머니 만나, 낳아준 은혜에 감사한 뜻은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 따라 아홉살 때 미국 건너가 독실한 모르몬교도로 성장. 유타대에서 달라이라마 강연 듣고 티베트불교에 관심. 달라이라마에 출가하려다 네팔에서 만난 다른 스승에게 출가해 남프랑스에서 수행하고 귀국. 매년 티베트불교 영적 스승들 초청하며, 삶에서 불만족 이기고 평화 얻는 명상법 전해.

  

 

티베트불교는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탁월한 영적 스승들, 관념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가르침, 권위를 내려놓은 친절함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서양에 널리 알려진 이런 티베트불교의 영적 스승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와이스먼 뇌신경연구소의 뇌 영상 촬영 결과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별명을 얻은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프랑스 과학자 출신으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아버지와 대담한 <승려와 철학자>의 저자인 마티외 리카르 스님, 미국 의사 출신으로 달라이라마의 주치의인 배리 커즌 스님 등 10여명의 영적 스승이 최근 5년 동안 한국을 찾았다.

 

 이들을 초청한 이가 세첸코리아 대표 용수(46) 스님이다. 티베트불교 승려인 그는 2007년 한국에 들어와 티베트불교 명상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이번엔 달라이라마 못지않은 큰 스승의 초청을 앞두고 상기돼 있다. 사캬파의 법왕인 사캬 티진(70) 존자다. 티베트불교엔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황모)파, 카규파, 용수 스님이 속한 닝마파, 사캬파 등 4대 종파가 있다. 사캬 티진 존자는 사캬파의 수장으로, 달라이라마가 ‘밀교 수행자의 왕’으로 일컬을 만큼 티베트불교에서는 달라이라마에 이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사캬 티진의 방한엔 용수 스님의 은사인 페마 왕겔(70) 린포체도 동행한다. 페마 왕겔 린포체는 닝마파의 5대 법맥 중 하나인 세첸의 지도자로 유럽과 미국, 인도, 네팔 등에서 티베트불교를 전하고 있다. 

 

 사캬 티진 존자의 방한을 앞둔 용수 스님을 만났다. 그는 모르몬교(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의 본고장인 미국 유타주에서 자란 독실한 모르몬교인 출신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티베트불교를 만나 출가까지 하게 됐을까.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약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홉살 때 미국에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세살 때 헤어졌다. 그는 그때부터 친모의 손을 떠나 아버지를 따라 살았다. 미네소타주에서 2년간 살다가 유타주 주도 솔트레이크시티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따라 모르몬교도가 됐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2년 동안 모르몬교 선교사로 활동할 만큼 독실한 모르몬교도였다. 이어 유타주립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고, 작은 방송국에서도 일했던 그는 어느 날 유타대에서 달라이라마의 강연을 듣게 된다. 

 

 “그때는 달라이라마가 누군지도 몰랐다. 다만 머리에 뭐 좀 든 지식인들이라면 거기에 다 간다고 하길래, 거기 가면 뭔가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간 것이었다.”

 당시엔 그것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강연에서 달라이라마는 두가지를 얘기했다. 먼저 ‘자비심이 자신한테 좋다’고 했다. ‘자비심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한테 이익’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려면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는 ‘우리 모두는 다 같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나랑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가 변했다. 자비심이 커졌고, 타인을 경계하는 대신 마음이 열려 친밀해졌다. 그는 그때부터 티베트불교에 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말라야에 있다는 티베트불교의 수행자들처럼 산에 홀로 머물고 싶고, 수행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북캘리포니아의 티베트명상센터에 들어가 요가도 하고 단식도 했다.

 

용수스님 명상2-.jpg 

명상하는 용수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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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5~11일 방한하는 티베트불교의 사캬파의 법왕 사캬 티진 존자에게 존경의 합장을 하는 용수스님

사캬 티진 존자의 `자비로운 여정'이란 이름의 대중법문은 8일(금) 오후 6시 서울 동국대 대강강에서 있고,

사캬 티진 존자의 `관세음보살 밀교 수행 전수와 관정'이 9(토)~10일(일) 오전 9시~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자곡동 탄허기념박물관에서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승려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명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밤 한순간에 ‘승려가 되어야지’라며 온 존재에 가득 차는 확신이 밀려왔다. 그 뒤로 지금까지 그 마음이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날 밤 밖에 나가 달을 보면서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달라이라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자신의 스승은 달라이라마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가 급했다.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그의 소재를 수소문하니, 인도 보드가야(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지)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인도로 가는 비행기 표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네팔 카트만두를 경유하기로 했다. 카트만두공항에서 호객꾼이 소개한 호텔에 갔다가 너무도 더러워 기겁을 했다. 다음날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그 호객꾼을 따라 최대 불탑이 있는 보다나트에 갔다가 세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들르게 됐다. 정원까지 갖춰진 그곳은 처음 간 호텔에 비하면 낙원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식사를 할 때도 그는 미국에서부터 가져와 한시도 떼놓지 않던 애독서 몇권을 상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한 외국인 스님과 함께 식사 중인데 한 티베트불교 스님이 들어왔다. 첫눈에 마음이 끌리는 분이었다. 그분을 만나고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그 저서들을 출간한 불교출판사 대표였다. 그가 읽었던 수많은 티베트불교 서적 가운데 바로 그분이 낸 저서만을 골라 그가 들고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분이 바로 그의 은사가 된 페마 왕겔 린포체였다.

 

 그는 달라이라마가 있는 보드가야행을 포기하고, 페마 왕겔 린포체 곁에서 출가했다. 이어 스승이 남프랑스 도르도뉴에서 운영중인 무문관에서 2003년 5월부터 2007년 5월까지 꼬박 4년간 머물렀다. 첫 1년간 예비수행을 마치고 본수행에 들어가 족첸·마하무드라 등 티베트불교의 주요 수행을 거쳤다. 

 

 그가 처음 승려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잃는 것 같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용수 스님이 평화를 찾으면서 아버지도 변화됐다. 아들이 머문 한국을 찾은 아버지는 아들 스님과 함께 사찰들을 다니며 아들의 행복한 모습에 “좋은 스님이 되라”고 응원해주었다. 용수 스님은 비록 출가했지만 모르몬교도로서 살아온 젊은 날을 소중하게 여긴다.

 “술, 담배는 물론 커피와 콜라까지 금지시킨 모르몬교 덕분에 청결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티베트불교에 출가까지 한 것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상 사람 99%가 무상과 윤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믿는 확신 말이다.”

 

 그가 변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 친어머니를 찾아갔다. 세살 때 헤어진 뒤 한번도 보지 못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40여년 만의 해후였다. 그는 밤새 어머니와 울었고, 함께 간 세첸코리아 회원들도 눈물을 흘렸다.

 

 “불교 경전엔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의 고통을 상세히 알려준다. ‘아이가 배고파 할 때는 뜨거운 지옥에 들어간 것 같고, 아이를 낳을 때는 지옥에 반쯤 간 것 같은 고통을 받기에 낳아준 은혜만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 어깨에 얹고 지구를 여섯바퀴나 돌아도 그 은혜는 다 갚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마 불교가 아니었다면 어머니에 대한 상처 때문에 다시는 못 만났을지 모른다.”

 

 이제 그는 온유한 미소로 자신과 같은 화해와 평화를 나누어 준다. 그는 “우리는 처음엔 만족한 집도 조금 지나면 다른 집을 부러워하며 불만족스러워 할 만큼 ‘불만족’이라는 습관에 물들어 살아간다”며 “그것은 이사를 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깨어 살펴서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행복은 거기가 아닌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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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리아역사는 민주주의 향한 항쟁의 역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4/29 09:36
  • 수정일
    2015/04/29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국제포럼] <남코리아역사는 민주주의 향한 항쟁의 역사>

27일 오후1토론 <민주주의의 역사와 과제>

 

 

민주국제포럼 첫째날인 27일 오후1토론회가 <민주주의발전과 그 한계의 역사> 주제로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먼저 민주국제포럼명예대표 조영건교수가 민주국제포럼개막을 알렸다.

 

민주국제포럼, 역사반동의 몰이성을 고발하는 큰 성과 이룩할 것 

 

조영건교수는 개회사를 통해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민주국제포럼에 참석한 세계 진보·민주·평화인사 여러분께 뜨거운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가장 치열한 진보와 민주주의 투쟁현장에서 결합한 우리모두의 의지를 자축하고자 한다.>면서 <민주국제포럼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불굴의 한국민중 그리고 세계양심의 연대가 역사반동의 몰이성을 고발하는 큰 성과를 이룩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민주국제포럼공동조직위원장인 이적목사(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는 <남코리아를 비롯한 전세계민중들이 신자유주의와 우경화에 맞서 참된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힘차게 싸우고 있는 시기>라며 <민중들의 분출하는 힘을 모아 비판을 넘어 대안을 모색하며, 절망을 넘어 희망을 만들어가는 국제연대의 장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는 민주국제포럼의 개막을 선언한다.>고 알렸다. 

 

개회사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토론회가 시작됐다. 

 

토론회 사회자로 한준혜 민주노동당충남도당전사무처장이, 토론자로는 조영건 경남대명예교수, 이적 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 이상훈 코리아연대공동대표, 클라우디아 하이트 독일좌파당(링케)국제담당, 뎀바 무싸 뎀벨레 2011다카르세계사회포럼조직위원장이 나섰다. 

 

먼저 이적목사가 <남코리아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퇴보> 주제로 발제했다.

 

이적 <국민과 함께 투쟁할 때 새로운 정치 꽃피울 수 있다>

 

이적목사는 <남코리아는 OECD에 가입될 정도로 짧은 시간안에 나름대로 성장동력을 어느정도 갖춘 나라이지만 행복지수는 OECD국자중 최하위를 맴돈다. 그 이유는 식민지국가와 신탁통치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사회·경제·교육·역사까지도 예속체제로서 자리매김을 했고 정치를 비롯한 사회전반적인 현상은 권력나눠먹기와 정경유착, 예속경제로서 불균형적 성장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특히 분단체제를 이용한 지배계급들의 장기집권은 기형적 정치구조와 소수가 독과점하는 부의 독점현상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부마항쟁, 6.10항쟁 등을 거치면서 사회전반적인 구조가 민주적 구조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지만 분단체제로 공고화된 사회주류세력들은 자본의 대중화와 민주질서의 안정을 원하는 쪽으로 따라 가지 않았고, 87년이후 군사독재의 잔재가 청산되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길을 밟아 나가는 과정이 한때 있었으나 2대에 걸친 민주개혁정권이 끝나자마자 대중들은 예속경제의 한계에 대한 이해보다 종속경제의 허구에 압도당해 또다시 비민주정권의 길을 선택하고 만다.>고 진단했다. 

 

이적목사는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실험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분단체제에서의 국민의식수준의 한계 △종속경제의 미극복 △재벌개혁실패 △남코아에서만 통용되는 수구냉전논리속의 경제논리 등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대중대통령의 대북정책과 6.15공동선언 등을 언급하며 <남북관계의 통로를 마련한 중요한 계기>라고 평가를 했지만, 낡은 정치활동방식을 답습,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사회체제개편, 독재자 전두환·노태우 사면, 사법개혁방치, 한미FTA무작정수용, 악법개폐실패, 수구보수세력에 연정제의 등을 거론하며 <민주진영의 집권이후 급격히 고양되는 국민들의 정치의식수준이 높아졌지만 민주정권과 개혁진영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김대중·노무현정권의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개혁진영이 한미동맹과 자본, 자유주의 등 기득권체제의 근본문제를 회피했다.>며 <특히 미국과의 문제와 통일문제, 자본의 문제는 좀더 치열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적극적으로 파고들었어야 했다. 개혁진영은 종속경제의 한계속에서도 나름 노력할 수 있는 제한된 노선이라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길조차도 포기해버린 우를 저지른 채 정권을 넘겼다.>고피력했다. 

 

이적목사는 <수구보수진영세력들은 10년동안 진행된 민주개혁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정권탈환에 성공해 정권을 탈환한 이명박수구진영은 분배정책보다 성장경제노선을 주장하며 친재벌노선정책을 펼치고 나갔다. 이명박정권에 이어 박근혜정권은 국정원선거개입과 부정선거의혹속에 등장, 부정선거당선무효라는 벽에 부딪혀 국정혼란 지속되는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정권은 한미동맹강화, 친재벌정책, 공안탄압, 정당강제해선 등 기존수구정치인들이 보여줬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며 통일인사 및 단체탄압, 교회침탈, 애기봉등탑재건립논란, 전단살포 묵인방조 등 종북몰이, 반북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304명의 <세월>호수장사건과 측근들의 뇌물수수혐의 등으로 박정권이 사면초가에 몰렸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나약함과 개혁진영의 이합집산 반복, 통합진보당의 <종북정당> 낙인에 이은 <내란음모>조작사건에 따른 진보진영분열로 인해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금 믿을 것은 현재의 야권이 아니라 눈을 뜬 국민>이라며 <국민과 함께 투쟁에 나설 때 지금까지의 제한성을 완전히 극복한 새로운 정치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통합진보당해산이후 박근혜<정권>의 위기의식으로 발발된 첫공안탄압의 일환으로 코리아연대와 민통선평화교회 국가보안법침탈사건이 있은 후 공안정국은 3차례의 소환장을 발부해 코리아연대와 민통선평화교회를 공안으로 엮으려 시도했지만 소환을 거부하고 100일이 넘도록 <정권>을 맞상대로 대치농성하고 있다.>며 <정권의 이용물로 전락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국민적 저항으로 공안을 분쇄하겠다는 것이 농성의 의도>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하이트의 발제가 이어졌다.  

 

하이트 <최대의 인권침해는 전쟁> 

 

그는 <최대의 인권침해는 전쟁>이라며 <전쟁과 갈등이 많아지는 세상에 살게 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도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중이나 노동자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 반면 정치인들은 전쟁을 원했다. 하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했던 것은 노동자들과 민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의미가 있는 민주주의다. 대중에게 대안이 있어야 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독일 좌파당외에 사회민주당, 자유당, 녹색당, 기독민주당은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해왔고, 군대가 중요하게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좌파당이 만들어졌다. 그래야 민주주의에 실질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계속해서 <남코리아법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독일은 몇몇 부유한 가문이 자신들의 신자유주의정책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남코리아와 독일의 언론에 대해 비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언론이 어떻게 하면 진보적으로 될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고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라고 밝히며, <남코리아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막는 장벽중 하나가 <공산주의자>, <종북주의자>로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독일도 냉전시기 무장에 반대하고 협상에 반대한다고 하며 공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예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정책으로 긴축정책강요를 들었는데, 무상교육은 대중이 원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추진할 돈이 없다는 것이다. 또 독일의 경우에는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을 전쟁준비에 사용하고 전세계로 무기수출하고 있지만 사회보장·의료지원은 줄어드는 문제를 지적했다. 

 

다음으로 뎀벨레가 민주주의발전과 그 한계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뎀벨레 〈외부에 의해 정책들이 결정된다면 민주주의는 의미 없다〉

 

그는 <자신의 국가정책이 여전히 외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고, 다른 나라 정부나 유럽연합, 미국, 프랑스, 영국과 같은 과거의 식민주의세력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고 묻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은 우리자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결정된다면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세네갈에서는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의원들을 선택하는데서 투쟁으로 진전을 가져왔지만 아직도 외세의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며 2012년 세네갈대선을 언급했다. 2012년 현직대통령이 3선에 도전해 세네갈민중들이 반대했으나 대통령은 민중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채 3선추진을 고집했고, 결국 낙선했다.

 

뎀벨레는 <우리에게 현직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정도의 선택권과 힘은 있다. 하지만 많은 좌절과 불만도 존재한다.>며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딜레마를 지적하고, <권력자를 선거를 통해 교체할 기회도 존재하지만 대통령이나 의원들을 선출하는데서 실질적으로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계속해서 <세네갈이나 다른 아프리카국가들을 보면 정치무대에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의민주주의라는 체제에 만족하지 않으며, 정치적 사회적 전환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를 원한다.>며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서 참여민주주의가 상당히 논의되고 있다.>며 전했다. 

 

끝으로, <자신들에게 정치적 시민적 권리뿐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 권리까지 있다는 시민들의 의식을 고양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해왔고, 이 모든 권리들이 존중받고 성취하기 위해 투쟁해왔다.>며 아프리카사회포럼을 설명했다.  

 

이어 조영건교수는 <한국민주주의 역사와 과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조영건 〈분단과 전쟁, 독재와 반공체제가 곧 미국의 한반도지배질서체제〉

 

그는 민주주의의 밑천으로 △1884년 갑신정변을 통한 입헌군주제 근대화시도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 의한 맹아적 민중자치권력 △1919년 3.1독립운동과 자주·평화·공영·민주주의 선언 △상해임시정부의 공화제와 민주의정 △1920~1945년 농민운동·노동운동·해내외항일투쟁에 의한 민중주체 민주주의 맹아 등을 언급했다. 

 

이어 <해방이후 민주주의가 개화돼 국민의 90%가 프랑스대혁명보다 발전된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요구하지만 미국의 물리력에 의해 가차없이 소멸됐다.>며 그 근거로 전국적규모의 1946년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9월총파업과 경상도 10월항쟁 미군들이 진압, 4.3제주항쟁 진압, 우·좌익정당 분열과 탄압, 김구암살 등을 거론했다. 

 

조영건교수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반공체제>가 곧 <미국의 한반도지배질서체제>라며 <소위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까지 없애버리는 것이 친일파를 앞세워 통치하는 미국의 통치전략>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1960년 4.19항쟁이 반미, 통일, 민족 항쟁으로 전개되지만 5.16군사쿠데타로 미국·일본·한국을 묶어 동아시아방위라인을 구축하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에 한발 다가가게 된다.>고 <박정희군부독재에 이어 12.12쿠데타주역인 전두환이 등장하고, 1980년 5월광주민중항쟁과 대학살로 반미자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다.>고 언급한데 이어 87년 6월항쟁과 7,8,노동자대투쟁으로,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전환, 노동계급의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 전진, 진보정당 건설과 해산 등을 설명했다.

 

그는 <<정권>이 관권부정선거로 정통성이 없고, 정치자금에 의해 총체적 부정임에도 종교·통일단체를 탄압하는 국면에서 볼 때 포럼의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조영건교수는 민주주의과제로 <민주주의 진전과 반동이 격렬하게 짧은 주기로 반복되는지, 

국민저항과 민중이반이 폭발임계선에서도 왜 불발되는지, 선거혁명으로 정권교체를 두번 쟁취할 수 있었는데도 왜 그 전망이 낙관적이지 못하는지> 등 3가지를 제기했다. 

 

이상훈 〈남코리아역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투쟁과 항쟁의 역사〉

 

이상훈공동대표는 <분단이후 70년의 역사에서 우리가 그토록 바랬던 민주주의역사는 곧 항쟁의 역사, 항쟁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피력했다. 

 

이어 <남코리아역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과 항쟁의 역사>라며 독재에 저항한 4.19항쟁, 5.18광주항쟁, 87년 6월항쟁 등을 말했다. 

 

그러면서 <민중의 항쟁을 통해 초보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미국에 종속적이고 국가보안법에 탄압받고 있다. 다행인 것은 김대중·노무현개혁정권시기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화해·협력으로 진전됐다.>며 주장했다. 

 

허나 이명박근혜수구정권시대로 되돌아가 <10년간의 민주주의성과는 날아가고 4대강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FTA로 자주권을 상실했으며, 서민들의 삶은 파탄이 났고, 노동자들은 파업할 권리를 잃고 노조결정권리도 빼앗겼다. 농민들의 삶도 역시 파탄났다. 가계부채는 1000조가 넘었고, 청년학생들은 실업으로 헤매고 있다.>며 벼랑끝으로 몰린 민중들의 실상을 설명했다. 

 

이상훈대표는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민생이 파탄난 상황에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사이버사령부 등의 관권부정선거로 인한 당선, 성완종불법정치자금사건을 통한 박<정권>의 금권선거로 박<정권>퇴진국면이 열리고 있다.>며 <4.16<세월>호참사1주기투쟁과 4.24민주노총총파업으로 노동자·민중들이 거리로 나왔다. 5.1메이데이투쟁에 <세월>호유가족과 노동자, 시민들이 1박2일밤샘투쟁을 한다고 한다. 투쟁들이 밤샘하면 그게 항쟁이라고 조영건교수가 말했는데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항쟁의 국면이 5월1일 투쟁에서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5명의 토론자발제가 끝난 후 질문과 의견이 이어졌다. 

 

<4.19항쟁, 4.3항쟁이 있었다. 왜 남코리아민주주의가 후퇴했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후퇴했는지 설명해달라>는 청중질문에 조영건교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로 외세에 있다.>며 <미국이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50~100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민주주의는 인권, 생존권 투쟁과 서로 결합돼야>

 

조영건교수는 <남코리아의 민주주의가 진전과 반동을 반복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이고, 민중들이 알아도 정치적으로 공간이 협소하다.>며 <민주주의는 인권, 민권, 생존권투쟁과 서로 결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적목사는 <분단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남코리아민중들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분단

이라는 괴물을 본질적으로 깨뜨리지 않고서는 <세월>호문제든 무엇이든간에 해결하기 힘들다.>며 <미국을 보호하는 식민지법인 국가보안법부터 싸워야 한다.>며 <민주국제포럼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모아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상훈공동대표는 <박근혜<정권>이 제2의 유신을 꾀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억눌리고 탄압받아온 민중들이 항쟁에 나서고 있다.>며 <새로운 항쟁으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진보적이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언급하고, <민주국제포럼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심도깊게 토론해보자.>고 마무리했다. 

 

하이트는 <독일연방기본법이 진보적인 내용으로 인권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보장하고 있다. 이 헌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며 <독일에서 여성운동, 언론자유운동 그런 이슈에 집중해서 대중의식을 고양시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별이슈들에 대한 투쟁을 하나의 통합적인 관점으로 모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뎀벨레는 <세네갈은 경제적으로 프랑스, 지리적으로는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며 <세네갈의 민주주의투쟁, 독립투쟁은 굉장히 많은 진보를 이뤄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이나 의원 같은 국가지도자들은 민중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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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제포럼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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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에게 ‘성역 없는 수사’란?

 
 
내 성역은 지키야 하고 네 성역은 허물어야 한다?
 
육근성 | 2015-04-28 14:35: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성역(聖域)’의 사전적 풀이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구역이나, 문제 삼지 아니하기로 돼 있는 사항·인물·단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한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가톨릭 교권이 왕성했던 중세 유럽에는 국왕의 권력조차 미치지 않은 절대불가침의 공간이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일지라도 이 곳에 몸을 의탁하면 목숨을 부지하는 게 가능했다.


‘성역’의 원래 의미

‘성역’의 기반은 구약성서다. ‘미클라트(도피성/City of refuge)’가 ‘성역’의 원형이다.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인자에게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여섯 개의 성을 만들게 된다. 이스라엘 전역 어디서든 하룻길(32km)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했으며, 성으로 향하는 도로는 넓어 폭이 14m나 됐다. 곳곳에 안내판도 설치해 놓았다.

당시 살인자에 대한 처벌은 사형이었으며,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가족(피를 보수하는 자)은 살인자를 찾아내 죽이더라도 죄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누명을 쓰고 살인자로 몰리거나, 과실 혹은 단순사고로 사람을 죽게 만든 경우라 할지라도 보수자에게 잡히면 재판을 받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가 ‘도피성’인 것이다.

법치국가로 발전해 가면서 점차 ‘성역’은 사라졌다. ‘쫓기는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은혜의 장소’로서의 ‘성역’은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 정신에 녹아들었다. 누구든지 필요하면 언제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법이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리 없다, ‘성역(도피성)’이 했던 역할을 ‘법치’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성역’은 부패 권력이 만든 초법적 ‘도피성’

그러나 권력자들에 의해 또 다른 ‘성역’이 만들어진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동원해 ‘법치’가 미치지 못하는 특별한 성을 쌓았다. 그리곤 온갖 비리를 저질러도 법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마법의 공간’으로 여긴다. 일단 성에 스며들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유대민족의 ‘도피성’처럼 말이다. ‘권력의 힘으로 초법적 행위를 일삼는 추악한 공간’인 이 성을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성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애당초 ‘성역’의 의미와는 정반대다.

‘성역 없는 수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큰 사달이 날 때마다 권력자와 수사기관의 입에서 빠짐없이 튀어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단 한번도 ‘성역’을 깬 수사를 본 적이 없다. 열이면 열, ‘성역을 피해가는 수사’가 되고 만다. ‘성’을 허물어야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 텐데 항상 그러하지 못했다. 정치권력과 사정권력 간의 끈끈하고 단단한 야합 때문이다.

‘성역은 없다’고 말해놓고 뒤로는 더 은밀한 ‘성역’을 만들어 국민의 눈을 속인다. 이렇게 하기 위해 다양한 꼼수와 계략이 동원된다. 박근혜 정권은 어떨까. 특히 전·현직 비서실장 3명과 국무총리, 2012년 대선 캠프를 누볐던 ‘친박 3인방’ 등이 연루된 ‘성완종 파문’은 박 정권의 뿌리를 흔들 수도 있는 폭발력 강한 뇌관이다.


박 정권에게 ‘성역 없는 수사’란?

아니나 다르랴. 또 ‘성역’ 운운한다. 그렇지 않고는 성난 민심을 다독일 방법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파문’이 터진 이틀 뒤 “검찰이 성역 없이 대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태가 위급하고 사안이 막중하니 일단 ‘성역 없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 모양이다. 이후 말이 크게 달라진다.

“검찰이 성역 없이 대처하기 바란다.” (4월10일)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밝힐 필요가 있다.” (4월 15일)
“이번 일을 부정부패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4월16일)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여러 적폐를 해결하고… 사회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4월21일)

이번 파문에 국한시키지 말고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라는 지시다. 자신의 전·현직 비서실장과 선거캠프 핵심 3인방이 연루된 사건인데도 야당과 전정권으로까지 수사범위를 확대하라니. 한 아이가 잘못했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도 이런 잘못 저질렀을 거라고 추측해 전교생을 벌주는 식민시절 왜놈 교장선생 같은 심보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자 여당 대표는 “야당도 정치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우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아예 노골적으로 ‘성완종 리스트’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권 로비 내역 전반을 다 살펴보겠다고 말한다. “공정성이 보장되는 특검을 통한 수사”를 요구하는 야당 대표를 향해 청와대 대변인은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며 핏대를 세운다.


‘추악한 성역’ 안으로 도피할 텐가?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대통령 측근과 여당핵심 8인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야권 인사와 전 정권이 연루된 의혹까지 싸잡아 수사하겠다, 그런데 야당이 요구하는 ‘공정성 보장 특검’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대신 청와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검찰이 수사를 맡아야 한다, 이게 대통령의 속내인 것이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성역 없는 수사’가 뭔지 그 저의가 다 드러난 셈이다. 수사범위를 최대한 확대해 물타기-물귀신 작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거다. ‘성역’은 ‘홍문종-유정복-서병수’ 등 친박 3인방이다. 이들이 받은 돈이 선거자금으로 쓰인 게 맞다면 박 대통령 자신도 ‘성역’이다. 핵심을 뺀 채 결코 ‘성역’일 수 없는 야당과 전 정권을 끌어들이면서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는 건 대단한 모순이다.

‘성역 없는 수사’가 아니라 ‘성역을 지켜내는 수사’를 하겠다는 얘기다. ‘대통령 먼저 자신의 ‘잘못된 성역’을 스스로 부숴야 마땅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추악한 성역’ 안으로 도피하려 든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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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위대, 한반도 진출 길 열리다

日 자위대, 한반도 진출 길 열리다미.일 가이드라인 확정..일 집단자위권 행사 쉬워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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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8  17: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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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존 케리 미 국무부장관,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나카티니 겐 일본 방위상이 참석한 가운데 확정됐다.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은 일본 주변으로 한정된 기존 지리적 범위에 대한 제한을 없애고, 아.태 지역 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전쟁을 포함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미국과 일본이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아, 일본 자위대가 평시, 전시를 막론하고 미군의 군사작전에 언제든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미군이 참여하는 한반도 내 군사연습에 자위대 참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과거사에 기인하는 한국의 우려를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70년만에 다시 한반도 내에서 군사행동를 할 수 있는 근거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미.일 가이드라인에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만큼, 한국정부의 승인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미.일 가이드라인에는 "미.일 양국이 각각 미국 또는 제3국에 대한 무력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완전한 주권존중을 포함한 국제법 각국의 헌법 국내법에 입각하여 무력행사를 수반하는.."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를 두고, 국방부 당국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제3국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상 한국정부의 입장을 완전하게 고려해서 반영된 문구"라며 지난 17일 한.미.일 3자 안보토의 당시 확답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당시 데이비드 시어 미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는 "누가봐도 이 문구(제3국)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사안 관련 '주권존중'의 의미에 대한 한국측 질문에 도구치 히데시 일본 방위성 방위심의관도 "제3국의 영역에 진입할 때는 반드시 사전 요청과 동의를 받는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도 "이번 지침에서 명확히 한 것은 한국의 영토와 주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며 "우리 영토에서 군사행동 못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토에 자위대가 들어오는데 정부가 동의없인 안된다고 했는데, 문구에 없다고 숨기는게 아니냐고 하는데, 우선 국제법적 측면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을 넣을 수 없다"며 "양자간 합의문서에 제3국에 권리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는게 국제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 병력 투입을 요청할 경우, 이에 한국 정부가 반대할 명분이 없기에 '제3국의 주권존중'의 의미는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의 한반도 전시증원계획에 따라,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될 경우, 자위대는 후방에서 지원하는 기능을 갖고있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전개는 더욱 쉽다는 점도 지적된다.

주일 미군기지 가운데 7곳은 유엔사 후방기지로 이들 기지의 병력과 물자 이동은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의 지시에 따르는데, 이는 자위대의 직.간접적인 한반도 진출을 의미한다.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으로 일본이 미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전 세계 분쟁지역에 진출할 수 있고,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나아가 평시 한미연합군사연습에도 자위대가 참여할 길을 터놨다. 

미.일 가이드라인은 일본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평시.전시를 막론하고 한반도 공역 뿐 아니라 한국군 해상작전구역에서도 작전을 펼치는 등 수시로 드나들게 하는 제도적 여건인 셈이다. '제3국의 주권존중' 표현이 들어간 게 성과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국방부 당국자는 "우리 땅에는 자위대가 들어올 수 없다. 일본 각의에는 교전행위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후방지원을 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로 군사적 갈등이 일어날 경우, 미국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할 수 있으나, 한.미 상호방위조약, 미.일 가이드라인 등에 얽혀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한다.

미.일 가이드라인에서 양국은 중.일이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이)'를 주로 염두에 두고 '섬 탈환 작전'을 명시했지만, 여기서 '섬'의 의미를 일본의 입장에서는 독도에도 확대 적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 2007년 9월 일본 해상자위대 실습장교의 직무숙달차 인천항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연습함대 소속 함정의 모습. 앞에서부터 사와기리함(3,500톤), 카시마함(4,050톤).[자료사진-통일뉴스]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과 별도로 수립될 일본 자위대의 작전계획에 한반도 지역에 대한 파견 등이 명문화될지 관심이 쏠린다.

일본 정부는 미.일 가이드라인 확정으로 오는 8월까지 자국내 안보관련 법령을 개정. 법제화할 예정이다.이를 토대로 자위대는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일본은 자국 영토 방어에 국한하는 '전수방위'라는 용어를 사용, △일본 또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의 국가에 무력공격이 있고, △일본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위협받으며, △국가존립의 수단이 없을 때 등으로 자위대의 무력행사 조건을 적시해왔다. 이를 토대로, '영역횡단작전'을 수립, 적군의 상륙저지, 방공 등 방위적 성격의 군사작전을 마련해놨다.

하지만,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으로 일본 영토와 인접국가의 영역을 넘어 전 세계로 자위대의 활동 영역이 확장됐다. 이를 감안한 새로운 작전계획이 수립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을 주요 골자로 하되, 한국내 민간인 소개작전,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 등의 자위대의 역할을 담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군과 함께 한반도로 진입하는 자위대의 역할이 한반도 전면적 대비계획인 '작계 5027'에 반영될 것이라는 의구심도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한.미간, 미.일간, 한.미.일 3자간에도 (후속) 협의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우리 정부가 협의를 더 해나가겠다. 일본 안보법제 개정 등도 보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입장이 관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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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대형 '보' 홍수로 옆구리 터질라

 
김정욱 2015. 04. 27
조회수 10530 추천수 0
 

대형 댐 규모인 '보' 모래위 세워져 연천댐처럼 제방과 연결부위 붕괴 우려

강 하류에 댐 막아 홍수 조절한다는 전대미문 발상, 재앙 막으려면 보 터야

 

00135119_R_0.JPG» 지난 2000년 태풍 사오마이가 몰고 온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대구 달성군 낙동강 주변의 모습. 4대강 사업으로 강변의 농지는 모두 없어졌고 대형 달성보가 들어섰다. 이들 보가 과연 홍수 피해를 줄여줄 것인가.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에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기 위하여 “강에다 줄줄이 댐을 세워 물을 흐르지 못하게 하면 고인 물은 썩는다”고 말했다가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보’를 ‘댐’으로 불렀다는 것과 고인물이 썩는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계속 ‘댐’이라고 부르는데,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 International Commission on Large Dams)는 높이가 5m 이상 되는 댐 중에 저류량이 300만t 이상이면 대형댐이라고 부른다. 낙동강의 함안댐(함안보)은 높이 13.2m에 저류량이 1억 2700만t에 이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굳이 ‘보’라고 우긴 이유는 보와 댐의 설계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는 적당히 세워도 되지만 댐은 물을 안전하게 담아둘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저수지역의 지표지질조사를 해야 하고 또 댐 구조물이 들어설 자리에 댐을 안전하게 앉힐 수 있는 암반이 있는지 정밀 지반조사를 해야 한다. 
 
물론 4대강에 들어선 댐들은 ‘한반도 대운하’의 수위 6m를 맞추기 위해서 댐 위치를 잡았을 뿐이고 댐설계기준은 따르지 않았다. 지금껏 댐의 물이 새고 세굴이 일어나고 댐 구조물의 보강공사가 계속 이어지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Ubergirl _800px-Hoover_Dam,_Colorado_River.jpg» 단단한 암반 위에 들어선 미국 후버댐. 사진=Ubergirl, 위키미디어 코먼스

  
댐은 단단한 암반에 짓지 않으면 안 된다. 댐에 저장한 물이 워낙 무겁기 때문에 지반이 가라앉을 수 있고 또 압력이 세기 때문에 댐의 옆구리가 터질 수가 있고, 또 홍수 시에는 방류수의 물줄기가 워낙 세기 때문에 하천 바닥이 침식되어 댐 구조물의 안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댐들이 다 단단한 암반 위에 또 절벽 같은 암벽에 걸쳐서 지어져 있다.

 

JJ Harrison Gordon_Dam.jpg» 오스트레일리아 태스매니어의 단단한 암반에 건설된 스트라스고든 댐. 사진=JJ Harrison,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잘 지은 댐을 보더라도 다들 단단한 암반에 걸쳐 있고 또 방류지점의 하천 바닥도 단단한 암반이다. 

미국의 테톤 댐, 일본의 후쿠시마 댐, 인도의 델리 댐, 중국의 샤오랑디 댐 등 수많은 댐이 옆구리가 터져 무너져서 하류에 큰 피해를 끼쳤는데 이는 단단하지 않은 암벽에 댐을 걸쳤기 때문이다.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_Teton_Dam_failure.jpg» 1976년 6월5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테톤댐이 붕괴되는 장면. 사진=미국 내무부
              
우리나라의 연천댐도 단단하지 않은 지반에다 건설하는 바람에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서 옆구리가 터져 무너져서 큰 피해를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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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7523_R_0.JPG» 단단한 암반이 없는 곳에 건설했다가 옆구리가 터져 무너진 연천댐. 1999년 8월 홍수 때의 모습이다. 아래는 댐 날개가 물살에 쓰려나간 모습.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대형댐은 작은 홍수나 작은 가뭄을 막는 데에는 참 유용하나, 예상치 못한 홍수로 붕괴하였을 때에는 오히려 대형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 인도에서는 1979년에 마츠추 II 댐(일명 모르비 댐)이 무너지면서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5년에는 중국의 양자강 유역에서 반차오 댐이 무너지면서 23만 명이 죽는 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溃坝后的板桥水库.jpg» 1975년 붕괴된 반차오 댐. 62개의 크고 작은 댐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이재민 1100만명 사망자 23만명을 냈다.

 

세계 최대 저류량을 자랑하는 이집트의 아스완댐은 이집트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6일 전쟁을 할 당시 아스완 댐을 폭파하겠다는 경고를 했고 이집트는 항복했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로는 물을 잘 다스리는 나라들은 더 이상 대형 댐을 짓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대형댐의 수가 세계 제7위이고 밀도로 따지면 단연 세계 1위이다. 댐을 건설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이미 댐이 다 들어섰고 이제 더는 댐 짓기에 적합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4대강에 지은 댐은 기초를 암반에 고정했다지만 대부분은 모래 위에 세워져 있다. 댐의 물이 새고, 댐 하류의 모래가 세굴되고 끊임없이 콘크리트를 쏟아 부으면서 보강공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대강.jpg» 2012년 달성보 보강공사 현장. 보 아래 쪽으로 돌망태를 던져 넣고 있다.사진=생명의강 연구단 발표자료  
 
그러나 앞의 예에서 보였듯이 이 댐들을 흙더미에 걸어 놓았기 때문에 연천댐처럼 옆구리가 터져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공사 전보다 오히려 더 큰 홍수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 
  
4대강 사업에서 가장 크게 내세운 사업 효과 중의 하나는 홍수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4대강 사업에 책임을 져야할 국무조정실이 ‘조정’한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도 “대부분의 구간에서 사업 전보다 계획홍수위가 낮아졌으며(홍수피해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의미) 그 결과 4대강 주변 홍수위험지역의 93.7%에서 위험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라고 발표하여 사업에 면죄부를 주려고 참 애를 많이 썼다. 
 
4대강 사업지역은 원래 홍수가 없던 지역인데 여기에 홍수 위험을 더 낮추었다고 하는 것은 자랑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나머지 지역에 홍수위험이 커졌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홍수를 막기 위하여 홍수피해 지역의 상류에다 댐을 지어 홍수를 막는 것은 흔히 하는 방법이지만 4대강 사업에서처럼 홍수지역의 하류에다 댐을 만들어 수위를 오히려 올려놓고 홍수를 막는다는 것은 동서고금에 없던 일이다. 
 
낙동강에는 10개가 넘는 댐이 줄줄이 들어섰는데 홍수가 날 때에는 각각의 댐이 자기 맘대로 수문을 열고 물을 빼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댐이 갑자기 큰 물을 빼서 바로 아래의 댐이 넘쳐 무너지면 그 아래의 모든 댐들이 줄줄이 무너진다. 때문에 모든 댐을 연계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10개가 넘는 댐을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게 해본 경험도 아직 없다. 
 
그리고 수문 하나의 무게가 수십t 내지 100t에 가까운데 이 수문을 열고 닫는 것이 쉽지도 않아서 벌써 작동이 안 된 사례가 보도되었다. 즉, 수문관리 실패나 실수로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홍수를 불러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00532938_R_0.JPG» 2002년 태풍 루사는 강릉지역에 하루 850㎜의 폭우를 뿌려 극심한 피해를 일으켰다. 사진=강릉 / 이종근 기자

  
최근에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 내리고 있다. 하루에 100㎜ 정도의 비가 오면 백년에 한 번 오는 홍수라고 하는데, 이런 비는 요즘은 자주 내린다. 
 
포항에서는 하루에 550㎜, 연천에서는 하루에 650㎜(이 비로 연천 댐이 터졌다.), 강릉에는 850㎜, 중국에서는 하루에 1050㎜의 비가 와서 반차오 댐을 비롯하여 62개의 댐이 다 터지는 참사를 불러오기도 했다. 
 
최근의 이런 비는 댐으로 가둘 수 있는 홍수가 아니다. 4대강 사업으로 절대로 홍수 위험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대규모 홍수재난의 위험을 안게 하였다. 
 
댐을 터라. 그것이 홍수를 막고 물을 깨끗하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김정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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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아픈 소식이 ‘수상한 이유’

박근혜 대통령의 아픈 소식이 ‘수상한 이유’
 
대국민사과 때문에? 아니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임병도 | 2015-04-28 08:54: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월 16일부터 4월 27일까지 9박 12일간의 해외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몸이 아파 1~2일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생긴 피로 때문에 위경련과 인두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업무 중에 아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식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모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절대 안정을 취할 만큼 아프다는 소식이 왜 수상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대통령의 건강은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사람이라 유능한 주치의가 있어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식은 항상 공개되지 않거나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식은 외교나 경제, 공무원 기강 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네덜란드-독일 해외 순방 중에 심한 감기로 고생을 했습니다. 감기가 너무 심해 네덜란드 국왕 만찬에 불참했습니다. 귀국해서도 3일간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3일이 지나서야 대통령이 감기로 아팠지만, 회복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아픈 상황 중에는 공식적인 브리핑을 하지 않다가 거의 회복이 되어 업무를 복귀할 때쯤 알렸습니다.

역대 대통령들도 아프거나 병에 걸렸어도 공식적으로 브리핑하지 않았습니다. 노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고 MB도 자신이 아프다는 소식이 알려질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서 공식적으로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할 경우, 휴가 기간이나 연휴를 이용했습니다. 그만큼 대통령의 아픈 소식은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통령의 건강 소식’

4월 2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이 아파,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공식적으로 올라왔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4월 27일 모처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경련에 의한 복통과 인두염에 의한 미열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민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료진이 하루나 이틀 정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말도 함께 전했습니다.

통상적인 청와대 브리핑 스타일로 보면 ‘대통령이 건강 검진을 받았지만, 큰 질병은 발견되지 않았고, 피로 회복을 위해 1~2일 정도 휴식을 취한다’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절대 안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우리가 병원에 갔을 때 ‘절대 안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아프구나’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통령은 아파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함에도 국민이 우려할만한 ‘절대 안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자체가 역대 대통령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국민사과 때문에? 아니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출국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또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나 ‘이완구 총리 사퇴’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 사과가 있을 것이라 말하는 모습 ⓒ JTBC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 당 대표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대통령의 귀국이 있기 하루 전인 4월 26일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 사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야의 모습과 달리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요구 소식이 아닌 대통령이 아프다는 얘기를 중심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4.29재보궐 선거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식은 대국민사과 자체를 요구하는 행위를 아주 못된 짓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박근혜 대통령 소식 ⓒ 네이버 뉴스 캡처

대통령이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식부터 인두염 질환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뉴스 등이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식이 제일 많이 보도되는 대통령 같습니다.

혹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통령의 아픈 소식을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1급 기밀에 해당할 만큼 중요한 사안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조차 국가기밀이라 아직도 공개하지 않는 청와대가 1급 비밀을 계속 공개적으로 언급한 모습은 이해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아프니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통령의 1급 기밀을 함부로 이용하는 행태는 스스로가 의혹을 만드는 일이며, 외교적으로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세월호 참사 당일의 기록도 과감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알려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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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언론에 돈 주고 '정규직 해고' 기사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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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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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정규직 해고조건 완화' 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 언론사에 수천만 원을 주고 기사를 작성하게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노·사·정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정부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면서 왜곡된 여론을 조성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매일경제>에 '언론홍보' 명목으로 5500만 원을 지급했다. '홍보내용'은 고용노동부와 정부가 올해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선 정책'이다. '언론기고' 명목으로 55만 원도 지급됐다. 

그 결과 <매일경제>에는 지난 3월 10일, 11일, 13일, 23일 등 4일에 걸쳐 '노동시장 새틀짜기'라는 제목 아래 총 5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고학력 청년실업'을 조장하는 3대 장애물을 제시하고 해결 방안과 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양보하지 않는 강성노조'로 좁혀져 있다.

노동시장 개혁한다면서 노조 겨냥한 비판기사 양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매일경제>는 10일자 보도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며 노동시장의 3대 장애물로 ▲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 격차가 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 고용 유연성을 막아서는 강성노조 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청년 일자리를 위해 '세니오르 오블리주(기성세대의 의무)'가 필요하다"라는 이기권 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이 매체는 또 같은 날 '호봉에 기댄 기성세대·양보 안하는 강성노조가 일자리 막아'라는 제목에 기사에서 "청년들의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강성노조는 '임금체계 개편', '고용유연성 강화' 등에 어떤 양보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3대 장애물이라는 해결과제를 푸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강성노조'라는 지적이다. 

그 다음 날인 11일자 보도에서는 '고용유연화'를 지적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를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매체는 '두자릿수 치솟던 독일 실업률… 고용유연화로 잡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독일이 고용시장에서 기적을 이룬 배경은 2003년 이후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하르츠 개혁'에 있다"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해고제한법 제외 사업장 확대, 파견 상한기간 폐지, 신규창업 시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등을 뜻한다. 쉽게 말해 해고를 조금 더 쉽게 하고,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를 확대하는 정책이다. <매일경제>는 이 같은 하르츠 개혁의 효과를 "해고되는 속도보다 일자리 증가 속도가 더 빨라져 실업률이 하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 때문에 독일의 고용 안정이 이뤄졌다는 주장에는 이견도 상당하다. 지난 달 26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독일의 일부 전문가들은 "하르츠 개혁이 저임금 일자리와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이어졌고, 이제 그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법정 최저임금제 도입, 파견 규제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해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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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10일 보도된 매일경제 기사.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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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기사 사는 방식은 정부 정책 불신 불러올 것"

고용노동부가 언론사에 돈을 주고 기사를 통해 정책을 홍보하는 방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정애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2014년에도 수차례 같은 방식의 홍보를 해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취임 100일을 맞아 정권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한 '시간선택제일자리' 정책 홍보에는 1억7500만 원가량이 기사의 대가로 지불됐다. 

또 노사문화대상 수상기업 홍보,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을 주제로 2억3500만 원이 지불됐다. 이 같은 방법으로 기사를 쓴 매체는 경제지들뿐 아니라 주요 일간지까지 총 11개 매체다. 이들은 기사 한 건당 적게는 500만 원, 많게는 5000만 원가량을 받았다. 기사 한 건당 평균 지불액은 약 1600만 원이었다. 

고용노동부는 기사뿐 아니라 신문에 게재되는 외부 칼럼에도 돈을 직접 지급했다. 언론사 지면에 실리는 칼럼의 원고료는 해당 언론사에서 지급해야 하지만 이를 대신 내준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대학교수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인사뿐 아니라 한국노동연구원 등 공공기관의 연구원에게도 신문에 글을 쓰게 하고, 건당 50만 원가량을 지급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주요한 정책이 있으면 국민에게 알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관심을 가진 매체가 있으면 취재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돈으로 기사를 사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다른 부처도 이렇게 기획 보도를 해왔고,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대행사에서 담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정애 의원은 "기사를 홍보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왜곡된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며 "돈을 주고 기사를 사는 방식의 홍보라면 오히려 정부 정책에 불신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주요정책을 민간대행사에 맡겨서 자신들은 잘 모른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편집ㅣ최 규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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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박비호코리아연대회원 부당한 구속영장청구 기각하라!>

 
  • [사회] 시민사회 〈박비호코리아연대회원 부당한 구속영장청구 기각하라!〉
  •  

    코리아연대는 27일 오후1시30분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표현의자유수호와 박비호코리아연대회원 구속영장기각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선생,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명회장, 통일애국인사 김영식선생, 박희성선생,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송무호이사장,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박승렬상임의장 등 시민사회원로들과 소통과혁신연구소 정성희소장, 코리아연대공동대표이자 단결과혁신을위한진보노동자회 김병동대표와 코리아연대회원들이 참석했다.

     

     

    또 불법폭력연행, 성추행만행, 폭력해산을 자행한 남대문경찰서를 규탄하기 위해 지난 25일 오전11시 개최한 기자회견과 항의방문에서 불법폭력연행됐다 27일 오전11시30분경 석방된 코리아연대회원 4명과 21세기대학뉴스기자 1명도 함께했다.

     

     

    이들 5명은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된 48시간동안 인정심문과 지문날인 거부를 포함해 묵비단식투쟁을 완강하게 벌였다.

     

    김병동공동대표는 <이나라가 민주공화국인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 및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라며 <경찰은 코리아연대 박비호회원을 폭압적, 폭력적, 불법적으로 억류했다. 오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하는데 사법부의 양심이 일말이라도 있다면 구속영장은 기각돼야 한다.>고 밝혔다. 

     

    권오헌명예회장은 <박비호가 삐라를 뿌리려고 했던 모양인데 행동에 전혀 문제없다. 표현의자유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학섭선생은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영장기각하고 석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박희성선생은 박근혜<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세월>호참사의 책임은 <정권>에 있고 이것을 비판한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선생은 <박근혜정권은 사대매국정권이다. 이땅의 분단70년 식민70년을 종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무호이사장도 <박근혜를 비판한다고 하는데 박근혜가 국가냐? 파쇼적 발상이다.>라며 <표현의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강제지문날인을 거부하다 실신까지 한 한 코리아연대회원은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책임자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것이, 박주호·박비호 두회원의 불법연행에 대해 항의서한을 전달하게다는 것이 어떻게 불법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서울지방경찰청 항의방문과정에서) 경찰들을 밀치고 들어가지도 않았고, 그들이 열어준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는데 밀치고 들어갔다고 경찰이 거짓말을 했다.>며 <이런식으로 사실왜곡하고 경찰들이 유리한대로 법해석하는게 법인가? 진정한 법이 무엇인지 국민의 힘으로 보여주겠다. 끝까지 죄를 묻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박비호회원의 구속영장청구는 법적인 형평성에 맞지 않고 일반적인 상식에도 어긋나는 비열한 보복탄압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남대문경찰서가 부당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박비호회원은 그 어떤 잘못도 없다. 박비호회원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자유를 실천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주장했다고 해서 선량한 청년들을 구속시키는 나라가 이 21세기 대명천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만약 이런 내용을 문제삼는다면, 지금이 표현의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임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잘못이 있다면 무지막지한 불법과 폭력․추행을 자행한 남대문경찰서>라며 <남대문경찰서의 변관수서장의 즉각 해임과 구속처벌>을 엄중히 요구하고 <그 지휘책임을 물어 구인수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해임, 강신명경찰청장의 공개사죄와 자진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계속해서 <우리는 결코 빈말을 하지 않는다.>며 <시대착오적이며 악질적이고 저질적인 경찰공권력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우두머리들이 응당한 정의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 우리의 법률적, 정치적, 행동적 투쟁은 갈수록 도수를 높여가며 완강히 전개할 것>이라고 경찰당국과 박근혜<정권>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표현의자유 보장하라! 정의롭고 양심적인 시민 박비호코리아연대회원에 대한 부당한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고 당장 석방하라!

     

     

    지난 24일, 민주노총총파업 행진과정에서 <박근혜를 수사하라>·<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가 담긴 전단지를 건물옥상에서 뿌리려다 박주호·박비호 두명의 코리아연대회원이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되어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경찰은 <건조물침입죄>라는 황당한 구실을 들이댔지만 두회원은 부당한 연행에 묵비권을 행사하며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나아가 인정심문과 지문날인까지 거부하며 스스로가 무죄이고 정당한 행위였음을 완강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 결과 법정구금가능시간 48시간을 거의 다 채워가던 4월26일 오후3시, 남대문경찰서는 박주호회원은 석방시켰지만 박비호회원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였다. 한날 한시에 똑같은 혐의로 연행해갔으면서도 누구는 풀어주고 누구는 잡아가두려는, 오히려 법적으로 이른바 <주범>이라고 하는 운동선배는 풀어주고 이른바 <종범>이라고 하는 운동후배는 가두는 비상식적 행태속에 법집행에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공정성과 형평성의 결여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박비호회원의 구속영장청구는 법적인 형평성에 맞지 않고 일반적인 상식에도 어긋나는 비열한 보복탄압으로밖에 볼 수 없다.

     

     

    남대문경찰서가 부당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박비호회원은 그 어떤 잘못도 없다. 박비호회원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였을 뿐이다. <<성완종게이트> 몸통 박근혜를 수사하라> 등의 내용이 뭐가 문제가 되는가.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주장하였다고 해서 선량한 청년들을 구속시키는 나라가 이 21세기 대명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약 이런 내용을 문제삼는다면, 지금이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말살된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경찰은 궁여지책으로 <건조물침입죄>라는 엉뚱한 명목으로 두청년을 체포하였는데 과연 열려있는 건물옥상에 올라간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구실을 씌워 불법연행하고 반인권적으로 구속까지 시키려하는 것은 박근혜<정권>과 그 <충견>역할을 하는 경찰공권력이 민주주의수호를 위해 떨쳐나서는 국민들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잘못이 있다면 무지막지한 불법과 폭력·추행을 자행한 남대문경찰서이다. 두회원에 대한 불법연행에서부터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핸드폰을 압수하는 등 온갖 불법을 저지른 가장 악질적인 경찰서이다. 여기에 강제지문날인이라는 일제식민지때나 있을 법한 잔인한 반인권적 행태까지 보였다. 특히 두회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평화적인 항의기자회견과정에서 보여준 남대문서의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야만 그자체였다. 여성회원의 몸에 손을 대는가하면 심지어 여경이 황당하게도 자기의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겠다며 남성경찰들로 에워싼 가운데 여성회원의 속옷에 3차례 이상 손을 집어넣는 천인공노할 성추행건들이 발생하였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들은 당장 누구를 수사하고 누구를 구속해야 하는지를 명백히 알려주고 있다.

     

     

    박근혜를 수사하고 남대문서장을 구속하라. <성완종게이트>로 청와대가 썩은내로 진동하고 있다. <성완종게이트>는 <박근혜게이트>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국가정보원·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대선개입으로 인한 <관권>부정선거뿐만 아니라 심각한 <금권>부정선거가 이뤄졌다는 직접적인 증언과 증거가 폭로되었다. 그래서 <<성완종게이트>의 몸통, 박근혜를 수사하라>는 정당한 외침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대문서의 불법·폭력·성추행건은 현시대 공권력이 저지를 수 있는 한계를 보여준 최악의 범죄적이고 야만적인 만행으로서 가장 엄격히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남대문경찰서의 변관수서장의 즉각 해임과 구속처벌을 엄중히 요구한다. 그리고 그 지휘책임을 물어, 구인수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해임과 강신명경찰청장의 공개사죄와 자진사퇴를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는 결코 빈말을 하지않는다. 이 한심하고 시대착오적이며 악질적이고 저질적인 경찰공권력의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우두머리들이 응당한 정의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 우리의 법률적, 정치적, 행동적 투쟁은 갈수록 도수를 높여가며 완강히 전개될 것이다.

     

     

    박비호회원에 대한 부당한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고 당장 석방하라. 지금 검찰과 경찰은 박비호회원을 구속시킬 아무런 명분과 근거도 없다. 민심의 분노에 겁을 집어먹은 야비한 보복탄압일 뿐이다. 역사는 민심에 역행하는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박비호회원은 민심을 표현하려고 하였을 뿐이며 24일 행진에서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였을 뿐이다. 아무런 근거와 명분도 없는 부당한 구속영장청구에 대한 기각을 강력히 촉구하며 박비호를 당장 석방하라. 만약 무고한 청년을 구속시킨다면 지난3박4일 밤샘석방투쟁으로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며 박근혜<정권>과 그 충견인 불법만행의 폭력경찰과 끝장을 보고 말 것이다.

     

     

    <표현의 자유>을 보장하고 정의로운 박비호회원을 바로 석방하라!

    부당한 구속영장 기각하고 양심적인 시민 박비호를 당장 석방하라!

    불법·폭력·성추행만행 남대문서 변관수서장을 즉각 구속하라!

    온갖불법폭력 책임지고 구인수서울지방경찰청장을 해임하고 강신명경찰청장은 자진사퇴하라!

    성완종 불법정치자금 박근혜를 수사하라!

     

     

    2015년 4월 27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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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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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협력 강화'와 '신형 국제관계'


[친절한 통일씨]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 투영된 국제정치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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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7  15: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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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전 인도네시아 반둥 소재 사보이-호만호텔에서 '게둥 메르데카'까지 도보행진하는 각국 정상들. 중앙 시진핑 주석과 조코위 대통령. [사진 출처-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 홈페이지]

지난 24일 오전 9시(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반둥 소재 사보이-호만 호텔 앞에 나란히 선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과 대표들이 '게둥 메르데카(독립청사)'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60년 전 수카르노와 자와할랄 네루, 저우언라이, 가말 압둘 나세르 등이 걸었던 길을 되짚으며, 6일에 걸친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21명의 정상을 비롯한 91개국 대표들과 15개 업저버국 및 10개 국제기구 인사들이 참석했다. △반둥 메시지 2015, △'신(新) 아시아-아프리카 전략 파트너십(2005)' 진흥 선언, △팔레스타인 연대 선언 등 3개 문서를 채택했다. 매년 4월 24일을 '아시아-아프리카의 날', 반둥을 '아시아-아프리카 연대의 수도'로 선언하고, '아시아-아프리카 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참석자들의 면면과 채택된 문서들은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이 마주하고 있는 냉엄한 국제정치 환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코위와 시진핑, 아베 신조, 김영남

올해 행사에서 가장 돋보였던 인사는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인도네시아 관계는 반둥회의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행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1954년 4월말 실론(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모인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실론, 버마(현 미얀마) 정상들이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을 향해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 기치 아래 미.소 어느 진영에도 기울지 않는 독자적 진로를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이들은 그해 '제네바 정치회의'에 중국의 참여를 지지했다. 이 회의 의제는 한반도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문제였다. 한반도 문제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인도차이나 문제 관련해서는 '제네바 협정'이 나왔다. 1955년 반둥회의에 중국과 남.북 베트남이 초청되고, 남.북한이 배제된 배경이다.

중국이 반둥회의에 참가하기까지는 몇 단계의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우선, 중국과 인도가 1954년 4월 '중국의 티베트 지역과 인도 사이의 통상.교통에 관한 중국-인도 협정'을 체결하며 티베트 문제를 봉합했다. 협정 서문에 '평화공존 5원칙'이 명기됐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 정상화였다.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953년 5월 베이징에 초대 대사를 파견했으며, 그해 12월 중국과 무역협정을 맺었다. 중국도 '모든 화교는 중국인'이라는 통념을 포기하고, 이중국적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에 따라, 저우언라이 총리가 세계인의 관심 속에 수카르노 대통령과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저우 총리가 주창한 '평화공존 5원칙'은 '반둥 10원칙'의 모태가 됐다. 그러나, 1965년 '친화교.친중' 성향의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일으킨 '9.30 사태'를 군부가 유혈진압하고 수카르노 대통령이 실각하면서, 중국-인도네시아 관계도 냉각됐다. 이는 1962년 중국-인도 전쟁, 1965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실각과 더불어 반둥회의가 동력을 잃게 된 주요 원인이다. 중국-인도네시아 관계 정상화는 냉전이 끝난 1990년 9월에야 이뤄졌다. 2005년 4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이 참여한 가운데 '반둥정신'의 소생을 추구하는 '50주년 행사'가 개최되고 '신 아시아-아프리카 전략 파트너십 선언'이 채택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주목을 받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은 1955년 반둥회의에 과거 식민종주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한 나라다. 다카사키 경제심의청(뒤에 경제기획청) 장관이 일본측 대표로 참석, 경제 협력에 집중했다. 이를 디딤돌로 삼아, 일본은 1956년 소련과 관계정상화를 이루고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를 진두 지휘한 인물이 '55년 체제'의 주역이자, 일본 '자주외교'의 기수인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다.

아베 총리는 하토야마와 함께 '55년 체제'를 건설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아.태 재균형 전략'의 첨병을 자처하는 그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리허설 무대로 '반둥회의 60주년 행사'를 택했다. 60년 전 하토야마 총리가 일본을 국제사회에 재등장시키는 장으로 반둥회의를 활용했다면, 아베 총리는 일본을 '보통국가화'하는 디딤돌로 '60주년 행사'를 이용한 것이다. 지난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은 많은 뒷얘기를 낳았다.

 

   
▲ 반둥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눈길을 끌었다. 22∼23일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기간 중 그는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등과 만나 관계강화에 대해 협의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남남협조 심화'를 촉구했다. 25일자 <교도통신>은 북한이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에 '아세안과의 공식 파트너십'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을 대표해서는 외유성 남미 순방을 떠난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우여 부총리가 참석했다. 초청대상에서 배제됐던 6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지만, 60년이 흘러서도 남.북한은 여전히 주요 행위자가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을 확인한 셈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불참도 눈에 띈다. 60년 전 주인공 중 한 명이 네루 인도 총리였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과거 네루 총리는 '세속주의'와 '중립주의' 이념, '반둥 10원칙'에 기초하여 비동맹운동을 주도했다. 반면, 모디 총리는 힌두민족주주의 정당 출신으로, 올해 1월 '공화국의 날'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했다.

'남남협력 강화'와 '신형 국제관계'

이번 행사의 성과를 압축한 '반둥 메시지 2015'의 키워드는 '남남협력 강화'와 '신형 국제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메시지 7항은 "우리는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 사이의 연대의 표출이자, 남북협력의 대체가 아닌 보충으로서 남남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우리는 남남협력 강화가 자신의 전략적 이익에 복무하고, 신형 국제관계에 윈-윈 협력 특색을 반영함으로써 두 지역에 호혜적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남남협력 강화'는 반둥회의의 영원한 숙제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지난 23일자 분석기사를 통해, "반둥회의 기간 각국 대표단은 긴밀한 협력과 서방 종속에서 탈피 의지를 표현했"으나 청소년 교류 외에 아시아-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별다른 교류 프로그램도, 제도화된 경제협력의 틀도 없다고 지적했다. 행사 주최자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3일 정상회의 폐막연설에서 △2년 마다 유엔총회 계기에 아시아-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 개최, △기술협력과 역량구축 구상.프로그램을 통한 남남협력의 중요성 관련 합의가 도출됐다고 보고했다.

그는 전날 개막발언에서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촉구했다. 신흥경제국들에게 더 개방적이되,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브레튼우즈체제'를 넘어설 것을 요구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시아-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신형 국제관계'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구상에 일정하게 호응한 것으로 평가된다. <디 벨트>는 아프리카의 정상과 대표들이 이 회의장을 찾은 주요 이유는 아프리카 대륙과의 무역 규모가 2천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는 일본과 '해양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해양 포럼을 설립하기로 했다. '부상하는 중국'으로부터 과실을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견제 장치도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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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통령 이야기

[정동칼럼]두 대통령 이야기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입력 : 2015-04-26 21:02:53수정 : 2015-04-26 21:22:06
두 대통령이 만났다. 두 대통령이 모두 여성이라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두 대통령의 인생 여정이 닮은꼴이라며, 유수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두 대통령이 다정하게 머리를 모은 사진도 곁들여졌다.
 
한 대통령은 전직 소아과 의사였다. 두 번 이혼했고, 세 자녀 중 한 명은 미혼모 상태에서 낳았던 싱글맘이다. 젊은 시절,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다 국외로 추방돼 망명 생활을 했다. 공군 장성 출신인 그녀의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아 사망했다. 다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8년 동안 대통령 관저가 자신의 집이었고, 몇 년 동안 ‘영부인’ 역할을 대신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그녀의 아버지는 안가에서 파티를 하던 중에 심복 부하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한 대통령은 집권한 뒤, 남녀 동수로 내각을 구성했다. 자신과 그녀의 아버지가 군사독재정권의 피해자였지만, “증오를 거꾸로 돌리는 데 내 삶을 바치겠다”며 국민의 상처를 보듬고, 가해자를 용서했다. 다른 대통령은 집권한 뒤, 권력기관의 수장과 정부 요직을 특정 지역과 계파 출신으로 채웠다. 그녀의 아버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는 구국의 혁명이었고, 헌법을 부정한 인권 유린은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아버지를 용서했다.

한 대통령은 그녀의 첫 번째 임기 동안 무려 3500개의 국립 보육시설을 만들었다. 하루에 2.5개꼴이었다. 그 덕분에 여성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미혼모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출산율도 가파르게 올랐다. 그 당시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9400달러였다. 다른 대통령은 아이 키우는 것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임기 첫해부터 보육비용을 지방정부의 부담으로 떠넘겨 소란을 일으키더니, 그 후에는 아이들 점심밥을 먹이는 것과 아이들 돌보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국민을 몰아세웠다. 그녀의 임기 2년 동안 290여개의 공립 보육시설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조차도 대부분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녀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첫해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4000달러였다.

한 대통령은 무상교육과 공교육 강화를 위해 법인세를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기간 내내 재계의 반발이 계속됐지만, 그녀는 취임 20일 만에 이를 위한 법안을 발표했다. 몇 달 후 이 법안은 의회를 통과했다. 다른 대통령은 고교 무상교육과 대학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다. 이것을 증세 없이 실현하겠다고 장담했다. 취임 3년차에 접어든 지금, 고교 무상교육 공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반값 등록금 공약도 사실상 폐기됐다. 그리고 ‘증세 없는 복지’는 ‘복지 없는 증세’로 둔갑했다.

한 대통령은 최근 아들 부부의 비리 의혹으로 곤경에 처했다. 어머니가 현직 대통령이었지만, 아들 부부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녀 자신은 아들 부부의 비리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녀는 국민 앞에서 공개 사과했다. 다른 대통령도 동생의 비리 의혹으로 곤경에 처했었다. 그녀는 “동생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최근에는 그녀의 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 정치자금의 일부가 자신의 선거비용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녀는 남의 일 이야기하듯 사임 의사를 밝힌 측근의 고뇌를 이해한다고만 했다. 
 
한 대통령은 두 차례의 임기 동안 두 번의 지진을 겪었다. 수백명의 국민이 사망했고, 수십만채의 주택이 파손된 대형 재난이었다. 그녀는 지진이 발생한 새벽 시간에 본인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상황 설명을 했고, 날이 밝자마자 여진이 계속되는 피해지역으로 달려가 복구 활동을 이끌었다. 그 와중에 지진해일 경보가 발령되어서 주민들과 함께 대피하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감수했다. 위기 상황에서 그녀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고, 국민은 안정을 되찾았다. 다른 대통령도 수백명의 학생이 억울하게 수장되는 국가 재난을 겪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던 사고 발생 초기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했고, 관계 부처와 기관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자식이 죽은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의 호소는 지금껏 외면당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정권의 민낯이 드러났고, 국민은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잃었다. 

이 두 대통령이 닮은꼴이라고 하는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다. 두 대통령 중의 한 명은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12일간의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오늘 귀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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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의 현장을 가다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의 현장을 가다

정현환 2015. 04. 27
조회수 2 추천수 0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중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한국과 중국은 작년부터 협조했다. 우리 (중국) 중앙정부는 이일에 대해 대단히 중시하고 있으며, 우리 인민들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 측 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더우위페이(竇玉沛) 민정부 부부장>

 2015년 3월 20일. 65년 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중국은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자의 유해를 함께 들었다. 주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함에 오성홍기를 덮으며, 백승주 국방부 차관 등이 유해 68구를 배웅했다. 그동안 북한을 거쳐 송환됐던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중국측에 직접 인도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의 상흔’이라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향하는 긴 여정에 첫발을 내딛었다. 유해발굴에서 송환까지, 그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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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홍기(五星紅旗)에 덮인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를 가슴에 품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의장대의 모습.  (사진/ 정현환 기자)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의 배경

 

 2013년 3월 29일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류옌둥(劉延東) 중국 부총리 겸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정전 60주년을 맞아 중국 전사자 유해 360구를 송환 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1년뒤인 2014년 3월 한국은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437구를 처음으로 중국측에 송환했다. 작년 송환 이후 2015년 3월 20일에도 1년 동안 발굴된 인민지원군 유해 68구를 중국측에 건넸다. 국방부는 이번 유해를 송환하며 “분단 70주년을 맞아 과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양국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송환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랴오닝성 선양의 ‘항미원조(抗美援朝, 한국전쟁을 일컫는 중국 정부의 공식 명칭) 열사능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한국 정부는 매년 4월 5일 청명절(淸明節, 중국에서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에 중국에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를 정기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60년간 타국에 묻혔던 중국 전사자 유해는 총 403구

 

 2013년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방중 나흘째되는 날 베이징(北京) 칭화대학(淸華大學) 환영간담회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칭화대 학생들 앞에서 중국 방문을 “심신지려(心信之旅,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라고 표현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한·중 두 국가가 우의를 다지는 방안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 유해들이 이제는 유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류옌둥(劉延東) 부총리는 “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멀리 가더라도 반드시 조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중국 속담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에 감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곧바로 시진핑 주석에게 보고 됐다.
  곧이어 청와대는 정전협정 이후 지난 1997년까지 한국전쟁 때 전사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403구가 발굴됐다”면서, 그동안 43구를 UN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중국 측에 송환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송환되지 않은 360구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북한군 유해와 함께 임시로 매장했다”고 언급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이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유해 송환 문제는 전쟁협정 당사자들 간의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은 정전협정 당사자인 UN군사령부와 북한의 군사정전위원회(이하 군정위)가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사실은 1981년에서 1997년까지 중국군 전사자 유해가 송환된 과정을 보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 기간 동안 중국측에 반환된 43구의 유해는 작년과 올해에 중국에 직접 송환된 것과 달리 북한을 거쳐 돌아갔다. 한·중 간의 사안으로 논의된 것이 아니라 군정위와 판문점에서 열린 장성급 회담을 통해 송환됐을 뿐이다. 이번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를 송환하는 과정에 참여한 국방부 관계자도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은 군정위를 통해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유해송환 이후 중국 분위기

 

  3월20일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중국 본토로 송환된 다음날인 21일 유해는 중국 선양 열사능원(抗美援朝烈士陵園) 지원군 열사기념광장(志願軍烈士紀念廣場)에서 안장됐다. 민정부, 해방군 총정치부, 선양전구부대(瀋陽戰區部隊) 군 지휘관들을 비롯하여 한국전쟁에 참전 했던 노병(老兵)과 참전 용사들과 초·중학교 학생 4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지 언론매체는 이날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했는데, 작년 제1차 한중 유해송환 현장에 참석했던 사업가 장웨이(張偉) 씨는 중국 정부 외문국(外文局) 산하 인민화보(人民畵報)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의 후손이라고 밝히며, “자기 가족의 유골도 이처럼 정중하게 대해주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남방일보>(南方日報)는 사설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발굴 작업에 한국측의 성의에 감사”를 전했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인민왕(人民網)은 “최근 중·한 양국의 전략적 소통이 원활해지고 정치적 상호신뢰가 한층 강화되었으며 두 번에 걸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순조롭게 귀환해 안장된 것은 양국이 여러 분야에서 밀접하게 협력하는 좋은 관계임을 보여 준다”고 논평했다.
 더욱이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과 관련된 현지의 뜨거운 분위기는 중국 언론뿐만 아니라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 유해 송환을 지켜본 중국인들은 조국으로 돌아오는 유해에 애도를 표하면서 “한국측의 선의와 진지하고 세심한 배려에 만족과 감사”를 드러냈다. 특히, 중국의 한 네티즌(아이디: 一枝梅)은 “중·한 양국이 이제 역사의 짐을 벗었다”고 언급하며, “이번 일의 의미가 남다르고, 한국의 조치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은 중국 지도층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치더쉐(齊德學) 군사과학원 전 군사역사 연구부 부원장은 “인도주의 정신을 잘 보여준 것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매우 감동적인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을 지켜본 감동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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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일 중국으로 송환된 유해는 21일 중국 선양 열사능원(抗美援朝烈士陵園) 지원군열사기념광장(志願軍烈士紀念廣場)에 안장됐다. 60여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우에게 묵념하는 중국 인민지원군 노병(老兵)의 모습. (사진출처: 바이두) 


경색된 '남·북관계'가 되레 유해송환을 이끌어
 
  현재 남과 북의 관계는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MB 정권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최악을 맞이했으며, 현 정부까지 이어져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색된 남과 북의 관계는 현재 그동안 역대 남측 정부와 북측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물밑으로 이루어졌던 인도적 제안마저 거부하고 있는 실정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과 북의 관계는 남쪽이 중국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소통 부재와 대화 단절의 태도는 중국과 경제적·정치적 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과 2011년부터 중국 인민지원군의 유해를 중국으로 송환하는 사업(해외열사기념시설 보호 관리 업무)을 펼치고 있는 중국에게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사의 동의하에 한국과 중국은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을 두고 긴밀한 교섭을 펼쳤다. 양쪽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60여 년간 타지에 매장되어 있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2014년 중국 인민지원군의 유해 437구가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을 통해 ‘광복군’ 표지석 설치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광복군이 있었다. 광복군은 과거 중국의 시안(西安)에주둔지를 두고 활동했었다. 광복군은 시안의 창안구(長安區)와 두취진(杜曲鎭) 두 곳에 주둔하며 조국 광복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두 곳이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되고 있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을 통해 이 두 곳에 광복군 표지석 설치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3월 29일 산시성(陝西省)의 자오정융(趙正永) 당서기, 러우친젠(婁勤儉) 성장과 만난 자리에서 “시안(西安)에 있는 광복군 주둔지가 있었던 곳에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2009년부터 추진해온 정부주도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

 

 앞서 말했듯 한국은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은 아니다. 이는 앞으로도 한국이 두 차례에 걸친 송환과정에서처럼 중국 인민지원군의 유해가 발굴되고 송환되는 문제에 있어 계속 UN군사령부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 해외에 묻힌 중국 전사자의 숫자는 11만 5217구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중 99%에 이르는 11만 4000여구가 한반도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앞으로도 유해발굴 사업은 계속 진행될 예정인데, 유해가 발굴 때마다 UN군사령부의 동의를 언제까지 얻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더욱이 지금의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은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반면 한중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세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다. 정치·외교적 차원을 넘어 인도적 차원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지 남한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나아가 한국정부는 지금보다 더 큰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남북회담 등을 통해 북한 내 남한군 유해 송환에 합의했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지 않다. 명백한 합의 불이행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쪽도 북쪽에 묻힌 군 유해를 송환받아야 한다.
 정부는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중국 전사자 유해송환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한은 중국정부의 신뢰와 협조를 얻어,  한반도 이북지역에 매장된 국군의 유해송환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미국은 북한과 경색된 외교관계에서도 96년부터 220여구의 미군 추정 유해를 발굴했던 일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북미관계가 단절된 상태였지만 직접 미 국방부 산하 미군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 (JPAC, Joint Prisoner of War/Missing in Action Accounting Command)가 북한으로 건너가 북측으로부터 미군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을 미 본토로 송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유해송환에 대한 규범이 전무한 실정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전쟁 전사자에 대한 예우와 기준을 마련하고 기존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 대해 적절한 보상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글/정현환, 유원 기자 dondevoy8612@naver.com , bittersweet04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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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 등록금 환불 뉴스가 조선일보에 없는 이유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4/27 10:21
  • 수정일
    2015/04/27 10: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동기의 신문비평] 조간 1면을 강타한 네팔 지진, 현지 상황 심각…국제사회 구호 손길
민동기 기자  |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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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7  07:11:52
수정 2015.04.27  07: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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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신문 1면은?

네팔 지진 소식이 1면을 장식했습니다. 머리기사와 사진 대부분이 네팔 지진 소식입니다. <‘세계의 지붕’이 무너졌다>(경향) <울고 있는 네팔 모든 것이 무너졌다> <네팔 강진 8000명 사상 통곡의 땅>(조선일보) <폐허 속 “살려주세요” … 네팔의 절규>(한겨레) 등 제목에서 현지의 처참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발 빠르게 현지에 특파원을 파견해 르포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번 대지진으로 한국인 3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여행 중인 50대 부부가 낙석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네팔을 방문 중인 한국인 관광객은 최대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사관은 현지 민박업체와 여행사 등을 통해 이들의 피해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가족들이 대사관으로 행방을 문의해온 여행객 60여 명 가운데 20여 명은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 한겨레 2015년 4월27일자 1면

2. ‘성완종 파문’은 오늘도 주요 소식이네.

검찰은 경남기업 측이 빼돌린 성완종 전 회장의 다이어리(일정표) 등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이용기 경남기업 부장을 26일 구속했습니다. 지난 25일 구속된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와 이 부장은 성 전 회장 다이어리 등 일부 자료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최근 압수수색에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계열사 대여금으로 조성한 비자금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은 최근 성 전 회장의 측근 자택 장롱 속에 감춰져 있던 대여금 관련 비자금 자료를 한 박스 분량 확보해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3. 서울신문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관련한 기사를 실었는데 흥미롭다.

기사 제목이 <‘성완종 금배지’ 시절 민원 대부로 통했다>입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은 지난해 6월까지 만 2년간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서울신문이 성 전 회장이 2년간 참석했던 국회 정무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특위 및 소위원회와 국정감사 등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총 94건의 회의록 발언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성 전 회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건설업계 민원의 대부’와 같은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가 2012~2013년 열린 정무위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정책은 건설업계에 대한 대출 및 보증 확대였습니다. 이 기간은 성 전 회장이 오너였던 경남기업의 자본잠식 개시 시점(2012년 6월), 3차 워크아웃(2013년 10월), 채권단에 대한 긴급자금 2000여억원 대출 요구 시점(2014년 6월)과 맞물립니다.

4. 정치면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귀국 소식이 많이 실렸다.

경향신문은 ‘머리 아픈 귀국길’(4면)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1) ‘성완종 리스트’를 수습해야 하고 (2) 이완구 총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3) 표류하는 국정과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해야겠지요. 조선일보는 여권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해 “성완종 파문과 이완구 총리 사퇴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박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다수 올라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사과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5. 이완구 총리도 사과한다는 얘기가 있지?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여 지난 20일 사의를 밝힌 이후 26일까지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사의를 수용한 상태라 빠르면 순방 귀국일인 27일이나 28일 박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임사를 통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불명예 퇴진하는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6.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재산증가와 관련한 소식도 보이네.

한국일보 1면 보도입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의 정치인 중 한명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현금성 자산이 2012년 3억원, 2013년 5억원 등 2년에 걸쳐 8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일보가 대선 직후인 2012년과 2013년 2년치 홍 의원의 재산신고 내역을 확인한 결과, 의원 임기를 시작한지 7개월 만에 약 3억원이 순수하게 증가. 2013년에도 예금이 5억여원이 늘었다고 신고했습니다.

   
▲ 한국일보 2015년 4월27일자 5면

홍 의원은 당시 부친이 설립한 경민대 총장직에서 내려와 학교에서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았습니다. 홍 의원은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구입 등으로 100억원이 넘는 빚을 져 연간 수억원에 달하는 이자도 부담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예금이 불어난 ‘또 다른’ 수입원이 무엇인지에 의혹이 증폭되는 대목입니다. 성완종 전 회장은 숨지기 직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때 홍문종은 본부장을 맡았는데, 제가 한 2억 정도 현금으로 줘서 조직을 관리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홍 의원에게 수 차례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7. 오늘 사회면에는 수원대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송경근 부장판사)는 수원대 학생 채종국씨 등 50명이 학교법인 고운학원, 이인수 수원대 총장, 최서원 수원대 이사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2013년 이전 입학한 학생 44명에게 학년당 3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3년 7월15일 수원대 학생 88명은 등록금이 교육 및 실습비로 쓰이지 않고 사용처가 불분명한 적립금으로 누적돼 피해를 봤다며 1인당 100만~400만원의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재판부가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과도하게 쌓으면서 실험·실습 등 교육서비스는 부실하게 한 사립대학은 학생들에게 등록금 일부를 환불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는데요, 과도한 적립금을 축적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 경향신문 2015년 4월27일자 10면

관심을 모으는 건, 오늘 조선일보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조선일보만 알겠지요. 하지만 몇 가지 ‘정황’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우선 조선일보와 수원대의 ‘특수 관계’입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차남 정오씨는 수원대 이인수 총장과 고운학원 최서원 이사장의 딸 주연씨와 부부지간입니다. 고운학원은 대학발전기금으로 TV조선에 50억 원을 출자한 뒤 2011년 이 사실이 드러나자 ‘2018년까지 매각’ 계획을 밝히도 했습니다. 현재 TV조선 주식은 수원대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정황’이 있습니다. 수원대가 2011년 조선일보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출범 당시 수억 원의 대학발전기금을 재단회계로 처리해 TV조선에 50억 원을 출자했습니다. 당시 감사원이 수원대에 “대학발전기금 전액을 교비회계로 되돌려 놓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만약 이런 점들이 고려됐다면 조선일보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국가인권위원회가 도마에 오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8일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 차벽과 캡사이신 최루액 등을 동원한 과잉진압 논란을 빚은 경찰에 대해 ‘경찰력 남용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위원장 성명을 준비했다가 보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보장 △경찰력 남용 자제 등을 뼈대로 한 위원장 성명을 내는 방안이 논의됐고, ‘집회 참가자들도 폭력을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초안이 작성됐습니다. 하지만 일부 인권위원이 ‘집회의 불법성’을 문제 삼으면서 성명이 보류됐다고 합니다. 보수화한 인권위원 구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9. 국세청 간부들 성매매 사건과 관련해 돈을 댄 회계법인 있었다고?

조선일보(10면) 보도입니다. 지난달 2일 국세청 간부 2명이 서울 강남의 룸살롱 여종업원들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들이 당시 국내 유명 회계법인 임원과 함께 룸살롱에서 술을 먹었으며 술값과 성매매 비용을 회계법인 임원이 계산했던 것으로 26일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 수서경찰서는 해당 룸살롱에 대한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사건 당일 이 업소의 카드 매출 전표를 전수(全數) 조사했습니다. 회계법인 임원 2명이 국세청 간부 2명과 술자리를 갖고 이들의 2차 성매매 비용을 계산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0. 삼성이 ‘이재용 승계’를 연내에 마무리 한다고?

동아일보(1면) 보도입니다. 삼성그룹이 연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 짓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5월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최근 해외 기관투자가 및 기업 간 거래(B2B) 파트너사들이 ‘경영권 안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계 방안으로는 삼성 사장단협의회에서 경영 상황을 고려해 승계를 공식 건의하거나 사회 원로 및 외국인투자가들이 공식 요청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11. ‘이한열 운동화’가 복원된다고?

1987년 6월9일 전두환 정권 규탄 시위에 나섰다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가 복원됩니다. 26일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근·현대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김겸 박사(47)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을 당시 신은 운동화를 복원 중입니다. 기념사업회는 오는 6월9일까지 운동화 복원을 마치고 다시 전시할 계획입니다.

※ 이 글은 CBS <뉴스로 여는 아침 김덕기입니다>(매주 월요일~토요일 오전 6시 10분부터 7시까지 / 98.1 MHz)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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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묻는다…"'남영동 1985' 봤나?"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정지영 "세월호,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기 전 치유해야"
 
 

<남부군>·<하얀 전쟁>·<부러진 화살>·<남영동 1985>·<천안함 프로젝트>·<영화판> 등 모두 우리 시대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회적 성찰을 시대적 화두로 던진 작품들이다. 

곧 칠순이 되는 평생을 영화인으로 살아온 노련한 노장(老壯) 감독 정지영. 그의 깊은 사회적 성찰이 담긴 메시지는 작품 발표와 동시에, 공론과 토론의 장을 오갔다. 이것이 그가 관객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이게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나의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화가 상영된 후 공론이 일고 토론이 발생하면, 너무 기분이 좋다. 좋게 말하면 토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논란인데, 논란이 되는 주제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묻어두는 것보다는 들춰내서 토론의 장을 펼치는 게 맞다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빨갱이 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는 이 괴물 같은 질병을 오히려 '그러려니…' 받아치며 근본적인 문제는 '분단이 가져온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이 모든 딜레마가 분단 모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중략)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글로벌시대에도 불구하고 한쪽으로는 민족문제를 화두로 삼아야 하는 나라, 분단 모순으로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비정상적인 나라이자 불행한 나라다. 분단 모순만 극복하면 한국은 아마도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는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은 분명 정치의 문제다. 영화인으로 세월호 동조 단식에도 앞장섰던 정지영 감독은 곪아버린 정치, 움직이지 않는 정치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권이 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모두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들 모두 은연중에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엄청난 비극을 눈감고 묻어버리면 상처는 곪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썩은 채로 도려낼 생각인가. 언제든 곪아 터질 상처를 왜 이렇게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고름을 째 내고 치료해야 하는데, 지금 권력자들은 이를 감추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온 국민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기 전, 빨리 치유해야 한다."

 

 

▲ 정지영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 <부러진 화살>·<남영동 1985>·<영화판> 등 최근 작품은 패기 있는 젊은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정지영' 하면 젊은 느낌이다. 그런데 곧 칠순이 된다니, 조금 놀랐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사회고발 성격의 영화라 젊게 느껴져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결론을 말하자면 내가 젊기 때문이다.(웃음) 곰곰이 생각해보고 점검한 결과 그렇다. 나쁘게 말하면, 철이 늦게 든 거다. 다른 사람들이 나이 오십(理順)에 깨달을 것을 나는 지금 깨닫는다. 이 말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이 늦다는 것이다. 내게 지금 사십 대 후반 정도의 안목과 깊이밖에 없기 때문에 영화가 젊을 수밖에 없다. 지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하나의 사건)을 통해 실체를 알고 난 후에 의미를 깨달아 온전하게 내 것이 되는 시간이 항상 늦다.

- 반전이다.(웃음) 충북 청주에서 아버지가 사촌 형에게 내준 헌책방의 책을 다른 곳에 몰래 팔아넘겨 영화를 보러 다녔을 정도로 '영화에 미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소년이자 청년 정지영은 어떤 학생이었나.

학창 시절, 무척 한심했다. 아버지가 대학교수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설득해 전문 서적을 판 돈으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한마디로, 전문 지식을 팔아서 오락을 취한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그 덕분에 나는 영화감독이 됐지만….(웃음) 분명 나쁜 짓이었다. 당시 중학생이 영화를 본다고 얼마나 깊게 봤겠는가. 예쁜 여배우 보고 재밌는 이야기 들으려고, 영화를 본 거다. 도둑질이었지 뭐….(웃음)

- 1946년 출생이다. 6.25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있나? 

기억은 거의 없고 생각나는 몇몇 장면이 있다. 청주에 살 때였는데, 밖에서 총소리와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마루로 나갔는데, 한두 살 많던 옆집 아이가 밖에 나가기에, 내가 '어디를 가느냐?'라고 물었더니 '총탄을 주우러 간다'고 했다. '난 무서운데, 쟤는 참 용감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쟁 중에 청주보다 더 시골인 옥천으로 피난을 갔는데, 동네 아이들이 내가 도시에서 왔다고 나를 따라다니며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며 놀리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애들하고 어울릴 생각에, 대답도 잘해주고 했었다. 그리고 시골 밤이 무척 무서웠던 기억, 밤마다 누나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던 기억이 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 피난 여정에 관한 이야기 등 자세한 건 나중에 들었다.  

- 언제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는지, 계기가 있었는지?  

사실 영화는 재미로 봤고, 중학교 때 나름 문학소년이었다. 집이 책방을 해서 이것저것 주워서 읽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처음에는 추리소설 위주로 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본격 문학을 접했다. 가장 쉽게 접근한 것이 신구문화사에서 나온 <세계전후문제작품집>(1962~1963)으로, 전후(戰後) 주목할 만한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1권에서 7권까지는 한국·미국·불란서(프랑스)·영국·독일·남북구(남북극)·일본 편이었고, 8권과 9권은 각각 한국과 세계의 시를, 10권은 세계의 희곡(시나리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인간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 것 같다. 

특히 한국 편에는 당대의 한국 작가 중단편이 실려 있었다. 그때 이범선(1920~1982)의 <오발탄>(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발표됨)을 읽었다. 후에 영화잡지에 실린 오발탄 시나리오를 우연히 봤다. 원작이 단편소설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는 에피소드가 더 많이 들어가고 등장인물도 추가돼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참 재밌었다. 하지만 영화 <오발탄>(오현목 감독, 김진규·최무룡 주연)은 1961년 4월 13일 개봉됐지만,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상영이 금지됐다. 어렸지만, '정부에서 싫어하는 영화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2년 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가 재상영됐다. 그때 <오발탄>을 보면서 이전까지 재미로만 봤던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오발탄>을 보기 전에는 영화를 그냥 봤는데(see), 이후 영화를 처음으로 읽었다(read). 소재가 시나리오를 거쳐 영상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보면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화감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습작용으로 소설도 쓰고, 그림도 즐겨 그리고, 노래도 한 번 들으면 쉽게 익히고 해서 그런 쪽에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역시 종합예술인이 맞아' 라고 합리화하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로 했다.(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런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왔다. 

- '영화는 종합예술'이고 '영화인은 종합예술가'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눈(시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발탄>을 비롯해 사회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 특별한 사건이 있는가.  

우선 <오발탄>의 영향이 크다. <오발탄>은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온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것으로, 전후 서울의 풍경을 그린 영화였다. 거기에 인간 실존의 의미를 질문으로 던졌다. 제목의 '오발탄'은 주인공 스스로 자신을 '신의 오발탄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스스로를 잘못 태어난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범선 작가는, 당시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결국 해고됐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문제 삼은 것은 주인공(계리사 사무실 서기 송철호)의 어머니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매일 밤 "가자! 가자!"라고 외친 부분이었는데, 정권의 반(反)공산주의적 시각이 <오발탄> 상영을 금지한 것이다. 그 말이 '북한이 더 좋다'라는 뜻이 아닐 텐데…. 이렇게 협소한 시각으로 작품을 봐서는 안 된다. 

이런 전후 작품이 나의 청소년 시절을 좌우했다. 비단 한국 전후 작품뿐 아니라, 세계대전 이후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전후시대라는 것은 전쟁으로 자기가 생각하던 모든 가치가 무너진 시대를 말한다. 반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반어적인 세상이기도 하다. 전복적·반어적 가치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보니, 인간과 사회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이겠는가. 그 때문에 인간애(愛), 즉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이나 친구 사이의 우정 같은 살가운 것보다는 이념과 사회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시대적 환경 속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1998년 <까> 이후로 13년 만에 <부러진 화살>(2011)로 복귀해 쾌거를 거뒀다. 그동안 제작비 등의 문제로 준비하던 영화가 좌초되거나 실패했다고도 하던데, 어려운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13년 동안 무척 고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계속 영화 준비를 한 시간이었다. 님 웨일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리랑>의 시나리오를 쓰느라, 8년 이상 많은 시간을 보냈다(명필름이 제작을 맡았으나, 2007년 결국 중단됐다). 중국 혁명기를 그린 작품이라 중국 정부의 검열에 신경을 써야 했다. 주인공 김산이 조선독립을 위해 중국에 건너가 혁명의 과정에 휩쓸리다 연안(延安)으로 와서 중국 공산당을 위해 활동했는데, 간첩으로 몰리면서 북한 공산당에게 처형당하는 이야기다. 사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에 사면복권이 됐지만, 이런 주인공을 그리다 보니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엄청난 제작비도 부담이었고, 그래서 보류했다. 그 뒤에도 작품 하나를 하려다 잘 안됐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 <부러진 화살>을 만들게 됐다. 

물론 경제적 고생은 했다. 그런데 이런 고생은 평생을 해온 것이라, 익숙하다. 익숙한 고생.(웃음) 그냥 견뎌왔던 것이지, 특별히 엄청난 고통과 쓰라림은 없었다.  

- 영화 제작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한 번도 없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찍다 실패하거나 그 실패가 계속되면 '영화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실패했어도 그렇게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일이 생겼다고 크게 기뻐하지도, 슬픈 일이 생겼다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편이다.  

- 빨치산의 나약한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낸 <남부군>(1990),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다룬 <하얀 전쟁>(1992), 사법부와 일반 국민의 관계를 들여다본 <부러진 화살>, 한국의 영화산업을 파헤친 <영화판>(2011),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고문을 고발한 <남영동 1985>(2012) 등 모두 사회적 성찰을 담은 메시지로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또한 논쟁도 불러왔다. 그만큼 관객들을 자극한 것이다. 이런 토론의 장을 실제로 기대했었는지? 

영화를 만들 때는 항상 많은 관객이 봐주기를 기대하며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러면 안 된다. 자기의 고집스러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지 않아도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작업해야 한다. 예술가는 그런 면에서 관객이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쉽게 이해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다.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이렇게 찍으면 관객이 잘 모를 텐데? 이렇게 하면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라며 점검한다. 항상 관객을 의식하며 영화를 제작한다. 이다. 이 말은 되도록 영화를 통해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에서 던진 이야기, 질문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논하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이게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나의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화가 상영된 후 공론이 일고 토론이 발생하면, 너무 기분이 좋다. 좋게 말하면 토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논란인데, 논란이 되는 주제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묻어두는 것보다는 들춰내서 토론의 장을 펼치는 게 맞다고 본다.  

- 그러나 영화 <남부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2013) 등의 작품에 대해서는 호불호(好不好)를 분명히 하며, '빨갱이' 감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념 논리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 혹은 '종북'이라고 비난받을 때 마음이 어떤지, 또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 

영화는 일단 자기가 만들고 나면, 이후에는 자기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관객은 각자 자기 삶과 철학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에 만든 사람과 똑같이 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남부군>에 대해 좌(左) 쪽에서는 빨치산을 나약한 휴머니스트로 그렸다고 비판했고, 우(右) 쪽에서는 빨갱이를 미화했다고 손가락질했다.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이 우리 사회를 더욱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 사회가 가진 특징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이 모든 딜레마가 분단 모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글로벌시대에도 불구하고 한쪽으로는 민족문제를 화두로 삼아야 하는 나라, 분단 모순으로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비정상적인 나라이자 불행한 나라다. 분단 모순만 극복하면 한국은 아마도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흥행의 실패가 영화의 성패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흥행에 실패하면,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한계 등 수많은 감정이 교차할 텐데 어떻게 처리하는 편인가.  

반성해야지.(웃음) 내가 할 수 없는 마케팅과 영업 등을 제외하고, 내가 한 일 중에서 무엇을 잘못했나 면밀히 살피고 반성한다. 반성하다 보면 뭐가 나온다. 물론 그 반성 전에 같이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하단 말부터 전한다.  

- 혹시 대표적인 반성작이 있나.  

<남영동 1985>.(웃음) 극장에서 100만 명만 봤으면 하고 바랐다.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보기 힘든 영화였기 때문이다. 당시 2012년 대통령 선거도 있는 정치의 계절이어서 조금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에 못 미쳤다. '전 국민이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이 났지만, 관객수가 33만여 명에 그쳤다(2015년 4월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누적 관객수 334,619명). 개봉한 다음에 반성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남영동 1985>를 보다가 나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 영화가 지나치게 끔찍했던 것이다. 고문 장면을 찍을 때 관객들이 고문당하는 느낌을 받게 하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지나쳤던 것 같다. '관객의 감정을 계산하면서 고문 장면을 배치했어야 했구나' 생각했다.  

- 2012년 11월 <남영동 1985>을 개봉하면서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후보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어떤 바람이 있었던 건가.  

영화 개봉 당시가 대선 직전이었다. 그래서 <남영동 1985>를 보고, 박근혜 후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지 않나. 물론 영화의 배경은 전두환 정권이지만, 박정희 정권 이야기도 나온다. '군사독재'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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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가 극악무도한 악인이나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을 연기는 경우, 감독이 민감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하는 영화를 제작할 경우 후유증이 상당할 것 같다. 영화를 찍고 난 이후에 어떻게 회복하는 편인가? 

실제로 <남영동 1985>를 제작한 뒤 아팠다. 영화 촬영 당시 배우와 스태프 모두 고통스러워했다. 그 고통이 내게 돌아온 복수인 양 정말 많이 아팠다. <남영동 1985>를 찍을 때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안 피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술을 마셨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뿐만 아니라 몸도 아팠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 얼마 동안이나?  

몇 개월을 끙끙대다 실제로 몸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까지 했다. 나만 그랬겠나. 박원상 씨와 이경영 씨도 오랫동안 힘들어 했다. 고문 피해자 역을 한 박원상 씨보다 가해자 역할을 한 이경영 씨가 더 힘들어 했다. 연기라고 해도 그 후유증이 정말 컸던 모양이다.  

- 2005년 10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된 이후,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다른 나라들이 문화 정책의 모범으로 삼는 제도가 됐다. 그러나 한미FTA가 진행되면서 스크린쿼터 폐지 논란이 일었다. 당시 범(凡) 영화인들이 반대 투쟁을 벌였고, 배우 안성기 씨와 함께 스크린쿼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영화인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였지만, 일부에서는 '밥그릇 챙기기'라는 오해와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이 만약 밥그릇 챙기기였다면, 더 치열했어야 했다. 물론 영화인들에게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그만큼 설 자리가 없어졌을 테니 생존권의 문제이기도 했다.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한 이들을 그래서 바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 '어떤 배우는 외국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를 비판한 사람들은 대중의 여론을 자기식으로 환기시키려고 여러 가지 수를 썼다.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벤츠 타고 양담배 피우는 배우들,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영화 문화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집요하게 싸웠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스크린쿼터가 반으로 뚝 잘렸지만, 투쟁 과정에서 한국 영화인의 의식은 상당히 고양됐고 사명감까지 갖추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 밑바탕에서 오늘날의 한국 영화가 나온 것이라고 본다. 만약 그런 영화사적 과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한국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긍지를 가지고 당시 싸움을 종종 되돌아본다. 

-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3년 8월 언론시사회에서 "'천안함'은 우리 사회 '소통의 단절'을 담았다"고 했지만, 천안함 유가족과 해군 장교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상영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나.  

국가가 어떤 사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국민은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나 <다이빙 벨>(안해룡·이상호 감독, 2014)의 소재가 된 사건들은 의문투성이 문제가 너무 많다. 해명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게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과 소통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몇몇 사람만 의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전 국민이 의문을 가진 것 아닌가.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정부에 친화적인 사람들을 향해 '저 새끼들은 빨갱이들이다'라고 말하며 편 가르기를 한다. 정부를 비판한다고 빨갱이인가? 물론 대다수의 국민은 그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있는 것이다. '그러려니…' 한다.  

- 영화 제작에 있어, 지금까지 대기업(거대 자본)과 작업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상업 영화로 흥행해서 소위 '천만 관객'을 넘어보고 싶은 유혹 같은 것은 없었나.  

'천만 관객을 넘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거대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게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이 가는 길이다. 기회가 된다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또는 거대 자본과 작업을 해봐야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드는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 같다. '왜 꼭 관객이 천만 명이 되어야 하지? 내가 선택한 작품은 '천만 관객'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런데 최근 <삼별초>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이 정도 영화면 '천만 관객'쯤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니, 내용 자체가 천만 명이 들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나도 '천만 관객' 감독이 되려나? 생각하니, 재미있다.(웃음) 

- 대기업의 투자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인가.  

2008년 <이리> 이후, 13년 만에 <부러진 화살>을 제작했다. <부러진 화살>은 처음부터 대기업과 만나기 힘든 작품이었다. 사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데, 대한민국 대기업이 투자하겠는가. 다음으로 만든 영화가 <남영동 1985>인데, 이 역시 뻔하지 않나. 다행히 <부러진 화살>의 흥행(2015년 4월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누적 관객수 346만여 명. 역대 흥행 순위 102위)으로 돈을 빌리기는 쉬웠지만, 처음부터 저예산으로 만든 작품이다.  

- 2012년 1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계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다 보니 신인 감독들이 스타만 캐스팅해오면 돈을 준다"며 "조금 더 뜸을 들인다면 좋은 재목이 될 수 있는 씨앗들을 너무 일찍 사장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본인과 같은 또래의 노장 감독은 "감각이 늙었다며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대기업이 과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영화의 투자와 흥행을) 예상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기본적으로 나이 많은 감독을 만나기 꺼린다. 힘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 노장 감독에게는 그 힘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니 불편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 든 감독들은 감각이 낡았다고 핑계를 댄다. 

대기업의 투자 기준은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이 아니라, '출연 배우가 누구냐?'이다. 그래서 A급 배우를 섭외하려고 노력한다. A급 배우란, 인기 있는 배우를 말한다. A급 배우가 캐스팅된 시나리오라면, 시나리오와 감독이 B급이라도 대기업은 투자를 한다. 이게 대한민국 대기업이 가진 영화에 대한 투자 안목이다.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배우에 의존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계가 이런 투자 행태에 좌우되는 한,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지 않다. A급 배우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나리오와 새로운 소재로 승부수를 띄우는 최소한의 도전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립영화로 성공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감독, 2014)는 확률상 만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하기 때문에 도전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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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전체 영화산업 매출이 2조276억 원, 극장 입장권 매출액이 1조6641억 원으로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4년 개봉한 영화만 217편이다. 그런데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 영화 중 눈에 띄는 건 몇 편에 불과하다. 영화산업은 성장하는데, 반대로 실패하는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평생 영화를 제작해온 감독으로, 한국 영화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대기업이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어가는 시스템, 소위 수직 계열화된 구조가 문제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한국 영화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 외에 다른 영화는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가게가 문을 안 여는데, 관객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나. CJ, 롯데 등 대기업은 투자만 하고 제작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영화 상영과 배급도 분리해야 한다. 자기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작품을 발로 차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 영화인 또한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이다. 그런데 상품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작품 또는 노동자들은 실로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다. 영화계에 가장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권과 노동환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근 전국영화산업노조도 생기면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노조 간에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졌다. 영화계가 노동면에서 상당히 발전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다만 영화계 일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인 것은 사실이다. 촬영 스텝들을 월급을 주며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계 노동자들이 일이 없을 때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 같다. 물론 영화를 하고 싶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것이지만,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제도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영화 산업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해 8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동조 단식을 하면서 "침묵은 공범이다"라고 했다. 특히 정지영 감독뿐 아니라, 많은 영화인이 참여했다. 그런데 일간베스트의 폭식 투쟁 같은 상반된 일도 벌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봤나.  

현재 한국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이 모든 딜레마가 '분단 모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면, 한국이 정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힘들더라도, 그 모순을 넘어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것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권이 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모두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들 모두 은연중에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엄청난 비극을 눈감고 묻어버리면 상처는 곪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썩은 채로 도려낼 생각인가. 언제든 곪아 터질 상처를 왜 이렇게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고름을 째 내고 치료해야 하는데, 지금 권력자들은 이를 감추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온 국민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기 전, 빨리 치유해야 한다. 

- 새로운 진보 정치세력화를 선언한 국민모임 공동대표다. 정치 참여에는 지금까지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자기의 정치적 안정만을 위해 행동하는 기존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정치에 참여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자극을 주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 배지 하나에 전전긍긍하면서 개인을 위해서 정치하는 기존 정치인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이미 보수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진 정책 현안은 다 보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세력이 미약하지만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 쪽에서 규합해서 새로운 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은 절름발이다. 한쪽 날개로 간신히 날고 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나. 절름발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보수 야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야당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1976년 서른 살에 조감독으로 시작해 약 40년 동안 영화인의 삶을 살아왔다. 기쁜 적도 좌절했던 적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정지영'을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고 생각하나.  

철이 늦게 든 것?(웃음) 뭘, 잘 모른다. 가장의 책임감 같은 것을 좀 알면, 집이 힘들 때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난 아무리 배고파도 영화가 아니면 할 게 없다. 이런 철없음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온 것 아닐까?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거다. 영화를 하고 싶으니까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영화가 아니고선,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물론 19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외침 속에 '직선제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에 동참한 뒤, 당분간은 영화를 못할 것 같아서 아내에게 '포장마차나 해볼까?'라고 말했던 적은 있다.(웃음) 물론 6.29민주화선언으로 금방 풀렸지만…. 사회적 여건이 그랬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해볼까 했던 거지, 개인적으로 영화 외에 다른 것을 해볼 생각은 안 했다. 무모한 거지.(웃음) 

- 정지영에게 영화란?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영화가 아니겠나. 나는 태생적으로 혼자 생각하고, 혼자 꿈꾸는 사람이 못 된다.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안 되더라. 뭔가를 떠올리면,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밥그릇의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웃음)  

-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젊은 후배들에게 '어떻게 살아라' 하고 충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데, 마치 어떤 정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그래도 정 말을 하라면, 이렇게 사는 게 유리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적어도 청년이라면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대개 비극은 자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데, 자신의 직업이 그 '어떻게'를 뒷받침해 주지 않아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먼저 어떻게 살까를 정하면, 저절로 그렇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고, 대부분 그게 가장 본인에게 맞는 직업이든 일이든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치고, 부자로 살기를 원하면서 정치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 아닌가. 만약 그렇게 살려면, 부정부패해야 하고 감옥에 가야 할 테니 말이다.(웃음)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공무원이나 평범한 직장인이 될 꿈을 버려야 한다. 

- 정지영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문학적이나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자유 말고, 정치·사회적으로 쓰는 자유가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상당히 퇴색시키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 국가·자유시장경제·신자유주의 하는 말들이다. 사실 이런 말은 자유를 엄청나게 구속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 체제에서 이것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은 빨갱이가 되는 것 아닌가. 자유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시장을 장악한 놈이 주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 대부분은 그 시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도 실질적인 자유를 얼마나 많이 구속하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서 이긴 놈이 최고가 된다는 건데, 처음부터 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건가. 이런 의미에서 자유라는 말은 달갑게 인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인'이라고 하면 달라진다. 참 근사한 단어다. 

'자유인'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내가 객관적인 나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때다. 내가 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예수나 석가가 그런 자유인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일 텐데, 우리는 그 경지가 불가능하고(웃음), 죽을 때까지 그 경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삶이란 자기라는 객체를 자기라는 주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 그런 자유인을 희망하면서 죽어가는 것 같다.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인터뷰 및 정리는 비례대표제포럼 손어진 간사와 정치경영연구소 조경일 연구원이 담당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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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인사 빅토르 우고 히혼, 기자회견장 찾아 연대·지지발언

  • [사회] 국제민주인사 빅토르 우고 히혼, 기자회견장 찾아 연대·지지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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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2시30분부터 시작된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의 남대문경찰서에 대한 불법폭력연행, 강제날인거부보복구속영장청구, 성추행만행 규탄기자회견이 밤샘 기자회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후8시20분 기자회견 사회자는 지난 24일부터 벌어진 경찰의 표현의자유탄압, 불법폭력연행, 성추행, 인권유린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사회자는 <지난 24일 코리아연대회원 2명이 박근혜<정권>을 규탄하는 유인물과 현수막을 들고 있다가 불법체포됐고, 불법체포된 회원들을 석방하라고 규탄하는 남대문서앞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코리아연대회원 20여명을 무차별적으로 폭력해산시키고, 그중 4명을 불법폭력연행했다. 이과정에서 한 여성회원은 성추행을 당했고, 한 여성회원은 도둑으로 몰렸다. 뿐만아니라 남대문경찰서앞에서의 불법폭력연행을 항의하는 기자회견과 항의방문하는 과정에서 성추행피해자를 포함한 4명의 대표단과 언론사기자가 불법폭력연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주호회원은 48시간을 채우고 석방됐지만 박비호회원은 석방되지 못했다. 경찰은 폭력적으로 강제날인을 자행했음에도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경찰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며 <강서경찰서 여경 5명을 포함한 10명의 경찰이 불법폭력연행당한 성추행피해자에게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지문날인을 시도했고, 그 여성은 완강히 저항하다가 실신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준렬히 단죄했다.
     
    코리아연대에 따르면 변호사는 박비호회원에 대한 구속영장창구에 대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구속될 사항이 아닌데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건 당연히 기각될 것이라 예상된다. 사실 영정실질심사가 열릴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민주국제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남코리아를 방문한 에콰도르 인권위원회운영위원인 빅토르 우고 히혼(Víctor Hugo Jijón)이 늦은 시간임에도 기자회견장을 직접 찾아와 코리아연대회원들을 비롯한 기자회견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연대를 표했으며 지지발언을 했다.
     
    그는 <남코리아의 민주주의가 어떤 상황인지 이번 공권력탄압으로 알게 됐다.>며 <남코리아의 헌법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헌법은 안다. 그기준에 따르면 경찰과 정부가 한 행동은 전혀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이 들고 있는 전단에 폭탄이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정부이고 경찰이다. 법이 법대로 지켜지지 않을때는 시민들의 요구로 바꿔야 한다.>고 국제수준의 민주주의·인권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안보는 시민들을 연행한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남코리아의 이런 현실에는 국가테러주의가 엿보인다. 멀쩡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테러가 아니고 뭔가>라고 꼬집고 <진정한 민주주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찰과 정부는 시민과 대화를 해야 하며 폭력연행해서는 안된다. 모든 연행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코리아연대회원은 <남대문경찰서의 행태는 몰상식하고 비인격적>이라며 <<세월>호유가족들도 짐승같이 끌어내고, 우리쌀을 지키겠다고 하는 농민들도 짐승같이 끌어내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려다 불법폭력연행된 두청년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들도 짐승같이 끌어냈다.>고 통렬하게 성토했다.
     
    이어 <수많은 부정부패정치인들은 가만히 놔두면서 정권에 비판하는 시민들만 왜 탄압하는가.>라며 <연행자들이 석방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사회자는 <변관수남대문경찰서장, 최호열강서경찰서장, 구은수서울지방경찰청장, 강신명경찰청장은 불법폭력연행과 성추행만행, 강제지문날인강요 등 만행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리아연대는 기자회견과 침묵연좌농성을 반복하며 박비호회원이 석방될 때까지 밤새 투쟁할 것이며 불법·폭력·성추행·강제지문날인·인권유린을 자행한 경찰의 책임자들인 변관수·최호열·구은수·강신명에게 법적·사회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계획임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지난 25일 새벽 박주호·박비호회원 석방을 촉구하다 불법폭력연행돼 중랑경찰서로 이송된 코리아연대 양고은공동대표와 코리아연대회원 2명, 진보노동뉴스기자 1명이 밤11시20분경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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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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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지진 사망자 2500명 넘어... 이틀째 강력 여진

 

에베레스트 산에 수백 명 고립... 등반객 구조 작업 난항

15.04.27 09:12l최종 업데이트 15.04.27 09:2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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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의 에베레스트 산 눈사태 피해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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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이 규모 7.8의 강진에 이어 이틀째 규모 6.7의 강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복구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네팔 내무부는 27일(한국 시각) 현재 사망자 수가 최소 2430명, 부상자 수가 59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인도 53명, 중국 17명, 방글라데시 3명 등 주변국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다.

전문가 "여진 지속 가능성 높아... 눈사태 위험 가중"

이미 수도 카트만두 중심부와 인근 지역의 건물, 가옥 등이 무너졌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은 차가운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국제 사회가 지원에 나섰지만, 카트만두 국제공항이 사실상 폐쇄되고 도로, 통신, 전기 등이 끊기면서 도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실정이다. 

네팔 구조 당국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곡괭이, 삽, 맨손 등으로 건물 잔해를 치워가며 실종자를 찾고 있다. 하지만 워낙 무너진 건물이 많고 어린 아이 피해자도 많아 갈수록 사망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CNN은 지질 전문가를 인용해 "경험적으로 이 같은 대지진 이후 30시간 동안 여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히말라야 산맥의 눈사태로 등반객이 휩쓸리거나 마을 전체가 파묻혀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네팔 산악협회에 따르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에서 눈사태에 휘말려 지금까지 17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지진 당시 에베레스트 주변에 외국인 등반객 400여 명을 포함해 최소 1천 명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에베레스트에서 구글 임원인 댄 프레딘버그 이사가 다른 직원 3명과 함께 등반하다가 숨졌고, 일본 NHK에 따르면 일본인 등반객 2명도 눈사태에 휩쓸려 남성 1명이 숨지고 여성 1명이 다쳤다. 

아직도 에베레스트에 등반객 수백 명이 고립돼 있어 네팔 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는 한국인 1명도 에베레스트에서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보도했으나 정부 발표가 없어 한국인이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정부는 카트만두 북쪽 어퍼 트리슐리 지역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건설 업체 직원 1명과 카트만두 북쪽 샤브로베시를 여행하던 50대 부부 등 모두 한국인 부상자는 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아직 사망자는 없으나 여행객 남편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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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인도지원조정국(OCHA)가 발표한 네팔 대지진 지역별 강도.
ⓒ 유엔 인도지원조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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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성명을 통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 문화유산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네팔 정부와 국민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명한다"며 "이번 피해가 조속히 복구되어 네팔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기원하고 해외긴급구호대 파견 등 추가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지난해 4월 칠레 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8.2 지진 이후 가장 강력하며, 네팔에서는 1934년 카트만두 동부를 강타해 1만 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던 규모 8.1 지진 이후 81년 만에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BBC는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 지역 가운데 하나"라며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생겨낸 히말라야 산맥에서 보듯 두 지각판이 만나는 곳이라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진의 규모도 7.8로 높았지만, 진원의 깊이가 10~15km 정도로 얕아 지표면에 가해지는 충격이 컸고, 대부분 건물이 벽돌로 허술하게 지어진 데다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진 전문가들은 2010년 3월 3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아이티 대지진에 이어 다음 피해 지역은 네팔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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