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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안보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양태 보여

 
2015. 05. 01
조회수 91 추천수 0
 

  야당은 새누리당을 대체할 수 있는 수권 정당인가? 그러려면 국민에게 믿을 수 있는 안보의 확신을 주어야 한다. 재보선 참패에 빠진 야당의 환골탈태는 대북 안보정책에서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이 얼마전 온라인 매체 <프레시안>과의 직격 인터뷰에서 제기한 핵심 내용을 담았다.

 문재인.jpg                                                              

 

야당에 안보 ‘정책’이 있긴 한건가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야당의 안보 정책과 지향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전반적으로 야당의 안보정책을 진단해 본다면?

  김종대 : 안보담론에 대한 야당의 대처 방식과 인식, 행동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에서 실패한 이후 안보 정책에 대한 트라우마가 차곡차곡 쌓여 왔는데, 그걸 벗어나려는 욕망이 안보에 대한 지향으로 표출된 것 같다. 현재 야당에서는 당 대표의 안보 행보, 안보 연구소 및 특위 조직 창설 등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로 예비역 장성들과 안보 전문가가 영입되고 있다. 안보 정당의 이미지를 보이면서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외부 공격을 차단하면서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물론 지금까지 야당 형편을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이 이해는 된다. 얼마나 지긋지긋했겠나. 제가 야당 지도부를 만날 때마다 들은 질문이 “천안함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야당 정치인 거의 대부분이 천안함 때문에 공격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제적으로 보수와 동일한 목소리를 낸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보수 안보의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답습이 된 것이다. 
 이것이 천안함 이라는 한 가지 의제를 돌파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다른 의제가 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년 총선 이전에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구체화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이 제주 해군기지로 야당을 밀어붙인 것처럼 사드를 통해 야당을 무책임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나오지 않겠는가. 얼마 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 대표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야당”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가”라고 거꾸로 야당에 질문을 했다. 이건 뭘 말하나? 사드가 제2의 강정마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TV 조선>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출현하였는데 진행자가 “사드 배치에 찬성하냐?”고 묻고 심 대표는 “반대한다”고 했다. 배치되지도 않을 사드 갖고 벌써 편 가르기가 나오고 야당은 말려들고 있지 않나? 그러면 그 때가서 야당은 또 종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나올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것은 지금 야당의 준비 정도와 실력을 봤을 때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가 짜놓은 프레임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안보 문제가 불거지면 야권 내부에서 분열이 생긴다. 분명히 야당 강경파들은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고, 이러다 보면 보수 세력은 강경파 의원들이 있는 소위 ‘종북 숙주 정당’의 이미지를 새정치연합에 뒤집어 씌울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언어로 한반도 안보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문재인 대표의 안보 행보는 보수층의 언어를 그대로 빌려서 이야기하는 흉내 내기로 간다는 것이고, 여기서 일부 야당 의원들은 이탈한다. 한번 가 보라. 또 다른 의제가 야권 전체의 목을 조를 것이다. 

 

  프레시안 : 문 대표의 천안함 발언이 나왔을 때 이런 행태가 여당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많이 나왔다. 이후 상황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김종대 : 말려든다는 프레임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로 역할 변경에 있다. 안보가 무너지고 국민을 불안하게 해 실패한 안보에 대한 책임을 추궁 당해야 할 당사자는 사실 정부와 여당이다. 그런데 실패한 안보의 책임을 여당이 야당에게 추궁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원래 야당이 안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가장 정상적 현상인데 거꾸로 된 것이다. 천안함, 제주 해군기지, 사드 배치 등이 바로 그렇지 않나? 이것이 정부 여당이 선호하는 프레임이다. 
 마침 유승민 원내대표가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사드에 반대하는 야당”이라는 표현을 쓰며 야당에 입장을 추궁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한번도 사드 배치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정작 입장을 밝힌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요청도, 협의도 없었고 할 계획도 없다는 것이다. 또 전임 이명박 정부 때 천영우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미국 MD에 우리가 왜 참여하느냐고 했었다. 그렇다면 사드를 반대하는 쪽에 가까운 것은 야당보다는 박근혜 대통령, 또는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질문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잘못된 거다.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이 질문을 받지 않으니까 안보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해 진다. 왜 이렇게 되었나? 야당이 자신의 언어로 정부여당에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당이 집요하게 묻고 추궁하면서 물고 늘어지지 못하니까 이제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야당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게 바로 강정마을의 교훈이다. 사드 배치? 그것이 유승민 대표의 개인 의견인가, 정부의 입장인가, 왜 추궁하지 못할까? 게다가 정부여당이 그동안 안보에서 실패한 그 무수한 사례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추궁했더라면 야당의 위신은 얼마든지 설 수 있었다. 보수정권의 전략적 실패와 방산비리와 같은 부패사건까지 안보를 무너뜨린 건 보수정권인데, 이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한다. 그러니 야당 책임만 남은 것이다.   
  이건 안보 분야에서 추궁하는 검사가 여당, 답변하는 피의자가 야당으로 관계가 설정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다보니까 안보에 대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정부 여당은 면책되고 야당은 자기의 입장을 검증받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의 효과다. 여기서 야당은 일종의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해야 한다. 엄한 아버지 앞에서는 말을 못하는 청소년과 같이 자기 언어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정신적 장애다. 사도 세자가 영조 임금 앞에선 오금이 저리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결국 뒤주에서 죽었다. 그렇게 야당은 안보세력 앞에서, 군복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뒤주에 들어가는 사도 세자와 꼭 닮은 것이다. 이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장수가 다 망쳤다? 팩트 몰랐던 문재인 후보

 

  프레시안 :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야당에게는 외교안보정책이 중요한 자산인데 별로 공부도 안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당시 NLL 문제가 논쟁이 됐을 때 야당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김종대 : 우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3가지를 몰랐다.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 대화록 작성 경위, 대화록의 소재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캠프 내 일각의 분위기는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서해평화협력지대와 NLL 등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대화록이 공개되고 나니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NLL이야기를 들고 나오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평화와 경제 지도로 덮자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NLL에 대한 일종의 우회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마치 북한이 우리가 설정한 NLL을 인정한 것이라는 오인내지 기대,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NLL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뜻을 같이 했으니 사실 관계도 밝혀지리라는 기대가 퍼졌다. 하지만 공개된 대화록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때도 NLL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고 정상회담 이후 11월에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때도 21개 항에 합의문을 내 왔지만 서해 문제는 합의 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서해 문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2007년 8월 통일부-국방부-청와대가 모여서 NLL에 대한 최종적 입장을 정했다. 그런데 이날 하필이면 김장수 장관이 눈병이 났다. 그래서 김관진 합참의장이 대신 참석했다. 회의 이후 김 의장은 돌아와서 김장수 장관에게 NLL 수호에 대한 대통령 지침이 정해졌으며 군이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중요한 것은 통일부가 여기에 반발하긴 했지만 NLL 문제와 관련해 주도권은 이미 국방부로 넘어간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북이 합의했던 서해평화협력지대와 주요 갈등 사안인 NLL 문제는 이후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 맡기자는 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1월에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다.
 11월 회담에서 수석대표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 그리고 실무 책임자는 정승조였으며, 합참의장은 김관진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박근혜 정부 들어 국방 분야의 주요 직위를 맡았다. 김장수는 국가안보실장, 김관진은 국방부 장관, 정승조는 합참의장이 되어 있었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핵심 멤버가 박근혜 정부에 모두 입각해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했다고 단 한 번도 밝힌 적 없다. 실제 포기하지도 않았고 만약 포기했다는 누명을 쓰면 본인들도 같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NLL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7년에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실현될 수 없었던 거다. 그런데 2년 전인가. 정승조 합참의장 시절에 합참의 간부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에 대한 인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군의 입장이 정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런데 문 후보가 엉뚱한 발언을 했다. 대선이 있던 2012년, 10.4 남북공동성명 5주년 기념식에서 문정인 교수와 대담을 하는 과정에서 문 후보는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장수 장관이 경직된 태도를 보여서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다 깨뜨리고 내려왔다고 이야기했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김장수 장관은 앞서 밝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실제 노 대통령은 국방장관회담을 가기 전 찾아온 김장수 장관에게 “국방장관의 뜻대로 하라”고 했다. 이후 김장수 장관도 본인이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NLL을 지켰다고 밝힌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 장관급 회담 당시 거론됐던 NLL 문제에 대해 문 후보가 팩트 자체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기화점으로 해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10월 9일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4일 문 후보의 발언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새누리당은 “김장수 장관은 NLL을 지키려고 했다는데, 그랬던 김장수 장관이 일을 모두 망친 것이라면, 그렇다면 저 사람들은 NLL을 포기하려고 한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NLL 포기론으로 문 후보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새누리당이 NLL 문제를 제기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다. 
  그런데 이 때만 해도 박근혜 후보가 이 문제를 꺼내지 말자고 했다. 북풍이 불면 역풍이 분다는, 2010년 6.2 지방선거의 학습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새누리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지금 시절이 어느 시절인데 북한 문제로 걸고넘어지느냐는 입장을 보였고. 그래서 NLL 문제가 다시 나온다고 해도 이게 대선 쟁점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도 노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과 같은 것이었다. 여야가 같은 선거 공약을 냈다. 
  그런데 제가 유심히 본 것은 그해 10월경에 육군 3군사령관 출신인 이홍기 예비역 대장이 새누리당에 출입한다는 소식이었다. 이건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이었다. NLL 문제가 남북 간 제일 첨예한 대립으로 불거졌던 때는 2007년 5, 6, 7차 남북 장성급회담이다. 이 때 회담 대표가 이홍기 소장(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이었고, 당시 이 회담들은 남북한의 NLL에 대한 이견 때문에 제대로 된 합의를 내지 못했다. 만일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NLL에 대해 합의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그건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11월부터 새누리당은 NLL에 대한 총공세에 돌입했다. 박근혜 대표는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직접 이 문제를 따져 물었고, 새누리당 안보세력이 총동원되었으며 극우 논객들이 이 문제를 일제히 들고 나왔다. NLL을 둘러싸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됐다는 것을 당시 정부 인사들이 뻔히 아는데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착각했다.

 

  프레시안 : 그럼 당시라도 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수습을 해야 했던 것 아닌가?

  김종대 : 문 캠프의 사실관계 파악과 대응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문 후보 본인은 NLL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150번 정도 했다. 하지만 이미 NLL은 대선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되어있었고, NLL 포기냐 아니냐는 논쟁이 붙기 시작했다. 당시 캠프의 중요한 인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이 남북정상회담, 청와대 모두 있어봐서 아는데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NLL을 다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북한에 대한 감상적 낭만주의, 희망적 사고에 젖어있다 보니 팩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10년 간 집권한 정당이 오히려 정보가 없고 당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이 더 정확히 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문 캠프는 해명하기에 바빴고 우물쭈물 거렸다. 그러다보니 뭔가 숨기는 것 아니냐, 이상하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됐다. 의제 관리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만약 DJ 였다면 후보 입을 통해 그런 식의 엄청난 발언들이 나오기 직전에 반드시 크로스 체킹을 했을 것이다. 정보를 취사선택하려면 관점과 생각이 다른 보고서를 여기저기서 많이 올려보라고 해서 리더가 공통되는 부분을 찾고 비교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 캠프에서는 한 명이 가서 소설을 써버리면 나머지 전체가 다 바보가 되는 형국이었다. 대선 끝나고 당시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과 대북관계를 좀 알만한 의원, 국정원 간부 등에 물어보니 정확히 팩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보고해봤자 중간에서 끊기거나 엉뚱한 사람이 소설을 써버리니까 팩트를 교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스스로 버린 햇볕정책, 누가 대신 지켜주길 바라나

 

  프레시안 :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한 사후 점검은 없는 것인가? 

  김종대 : 그렇다. 야당의 가장 큰 문제가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자기들이 뭘 몰랐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당에 안보 전문가가 없었을까? 새누리당에도 없는, 연평해전 당시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2명이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NLL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을 때 “NLL 내가 지켰다. 앞으로 문 후보와 지키겠다”라고 기자회견 한 번 하는 걸 보지 못했다. 또 NLL 문제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극우 논객들을 단 한 명도 고소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중에 TV토론 때 새누리당에서 질문이 나오더라. 당신들 극우논객이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하는데, 왜 고소하지 않느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부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에 노무현은 전자개표기로 대통령을 도적질한 사람이고 김대중은 민족반역자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런 허위사실을 야당은 고발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당시 문 캠프는 거의 무장 해제 상태였다.  
 여태까지 뭘 실수했는지도 모르고, 사실 관계도 헷갈렸던 당시 캠프의 관성이 대선 이후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동안 전시작전권, 윤 일병 사망,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등 대형 안보 이슈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당론을 낸 적이 없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사드만 해도 그렇다. 입장이 없다. 그냥 퉁 치고 지나가자, 모르겠다, 떠들면 불리하다 등등의 기류만 있다. 당 내에 북한 전문가와 안보 전문가가 그렇게 많은데도 사건 터져도 회의 한번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MB 회고록,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다 나와 있는데 완전 허위와 기만의 기록물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야당이 이런 문제에 대해 당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끼리 단 한 번도 대책회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은 자신이 망친 안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얼마나 행복한 대통령인가? 새정치연합은 외교 안보 관련 내부 소통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정당이다. 일할 만한 능력이 있는 정치인은 일을 못하게 다 묶어놓았다. 예를 들면 통일부 정책보좌관을 지냈던 홍익표 의원은 ‘귀태’ 발언으로 2년 째 대정부 질문을 못하고 있다. 또 야당에 예비역 장성과 해군 참모총장이 와있으면 이들을 써먹어야 하는데 다 남의 일이 돼버렸다. 
새정치연합이 고질적으로 당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2002년 서해교전 때 햇볕정책 때문에 장병들이 죽었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매년 6월만 되면 이런 식의 담론을 계속 꺼내고 있다. 오죽하면 2함대 소속 병사들까지도 야당이 집권하면 자기들은 다 죽은 목숨이라고 알고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면 야당에서는 이 문제를 설명할 전문성이 없었을까? 연평해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 그날은 청와대 점심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박지원 비서실장 이하 전 직원 점심 식사였다. 그날 오전 합참에 처음 올라온 보고 내용은 ‘적함이 불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측 피해는 보고가 안되니까 승전한 줄 알고 합참은 박수치고 다 밥 먹으러 가버렸다. 그런데 청와대에 있는 몇몇 장교들이 조사를 해보니 사건 발생 이후 2시간이나 더 지나서 아군의 피해가 있다는 것이 파악됐다. 이건 김대중 정부의 치명적인 위기관리 실패였다. 그런데 정부가 서해에 일부러 우리 병사들 죽으라고 내몰았겠나? 군에는 교전 수칙과 작전 계획이 있다. 또 우수한 함정과 자동화된 사격 장비도 있다. 이렇게 깨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이 아닌 해군의 기강 문란 때문이었다. 
   당시 아군 고속정 2척은 적이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속 6노트로 기동하고 있었다. 적과 대치하면 시속 30노트에 육박하는 돌격 기동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불과 150미터 거리에서 함정이 적이 쏜 포에 명중되고 승조원 28명 중에 6명 사망자를 포함, 24명이 사상됐으며 배는 가라앉았다. 이 사실이 보고가 안 된 것이다. 이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통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군의 작전 기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 드러났다. 당시 합참의 작전본부장이 훗날 MB 정권에서 장관이 된 이상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남재준이었다.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한 국정상황실 장교에게 “해군이 까불다가 다친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황이 자세히 드러난 보고서는 이후 국정상황실장에게 전달됐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새정치연합 전병헌 의원이었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에게 갔다. 보고서에는 해군의 실수가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해군 출신들이 당시 정권이 자신들을 죽였다는 식으로 황당하게 사실을 바꿔치기 해버린 것이다. 당시 이 보고서를 받았던 박지원, 전병헌 의원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이에 대한 방어나 해명을 한 적이 없다. 팩트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명도,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싸움을 포기하고 투항해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보 이슈를 어설프게 제기하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싸움도 피하다가 진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에 등을 돌린 것은 민주당-새정치연합 자신들이다. 자기 스스로가 지키지 않는 가치를 남이 지켜주길 바라고, 이걸 국민보고 지지해달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나?

 

 프레시안 : 대선 당시 NLL 문제와 관련, 문 후보가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도 몰랐고 협상 과정도 몰랐던 것은 캠프 내에 전문가가 없었다기보다는 이 논쟁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가 없었다는 것 아닌가?

  김종대 : 한 번도 TF 같은 것을 만들어서 새누리당의 의도와 방향을 분석해본 적이 없다. 경험자들의 팩트를 누군가가 정리해 준 적이 없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선거에서 참으로 상대하기 딱 좋은 당이다. 사실 문 후보한테 이 책임을 다 물을 수도 없는 것이 그는 2007년 정상회담에 들어가질 않았다. 막상 정상회담에 들어간 것은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 대화록 작성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 대화록이 어디 있는지 밝혀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 기록관장, 홍보수석 등 기록물 책임자들이다. 이런 책임자들과 더불어 팩트를 잘 알고 있는 서훈 국정원 3차장도 당시 대선 캠프에 있었다. 팩트를 아는 사람은 넘쳐났다. 단지 문 후보에게까지 팩트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프레시안 : 팩트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도 지키지 못하면서, 단순히 안보적인 측면에서 여당과 비슷해지려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김종대 : 그러면서 대선 캠프 당시에는 자리싸움은 아주 치열했다. 누가 외교 안보를 주도하느냐, 자문단은 누가 이끄느냐, 차기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은 누구고, 장관은 누가 가느냐 등등 경쟁과 다툼이 심했고, 목소리 큰 특정한 사람들이 주도했다. 좋은 정보를 나 혼자 독점해서 후보한테 줘야 그걸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다는 사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햇볕정책이나 빌리 블란트의 긴장 완화 정책을 보면 지도자가 장기적인 일관성을 갖고 불굴의 신념과 용기를 발휘하는 주도세력이라는 것이 있을 때 그 정책도 역사 속에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새정치연합에는 그게 없다.

 

 변화된 남북관계 읽지 못하면 야당에 미래 없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금 야당에는 김대중-노무현이 추구했던 노선을 안고갈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김종대 : 그렇기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와 지금의 남북 상황이 달라진 측면도 있다. 일례로 서해 같은 경우는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서해에 저렇게 많은 공격무기가 들어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은 서해 NLL을 중심으로 무기가 매우 많이 들어갔고 분쟁 잠재 요인들이 전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제 분쟁이 구조로서 정착돼있다. 이런 와중에 서해가 남북간 정치적 급소가 됐는데, 과거 서해 평화협력지대라는 도그마를 지금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사드와 노동 미사일이 오르내리는 것도 남북간 군비 경쟁의 단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우선 현재 이 상황에서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해 NLL과 관련된 입장을 그대로 고수할 것인지,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대안을 가져갈 것인지 고려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성찰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하면 진보 진영의 적이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북한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백령도, 연평도에 공격 무기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의 심장부 앞에 공격무기를 겨누고 있고 서해의 북한 항구는 사실상 NLL로 봉쇄되어 있는데 숨이 막혀 어떻게 사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G20 정상회의나 인천 아시안게임이 벌어질 때 서해가 얼마나 신경이 쓰였나? 이젠 서해의 안보로 인한 국가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남북관계가 조금만 틀어져도 서해부터 신경이 쓰인다. 이래서야 어떻게 서해안 시대를 말할 수 있겠나? 지금 서해는 과거와 같은 꽃게잡이의 문제를 이미 초월했다. 완전히 새로 검토해야 한다. 지금 야당이 해야 될 일은 국가의 외교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진단하면서, 미래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고의 전략가들을 결집하여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대국적(大局的) 관점에서 국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야당이 여당 따라가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지만, 여당이 안보 문제에 대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됐던 사드의 한반도 내 배치 문제에서 여당이 대처한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 바 있다. 

  김종대 : 무지의 소치다. 작전계획 5027에 의하면 한반도 유사 시 미국 증원군의 전투기가 3000대다. 물론 정말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일단 공식문서에 나와 있는 수치가 이렇다. 그리고 남한 전투기 400대, 일본 전투기 300대, 북한 전투기는 600대 정도가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좁은 한반도 상공에 작전하는 항공기가 5000대 정도가 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조기경보기, 폭격기, 각종 항공자산이 또 투입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는 어떻게 발사해야 하나? 이 항공기들은 다 비켜줘야 하나? 작전 영역이 중첩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드를 발사하겠다고 초기 항공 작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전쟁이 지구전,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이 발생한다. 단기에 전쟁을 종결하려면 항공 작전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그 중요한 시기에 사드라는 무기체계 하나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항공작전 골든타임을 상실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작전계획 전체를 다시 조정해야 하고, 공역관리, 지휘통제의 복잡성을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 사드 도입 논의가 군사 작전 전체를 생각해서 짜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우리 군 내부에서는 사드에 대한 논의가 없었나?

  김종대 : 지난 5년 간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협의체가 한미 확장 억제 위원회라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단 한 번도 사드 문제가 의제에 오른 적이 없다. 확장 억제력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우산과 미사일 하층방어인데 사드 배치는 고층 방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미국 MD에 들어간다는 것은 고층 방어를 같이 한다는 것이고 이는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사드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드 문제가 불거지게 된 데에는 사실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이 컸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지난해 10월부터 본인이 공개 강연에서 사드를 요청했다고 밝혔고 최근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5개 지역의 부지 조사를 했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미국에 요청한 적도, 미국과 협의한 적도, 계획도 없다던 한국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행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하나의 독자적인 정부처럼 움직인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 대통령의 부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양국 정책에 반대되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 한국의 국군 통수권이 처참하게 우롱당한 것이다.

 

  프레시안 :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렇게 내키는대로 발언하도록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

  김종대 : 그게 과거 정부와 지금 정부의 다른 점인데, 예전에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에서 돌출 발언을 하면 정부는 바로 미국에 항의했다. 어떤 때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리온 라포테 연합사령관이나 그 뒤에 부임한 비비 벨 사령관은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았다. 심지어 비비 벨 사령관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주 강도가 센 항의 서한을 작성했다. 이를 워싱턴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 전달해서 미국 국방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강해서 주한 미 대사가 전달을 못하고 대신 말로 했다고 할 정도였다. 나중에 그 편지 내용이 비비 벨 사령관 귀에 들어갔는데, 그가 군 생활 30년 만에 이런 수모는 처음 당해본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비비 벨 사령관은 당시 한국 정부가 펜타곤에 ‘주한미군사령관을 교체해 달라’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렇게 나서다 보니, 그 뒤에 주한미군사령관의 돌출 발언이 싹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는 그걸 못한다.


2015년 한국에 필요한 안보는?

 

  프레시안 : 여야를 막론하고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현실적이면서도 힘있는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어지지 않았나

  김종대 : 심리학자인 셀리그먼이 한 실험 중에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론이 있다. 개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것인데 개를 묶어놓고 전기충격을 준 뒤 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24시간 뒤에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이 개는 담을 넘지 않고 전기 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 학습된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외교․안보의 무능력은 보수정권 7년 동안 학습된 결과다.  
  야당이 무기력하니까 안보를 망치는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못한다. 새누리당 안보의 문제점은 우선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항상 안보 정책에 실패했지만 왜 실패했는지 질문을 받는 것은 새누리당이 아닌 야당이었다. 두번째 문제점은 안보는 자기들만 해야 한다는 ‘독점의식’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안보에 여야가 없다고 하지만, 독점화, 특권화, 성역화가 진행됐다. 그래서 세 번째 문제점으로는 혁신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전쟁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혁신해서는 안 돼. 지금 기득권을 건드리면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안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안보는 준비되지 않은 전투원을 최전방으로 밀어내서 기어이 피를 흘리고 오는 안보 실패에 직면한다. 이것이 새누리당 식의 안보다. 그러면 새정치연합은 어떻게 안보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할까? 우선 안보 행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딨나? 새정치연합이 해나가야 할 안보는 정상화 차원의 안보,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안보다. 안보의 주주이자 고객인 시민들, 안보 주권자인 시민에게로 안보를 되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보의 원형과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게 바로 야당이 해야 할 안보고 그것이 합리적인 이미지와 논리와 대안으로 구축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당에서는 진보적 안보주의, 개혁적 안보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국가 불안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객관적 현실을 야당이 인정할 때가 왔다. 더불어 갈등과 불안을 창조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주의, 이는 적정 군사력과 예방외교를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이다. 이게 바로 야당의 핵심가치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중견국가로서 평화와 번영의 교량이 되느냐, 아니면 냉전식 대결구조에 함몰되어 강대국 정치의 희생물이 되느냐를 가늠하는 국가의 중차대한 전략적 상황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 우리가 도모해야 할 국가이익이 무엇이냐를 분명하게 밝히고 작금의 논쟁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밝히는 힘찬 정치인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신념과 확신, 불굴의 의지, 합리적이고 전문성 있는 대안이 준비되어야 한다.

 

   디펜스21+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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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목에 줄 묶고 행진 보장 요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5/02 10:34
  • 수정일
    2015/05/02 10: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옥기원·김민혜·오민애·허수영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5-02 08:54:35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세월호 범국민철야행동 참가자가 2일 새벽 서울 종로 북인사마당 앞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고 있다.
세월호 범국민철야행동 참가자가 2일 새벽 서울 종로 북인사마당 앞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고 있다.ⓒ양지웅 기자
2일 오전 8시30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목에 줄 묶고 행진 보장 요구

밤새 청와대로 가겠다며 경찰과 대치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목에 줄을 묶고 행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새벽 4시경 경찰은 안국동로터리에서 문화제를 하던 시민들과 유가족 800여명을 북인사마당 인도로 밀어올렸다. 이 와중에 일부 유가족들은 길 건너편 풍문여고 입구 인근에 모여있었고 일부 유가족들은 북인사마당으로 함께 밀려들어갔다.

이후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가 몇 시간째 유지됐다. 통행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가족들은 풍문여고 입구에 모였고, 오전 6시30분께 청와대로 가겠다고 행진에 나섰다.

애초 가족들은 전날인 1일 낮 경찰에 연행된 유가족을 풀어주면 광화문농성장으로 이동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경찰의 강압적 태도에 항의하며 청와대로의 행진에 나선 것. 경찰과 대치한 가족들의 목에는 노끈이 묶여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5월 2일 새벽, 광화문 광장으로 가게 해달라며 서로의 목에 줄을 걸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5월 2일 새벽, 광화문 광장으로 가게 해달라며 서로의 목에 줄을 걸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경찰이 가로막자 1시간여 앉아서 연좌농성을 벌였던 유가족들은 오전 8시30분 현재 행진 보장을 요구하며 다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한편, 전날 노동절 집회에서부터 세월호 범국민철야행동까지 연행된 인원은 40여명에 이르며, 세월호 유가족 1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오전 4시

세월호 희생자 가족·시민들, 인사동에 고립돼...경찰, 캡사이신 쏘며 밀어붙여

세월호 범국민 철야 행동' 문화제를 진행하던 유가족과 시민 800여명이 수천명의 경찰에 또다시 고립됐다. 경찰이 참가자들을 도로 한쪽 구석으로 모는 과정에서 유가족과 경찰 간 강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 2시30분께 경찰은 안국역로타리 차벽 앞에서 문화제를 진행하던 철야 행동 참가자들을 방패로 밀어붙였다. 유가족이 나서서 막았지만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리며 참가자들을 인사동 방향 인도로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이어졌고 전명선 가족협의회 위원장 등 유가족들은 얼굴을 겨냥해 캡사이신을 뿌린 경찰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강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오전 3시 50분 현재 유가족들과 시민 800여명은 경찰에 둘러싸여 고립된 상태다.

2일 오전 2시 20분

세월호 희생자 가족·시민들, 밤샘 행사 진행중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에도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철야 행동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안국역로타리 경찰 차벽에 고립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 800여명은 범국민 철야 행동을 하며 시행령 폐기를 거듭 촉구했다.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은 2일 오전 12시를 넘어서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철야 행동 참가자들은 경찰 차벽 앞에 앉아 자유발언, 율동 등의 철야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전날 오후 11시 50분께 경찰이 발사한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맞은 40대 초반 남성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실신해 응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오후 11시 00분

경찰, 세월호 가족들에 캡사이신 섞은 물대포 무차별 난사

경찰이 오후 11시께 안국로타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며 대치하던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무차별 난사했다.

안국로타리에 모인 세월호 가족들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 등 1천300여명은 오후 9시 25분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가로막혀 1시간 30여분 간 대치를 벌였다.

경찰이 지속적으로 캡사이신을 뿌리며 강경하게 대응해 피해가 속출하자 세월호 가족들이 행진 대오 앞으로 이동했다. 한 유가족은 “경찰이 시민들에게 캡사이신 뿌리는 모습을 우리 가족들이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우리가 이제 맨 앞에서 행동하자”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가족들이 앞장선 대오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물대포를 맞은 가족들과 시민들은 얼굴을 움켜쥔 채 고통을 호소했다. 물대포를 뒤집어쓴 취재.촬영기자들도 속출했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도 연신 고개를 숙이고 기침을 하는 등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우리는 물러서지 않겠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물대포에 캡사이신을 섞은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지휘관 판단으로 캡사이신을 물대포에 섞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30분

세월호 가족-민주노총, ‘시행령 폐기’ 청와대 행진 시도

안국로타리에 모인 세월호 가족들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 등 1천300여명이 오후 9시 25분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가로막혀 대치 중이다.

이들이 밀착하자 경찰은 차벽으로 길을 차단한 채 캡사이신을 난사하며 행진을 저지했다. 또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난사하며 행진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캡사이신을 맞고, 물대포를 맞아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행진 대오는 “시행령을 폐기하라”, “불법 차벽 제거하라”,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행위를 채증하고 있다.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사법 처리하겠다”며 경고 방송을 수차례 내보냈다.

한 시민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제대로된 진상조사를 하자고 말했는데, 정부는 독립성을 방해하는 특별법 시행령으로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기필코 청와대를 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행령 폐기에 대한 답을 듣겠다”고 말했다.

행진에 앞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길게 말씀드릴 것 없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와 사회를 향해 외쳐야 할 소리가 있다”며 “아무리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도 물리칠 수 있다. 함성을 지르고 나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7시 50분

세월호 유가족·민주노총 조합원, 안국로타리 집결

서울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7시 50분 현재 속속 세월호 가족들이 있는 안국로타리로 집결하고 있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낙원상가 인근, 현대건설 빌딩 앞에서 가로막혔던 조합원 4천500여명은 종각역 인근에 모여 6시 30분께 정리집회를 진행했다.

정리집회를 마친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며 7시 10분께부터 전철과 도보 등으로 안국로타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도보로 이동하다가 경찰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막힌 곳마다 격렬하게 항의했으며 우회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로타리로 향했다.

안국로타리에는 세월호 유가족 100여명과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000여명이 운집했으며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범국민 철야 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유가족들의 요구에 귀를 닫는 것고 모자라 정부 시행령을 통해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다"며 "정부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능 유일한 것은 국민들의 힘이다. 오늘 철야행동을 통해 진상규명을 이루기 위한 뜻을 모으자"고 말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대표는 오후 7시 30분께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1인시위에 돌입했다. 전 대표는 “시민들과 다 같이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지만 오늘 밤 더 힘을 내서 박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와 물음에 답을 해달라고 요청하자”고 말했다.

한편, 이날 노동절 집회 후 거리행진 과정에서 12명이 연행됐다.

오후 5시 40분

세월호 가족-민주노총 조합원, 안국역 사거리 진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오후 5시 40분께 안국역 사거리로 진출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안국역으로 이동해 각 출구를 통해 거리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이 안국역 전 출구를 가로막고 있었으나, 4번 출구 방향으로 진출을 시도한 조합원이 대치 끝에 경찰 병력을 뚫고 거리로 나왔다. 현재 각 출구에서 조합원들이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고, 속속 안국역 사거리로 진입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안국역 사거리로 집결 중이다.

현대건설 빌딩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종로3가역으로 위치를 옮겼다. 이들 중 일부 인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안국역으로 이동했다.

인사동 입구에서 잠시 경찰과 충돌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공평동 인근에서 또다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후 5시 10분

민주노총 조합원,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캡사이신 난사

서울광장에서 행진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5시 10분께 종로구 인사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선두에서 출발한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종로3가와 창덕궁을 거쳐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려다 안국역 인근 현대건설 빌딩 앞에서 경찰에 막혔다.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종로2가를 거쳐 인사동길을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으나 종로경찰서 인근 인사동길 입구에서 저지당해 대치를 벌였다. 대치가 격해지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난사했다.

한 조합원은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고 노동자 다 죽이는 구조개편을 반대하는 것이 무엇이 무섭길래 최루액을 뿌려대는냐"며 "우리는 박근혜 정권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낙원상가를 거쳐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미리 설치해놓은 차벽에 가로혔다.

오후 4시 25분

민주노총 5만여명, ‘세월호 시행령 폐기하라’ 가두행진 나서

1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세계 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 5만여명이 오후 4시 25분께부터 가두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전국건설노동조합을 선두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하라’,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을지로 방향 행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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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해직 언론인들의 잃어버린 시간

 
[카드뉴스] 이명박근혜 정권의 부끄러운 유산… "자유 언론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입력 : 2015-05-01  17:10:38   노출 : 2015.05.01  17:47:21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입니다. 기자‧PD란 이름의 언론인들도 노동자입니다.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는 보도공정성이 포함됩니다. 어떤 외압도 거부하며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언론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입니다. 언론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위해 싸우다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들이 있습니다. 언론현장에 함께 있어야 할 우리의 선‧후배입니다.

미디어오늘이 노동절을 맞아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해고당한 언론노동자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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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 목에 줄 묶고 통곡 "제발 앞으로 가게 해달라"

 

[세월호 범국민 철야행동] 안국동 사거리에서 유족-경찰 대치15.05.01 16:43l최종 업데이트 15.05.02 09:17l유성호(hoyah35)박소희(sost)강민수(cominsoo) 

[11신 : 2일 오전 8시 57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 청와대 가자" 

경찰의 방패 벽에 세월호 유족들의 발은 한 시간 넘게 묶여 있다. 서울 안국동사거리-경복궁 방향 도로에서 유족들은 거리에 주저 앉았다. 목줄을 푼 유족들은 "으싸, 으쌰"하며 힘을 썼지만 방패는 꿈적도 않고 있다. 

유가족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창현아빠 이창석씨는 "택시 타고 가자, 택시 좀 불러 달라"며 "5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한 아버지는 "작년 오늘이 내 새끼 화장한 날"이라며 "내가 오늘 청와대 가고 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욱엄마 홍영미씨는 경찰 대원들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홍씨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전세계에 채증되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낼 거다, 여러분들의 잘못 똑똑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채증하는 경찰을 향해 홍씨는 "채증맨 잘 보이시나, 필름 아깝다, 배터리도 세금"이라며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스피커에서는 사법처리하겠다는 말만 흘러나왔다. 경찰은 "종로경찰서 경비과장 입니다, 유족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정밀 채증을 통해 사후에 사법처리하겠습니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8시 50분 현재 4차 해산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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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 2일 철야 행동, 유가족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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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신: 2일 오전 7시 43분] 
'청와대로' 한줄로 이어진 아빠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다시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단원고 학생들 아버지 19명은 현재 목에 줄을 걸어 연결한 채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다시 경찰에 막혀 한 시간 정도 대치하고 있던 유족들은 오전 7시 20분경 자신들을 묶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줄을 목에 걸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나까지 오겠다", "엄마들은 맨날 앞에 나섰으니까 아빠들만 해"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던 유족들은 연결을 마친 뒤 결연해졌다. 아버지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박자를 맞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 이들은 경찰의 방패에 막혔다. 유족들은 경찰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계속 항의 중이다. 몇몇 어머니들은 목줄을 건 채 "나 갈거라고!"라며 울부짖는 아버지들을 보고 서럽게 통곡하고 있다.

한편 시민들은 여전히 유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인사동 쪽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9신: 2일 오전 6시 44분] 
또 다시 길바닥에서 잠 청한 유족들 

길바닥에서 밤을 보낸 유족들은 아침부터 다시 한 번 시끌벅적한 상황에 놓였다. 2일 오전 6시 20분 청와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유족들은 현재 경찰과 대치 중이다. 

한 운전자와 붙은 실랑이가 문제였다. 경찰은 오전 5시반경부터 차량 통행을 위해 차선 두 개를 확보했다. 안국동 사거리는 4차선인 탓에 평소보다 통행 속도가 느려지자 몇몇 운전자들이 유족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한 트럭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유족들에게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 말에 흥분한 유족들이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유족들은 "차라리 (차벽으로 전면 통제했던 1일처럼) 다 막아버려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몇몇 유족은 경복궁역 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하니 청와대로 가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곧바로 움직였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버렸다. 

한편 지난밤 인사동 쪽으로 밀려났던 시민 200여 명이 거리에서 밤을 지샜다. 이들은 여전히 경찰에 저지당해 유족들과 떨어져 있다. 시민들은 오전 6시 37분 현재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행진 보장하라"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8신: 2일 오전 5시 42분] 
유가족과 시민들, 인사동 입구에서 연좌농성 중 

2일 오전 5시 현재 경찰의 밀어내기에 집회 참가자들은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밀려난 상태다. 다만 40여 명의 세월호 유족은 인사동쪽 시민들과 나뉜 채 도로 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유족 방향으로 일반차량을 통행시키려다가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인도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캡사이신을 발포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이 저항했지만 참가자들은 인사동 차없는 거리 등으로 밀려났다. 또 이날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러 나온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 관계자도 얼굴에 캡사이신을 맞았다. 

한편, 경찰은 아침이 다가오자 차량 통행을 위해 망가진 경찰버스 타이어 교체 작업을 하고 있으며 물대포와 살수차도 철수한 상태다.

[7신: 2일 오전 2시 53분] 
경찰 검거작전 시작... 유족들 맨 앞에서 몸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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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시작하자, 유가족들이 맨 앞에 서서 이를 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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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경찰이 유가족을 방패로 때리며 "맞아도 싸다"라고 하자 분노한 유가족들이 경찰을 붙잡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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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열린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에서 경찰이 검거작전을 펼치며 참가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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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세 시간 동안 평화로웠던 안국동 사거리에 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오전 2시 23분 "6차 해산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으니 검거작전을 하겠다"는 종로서 경비과장의 방송과 동시에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몸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유족들이 미리 대열 맨 앞에 모였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유족들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유족들과 뒤엉켜 계속 밀려났다. 2시 53분 현재 경찰은 시민들과 유족들을 분리시켰다. 경찰벽에 둘러싸인 유족들은 또 다시 고립됐다. 이들은 시민들과 만나려고 이동했지만 다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족 김 아무개씨가 경찰의 방패에 맞았다. 그러자 경찰은 "맞아도 싸다"는 말을 던져 유족을 자극했다. 유족들은 그를 붙잡고 거듭 사과를 요구했으나 해당 경찰은 끝내 입을 다문 채 동료 경찰들 쪽으로 피했다. 한 어머니는 "니들이 자식을 보낸 우리 심정을 아느냐"며 울부짖었고, 한 아버지는 분을 참기 어려운 듯 경찰버스를 향해 생수통을 던졌다.

[6신: 2일 0시 40분]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 일시 중단... "이게 무슨 세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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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에게 캡사이신 넣은 물대포 난사하는 경찰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로 유가족을 향해 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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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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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는 잠시 멈췄지만 대치 상황은 여전하다. 2일 자정 현재 안국동 사거리는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경찰은 전날 10시 40분~11시 20분경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집중 살포했다. 물대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 가루가 고여있었다. 물대포를 맞은 화단의 꽃들도 처참하게 쓰려져 버렸다. 

유족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경찰에게 거듭 항의했다. 한 어머니는 "이게 무슨 세상이냐"라며 경찰 방패를 붙잡고 오열했다. 한 시민은 경찰들을 향해 "너희들이 무엇을 막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잘 봐두라"고 소리쳤고,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들에게 "청와대 못 가서 죄송합니다 어머님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시민 대부분은 캡사이신 냄새에 콜록대고 추위와 씨우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당초 416연대가 계획한 문화제 진행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5신 보강: 1일 오후 10시 58분] 
또 다시 등장한 물대포... 캡사이신 섞어 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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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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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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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가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등장했다. 

경찰은 10시 47분 현재 시민들을 향해 수차례 살수했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이 섞인 탓에 온몸이 젖은 시민들은 거듭 콜록거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자신들이 대열 앞에서 물대포를 맞겠다며 나섰다. 

행진을 시도한 지 두 시간이 넘었지만 시민들은 아직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폴리스라인에 막힌 이들은 거듭 돌파를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반면 경찰의 대응 수위는 더욱 강경해졌다. 물대포 살수뿐 아니라 캡사이신 발포도 잦아졌다. 일부 시민은 우산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안국동 사거리 곳곳에서는 "물! 물!" "물 좀 전달해주세요!"라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있다. 몇몇 취재진도 시민들과 뒤엉킨 채 캡사이신을 맞기도 했다. 

[4신 : 1일 오후 10시 1분]
시민-유가족, 청와대 행진 시도... 경찰, 캡사이신 무차별 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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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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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며 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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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일 오후 9시 35분 현재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 모인 세월호 참사 유족과 시민 등 3000명(416연대 추산)은 경복궁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대치 중이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시행령을 폐기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평화행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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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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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히자 파도타기를하며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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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시작 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그는 "아무리 차벽으로 둘러쳐도, 아무리 많은 경찰이 막아도 진실과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들의 뜨거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며 "뜨겁게 함성을 지르며 나아가자"고 했다. 

시민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곧바로 막혀버렸다. 이들은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에워싸인 통로를 뚫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또 다시 캡사이신을 맞으며 물러났다. 경찰은 현재 거듭 "지금 즉시 해산하라"며 살수차 사용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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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 막힌 뒤, 경찰의 해산경고방송에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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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학생들이 1일 오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차벽과 물대포로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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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1일 오후 7시 30분]
차벽에 고립된 섬...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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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차벽에 막힌 채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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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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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들이 차벽 앞에 주저 앉은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또한 도로와 경찰버스에 정부파산 등의 문구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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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가장 못 참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차벽에 에워싸인 안국역은 섬이 됐다. 오후 7시 30분 현재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모여 있다. 응급 차량마저 차벽에 막혀 돌아갈 정도로 경찰은 이곳을 철통방어하고 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저희 유족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며 "기다리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싫다"며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마무리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세월호가 민주노총이고, 민주노총이 세월호이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유족들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조합원들도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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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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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던 중 경찰이 뿌린 캡사이신을 물로 씻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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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416연대는 이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1박 2일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그에 앞서 유족들은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하려 했지만 아직 안국역 인근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민주노총은 곧 보신각 집회 현장을 정리한 뒤 세월호 유족들이 경찰과 대치 중인 안국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경찰은 조합원의 행진을 막을 예정이어서 또 다시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2신: 1일 오후 5시 50분]
차벽에 막힌 유가족... 도심서 물리적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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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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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경찰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소화기를 뿌리며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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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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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후 5시 45분 현재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경찰과 대치 중이다. 이들은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버스에 밧줄을 연결, 잡아당기고 있지만 캡사이신에 계속 저지당하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은 오후 4시 반쯤 노동절 대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에서 출발, 을지로 2가를 거쳐 종로 2가에 도착한 대열 가운데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안국동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경복궁 방향으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미리 쳐둔 폴리스라인에 막혀버렸다.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경찰의 캡사이신 대량 발포에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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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100여 명이 경찰 차벽 앞에서 주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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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벽에 가로막힌 유가족들이 도로에 앉아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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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을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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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를 지나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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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25분쯤 관훈동 쪽으로 이동한 조합원들은 다시 한 번 경찰버스 2대에 막혔다. 이들은 수차례 버스를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이 캡사이신 등으로 대응하자 다시 인사동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조계사 방향에서도 경찰과 대치 중이지만 대부분 막힌 상태다. 삼청동으로 가려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 역시 안국역 출구 근처에서 경찰에 막혔다. 

[1신 : 1일 오후 4시 43분] 
광장 메운 노동자들의 함성 "썩은 세상 우리가 갈아엎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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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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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메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쳤다.

"재벌경제, 썩은 세상 노동자가 갈아엎자, 투쟁!"

이날 전국민주노동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은 서울광장 앞에서 2015년 세계노동절대회를 열었다. 지난 4월 24일 총파업에 이어 다시 한 번 결집한 노동자들은 강경한 대정부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1일 대회 행사명도 '끝내자 박근혜'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싸우지 않고 무엇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입을 뗐다. 그는 "2015년 올해, 민생은 파탄났고 서민들과 노동자들은 못 살겠다고 한다"며 "지금 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부패한 정권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중의 총 결의로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자"며 "침몰하는 한국사회를 구하기 위한 역할을 민주노총이 기꺼이 맡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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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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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문을 연 것도 "이 돈으로 살아봐"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몸짓패 공연이었다. 한상균 위원장 역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시민들도 박수를 보낸다"며 "앞으로 20년은 노동자로 살아가기 참 힘들 텐데, 가뜩이나 힘든 우리 아들딸에게 못난 아버지가 되지 말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동총연맹(아래 한국노총·)도 주요 의제로 강조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날 한국노총을 대표로 참석한 이병균 사무총장은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양대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차별이 없어지고, 경제민주화로 재벌이 개혁되고 원·하청 노동자가 공생할 수 있을 때까지 (두 노총이) 함께 두 손 잡고 투쟁해야 한다"며 거듭 연대를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1일 노동절 대회에 약 5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4시 14분 현재도 서울광장에는 노동절 대회에 참여하려는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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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주년 세계노동절, 서울광장 가득 메운 노동자들 제125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절대회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 연금 개악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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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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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쓰는 정부, 시행령 강행??

정부, 유가족·특조위 무시 ‘시행령 강행’ 드라이브

‘문구만 찔끔’ 수정안 발표 뒤 차관회의서 신속처리…5.4 국무회의 앞두고 전운 고조

4.16가족협의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세월호 정부 시행령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가족들은 피해자가족의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세월호 정부 시행령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가족들은 피해자가족의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정부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무시한 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을 강행하는 막바지 수순에 들어갔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특조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핵심 요소는 그대로 둔 채 문구만 '찔끔' 바꾼 시행령 수정안을 발표한 뒤 차관회의 심의 절차까지 신속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시행령 철회'를 촉구해 온 유가족들과 특조위, 시민사회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5월 4일 예정된 국무회의를 앞두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제정까지는 박근혜 대통령 재가와 공포 절차만 남게 된다.


정부, '문구만 찔끔' 수정안 발표 뒤 차관회의 심의까지 신속 마무리
유가족 의견서도, 특조위원장 대통령 면담 요구도 모두 거부
특조위에 '가만히 있으라' 압박까지…"수정은 없다", 5.4 국무회의 처리 강행 태세

정부는 30일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10분까지 정부서울청사와 세종청사에서 화상으로 차관회의를 열고 해양수산부(장관 유기준)가 전날 발표한 시행령 수정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해수부는 수정안에 특조위 의견을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독립기구인 특조위를 공무원들로 장악해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기존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이었다.

대표적으로 고위공무원단(고공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이 맡는 '기획조정실장'은 '행정지원실장'으로 명칭만 바뀌었다. 당초 정부안의 '기획조정실장'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혀 왔다. 행정지원에만 그쳐야 할 사무처 공무원에게 진상규명 등 '업무'에 대한 권한까지 부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조정실장이 운영하는 특조위"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점 때문었다.

기획조정실에 주어진 '업무'에 대한 '기획·조정' 권한은 수정안에서는 '협의·조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표현만 수정하고 '업무'에 대한 권한은 그대로 존치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안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특조위 측은 즉각 '수정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시행령 제정 강행을 막기 위해 30일 차관회의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로 향해 의견서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접수를 거부했다. 장관급 인사로서는 사상 유례없는 광화문 농성에 들어간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도 청와대로 향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경찰의 벽에 막혀 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그 사이 정부는 화상으로 차관회의를 개최해 시행령 수정안을 40여분 만에 통과시켰다. 이어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앞으로 시행령안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5월 4일 국무회의에서도 수정 없이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수부는 특조위를 향해 "무분별한 비판 대신 본연의 활동에 전념하라"며 '가만히 있으라'는 압박까지 가했다.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이 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인도를 이용해 청와대로 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자 그 자리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이 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인도를 이용해 청와대로 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자 그 자리에서 농성을 이어갔다.ⓒ정의철 기자


"응답 없는 대통령의 의지는 진실 피하고 감추고 짓밟는 것"

이 같은 정부의 행태에 대해 4.16 가족협의회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가족들이나 특조위를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이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받지 않았다"며 "가족들과 특조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4.16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으로 구성된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 연대) 역시 규탄 성명을 내고 "응답하지 않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인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진실을 피하고 감추고 짓밟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5월 1일이 마지막 기회라는 통첩을 이미 보냈다"며 "우리는 모여서 움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4.16 연대는 5월 1일부터 2일까지 시행령 폐기를 위한 '범국민 철야행동'을 예고해 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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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노동자, 대표자회의 불허 규탄 공동결의문 발표

“올해 노동자통일축구대회 반드시 개최하겠다”남북 노동자, 대표자회의 불허 규탄 공동결의문 발표 (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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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30  19: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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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주년 노동절을 맞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추진해 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은 1일자로 3단체 공동결의문을 발표, 이날 평양에서 성대히 개최되어야 할 5.1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끝내 실현되지 못했지만 올해 안에 반드시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노동자 3단체는 공동결의문에서 “오늘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5.1 노동절 125돌을 맞으며 추진해 온 통일축구대회는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올해 안에 평양에서 반드시 개최하여 남북 사이의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의 길을 넓혀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한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적극 협력해 나섬으로써 단절된 남북관계도 열고 평화와 통일의 넓은 길을 열어나가는 데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와 별도로 공동성명을 발표, 30일 개성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3단체 대표자회의를 불허한 당국의 조치를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지난해 12월 1일 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지난 19일 남측결승전과 통일한마당 행사까지 마무리하면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황에서 당초 5월 1일을 전후해 개최하기로 합의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협의를 위해 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를 추진했다.

양대노총은 “대표자회의는 온 겨레에 선포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있는 조치였다”고 말했다.

또한 통일부는 ‘순수 사회문화 교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불허 조치했다’며 옹색한 답변을 내놓는가 하면 “노동자의 체육교류는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축구 이외의 것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억측을 들먹여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를 불허”했다며,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통일부의 이번 불허 조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근거와 이유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개최 일정을 자체적으로 협의, 조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결국 통일부 스스로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비록 5월 1일을 전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어렵게 되었지만, 양대노총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고 남북 노동자 3단체의 연대성도 더욱 강화되었다”며, 3단체 공동결의문에서 언급한대로 “향후 양대노총은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함께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실천과 투쟁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양대노총 공동성명]
당국의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 불허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전문)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을 맞는 올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민족 모두의 사활적 과제다.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없이 통일대박, 통일시대를 말함으로써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으며, 남북관계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그 이전보다 더욱 긴장과 대결 상태가 심화되었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대국들의 군사적 대결과 패권 다툼은 우려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동북아의 평화는 한반도 평화 실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 남북 관계개선과 화해와 협력 시대를 여는 것은 어느 때보다 절박한 과제다.

이미 양대노총은 긴장된 남북관계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2014년 10월부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추진해왔다.
2014년 12월 1일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전국 16개 광역 시도에서 150여개 팀 3,000여명의 선수들이 통일축구 예선에 참가, 4월 19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남측 결승전 및 통일한마당>을 끝으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황이다.
그러나 끝내 통일부는 5.24조치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성사에 대한 양대노총의 성의있는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에 남북노동자 3단체는 당초 5월 1일을 전후하여 개최하기로 합의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협의를 위해 4월 30일 개성에서 대표자회의를 추진키로 했다. 이번 대표자회의는 온 겨레에 선포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4월 29일, 이마저도 통일부는 ‘순수 사회문화 교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불허 조치했다’는 옹색한 답변을 내놓았다.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올해 처음 개최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1999년과 2007년 평양과 창원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노동자의 체육교류라는 계기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사회적 여론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을 통해 통일부 스스로도 이미 사회문화교류 및 스포츠교류는 승인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체육교류는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축구 이외의 것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억측을 들먹여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를 불허한 조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오죽하면 통일부 스스로도 기자 브리핑에서 ‘순수’의 기준이 ‘애매하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금 선언컨대, 양대노총은 이번 통일부의 남북노동자 3단체 대표자회의 불허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 통일부의 이번 불허 조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근거와 이유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개최 일정을 자체적으로 협의, 조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한 행위이다.


앞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있는 척 하면서, 뒤로는 제멋대로의 잣대와 억측을 내세워 민간 부문의 대표체라 할 수 있는 노동자의 체육 교류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 통일부의 민낯이다. 결국 통일부 스스로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광복 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을 맞는 올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당국과 민간을 포함한 모두의 바램이자 의무이다.
비록 5월 1일을 전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어렵게 되었지만, 양대노총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고 남북 노동자 3단체의 연대성도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5.1 125주년 세계노동절을 맞는 올해 남북 노동자 3단체의 공동결의문을 아래와 같이 발표하며, 향후 양대노총은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함께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실천과 투쟁에 더욱 매진할 것임을 밝힌다.

이와 함께 통일부를 비롯한 당국에 촉구한다.
광복 70년을 맞아 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키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이루고자 한다면,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에 대한 전향적 자세와 입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도 남북관계에 있어서, 당국이 민간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을 것임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015년 5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남북노동자가 힘을 합쳐 제2의 6.15 통일시대를 앞장서서 열어나가자
- 5.1 125주년 세계노동절 남북노동자 3단체 공동결의문 -(전문)



오늘 남과 북의 전체 노동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적 명절인 5.1 노동절 125돌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시각 우리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광복 70돌이 되는 올해에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대결 상태를 끝장내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새 국면을 열어나갈 드높은 결의에 넘쳐있다.


돌이켜보면 분단된 그 날부터 세기를 넘어오면서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길에 공고한 평화가 있고 민족의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통일애국의 길을 앞장서서 달려왔다.


우리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가장 먼저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연대기구를 구성하고서울과 평양, 금강산과 창원을 비롯하여 남북 삼천리를 오가며 다채로운 통일행사와 적극적인 연대활동으로 겨레의 통일운동을 선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파국에 처하고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이루어놓은 6.15의 소중한 결실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만남의 길은 모두 막히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과 체제 대결이 고취되는 속에 전쟁위험이 날로 짙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바로 오늘 평양에서 성대히 개최되어야 할 5.1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끝내 실현되지 못하여 커다란 관심과 기대를 안고 지켜보던 온 겨레에게 실망은 안겨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에 책임 있는 자들은 마땅히 민족의 준엄한 규탄을 받아야 한다.


민족과 자주통일의 당사자인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오늘의 난관 앞에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시대와 민족 앞에 지닌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더욱 깊이 자각하고 올해에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갈 비상한 각오와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남북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굳게 연대단합하여 반드시 제2의 6.15통일시대를 앞장서서 열어나갈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겨레의 지향과 요구가 집대성 되어있고, 이미 현실에서 그 정당성과 거대한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된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다.
남북 선언들이 존중되고 실천으로 옮겨진다면 동족대결이 끝장나고 악화된 남북관계도 개선되며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가 열려지게 된다는 것이 온 겨레의 일관된 입장이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그 이행을 위한 실천과 투쟁에 언제나 앞장설 것이다.
남북노동자 단체들 사이의 다방면적인 접촉과 왕래, 만남을 재개하고 활성화함으로써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이바지할 것이다.

2. 온 겨레 앞에 선언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기어이 성사시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적극 도모해 나갈 것이다.

온 겨레의 커다란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기어이 성사시키자는 것은 우리 남북 노동자들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이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1999년 평양 양각도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여러 차례 진행해온 통일축구대회를 통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해온 좋은 전례와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전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5.1 노동절 125돌을 맞으며 추진해온 통일축구대회는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올해 안에 평양에서 반드시 개최하여 남북 사이의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의 길을 넓혀 나갈 것이다.

3. 해내외의 온 겨레와 힘을 합쳐 6.15공동선언 발표 15돌과 광복 70돌 기념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를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지금 해내외의 온 겨레는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15돌과 광복 70돌을 전민족적인 대경사로 기념하며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새 역사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적극 협력해 나섬으로써 단절된 남북관계도 열고 평화와 통일의 넓은 길을 열어나가는 데 기여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거족적인 애국운동에 떨쳐나섬으로써 뜻깊은 올해를 남북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오는 해로 열어나가자는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


2015년 5월 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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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근로자는 어떻게 다른가?

오늘은 125회째 맞는 노동자의 날입니다
 
김용택 | 2015-05-01 09:29:0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125회째 맞는 노동자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절은 참 이상합니다. 노동자는 쉬고 근로자는 일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노동절입니다. 노동절이 어떤 의미 인지 학생들에게 한 번 물어볼까요?

다음 중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회사택시기사, 종합병원의사, 교사, 교수, PC방 아르바이트, 건설일용직, 환경미화원, 농구선수, 공무원, 철도기관사, 아나운서, 소방관, 현장실습생,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경찰…

만약 시험문제를 내주고 이 중에서 노동자가 아닌 사람을 찾으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틀림없이 열이면 열 모두가 ‘종합병원 의사나 교수, 혹은 교사, 공무원, 아나운서, 경찰’과 같은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노동자에 대한 개념은 ‘노동자란 사무직이 아닌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화이트칼라가 아닌 블루칼라가 노동자라는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머리 속에는 노동이란 ‘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위와 같은 답을 한 학생들은 다 틀린 답입니다. 위의 제시한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 의사나 대학교수가 어떻게 노동자입니까?”라고 항의 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는 물론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 하는 노동, 즉 정신노동자인가 육체노동자 인가의 여부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작업의 형식이 상용이든 일용이든, 임시직이든 촉탁직이든 시간제… 와는 상관없이 또 근무형태나 직종, 직급 등과는 관계없이 ‘노동을 제공해 주고 댓가로 임금을 받는 모든 사람’을 노동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사실상 근로를 제공하는 취업근로자’를 노동자라고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선생님 그렇다면 노동자는 뭐고 근로자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이 쏟아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를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노동자는 천하고 불쌍하고 근로자는 고상하고 귀한 것입니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이라는 말에는 그런 이미지가 풍기도록 사회화되어 있는듯합니다. 아니 자본의 목소리지요. 실제로 몇 년 전만 하더라고 교실 흑판 한쪽에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이런 급훈이 버젓이 붙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어떻게 다른 지 국어사전을 한 번 찾아 볼까요?

 

☞ 노동자 (勞動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 근로자 (勤勞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이 정도면 헷갈릴 만도 하지요? ‘노동력으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과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지요? 영어로 한번 볼까요? 영어로 노동자는 ‘Labour’라고 하지요. 우리말로 해석하면 ‘노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근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Labour’ 란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노동’이란 말로 번역했을 것입니다.

분단의 비극은 언어를 비롯해 대부분의 우리 생활양식이나 문화에서조차 분단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은 좌익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북한에서 쓰는 ‘노동’이라는 말대신 ‘근로’라는 말로 바꾼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하라는 뜻도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에~ 설마요…?”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인민’이라는 말도 북한에서 사용하니까 우리는 ‘국민’이 되고 ‘동무’라는 말도 북한에서 사용하니까 ‘친구’로 바뀐 게 아닐까요?
 
저는 노동자와 근로자의 뜻을 달리 해석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 즉 ‘노동은 천하고 부끄럽지만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시키면 기계처럼 일하고 운명론적으로 사는 사람이지요. 대신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나의 노동으로 내 가족과 국민들이 보다 행복하고 보다 질높은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권리와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당당한 노동자가 아닐까요?

오늘은 제 125회 노동절을 맞아 생각해 본 노동자의 뜻을 풀이해 보았습니다. 노동절의 유래와 노동에 대한 개념은 제가 지난해 썼던 글을 참고로 소개하면서 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명절, 노동절을 축하합니다. 행복한 노동절을 보내십시오.” 인사를 하고 보니 미안하네요. 택시기사, PC방 아르바이트, 건설일용직, 환경미화원, 현장실습생,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이런 분들,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이 행복한 노동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분들이 ‘자신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이 되는 날’이 진정한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사회가 아닐까요?

관련 글 : 아직도 근로자는 귀하고 노동자는 천한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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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포위하는 미-일, 그 '꼬붕'이 된 한국

 
[주간 프레시안 뷰] 미일 군사 동맹과 한국
박인규 편집인2015.04.30 17:34:52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70주년 만에 군사 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지난 26일부터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총리는 미일 방위 협력 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일본 총리 최초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등을 통해 패권 국가 미국의 핵심 군사 파트너라는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습니다. 1854년 미국에 의해 서방 세계에 편입됐고, 이후 미국의 지원과 묵인 아래 한반도를 병탄하고 중국을 유린했던 일본이 왕년의 위상을 되찾은 것입니다.

당연히 중국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때까지 영국,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에게 침탈당해온 '치욕의 역사, 100년'을 너무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중국은 '동양의 병자'로 불렸던 과거의 중국이 아닙니다.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함께 군사력도 키워가고 있습니다. 중국 포위를 겨냥한 미일 군사 동맹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미일 대 중국의 군사 대결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와중에 한국은 미일 군사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가고 있습니다. 미일 공모에 의한 일제의 35년 식민 지배, 400만 명이 희생된 한국 전쟁, 전쟁에 의한 분단 고착화와 남북 대결이라는 고난을 겪어온 한민족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남북의 위정자들은 미일 대 중국의 대결로 요약되는 동아시아의 갈등 구조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미일, 글로벌 군사 동맹으로 

지난해 7월 내각 각의 결정에 의한 이른바 해석 개헌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 일본은 이번 아베 총리의 방미를 통해 미국과의 글로벌 군사 동맹을 위한 제도적 틀을 완비했습니다.

우선 27일 뉴욕에서 열린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이른바 2+2 회담, 양국 외교·국방 장관 참가)를 통해 미일 방위 협력 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했습니다. 양국은 공동 성명에서 "새 가이드라인은 미일 동맹이 평화 유지 활동과 해상 안보, 병참 지원 등 일본법과 규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절한 '(세계) 어느 곳에서나' 국제 안보에 더 큰 기여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제까지 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한정됐던, 미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 지원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소련의 침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처음 작성되고 나서 1차 북핵 위기 이후인 1997년 1차 개정됐고, 이번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18년 만에 미일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자국의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주변 사태'의 경우에만 미군을 후방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변 사태라는 지역적 제약이 사라지고 '중요 영향 사태'라는 이름 아래 세계 어디에서든 미군과 타국 군을 후방 지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양국은 평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동맹 조정 메커니즘'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양국은 "일본 방위성 중앙 지휘소에 미군이, 미군 요코타 기지에 자위대가 각각 연락원을 파견해 '미일 공동 조정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일 동맹이 한미 연합사령부를 유지하고 있는 한미 동맹만큼이나 일체화된 동맹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을 뗀 셈입니다. 

양국은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의 목적이 "동맹의 억지력과 일본과 아시아·태평양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며 구체적으로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미사일 방어(MD)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의) 원유 수송로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댜오위다오(센가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의 영토 분쟁에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커진 만큼 중국과의 군사 대결 위험성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 일본 자위대 날개 달아준 미일 새 방위 협력 지침미-일 정상 '중국 견제 공동 성명')

일본의 전쟁 책임을 용서한 미국 

28일의 미일 정상 회담과 29일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일본의 태평양 전쟁 책임을 사실상 용서했다는 점입니다. 미일의 완벽한 군사 동맹을 방해하는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셈입니다. 

정상 회담 하루 전인 27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링컨기념관으로 안내해 단 둘이 20분간 대화를 나눴습니다. 구체적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악관은 "이 달은 남북 전쟁 종식과 링컨 대통령 서거 150주년을 맞는 때"라며 "내일 공식 행사 전에 두 정상이 미국 역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에서 일대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기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에는 화해와 치유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진의는 다음 날 정상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대규모 충돌 뒤에는 화해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믿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양국 간의 대규모 충돌이었던 태평양 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을 이젠 잊자는 것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을 잊자는 것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링컨은 남과 북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했던 미국을 전쟁을 무릅쓰면서 하나로 통합시킨 인물입니다. 태평양 전쟁과 미일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이죠. 

다음 날(29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아베가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 70년간 한국 대통령이 6번이나 했던 상·하원 합동 연설을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미 의회 관계자는 "1970년대까지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미국의 반감이 컸고, 1980~90년대는 일본과의 무역 분쟁으로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으며, 최근 10년간은 일본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미 의회가 아베의 상·하원 합동 연설을 받아들인 것은 태평양 전쟁, 그리고 일본과의 경제 분쟁 등을 과거로 돌리고 미래를 위해 일본과 하나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 일본 해상 자위대. ⓒ연합뉴스


아베 방미에서 드러나 미일의 역사 인식 

28일 정상 회담에서 미일은 다음 세 가지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첫째 (중국의) 힘에 의한 기존 질서 변경 시도를 반대한다, 둘째 미일 동맹은 국제 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두 정상은 "힘 또는 강압에 의지해 일방적으로 기존 질서를 바꾸려 시도함으로써 주권과 영토의 일체성을 훼손하는 국가의 행동이 국제 질서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및 동남아 국가들과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죠.

또 "이번 정상 회담은 미일 협력 관계를 전환시키는 역사적인 전진"이라고 평가한 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을 통해 양국은 아시아 및 국제 사회의 평화적이고 번영된 미래를 위해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미국은 일본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포함시키는 안보리 개혁을 고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팽창하는 중국이 동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미일 동맹이 이를 막을 수 있고, 이를 위해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한편, 아베는 29일 미 의회 연설에서 "전후 우리는 지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을 담고 우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사과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만 사과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한 겁니다. 오히려 "1980년대부터 한국, 대만, 아세안 국가들이 발전하고 이후 중국이 발전할 때 일본은 헌신적으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고 강변했습니다. 이런 걸 보고 적반하장(賊反荷杖 : 도둑놈이 매를 든다)이라고 하는 겁니다. 19세기 중반 이래 한반도와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착취는 나 몰라라 하고 20세기 후반 이후의 경제 협력만 부각시킨 것이죠. 

아베 방미와 관련해 한국 언론은 위안부 문제 사과와 일본 군대의 한반도 상륙 등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1840년 영국이 일으킨 아편 전쟁으로부터 현재까지 175년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오바마와 아베가 말하는 '힘에 의한 기존 질서 변경 시도'는 이미 그때,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국의 부상은 그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으로 봐야 합니다. 또 미국은 한반도 해방의 은인이기 이전에 한반도 식민지화의 공범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의 탁월한 저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한길사 펴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해방의 은인'이기 이전에 '식민 지배'의 공범 

아편 전쟁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까지(1840~1945년) 동아시아 질서의 본질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과 갈등의 질서였고 미국은 예외적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해 제국주의적 야욕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삼성 교수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착취하기 위해 협력한 측면이 더 강했다는 얘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대한 중국에 대한 통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제국주의 국가들 전체가 연합하거나, 또는 일부를 배제하기 위하여 다른 다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연합하는 질서, 즉 '제국주의 카르텔'이었다. (…) 미국도 이 카르텔의 일부였다." 

러일 전쟁의 경우가 바로 "일부를 배제하기 위하여 다른 다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연합"한 경우입니다. 중국 및 한반도 침략에서 러시아를 배제하기 위해 영국, 미국, 일본이 연합했던 것입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1898년) 한 것은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에게도 제국주의적 야욕이 있었던 것이죠. 물론 미국은 이른바 '문호 개방(Open Door)' 정책이란 것을 통해 타국 영토에 대한 독점적 지배가 아닌 경제적 지배만을 추구했지만 말입니다. 

러일 전쟁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지배의 결정적 계기였다는 점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일 전쟁은 1904년 2월 8일 일본 함대가 뤼순 군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됐고, 1905년 5월 27일 일본이 대한해협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후 미국 중재에 의해 그 해 9월 5일에 포츠머스 강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지배를 공동 모의합니다.

강화 조약 협상이 진행되던 1905년 7월 27일,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 육군 장관이 도쿄에서 만납니다. 이들은 이틀 후인 7월 29일 합의 각서를 마련했고, 7월 31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내용을 승인합니다. 당시 필리핀 마닐라에 머물고 있던 태프트 장관은 8월 7일 가쓰라 총리에게 루스벨트 대통령의 승인 사실을 알렸고, 가쓰라는 다음 날 러시아와의 강화 협상 전권 대표로 미국 포츠머스(Portsmouth)로 가 있던 고무라 주타로 외상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이로써 일본과 미국의 합의 과정이 완료됐고, 9월 5일 일본과 러시아 간에 강화조약이 체결됩니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태어난 과정입니다. 밀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합의 각서의 내용이 20년 가까이 지난 1924년에야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 관계를 확보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한 것입니다. 나아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사실상 식민 지배에 들어갑니다. 미국은 일제 식민 통치의 공범이었던 셈입니다.

사실 1854년 매튜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을 시작으로 일본이 근대 국가가 되고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미국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지적대로 만일 미국의 남북 전쟁(1861~1865년)이 없었다면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 전쟁에 따른 국내 혼란으로 미국이 정신이 없는 사이, 일본은 근대 국가로 발돋움했고 이후 일본은 한반도 및 중국 침략에서 미국과 공동 보조를 취합니다. 

1908년 11월 30일의 루트-다카히라 밀약, 1917년 11월 2일 랜싱-이시이 밀약 등은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공동으로 경영하기 위한(즉 착취하기 위한) 합의였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등 서구 열강의 영향력이 퇴조한 1920년대 이후 미국과 일본은 중국 경영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전선에 균열이 생긴 것은 대공황 때문입니다. 대공황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은 만주 침략(1931년), 중국 본토 침략(1937년)을 단행했고 중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추구합니다. 즉 미국은 중국을 (일본과 함께) 공동으로 나눠 먹자는 입장인 반면,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중국을 혼자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바로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 그리고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죠. 

중요한 것은 1930년대 중국 경영에 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견제하지 않았으며, 중국 침략을 위한 전략 물자의 최대 공급국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삼성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1938년 중반까지 항공기와 항공폭탄을 비롯해 석유, 폭탄 제조 원료인 폐철을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1940년 1월 26일에야 대일본 경제 조치(석유 폐철 기계 설비 및 여타 전쟁 물자 수출 제한)를 시작했고, 1940년 7월 강철 및 항공유의 수출을 중단했으며, 1941년 7월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넉 달 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합니다. 

결국 100여 년에 이르는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 기간 중 미국과 일본이 공개적으로 대립, 충돌한 것은 단 5년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다 해도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이 받아줄 가능성은 없습니다. 미국은 식민 지배의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 군부의 폭주에 의한 만주 및 중국 침략이 잘못됐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한반도 식민 지배는 그 당시 (제국주의적 경쟁의) 상황에서는 불가피했다는 게 대세라고 합니다. 최근 반둥 정상 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사과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미일 군사 동맹의 하위 파트너가 된 한국 

2011년 11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이후 한국은 급속하게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말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3자) 정보 공유 약정'이 체결돼 한미일 간의 3자 군사 정보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이제 남은 것은 한일 상호 군수 지원 협정(ACSA)뿐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군수 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한일 상호 군수 지원 협정이 체결되면 3국 간 군사 물자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고 이로써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이 완성되는 셈입니다.

오는 5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다고 합니다. 최근 나카다니 겐 일본 방위상이 3국 국방 장관 회담을 제안했고 애슈턴 카터 미 국방 장관이 받아들였다고 하는군요. 정보 공유 약정의 전례로 보아 타결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자위대 한반도의 상륙 요청 주체가 한국 대통령이 아닌 주한 미군 사령관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한국에 주둔해온 미군이 중국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바뀌는 것이죠. 미일 군사 동맹으로 일본이 미국의 중국 포위를 위한 사냥개가 됐다면 우리는 그 부하가 되는 셈입니다. 

중국은 대응은? 

최근 중국을 다녀온 군사 평론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에 따르면 중국의 대응도 심상치 않습니다. 29일자 <한겨레> 칼럼의 일부입니다. 

"중국 정부의 핵심 지식인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은 "앞으로 3년간 중국의 국방비에서 매년 증액되는 규모가 한국의 국방비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한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기존 국방비에다가 매년 400억 달러, 3년간 1200억 달러를 더 늘린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3년 후 중국의 국방비는 250% 성장한다." 

김 편집장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이 개발 중인(즉 아직 실전 배치도 되지 않은) 신무기와의 가상 충돌을 TV로 보도하는 등 "갖은 허풍으로 임박한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결정적 계기였다고 전합니다. 

"다른 중국 관리를 통해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국가안전위원회가 올해 2월부터 미국의 사드 요격 체계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정치·군사적 대응 매뉴얼을 구상하는 데 착수하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확인했다. 

(…)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증폭된 계기는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였다. 중국은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영토 분쟁으로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막후 접촉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 몇 가지 양보 조처를 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추진함으로써 자신들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본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이 사드 문제에 직접 개입한 배경이다. 화가 난 중국은 이제 분쟁의 눈으로 미국을 바라보려고 하고, 미국은 그걸 또 이용하는 그야말로 확실히 망가진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

(☞관련 기사 : 비정상이 정상이 된 동아시아) 

한 쪽의 군비 증강이 다른 쪽의 군비 증강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이 된 것입니다. 미일 대 중국의 군사 갈등을 풀 해법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바로 남북 관계 개선입니다. 나아가 남북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한 북핵 문제 해결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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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이 붙으면 한국은 불행해진다

 

[게릴라 칼럼] 미일동맹과 한민족의 운명, 그 지난한 역사

15.04.30 17:23l최종 업데이트 15.04.30 17: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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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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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미일동맹이 한층 더 격상됐다. 27일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에 대한 제한이 풀린 데 이어, 28일 아베 신조 총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미국과 함께 대(對)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후원하게 됐다. 

미국이 '전과자' 일본에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강력한 경찰권을 쥐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최강 미국은 자국의 세계 패권을 연장하겠다는 의도로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로서는 미일동맹의 격상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미국이 국교를 맺은 1854년 이후의 160년 역사를 살펴보면, 두 나라의 관계가 단순히 두 나라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제3자인 우리 한민족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두 나라의 관계가 유별나게 좋아질 때마다 우리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나라의 동맹 격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미일동맹 강화, 한민족에 부정적 영향 

1854년에 일본은 동아시아 기지를 모색하는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다. 이 해에 일본과 미국의 화친조약이 체결됐다. 이를 발판으로 미국은 조선을 개방 시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외면했다. 이런 상태에서 1866년에 미국 선박 제너럴 셔먼호가 상선을 가장해서 평양 대동강에 침투했다. 그리고 훗날 개화파 선각자로 유명해질 평양감사 박규수가 관내 백성들과 함께 이 침략선을 격침시켜 버렸다. 

그러자 1871년 미국은 보복 차원에서 '신미양요'라는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이때 미국 아시아함대는 일본 나가사키에 있다가 조선을 향해 출정했다. 미국이 일본 항구를 이용해서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미일화친조약이 미국의 조선 침공에까지 도움이 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제휴가 조선에 부정적 작용을 미쳤다. 

유사한 현상은 1900년을 전후한 시점에도 일어났다. 미국은 1865년 남북전쟁 종결을 계기로 국민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1886년에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사실상 마무리함으로써 미국 땅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자 미국은 1890년대에 대대적인 태평양 공략에 나섰다. 미국 땅에 이어 태평양 섬들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1898년에는 하와이·필리핀·괌을 강점하고 1899년에는 사모아·웨이크섬을 강점했다. 이로써 태평양 곳곳의 주요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미국 땅보다 훨씬 더 넓은 태평양 바다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00년 전후의 미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새로 확보한 태평양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혼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누군가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런 미국의 머리에 떠오른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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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의 조선시대 해안기지인 광성보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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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조선과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였다(러일전쟁). 이 전쟁은 1905년 들어 일본의 승리로 굳어졌다. 그러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26대 미국 대통령(재임 1901~1909)은 이것을 기회로 봤다.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기회에 일본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태평양 지배에 대한 일본의 협조를 얻어내고자 했다. 

이렇게 미일이 유착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 그 유명한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장관이 도쿄에서 체결한 이 밀약의 핵심은,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에 협조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에 협조한다는 것이었다. 

이 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 대한 자국의 권익을 안정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강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은 1905년 연말에 을사늑약(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 강점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미일의 협력 강화가 을사늑약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듬해인 1906년 12월 10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비(非)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러일전쟁의 종결에 기여했다는 게 수상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러일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그의 중재를 수용했기 때문이고, 일본이 그의 중재를 수용한 것은 그가 일본의 조선 강점에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최초의 노벨평화상은 미국이 일본의 조선 강점에 찬성했기 때문에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1900년대 초반의 미일동맹 강화는 이처럼 우리 한민족의 운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일이 가까워지면 한국이 불행해진다는 사실이 한층 더 분명해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 조선에서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거족적인 3·1운동이 발생했다. 일본이 이 운동을 진압한 뒤인 1921년, 미국은 일본에 한층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일본·영국·프랑스와 함께 이른바 워싱턴체제를 구축하여 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한층 더 공고히 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일본은 미국·영국·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주요 강대국의 위상을 얻게 되었다. 이러는 동안에 한민족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착취는 한층 더 심해졌다. 

일본에 떨어진 미제 핵폭탄, 한민족의 해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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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 지금은 덕수궁과 따로 떨어져 있다.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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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이 가까워지면 한민족이 불리하다는 것은, 거꾸로 하면 미일이 멀어지면 한민족이 유리하다는 뜻이 된다. 미일이 멀어지면 한민족이 유리해진다는 사실은 1931~1945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났다. 

1931년에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과 만주를 독점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로 인해 1941년에는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어제의 친구였던 두 나라의 전쟁은 미제 핵폭탄 두 방의 투하로 끝이 났다. 그러고 나서 한민족은 해방됐다. 이 해방은 한민족의 독립투쟁 덕분이기도 했지만, 미제 핵폭탄 두 방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미일관계가 험악해진 게 원동력 중 하나가 되어 한민족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됐다.

그런데 핵폭탄 투하 후 미국과 일본은 금방 다시 가까워졌다. 미국은 금세 일본과 손잡고 소련·중국 견제에 나섰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민족의 분단이 고착되고 남한에서의 친일 청산도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사과 및 배상을 요구할 기회를 얻기는커녕 일본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미일이 다시 가까워지면서 한민족이 불이익을 입은 것이다. 

이런 몇몇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160년간의 중간 중간에 있었던 미일동맹 강화는 두 나라한테는 일미(一味)의 경험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한민족한테는 쓰디 쓴 악몽이었을 뿐이다.

미일이 가까워지면 한민족이 불행해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본은 한국을 억누르는 데서 자국의 활로를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세계 최강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한국은 더욱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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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도 안 된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새정치

 

[분석] 권력 실세 부패스캔들에도 선거 전패... 야권분열 가시화

15.04.30 02:06l최종 업데이트 15.04.30 10:0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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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일인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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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전략홍보본부장은 28일, 4.29 재보궐선거 판세를 묻는 기자들에게 "전승할 수도 있고, 전패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전패였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세월호 1주기 등 정부 여당에 악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은 무기력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취임 3개월여 만에 무너지는 당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애초 이번 선거를 대하는 새정치연합의 태도는, "한 곳만 이겨도 선전"이라는 말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4석밖에 안 되는 미니선거에 전력을 쏟았다가 크게 패하기보다는 무난하게 선거 국면을 넘기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천정배, 정동영 등 당의 유력인사들이 탈당해 야권 심판론을 제기하며 출마하면서 판이 커졌다. 문재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제1야당 입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선거 중반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면서 제1야당 입지를 지키는 수준을 넘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선거'가 됐다. 패배할 경우, 유례 없는 정권 핵심인사들의 부패 의혹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 대표 경선에서 내건 '2016년 총선 승리', '2017년 대선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선전' 이상의 결과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처참한 선거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광주 민심, 사실상 친노와 결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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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야권분열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호남에서부터 흔들릴 전망이다. 광주 서구을 선거에서 천정배 무소속 후보는 과반인 52.3%를 득표했다.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는 29.8%에 그쳤다. 새누리당과 정의당 후보까지 합치면 비(非)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70%를 득표했다. 더 이상 광주가 '새정치연합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 아니라는 현실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29일 투표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광주에서 선전을 기대했다. 양승조 사무총장은 오전에 CBS 라디오에 출연해 "광주는 국민들께서 잘 아시다시피 새정치연합의 심장 부분 역할을 한다"라며 "그런 광주에서 천 후보가 당선된다면, 야권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달리 말씀드리면 정권교체의 길이 험난해지고 멀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판단도 하기 때문에 광주에서의 승리는 아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야권의 분열을 우려해 광주시민들이 새정치연합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20%포인트가 넘는 차이의 패배였다. 투표율은 41%를 넘어 이번 재보궐선거 지역 중 가장 높았고, 이전 다른 지역의 재보궐선거와 비교해도 확연하게 높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당 조직과 민심 등 모든 요소에서 밀린 완벽한 패배다. 양 사무총장이 말한 "야권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광주에서 당한 패배는 문재인 대표에게 가장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문 대표는 이번 선거기간 광주를 6번이나 방문하며 가장 공을 쏟았다. 선거 마지막 주말 집중 유세도 광주에서 치렀다. 그래서 광주 선거는 '문재인 대 천정배'의 대결로 여겨졌다. 때문에 천정배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선거 결과는 광주가 '부산·영남 친노(친노무현)'과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광주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27년 만의 첫 패배, 불명예만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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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재보선 압승, 기뻐하는 김무성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이군현 사무총장 등 지도부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선거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중, 3곳에서 후보들이 1위를 달리고 있자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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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의 최대 접전 지역으로 예상된 서울 관악을 선거도 비슷하다. 광주와 달리 관악은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 정태호 새정치연합 후보, 정동영 무소속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광주가 '야권심판론'을 결정하는 곳이었다면 관악은 '정권심판론'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정동영 후보의 바람을 정권심판론으로 잠재우고 야권의 표를 결집하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당초 오 후보와 접전을 벌여 신승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두 후보의 격차는 10%포인트 가까이 벌어졌고, 표 차이는 7441표가 넘었다. 정동영 후보는 20.1%를 얻었다. 야권 후보의 표를 합산하면 오 후보의 표를 훌쩍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패배의 책임을 정 후보에게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정동영 후보가 20% 이상 득표한 것은 유권자들이 정권을 심판하는 데 새정치연합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태호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 또 관악이 지난 27년 동안 보수정당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도 뼈아픈 지점이다. 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정무비서관, 정책비서관, 대변인 등 참여정부 내내 문 대표와 함께 청와대를 지켰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 유세를 벌인 곳도 관악이었고, 문 대표도 이를 강조하며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상징성을 잃고, '첫 패배'라는 불명를 얻었다. 

정동영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나름의 존재감을 보였다. 정 후보 때문에 야권이 패했다는 비난 여론도 있지만 그가 주창한 '야권 심판'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음은 확인했다. 그가 속한 국민모임과 정의당, 노동당 등이 추진하는 진보정당의 재결집 노력도 당분간은 유효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정 후보는 낙선인사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진보통합이라는 국민모임의 꿈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사퇴? "지금 맷집 키워야"

사실상 야권분열이 더욱 가시화한 상황에서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낼 것인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재보선 전패로 당이 입은 충격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선거 결과가 드러날 때쯤 새정치연합은 사실상 마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핵심 당직자들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입을 닫았다. 유은혜 대변인이 "국민이 바라는 바를 깊이 성찰하겠다"라는 논평으로 갈음한 게 전부다. 

새정치연합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이번 선거가 4석짜리 미니선거라는 것뿐이다. 때문에 15개 의석이 걸리고 전략공천 논란까지 있었던 지난해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지도부가 사퇴한 것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 지지율도 상승세였고, 문 대표는 직전까지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면 더 큰 혼란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문 대표는 이날 자택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통로를 통해 문 대표의 반응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핵심 당직자들은 문 대표가 30일 오전 10시에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만 전했다. 현재로서는 문 대표가 정면승부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한 측근은 "매를 일찍 맞았다, 지금 맷집을 키우지 않고 포기한다면 광주도 되찾을 수 없고, 야권통합도 정권교체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문 대표 정치력의 시험대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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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당선과 새정연 전패는 무엇을 말하나

 
[정치전망대]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수치는 허구, 국민의 명령은 ‘야당교체’
 
임두만 | 2015-04-30 09:12: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광주는 천정배를 택했다. 광주를 잃지 않으려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유권자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향수가 있는 지역이므로 권노갑씨와 박지원 의원 등이 강력 지원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천정배 당선자가 당선 확정 발표에 두손을 들어 기뻐하고 있다. © TV캡쳐 임두만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선거일을 사흘 앞 둔 26일, 풍암 저수지에서 유원지에서 있었던 양측의 집중유세 현장이 승자와 패자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천정배 후보 유세장에는 자발적 참여자로 보이는 청중이 운집, 예전 김대중 선거유세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부터 시작하여 쟁쟁한 현역의원들이 출동한 조영택 후보 유세장에는 당직자 외에 실제 유권자 모습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풍암저수지 유원지에서 있었던 천정배 후보의 집중유세 현장은 축제였다. ©임두만 

유세 마지막 날인 28일 화요일, 다시 광주를 찾은 문재인 대표는 광주의 야권성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현역의원들을 대거 대동하고 지역구를 누볐다. 이런 물량공세를 혼자서 대적하는 천 후보는 비오는 풍금 사거리에서 길바닥에 매트 한 장을 깔고 ‘천배’의 절을 올리는 것으로 유권자들에게 진심을 호소했다.

▲유세 마지막 날 대규모 유세단을 끌고 광주로 온 문재인 새정연 대표 등의 유 세지원에 맞서 비오는 풍금사거리에서 매트 한 장을 깔고 천배를 올리는 천정배 후보에게 지나가던 노인이 자신의 우산을 씌워주고 있다. © 임두만

이를 본 유권자들은 진심을 안다는 표정을 보여줬다. 지나가던 노인 한 분이 너무도 안쓰러운지 한동안 자신의 우산을 씌워 준 모습에서 유권자들의 생각이 읽혔다. 그 생각들은 그대로 투표로 이어졌다. 투표일에 광주는 확실하게 변화를 택하고 있음을 표로 말했다. 보궐선거지역 4곳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여줌으로 광주가 얼마나 변화에 목말라했는지 확실하게 말했다.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지역에서 제1야당 후보는 현격한 표차로 패퇴했다. 광주의 야당교체 바람을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이에 힘을 얻은 천정배 당선자는 당선 1성으로 “새로운 야당의 기운을 불어넣어서 정권교체에 확실한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는 선거운동 내내 말했던 작은 DJ들의 발굴을 통한 야권교체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새정연과 연대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인들을 발굴, 현 새정치연합 정치인들과 전면승부를 통한 교체를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야당의 태동은 현실화 될 것이다. 이미 지난 해 7.30재보선에서 순천곡성의 유권자들이 변화를 말했고, 이번에 광주가 말했으므로 이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로 도래할 것이다.

2. 서울 관악을의 개표 결과는 앞으로 수도권도 현재의 새정연으로는 싸워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줬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 야권의 표갈림 현상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는 변명거리가 안 된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무소속 김희철 후보가 28%를 득표했으나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가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었다. 당시 김희철 후보가 득표한 28%는 이번 재보선의 정동영 후보가 얻은 20%대보다 8%나 높다. 즉 표갈림은 19대 총선 때가 더 심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상규 후보가 이겼다. 그런데 이번 정태호 후보는 졌다.

당선자인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43.89%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34.20%)를 꺾었다. 관심을 모았던 정동영 후보는 20.15%로 3위에 그쳤다. 이를 19대 총선과 비교하면 확실히 유권자들이 새정연을 비토한 것을 알 수 있다.

19대 총선 당시 당선자인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는 38.24%를 득표했으며 2위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33.28%, 3위 무소속 김희철 후보가 28.47%였다. 이를 비교하면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는 19대 총선보다 무려 10%의 지지율을 더 끌어 올렸고, 새정연 정태호 후보는 당시 이상규 후보의 득표율에 4%포인트 뒤졌다. 이런 차이가 정태호의 낙선을 불렀으므로 정동영 출마로 졌다는 변명은 사실상 변명에 불과하다.

특히 앞으로의 선거도 연대가 아니라 각개전투 형태가 될 것이므로 자력당선이 어려운 후보는 누구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선거가 바로 이번 관악구 선거의 교훈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성남의 무소속 김미희, 인천과 광주에 출마한 정의당 후보들의 득표에서 보듯 군소정당 후보들의 출마와 득표는 야권 분열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이 얻은 표를 차점자와 합산해도 당선자의 당선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앞으로의 선거에서 군소 진보정당이 지지율 3~5%를 가지고 연대라는 이름의 야권 단일후보 공작으로 망외의 소득을 얻으려는 꼼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야당 정치권에게 알려 준 교훈이다.

3. 원내 130석 새정치연합은 전지역 패배를 통하여 절대로 자력으론 존재할 수 없는 제1야당임을 증명했다. 이들이 현재의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결국 야권연대라는 ‘꼼수’였음이 증명되었다. 어떻든 하나의 후보를 만들어서 여당과 대적하므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강제한 소득이 현재 130석이다. 그래서 이 정당은 자신들이 가진 자산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매번의 현안에서 새누리당과 청와대에게 게임이 안 된다. 지난 해 지방선거는 세월호 침몰을 통해 드러난 이 정권의 사고 대비 허술함이란 호재가 있었음에도 이기지 못했다. 부분적이지만 야권은 연대했으며 이로 인해 거의 전 지역 여야 일대일 대결이었음에도 이기지 못했다.

곧바로 이어진 7.30재보선은 이 야당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패배였다. 그래서 김한길 안철수 대표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이후 현재의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

문재인이게는 직전 대통령 후보라는 프리미엄이 있다. 또 현존하는 대선 예비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가졌다. 이런 문재인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동분서주했다. 그랬음에도 전지역에서 패배했다. 여론조사라는 허구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민심은 냉혹하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토는 매우 강하지만 문재인이 이끄는 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선거가 곧 코너에 몰린 대통령과 여당을 구해주는 피난처가 된다. 일본의 아베정권이 코너에 몰리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라는 카드를 틍해 더 많은 의석을 확득하므로 코너를 탈출한 것과 같이 지금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비판을 받을 때마다 그 비판으로부터 탈출시켜주는 역할을 맡은 도우미인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 지역 유권자들은 이런 도우미 야당을 비토했다. 특히 광주 유권자들은 도우미 야당의 대체제로 천정배를 선택했다. 따라서 이제 천정배는 당선의 영광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도우미 야당이 아니라 정권의 잘못을 철저하게 추궁하고 그 대안이 되는 세력의 형성에 대한 짐을 짊어진 것이다. 이 짐이 무겁다고 피할 수도 없으며 피해서도 안 된다. 그의 약속 그대로 ‘새로운 DJ’들을 발굴, 이 패악한 정권을 교체할 힘있는 야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렇다고 호남에서 새로운 야당을 요구하는 민심의 바람을 확인한 새정연 호남정치인들이 새정연을 탈출하여 가세한다고 분별없이 받아들여 또 다른 새정연을 만들면 더더욱 안 된다. 이 패악적 권력과 당당하게 대항할 신진 정치인들을 제대로 발굴, 참신한 야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이 4.29 보궐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천정배 당선자에게 내린 명령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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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통 <미국과 괴뢰패당, 핵전파주범 책임에서 못벗어나>

 
  • [정치] 조평통 〈미국과 괴뢰패당, 핵전파주범 책임에서 못벗어나〉
  •  
    조선중앙통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서기국보도제1092호 <미국과 괴뢰패당은 핵전파의 주범으로서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를 29일 게재했다.
     
    보도는 <미국과 괴로패당이 2010년부터 벌려오던 <원자력협정>개정협상을 마무리하고 개정안에 가서명하였다>며 <이번에 미국은 <원자력협정>개정을 통해 괴로들이 사용후 핵연료재처리와 우라늄농축, 원자력기술수출 등을 할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지난 1998년과 2003년 남조선의 원자로들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한 흔적이 발견되였을 때에도 모르는척하고 덮어버렸으며 괴뢰들이 2000년 우라늄농축설비를 개발하여 고농축우라늄을 3차례나 추출하였다는 사실이 폭로되였을 때에는 <학술실험에 불과한것으로서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서 두둔해나섰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미국은 오래전부터 막후에서 괴뢰들에게 핵무기개발에 필요한 민감한 기술들과 인력,장비들을 체계적으로 넘겨주던 가면마저 벗어던지고 핵전파의 장본인으로서의 정체를 전면에 드러내놓았다.>며 <미국과 괴뢰들은 더이상 우리의 핵에 대해 시비할 명분도,구실도 없게 되였으며 핵전파의 주범,핵군비경쟁의 장본인으로서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게 되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과 괴뢰패당의 무모한 핵광란에 대처하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보검인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해나갈것이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미국과 괴뢰패당은 핵전파의 주범으로서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보도 제1092호--

     

     얼마전 미국과 괴뢰패당이 2010년부터 벌려오던 《원자력협정》개정협상을 마무리하고 개정안에 가서명하였다.

    1956년에 체결하고 1974년에 개정한 《원자력협정》은 괴뢰들이 원자로가동에 필요한 핵연료는 해외에서 수입하고 사용후 핵연료재처리는 미국의 사전동의밑에서만 할수 있으며 우라니움농축은 아예 하지 못하도록 규제되여있었다.

    그러던것을 이번에 미국은 《원자력협정》개정을 통해 괴뢰들이 사용후 핵연료재처리와 우라니움농축,원자력기술수출 등을 할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

    이번 《원자력협정》개정놀음으로 하여 앞으로 괴뢰들은 지금까지 미국의 비호밑에 비밀리에 감행해온 사용후 핵연료재처리와 우라니움농축을 보다 로골적으로 감행하면서 핵무기개발책동에 더욱 광분하게 되였다.

    괴뢰패당은 이번 《원자력협정》개정으로 《40여년만에 우라니움농축과 사용후 핵연료재처리의 길이 열렸다.》고 떠들면서 원자력잠수함개발이니,핵전문가모집이니 하고 설쳐대고있다.

    결국 이번의 범죄적결탁으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핵군비경쟁이 보다 치렬해지고 핵전쟁위험성이 더욱 커지게 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미국과 괴뢰패당의 이번 《원자력협정》개정놀음을 첨예한 조선반도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고 동북아시아지역에 핵전파와 핵군비경쟁을 몰아오는 위험천만한 범죄적책동으로 락인하면서 이를 준렬히 단죄규탄한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부터 남조선괴뢰들과 기만적인 《원자력협정》이라는것을 체결하고 《핵통제》의 간판밑에 괴뢰들의 핵무기개발을 적극 묵인조장해왔다.

    박정희《정권》이 미국의 비호밑에 핵무기개발에 광분하였다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은 지난 1998년과 2003년 남조선의 원자로들에서 플루토니움을 추출한 흔적이 발견되였을 때에도 모르는척하고 덮어버리였으며 괴뢰들이 2000년 우라니움농축설비를 개발하여 고농축우라니움을 3차례나 추출하였다는 사실이 폭로되였을 때에는 《학술실험에 불과한것으로서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서 두둔해나섰다.

     미국은 그 무슨 《과학기술협정》이라는것을 내들고 핵무기개발에 전용될수 있는 기술들을 괴뢰들에게 체계적으로 넘겨주었으며 오늘에 와서는 우라니움농축과 사용후 핵연료재처리활용의 길을 열어주는데 이르렀다.

    이로써 미국은 오래전부터 막후에서 괴뢰들에게 핵무기개발에 필요한 민감한 기술들과 인력,장비들을 체계적으로 넘겨주던 가면마저 벗어던지고 핵전파의 장본인으로서의 정체를 전면에 드러내놓았다.

    이러한 자들이 그 누구의 《핵문제》를 걸고들고 《핵전파우려》를 떠드는것이야말로 철면피하기 그지없는것이다.

    미국과 괴뢰들은 더이상 우리의 핵에 대해 시비할 명분도,구실도 없게 되였으며 핵전파의 주범,핵군비경쟁의 장본인으로서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게 되였다.

    우리는 미국과 괴뢰패당의 무모한 핵광란에 대처하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보검인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해나갈것이다.

    온 민족과 국제사회는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에 새로운 핵위기를 몰아오는 미국과 괴뢰들의 범죄적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야 할것이다.

    주체104(2015)년 4월 29일

    평 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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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다큐감독 사무실에 괴한 침입.. 정체는?


7분가량 머물며 컴퓨터 훼손한 뒤 외형 복원까지…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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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9  12:42:15
수정 2015.04.29  12: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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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영화감독의 사무실에 괴한이 침입하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해 온 독립PD 모임 ‘416기록단’의 임유철 감독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25일 새벽 12시 28분 경 괴한이 작업실에 무단 침입해 컴퓨터를 망가뜨렸다고 밝혔다.

   
▲ 이미지출처 = 임유철 감독 페이스북

임 감독이 공개한 CCTV 화면에 따르면, 남성으로 보이는 이 괴한은 7분가량 작업실에 머물며 ‘416 기록단’의 편집용 컴퓨터를 분해해 훼손한 뒤 외형 복원까지 한 후 사라졌다.

임 감독은 “세월호 1주기 특집다큐를 만들고 나서 이상한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라며 “짜식들 좀 쪼잔한 거 같다.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취재는 계속 한다. 알간? 밤 11시 30분, 내 작업실에 침투한 넌 누구냐?”라는 글을 게시했다.

앞서 416 기록단은 세월호와 관련된 다큐 5편을 제작해왔다. 이 중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등 4편은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통해 방송된 바 있다.

임 감독은 “야구모자에 또 다른 모자를 덮어쓰고 손에는 면장갑까지 끼고 입을 덮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은 후레쉬 하나로 망설임 없이 지형지물을 파악했다”며 “7분동안 컴퓨터를 분해해서 램과 CPU까지 능숙하게 망가트렸다. 더구나 외형을 복원까지 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 이미지출처 = 임유철 감독 페이스북

그는 “엄청난 덩치의 이 녀석은 누구일까요? 왜 이런 짓을 벌인 걸까요?”라며 “사무실이 털리기 일주일 전 저의 원룸도 이상한 침입을 당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임유철 감독의 페이스북 글은 500여건이 공유되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반드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네티즌들은 “공개수배할 수 없나요? 너무 악랄하고 악의적인데요”(Yoo*******), “꼭 잡아야”(Yeo****), “다음번엔 미션임파서블의 탐크루즈처럼 해주세요. 한 나라의 국가기관이 이게 뭡니까”(지구***), “도대체 나라꼴이 어찌 돌아가는건지”(미국****), “잡을 수는 있을까요”(초절***), “저 사람이 시민이면 주변 CCTV 살펴서라도 잡겠죠”(사랑이***), “국정원에서 짤리겠군”(김**), “고작 길거리에서 시위만 해도 칼같이 잡아내는 경찰이지만 저런건 안 잡는다에 500원 겁니다”(med***) 등의 반응들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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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보다 중요한 사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4/30 06:05
  • 수정일
    2015/04/30 06: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선거보다 중요한 사건<연재> 이진석 만평 (42)
이진석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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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9  20: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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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 결과 상관없이 ‘레임덕’은 시작된다

 
 
 
‘새누리당의 뻥공약 vs 새정치연합의 정권 심판론’
 
임병도 | 2015-04-29 08:54: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29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투표일 아침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불과 4곳이지만 내년 총선과 앞으로의 정치적 지형도가 그려질 재보선입니다. 그러나 유권자와 국민의 관심은 그다지 없습니다.

4.29 재보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적은 이유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너무 커, 국민의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정치 관심도는 항상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를 따라갑니다. 재보선이 치러지는 4월에 워낙 많은 성완종 리스트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국민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후보자가 나오는 선거 얘기보다는 매일 터져 나오는 성완종 리스트 얘기가 더 재밌고 흥미롭습니다.

선거가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중원’, ‘인천 서강화을’, ‘광주 서을’의 사전 투표율은 7.6%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국민은 관심이 없지만, 재보선의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잣대는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의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새누리당의 압승이라면, 박근혜 대신 김무성이다’

재보선의 결과를 놓고 3:1 내지는 2:2 등의 여러 가지 예측이 나옵니다. 정치평론가들이나 정치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새누리당 압승한다는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정동영 후보나 천정배 후보의 승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새누리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유리한 위치로 올라설 것입니다. 이럴 경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엄청난 힘이 집중될 것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재보선 지원 유세 모습 ⓒ 새누리당 홈페이지 캡처

비록 4석이지만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김무성 대표에게 공이 돌아갑니다. 이후 김무성 대표의 당권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회의원과 후보자들은 김무성 대표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습니다.

당권의 핵심은 공천이기에 그 공천권을 쥔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게 됩니다. 김무성 대표의 세력이 커질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차츰 약해집니다.

당권을 장악한 김무성 대표가 가고자 하는 길은 대권입니다. 그 대권을 위해 당연히 정권의 힘을 사용하고, 정권에 있던 사람들도 차기 대권 주자인 김무성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김무성 대표가 대선에 나온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방해하지 않겠지만, 그녀 스스로 도움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를 가정한 여권과 정권 인사들의 김무성 줄 대기는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결국 4.29재보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나온다면, 김무성 대표는 뜨는 해가 되고, 박근혜 대통령은 지는 달이 됩니다.


“야권이 승리하면 ‘성완종-박근혜 게이트’로 바뀐다.”
 
단순히 새정치연합이 승리할 가능성이 적다고 합니다. 다만, 천정배, 정동영 후보 등 야권 후보가 승리하는 등의 결과가 나오면 전체 야권이 이기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습니다.

결과는 오늘 밤 10시에나 나오겠지만, 새정치연합이나 야권이 승리한다고 가정하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정치권에서 더욱 퍼지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정치를 뿌리뽑겠다고 강조하는 새누리당 ⓒ 새누리당 홈페이지 캡처

박근혜 대통령은 메시지 대독이라는 생뚱맞은 방식으로 이완구 총리 사퇴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말했습니다. 핵심은 빗겨가기, 물타기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패정치'를 뿌리 뽑겠다고 합니다. 특사문제를 거론하며 함께 죽자고 나섰습니다.

특별사면이나 부패를 말하면 새누리당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부패정치 경력이 많은 새누리당은 오히려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새누리당의 물귀신과 물타기 작전은 여전히 야당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야권이나 새정치연합이 승리한다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확산시켜 박근혜 정권을 공격할 것입니다. 야권의 승리는 결국 정권 심판론이나 성완종 리스트의 승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석이지만 민심을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재보선 결과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더욱 힘을 잃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뻥공약 vs 새정치연합의 정권 심판론’
 
아이엠피터는 4.29 재보선 관련 글을 별로 쓰지 않았습니다. 별로 쓸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뻥공약을 임기 1년짜리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앞다퉈 내놓았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처음에는 경제를 말하더니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불거지자 ‘정권 심판론’이라는 과거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볼 때는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이나 와 닿지 않는 공약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단순한 선거 전략을 계속 고수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그 이외의 전략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새정치연합의 7.30재보선 지원 유세 ⓒ뉴시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똑같은 전략은 한국 정치도 그다지 발전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바꿔말하면 내년 총선에도 똑같은 선거 전략이 나오고,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도 선거와 함께 시작되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선거 전략이 과거와 별달라질게 없지만,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이유는 그들이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재보선 지역 유권자들은 정권 심판론보다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 높습니다. 새누리당은 이들에게 우리는 정권을 잡고 있어서 지역 발전에 힘을 쓸 수 있다며 희망을 보여줍니다. 비록 믿기 힘든 공약이지만 믿게 만드는 힘이 새누리당에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야권은 항상 ‘정권 심판론’이라는 몇 년째 좌절됐던 이야기만 합니다. 당연히 유권자들은 피로도가 높은 ‘정권 심판론’보다 당장에라도 집값이 오르고 교통이 편리해질 수 있는 현실론을 택합니다.

그 누가 후보로 나와도 유권자들은 1번을 찍고 있으며, 이 말은 박근혜가 아닌 새누리당의 누가 나와도 된다는 모습을 암시합니다.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투표가 가장 쉽고 편하게 자신의 정치 의사를 표현하거나 참여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당 지지자들은 뻥 공약에 당하고, 야당 지지자들은 매번 패배 의식에 사로잡힙니다. 투표하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무슨 맛인지도 모릅니다.

이러니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요? 밥맛이 없어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굶어 죽지 않습니다. 당장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이 없어도 그중에서 가장 나은 반찬을 먹는 것이 투표이자 정치입니다.

4.29재보선의 결과와 상관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면 바뀔까요? 아닙니다. 또 똑같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잘 찍은 표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임기 1년짜리 국회의원들이 1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면 오늘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지 짐작이 될 것입니다. 나쁜 표, 이상한 표 말고 잘 찍은 좋은 표만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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