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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 인터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나쁜 여인' 박근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단박 인터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를 찾았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집회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함 신부는 '정의'에 대해 물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다"는 것. 2012년 대선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된 일이 벌어진 가운데, 전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함 신부는 강조했다.  
 
함 신부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을 되찾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대한 비판이 곧 박 대통령에겐 '폭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함 신부는 이어 더 긴 안목을 주문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도 지금 '100년 전쟁' 중에 있다"며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연대의 틀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6일 있었던 5번째 '단박인터뷰' 주인공 함 신부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함세웅 신부. ⓒ프레시안(최형락)

▲ 함세웅 신부. ⓒ프레시안(최형락)  

 
 
"현 정권, 기초가 부실하다" 
 
프레시안 : 지난달 28일 주말 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함세웅 : 어른들이 흔히 '좋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던가, '큰 집을 지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 전체를 말하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현 정권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기초가 제대로 된 정권이 아닙니다. 국가나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은 것인데,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심과 집단적 탐욕이 우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종교인으로서 '사건을 근원적으로 접근하자'고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됐습니다. 지난 대선이 불법·관권 선거라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큰 책임이 있고, 이에 덕을 본 현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법원은 판결한 것입니다. 2012년 12월 대선후보 TV 토론회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자신과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으로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이 분명히 입증됐습니다.  
 
선거를 통해 구성한 정부가 정당성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동선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선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정치민주연합(구(舊) 민주당)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으며, 동시대를 살며 침묵하고 있는 우리 모두도 책임져야 할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국민과 정치인들, 특히 법조인들이 깊이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고위공직자 후보자 인사 검증 때 수구·부패 언론은 '도덕적 잣대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도덕이 기초가 안 되는 정치·사회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습니까? 부패하고 불의한 자를 최고 공직자로 선출하는 것을 정상적인 국정수행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양심·도덕·정의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초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건물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프레시안 : 1987년 민주화 운동 이전에는 관건 선거가 노골적으로 있었지만, 법원의 판결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 드러난 것은 처음입니다. 도덕과 정의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함세웅 : 참 부끄럽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가장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도둑들이 하는 것'이라는 혐오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것을 창작할 때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합니다. 정치도 예술이니까 잘못된 것을 찢고 과감하게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회개'와 '정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로 인한 염증과 고름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프레시안 :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지금도 30%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세웅 : 지지율의 허구성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부정·관권 선거였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대선 당시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 원론적인 것을 얘기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이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朴 대통령, 폭압에서 해방시켜야…"  
 
프레시안 : 박근혜 정권의 인사 문제 등을 볼 때 우리 사회가 87년 체제 이후 합의한 여러 기준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함세웅 :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합니다. 인사권자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통령 후보자 시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공약을 100% 실천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약을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권력자의 오만한 자세는 수덕(修德)이 부족한 자격지심인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연민의 정도 느낍니다. 인격이 부족하고 정직하지 못한, 그리고 그가 스스로 설정한 올가미(함정)에서 해방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설정한 올가미'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함세웅 : 가톨릭도 1960년대 이전에는 아주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역사와 시대 앞에서 '교회가 하느님 앞에 정직한가'라며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역사적으로도 부족하고 죄인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그 교회 공동체가 정화되고 위대해집니다. 이때 비로소 하느님의 백성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에 교회 공동체는 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 복판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아름다운 교회관을 확인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또는 인간 공동체 안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 중 악한 사람, 특히 '폭압자를 배척해야 하느냐, 껴안아야 하느냐'를 고민하게 되는데 껴안아야 합니다. 그러나 껴안을 때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바로 자신의 인간성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뉘우치고 속죄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박근혜'라는 실체는 폭압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5000만 남한 국민의 폭압자입니다. 40년 전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시대의 폭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아버지와 싸웠는데, 또 그의 딸과 싸워야 한다니…. 참,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니,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그 여인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입니다.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의 의미를 되찾게 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되찾을 때 제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타락한 모습입니다.  
 
프레시안 :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가 '선거의 여왕'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대선 공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타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세웅 : 정치적으로 능한 게 아니라, 일종의 '언어유희'이자 '언어의 오염'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지만, 사실 단어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으로 자연 그대로 있어야 할 강만 오염된 게 아닙니다. 정치인이 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좋은 언어가 오염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이 나치 강제수용소 체험 수기를 쓴 책 <죽음의 수용소>(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와 <의미요법>(이봉우 번역, 분도출판사 펴냄)을 생각합니다. '의미요법'(로고테라피, Logotherapy)은 '말씀의 치유'라고 하는데, '난 살아야 한다.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살아야겠다'라고 의지와 희망을 갖고 끝까지 버틴 사람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현 정권 5년을 '역사'라는 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는 50년, 100년, 또는 1000년 단위로 기록하지 않습니까? "희망이 없다"는 이 시대와 집권자에 대해 역사학자나 문학자가 기록할 때에는 '그때 그 사람 참 나쁜 여인이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가 지난해 8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불러 국장과 과장 이름을 거론하며 "참 나쁜 사람이더라"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에 비춰보건대) 그런 사람입니다. 
 
거시적 안목으로 100년 이후를 생각하면서 현 정권을 평가하며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종북 몰이,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  
 
프레시안 : 지난 5일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정치적 의사 표출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돌발적으로 터져 나온 경우입니다.   
 
함세웅 : AP통신과 <뉴욕타임스>가 지적하듯 한미연합훈련이 남북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거나, 미국 보수 성향 매체 <워싱턴프리비컨>과 일본 <아사히>신문 말대로 미국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의 발언(2월 말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한중일 3국의 과거사를 덮고 가자'는 취지의 말을 함)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됐습니다. 
 
김기종 씨를 여러 회합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살아온 과정에서 상처가 많이 쌓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균형 감각을 상실한 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치료와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객관적으로, 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피습 사건을 김 씨 개인의 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시대적 책임이라는 연대 의식 속에서 성찰해야 합니다. 본인도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이를 새누리당과 집권세력, 수구집단이 말하듯 '종북 몰이'로 가서는 더욱 안 됩니다. 특히 무슨 일만 생기면, 만능 통치 약인 양 '종북이다'라며 손가락질하는데, 객관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제적으로 시선이 집중된 사건인데, 세계인들에게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종북 몰이'는 비인간적·야만적 왕따 놀이, 정신병자와 같은 비정상적 행업입니다. 성숙한 문화인의 기본과 양식을 갖춘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가 공동체 구성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어떤 사안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 즉 종북으로 몰아가는 폭언은 오히려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무리 건강한 주장이라고 해도 폭언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공동체 전체가 대처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6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 앞에 김기종 씨와 리퍼트 대사 두 분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일간베스트(일베)에서 활동하는 고등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린 사건, 또 일베 게시판에 여성과 호남 출신을 비하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에 빗댄 일 등 '종북'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혐오가 늘고 있습니다.   
 
함세웅 : 경찰이 '사제 폭탄 사건' 같은 경우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만 보면, 참 못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언론 또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의 <크리스턴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라는 언론은 '이 뉴스가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보도한다고 합니다. 언론인 스스로가 비도덕적 뉴스를 필요 이상으로 경쟁하듯 보도하는 태도를 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부 구성원의 일탈과 언론의 과열 경쟁은 사회 전반의 문화나 국민 수준이 올라가면 조절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 자체가 그렇게 폭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 세력과 박정희-전두환 시절 군부독재 세력 등에서 우리 사회의 폭력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근원을 따져야 하는데, 일련의 사건을 너무 현상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평화와 정의가 그만큼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세월호 참사, 분노를 넘어 연대로…" 
 
프레시안 : 세월호 참사,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또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함세웅 : 법과 상식에 기초해 정직하게 접근하면 됩니다. 한 번 거짓말하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4월 16일, 곧 1주년이 다가옵니다. 우리 학생과 시민들이 바다에 가라앉는 것을 전 국민이 몇 시간 동안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7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가 되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가 일제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쪽으로 쏠렸습니다. 고도의 언론 공작, 정치 공작입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공안 통치와 비슷합니다. 그렇다 보니, 세월호 유가족 입장에서는 정권의 진상규명 의지를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 활동이 오늘(6일)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조사 시작도 하기 전에,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세월호 인양 문제와 관련해 "세금 도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집권여당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규명을 위해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여야 간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억울함을 밝히고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하면서 "분노만 가지고는 안 된다. 분노를 삭이면서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종교인이라고 해도 자식을 잃은 엄마의 아픔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종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과 이를 지켜봤던 성모 마리아의 아픔을 되새겨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 가를 생각하며, 자식을 잃은 아픔을 연대적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에서 역사적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모든 사건은 결국 이웃과 연계된 민족사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내 아들딸이 나에게 역사적 교훈을 일깨워줬다. 그 의식으로 정부를 늘 감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문제가 정치적(이념적) 이해관계로 흐르는 데는 친일·독재의 잔재, 분단 세력과 신자유주의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4개의 가치를 중심으로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를 중심으로 한 근원적인 종합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 숨 한 번 쉬면…"  
 
프레시안 : 우리 사회가 친일·독재·분단·신자유주의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요?.   
 
함세웅 :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조금 더 민주주의에 가까운 시절이었지만,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이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에서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본의 노예가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선한 사회적 가치를 지녔지만, FTA와 해군 기지 건설 등 미국에 더욱 예속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거치면서 '이 정권도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게 됐지만, 박근혜 정권 또한 불법 선거로 얼룩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을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3년은 더욱 단련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벨기에에서 망명 생활 중 쓴 글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지만, 자유는 100년 뒤에 실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 역시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시민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게 <레 미제라블>입니다. 프랑스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 미래 시대의 좌표였습니다.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린 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만들었는데, 1905년 을사늑약을 기준으로 100년이 지났고, 1945년 일제 식민지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이제 70년 지났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 벗어난 지는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지금 '100년 전쟁' 중에 있습니다.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연대의 틀을 키워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 역사적으로 숨 한 번 크게 쉬면 지나갑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세월호 유가족이나 국민 모두에게 큰 치유가 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종교, 특히 천주교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함세웅 :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화활동가 등 현장에 투신해 있는 종교인도 많습니다. 교황 개인도 훌륭하지만, 국제적 지위와 사목적 신분 때문에 추앙받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교황보다 더 크게 헌신한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길잡이입니다. 그런 분들의 헌신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청춘=힘, 개성 있는 인간이 되라"  
 
프레시안 : 5년이란 시간이 금방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젊은이들에게는 힘겨운 일입니다. 2030대 젊은 층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함세웅 : 청년들의 현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로마에서 유학하던 20대 시절 인류복음화성 차관 피녜돌리(Pignedolli) 대주교가 훈화 시간에 나폴레옹 얘기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로마 교황을 억압한 인물입니다. 그런 폭압자를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성 있는 인간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나의 가치와 신념, 인격을 하늘같이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폴레옹이 천하를 호령하다 유배되면서 이탈리아 엘바 섬에 잠시 머물게 됐는데, 감시인들에게 자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항구에 가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고 합니다. '어디서 오는 건가, 어디를 가나, 무슨 목적으로 왔나. 당신 인생관은, 신관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길로 가면서도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나타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우주에 대해, 역사에 대해 관심을 드러낸 것. 그것이 '나폴레옹의 개성'이었습니다.  
 
당시 주교가 한 훈화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교훈이 다 우리 성서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최근 대학가의 '안녕들하십니까'와 '최경환 F학점' 대자보 등이 어른들에게도 교훈이 됐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자 모순적인 사회 현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가져야 할 꿈을 늘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이룩하는 젊은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춘' 자체가 바로 힘입니다. 선배 세대, 스승 세대를 넘어서고 거짓 무리들을 넘어서는 신선한 싹이기를 바라면서 늘 개성을 간직하길 바랍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집권 3년 동안 어쨌든 깨달음을 얻어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큰 꾸짖음을 한다면? 
 
함세웅 : (한참 있다가) 하긴 해야 하는데, 생물학자 등에 의하면 DNA는 안 바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사제니까, 나라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 정권이 잘 마무리되게 기도할 것입니다. 
 
* '단박 인터뷰'는 2015년 <프레시안>이 새롭게 연재하는 조합원과 독자 참여형 인터뷰입니다. 함세웅 신부님이 추천한 다음 주인공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입니다. 연구소 측에 인터뷰 요청을 한 상태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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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이끄는 북한 여성들

변혁 이끄는 북한 여성들

2015.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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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1.jpg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평양 여성들이 중국에서 유입된 패션을 따라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평양 거리에서는 단조로운 색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옷차림 이외에도, 여성들은 정부의 감시가 느슨한 지하시장을 활성화하며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봄, 지도자 김정은 곁에 우아한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이는 북한체제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 후 사람들은 이 여성이 김정은의 처, 이설주란 사실을 알았다. 이 여성의 등장은 배우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어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었던 그의 아버지 김정일(2011년 12월 사망)의 사생활과는 뚜렷이 대조된다. 평양의 신흥특권층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장소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차림새가 그렇듯이, 절제된 이설주의 세련미는 특별한 게 전혀 없다.

젊은 여성들의 거리 옷차림은 다양해지고 보다 화려해졌다. 하이힐과 통굽이 흔하고, 심지어 휴가 나온 젊은 장병들도 구두를 신었다. 중국 패션의 영향은 국영상점의 진열장에서도 엿보인다. 북한의 최대 신발업체인 보통강은 현재 까다로운 고객을 겨냥해 새로운 신발 모델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군복, 거꾸로 쓴 야구모자, 몸에 꽉 끼는 짧은 스커트 복장을 한 인기 팝그룹 모란봉 가수들의 머리모양을 흉내 낸 단발머리나 살짝 염색한 머리도 무척 유행하고 있다. 보다 온화한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RPDC)은 마치 스포츠 행사장에 치어리더들을 파견하듯, 중국, 캄보디아 등 해외에 운영 중인 북한식당에 젊고 예쁜 여성들을 파견한다. TV들이 여성 팝그룹의 공연 모습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국영항공사인 고려항공도 기내에서 같은 공연을 방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사람들이 가난의 경계선에서 허덕이고 있는 터에 평양의 모습은 환상이 아닐까? 과연 평양 여성의 외모는 변한 걸까? 국경의 폐쇄로 정보도 거의 없고, 방문객과 북한주민 간 접촉이 부재하기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파악하려면 퍼즐을 맞춰야 한다. 북한 주민들과 일일이 접촉하고 방문하다보면, 덮개로 덮여 있는 채 변한 게 없을 것 같은 사회가 변화되고 있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평양 여성들의 옷차림과 액세서리 그리고 거동에서 어떤 변화가 읽힌다.

 

혁명적인 동시에 여성적인’ 여성들

 북한3.jpg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1989년 김일성 국가주석이 잡지 <조선여성>에서 천명했던 것처럼, 1945년 해방 이후 등장한 북한의 ‘신여성’은 혁명적인 동시에 ‘여성적’이어야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분석가로 근무한 헬렌 루이즈 헌터는 “북한 여성들이 중국이나 소련 여성들보다 더 매력적인 여성미를 갖추고 있다”(1)고 했다. 북한 여성들의 옷차림은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여성들, 즉 단발머리에 무스를 발라 머리를 고정시켜 ‘슈퍼맨’의 모습을 한 포스터 속 중국 여성들의 모습보다는 훨씬 다양했다. 북한 여성들은 이따금 활동에 편리한 발목을 드러내는 전통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1960년대 말부터, 북한 정부는 전통의상이 과거와 현재 간 연속성을 상징한다며 주요 행사에 여성들이 전통의상을 입도록 장려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 농부, 가정주부 등은 서양식으로 옷을 입고, 정갈하게 빗거나 파마머리 또는 스카프를 두르고 다닌다.(2)

  1980년대 평양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 서울 소재 국민대학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북한은 옷차림에 있어 단 한번도 ‘은둔의 왕국’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한은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은 나라다. 20세기 전환기에 중국의 현대 패션이 조금씩 유입되자, 강경대응에 나섰던 북한은 최근 몇 년 사이 유연해졌다. 2002년 이후, 매년 봄마다 평양에서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 2014년 9월 패션쇼 때는 단색 전통의상에서부터 컬러풀한 전통의상까지, 그리고 1960년대의 고전적인 ‘샤넬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양장 등을 선보였다.

  옷차림 이외에도, 북한 여성들은 기근기(1995∼1998년)를 거치면서 생존활동의 산물인 시장경제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사회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여성들은 정권의 핵심에 거의 진출하지 못했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2013년 12월, 남편 장성택이 숙청된 이후 정치무대에서 모습을 감춤)와 지난 11월 27세의 나이로 북한 노동당 부부장으로 승진한 김정은의 여동생만이 정권의 핵심에 있다. 최신 자료로 알려진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들은 최고인민회의에서 4분의 1도 안 되는 의석과 노동당 중앙위원회 의석의 4.5%밖에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란코프는 2004년에 이미 “북한의 신자본주의는 확실히 여성의 얼굴을 지녔다”고 말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여성들은 기근의 주요 희생자였다. 이들은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며 성폭력과 강제 낙태 그리고 그밖의 학대까지 받았다.(3) 북한 전문가 박경애(4)는 이러한 시련 때문에, 여성들은 가정에서 보다 많은 독립성과 영향력을 확보했고,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진보적인 의식을 지니게 됐다고 평가한다.

빈사상태에 빠진 북한경제 속에서 종양처럼 번지는 다양한 형태의 지하경제활동은 이러한 압박(여권신장에 따른 압박)의 산물이다. 북한정부는 이같은 돈벌이(지하경제활동) 열풍을 잠재우긴 했지만,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강경정책과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적절히 혼합하며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5) 그러나 자율경제 활동 부문(상업, 서비스, 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것을 국민총생산(GNP)으로 정량화하기는 어렵다.(6)

  이같은 지하경제가 등장시킨 ‘신흥특권층’(기업인, 중개인, 상인, 소매상)은 전통적인 엘리트(대부분이 노동당 간부들이며,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같이한 세력의 후손들이다)의 폭을 확장시키며, 예전에 상대적으로 평등하던 사회의 이해관계를 세분화시켰다. 지하경제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자료의 부재로 인해 휴대전화 보급 대수 같은 단편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2014년 250만 명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었고, 주민 10명당 1명은 휴대전화를 구입하기 위해 대략 200~300 달러를 썼다. 이러한 신(新)사회계층의 등장을 증명하는 건 평양의 상점들이다. 국영상점은 예전보다 물건들을 잘 갖춰 놓았는데, 중국,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 건너온 식료품과 상품을 진열장에 내놓고 있다. 상점들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려는 구매자들(능력이 되는 사람들)과 구경꾼들로 붐빈다. 명품매장에 진열된 술, 화장품, 해외브랜드 옷들을 보노라면 국제사회가 북한을 상대로 취한 이른바 ‘명품’ 수출 제제조치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든다. 상품가격은 일반 대중에겐 천문학적이지만, 곧잘 팔려나간다. 이 모든 지하경제 부문에 여성들이 관여하고 있다.

  만약 법적 조항만 고려한다면, 북한은 아시아에서 선구적인 국가이다. 시민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 측면에서 보면, 북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무상교육, 배우자의 선택권, 이혼과 상속권 등)를 지녔다. 1946년 3월 토지개혁의 결과로, 가장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모든 농민 가정에 토지가 재분배됨으로써 가부장제의 물질적인 토대가 무너졌다. 당의 이익을 위해, 유교성향이 강한 사회의 전통적인 의무로부터 여성들이 해방된 셈이다. 당이 ‘당원들 간에’ 중매쟁이 역할을 하고 있어, 결혼은 이제 더 이상 가족 간의 대사가 아니다.

북한정부는 원칙적인 측면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남녀의 역할에 대한 개념에선 보수적이다. 성해방은 사회주의 구축에 일조한다. 또한 혁명적인 성향을 보이는 ‘신여성’은 ‘현모양처’여야 한다. 이러한 여성의 모습이 “혁명적인 시민의 모델”이다.(7)

한국전쟁(1950∼1953년) 이후, 북한 여성들도 국가를 재건하는 일에 나서야 했다. 상당수의 남성들이 전쟁 중에 전사해 이들의 일손부족을 여성들이 메꿔야 했다. 1950∼1960년대에 여성들은 생산에 기여하고, 주체사상을 교육 받고, 5호담당제를 책임지고, 가정도 건사하고, 자녀도 낳아야 했다. 이어서 중공업이 중시되고 여성들의 일자리가 희박해지면서, 여성들은 대수롭지 않은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1980년 중반의 경기 침체로,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자녀 교육과 가사에 전념한다. 정부 또한 보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열성적으로 선전하고, 출산을 장려하기 시작한다. 선량함과 단순함과 애정을 구현하는 미덕, 즉 어머니상이 노동당의 이미지와 결부되며, 가족은 국가의 은유가 됐다. 어머니들이 북한체제의 주요 영웅들이 된 셈이다. 예를 들면, 김정일의 어머니, 이른바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과,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을 비롯해 익명의 여성 노동자들과 공을 세운 어머니들이 영웅대접을 받았다. 기근이 오면서, 여성들은 북한의 생산활동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다. 기근의 혼란 속에서 여성들은 국가 생존의 톱니바퀴가 됐다. 반면에 남성들은 식량부족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한 탈북여성은 “북한 남성들이 헛짚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으며, 힘없는 일부 가장들은 체면을 구겼다. 가정주부들은 소매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직장여성들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2000년대 상반기 10년 동안에 출간된 소설들은 어머니의 책임감과 직장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을 잘 묘사했다.(8)

 

기근의 혼란에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

     
북한2.jpg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거대 암시장으로 전락한 농민시장은 여성 활동의 주 무대가 됐다. 여성들은 가족이 보유한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시장으로 갖고 나와 팔거나 장비, 그릇, 가구, 옷 등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또,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 즉 주택가 사이나 도로가 바닥에 좌판을 펼쳐 놓고 장작, 약초, 텃밭을 일궈 얻은 야채, 직접 집에서 만든 작은 과자 등을 판매했다. 또 일부는 이발, 구두수선, 삯바느질 등과 같은 서비스업에 뛰어들었다. 새벽부터 여성농부들의 기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들은 등이 휠 정도로 많은 짐을 지고 도시로 향한다. 일부 여성들은 먼 길을 걸어 다니거나 트럭 짐칸에 끼어 탄 채 돌아다닌다. 요즘도 여전히 여성들은 행상을 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도시인 신의주 역 플랫폼에 들어서자, 커다란 봇짐을 진 여성들이 눈에 띈다. 신의주는 양국 간 합법이건 불법이건 간에 대부분의 무역거래가 이루어지는 ‘관문’이다. 여성들이 소매업(노점상)과 식당업과 서비스업을 관장한다.(9)

  유교적 유산도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2011년 서울로 탈북한 40대의 한 여성은 “북한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남아있다”고 말하며, “남한에서조차도 탈북여성들은 그런 관습에 익숙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북한 여성과 남한 남성을 짝 지워주는 결혼 전문업체가 돈을 벌고 있다. 오래된 속담처럼, 완벽한 조합은 “남남북녀” 커플이다. 간혹 일부 남한 남성들은 “남한 여성이 대가 세다”고 생각한 나머지, 탈북여성들과의 결혼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이 이같은 자신들의 위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그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주로 가계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어 그 영향력도 커졌다.(10) 탈북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더 이상 의무로 여기지 않고, 되도록이면 이를 뒤로 미루고 있다고 전한다.

  더군다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혼란은 남녀 간 관계의 상대적인 자유화를 낳게 된다. 이는 소설들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과거에, 작가들은 커플 간 이데올로기적 교감을 강조했다. 이후, 이들은 로맨스와 감정을 거론하더니 한발 더 나아가 암암리에 욕망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이 반한 남자와 결혼하는 열정적이고 과단성 있는 여성들이 등장했다.(11)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존재하지 않던 이혼이 등장하고,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합의 이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흔하게 내세우는 이혼사유는 배우자의 “반동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혼 여성은 여전히 잠재적인 비난에 노출되어 있다. 파트릭 모뤼스는 자신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한 백남영의 소설 <친구들(Des amis)> (Actes Sud, 2011) 서문에서 “이혼은 사적인 행동이 아닌 사회적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탈북 여성들 또한 가정 폭력의 증가로 인해 이혼이 생기고 있다고 증언한다.

  또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경찰이나 군인들을 상대해야 한다. 남한으로 탈출한 한 여성의 증언에 따르면, 공장이나 군대 내의 성폭행과 성희롱이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기근으로 인한 인명 손실 이후, 북한정부는 출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홍보를 시작했다. 이 여파로 피임약을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병원들이 (공식적으로 법이 허가한) 낙태를 꺼리며 불법 낙태시술이 증가했고, 덩달아 그에 대한 위험부담도 생겼다. 성병 또한 우연한 기회에 갖는 매춘 행위로 말미암아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여성들은 1990년대의 후반부와 그 이후의 혼란을 틈타 자신들만의 자율공간을 관리하는 데 신경을 썼다.(12) 여성들은 북한정부가 시장상인의 연령 제한을 50세 이상으로 못 박자 저항했다. 2007년 10월과 2008년 3월, 여성들은 회령과 청진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제한적이긴 했지만, 적어도 집단행동에 주저 없이 참여한 여성들 간 연대를 보여줬다. 전통과 혁명에 사로잡혀 굴종하던 여성들이 해방되고 가족의 수호신으로 거듭나며, 자신들의 멍에(전통과 혁명)를 서서히 벗어 던지고 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호에 게재된 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6 )

 

글·필립 퐁스 Philippe Pons/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박사,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해 강의

 

1) Helen-Louise Hunter, ‘Kim Il-sung’s North Korea,’ Praeger Publisher, Santa Barbara (Canada), 1998년. 
(2) Cf. Koen De Ceuster, ‘On representation of women in North Korean propaganda posters’, International Convention of Asia Scholars, Adélaïde(Australie), 2009년. 
(3) Lucia Jang et Suzan McClelland, ‘Stars between the sun and moon. One woman’s life in North Korea and escape to freedom’, Douglas &McIntyre, Madeira Park (Canada), 2014년.
(4) ‘Economic crisis, Women’s changing economic roles, and their implications for women’s status in North Korea‘ Pacific Review, San Diego (Canada), 2011년 5월.
(5) Patrick Maurus, ‘미래의 용을 꿈꾸는 북한(La Corée du Nord se rêve en futur drag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2월. 
(6) 2013년, 기업은행경제연구소(IBK Economic Research Institute)는 북한의 지하경제 규모를 10억에서 30억 달러로 추정했다. 
(7) Suzi Kim, ‘Everyday Life in the North Korean Revolution, 1945∼1950’, Cornell University Press, New York, 2013년. 
(8) Cf. Patrick Maurus, ‘북한의 여성 영웅들(Héroïnes de Corée du nord)’, dans Béatrice Didier, Antoinette Fouque et Mireille Calle-Gruber, ‘창의적인 여성들의 사전(Le Dictionnaires des femmes créatrices)’, éd. Des Femmes, vol. 3, 파리, 2013년. 
(9) Cf. Stephan Haggard et Marcus Noland, ‘Gender in transition, The case of North Korea’,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2012년 6월.
(10) Jin Woong Kang, ‘The patriarchal state and women’s status in socialist North Korea’, Graduate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vol. VI, n° 2, 2008년.
(11) Lim Soon-hee, ‘Value changes of the North Korean New generation and prospects’,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2007년. 
(12) Lee Mikyong et Ku Su-mi, ‘The life and consciousness of North Korean urban women after the economic crisis’, North Korean Studies Review, vol. VIII, n° 2, Detroit (Etats-Unis),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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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행사, 북 대표단 초청 서울서 개최 추진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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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3/12 13:20
  • 수정일
    2015/03/12 13:2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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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릴레이 인터뷰 ⑦> 이승환 6.15남측위 공동대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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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1  17: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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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와 10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 이하 6.15남측위원회)는 6.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를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 가운데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는 10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통일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 6.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일에 남북 간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가가 올해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6.15공동선언 15주년 남북 공동행사를 가능하면 남쪽 서울에서 진행하는 것이 이 행사의 성사 가능성과, 남북관계 발전에 실제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런 방향에서 여러 검토와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한미합동 군사연습이 끝나는 시점에 곧바로 6.15남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 간의 접촉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거기서 올해 6.15공동행사와 광복 70주년 공동행사와 관련된 전반 개요를 확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남북 간 공동기구 구성 문제도 협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2008년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행사.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6.15공동행사가 열리지 못한 채 15주년을 맞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남측위원회는 이를 위해 먼저 오는 4월 1일 6.15남측위원회를 포함해 보다 폭넓은 ‘광복 70주년 및 6.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필요하다면 현재 6.15남측위원회로 틀을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보수나 진보, 여야, 민관 등 다양하게 함께 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도록 검토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6.15남측위원회는 무엇보다도 올해 6.15공동선언 5주년에 남북 공동행사를 성사시키는 것이 지금까지 중단된 교류와 협력사업의 물꼬를 트는 것은 물론 남북 당국관계의 변화를 촉발해내는 데서도 결정적인 의미와 전기가 될 거라 본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따라서 “이 행사 속에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북측 대표단에 이산가족과 문화.예술.체육인 등이 포함되도록 북측에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각 분야의 다양한 교류를 구상한다며 “광릉수목원에 크낙새가 사실상 멸종됐는데, 북측 운율지역에 크낙새가 자생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북의 크낙새를 기증받아서 다시 광릉수목원에 크낙새 소리가 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남북 간의 식생교류와 관련해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시했다.

그는 “5월 1일 노동절에 양대 노총이 준비하고 있는 노동자 통일축구대회가 예정돼 있다”며 “6.15~8.15주간에 다양한 민간교류, 협력사업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7월 4일부터 전남광주에서 진행되는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는 청년들의 축전이고 북측이 참가할 걸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남북 청년들의 교류와 공동응원이 성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2013년 7월 베이징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 회의가 열렸다. 남측 대표단은 북한주민접촉 신청이 수리되지 않아 귀국후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광복 70주년 공동행사에 대해서는 사견임을 전제로 “남에서도 북으로 대표단이 가고 북에서도 숫자에 상관없이 일정한 대표단이 남쪽에 와서 서울과 평양에서 광복 70주년 행사가 입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6.15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가 서울에서 개최되게 된다면 광복 70주년 행사는 북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한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를 국민들에게 실감있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평화열차를 운영할 계획이고, 정부도 비슷한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경-평양-개성-서울 혹은 서울-개성-평양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열차’ 혹은 ‘동아시아 평화열차’를 운영해 열차 안에서 다양한 학술토론회와 적절한 문화행사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인터넷 온라인 상으로 ‘평화통일 모자이크’를 완성해 나가는 이벤트 등을 추진하고, 특히 “8월 15일에는 일본 아베 내각이 이른바 일본 전쟁국가화와 관련된 중요한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돼 일본과 한국의 정당과 시민사회들, 그리고 여러 나라들의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 모여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선언을 조직하는 국제대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남북 공동행사에 대한 남북 당국의 승인 여부다. 그는 “어쨌든 6.15공동행사를 성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도 가능하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민간 공동행사를 승인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 4일 정부가 국무총리 소속으로 민관합동위원회인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데 대해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잘 행사를 진행하면 된다”며 “중복이나 충돌의 문제가 아니라 민과 관이 서로 필요한 만큼 충분히 협의하고 논의를 진행하면서 따로 하든, 함께 하든, 쌍방이 서로 참여하든, 여러 방안을 찾아가면 되는 문제”라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북의 입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가 쇼케이스처럼 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올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나 이런 점들 때문에 가능하면 논란을 최소화하고 민과 정부 사이에 쓸데없는 갈등들이 크게 불거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 민화협 공동의장을 겸하고 있는 이승환 공동대표는 최근 리퍼트 미국대사 테러사건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을 겸하고 있는 이승환 공동대표는 최근 민화협 주최 토론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한데 대해 “폭력행위에 의존해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고 범죄라고 하는 점에서는 더 이상 변호하기 어렵다”면서도 “이 사건을 ‘종북 숙주’ 운운하는 정치공세 호기로만 생각하고 이 불행한 사건을 산생시킨 배경에 대해 아무 성찰도 없는 것은,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래 상자기사 참조)

 

이승환 공동대표는 “광복 70년, 6.15 15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올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구조화 되고 있어서 남북이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기로에 있기 때문에 올해가 중요하다”며 “6.15남측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남.북.해외 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남북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선도해나가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접촉을 진행하고 실제로 변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들을 전개해 왔다”고 이해를 구했다.
 

 

“범죄적 행위.. 정부, 실질적 배경에 관심 가져야”
이승환 민화협 공동의장, 리퍼트 미대사 테러사건 입장

김기종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김기종씨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벌였다 하더라도 절대로 용서되기 어려운, 폭력행위에 의존해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고 범죄라고 하는 점에서는 더 이상 변호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우리 정부나 여당에서는 이 사건을 종북분자에 의한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배후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방면에 걸쳐서 김기종씨와 조금만 연관이 있으면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식의 정치공세용으로 이 사건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 점은 적절한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정부는 사건의 배후를 캐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 불행한 사건이 산생(産生)된 실질적 배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데서 이 국가가, 정부가 무엇을 성찰해야하는지를 깨닫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불행한 사건에는 명백하게 몇 가지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남북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점점 구조화되어, 북의 핵과 미사일, 남쪽의 국제법상 공격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킬체인(Kill Chain) 등을 포함하는 확장억지와 포괄적 미사일방어전략 등이 서로 충돌하면서 점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확대되어온 상황이 김기종씨의 이런 불행한 사건이 산생된 배경의 하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의 한.미.일 동맹이 진전이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초조감과 그로 인해 동북아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면서 사실상 박근혜 정부를 비난한 것도 한국민의 정서를 크게 자극했고, 이것도 아마 김기종씨의 불행한 사건이 있게 한 배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또 개인적으로는 김기종씨가 28살 젊은 나이에 겪었던, 특수기관으로 의심되는 괴한들에 의해서 여자 후배가 성폭행 당하고 후배들이 집단구타 당한 사건의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린 결과, 본인 멘탈리티의 많은 부분이 파괴된 상황도 이번 행위에 작용하고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국가폭력일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 한 인간에 대해 그가 저지른 범죄적 행위에 대한 단죄와는 별개로 과거 국가에 의한 폭력, 군사주의의 폐해에 대한 성찰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 응당한 민주국가의 권력이 지녀야 할 태도다.

그런데 이 사건을 ‘종북 숙주’ 운운하는 정치공세 호기로만 생각하고 이 불행한 사건을 산생시킨 배경에 대해 아무 성찰도 없는 것은,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한 평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국가적 성찰이 축적되어야 한다. 

김기종씨의 이번 행위는 아마도 개인적 돌출행동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행위로 인해 사람들은 전쟁반대와 평화수호의 주장을 더 하기 어렵게 되었고,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기회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공론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어리석은 행위가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과 정반대의 결과만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서 북한이 보이는 태도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 불행한 사건에 대해서 북한은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 사건에 대해 즉각 반응했고, 그 반응도 불행한 폭력사태를 ‘응당한 징벌’이라면서 심지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이는 남쪽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정치에 대해 여전히 무지하고 일방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북한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했던 ‘상호체제 인정의 1차 징표로 모든 비방중상을 중단하자’는 주장의 진정성조차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북측 공식 문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북한 반응은 상호 비방중상을 중지하자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북한도 이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정치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민화협 역시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기종씨가 과거에 어쨌든 주일대사를 향해서 돌을 던지거나 했던 전례를 볼 때, 미 대사 경호와 관련해서 좀더 세심하고 더 사려깊은 여러 조처를 취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못한 것은 민화협의 잘못이다.

다만 개인의 돌출행동인 이 사건을 가지고, 이른바 ‘보수-진보’ 이렇게 편갈라서 ‘민화협에 있는 진보들이 이 사건을 키웠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일부 종편이나 언론의 태도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민화협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가 사라지게 된다면 민화협의 존립가치 역시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것이다. 민화협 운동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서 한반도문제, 민족문제와 관련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지혜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 점에서 민화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설사 진보든 보수든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져서 여러 대립상태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민화협이 추구하고 있는 ‘화쟁과 관용’ 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정파적인 공격을 앞세우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태도다. 물론 민화협은 외부의 이러저러한 편견을 넘어서서 더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민화협 운동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더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 더욱 성찰하고 교훈을 얻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은 지금까지 민화협을 잘 이끌어왔고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민화협 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일세력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전개해왔다. 사의를 표명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적어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들이 무산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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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에 바다를 처음 본 스님

 
청전 스님 2015. 03. 10
조회수 110 추천수 0
 

 

*청전 스님이 라닥의 노스님들과 지난 1월 20여일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3편

 

라자스탄 국경을 넘으면서 구자라트 변경 관리 경찰들이 우르르…. "나마스테 구루지!" 하면서 반가히 맞음은 물론 노시님들께 다가와 극진한 인사를 올립니다. 허긴 이런 먼 곳에까지 승복을 입은 시님들 보기는 드물지요, 여행 잘 하라시며 기쁘게 맞습니다.

 

주 경계선을 넘으니 너무 차이가 나는 풍광이란, 라자스탄의 삭막한 변화 없는 모래 먼지땅에서 이젠 파아란 밀밭이며 활기찬 농촌 입니다. 인심도 곳간에서 나드라고 여유와 풍요가 확연 합니다. 간디 어르신이 태어난 주이며 현 모디 수상이 태어난 곳이라는데서 큰 자부심은 물론 전 주 지역이 채식과 불음주 구역입니다. 어떤 육식 요리는 없으며 맥주 조차도 판매하지 않습니다.

 

길 가면서 가끔 야생 사슴들을 봅니다. 이름 모를 짐승들을 보기도 하는데 참 좋아보입니다. 구자라트는 길이며 경제력이 인도 최고입니다. 현 모디 수상이 두번의 주지사를 행하며 미래의 인도를 이와 같이 만들겠다는 선언에 작년 수상 선거에서 근 90 대 10 의 큰 차이의 표를 얻어 수상이 됐고, 실제로 멋진 시행을 해나갑니다. 아마 이분이 한번 더 수상으로 연임한다면 인도 10년은 무지한 변화가 오리라 믿습니다. 우선 그넘의 공무원 청렴도를 내 걸었고, 쓰레기 없는 인도까지를 천명하기도.

 

길 좋아 잘 달려도 큰 나라 답게 바다는 아직도 먼가 봅니다. 길 가다가 이름 모를 조그만 동네 어설픈 여관에서 하루 묵습니다. 다음날 스님들께 오늘은 바닷가를 외치며 출발입니다. 드뎌 다람쌀라를 떠난뒤 6일만에 바닷가 해안에 닿았습니다. 80 인생길에 바다를 처음 본다는 시님들이라니…. 세 왕걀 노시님은 올 86세 입니다. 이 연세에 바다를 첨 보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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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관을 바닷가에 잡기로 했습니다. 물론 시내 안의 여관보다야 비싸겠지요. 뻬마시님이 알아본다고 하는데 한 얌전한 인도인이 우리에게 접근하며 "붓담 차라남 갸차미! 담마 차라남 갸차미! 샹감 차라남 갸차미!"를 외치며 극진하게 절을 올립니다. 잘 알다시피 "붓다와 법(진리)과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라는 빨리어 게송이지요.

 

얘기를 나누어보니 자기는 힌두교도이지만 부처님도 믿고 얼마전 고엥까 한달 명상쎈타에서 수행하고 왔다는군요. 거기서 조석으로 귀의 게송을 읊었다는 겁니다. 이 도시 포르반다르에 사신다기에 우리 사정과 호텔 얻는데 도움을 바란다니 기다려보라며 보기에 제법 큰 한 호텔로 들어갑니다. 뻬마는 네나 그 호텔에서 돌아와 너무 비싸 못들어가겠다고…. 마후 아저씨가 오더니 이런저런 요금 등등 조건을 말하는데, 알고보니 이 도시에서 최고의 호텔인 삼성급(Three Star) 여관이었습니다. 우리를 특별히 귀빈으로 파격적인 예우를 해 준다며 7명의 손님에게 아침 식사 제공하고, 세금 포함 하룻밤에 8000루삐(우리 돈 약 15 만원)로 해준다니!  야호. 우리 촌넘들에겐 땡 잡은 조건이지요. 역시 별 단 여관답게 크고 깨끗하고 참 아늑한 좋은 방에서 이틀은 쉬어갈 잠자리를 얻은 것입니다. 세방을 얻었고 뻬마에게 따로 엑스트라 침대를 제공해 줍니다. 실 아래 지방으로 내려가니 의외의 더위가 다가와 에어컨을 작동시키는데 방마다에 깔끔한 자동 장치가 잘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틈만 나면 바닷가에 내려가 파도 치는 모습이며 모래사장을 걷었습니다. 식사도 어디 못지 않게 맛나는 채식을 제공해 주네요. 근무하는 식당 직원들이 너나 할것 없이 기념 사진 찍기에 모두가 흐믓해 했답니다. 자기 호텔에 이런 좋은 구루지들이 첨이라나요.이튿날 새벽에 바닷가를 거닐고 호텔 뷔페식 아침을 먹는데, 우리 촌탉 노시님들은 처음 이런 고급 호텔에 오셨기에 어떤 어떻게 드셔야 될지를 몰라하셔 경험 삼아 음식부터 한가지씩 설명해 드리며 천천히 챙겨 드시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드디어 오늘 일정으로 첫 방문지는 간디 어르신이 태어난 생가입니다. 태어나신 방이며 기념관을 둘러보는 시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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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있는 실물 크기의 간디 할배 동상입니다.

 

인도 극 서부 파키스탄과 맞닿은 드와르카의 나게스와르 힌두 쉬바사원에 갔습니다. 사뭇 경비가 심하며 우리도 한번 차량과 소지품까지 다 점검 받았네요. 신전 돌로 지은 건데 과격분자들로 부터 보호명목으로 일체 카메라나 전화기 까지도 못가져가게 하며 출입에 까다로운 검색입니다. 아래 사진은 다른데서 담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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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바신에게 봉헌된 사대 사원중의 하나랍니다. 움머나 이걸 하룻밤에 다 조성했다니!  이걸 누가 믿어?

참고로 인도 순례자들이 일생 한번은 가봐야 될 네개의 사대 쉬바 사원이란: 동쪽의 바로 이곳과 남쪽 라메스와람의 사원, 서쪽의 뿌리 사원과 북쪽의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바드리나쓰 사원입니다.아니! 크라문 그런 도 모리고 난 그 네개를 다 둘러봐 뿌렀네그랴. 헌데 우리 쉬바신님이 나에게 팍 영검 잠 주시기 않구로잉.  ㅋ ㅋ ㅋ

사원 마당에서는 엄청난 참배객들이 춤을 추며 신나 합디다. 늘 종교가 뭔지?  극단의 신앙이 뭔지?

 

이곳을 왕복하면서 본 호수의 철새들이며, 산처럼 샇아둔 염전의 소금더미는 대단한 장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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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진기가 영험없는 제품이라 줌이 적어 멋진 철새 조류 도래지를 잘 못담습니다. 아프리카에서난만 본다는 홍학 떼들은 대단한 장관이기도.

 
내일은 또 일정 따라 길을 떠나야 됩니다.  <3편 끝>

 

관련글

청전 스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광주 대건신학대에 다니다 송광사 방장 구산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88년 인도로 떠나 히말라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매년 여름 히말라야 최고 오지인 라다크를 찾아 고립된 티베트 스님들과 오지 주민들에게 약과 생필품을 보시하고 있다. 어느 산악인보다 히말라야를 많이 누빈 히말라야 도인.
이메일 : cheongjeon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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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일동안 바닷속에 있는 우리 다윤이 찾게 좀 도와주세요”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난치병 앓으며 혹한에 청와대 1인 시위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씨가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씨가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329일 동안 바닷속에 있는 우리 다윤이를 찾아주세요."

한파주의보가 내리고 칼바람이 몰아친 10일 오전,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45) 씨가 청와대 앞 분수대 삼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섰다

신경섬유종 앓고 있는 박은미 씨
"우리 다윤이 찾게 좀 도와주세요"

박 씨는 2월 말부터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박 씨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 조차도 힘겨워보였다. 박 씨는 뇌종양의 일종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희귀병이라고 한다. 뇌에 자란 종양이 신경을 눌러 청력도 약해졌다. 박 씨는 "치료보다 딸을 찾는 게 먼저"라며 "딸 좀 찾게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힘겨워 하는 아내가 걱정된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51) 씨가 피켓을 넘겨 받았다. 박 씨는 바닥에 잠시 앉았다. 고개를 숙인 박씨는 조용히 흐느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어렵게 명함을 건네고 말을 청했다.

"우리 다윤이 얼굴 있는 저 피켓 들고 서 있는 것 조차 미안해요. 다윤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흑흑흑. 딸 좀 찾게 도와주세요."

다윤 양은 용돈을 달라거나 무엇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 착한 딸이었다. 밝교 애교도 많던 귀여운 둘째딸이었다. 그런 딸이 깊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배 안에 갇혀 있다. 다윤이의 가방, 다윤이 아빠가 사준 파란색 푸마 운동화, 다윤이가 언니 서윤씨에게 빌려간 검은색 모자는 바닷속에서 나왔지만, 다윤이는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무슨 말로 그 심정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다윤이 생각하면 숨 쉬는 것도 미안하고 먹는 것도 미안하고, 다윤이한테 미안해서 살 수가 없어요. 매일 잠들면서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 잠을 안 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요. 저희는 어떤 방법으로 실종자를 찾아낼 수 있는지 몰라요. 50미터 깊은 바닷속에 있으니까. 재수색을 하든 인양을 하든 제 딸을 꺼내달라는 거예요. 9명의 실종자들을 다 찾아달라는 거예요. 살 수가 없어요. 살 수가...흑흑흑. 좀 도와주세요."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가 힘들어하자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가 부축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가 힘들어하자 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가 부축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에 와서 그랬어요.
마지막 실종자 한 명까지 다 찾아주겠다고
대통령으로서 한 그 약속,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박 씨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박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에게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와서 그랬거든요. 마지막 실종자 한 명 까지 다 찾아주겠다고. 나라의 엄마 잖아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 약속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국민이잖아요. 국민 덕분에 대통령이 있는 거 아녜요? 국민을 우습게 아는 대통령이 뭐가 필요해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단 한 가지, 내 딸을 무조건 찾아야 한다는 것, 재수색이든 인양이든 그건 정부가 방법을 갖고 나와야죠. 우리는 국민이니까, 정부가 책임지고 찾아줘야죠."

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는 직장도 잃었다.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진도에 오래 있었잖아요. 너무 오랫동안 회사에 못 나가서 결국 다른 사람을 쓰고 애 아빠는 회사에서 잘렸어요. 애를 찾으려면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해야 하지만 지금은 생업이 중요한 게 아니고 딸을 찾는 게 중요하니까..."

박은미 씨는 다윤 양이 수학 여행을 가기 전부터 몸이 아팠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제가 많이 아파서 다윤이를 잘 챙겨주지 못했어요. 다윤이 엄마인 게 너무 미안해요."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실종자 수습을 정부에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오늘은 다윤이가 나오겠지
내일은 나오겠지 정말 피 말리면서 기다렸는데...
제 딸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세요"

박 씨는 자신에게 이런 사고가 닥칠 거라고 상상도 못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딸을 못 찾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은 다윤이가 나오겠지, 내일은 다윤이가 나오겠지 기다렸어요. 정말 피 말리면서 기다렸는데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 조차 버거운 몸 상태인 박 씨는 치료 보다는 딸을 찾는 게 먼저라고 했다. "딸을 찾을 수 있도록, 9명의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날 이석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박은미 씨를 찾았다. 이 위원장은 "세월호 인양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손을 잡고 흐느끼기만 하던 박 씨는 딸을 찾아 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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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어떻게 해결됐나요"

 

로마 교황청 찾은 주교단 만나자마자 첫 질문으로 '세월호' 언급

15.03.10 22:31l최종 업데이트 15.03.10 22:3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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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위로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8월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영접 나온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세월호 유가족'이라는 통역 신부의 소개를 받은 교황은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위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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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한 때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 교황청을 찾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 재차 세월호 문제를 물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교황청 클레멘스 8세홀에서 사도좌(교황청) 정기방문 중인 한국 주교단을 만났다고 10일 천주교 주교회의가 밝혔다. 

이날 만남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좌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교회의 측에 따르면, 한국어를 거의 잊어버려 통역이 필요하게 됐다는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한 교황은 모임에서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교황님께서 한국을 다녀가신 후에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잘 해결됐는지에 대해 주교님들에게 물으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면담에서, 지난해 방한 이후 한국에서 천주교 입교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느님께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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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방한 때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 교황청을 찾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 재차 세월호 문제를 물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사진은 한국 주교단 1그룹이 3월 9일(월)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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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교황은 지난해 8월 방한 당시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4박 5일간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 유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등 세월호 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관련기사: '노란 리본' 단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들 성모님께 의탁한다").

그는 지난해 방한 첫 날, 공항에 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손을 잡으며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가 하면, 38일간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56, 단원고 2학년 고 이승현군 아버지)씨에게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한편 이날 면담에는 김희중 대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 등 한국 주교 14명이 참석했다. 이번에 방문한 주교 25명 중 나머지 11명은 오는 12일 교황을 면담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노란 리본 단 교황님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교황님, 실종자 10명이 가족과 만날 수 있게 기도를"
교황, 세월호 유족 직접 세례... "간절함에 마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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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일축구대회 성사 촉구 기자회견

남북 노동자가 함께 ‘통일의 슛’을 날리자!대전지역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남북 통일축구대회 성사 촉구 기자회견
대전=오민성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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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0  17: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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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주최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김용복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이 노동계를 대표하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냉랭한 남북관계를 대변하듯 찬바람이 부는 10일 오전 11시, 대전시청 북문에서는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주최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성사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개최되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성사를 위해 5.24조치를 해제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였다.

   
▲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이대식 본부장이 취지발언을 하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이대식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본부장은 취지발언을 통해 “올해는 광복 7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지만, 일제로부터 해방의 기쁨도 잠시 또 다시 민족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분단의 고통을 겪어왔다”면서 “남북간 대화가 단절되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남북 노동자들이 통일축구대회를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김용복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은 “한국노총 대전본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민주노총 대전본부의 의미 있는 활동에 적극 공감하며, 이번 남북 노동자축구대회가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폭넓은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대전지역 예선전에 참가하는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조합원이 ‘5.24조치 해제’라고 씌여 있는 장애물을 축구공으로 넘어뜨리는 vj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이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5.24조치 해제 없이는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성사가 불투명하다”면서 “5.24조치는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조차 선별적 지원을 했으며,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전면 차단시켰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 정부가 통일대박을 얘기하면서도 북녘 동포들을 만나는 것조차 가로막는다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는 실익도 없는 5.24조치 해제하고, 전면적인 민간교류 보장을 촉구”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남북 노동자통일축구대회 결승전에 진출하기 위한 지역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전지역은 15일(일) 오전 9시, 오정동 동산초등학교에서 예선전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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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리퍼트 미 대사 공격에 양분된 한국 반응 보도

 
 
도 넘은 사죄는 미국 숭상과 현대판 사대주의?
 
뉴스프로 | 2015-03-10 13:18: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뉴욕타임스, 리퍼트 미 대사 공격에 양분된 한국 반응 보도
-도 넘은 사죄는 미국 숭상과 현대판 사대주의?
-정치인들, 종북몰이로 극단적 정치화
-미 전 외교관, 개인적 폭력행위에 국보법 적용은 지나친 의미 부여하는 것

뉴욕타임스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을 두고 한국인들의 반응이 양분되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기사는 지난주 조찬 강연 중 리퍼트 미 대사가 극단적 민족주의자 김기종씨의 칼에 찔려 얼굴과 팔에 상처를 입은 소식에 시민들이 분노했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방문자들이 리퍼트 대사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쾌유의 메시지로 메웠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어서, 대통령의 제부가 석고대죄를 하고, 군복을 입은 퇴역군인들이 시위를 벌이며 일부 종교인들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등의 도가 지나친 모습에 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이 도에 지나친 사죄는 미국을 “숭상하는” 태도이고 과거 중국에 그랬듯 미국에 대한 현대판 사대주의라고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고 기사는 전했다. 한 시민은 “나는 미국 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미친 사람을 증오”한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지나친 사과는 “내 속을 메스껍게 만든다. 그들은 도가 지나치며, 이것은 사실상 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와 한국인들이 느끼는 동맹의식을 손상시킬 뿐이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태생 영주권자인 조승희씨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로 32명을 죽였던 2007년에도 이와 유사하게 지나친 태도를 한국 사회가 보인 바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동정심을 느끼는 것을 넘어 심지어 정치인들이 개인의 폭력 행위를 두고 종북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암시하는 것은 “‘종북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운동과 이를 연관시키고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 단발적인 사건을 극도로 정치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존 딜러리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스는 서울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前 미국 외교관 데이빗 스트라우브씨의 말을 빌려 김 씨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것은 “한 명의 비정상적인 사람의 폭력 행위를 대단한 것인 양 고양시켜, 그럴 가치도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현명치 못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ENg7Wo

South Korea Split Over How to React to Attack on U.S. Ambassador Mark Lippert
마크 리퍼트 미 대사 공격에 양분된 한국의 반응

By CHOE SANG-HUN
MARCH 9, 2015

South Korean veterans rallied to denounce the attack on Mark W. Lippert, the American envoy, in Seoul. Many from the country’s older generation regard the United States as a savior. CreditLee Jin-Man/Associated Press
서울에서 한국 퇴역군인들이 마크 리퍼트 미 대사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다. 한국의 노년층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구세주로 여긴다.

SEOUL, South Korea — The knife attack last week on the American ambassador to South Korea, Mark W. Lippert, set off an outpouring of good wishes here for both the envoy and Seoul’s alliance with Washington.

한국, 서울 – 주한 미 대사 마크 더블유 리퍼트에 대한 과도 피습 사건으로 인해 대사의 쾌유와 한미동맹의 강건함을 바라는 기원이 쏟아졌다.

But the response, led largely by conservative South Koreans, has now provoked a backlash, with accusations that the govern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and its supporters are “worshiping” America and politicizing the case to discredit domestic enemies.

대부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 반응은 이제 박근혜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미국을 “숭상하고” 국내의 반대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 사건을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반발을 사고 있다.

Kim Ki-jong, a professed nationalist with a history of erratic outbursts of violence, slashed Mr. Lippert with a kitchen knife during a breakfast meeting on Thursday. He left a four-inch gash on Mr. Lippert’s left cheek that required 80 stitches and damaged tendons and nerves in his left hand.

돌발적인 폭력적 행동을 과거에 보여온 공공연한 민족주의자인 김기종씨는 지난 목요일 조찬 회의에서 리퍼트 대사를 과도로 찔렀다. 그는 리퍼트 대사의 왼쪽 빰(역주: 오른쪽 빰)에 80바늘의 봉합을 요하는 4인치 길이의 상처를 냈고 왼쪽 손의 힘줄과 신경을 훼손했다.

When the South Korean news media carried images of Mr. Lippert splattered with blood, the public initially reacted with shock. Well-wishers flooded Mr. Lippert’s blog and Twitter account, and they posted messages on signs that conservative activists put up near the United States Embassy in Seoul. The tone of the messages, however, quickly turned into one of guilt and apology.

한국 언론이 유혈이 낭자한 리퍼트 대사의 사진을 실었을 때 대중의 처음 반응은 충격이었다. 쾌유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리퍼트씨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메우고 서울 미 대사관 근처에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세워놓은 사인들에 사람들이 메시지들올 남겼다. 그러나 메시지들의 어투는 곧 죄책감과 사과로 바뀌었다.

In South Korea, mainstream conservative ideology teaches people to regard the United States as a savior that sacrificed the lives of tens of thousands of American soldiers while fighting for the South during the 1950-53 Korean War. But many Koreans, especially those who are older, saw Mr. Kim not only as a senseless criminal but also as an ingrate — the most despised character in Korea’s deeply Confucian culture.

한국에서 주류 보수 이데올로기는 대중에게 미국을 1950-53년 한국 전쟁 당시 남한을 위해 싸우면서 수만 명의 미국 병사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구세주로 여기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특히 나이를 먹은 많은 한국인들은 김 씨를 무분별한 범죄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유교문화에서 가장 경멸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배은망덕한 인물로 보았다.

“So Sorry,” read a banner in front of a lone activist on the street near the hospital where Mr. Lippert was recovering. He said he was re-enacting an ancient Korean custom in which a sinner seeking forgiveness would sit on a straw mat on the street and fast. The man, Shin Dong-wook, is the president’s brother-in-law.

“너무 죄송하다”는 문구가 리퍼트씨가 회복 중인 병원 근처 길바닥에서 앉아 있는 1인 활동가 앞에 놓인 사인에 적혀 있다. 그는 용서를 비는 죄인이 길바닥에 멍석을 깔고 앉아 단식을 하곤 했던 오랜 한국 관습을 재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씨이다.

On Monday, a crowd of older South Koreans in military uniforms, some with canes, rallied near the American Embassy, urging fellow citizens “not to forget what the Americans did for us during the war” and to “eradicate jongbuk,” or sympathizers with North Korea, who they said were behind Mr. Kim’s attack.

월요일, 군복을 입은 노년의 한국인들과 깃발을 든 사람들이 “한국 전쟁 기간 미국인들이 우리를 위해 한 것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종북 척결”, 다시 말하면 그들이 김 씨의 공격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 동조자들을 척결할 것을 시민들에게 촉구하며 미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Such sentiments reflected fears that the episode might harm the alliance with Washington, making South Korea more vulnerable to North Korean threats. A similar reaction engulfed the South in 2007, when Seung-Hui Cho, a South Korea-born green card holder, killed 32 people in a shooting rampage at Virginia Tech.

그와 같은 태도는, 이 사건이 미국과의 동맹을 손상시켜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더욱 취약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반응이 한국 태생 영주권자인 조승희씨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광란의 총기난사로 32명을 죽였던 2007년도에 한국 사회를 뒤덮은 바 있었다.

But this time, it did not take long for a counter reaction to kick in.

하지만 이번에는 반발이 일기까지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This is too much! What they did was almost like god worshiping,” one blogger said. Another compared the wave of “I love America” feelings to shrines that ancient Koreans built to worship China for sending troops to help fight Japanese invaders.

한 블로거는 “너무 지나치다! 그들이 한 짓은 거의 신에 대한 숭배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블로거는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는 감정의 파동을 일본 침략자들을 물리치도록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 중국을 고대 한국인들이 숭배하기 위해 지은 사당에 비교했다.

John Delury, an American professor at Yonsei University in Seoul, said, “South Koreans felt shock and deep sympathy on a personal level for the U.S. ambassador, even a sense of guilt that he suffered this brutal attack as a guest in their country.”

서울 연세대학교 존 딜러리 미 교수는, “한국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미 대사에게 개인적으로 깊은 동정심을 느꼈으며, 심지어 자신들 나라의 손님이 이러한 잔인한 공격을 당했다는 데 대해 죄책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But now government officials and political parties are hyper-politicizing what was really an isolated incident,” he said, “linking it to a campaign against ‘pro-North Korea followers’ and as a way to drum up support for the U.S.-South Korean alliance.”

“그러나 지금 정부 관료들과 정당들은 이 단발적인 사건을 극도로 정치화시키고 있다”며 “그렇게 해서 ‘종북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운동과 이를 연관시키고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Indeed, Ms. Park and conservative leaders lost no time in insinuating a possible link between Mr. Kim and “jongbuk.” They quickly defined Mr. Kim’s deed as a “terrorist attack on the South Korean-U.S. alliance” — rather than an isolated act by a loner, as initial investigations appeared to suggest — and called for a thorough investigation into “behind-the-scene forces.”

실제로 박 대통령과 보수 지도자들은 즉각 김 씨와 “종북” 사이의 연계성을 암시했다. 그들은 초동 수사가 제시했듯이 김 씨의 행동을 개인의 단발적인 행위로 본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의 행위라고 재빠르게 규정하고, “배후 조정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A parade of South Korean leaders, including Ms. Park, visited Mr. Lippert in the hospital. But many South Koreans with deep historical grievances toward the United States, especially over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to the pro-Soviet North and the pro-American South at the end of World War II, began accusing Ms. Park’s government and its conservative supporters of toady “sadaejuyi,” or big-country worship.

박 대통령을 포함, 한 떼의 한국 지도자들이 입원 중인 리퍼트씨를 방문했다. 그러나 특히 2차 세계대전 말, 친소 성향의 북한과 친미 성향의 남한으로 한반도가 분단된 것을 놓고 미국에 대해 깊은 역사적 불만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박근혜 정권과 그의 보수 지지자들을 현대판 “사대주의” 또는 강대국 숭배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I hate the crazy man who stabbed the ambassador, and as a Korean, I feel like apologizing deeply to the Americans,” said Kim Mi-hyun, 36, who watched a group of Christian church members perform a traditional fan dance and kneel in contrition across a boulevard from the American Embassy on Saturday. “But this scene makes me sick at the stomach. They are way overdoing it, and it actually will damage the image of the Americans and the alliance among Koreans.”

“나는 미국 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미친 사람을 증오한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인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다“고 토요일 미국 대사관 건너편 대로에서 전통 부채춤을 추고 무릎 꿇고 회개하는 기독교 교회 신도들을 지켜보았던 36세의 김미현씨는 말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내 속을 메스껍게 만든다. 그들은 도가 지나치며, 이것은 사실상 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와 한국인들이 느끼는 동맹의식을 손상시킬 뿐이다.”

The police have charged Mr. Kim, the attacker, with attempted murder. But they are also said to be investigating whether they could charge him with violating the country’s National Security Law. On Monday, the main opposition party, 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 said the government was using the law and Mr. Kim’s case to “hunt ‘jongbuk.’ ”

경찰은 공격자 김 씨를 살인미수로 기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또한 김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월요일,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국가보안법과 김 씨의 사건을 이용해서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David Straub, a former United States diplomat who served in the embassy in Seoul, said that invok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to deal with Mr. Kim seemed to be “unwisely elevating the violent behavior of one deranged person and ascribing to it a significance it does not deserve.”

서울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前 미국 외교관 데이빗 스트라우브씨는 김 씨 사건을 처리하는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것은 “현명치 못하게 한 명의 비정상적인 사람의 폭력 행위를 대단한 것인 양 고양시켜, 그럴 가치도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 듯 하다고 말했다.

In comments posted on the website of the Walter H. Shorenstein Asia-Pacific Research Center, Mr. Straub added, “The U.S. government has criticized that law for decades for the McCarthyite way South Korean governments have sometimes implemented it to suppress alleged ‘pro-North Korean’ thinking.”

스탠포드 대학 월터 H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소 웹사이트에 게시된 논평에서 스트라우브씨는 “한국 정부가 매카시적인 방법으로 소위 ‘친북적’ 사상을 억압하기 위해 때로 이용한 점에 대해 이 국가보안법을 미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비판해왔다”고 덧붙였다.

 


 

[논평] 현 정권의 공안몰이, 국익에 도움 안돼
– 경호 책임자 문책이 우선, 국익 지킬 방안 마련해야

Wycliff Luke 기자

YTN 캡쳐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피습에 대한 한미 양국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양상이다.

미국은 담담하게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미 국무부는 “이 같은 무분별한 폭력 행위(senseless act of violence)에 한미 양국의 강력한 동맹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 이번 사건을 “한미 동맹 찌른 종북테러” 운운하며 공안몰이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배후세력” 운운 하며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 한편 검찰은 30여 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 대목에서 과연 이번 사건이 향후 한미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미국, 민감한 국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

지난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미국은 박정희가 한국의 최고권력자로 부상하자 우려를 금치 못했다. 미국은 특히 그의 남로당 전력에 경악했다. 바로 이때 이승만 집권 시절 군사 고문관을 지낸 하우스먼이 나서서 미국 정부를 안심시켰다. 당시 케네디는 숙고 끝에 박정희의 취약점을 십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케네디 행정부는 박정희에게 한-일 국교정상화 압력을 가했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1976년 8월 판문점에서 벌어진 도끼 살인사건은 한반도에 일대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서 보니파스 대위, 마크 배럿 중위 등 두 명이 살해됐고, 이에 미국은 한국 해역에 항공모함 미드웨이 호를 급파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민감성을 고려해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반도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가 불거졌을 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쳐 나갔다.

이에 비한다면 배후세력 운운하며 공안몰이를 벌이는 한국 정부의 대응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정윤회 국정농단, 불통으로 일관한 기자회견, 인사 기용 실패 등 갖가지 악재로 허덕이던 현 정권에게 이번 사건은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그러나 과도한 남용은 위험하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한미 외교의 민감한 국면에서 유용하게 꺼내 들 카드로 십분 활용할 것이다. 현 정권은 대통령의 첫 방미 중 불거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원정 성추행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현 정권이 리퍼트 대사 피습을 빌미로 공안정국을 조성해봤자 그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엔 없다.

현 상황에서 최선의 조치는 경호 관계자에 대한 엄중 문책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김기종이라는 위험 인물이 주한 미 대사에게 접근해 위해를 가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담당 책임자의 엄중 문책은 어떤 조치에 우선한다. 사건은 이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 역량을 총 동원해 대미 관계에서 상대의 공세를 차단할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래야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부질없는 공안몰이에 몰두하다 정작 중요한 국익을 놓쳐서는 안된다. 현 정권은 냉정하게 우선순위를 정해 사태를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 한미동맹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 강화시키는 첩경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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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승산은 그들의 전법에 있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5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3/09 [12:25]  최종편집: ⓒ 자주일보
 
 

 

▲ <사진 1> 2015년 3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리수용 조선외무상은 조선이 억제력과 선제타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억제력은 미국의 핵공격기도를 사전에 억제할 전략핵무력을 뜻하고, 그가 말한 선제타격력은 전술핵탄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할 전술핵무력을 뜻한다.     © 자주일보

 

 

어느 쪽의 전법이 더 우세한가?

 

리수용 조선외무상은 지난 3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이제는 우리도 미국을 억제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선제타격할 수 있는 힘도 갖췄다”고 말했다. 이 직설적인 발언에서 조선이 생각하는 통일대전의 승산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승산이란 억제력과 선제타격력으로 미국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수용 외무상이 말한 억제력은 미국의 핵공격기도를 억제할 전략핵무력을 뜻하고, 그가 말한 선제타격력은 전술핵탄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戰區)의 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할 전술핵무력을 뜻한다. <사진 1>


그런데 전략핵무력과 전술핵무력을 가진 조선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을 믿을 사람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핵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공멸전쟁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미국과 한국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적 통념은 핵교전 쌍방이 엄청난 참화를 입고 공멸할 것이라는 상상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그런 상상의 출발점은 1954년 3월 1일 미국이 실시한 15메가톤급 수소탄폭발실험과 1961년 10월 30일 소련이 실시한 50메가톤급 수소탄폭발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0메가톤급 수소탄은 일본 히로시마를 초토화한 핵폭탄보다 약 1,500배나 더 강한 핵폭발을 일으켰으니, 지구종말의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수소탄은 너무 크고 무겁고, 폭발력이 너무 강해서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핵무기경쟁에 몰두한 소련과 미국이 과시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핵전쟁론과 지구종말론을 뒤섞어놓은 상상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상이 차츰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졌다.


핵전쟁공멸론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개발하기 위한 군사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전술핵탄은 이미 냉전시기에 개발되었지만, 원형공산오차(CEP)가 10m 수준으로 크게 축소된 위성유도식 정밀유도장치가 등장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자기들의 위성항법체계를 각각 완성한 2000년대의 일이다.


전술핵탄을 위성유도식 정밀유도장치와 결합시킨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핵전쟁공멸론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버릴 수 있는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21세기 핵전쟁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20세기식 대량살육전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핵전쟁이 대량살육전으로 되지 않을 것으로 예견하는 까닭은, 그것이 오랜 기간 격렬한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며 대량살육을 불러오는 재래식 전면전과 달리 전쟁의 운명을 한순간에 결정하는 정밀유도전술핵탄 선제타격으로 매우 신속히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개발한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 21세기 핵전쟁의 비밀이 있으며, 이 비밀을 알아야 공상적인 핵전쟁공멸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2013년 5월 18일부터 네 차례 신형 전술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하여 2014년 8월 14일 마침내 초정밀타격도를 지닌 신형 전술미사일개발을 완성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2014년 8월 25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한반도 군사정세 바꿔놓은 북의 전술로케트탄 18발’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조선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도 물론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다. (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7416)


이처럼 조선과 미국이 각각 서로를 공격할 정밀유도전술핵탄을 가졌으므로, 그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경우 승패여부는 정밀유도전술핵탄을 사용하는 전법에 의해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한 무력이 준비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무력을 사용하는 전법이다. 사격법을 모르는 사람이 들고 있는 총이 막대기만도 못한 것처럼, 위력적인 전법을 갖지 못한 군대에게는 방대한 무력이 한낱 무용지물로 되는 법이다. 

 

▲ <사진 2>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대량화력집중타격에 동원되는 전형적인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이다. 위의 사진은 미해군이 북침전쟁연습에 동원하는 40,000t급 상륙강슴함 반홈리처드호의 모습을 촬영한 것인데, 항공모함만큼 커 보인다. 미국의 전법은 그런 식의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의존한다. 따라서 미국의 전법으로는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이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미국군의 허장성세 뒤에 감춰진 치명적 결함이다.     © 자주일보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의존하는 것은 미국의 약점


조선과 미국은 자기의 군력을 현대화하고 자기의 전법을 개발, 완성하는 데서도 각자 서로 다른 경로와 방식을 택했다.   


미국은 거대기동타격수단들에 전자화, 정보화, 정밀화된 성능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군력을 현대화하였는데, 배수량 100,000t급 초대형 항공모함, 적재량 120t급 전략폭격기, 배수량 40,000t급 초대형 상륙강습함, 수중배수량 18,000t급 전략잠수함이 그런 식으로 현대화된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이다. <사진 2>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그런 식으로 현대화된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갖춘 무장집단들이다.


거대기동타격수단으로 무장한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은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중생대에 번성하였으나 자연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진화과정에서 낙오하여 결국 멸종된 공룡처럼, 거대기동타격수단으로 무장한 미국군도 군사정세 및 전쟁방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정세 및 전쟁방식의 변화라는 것은, 군사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은밀기동력, 불시기습력, 선제타격력이 도입된 무장장비의 전반적 변화를 뜻하는데, 미국의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상륙강습함 같은 거대기동타격수단들은 전자화, 정보화, 정밀화된 성능을 도입하여 현대화되었다고 해도, 선제기습타격이 아니라 대량화력집중타격에 동원되는 것이다.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상륙강습함을 동원하면 적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은 불가능하게 된다. 미국의 주요무장장비들 가운데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에 적합한 것은 잠수함밖에 없는데, 미해군 잠수함은 전시에 독자적으로 작전하지 못하고 반드시 항모타격단에 배속되어 작전하게 되므로 잠수함도 불시기습과 선제타격은 하지 못한다.


대량화력집중타격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군이 은밀기동, 불시기습, 선제타격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2003년에 일어난 이라크전쟁에서 입증된 바 있다. 정찰조 침투, 증원군 투입, 공습, 상륙강습, 수도점령이 순차적으로 진행된 이라크전쟁은 미국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20세기형 낡은 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미국군에 맞서는 러시아군과 중국인민해방군도 거대기동타격수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군과 중국인민해방군도 항모타격단, 전략폭격비행단, 상륙강습단을 창설 또는 증강하기 위해 거대기동타격수단을 마련하는데 힘쓰고 있는데, 그런 노력은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가지고 미국의 거대기동타격수단에 맞서려는 대응전법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군이 프랑스에서 강습상륙함을 수입하려는 것이나 중국인민해방군이 항공모함을 건조한 것은 그러한 대응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기동타격수단을 가지고 미국의 거대기동타격수단에 맞서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대응전략은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식 낡은 전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독자적인 전법을 갖지 못하면, 미국과의 군사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하는 나라는 반드시 독자적인 전법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들 가운데서 미국과 맞설 독자적인 전법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에서는 자기의 독자적인 전법을 ‘주체전법’이라 부른다.


조선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주체전법’을 창시하였고, 6.25전쟁 중에 더욱 발전시켰다고 말하는데, 정전 이후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며 군력강화에 힘써온 지난 60여 년 동안 ‘주체전법’은 더욱 심화, 풍부화되어 오늘에는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3차원 기습공격을 핵전법에 도입한 것은 조선의 강점


조선에서 말하는 ‘주체전법’의 기본내용은 빨찌산전법과 정규군전법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선에서 말하는 빨찌산전법이란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뜻하고, 정규군전법이란 대량화력집중타격을 뜻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주체전법’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핵전법이다. 조선의 언론보도나 공개자료에는 핵전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핵무력을 가진 조선이 그것을 사용하는 전법을 개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 글에서는 핵전법이라는 말을 쓴다.


기존 핵강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은 대량화력집중타격을 각자 자기들의 핵전법에 도입하였지만, 신흥 핵강국인 조선은 대량화력집중타격은 물론이고 무징후선제기습타격까지 자기의 핵전법에 도입하였다. 조선은 무징후선제기습타격과 대량화력집중타격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21세기형 핵전법을 개발한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무징후기습은 미국의 정찰망에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매복하였다가 불시에 적의 급소를 기습한다는 뜻인데,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무징후상태에서 은밀히 기동하여 매복하였다가 불시에 선제타격을 하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인민군의 무징후기습은 지하발사기지에 매복한 전략군, 남진갱도에 매복한 핵배낭특수부대, 적진인근수역에 매복한 잠수함대, 초저공-무전파상태로 매복비행을 하는 요격기편대가 동시다발로 자기의 전투력을 총폭발시키는 지하-수중-공중 3차원 기습공격인 것이다. 그런 3차원 기습공격을 핵전법에 도입하여 완성한 것이 조선의 핵전법이다. 이처럼 정밀유도핵타격, 남진갱도핵타격, 수중매복핵타격, 공중매복핵타격으로 구성되는 조선의 핵전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사진 3> 조선의 핵전법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정밀유도핵타격, 남진갱도핵타격, 수중매복핵타격, 공중매복핵타격으로 전개되는 기습전법이다. 그것은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유기적으로 배합한 전투조법이 전개되는 독창적인 전술핵전법이다. 위의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전승 60주년 경축 군사행진에 등장한 핵배낭부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전시에 남진갱도를 통해 남하한 그들이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의 지하에 핵배낭을 설치해놓고 원격조종장치로 기폭하는 순간, 그 모든 기지들은 사라질 것이다.     © 자주일보


첫째,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초정밀핵탄미사일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불시에 초토화할 정밀유도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둘째,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는 핵배낭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을 지하핵폭발로 파괴할 남진갱도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사진 3>


셋째, 조선인민군 잠수함대는 수중발사핵탄미사일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미국의 전략거점들을 초토화할 수중매복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넷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초저공무전파비행과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결합시켜 미국의 항모타격단과 상륙강습단을 격침시킬 공중매복핵타격전법을 완성하였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핵전법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조선의 언론에 공개된 조선인민군의 각종 군사활동을 분석, 고찰하여 <자주민보>에 여러 차례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논증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오늘 조선이 3차원 핵전법을 완성하였고, 그런 핵전법에 사용될 핵탄도 충분히 확보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과대평가가 아니다. 그 동안 조선의 언론보도들과 미국의 언론보도들 속에서 내가 찾아낸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심층정보들이 조선의 핵전법 개발과 핵탄 보유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조선의 핵전법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배합한 전투조법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안에 파괴하려는 전술핵전법이다. 전략핵전법은 따로 있다. 조선에서 말하는 전술핵전법의 ‘불벼락’을 맞고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미국이 전의를 상실하여 보복공격을 포기하고 항복한다면, 통일대전은 사실상 30분 만에 끝나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초단기속결전은 바로 그런 핵타격씨나리오에 바탕을 두고 성립된 새로운 전쟁개념이다.


  
미국의 보복공격기도 억제할 조선의 전략억제력


그런데 문제가 있다. 조선의 핵전법은 조선으로부터 선제타격을 입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는 조건에서만 전쟁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데,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조선을 선제타격하는 경우 조선이 미국에게 보복타격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는데, 조선의 핵전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상황을 정반대로 오판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날, 조선이 3차원 동시다발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만에 파괴하더라도,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타격을 하면, 통일대전은 미증유의 핵교전으로 전이되어 교전쌍방이 막심한 전쟁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핵전법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힘을 갖지 못하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려면 매우 강한 전략억제력을 가져야 한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날, 조선의 전술핵타격을 받고 아시아태평양전구의 군사기지를 잃은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핵타격을 할 경우, 조선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미국은 조선의 전략공격을 받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미국이 깨달으면, 미국은 조선의 전술핵타격을 받더라도 감히 조선에게 보복핵타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난 냉전시기에 양대 핵강국이었던 소련과 미국은 각기 상대를 향해 메가톤급 전략핵탄을 겨누고 있었는데, 그런 핵대치상태를 유지하는 양국 관계에서 ‘상호확증파괴’를 두려워하는 ‘공포의 균형’이 조성되는 바람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공포의 균형’이란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결심할 의지와 담력을 갖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전쟁을 결심하는 국가지도자의 강한 의지와 담력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냉전시기의 ‘공포의 균형’은 그런 의지와 담력이 없는 두 나라 국가지도자의 공포심, 의지박약증, 담력결핍증에 의존하는 심리적 억제력이었으므로 심리현상만큼이나 가변적이고 불안정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핵전법은 조선이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심리적으로 억제하려는 냉전식 핵전법이 아니라,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물리적으로 억제하는 전법이다.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강한 힘을 가졌을까?


이 문제에 대한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는, 조선이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추정은 미국을 ‘유일초강대국’이라고 믿어온 고정관념에서 흘러나온 의식의 분비물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그런 추정이 빗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략억제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머릿속에 떠올리는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조선이 보유한 네 가지 전략억제수단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조선의 전략억제력은 다음과 같이 다종다양한 전략억제수단들에 의해 세계 최강 수준에 도달하였다.  

 

▲ <사진 4> 미국의 군사위성을 위성요격미사일로 파괴하는 것은 조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력적인 전략억제력이다. 조선이 위성요격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여러 정보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조선은 그런 전략억제력으로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하고, 전쟁피해를 극소화한 초단기속결전을 전개하여 조국통일대전을 순식간에 끝내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극궤도에 진입한 위성요격미사일이 군사위성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 자주일보


첫째, 미국의 군사위성체계에 대한 조선의 미사일공격이다. 이것은 조선이 위성요격미사일(ASAT)을 기습적으로 발사하여 미국의 군사위성체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위성이 회전하는 궤도는 남극과 북극을 지나는 극궤도(polar orbit)다. 미국의 군사위성은 지구표면으로부터 약 800km 떨어진 극궤도 위에서 초속 7.5km로 회전하고 있으므로, 발사시각으로부터 3분 안에 1,350km를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조준발사하면 군사위성을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한 발 앞섰다. 2007년 1월 11일 중국이 자행발사대(TEL)에서 발사한 위성공격미사일이 지구표면으로부터 865km 떨어진 극궤도를 회전하던 자국의 고장난 기상관측위성을 요격, 파괴하였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미국은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2008년 2월 14일 미사일순향함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극궤도를 회전하던 자국의 고장난 정찰위성을 요격, 파괴하였다.


당시 중국과 미국이 각각 발사한 위성요격미사일은 사거리가 1,500km인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이었는데, 사정권이 1,000~2,750km에 해당하는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은 조선에 무수히 많다. 중요한 문제는, 조선이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초속 7.5km로 비행하는 조그만 군사위성을 명중시킬 정밀요격능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의 외기권 비행속도와 군사위성의 극궤도 회전속도는 서로 같으므로, 탄도미사일을 외기권에서 요격하는 기술을 가졌다면 군사위성을 극궤도에서 요격하는 기술도 가진 것이다. 조선이 2010년 10월 10일 군사행진에서 요격미사일을 탑재한 3축6륜 자행발사대와 위상배열레이더 탑재차량 등으로 구성된 ‘주체식 요격미싸일종합체’를 등장시킨 것은 초속 7.5km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맞추는 정밀요격능력을 가졌음을 과시한 것이다. 또한 조선이 2012년 12월 12일에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가 극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은, 지상관제소에서 요격미사일을 조종하여 극궤도에 진입시키는 첨단기술을 가졌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조선이 군사위성을 요격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군사위성체계는 정찰위성, 신호정보위성, 해양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미사일발사탐지위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체계가 파괴되면,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군사위성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의 전쟁수행력이 완전히 마비되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조선의 싸이버공격이다. <뉴시스> 2015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1998년 9월 조선이 500명의 전자전 전투원으로 편성된 싸이버전투부대를 창설하였는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 조선의 싸이버전투부대는 3,000명으로 증강되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4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전략싸이버사령부 창설을 지시하였고, 조선인민군은 그 지시에 따라 6,000명으로 증강된 전략싸이버사령부를 창설하였다고 한다. 전략싸이버사령부 산하에 직속부대병력 1,200명과 기술지원병력 1,800명이 배속되었고, 연관단위들에 3,000명의 병력이 배속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존스합킨스대학교의 알렉산드르 만수로프(Alexandre Mansourov) 교수는 2014년 12월 2일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조선의 싸이버전투원이 5,900명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12,000명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싸이버전투부대의 특징은 “창은 날카롭고 방패는 튼튼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18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James A. Lewis) 전략기술국장은 조선이 앞으로 5년 안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싸이버공격인 스턱스넷(Stuxnet)공격을 할 수 있다고 예견하면서, 스턱스넷공격에 대한 방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사전에 억제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미국의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이 조선의 싸이버공격에 완전히 노출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사진 5> 미국의 보복공격기도를 억제할 조선의 전략억제수단은 여러 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전자기파무기(EMP weapon)다. 조선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 중앙부 상공 480km에서 전략핵탄 한 발을 터뜨리면, 거기서 방출된 강력한 전자기파가 미국 본토 전역을 뒤덮으며 국가전산망과 사회기반시설을 전면적으로 마비시키게 된다. 이것은 미국에게 회복하기 힘든 대재앙으로 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공중핵폭발로 방출된 거대한 전자기파가 대도시를 뒤덮는 순간포착장면을 그린 상상도다. 전자기파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므로 실제상황에서는 위와 같은 장면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자주일보


셋째,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자기파(EMP)공격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와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특별대책국장인 피터 빈슨트 프라이(Peter Vencent Pry)는 2013년 5월 21일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SJ)>에 실은 ‘북조선은 미국에 어떻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적국의 전자기파공격이 미국의 전력공급체계와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경우, 미국 전체 인구의 생존과 현대문명을 유지시켜주는 통신망, 교통망, 금융거래망, 식량 및 식수공급망이 모두 끊어져 대재앙에 빠지게 된다고 크게 우려한 바 있다. 2014년 4월 초 미국 국토안보부가 작성하여 미국 국방부에 제공한 보고서는 미국이 조선의 전자기파공격으로 파괴될 위험을 인정하였다. <사진 5> 


넷째,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략핵공격이다. 조선의 전략억제력인 군사위성체계공격, 싸이버공격, 전자기파공격은 직접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공격은 아니지만, 미국에게 치명상을 입힐 공격이다. 그런데 미국이 그런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서도 항복하지 않을 경우, 조선은 인명을 살상하는 전략핵공격을 마지막으로 선택할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전략핵공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각지의 지하발사기지들에서 각개조준다탄두전략핵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향해 쏘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미국 본토 해안에서 가까운 수중매복구역에서 대기하던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각개조준다탄두전략핵탄을 탑재한 수중발사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향해 쏘는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3월 29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심야에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진행된 작전회의에서 “아군 전략로케트들이 임의의 시각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 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 남조선주둔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게 사격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였고, “전략로케트들의 기술준비공정계획서에 최종 수표”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지시에 따라 2013년 4월 초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아시아태평양전구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을 타격할 사거리 4,000km의 화성-10호를 동해안으로 이동하고 사격대기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하발사기지와 수중매복구역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미국의 정찰위성은 화성-10호 한 발이 특별수송열차에 실려 동해안으로 이동한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뿐이다.


지하발사기지와 수중매복구역에서 각종 핵탄미사일들이 사격대기태세를 취하여 초긴장된 시각이 한 초 한 초 흐르던 2013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 비준된 상태에 있음을 정식으로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하였다. 


그런 통고가 나간 이후 지금까지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암시적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해왔다. 올해 조선인민군은 지하-수중-공중 3차원에서 은밀기동, 매복대기, 불시기습, 정밀타격을 배합한 전투조법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아시아태평양전구의 미국군기지들을 30분 안에 파괴하려는 것인데, 미국이 무슨 수로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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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후손 뭘로 보고…왜가리에 덤볐다가 되레 밥 된 족제비

 
조홍섭 2015. 03. 09
조회수 16028 추천수 0
 

쇠족제비, 이번엔 왜가리 사냥 나서…부리 물고 늘어져

늪으로 날아간 왜가리 익사 시도, 결국 긴 부리 속으로

 

wea1.JPG» 왜가리의 부리를 물고 매달린 쇠족제비. 차창 밖으로 찍은 사신이다.

 

영국의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촬영한 쇠족제비와 유럽청딱따구리의 목숨을 건 싸움 모습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며 경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큰 몸집의 딱따구리를 공격한 쇠족제비의 배포와 등에 올라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근성은 작지만 매운 포식자의 본성을 잘 드러냈다.(■ 관련기사포식자 쇠족제비 태우고 청딱따구리 황당 비행)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을 눈치챈 쇠족제비가 공격을 포기함으로써 딱따구리는 포식자로부터 해방됐다. 둘 다 승부를 가리지 않고 공존한 셈인데, 사실 자연은 늘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은 법이다.
 

최근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쇠족제비의 사냥 장면을 촬영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었다. 이 작은 포식자도 역시 자기보다 큰 새를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사냥 대상이 제법 컸다.
 

wea2.JPG» 왜가리가 부리를 물고 늘어진 쇠족제비와 함께 늪으로 날아가고 있다.

 

30년 동안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끝으로 조류 탐사에 빠져있던 주노 포르검은 지난주 켄트에 있는 엘름리 국립자연보고구역에서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차창을 통해 왜가리 부리에 길쭉한 동물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3월6일그의 블로그에 올린 일련의 사진을 보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쇠족제비는 덩치도 크고 사나운 포식자인 왜가리를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왜가리가 커다란 부리로 위협하자 족제비는 그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왜가리는 놀라서, 아니면 혼을 내 주려고 쇠족제비를 매단 채 늪으로 날아갔다. 성가신 족제비를 물에 빠뜨려 질식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wea3.JPG» 늪에서도 쇠족제비의 저항은 계속됐고 부리를 끈질기게 물고 버텼다.

 

wea4.JPG»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부리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쇠족제비.  

 

쇠족제비는 끝까지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결국 그의 몸은 왜가리의 부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공룡의 살아있는 후손은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쇠족제비의 용기는 지나친 것이었나.

 

wea5.JPG» 쇠족제비는 왜가리의 부리에 두 개의 상처를 남긴 채 먹이로 사라졌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주노 포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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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손석춘 칼럼] 언론은 왜 침묵하나… 명백한 조직적 범죄, 원세훈 유죄로 끝날 일인가
 
입력 : 2015-03-09  17:22:37   노출 : 2015.03.09  18:35:15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공안검사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진태의 개탄이다. 그는 국회 법사위에서 “과연 하나에 1억씩 하는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거를 누구한테 흘렸고 누가 그걸 과장했느냐가 더 중요한가”라고 야당 의원들을 훌닦았다. 같은 날 MBC와의 인터뷰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는 곳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전부 논이고 밭이다”며 “그러면 밖에다 버렸다고 하는 것하고 논두렁에 버렸다고 하는 게 그게 무슨 그렇게 차이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어떤가. 나는 ‘공안 검사’출신이 그 차이를 정말 모를까 궁금하다. “집사람이 밖에 버렸다고 하더라”라는 진술과 “논두렁에 버렸다”의 차이는 크다. 굳이 소통이론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당시 국정원이 ‘심리전’을 강화한 사실만 주목해도 충분하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SBS의 ‘단독보도’ 이후 그 진술이 얼마나 ‘노무현 조롱’을 불러왔고 파국으로 몰아갔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하지만 ‘공안검사 의원’과 시국 인식을 전적으로 같이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법사위에서 문제의 발언을 하며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부르댔다. 그렇다. 나는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저 집권여당 ‘공안의원’ 말에 십분 공감한다. 어찌 우습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공안의원이 국회에서 그렇게 주장한 날, 나는 경향신문에 국가정보원이 ‘국가전복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관련기사 : 경향신문 / 누가 내 생각을 조종한다면]

공통점은 더 있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가 그것이다. 정말이지 길 지나가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 2015년 2월 25일 경향신문 2면 기사

 

 

‘논두렁 시계’가 상징하듯이 심리전은 고도의 세련된 ‘언어 마술’이다. 만일 전직 대통령의 인격을 파탄 내는 여론을 조성하려고 국정원이 수사검사들의 반대를 묵살한 채 언론에 흘린 게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심리전은 국민의 생각을 조종할 단계에 이미 와 있었다고 보아도 결코 과장된 진단이 아니다. 

더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올곧은 검사들은 곰비임비 옷을 벗거나 좌천당했다. 하지만 그 부실한 자료만으로도 고법은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법정 구속했다. 

그럼에도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나라가 사뭇 조용하다. 민주공화국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정말 괜찮을까? 명토박아둔다. 나는 국정원이 대한민국 정보기관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분에 성실한 요원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원세훈과 그 일당이 저지른 대선개입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작게는 국정원을, 크게는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뒤흔든 반국가사범들이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그런데 보라. 신문과 방송 대다수는 짐짓 모르쇠다. 야당의 ‘분노’또한 어쩐지 시늉뿐이다. 왜 그럴까? 저널리즘 이론에 밑절미 두고 설명할 수 있다. 무릇 어떤 사안이든 초기에 어떤 정보가 제공되느냐에 따라 공중의 태도가 완고하게 형성된다. 20세기 후반,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권에 민감했던 지미 카터 정권에서 언론 쪽 책임자의 말은 시사적이다.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호딩 카터는 “만약 심각한 도전 없이 3일 정도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안의 맥락을 규정하고 그 사안에 대한 공중의 인식도 통제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카터 정권이 그 수준이라면, 다른 나라, 다른 정권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해볼 일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결과 중간발표로 초기에 ‘사실 무근’이 되었고, 공중의 태도 또한 그렇게 형성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취임식 이후에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공중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력과 손잡은 대다수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는 범죄에 가담했다. 야당은 ‘대선 불복’의 틀에 갇혀 정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렇다. 대다수 국민은 지금 그 문제를 원점에서 바라보는 데 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언론인이나 학자들마저 침묵해도 좋을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통령 자리를 만끽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사실심 아닌 법률심을 하는 대법원에 지금 어떤 ‘로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감시는 누가하고 있는가?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나는 진실을 공부하는 대학생들 앞에 이 엄청난 거짓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 땅은 지금 학문의 자유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다. 우국충정으로 쓴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20gil@hanmail.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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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새 내가 TV에... '종북 마녀사냥'의 시작

 

[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①] 돌아온 한국, 그곳에서는...

15.03.09 20:33l최종 업데이트 15.03.09 20:33l

 

 

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2011년 10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과 호기심의 보따리를 싼 채 남편과 함께 북녘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나와 똑같은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눈물짓고, 미소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 일란성 쌍둥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이 발동하기는커녕 낯설었던 형제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돌아왔다. 

북녘 동포들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며, 지혜롭고 성실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내 동포들은 분단의 아픔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또한 우리 남녘의 사랑스러운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요, 내 겨레였다.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 동시에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해야 했다. 나의 북한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그 후, 북녘 동포들과 나눈 마음과 정을 내 사랑하는 모국 한국의 동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는 2012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북한 여행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통일 조국은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이 돼 누리고 살아갈 조국이므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은 보수-진보 관계없이 우리 한민족 모두의 사명이며 공의의 실현이므로, 나는 강연 주최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흔쾌히 찾아갔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육체적·경제적 그리고 내 개인적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모국, 한국 방문 역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돼버렸다.

황선 그리고 '통일의 꽃'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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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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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께로 기억한다. '6·15 남측위원회'라는 단체로부터 "2014년 9월에 서울에 와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초청을 받았다. 나는 이 단체로부터 2014년 4월 초청을 받고 전국순회 강연을 한 적이 있어 승낙하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14년 11·12월, 한국에서 조카의 결혼, 조카 손녀의 돌잔치 등 집안 행사가 있었고, 또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북한에 갈 계획이었다. 평양에 있는 수양가족도 만날 겸 최근 개장했다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 "11월과 12월 사이라면 기꺼이 응하겠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후일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알려진 '통일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게 된 연유다.

주최 측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토크콘서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한 사람은 만난 적은 두어 번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이로 이름은 황선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만난 적은 전혀 없지만 언론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현직 국회의원 임수경씨였다. 

내가 임수경씨에 대해 처음 들은 때는 그녀가 북한에 불법 입국해 평양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1989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북 뉴스를 듣고 보수적인 성향의 나는 그녀를 꽤나 싫어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두고 난 뒤부터는 임수경 의원을 존경하게 됐고, 한때 그녀를 증오했던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 낯을 붉히기도 했다. 아! '통일의 꽃'이라는 임수경 의원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하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주최 측은 '통일 토크콘서트'를 내 스케줄에 맞춰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남편과 나는 북한 비자 신청과 함께 비행기 일정을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인천, 인천→심양, 심양→평양, 평양→북경, 북경→인천, 인천→로스앤젤레스의 복잡한 일정이었다. 

나는 서울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북한의 수양가족, 그중에서도 태어난 지 한 살이 된 수양손자 주의성(첫째 수양딸 김설경의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매일 몇 시간씩을 백화점에서 보냈다. 그래도 북녘동포들에게는 한국산 제품이 쓰기가 좋겠지만, 혹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표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수양손자 볼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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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 김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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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여행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북한이 에볼라 전염을 막기 위해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불허한다'는 뜻밖의 뉴스를 들었다. 나는 뉴욕의 유엔본부에 있는 북한 대표부에 연락해 '혹시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가해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부득이 평양에 가야 한다면 허락해주겠으나 평양 공항 도착 후 21일간 격리 수용된 뒤 이상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평양 출발 예정일인 2014년 11월 26일 전에 북한 입국 불허조치가 해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준비를 계속했다. 
 
임수경 의원이 말한 토크콘서트
임수경 의원은 통일 토크콘서트 참석 계기에 대해 지난 1월 15일 경찰 출석 당시 "공적인 일로 잠깐 조계사에 들렀다가 토크콘서트가 진행되는 걸 보고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또 "행사 기획단계에서 (주최 측이) 출연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임수경 "정치적 공안몰이... 3년 전 일 소환 부적절"). - 편집자 주
주최 측에서도 약간의 변경사항을 알려왔다. '통일 토크콘서트'의 일원으로 참석하려던 임수경 의원이 계획을 바꿔 '깜짝 게스트'만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존경하는 임수경 의원과 토크콘서트를 내내 함께하지 못하게 돼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잠깐이나마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서울에서의 일정은 상당히 촘촘히 짜여 있었다.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날짜는 11월 19일이었는데, 조계사에서 열리는 첫 번째 토크콘서트가 같은 날 열릴 정도였다.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다. 

내가 하는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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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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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울의 친척들 그리고 '통일 토크콘서트' 주최 측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를 흥분시킨 것은, 자주 보는 서울의 친척들이나  토크콘서트가 아니었다. 북한의 수양가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토크콘서트 장소인 조계사로 향했다. 2014년 4월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를 본 사람이 바로 황선씨였다. 아마 그때가 황선씨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북한 이야기는 항상 같은 내용이다. 강연의 요지는 '남과 북의 동포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이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르며 이질감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첫 북한 여행을 한 뒤, 이질감은커녕 '이들은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라고 느낀 내 경험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많은 청중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6~7년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일부 언론사나 TV 방송이 내보내는 글·영상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북한 전역에는 시장의 진흙 바닥에서 강냉이 알을 주워 먹는 '꽃제비'가 들끓고, 북녘 동포들이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다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들. 여기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탈북 동포들이 가세한다. 마치 북한의 동포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며 북한은 인간성이란 찾아보기 힘든 무지막지한 사회라고 '증언'한다. 북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말을 하니 남녘의 동포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북한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청중들이 '그것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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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통일 토크콘서트' 홍보 웹자보
ⓒ 6.15남측위 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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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조계사에서 있었던 '통일 토크콘서트'도 평소에 내가 강연 중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녹조라떼'가 돼버린 남녘의 강물을 유머를 섞어 비유하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 는 등. 예정대로 임수경 의원이 깜짝 게스트로 나타나 마이크를 잡으니 청중들은 큰 박수로 그녀를 환영했다.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첫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이틀 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했다는 자막과 함께 내 얼굴이 여러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닌가!

나에 대한 '마녀사냥'은 이렇게 시작됐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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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극우? 김기종을 바라보는 5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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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대체 누구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이후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의 과거, 발언, 행동, 그가 소유하고 있던 책들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선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그를 ‘종북주의자’이라 부르고, 새정치연합은 ‘극단주의자’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민족주의자’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정신병자’라고 지칭한다. 그가 ‘외톨이’였다는 증언도 소개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에게 단 하나의 ‘딱지’를 붙이는 건 허망한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김기종씨를 바라보는 5가지 시선을 모아봤다. 어쩌면 김씨의 ‘정체’는 엇갈리고 겹치는 이 시선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kim ki jong

김기종씨가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 '종북주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6일 "김기종씨 개인은 종북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여러가지 전력, 현장에서의 활동 및 구호 등을 보면 종북주의자임은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뉴시스 3월6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9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를 '종북 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슨 관계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뉴시스 3월9일)

 
 

kim ki jong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일보가 익명으로 인용한 김씨의 한 대학동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한 대학 동문은 “(김씨는) 20년 전부터 반미·반일·친북 성향이 강했던 주사파”라며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할 때 본적을 독도로 옮기며 일본 규탄 운동을 하더니 북한에 다녀온 뒤부턴 본격적으로 반미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조선일보 3월6일)

 
 

통일부는 김씨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8차례 북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와 함께 ‘나무심기’ 활동을 목적으로 방북했다는 것.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 극단주의자

김씨를 극단주의자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물론 ‘테러’다.

진중권 교수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IS에게는 '종교', 일베 폭탄테러 고교생에게는 '국가', 과도 테러 김기종씨에게는 '민족'… 이 세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 바탕에는 실은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뉴스1 3월5일)

 
 

이번 사건은 서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나타난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호주 카페 인질극 사건 등의 경우, 대부분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차이점은 그 배경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종교가 아닌 이념 대립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일보 3월6일)

 
 

5일 발생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는 극단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가 크다. 그는 주장 관철을 위해 죽기 살기로 상대를 헐뜯고 끝내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일보 3월7일)

 
 

 

3. 민족주의자

김씨가 독도수호운동 등을 하는 문화단체를 운영해왔으며, 그가 반미시위에 참가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천황을 죽여야 한다”고 언급하거나 스스로를 ‘독립운동가’라고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민족주의의 혐의를 찾는 시선도 있다.

외신들 중에는 김씨를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 민족주의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았다.뉴욕타임스는 김씨를 “민족주의 활동가(nationalist activist)”라고 표현했으며, CNN은 “민족주의 반미 활동가(nationalist and anti-U.S. protests)”로 그를 묘사했다.

kim ki jong

지난 2010년 7월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던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뒤 강연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김기종씨. ⓒ연합뉴스

해외에서 민족주의는 흔히 ‘극우’와 동의어로 쓰인다.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자 배척 등을 주장하는 유럽 정당들은 예외 없이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도 ‘극우 민족주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는 어떨까. 김씨의 민족주의는 극단주의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경찰이 수사중이지만, 그가 이날 피습 현장에 들고 간 유인물, 검거 뒤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적 범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씨는 강연장에 가져간 유인물에서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해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에는 마냥 침묵한다’ ‘광복 70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3월5일)

 
 

BBC 역시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김씨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행동을 벌여 온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4. 정신병자

보수, 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언론에는 김씨가 평소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저렇게 일낼 줄 알았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데일리안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용의자 김기종씨(55)에 대해 이웃과 지인들은 김씨가 “평소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

90년대 초부터 전통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복원 작업을 함께 했다는 A씨는 김씨에 대해 “몸과 정신이 많이 아프다”며 “특히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3월6일)

 
 

김씨가 지난 1월말 아이돌그룹 ‘엑소(EXO)’ 공연장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당시 그를 조사했던 수사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수사 관계자는 “김씨는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홍보 책자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나눠주고,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며 “명문대를 졸업했다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3월6일)

 
 

kim ki jong

김기종 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휠체어에 탄 채 진료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김씨는 2007년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우리마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 이 사건의 간략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88년 8월17일 새벽, 김씨가 운영하던 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했다. 괴한들은 이 단체 회원들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보도에 따르면, 괴한들은 여학생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군이나 정보기관 같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분신 시도 이후 그의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악화되었고, 이는 과대망상과 맞물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한편 당시 사건을 취재하며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김창균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칼럼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 재야 문화단체로는 최초로 통일마당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기종이 했던 말과 180도 달랐다. 거물급 재야인사로 떠오른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조선일보 3월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씨의 변호인 측은 “필요에 따라서는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 외톨이

김씨가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외톨이’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사건 직후 SBS가 독도향우회 박남근 수석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2006년 김씨와 함께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인물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김 씨가 ‘내 생활을 내려놓고 시민운동에 몸을 바쳤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며 ‘언론에는 정치나 명예를 좇는 사람만 나오고 나처럼 순수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관심을 못 받는다’고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졌을 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을 오히려 기분 좋아하면서 ‘처벌을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듯이 국가를 위해 일한 것인 만큼 떳떳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SBS 3월5일)

 
 

kim ki jong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씨가 대표로 활동하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진보 성향 문화운동 단체 우리마당. ⓒ연합뉴스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벌여왔던 활동은 대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김씨의 활동은 그의 궁핍한 처지와 맞물려 극단적인 폭력 행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표면적으로 그는 “전쟁훈련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면에는 실패한 시민운동가의 ‘악심(惡心)’이 놓여 있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최근엔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다. 독도지킴이 등의 활동은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큰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다. (국민일보 3월6일)

 
 

공정식 KOVA 범죄연구소장은 “김씨가 키리졸브 훈련 중단, 전쟁 중단 같은 사상적 구호를 외치고는 있지만 반일과 반미를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며 “자신을 탄압의 피해자로 합리화하고,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과격하게 발현된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3월7일)

 
 

김씨는 10여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부모 형제와도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1년에 1~2차례씩은 광주에서 만났는데 최근에는 교류가 없어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 B씨도 “동창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아 기종이의 근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문화운동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3월6일)

 
 



 

kim ki jong

8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열린 김기종 수사관련 브리핑에서 경찰관계자가 압수서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런 다양한 시선과는 무관하게 김기종씨에 대한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9일 브리핑에서 김씨가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방북 전력과 김정일 분향소 설치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 개최 사실 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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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미 대사 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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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은 괜찮아? 외국은 ‘징역형’

 
 
 
법이 법의 기능을 상실하면 그 누구도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임병도 | 2015-03-10 09:02: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3월 9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임종룡 금융위원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됐고, 보고서가 채택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만 내정하고 중동 순방을 떠났다가, 와서도 외교 관례를 무시한 주한 미국 대사 병문안으로 국민들의 관심은 별로 높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박근혜 내각은 ‘위장전입’ 의혹이 많습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운전면허 취득을 위해 주소를 이전했다고 하고,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녀의 통학 거리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주택 청약 자격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위장전입이 너무 기본적으로 포함돼 혹시나 위장전입이 문젯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위장전입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아봤습니다.


‘ 학부모들 스스로 적발해냈던 학군 위장전입’

한국에서 위장전입이 일어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는 학군 때문입니다. 1969년 서울을 시작으로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가 시작됐습니다. 중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소위 일류학교로 불리던 경기중, 경복중, 서울중, 경기여중 등이 폐교됐습니다. 1973년에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발표됐고, 1980년에는 전국 지방 주요 도시로 평준화 지역이 확대됐습니다.

평준화가 시작되면서 신흥 명문 고등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위 강남 8학군 등 잘 나가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학군에는 위장전입을 하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8학군에 대한 위장전입은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위원회는 학교 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8학군 위장전입자를 색출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교사, 동사무소 직원으로 편성된 ‘위장전입 조사반’은 실거주지와 위장전입한 주소를 확인했으며, 이런 위장전입 조사는 매년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위장전입 조사결과, 8학군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나 거주 기간이 짧은 학생들은 타 학군으로 배정하기도 했고, 편법 전입이 확인된 가구에 대해서는 최고장을 발부 주민등록을 옮기거나 말소조치까지도 했습니다.

▲교육구청장실에서 위장전입 문제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부모들 ⓒ 동아일보

위장전입에 대한 불만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위장전입이 늘어나서 자신들의 자녀가 원래 학군에 배정받지 못하고 더 먼 곳으로 학교를 배정받아 통학 거리가 늘어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은 스스로 위장전입 학생들을 찾아내 명단을 들고, 교육청에 몰려가 위장전입 학생을 조사해서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통학 거리가 멀어 위장전입을 한 것인지, 위장전입을 해서 통학 거리가 멀어졌는지 분명치 않지만, 위장전입은 우리 교육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범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파트 부정당첨 위장전입자 10%가 공무원들’

1997년 경기도 용인 수지지구는 아파트 투기 열풍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11개 건설업체에서 6,442가구를 분양하는 곳에 시세차익을 노린 수만 명이 몰리면서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1997년 용인수지2지구 분양 예정가와 시세 차익 ⓒ MBC

38평 아파트의 주변시세가 2억 4천에서 2억 7천인데 반해 분양가는 1억 3천이라 전국의 부동산 투기꾼들이나 떴다방들은 대거 용인 수지로 몰렸습니다.

시세차익이 적게는 6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이 넘으니 용인시 거주 1순위 통장은 수천만 원씩 거래됐고,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자가 속출했습니다.

감사원이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했다고 적발한 사람만 무려 2천7백13가구였습니다.

위장전입 조사자 2천7백13가구 중 부정으로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이 338명이었습니다. 그중 34명이 공직자였습니다. 아파트를 부정으로 당첨 받은 범죄자의 10%가 공무원이었던 셈입니다.

더 웃긴 것은 이런 위장전입을 알선한 사람들이 바로 용인시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서로 짜고 시세차익을 노린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단순히 주택 청약이나 아파트 청약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얼마나 추악한 거래와 범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장전입은 범죄입니다.’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위장전입이 너무 흔하니 사람들은 위장전입을 가지고 뭘 그러냐는 소리를 합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학부모가 위장전입으로 법의 처벌을 받은 내용의 기사 ⓒABC news

한국에서나 위장전입이 별거 아니지, 외국에서의 위장전입은 1급 문서위조와 중절도죄 등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습니다.

주소를 거짓으로 작성한 행위 자체가 문서위조에 해당하고, 세금이나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서 혜택을 보는 일을 절도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빵을 하나 훔치는 절도행위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재산과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고 혜택을 받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당연히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오히려 부자와 권력을 쥔 자들에게 법이 더 많은 관용을 베풀고 있습니다.

▲위장전입으로 수천만 원대의 세금을 회피하는 실태를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 ⓒ오마이뉴스 선대인

위장전입을 법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장전입으로 수천만 원의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꾸 위장전입에 대해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니, 위장전입을 해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거나 범죄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이 법의 기능을 상실하면 그 누구도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통령부터 법을 지키지 않은 자를 등용하는 사회에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자체가 더 웃기지 않습니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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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대표, “공안당국 도. 감청 미행” 주장

황선대표, “공안당국 도. 감청 미행” 주장
 
시민단체 “사람 머릿속 들어가 사람 생각 재단 공정한 재판 기대”강조
 
이정섭 
기사입력: 2015/03/09 [12:52]  최종편집: ⓒ 자주일보
 
 

 

▲ 민권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황선 희망정치포럼 대표의 1심 재판에 앞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주일보 이정섭

 

희망정치포럼 황선 대표가 국가보안법위반(고무 찬양)혐의 대판에서 공안당국이 자신에 대해 도청과 감청 미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황선 대표는 9일 서울지방법원 502호(형사 제21부 재판장 엄상필, 판사 고종완. 하승우)에서 열린 1심 첫판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감찰의 증거 목록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황선 대표는 이날 재판정에 들어서며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재판에 임했다

 


.

 


한편 황 대표의2차 재판은3월23일 오전10시502호 법정에서 열린다.

▲ 민권연대 김준성 실장이 황선 대표에 대한 재판은 사람의 머릿 속을 재단하는 것이라며 재판부의 합리적 판결을 촉구했다.     © 자주일보 이정섭

 

이에 잎서 민권연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통일인사 황선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어 “분단 현실을 핑계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조차 ‘북한 찬양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며 “몇해 전부터 한국에 유행하는 극심한 ‘종북마녀 사냥’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공안기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을 통한 비이성적인 ‘종북몰이’는 중단되어야한다. 우리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며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했다.

 

민권연대 김준성 실장은 “안타깝게도 검찰의 공소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며 “17년 전 작성한 일기장으로 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뿐더러 이와 관련해 황선 씨는 이미 처벌을 받은바 있다.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남편의 옥중서신을 문제 삼는 것 역시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부당성을 고발했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 회장은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황선 대표의 발언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서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이 적대와 대결이 아닌 서로 친하게 지내야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면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고 있다. 이는 중세기 마녀사냥, 미국의 메카시즘 그리고 한국의 종북몰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황선 대표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 황선 대표의 남푠인 윤기진 대표는 친일 친미 종일 종미 세력이 문제라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주일보 이정섭

 

황선 대표의 남편인 윤기진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공안당국이나 종편 외에 종북을 본 적이 있느냐.”며 “지금 한국사회는 종미. 종일. 친미 친일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기진 대표는 “우리는 실체도 없는 종북이 아니라 종미. 종일. 친일, 친미를 뿌리 뽑아야 한다. 종북 소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현정권에 종북몰이 중단을 거듭 요구했다. 
황선대표에 대한 기자회견문과 탄원서 내용을 게재한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한국의 종북 소동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미국의 메카시즘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자주일보 이정섭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통일 토크콘서트를 진행하여 구속이 된지 2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광기의 시대입니다. 낙인찍기와 여론몰이로 우리 사회가 분열과 대립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광기의 시대를 합리적 이성의 시대로 되돌려야할 책무가 있으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황선 씨의 발언이나 행동들은 일부 언론 등의 소위 ‘종북몰이’ 등으로 그 진의가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검찰의 공소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17년 전 작성한 일기장으로 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뿐더러 이와 관련해 황선 씨는 이미 처벌을 받은바 있습니다.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남편의 옥중서신을 문제 삼는 것 역시 과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황선씨가 인터넷 방송에서 사용한 자료들은 국내 언론 등에서 이미 발표된 자료들이며,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국내 대다수의 평화단체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검찰은 통일토크콘서트에서 “북한 휴대폰 사용자가 250만 명을 넘었다더라”,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키워준다”는 발언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이미 몇 년 전 한국 언론과 방송에도 보도되었던 내용들입니다. 분단 현실을 핑계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조차 ‘북한 찬양’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 유행하는 극심한 ‘종북 마녀사냥’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습니다.
  
공안기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마음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고 있습니다. 황선 씨의 주장과 이야기들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하나의 의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기자회견문〕 통일인사 황선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
  
3월 9일 10시 반 통일인사 황선에 대한 심 재판이 열린다. 검찰이 통일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먼지 털이 식 수사를 통해 끝내 통일인사 황선시를 구속 시킨지 56일 째다.
  
종편이 ‘종북몰이’에 나서고,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며, 검경이 그에 다라 수사를 진행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황선씨의 구속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검찰은 이미 처벌받은 지난 일기장과 글의 내용으로 우려먹기 수사를 하고 있으며, 무죄 판결을 받은 남편의 옥중편지를 빌미로 삼고 있다. 또한 황선씨가 방송에서 사용한 자료들은 국내 언론 등에서 이미 발표된 자료들이며,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국내 대다수의 평화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검찰은 “북한 휴대폰 사용자가 250만 명을 넘었다더라.”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키워준다.”는 발언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이미 몇 년 전 한국 언론과 방송에도 보도되었던 내용들이다. 똑같은 말을 해도 황선 씨가 하면 유죄라는게 검찰의 주장이다.
  
분단 현실을 핑계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조차 ‘북한 찬양’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 유행하는 극심한 ‘종북 마녀사냥’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포함해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다.
  
공안기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고 있다. 이제 공안기관을 통한 비이성적인 ‘종북몰이’는 중단되어야한다. 우리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바이다.
  
2015년 3월 9일
통일인사 황선 첫 재판에 즈음한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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