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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계비로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 할아버지

 
[3.1절 이야기] 공식기록 없다고 국가유공자 지정 안돼…단국대 학생 도움으로 역사 강연자로
 
입력 : 2015-02-27  17:30:50   노출 : 2015.03.01  07:50:45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여러분, 일제강점기에 가장 먼저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간 마을이 어딘지 아시나요?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내앞마을이에요.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집안이 모여 사는 곳이죠.”

애국의 대가는 빈궁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79)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한 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김시진씨의 증조할아버지 김대락 선생, 할아버지 김홍식씨, 아버지 김문로씨는 모두 일제강점 첫 해인 1910년 말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기여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하지만 중국에서 선친들의 독립운동 기록을 증명할 공식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시진씨는 최저생계비로 생계를 이어갈 뿐이다. 

   
▲ 지난해 10월 24일 금천고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김시진 할아버지. (사진 = 단국대 이승원 학생 제공)
 


국권을 빼앗긴 1910년 김씨집안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했다. 당시 김시진씨의 아버지 김문로씨가 18살이었다. 탄압을 피해 만주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던 중 김시진씨는 1936년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살다가 2001년이 돼서야 한국에 들어왔다. 그간 김씨 집안은 뿔뿔이 흩어지고 몰락했다. 미국으로 망명해서 소식이 끊긴 할아버지, 독립운동으로 건강이 악화돼 59살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대신해 내앞마을을 찾았지만 백년전 땅은커녕 친척들 산소조차 찾기 힘들었다. 

안동대학교 사학과 김희진 교수가 쓴 <안동 내앞마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와 김시진씨의 증언에 따르면 안동 의성김씨 집성촌에 살던 김대락(김시진씨 증조부) 선생은 만석꾼이었다. 일제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김대락 선생은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 협동학교를 세웠다. 협동학교는 1907년 3월 설립돼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곳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안동 지역을 이끌었던 곳이다. 

<안동 내앞마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에서 김희진 교수는 “내앞마을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두가지 큰 특징을 가진다”며 “하나는 전통성이 강한 안동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발원지가 이 마을이고 또 하나는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만주를 망명해 서간도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는데 이 마을 출신이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만주로 옮겨 몸 바친 인물 약 150명에 대한 추적 작업을 지금 추진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결과를 학계에 보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해 10월 24일 금천고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김시진 할아버지. (사진 = 단국대 이승원 학생 제공)
 

김시진씨는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영등포구 대림동에 거주하며 폐지를 줍고 살다가 국가유공자 제도를 알게 돼 보훈처를 찾았다. 하지만 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관련)공식 기록이 필요하니 차분히 기다려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가 김씨에게 제공하는 돈은 매월 45만원이다. 김씨는 “월세 25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사연을 듣고 4년 전 단국대 학생들이 김씨를 찾았다. 비영리단체 ‘인액터스’ 소속 단국대 학생들은 김씨가 강연가로 자립할 수 있게 ‘투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투혼을 본받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단국대 학생들은 김씨가 학교에서 생생한 역사강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재까지 김씨는 구현고, 동답초 등 13개 학교에서 의성김씨 집안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다음 강연은 서울 은평에 있는 세명컴퓨터고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열릴 예정이다. 

   
▲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 할아버지(사진 가운데)의 강연을 돕고 있는 단국대 황지은(사진 왼쪽) 학생과 이승원 학생. (사진 = 장슬기 기자)
 

단국대 학생 황지은씨(22)는 “할아버지(김시진씨)가 학생들에게 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얘기해줄 때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길 바란다”며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부당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투혼 프로젝트의 취지”라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 이승원씨(23)도 “독립운동가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며 “우리도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본받고자 지속적으로 할아버지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들은 강연 학교를 섭외하고 강연 자료를 만들어준다. 김시진씨의 강연료는 학교에서 받지 않고 학생들이 기업에서 받은 후원금을 통해 충당한다. 

김씨는 “학생들이 독립운동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강연을 도와주거나 가끔 집에도 방문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김씨는 “서울시청에서 2012년 광복절 타종행사에 참여해달라고 해서 갔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천해줘서 임대주택에 살게 됐다”며 “아내(권순례, 78)와 함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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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겠다 갈아엎자" 박근혜 규탄


"민주주의 살인 주도" 이명박 수배

[현장] 시민 5천여 명 서울광장 행진...MB 사저 근처에 수배전단

15.02.28 17:46l최종 업데이트 15.02.28 23: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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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선거 주범을 수배합니다'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을 행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유죄 판결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전단을 붙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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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 붙여진 수배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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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오후 7시 20분]

MB 사저 근처에 MB 수배 전단 나붙어 

용의자 정보 
이름 : 이명박 
생년월일(출생지) : 1941년 12월 19일 (일본출생) 
직업 : 전직 대통령, 국정원 컨설턴트, 국부유출 전문가 
죄명 : 권력을 남용하여 18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수백 장의 이 전 대통령 수배 전단이 나붙었다. '부정선거로 2년간 당하고 3년간 더 당해야 하는 민주시민일동' 명의의 '부정선거 피의자 수배 전단'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환하게 웃거나 떡을 먹고 있는 사진과 함께 '여러분의 신고와 제보가 사건해결의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수배 전단에 소개된 사건 개요에는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의 지위를 남용, 직속 부하인 원세훈 국정원장을 앞세워 대통령 선거에 개입, 민주주의 살인을 주도함. 이를 통해 박근혜씨가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음'이라는 설명이 실렸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표지를 본떠 만든 수배 전단 뒷면에는 '자서전이 아니라 진술서가 필요하다', '부정선거 주범을 수배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혔다.

수배 전단은 시민 2000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1000명)이 논현동 주변 도산대로와 논현로를 행진하며 붙인 것이다. 시민들은 오후 5시 40분부터 1시간가량 행진하면서 "이명박을 구속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라고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이 전 대통령 사저 쪽으로 진입하려 했지만, 골목마다 지키고 선 경찰이 이를 막았다. 이에 몇몇 시민은 경찰 앞에 쥐덫, 쥐약, 쥐 끈끈이를 두고 행진을 이어갔다. 

유봉식 한국진보연대 조직위원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받고 구속되면서, 2012년 대선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따른 부정선거임이 인정됐다"며 "하지만 정치권에서 책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기 때문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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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인근에서 시민 2000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1000명)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라"고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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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인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쥐덫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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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28일 오후 5시 40분]

"못 살겠다, 갈아 엎자"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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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민주화운동, 청년들이 앞장서겠습니다'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옛 교복을 입은 채 '제2의 민주화운동, 청년들이 앞장서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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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민주화 운동 벌이자'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사회 원로들이 '제2의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합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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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선거 웬말이냐, 박근혜 물러나라' 학생과 시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마친 뒤 박근혜 정권의 민주파괴와 서민증세, 민생파탄을 규탄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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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부터 3일 동안 청와대 앞과 신촌, 강남, 명동 등 서울의 주요 상권에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이 뿌려졌다. 27일 명동 거리에 뿌려진 전단에는 28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모이자는 '행동 지령'이 담겼다. 

전단의 힘이었을까.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5000여 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은 3500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이들은 "제2의 민주화운동을 함께 나서자"고 결의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전셋값 폭등, 서민증세, 민생파탄에 맞서 박근혜 정부와 싸울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권이 현 상황을 더 심화시키려 한다면,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를 염원했던 시민들이 모여 제2의 민주화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세웅 신부는 "지난 9일 법원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면서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는 무효이며, 지금 정부는 관권부정선거로 만들어진 불법 정권"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총체적 관권부정선거, 이명박을 구속하고 박근혜가 책임져라"라고 외쳤다.

박래군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때)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해 비애감을 말했던 사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던 사람, 이 사고의 최종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한 사람은 누구냐"면서 "박 대통령은 어떤 책임을 졌나,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국민들이 모여서 끌어내리자"라고 강조했다.

전단 뿌려지는 가운데, 시민들 서울광장으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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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흘째 연속 서울도심에 뿌려진 '박근혜 정권 규탄 전단' 학생과 시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마친 뒤 서울시청광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 위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이 뿌려지고 있다. 이날 이들은 "벼랑 끝으로 내 몰린 국민들은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이 자리에 모인 70년대 유신독재시절 민주화를 염원하며 싸웠던 노투사부터 종교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청년, 학생들이 모여 제2의 민주화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다"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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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선거 웬말이냐, 독재정권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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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함성 "못살겠다. 갈아엎자"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박근혜 정권의 민주파괴와 서민증세, 민생파탄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벼랑 끝으로 내 몰린 국민들은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이 자리에 모인 70년대 유신독재시절 민주화를 염원하며 싸웠던 노투사부터 종교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청년, 학생들이 모여 제2의 민주화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다"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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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범국민대회를 마친 후, 숭례문·명동을 거쳐 을지로 입구로 향하는 행진에 나섰다. 25일부터 서울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 소속  회원들은 명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재차 뿌렸다.  

행진에는 지난 1960년 4·19 혁명에 나선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제2의 민주화운동, 청년들이 앞장서겠습니다'라는 펼침막을 앞세웠다. 또한 '부정선거 웬 말이냐 독재정권 물러가라', '못 살겠다 갈아엎자' 등 4·19 혁명 당시와 같은 펼침막을 내걸었다. 

대학생 박세은(22)씨는 "30년마다 민주주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고, 2015년은 1980년대 이후 다시 위기가 발생한 해"라면서 "항상 청년들이 나서서 민주화 투쟁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4·19 혁명 당시의 복장을 찾아 입고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신사역 앞에서 한국진보연대를 중심으로 모인 시민들은 현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방향으로 행진하면서 '이명박 구속 대선 개입 규탄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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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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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 격려에 답례인사하는 고공농성자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 응원하자,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 서광주지회 강세웅 조합원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 인천계양지회 장연의(왼쪽) 조합원이 손을 흔들며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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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LG 비정규직 고공 농성자 응원하는 시민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고공농성 중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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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의 딸, 역사의 상처 견디고 가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2/28 11:24
  • 수정일
    2015/02/28 11: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 2015.02.27 20:35수정 : 2015.02.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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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7시20분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종필 전 총리 부인 박영옥씨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김 전 총리, 딸 김예리(오른쪽 셋째)씨, 며느리 김리디아(오른쪽 둘째)씨, 박씨의 동생 박준홍(맨 오른쪽) 전 친박연합 대표 등 유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JP 부인 박영옥씨 장례식

▶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86)씨가 지난 21일 숨졌다. 발인은 25일이었다. 충남 부여의 김 전 총리 가족묘지에 묻혔다. 남편은 거물이었지만 본인은 겉으로 조용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도 쉽지 않았다. 역사가 그의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다. 주로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등으로 불린다. ‘사회주의자 박상희의 딸’이기도 하다. 그의 장례식장을 지켜봤다.

 

 

그는 그냥 자기 자신으로는 기억되지는 못했다. 24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에 화환이 늘어서 있다. ‘대구 신명여고 35회 동창회’ 화환 앞을 지나치면 빈소 입구가 보인다. 495㎡(150평) 넓이의 30호실 빈소 입구에 걸린 ‘근조-고 박영옥 여사 장례식’ 플래카드 아래 기자들이 서 있다. 부조함 옆에 ‘부조는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영정 좌우에 화환이 늘어서 있다. 영정 왼편에 차례대로 노태우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정의화 국회의장, 이완구 총리의 화환이 있다. 오른편에 박근혜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의 화환이 서 있다. 오전 11시 남편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주로 빈소 안 내실에서 휠체어에 앉아 조문객을 맞았다. 김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씨의 5일장 내내 조문객이 오고 갔다. 박씨는 서울 순천향대학 병원에서 21일 밤 숨졌다. 척추협착증과 요도암으로 투병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는 21일부터 5일장으로 치러졌다.

 

 

부모 박상희-조귀분, 황태성 소개로 결혼

 

박씨는 일단 ‘김종필의 아내’였다. 24일 오후 1시25분께 조문하고 나온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내가) 중구 국회의원이 된 이후 세배 가면 여사님이(박영옥씨가) 늘 차도 타주시고 잘해주셨다. 해마다 세배하러 갔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나 의원은 “정갈하게 내조하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정갈하게 내조한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 박씨에 대한 주된 기억일 것이다. 김 전 총리는 두차례 총리를 지냈다. 1971년 6월~1975년 12월 처음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연합 이후 1998년 8월~2000년 1월 두번째로 총리직을 수행했다.

 

박씨는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잘 교육받은 ‘신여성’이었다. 박씨는 1929년 9월26일 경북 선산군에서 박상희·조귀분 부부의 장녀로 태어났다. 출신 소학교는 알려지지 않았다. 1949년 대구 신명여학교(현 신명고)에 35회로 입학했다. 신명여학교 앞에 ‘영남 최초의 여학교’라거나 ‘근대 여성 교육의 산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07년 미국 장로교계 선교사가 설립했다. 민족교육 학풍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인 3월8일 전교생이 ‘대구 3·8 만세 운동’에 참가한 사건이 유명하다. 고등교육을 받은 ‘배운 여자’는 그때 극소수였다. 국가통계포털에서 ‘교육정도별 인구 및 비율’ 자료를 보면, 1955년 당시 여고생은 5만5300명으로 전체 여성 인구의 0.5%였다.

 

고 박영옥씨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자료 사진
부모 둘 다 교육받은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아버지 박상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으로 진보적 민족주의자·독립운동가였다. 사회주의자로 불러도 틀리지 않다. 박상희는 1906년 경북 칠곡군 약목면 관남리에서 5남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7남매 중 재능이 뛰어난 박상희와 박정희 전 대통령만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셋째 형인 박상희를 많이 따랐다고 알려져 있다. 1927년 2월 좌우합작 민족운동단체 ‘신간회’가 만들어졌다. 박상희는 신간회 활동을 했다. 1930년대 <조선중앙일보> 대구지국장, <동아일보> 구미지국장 등을 했다.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동맹에서 활동하다 194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1929년 박상희는 김천 출신의 조귀분과 결혼했다. 1908년생인 어머니 조귀분도 진보적 신여성이다. 대구 신명여학교를 졸업했다. 김천에서 야학교사를 하다 독립운동가 황태성의 소개로 박상희와 결혼했다.

 

박씨는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24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과거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시절 비서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가끔 테니스를 치는 것 외에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교회나 절에 나갔지만 내조의 일환이었다. <동아일보> 1980년 3월1일치 기사에 ‘박 여사의 모습은 건강하고 단정하다’고 묘사된다. 박씨는 이 인터뷰에서 “나는 활달한 여장부도 못 되고 여권운동에 나선 적도 없어요. 단지 여필종부라는 말을 되새기며 남편의 길을 따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치를 모른다”고도 했다.

 

25일 아침 6시25분 빈소 옆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검은색 양복에 검은 넥타이, 쥐색 헌팅캡을 쓴 김 전 총리가 휠체어를 타고 빈소로 들어갔다. 갈색 레이밴 선글라스 아래 보이는 입을 다물었다. 아들 김진(54) 운정장학회 이사장, 딸 예리(64)씨, 남동생 박준홍(68) 전 친박연대 대표, 손자·손녀 등 상주 12명이 발인식을 시작했다. 김상윤 전 총리 특별보좌역의 설명을 종합하면, 21일 오후 8시43분 고인이 세상을 떠나던 순간 김 전 총리 등 가족 20여명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장례식장 후문에서 발인식과 노제를 했다. 상조업체가 준비한 검은색 ‘링컨 타운카’ 운구차와 영정을 실은 벤츠 s600 차량이 병원을 떠난 것은 아침 7시20분께였다. 서울추모공원에 들러 화장을 했다. 운구차는 오전 11시40분께 충남 부여로 향했다.

 

박씨는 역사에 상처입었다. 시대가 강퍅했다. 이념의 시대였고 모순의 시대였다. 남로당 활동을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김 전 총리는 권력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좌파 아니냐는 의혹을 야당에서 받았으나 훗날 비판자를 좌파로 몰아붙여 탄압하는 모순을 저질렀다. 95살의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24일 오후 1시 조문했다. 지팡이를 짚고도 잘 걷지 못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직접 말하지 못했다. 부축하던 비서가 “(김 전 총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고 짧게 답했다. 백 전 총장이 1948년 군부의 남로당 색출 때 적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을 위기에서 구했다.

 

1961년 12월30일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부인 박영옥씨와 방한한 미국 영화배우 대니 케이와 만났을 때, 박씨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정치를 모른다고 했지만, 아마 박씨는 정치와 이념의 비정함을 알았을 것이다. 1945년 8월 해방 이후 1950년까지 극심한 이념 대립이 있었다. 박상희는 좌우통합을 주장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했다. 1946년 10월1일 대구에서 미군정에 항의하는 ‘대구 10월사건’이 벌어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대구 10월사건 관련 진실규명 결정서’를 종합하면,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자 불만을 가진 민간인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으로 정의된다. 박상희는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자나 극좌파가 아니라 중도좌파로 알려져 있다. 호방하며 인간적 매력이 컸던 인물로 전해진다. 경찰과 시민을 중재하다 경찰 발포로 10월6일 숨졌다. 장녀 박씨가 열일곱살 때였다. 김 전 총리의 장모 조귀분씨는 박씨를 포함해 5녀1남의 자녀들을 혼자 어렵게 길렀다. 대구 신명고 설명을 종합하면, 박씨는 뒤늦게 1949년 대구 신명여고에 입학해 1952년 졸업했다.

 

지난 21일 저녁 8시43분 별세
쿠데타-2인자-국무총리 등
남편은 현대사의 거물이었지만
부인은 조용하고 가정적이었다
“정치인 아내지만 정치 모릅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따랐던
진보적 민족주의자 박상희의 딸
대구10월사건 때 중재하다
경찰 총 맞은 아버지 죽음 아파해
그걸 알고도 제이피는 결혼했다

 

피학살자 유족회 도운 어머니 조씨

 

1950년 6·25가 벌어지자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총리는 육군 정보국에서 함께 근무했다. 육군 정보국이 대구에 주둔하던 당시 김 전 총리는 박씨를 처음 만났다. 김 전 총리는 첫 만남을 이렇게 기록한다. “어느 날 문을 확 열고 나오다가 (육군본부) 사무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여인과 마주쳤다. 순간 마음에 모닥불과도 같은 강렬한 열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누구를 면회 오셨습니까?’ ‘저…실장님을….’ 여인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올랐고 그것이 하나의 환한 달덩이와도 같이 황홀하게 어려왔다. ‘어떻게 되십니까?’ ‘저…조카가 찾아왔다고 하시면….’ ‘네 알겠습니다.’”(<비원의 번영탑>·진명문화사·1967)

 

김 전 총리는 소위였고 정보실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령이었다. 김 전 총리와 박씨는 1951년 2월 대구에서 결혼했다. 연좌제 피해자가 될 위기에 있던 사회주의자의 딸과 방첩이 임무인 육군 정보국 장교가 결혼한 것이다. 박씨는 김 전 총리의 배려로 1956년 숙명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하지는 못했다.

 

1960년 4·19가 일어났다. 6·25 때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북한군과 남한군 양쪽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국군 양민학살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피학살자 유족회를 결성해 국가 차원의 조사와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제시대 야학 활동가였던 김 전 총리의 장모 조씨는 이때 역사에 등장한다. 피학살자 유족회 일을 도왔다. 1960년 피학살자 유족회에서 활동했던 학살 피해자 유가족 김하종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1960년 당시 대구시 동성로에 있던 경북 피학살자 유족회 사무실에서 소위 몸뻬를 입은 조○○를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몸뻬 아줌마로 불렸으며 경북 피학살자 유족회의 부녀부장, 또는 선산유족회 부녀부장으로 활동했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조○○’이 ‘조귀분’이다. 학살에 참여한 극우단체 회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61년 5·16 쿠데타 뒤 상황이 정반대로 변했다. 당시 ‘혁명공약’ 1항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는 것이었다. 김하종씨는 쿠데타 뒤 판결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2010년 재심을 청구해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하종씨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나는 1960년 경주 피학살자 유족회와 경북 피학살자 유족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군수사령관을 했다. 김 전 총리의 장모 조귀분씨가 대구의 경북유족회 사무실을 찾아 만났고 이후 조씨 집 등에서 모두 4번쯤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조씨가 ‘사위가 울산유족회에 차량지원을 해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연좌제의 피해자가 될 뻔한 시동생이 대통령이 되고 그의 측근인 사위가 중앙정보부장이 되어 비판자를 연좌제로 처벌하는 모순된 시대를 조용히 살다가, 1993년 11월 숨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이자 김종필 전 총리 부인 박영옥씨의 아버지인 박상희는 대구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독립운동가였다. 박준홍 전 친박연합 대표 제공
김 전 총리와 박씨는 금실 좋기로 유명하다. 김민하 세계일보 회장,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조문한 자리에서도 김 전 총리는 고인을 떠올리며 다시금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전 총리의 회고록이나 숱한 언론 인터뷰 어디에서도 장인의 불행한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1967년 5월27일치에 당시 국회의원 선거 유세 중이던 김 전 총리가 경북 구미의 공동묘지에 ‘비석도 마련돼 있지 않았’던 장인의 묘소를 참배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기사는 박상희씨가 <동아일보> 구미지국장을 했다는 사실만 주민의 입을 통해 전할 뿐 진보적 민족주의자로서 활동이나 건준 활동, 대구 사건 등은 소개하지 않았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 운구차가 도착한 것은 25일 오후 2시20분께였다. 유골 안장식이 열렸다. 수백명의 마을 주민이 지켜봤다. 안장식 현장에서 만난 고인의 남동생 박준홍 전 대표는 박씨에 대해 “고인은 무척 가정적이었다. 아들, 딸, 남편 등 가족을 먼저 생각했고 배려했다. 공식적 모임은 피했다”고 전했다. 일기나 회고록을 따로 남기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에게 ‘아버지(박상희)의 불행한 죽음을 고인이 언급한 적 있느냐’고 묻자 박 전 대표는 “(박씨가) 많이 가슴 아파했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 답했다. 박 전 대표는 부친 박상희씨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여운형의 건준에 참여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중도좌파’ 정도의 이념지향을 지녔다는 견해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건준이 너무 왼쪽으로 가자 그 과정에서 황태성씨와도 결별했다”고 말했다. 황태성은 경북 출신의 사회주의자로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따랐다고 알려진다. 월북해 북한에서 무역상 서리 직위까지 올랐다. 5·16 쿠데타 뒤 1961년 8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나겠다며 남한에 내려왔으나 1963년 10월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사형됐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가 대구사건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며 데모대와 경찰을 중재하다 사망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김 전 총리가 결혼 당시 장인의 불행한 죽음을 알고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물론이다. ‘장인은 공산주의자가 아닌데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가끔 했다”고 말했다.

 

 

“기쁨보다는 어려움이 많았던 세월”

 

오후 2시30분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가족묘지의 ‘김해김공위종필배고령박씨위영옥지묘’라고 적힌 비석이 햇빛에 반짝였다. 비석 앞에 선 김 전 총리의 선글라스에 흐릿하게 비석이 비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 기쁨보다는 어려움이 많았던 세월이었지요.”(<동아일보> 1980년 3월1일 박씨 인터뷰). 쿠데타로 반공국가를 만들었으나 진보적 인물까지 포섭해 공화당을 만들고자 했던 모순된 남자의 아내, 불행하게 숨진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 1남1녀의 어머니, 1949년에 흔치 않은 여고생이던 한 여성은, 86년의 삶을 마치고 25일 오후 땅에 묻혔다. 김 전 총리는 사후에 국립묘지 대신 박씨 옆에 묻히겠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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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언론 압살 폭거’

내.외 자주민보 폐간 규탄 성명 잇따라
 
‘전대미문의 언론 압살 폭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2/27 [14:2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사법부가 1심과 2심에 이어 자주민보등록취소결정을 내리자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과 단체들의 규탄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외 수십여개 단체으로 구성된 자주민보폐간범국민대책위는 지난 24일 규탄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규탄 기자회견문을 발표하였고 미국 교포 인터넷 신문인 민족통신과 재미동포전국연합도 성명을 통해 자주민보 폐간은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족일보를 폐간한 이후 처음이라며 이는 민주 민족 언론과 자주. 민주. 평화. 통일에 대한 탄압이라며 정권퇴진까지 요구했다. 자주민보 폐간 규탄성명을 게재한다. 
  
'자주민보' 폐간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운영위원들과 편집위원들은 제4회 민족언론상을 수상한 애국적인 언론 '자주민보'가 한국정부 당국과 사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21세기 문명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한탄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군사정권이 저질은 죄악을 또다시 반복했다. 한국언론사상 군사정권 시기에 '민족일보'가 1961년 2월13일 창간되어 3개월만인 5월17일에 폐간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었고,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 '자주민보'가 또다시 폐간되는 사태를 맞게되었다. 
  
진보성향의 언론 '자주민보'는 근 15년의 역사를 가진 매체로서 6.15시대에 탄생한 애국언론이다. 이 언론은 주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기사들을 다뤄왔다. 
  
자주민보는 2000년 5월 월간 자주민보(이창기 발행인겸 편집장)로 창간되어 출판해 왔고, 2002년 9월에 월간 '우리'로 개편되었다가 2003년 6월 월간 '우리'의 편집진영은 2003년 9월22일 인터넷 언론으로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 동안 자주민보 편집진 성원들은 지구상 악법으로 널리 알려져 온 국가보안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유린당한 채 발행인과 기자들이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도 여러차례 겪어 왔다. 
  
이들이 인터네트 언론을 운영하는 기간에 겪은 당국의 간섭과 탄압책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특히 이명박정권과 박근혜정권에서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증언들이었다. 
  
자주민보는 지난 2월23일자 보도를 통해 "사법부가 끝내 자주민보에 대한 폐간결정을 내렸다"고 전하면서 대법원(재판장 대법관 김창석, 주심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조희태)이 지난 13일 자주민보등록행정심판 상고심에 대해 이유 없다며 재항고를 기각함으로써 폐간이 확정되었다고 설명했다.
  
자주민보 편집진은 이에 대해 "이번 대법원판결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면 부정하는 행위"라고 규탄하면서 국내외 애국동포들의 목소리를 호소하고 있다. 
 
민족통신 편집진은 한국의 진보정당을 폐쇄한데 이어 이번에 진보언론까지 폐쇄하며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짓밟고 있는 처사에 대해 "박근혜정권이 '초보적인 자유민주주의'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언론자유를 탄압하며 국민들의 알권리를 빼앗고, 반민주, 반민족, 반평화의 길, 다시 말하면 사대매국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비극적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박근혜정권의 퇴진운동과 함께 이 정권을 배후에서 지원해 온 미제국주의 세력의 간섭책동을 배격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2015년 2월25일)
 
[재미동포포전국연합회 성명서] 
가짜 정부 충견으로 전락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사법부는 지난 13일 자주민보 폐간 결정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출판의 자유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며 무법천지로 변해버린 박근혜의 나라임을 사법부가 다시금 증명해주고 있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의 당선취소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가짜정부의 충견으로 전락한 사법부가 자주민주 통일의 기치를 높이들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애국언론지인 자주민보를 폐간시킨 행위는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매국노의 행위와 같다.
  
자주민보는 창간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 7.4남북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정신에 입각하여 언론활동을 해왔다. 특히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평화적으로 조국통일을 이루고자 노력해왔다.
  
가짜정부의 충견으로 전락한 사법부가 통합진보당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나아가 자주민보까지 해체시키는 만행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사법부가 아니라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사법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을 맡아 법대로 공정하게 집행해야할 사법부가 도리어 법을 제멋대로 죽이고 박근혜만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 사법부의 만행은 국민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친일파 우두머리 박근혜를 비호하고 나라의 민생을 파탄시킨 박근혜를 옹호하고 남북관계를 전쟁상태까지 만든 전쟁광 박근혜에 충성하는 사법부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애국 언론지 자주민보를 폐간한 사법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자주민보를 폐간시킨 행위는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반통일 역적행위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민족의 절대적 지지와 사랑을 받아온 통일언론지, 애국언론지인 자주민보를 폐간시킨 것은 범죄행위와 같다. 그리고 이 같은 범죄행위를 자행하면서 오직 박근혜만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 사법부 만행에 대해 민족의 이름으로 두고 두고 죄의 댓가를 치루게 할 것이다.
  
2015년 2월 24일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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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당해 자살한 오대위의 마지막 절규

 
정현환 2015. 02. 27
조회수 3974 추천수 0
 

“제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누구라도.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병사들, 우리 처부 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단 한 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 한 적 없습니다.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2013년 볕 좋은 어느 가을 날, 젊디젊은 여군은 조용히 흐느끼며 마지막 글을 남겼다. 얼마 후 훌쩍임과 기침소리마저 멎고 화면이 뿌옇게 변했다. 남은 것은 그녀가 생전에 즐겨듣던 음악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 모든 것이 정지했다. 남부지방 억양 속에 듣기 좋은 울림을 지닌 목소리도, 차 안을 가득 채우던 음악도, 흐느낌도, 언뜻 비치던 부대 안의 초록빛 나무의 흔들림도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 그녀의 마지막 절규만 남았다. “제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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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를 지켜달라는 마지막 절규 

 

  많은 꿈을 지녔던 오 대위는 그렇게 생의 무대에서 스스로 떠나갔다. 그토록 밝게 빛나던 오 대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은 직속상관인 노 소령의 성추행이었다. 오 대위는 또래 여군들 중에서도 진급이 빠른 편이었고 당시 근무하던 15사단 여군들 중에서도 계급이 가장 높았다. 그랬기에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 여군들의 어려움을 상담하는 여군 고충상담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오 대위는 정작 자신은 구제하지 못했다. 오 대위 사건에서도 보듯이 만만치 않은(?) 계급인 대위도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물며 부사관 계급의 여군은 어떻겠는가? 실제로 최근 5년간 성폭력 피해 여군 183명 중 부사관이 113명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특성상 보고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확률이 높다. 이것이 성폭력 문제를 끝까지 주시하고 풀어가야 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2014년 있었던 군인권센터의 군성폭력실태조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설문조사에서 여군의 90%가 성 관련 피해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47.4%가 소용없어서, 44.7%가 불이익 때문에, 5.3%가 나쁜 평판 때문이라고 꼽았다. 피해 여군의 95.7%는 군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사실이 드러났을 때 35.3%가 집단 따돌림을 경험했으며 23.5%는 가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응답했다. 80%의 여군이 군사재판을 신뢰하지 않았고 92%가 헌병대와 징계위원회를 각각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여 성폭력 관련 군의 처벌에 대해 강하게 불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피해 여군이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순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가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하기까지 하는 군의 현실을 지휘관들은 알고는 있는지, 알려고 하는 의지는 있는지 궁금해진다.

  올 1월 27일 성폭력 대책을 위해 열린 육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여군들도 싫으면 명확하게 의사표시 하지 왜 안 하냐"고 해서 물의를 빚은 1군사령관의 인식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특히 최근에 불거진 임모 여단장의 여군 하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곳은 1군사령부 예하 부대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최고 지휘관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하는 것이다. 군의 이런 저급한 인식은 군사법원의 판결로까지 이어져 솜방망이 처벌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가해자가 장교일 경우 실형 선고율은 2011년부터 2013년 까지 단 1건도 없는 0%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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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의 본질은 권력관계

 

  성폭력의 본질은 권력관계다. 권력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폭력은 발생하기 힘들다. 성적 매력이 충만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허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장애여성이나 어린이 등 성적 매력과 무관한, 권력관계의 하층부를 차지하는 약하고 아름답지 못한(?)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폭력은 모든 범죄들이 그렇지만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성폭력 사건은 여타 범죄들과 비슷하지만 피해자로서 겪는 경험은 사뭇 다르다. 여전히 사회에 팽배한 가부장적인 문화와 낮은 성평등 의식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지하기는커녕 “왜 밤에 다녀?, 너의 행실이 문제야, 피해 당할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당했겠지”라는 피해자 유발론을 정당화하고 일종의 낙인효과를 가져온다.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달리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회적 비난을 내면화하여 모든 행동을 자기검열 한다. 가해자가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미풍양속(?)을 어지럽힌 대가로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

  이것은 군도 마찬가지다. 아니 군은 더 하다. 철저한 계급 사회인데다 외부의 감시견제 기능이 전혀 없는 무소불위의 집단에서 약자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림자조차 숨기기를 강요받는다. 실제 군인권센터에서 접한 상담 중에는 다른 여군들의 성폭력 피해문제를 상담하거나 성적 스캔들을 일으킨 룸메이트를 둔 여 부사관이 성적인 문제와 관련한 소문과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가 결국 강제 전역할 처지에 놓인 사례도 있다. 실제적인 피해자가 아닌데도 여성으로서 성과 관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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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군기 위반이라는 넌센스

 

  한편 군에서는 성폭력 문제를 성군기 위반 사건으로 보고 있다. 성군기라는 말 자체가 넌센스다. 성이 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이 문제다. 성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데 이것을 군기의 대상으로 보고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은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다. 또한 성군기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모호함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을 무화시키고 나아가 피해자를 군기를 어지럽힌 장본인으로 책임 전가할 여지마저 있다. 무엇보다 성군기라는 말 속에는 성폭력이 범죄행위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호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다. 호명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정치적 요구를 하는 행위다. 집안일을 가사노동이라고 호명하는 순간 여성들이 하는 가사 활동이 개인적인 잡일을 넘어서 사회적인 노동의 의미를 획득하듯이 성군기라는 말을 군성폭력이라고 하는 순간 군에서 발생하는 성적 괴롭힘은 범죄행위가 된다. 성군기를 표현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부분이다.

  여군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올 것인가? 여군 창설 65주년과 여군 1만 명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군의 현실은 참으로 갑갑하다. 군은 여군을 동일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하거나 무시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전투력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성폭력을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엄단하겠다는 육군참모총장의 말은 눈여겨 볼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자정능력을 상실한 군에게 온전히 이 문제를 맡겨도 되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이다. 군에서 일어나는 구타 가혹행위 뿐만 아니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로 문을 열어야 한다. 외부의 감시와 통제가 없으면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시늉일 뿐이다.

 군 성폭력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다. 문제 있는 개인만 골라내서 처벌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조건은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전체 여군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전 여군을 대상으로 성폭력 및 성차별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실태조사는 일회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군 당국은 무엇보다 성평등적인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성평등교육과 인권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피해자 되지 않기 교육보다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수사와 재판은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성역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사단계 부터 사건 종료 후 보상단계까지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법제도적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 실효성 있는 성폭력예방교육, 피해자전담수사관 도입과 피해자와 증인 신상보호, 피해자(일시)보호시설, 2차 가해방지 체계, 판결문에 군성폭력 가해자의 신상정보공개등록과 고지 명시화, 합리적인 피해자 보상체계, 피해자의 사회적 복귀를 위한 정서적 치유가 보장되야 한다.

 

 오대위와 여군들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

 

  이것이 오 대위와 여군들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미뤄두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지금껏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내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숙제를 미뤄왔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자. 혼자하기 힘든 숙제라면 나눠서 하면 된다. 여군의 안정 없이 우리의 안보 또한 없다. 오늘의 여군 눈물이 내일의 내 눈물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군들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런데 시민들의 감시 없이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다. 결국은 시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 대위가 죽어가면서 남겼던 글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오 대위의 마지막 목소리는 성폭력 피해를 당했거나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모든 여군들의 목소리기 때문이다.

 글/ 정현환 디펜스 21 플러스 기자 dondevoy8612@naver.com,

사진/ 박승렬 사진작가 reol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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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강제 폐간, "이름바꿔 다시 창간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2/28 10:36
  • 수정일
    2015/02/28 10: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961년 민족일보 폐간 이어 두 번째… 이정섭 대표 “표현의 자유 침해, 민주주의에 사형 집행”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대법원이 인터넷 신문 ‘자주민보’의 폐간을 결정했다. 대법원은(재판장 김창석) 지난 13일 인터넷신문등록취소 행정소송 재항고를 기각했다. 자주민보는 지난 25일 논평을 통해 “대법원이 상고심마저 심의도 하지 않고 기각했다”며 “남북 평화 통일염원을 무참히 짓밟고 민주주의에 사형집행을 감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자주민보가 이적표현물을 게재했다는 이유를 들어 인터넷신문등록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방법원은 지난해 6월 인용결정을 내렸고, 자주민보는 이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 역시 기각했다. 

1·2심 재판부가 밝힌 인용이유는 “자주민보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내용의 기사가 반복적으로 게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며 “재항고를 기각한다”고 판단했다.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는 “입법부와 보수단체가 자주민보를 종북 신문 운운하면서 서울시를 압박해 발생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보수단체 블루유니온(대표 권유미)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 블루투데이(발행인 권유미)는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재작년(2013년) 최고위원회의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 국정감사 등을 통해서 자주민보 등록을 취소시키지 않고 미적거리는 서울시의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 (사진=이정섭 대표 제공)
 

지난해 검찰은 이정섭 대표가 자주민보에 작성 보도한 이적표현물 153건(한국의 언론과 북언론을 인용한 기사), 개인 블로그에 올린 이적성문건 53건(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내용의 북관련 글), 자작시 등 이적성문건 6건 등을 올렸다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이정섭 대표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법적인 논리로 진행된 판결이 아니라 명백한 정치적 압력”이라며 “자주민보 기사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별개로 사법부가 처리하면 되고 현행법을 지키겠다고 변론문을 통해 밝혔지만 재판부는 우리 입장은 판결문에 언급조차 하지 않고 폐간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자주민보가 폐간될 것 같은 분위기라서 지난 11일 ‘자주일보’를 서울시에 새로 등록했다”며 “자주민보가 없어지면 자주일보를 통해 통일과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겠다”고 밝혔다.  

   
▲ 27일 현재 자주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지난 25일 자주민보폐간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주민보 폐간 결정은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정치적 반대세력 동족대결세력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하는 세력에 의해 자행됐다”며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같은날 자주민보도 논평을 통해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서 딱 한번 있었던 민족일보 폐간에 이어 두 번째 언론사 폐간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보수매체 블루투데이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다시 서울시를 압박하고 나섰다. 27일 블루투데이는 <폐간된 종북매체, 이름만 바꾸고 재창간…“모진 탄압도 진리의 붓대는 못꺾어”‘황당’>에서 “자주민보의 등록취소심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직전 자주일보의 신규등록을 허용해준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도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문제는 자주민보의 대표가 대법원 판결 전인 지난 1월 유사 명칭인 ‘자주일보’라는 신문을 다시 서울시로 등록했고, 폐간된 신문에서 로고만 뺀 채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웹사이트 주소로 다시 활개 치고 있는 것”이라며 “박원순 시장은 지금이라도 새로 등록한 ‘자주일보’의 등록을 반려 취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주민보는 2000년 5월 월간 자주민보(이창기 발행인겸 편집장)로 창간됐고, 2002년 9월 월간 '우리'로 개편됐다가 2003년 9월22일 인터넷 언론으로 개편됐다. 창간당시 대표인 이창기 편집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1년 6개월만인 2013년 8월 출소했고, 현재는 이정섭 대표가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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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보고서’… <쓴맛이 사는 맛> 출간

[신간소개] ‘채현국 보고서’… <쓴맛이 사는 맛> 출간
 
 
 
정운현 | 2015-02-27 12:52: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배운 거라곤 몇 자 쓰는 재주밖에 없는 저입니다. 때론 친일파 공부한 것을 간추려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때론 관련 번역서를 몇 권 내기도 했습니다. 백수가 된 이후로는 호구지책으로 이런 저런 잡서를 더러 쓰기도 했습니다. 책을 낼 때마다 종이 낭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작년 초 <한겨레>에 실린 인터뷰를 보고 채현국 선생(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을 흠모하게 됐습니다. 이 시대에 그만한 ‘어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흙 속에 묻힌 진주와 같은 분이라고나 할까요. 작년 여름 양산에 가서 직접 뵙고는 선생과 관련한 책을 한 권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본디 게으른 탓에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야 겨우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이번에 비아북에서 펴낸 책의 서명 <쓴맛이 사는 맛>은 효암고 정문에 서 있는 바윗글에서 따온 것입니다. 원래 이 바위는 효암고 교명을 새기려고 했던 것인데 한쪽 귀퉁이가 손상되면서 이런 용도로 사용하게 됐다고 합니다.

평소 이 글귀를 눈여겨 본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싶습니다. 흔하다면 흔한 표현이고 철학적이라면 또 철학적입니다.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글이 비관론이 아니냐는 질문에 선생은 ‘적극적인 긍정론’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쓴 맛조차도 사는 맛이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지며, 그게 다 사람 사는 맛이라고 합니다.

채 선생은 겉으론 평범해 보이면서도 결코 예사롭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격동의 80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학식이나 재력에서 부족함이 없는 분이지만 겸손하고 늘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오셨습니다. 그런 분의 삶을 제가 제대로 그려냈는지 저어합니다.

여기서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책 ‘서문’과 ‘목차’를 통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 내용 등을 소개할까 합니다. 채 선생의 ‘평범 속의 비범’ 같은 삶의 교훈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또 삶의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서문] ‘꼰대’가 아닌 ‘어른’을 만나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우리 사회에 ‘자신의 경험을 후대에 전승하고 조언을 주고, 참조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잔소리와 설교를 일삼는 ‘꼰대’에게 사회적 존경이 따라올 수는 없다. 그러나 굴종과 타협을 강요하던 시대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고, 질곡의 시대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경남 양산 소재 효암학원의 채현국 이사장은 기존에 알고 있던 실망스러운 어른들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채 선생은 2014년 초 언론 인터뷰를 통해 널리 세상에 알려졌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인터뷰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어떤 이는 채 선생 같은 분이 이 시대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감격스럽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뜨거운 반응은 ‘제대로 늙은 어른’에 대한 갈증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무엇보다 어른들을 ‘꼰대’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늙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씌어졌다. 이 책은 ‘채현국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을 작년 여름에 처음 뵌 이래 일곱 차례 정도 만났다. 네 차례 독대를 했으며, 더러는 모임에 합석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면에 이어 채 선생의 강연과 각종 인터뷰 내용 및 관련 자료, 그리고 지인들의 증언을 모두 모아 선생을 살펴봤다. 말하자면 ‘뒷조사’를 한 셈이다. 평소 선생이 자서전이나 평전 쓰는 것을 극구 싫어해 구술과 기록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1장은 관찰, 2장은 전언(傳言), 3장은 자전(自傳)의 형식으로 선생을 기록했다.

1부(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에서는 대중들이 선생에게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 이 시대에 ‘채현국’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았다. 말하자면 ‘왜 지금 채현국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2부(분노하라 저항하라)에서는 교육자로서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담았다. 유행하는 ‘힐링’이나 ‘상담’이 아닌 온몸으로 겪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인생 훈수가 가득하다. 3부(비틀거리며 살아왔지만)에서는 선생의 지나온 삶을 통해 선생의 인간적 면모를 기록했다. 천부적인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성장사, 경영자로서, 그리고 현재 교육자로서 선생의 지나온 삶을 육성으로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자전(自傳)의 형식으로 기록했다. 선생은 스스로 일관되게 표현하듯이 위인도 영웅도 아니다. 그러나 선생의 삶과 행동, 말은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서 청춘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도 남을 것이다.

내가 만나 뵌 채 선생은 소탈하면서도 재미있는 분이었다. 파격적이고 괴팍한 기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삶의 철학이 건강하고 확고한 분이었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고 말의 일관성이 있는, 보기 드문 어른이었다. 특히 80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고 파격적인 언동은 기록하는 이를 몇 번이나 깜짝 놀라게 했다.

선생의 삶을 짚어보고 기록하면서 선생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선생은 사업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에도 민주화운동가와 불우한 벗들을 남몰래 도와주었고, 탄광사고 피해자들에게는 계열사를 전부 팔아 보상해주었으며 사학재단을 운영하면서는 교육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시대의 어른’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있는 분이다. 관념과 자기계발로서의 ‘조언’과 ‘충고’가 아닌 직접 몸으로 겪고 증명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어른의 진심 어린 가르침을 듣고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과 이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

2015년 2월
기록한 이, 정운현

▲효암고 정문 바위에 새져겨 있는 ‘쓴맛이 사는 맛’ 글귀

[목차]

1부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
- 어른에 대한 갈증을 풀다

어른을 만나다 
봐주지 마라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진 않았다 
어른에 대한 갈증 
정답은 없다. 해답이 있을 뿐
‘쓴맛이 사는 맛’이라니 
돈이 신앙이 된 세상 
재산은 세상의 것
돈은 누가 벌어다 주는가
책 쓰는 것은 뻔뻔한 일
진정한 언론인
왜 ‘거리의 철학자’인가
거짓말이란 ‘거지의 말’
비틀거리며 산 인생
시시하게 살면 행복해진다
세상에 나 정도 어른은 꽤 있다 
음지에서 민주 인사들을 뒷바라지하다
하필이면 ‘지성(至誠)’인가 
상대방 입장에서 알려주라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 
권력도 지식도 중독된다
꽃보다 노년, 폼 나게 늙기

2부 
분노하라 저항하라
- 이 땅의 청춘들에게

묻고 배우고 깨우치는 삶
내 인생에 좌우명은 없다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인가
인생의 우선순위
집착은 어떻게 끊을 수 있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청춘의 방황 
공부는 왜 하는가
불의를 보면 떨쳐 일어나라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임금노예가 되지 말라 
멋있는 사람
세속적 욕망
고정관념에 대하여
교육이란 무엇인가
자식 위한다는 치사한 소리 말라
추하지 않게 늙는 법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

3부 
비틀거리며 살아왔지만
- 나의 삶, 나의 벗

‘천부적 사업가’ 아버지 채기엽
‘좌익’ 친형, 휴전협정 당일 자살
입사 3개월 만에 그만둔 첫 직장
시국사범 피신처, 도계탄광 
회사 팔아 피해자 보상
효암학원과 인연을 맺다
좋은 학생만큼 좋은 교사 길러야
‘불이(不二)’가 아호가 된 사연
서자가 서자의 고충을 안다?
오래 사귄다고 정(情) 안 깊어져 
내 ‘또 다른 영혼’ 화가 이우환 
내가 읽고 마음에 담은 문인들
추억의 ‘인사동 사람들’
사돈이자 친구, 임재경
‘낭만주먹’ 방배추와 협객 박윤배
나의 벗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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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조작 국가범죄 청산을 파탄시킨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고발장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2/27 [11:4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한 아람회사건 피해자 이재권의 묘     ©자주민보

 

26일 대법원은  2012년 10월18일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가 판결한 ‘아람회사건’ 피해자 박해전 황보윤식 김창근의 일실수입 배상액 24억5천만원을 모두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9년 서울 고등법원은 “오늘 그 시대 오욕의 역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을 본 재판부의 법관들은 가슴깊이 되새겨 법관으로서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면서, 선배 법관들을 대신하여 억울하게 고초를 겪으며 힘든 세월을 견디어 온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힌다. 피고인 망 이재권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쉬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이 땅에서의 여생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히고 2012년 민사재판에서 24여억원의 보상판결을 내렸는데 이 보상판결을 무효화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인혁당조작사건, 진도간첩조작사건 등에 대한 배상 판결도 모두 무효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급된 배상금마저 반환시키겠다며 자택에 압류를 가하는 등 반인권적 판결과 탄압을 가하고 있다.

 

지금도 독재정부의 살인적 밀실 고문 수사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탄압을 다시 가하고 있는데 대해 관련 피해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국민들 속에서는 대형참사, 세금인상, 공안광풍 등 나라가 나라 꼴이 아니라는 한탄과 분노가 이곳 저곳에서 마구 터져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 나온 아람회사건 관련 대법원의 판결도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분노를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그 관련단체에서 발표한 고발장이다.

 

 

고문조작 국가범죄 청산을 파탄시킨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고발장

- 반인륜적 고문조작 국가범죄 청산을 짓밟은 만행을 정당사회단체와 유엔인권이사회에 고발한다


우리는 오늘 고문조작 국가범죄 ‘아람회사건’의 피해자 일실수입 배상액 전부를 파기한 대법원 선고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반인륜적 고문조작 국가범죄 피해자들로서 과거 청산의 대의를 짓밟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만행을 정당사회단체와 유엔인권이사회에 고발한다.

 

대법원은 2015년 2월 26일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가 2012년 10월18일 판결한 ‘아람회사건’ 피해자 박해전 황보윤식 김창근의 일실수입 배상액 24억5천만원을 모두 무효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람회사건’ 피해자 박해전 황보윤식 김창근은 1980년 5.18 광주학살 책임자 전두환의 심판을 촉구하다가 5공에서 반국가단체로 고문조작돼 옥고를 치르고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오기까지 30년 동안 반국가단체 굴레에 묶여 자신들이 몸담았던 공직에 서지 못하고 한평생 고통을 받아왔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아무런 문제 없이 인정했던 일실수입 배상을 뒤늦게 파기하고 ‘광주민주화보상금’ 구실을 붙여 소를 각하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5월 21일 ‘아람회사건’ 재심 무죄판결문을 통해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에 대한 소박한 신념을 가진 교사, 대학생, 마을금고 직원, 검찰공무원 등 각자의 직역에서 일상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에 불과하였던 피고인들이 이 사건 재심대상 재판 과정에서 국가기관에 의하여 저질러진 약 한 달간의 불법구금과 혹독한 고문 끝에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조작 둔갑되어 허위자백을 하였다고 절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재심대상 재판 당시 법관들은 그 호소를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며 “오늘 그 시대 오욕의 역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을 본 재판부의 법관들은 가슴깊이 되새겨 법관으로서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면서, 선배 법관들을 대신하여 억울하게 고초를 겪으며 힘든 세월을 견디어 온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힌다. 피고인 망 이재권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쉬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이 땅에서의 여생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고문조작 국가범죄 등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는 소멸시효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게 국제법적인 원칙이다. 반인륜적 범죄 공소시효 배제조약이 유엔 총회에서 1968년 11월 26일 총회결의로 확인되고 1970년 11월 11일 발효되었다. 이에 따라 반인륜적 고문조작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은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가해자가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과거사청산법에 의거한 국가진실화해위원회 결정과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고문조작 국가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이러저러한 부당한 구실을 붙여 연이어 파기했다. 이러한 만행은 국가가 약속한 과거청산의 대의를 짓밟는 또 하나의 불의한 국가범죄이며 국가폭력이다.

 

대법원은 ‘아람회사건’ 피해자 일실수입 배상 파기에 앞서 2015년 2월 8일에도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한 ‘아람회사건’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상액 16억2000만원을 모두 무효로 만드는 취지의 선고를 내렸다.

 

대법원은 2011년 1월 13일과 27일 민법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아람회사건’과 ‘인혁당사건’ 피해자 위자료 배상 기산점을 변경해 서울고등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을 3분의 1로 줄였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청구한 원금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지 않고 파기자판함으로써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다. 더욱이 서울고등법원 결정으로 가지급금을 받은 ‘인혁당사건’ 피해자들은 국정원의 반환청구소송에 시달리고 자택이 압류되는 참변을 겪고 있다.

 

1, 2심이 판결한 ‘2차진도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박동운의 배상액 17억원을 대법원은 2015년 1월 18일 모두 무효로 돌리는 선고를 했다. 고문조작한 간첩의 누명을 쓰고 16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 뒤에 2009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은 소송 진행 중에 갑작스럽게 판례를 바꿔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한을 남기게 했다. 민법에 정확히 규정되어 있는 기존 3년 시효를 버리고 대법원이 2013년 12월 ‘6개월 시효 판례’를 새로 만들어 적용했는데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반인륜적 고문조작 국가범죄 청산을 굴절시킨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며, 국제법적 기준에 따라 우리의 한많은 고통을 풀어주기를 정당사회단체와 유엔인권이사회에 호소한다.

 

이 땅에서 다시는 고문조작 등 반인권 국가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배제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와 함께 ‘고문조작 국가범죄 완전 청산 특별법’을 제정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부당하게 짓밟은 우리들의 고문조작 국가범죄 피해 배상을 해결해주기를 촉구한다.

                                             2015년 2월 26일


                                     고문조작국가범죄청산운동연대(준)

                                      공동대표 박해전 황보윤식 김창근 
                               김현칠(고문조작국가범죄아람회사건피해자모임)
                    공동대표  전창일 이창복(고문조작국가범죄인혁당사건피해자모임)
                        공동대표  강상기(고문조작국가범죄오송회사건피해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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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국수' 권하는 박근혜 정부"

 

[주간 프레시안 뷰] "강남 재개발 투기 열풍, '찻잔 속 태풍' 그칠 것"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 창립 추진위원 2015.02.26 18:43:46

 

"불어터진 국수"
 
"지난번 부동산 3법도 작년에 어렵게 통과됐는데 비유하자면 아주 퉁퉁 불어터진 국수".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23일 수석비서관회의) 입니다. 이어서 또 "그것을 그냥 먹고도 경제가, 부동산이 힘을 좀 내가지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되고 집 거래도 많이 늘어났다"며 "불어터지지 않고 아주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는가"라며 한탄까지 했죠. 
 
이 "불어터진 국수"는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어떤 이는 국민은 불어터진 국수라도 많이 먹기를 원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서민은 그런 국수 한 가닥도 먹지 못했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대통령 지지자들은 절묘한 비유라고 환호를 보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부동산 3법 덕분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둘째, 서비스발전 기본법, 의료법 개정안, 관광진흥법 등 규제완화와 관련한 법들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셋째, 앞으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건 야당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우선 "불어터진 국수"=부동산3법이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 2017년까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의 유예, 그리고 재건축 조합원 주택수를 3주택까지 허용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말합니다. 누가 봐도 건설 경기를 부추기려는 정책들이죠. 
 
이 부동산 3법은 작년 12월 29일 본 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지금은 총리가 된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나섰습니다.  "부동산 3법 의결과 관련하여 야당 측에서 반대 토론과 함께 반대 표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 소속 의원님은 한 분도 빠짐없이 지금 즉시 본회의장에 입장하시어 찬성 표결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문자를 보냈죠.  
 
과연 새해 들어 첫째, 재건축 아파트를 둘러싸고 투기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근접하고 심지어 매매가격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면서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 말을 따라 집을 사는 사람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5년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0.35% 올랐습니다. 서울에서는 서초(0.86%), 강동(0.78%), 강남(0.48%), 송파(0.47%) 순으로 실제 매매가격이 올랐는데 하나 같이 재건축이 유력한 지역이죠. 곧 조합이 구성될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는 아예 매물이 자취를 감췄답니다. 한편 강북의 노원(0.44%), 서대문(0.36%), 강서(0.35%), 성북(0.34%)의 경우는 중소형 아파트 위주로 값이 올랐는데 이 경우는 두 번째, 즉 전세의 매매 전환에 따른 가격 상승이겠죠.  
 
문제는 전세시장입니다. 서울(1.63%), 신도시(0.56%), 경기·인천(0.84%)이 모두 올랐는데 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재건축을 하면 기존 주민들이 집을 구해야 하니까 앞서 말한 첫 번째 재건축 지역의 전셋값은 3%p 이상 오르고 있습니다(☞ <건설타임즈> 부동산시장 '봄바람' 강남권 아파트값, 매매ㆍ전세 쑥쑥↑).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4년 12월 말 전국 아파트의 전셋값과 통계청의 2014년 2인 이상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을 비교해 보면, 서울의 전셋값 평균은 3억3849만원으로 지난해 도시 근로자 가구의 연소득 5682만원의 5.96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근로자가구 6년치 소득). 서울의 소득 대비 전셋값 비율은 2004년 4.13이었는데 10년 만에 1.83이나 더 오른 겁니다. 한 푼도 안 쓰고 6년을 모아야 겨우 전세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과연 정상일까요? 
 
한편에서는 또 다시 "대박의 꿈"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민들의 "밀려 밀려 주택 구입"이 집값 상승과 이보다 더한 전셋값 상승을 부르고 있는 겁니다. 이게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환호작약할 현상일까요? 나아가서 주택시장 규제 철폐에 이어 의료와 관광 서비스 산업 규제철폐가 과연 서민들에게 "먹음직한 국수"일까요?  
 
"독이 든 국수"  
 
이런 국수는 한 가닥이라도 먹으면 배탈이 나고, 배부르도록 먹으면 목숨마저 위험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전혀 국수에 손도 안 댄 일반 시민마저 폭탄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부는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는 기대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과연 앞으로도 집값이 계속 오를 수 있을까요? 30년 이상 경제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장기적인 인구구성의 변화, 장기 경제성장율 추이, 단기 경기 예측 모든 면에서 단호하게 "No"입니다. 
 
박정희 시대 이래 한국 경제정책 기조였던 수출-투자주도 성장은, 세계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미국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번엔 중국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유럽은 EU의 붕괴마저 걱정하고 있을 정도인데 어떻게 투자가 과거처럼 두자릿 수 증가율을 보일 수 있을까요? 2년째 원화 표시 수출 금액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수출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소득과 소비 증가율 역시 추세적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2.1%였고, 소비증가율은 이보다 더 낮아서 1.5%에 그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빈부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쓰지 않는 한 소비가 늘어날 전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언제, 얼마나 인상할지가 문제입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고용을 중시하는 학자 출신이라서 조기에(예컨대 6월에) 큰 폭의  인상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 화요일(24일, 미국 시간) 미 상원 은행소위에서 옐런 의장은 적어도 3월과 4월의 두 차례 공개시장위원회(FOMC, 우리의 금융통화위원회에 해당)에서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며, 이른바 '선제 안내'(forward guidance) 용으로 사용했던 "신중하게(patient)"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도 금리인상의 신호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위원회가 열릴 때마다("meeting by meeting basis") 금리인상을 고려하겠다고 밝혀서 경제상황에 따라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미국 금융시장은 6월이 아닌 9월이나 10월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으로 해석했습니다).  
 
 
문제는 현재 한미간 2%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 때,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입니다. 지금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거시건전성규제 3종 세트를 강화하고 미리 금리를 낮춰서 자본유입을 줄여야 할 텐데 박근혜정부는 오히려 거시건전성 규제를 완화할지도 모릅니다. 사후에 자본유출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를 따라 올린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GDP 대비 가계부채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꿈틀대기 시작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갈 거라고 예측하는 건 망상에 가깝습니다. 
 
현재 강남 재개발 지역 투기 열풍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만일 시중의 유휴자금을 건설로 유도하고 중산층에게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정책이 성공한다면 그건 "독이 든 국수"가 될 겁니다. 빚을 더 내지 않고, 평생 살 집을 사는 건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금리가 낮다고 빚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건 "독이 든 국수"를 먹는 겁니다. 문제는 그 국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일반 시민마저 폭탄을 맞게 될 거라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서 의료법 개정이나 서비스발전 기본법 등 남아 있는 국수는 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습니다. "제발 경제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 대통령에게 품는 단 하나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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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붕괴의 21가지 징후

[대한민국 붕괴의 21가지 징후] ① 대한민국 불신공화국
 
곽동기  | 등록:2015-02-27 11:03:41 | 최종:2015-02-27 11:06: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우리나라에는 ‘이웃사촌’이란 정겨운 말이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들이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이웃사촌이란 말은 정에 넘쳐 서로 돕는 한국사회의 정서를 상징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지난 90년대, <MBC> 일요일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이 기억나시는가요? 온 국민이 시청했던 그 드라마는 “순돌 아범”, “말자씨” 등 숱한 화제의 인물들을 낳았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들의 ‘이웃’은 그야말로 고향의 친지들보다 소중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동반자들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 한국사회에서 이웃사촌은 어느덧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웃사촌은 고사하고, 우리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이웃과 친하게 지낸다는 분들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같은 동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정도입니다. 서로의 이름이 무엇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보기도 참 어색합니다. 혹여나 자녀들의 초등학교 행사 때 학급어머니회 등에서 같은 동네 학부모들을 만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학부모들도 자녀의 교육이 관심사일 뿐, 직업이 무엇인지,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은 자칫 “오지랖 넓다”는 소리 듣기 딱 알맞습니다. 저도 우리 아파트 동에서 제가 알고 지내며 인사하는 집은 세 가족에 불과합니다.

옛말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습니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5년 우리 주변에는 기쁨을 함께 나눌 이웃도 없고 고통을 함께 견뎌 줄 이웃은 더욱 없습니다. 
  
바로, 소통과 공감을 개입과 간섭으로 치부하는 정서. 한국사회에서 끝없이 자라난 개인주의 때문입니다. 


자기 세계에 갇힌 우리들

한국사회는 개인주의에 대한 선망이 너무 과도합니다. 오죽하면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이 인기를 끌 정도이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이 모두 비정상도 아닐텐데 차가운 사람이 왜 끌리는지요. 그것은 바로 개인주의 때문입니다. 

개인주의에 심취하면 사람들은 자기와 관계있는 사안에 관심을 가질 뿐 사회적 문제에 소홀해집니다. 이렇게 지낸지가 이제 어느덧 20년째입니다. 지난 20년간, 우리 모두는 사회에 대한 관심은 끈 채로 자기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우리들의 세계는 갈수록 좁아졌습니다. 이웃이 없고 인간적인 대화가 사라진 지금, 우리들의 친구는 직장동료, 학교선후배 정도로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습니다.

이젠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누구나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하고, “쿨”한 이미지의 사람을 스마트하게 평가합니다. 회사상사에게 자기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며 휴가를 부탁하는 사람, 자기 생일이라며 직장 동료들을 술집으로 끌어모으는 사람은 “인간미”있는 사람이 아니라 “피곤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어느덧 우리가 개입하고 책임지려는 대상은 “사회”가 아니라 “가족”에 국한되었습니다. 그 가족조차도 사춘기 이전의 자녀들에게만 가능할 뿐입니다. 자녀가 사춘기에 들어서면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것”이라는 암묵적 위계가 형성됩니다. 결국 이렇게 사람이 북적대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우리는 혼자입니다. 그렇게 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기세계에 갇혀 대한민국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퇴직한 노인들은 종편TV와 신문기사를 통해 젊은이들의 정서를 판단합니다. 가정주부는 TV와 시장물가지표만으로 정치권을 평가합니다. 학생들은 아르바이트와 고시원 들락거리기 바빠 정치에 관심자체가 없습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지금, 우리가 느끼는 여론은 실제로는 공중파 TV 출연자들의 의견입니다. 그렇게 20년을 살았습니다.


남을 이해할 여유가 없는 우리들

모두가 철저히 고립된 오늘의 모습은 우리가 스스로 원했던 모습은 아닙니다. 한국사회가 너무 각박해지고, 우리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져서 각자가 외톨이로 된 것입니다.

철저히 고립된 개인주의적 생활 속에서 우리는 남을 이해할 여유도,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자기 일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2015년의 한국사회에서, 이제 남에게 관심을 가지려는 것조차도 하나의 사치로 느껴집니다.

우리 국민들은 잠을 제대로 잘 시간도 없습니다. 2009년 우리 국민들의 하루 평균수면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OECD> 최하위였습니다. 7시간 49분이면 많이 자는 것이라고요? 여러분이 얼마나 잠을 못 자며 생활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하루 평균 8시간 50분을 자고 미국사람들은 하루에 8시간 38분을 잔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도 8시간 12분을 자며 팍팍하다고 소문난 일본인들도 하루 평균 7시간 50분을 잔다고 합니다.

수면부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1년 전인 2014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 27분으로, 2009년에 비해 1시간이나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고등학생들의 69.5%가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직업의 업무강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월간 마이더스> 2010년 10월호에 따르면,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직장인은 자신의 직무에 만족하는 비율이 69%로 OECD 평균 81%에 크게 못 미치게 나타났습니다. 멕시코가 92%에 이르며 미국은 82%인데 반해 한국은 최하위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에 대해 ‘항상’, ‘자주’, ‘때때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직장인은 전체의 87%로 한국이 가장 높았습니다. 멕시코는 60%에 불과하였고, 일본이 72%, OECD 평균도 78% 수준이었던 것이죠.

결과적으로 우리 직장인들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직무만족도는 가장 떨어지며 직업스트레스는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에서 잠도 제일 부족하고 자기 일에 만족도도 제일 낮으며 직업스트레스는 가장 많이 받는 한국인들, 우리는 자연히 불신사회, 분노사회로 진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직종 사람들을 믿지 못함

타인에 대한 관심도 없고, 자신에 대한 관심만 늘어난 우리 국민들은 이제 자신과 다른 위치의 사람들을 믿지 못합니다. 각자 자기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보니, 자기 일이 제일 힘들게 느껴지고 그런 자기를 알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에게 불만을 느낍니다. 개개인이 고립된 지 20년, 이제 한국사회는 각종 불신과 분노의 기재가 전면화되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저녁마다 꼭꼭 퇴근하는 아파트 상가점주들이 부럽습니다. 하지만 상가점주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대출이자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입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일하는 듯 보이는 아파트 경비원이 참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편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서로의 고충을 주고 받을 소통의 기회가 있다면 “아 나도 그렇지만 저 사람도 참 힘들구나”하고 서로 힘을 합쳐 나갈테지요. 그러나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 지으며 사생활을 언급하지 않는 것을 하나의 멋으로 여기는 개인주의적 정서가 지속되다보니 우리 국민들은 어느덧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힘들다는 고립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사회적 지위가 보다 낮은 이에게 해소하는 이른바 “갑질”이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실제로는 우리 국민 모두가 못 견디게 힘든 상황인데 말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며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것을 멋있게 느끼다보면, 어느덧 주변 이웃들의 생활의 진면목을 알 수 없습니다. TV에서 화려하게 가공된 사람들만 접하다보면 이 사회 모두가 행복한데 자기만 힘들다, 나만 패배자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 역시 차도남을 동경한 지 20년 만에 생긴 사회현상입니다.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악순환

그러다 보니 우리 국민들은 이제 일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범죄자와 그 집단을 분리하지 않고, 집단 전체에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1월 8일, 인천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4살된 여아를 폭행하는 CCTV 영상이 전국적으로 보도되어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습니다. 2015년 1월 28일, 경기도 의왕경찰서는 어린이집 원생의 머리를 때리는 등 상습 폭행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보육교사 이모(25·여)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아이를 폭행했다며 수많은 부모들이 분노했습니다. “꽃다운 아이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뉴스한국>은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 후 1달간 전국적으로 아동학대가 800건이나 신고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이제 막상 ‘누군지도 잘 모르는’ 보육교사분들에게 아이들을 맡기기가 아무래도 꺼림직해집니다. 아무 근거도 없는, 그저 막연한 불신감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회적 지도층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되 사회적 약자에게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 계층을 이해하는 이중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일반국민은 다수이지만, 사회지도층은 매우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지도층은 단 한명의 범죄자가 여러 공범을 낳을 수 있으며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매우 엄격히 다뤄져야 합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추행 추문에 연루되고, 새누리당에서 친지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국회의원이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단순히 일부의 실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남용의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게서 나타난 일부의 사건·사고는 다릅니다. 한 보육기관에서 아이를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시다. 2011년 당시 수치로 전국의 보육기관이 무려 39,842개가 있습니다. 우린 어느덧 이 4만여 개의 보육기관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처럼 여기지 않나요? 전국에 외국인들이 200만 명이 거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몇몇 외국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200만 외국인을 모두 경계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처사입니까?

이제 TV에서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보도될 때마다 불신의 골은 깊어집니다. 한 외국인이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보도되면 모두들 외국인을 경계합니다. 한 택시기사가 승객의 물품을 훔쳤다고 하면 모두들 주변의 택시기사를 의심하고, 심야의 편의점에 강도가 들었다고 하면 모두들 한밤에 편의점 가기를 꺼립니다. 개인주의에 빠져 소통을 단절한 지 20년 만에, 우린 ‘불신’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공포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주의 20년, 불신공화국

자본주의는 이웃의 사랑과 정을 돈으로 대체하는 냉혹한 체제입니다. 동네이웃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이 집 일, 저 집 일을 도와주는 이들을 “오지랖 넓다”고 힐난하였을 때,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웃과 연계를 단절해도 생활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속칭 돈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이웃과 연계를 단절하면 매우 불편해집니다. 개인주의는 고독과 외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잠깐 마트에 다녀오려 해도 이웃집 할머니에게 아이 잠깐 봐 달라는 말 한마디가 불편해서 주부 혼자서 애를 들쳐 업고 유모차를 챙기다 보니 저녁식사 준비도 땀을 뻘뻘 흘립니다. 개인 사생활을 절대시하는 개인주의는 이렇듯 종종 한심할만큼 비효율적입니다. 

계약직 근무를 시작한 회사원들은 선임자에게 회사근무 분위기를 물어보면 업무에 참 도움이 되겠지만 말 한 마디 부탁하기가 불편해서 온갖 눈치와 코치를 총동원하는 것이 오늘날의 삶입니다.

노터치, 프라이버시, 개인주의는 한 마디로 생활의 스트레스입니다. 주변과 연계를 끊어버리니까 우리가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나는 주변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우리 주변인이 나의 삶에 개입하지 않겠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20년을 살았습니다.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이웃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대한민국은 어느덧 불신공화국이 되어버렸습니다. 10년 전,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30.2%에 불과해 OECD 평균인 38.9%를 크게 밑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처음 만나는 누구도 사람을 믿지 않는 사회를 살게 되었습니다. 불과 100년 전, 사람들이 선량하고 도둑이 없어서 동네 집집마다 대문이 없이 살더라고 이야기되던 ‘인정이 많은 나라.’ 조선은 이제 바로 옆 이웃들도 믿지 못하는 불신 대한민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사회가 부식시킨 “남의 문제에 신경끄고 네 할 일이나 하라”는 개인주의는 우리에게 엄청난 고독감과 외로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계속 지고 가야할까요? 아니면 오지랖을 조금 넓혀서 점점 더 공감하고 함께 소통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할까요? 

인간은 호랑이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입니다. 재산이 많은 자본가가 깐깐해지는 것이야 그들의 업보라고 칩시다. 돈 없는 일반서민이 고독한 까도남을 흉내 내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외로움입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와, 공동체, 우리의 문제에 눈을 뜰 때, 사회적 불안과 불신의 장벽도 걷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국민들이 사회문제에 눈을 감습니다. 사회와 소통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외로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렇게 스트레스에 파묻히고, 건강을 잃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 과연 매력적입니까?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631&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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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영향평가 7등급 판정의 꼼수

4시간 조사 22분 만에 끝낸, 한강청의 '신통한' 능력

[초등학교 옆 난개발을 막아라②] 환경영향평가 7등급 판정의 꼼수

15.02.27 11:00l최종 업데이트 15.02.27 11:0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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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위에 소나무도 아닌데, 왜 참나무들이 철갑을 두르고 있을까?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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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끔찍한 금붕어 실험, 초등학교 옆에서... 제정신인가요?

나무들마다 철갑을 둘렀다. 구멍이 뻥뻥 뚫린 철갑이니 추위로부터 나무를 보호해 주려는 것이 아니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소나무'도 아닌데, 왜 나무들마다 철갑을 둘러씌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를 잘라내려는 이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함이다. 철망을 두른다고 나무를 자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벌목꾼이 철망을 풀기 위해 잠깐의 시간이라도 지체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달려가 벌목꾼들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갑을 두른 나무들은 숲을 지키겠다는 이곳 주민들의 간절한 의사 표현이다. 

이곳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초등학교 앞에 있는 부아산이다. 성인이 두 팔로 감싸기 힘든 굵은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숲을 통째로 들어내는 건축허가가 난 걸까. 용인시 지곡동 주민들은 왜 철망을 씌우면서까지 이 숲을 지키려 싸우는 건지 한 번 살펴보자. 

이게 어떻게 20년 넘은 나무냐고?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신갈나무가 가득한 이 숲에 경기도 용인시가 2014년 9월경 건축허가를 내줬다. 환경영향평가 조사업체인 S사가 '이 숲이 20년 미만의 7등급'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의 8등급 이상이 되면 개발이 불가능하다. 이 곳에는 지하2층, 지상4층의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가 들어올 예정이다. 

주민들이 용인시를 찾아가 조사가 잘못됐다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월 28일 새벽 S사가 벌목꾼들을 동원해 나무들을 베어냈다. 그것도 굵은 나무들만 골라서 말이다. 잘린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 보았다. 둥근 나이테가 40여 개가 넘었다. 4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숲을 지켜오던 나무가 하루 아침에 잘려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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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살이 넘는 굴참나무가 하루아침에 잘려나갔다. 환경영향평가서가 허위 작성된 타당성도 없는 사업 때문에, 40여년간 숲을 지켜 온 나무가 죽음을 맞은 것이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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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이 벌어지기 이틀 전, 현장을 찾은 S사 관계자에게 7등급이라는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같이 올라가 나무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S사 관계자는 이 작은 나무들이 어떻게 20년이 넘었나는 소리만 할 뿐 확인을 거부했다.  

나무를 자른 S사는 참 신통한 능력을 가졌다. 이 숲의 나무들이 어떻게 20년이 넘었냐고 하더니 40년이 넘은 굵은 나무들만 골라 베어냈다. 왜 그랬을까? 주민들의 요구대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게 됐을 때를 대비해 미리 녹지 등급을 낮추어 놓으려는 꼼수가 아니었을까. 잘린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가 되어 재조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행히 잘려나간 나무는 13그루에 불과했다. 새벽 벌목을 한 날, 공사가 시작됐지만 주민들이 숲으로 달려가 벌목꾼들을 몰아냈다. 공사는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그 후 주민들은 이 숲의 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나무마다 철망을 둘렀다. 그것도 모자라 이 추운 겨울에 산 입구와 산 정상에 2개 팀이 24시간 숲을 지키고 있다. 

산림과학과 교수와 환경부의 조사가 왜 다를까? 

지난 3일, 상지대학교 산림과학과 엄태원 교수가 현장을 두 번째로 찾아왔다. 엄 교수는 이날 6명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지름 2cm 이상의 나무들을 조사했다. 엄 교수는 참나무류가 1818그루, 기타 활엽수류가 431그루 등 '총 2249 그루'라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그리고 엄 교수는 "S사의 환경영향평가서가 전문가와의 협의 내용이 부족하며, 이곳은 개발이 불가능한 8등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엄 교수가 다녀간 삼일 뒤인 2월 6일, 한강유역환경청(아래 한강청)에서 현장 재조사를 나왔다. 허위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의 한강청 '협의'가 부실했다는 지난 기사 때문이었다(관련기사 : 초등학교 옆에서 끔찍한 금붕어 실험... 제정신인가요?). 주민들은 한강청에서 재조사를 나왔으니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한강청은 재차 7등급이라며 개발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숲 전문가요 원주지방환경청 환경영향평가 위원이기도 한 상지대 산림과학과 엄 교수의 8등급 판정과 한강청의 7등급 판정. 왜 이런 차이가 난 걸까? 

기자는 엄 교수와 한강청이 현장 조사하던 이틀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을 함께 지켜 봤다. 비밀은 엄 교수와 한강청의 조사 방법과 조사된 나무 수에 있었다. 

엄 교수는 6명의 대학원생들과 세 팀으로 나눠 오전 11시경 조사를 시작해 오후 3시 40분쯤 작업을 마치고, 4시가 넘어서야 늦점심을 먹었다. 녹지자연도 등급 조사에만 4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그러나 한강청이 현장에 도착해 나무를 조사하고 산을 내려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22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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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 도착하여 나무 30그루의 지름을 측정하고, 하산하기까지 총 22분 걸렸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보다 더 부실한 한강유역환경청의 재조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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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청 전문가가 현장에 도착해 S사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담당자들에게 위치를 물어본 게 6일 오전 10시 46분이었다. 몇 걸음 옮겨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며 샘플로 정한 세 곳의 정확한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잘 모른다"였다.

그러자 한강청 전문가는 바로 곁에 있는 나무 지름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10시 56분이었다. 가방에서 나무 지름 측정자를 꺼내 S사 환경평가조사 담당자에게 그 신갈나무 지름을 측정하게 하고, 자신은 그것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이후 차근차근 조사를 하던 한강청 전문가가 지름 측정자로 직접 신갈나무 한 그루의 지름을 측정한 시간이 정각 오전 11시. 그때까지 지름을 잰 나수는 30그루에 불과했다. 그리고 전문가는 자리를 20여m 옮겨 S사가 잘라낸 굴참나무 한 그루의 지름을 잰 후 바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정확히 오전 11시 7분이었다. 

산에 도착(10시 46분)해 위치를 물어본 후, 나무 측정에 5분(10시 56분~11시), 그리고 하산하기 시작한 게 11시 7분이니 조사에 걸린 시간은 22분에 불과했다. 

엄 교수는 세 팀으로 나눠 4시간이 넘도록 총 2249그루를 조사해 개발이 불가능한 8등급이라고 결론내렸다. 한강청은 고작 22분 동안 30그루를 조사하고 개발이 가능한 7등급이라고 했다. 과연 누구의 조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한편 엄 교수 팀은 S사가 잘라낸 모든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이 38년에서 40년 넘은 신갈나무와 굴참나무임이 확인됐다. 그러나 한강청은 단 한 그루의 나이테도 세어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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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지대학교 엄태원 교수는 S사가 잘라낸 나무의 지름과 나이테를 정확하게 조사했다. 대부분 38년에서 40년된 신갈나무와 굴참나무들이었다. S사 스스로 이곳의 나무들이 8등급임을 증명해준 것이다.
ⓒ 엄태원 교수 종합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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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사는 10m*10m 면적의 신갈나무 군락 두 곳과 소나무군락 한 곳을 조사하고 7등급이라고 판정했다. 그런데 한강청은 10m*6m 정도 크기의 한 곳만 조사했다. 허위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보다 더 부실한 한강유역환경청의 현장조사인 것이다. 

한강청이 나무 지름을 조사한 곳은 주민들이 등산로로 사용해 다른 곳에 비해 나무가 적었다. 엄 교수는 이 숲은 나무 밀도가 높은 숲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등산로로 사용돼 나무가 적은 한 곳을 조사한 후 '개발이 가능한 7등급'이라고 판정한 한강청의 조사를 어떻게 믿어야 하나? 면피용으로 현장조사를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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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의 빨간표 한 자리가 한강청 전문가가 단 5분 동안 나무 지름을 조사한 곳이다. 주민들이 등산로로 이용하던 곳이라 다른 곳에 비해 나무가 적음이 사진 속에서도 나타난다. S사가 지난 가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자리를 한 귀퉁이만을 조사하고 7등급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아래 사진에서 보듯, 한강청이 조사한 빨간표 안은 나무가 텅 비워 있으나, 좌측 엔 나무들의 밀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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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인가 '환경파괴 허가부'인가?

주민들이 지난 11일 한강유역환경청을 찾아가 '8등급 숲을 7등급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따졌다. 한강청은 나무 나이만으로 등급을 따질 수 없으며, 나무의 종류와 식생분포도,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변명했다. 

숲의 변화를 '천이'라고 한다. 그 과정은 ①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시기 ② 여러해살이풀이 자라는 시기 ③ 키 작은 나무가 자라는 시기 ④ 소나무와 침엽수 같은 큰키나무가 자라는 시기 ⑤ 소나무가 밀려나고 참나무가 자라는 시기 그리고 참나무를 지나 서어나무 등이 자라는 시기로 나뉜다.

이곳에는 소나무는 아주 극소수이고 90% 이상이 참나무다. 산림 전문가들은 소나무가 사라지고 참나무가 주로 자라는 숲은 인간의 간섭을 극복하고 안정화 단계에 접어 들었기에,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서도 '개발이 어려운 8등급'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한다. 엄 교수는 현장 조사 후 종합 의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해당 지역은 나무 밀도가 상당히 높은 참나무류가 우점하는 숲이며, 아직 숲이 완전하게 안정된 것은 아니지만, 식재된 아까시나무와 소나무의 쇠퇴로 보아 참나무가 우점하는 마지막 천이가 진행 중인 숲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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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태원 교수는 정확한 녹지자연도 등급 조사를 위해 생장추를 통해 이 숲의 가장 표준적인 굵기의 나무의 나이테까지 정확히 조사했다. 생장추를 통한 나이테 조사에서도 21cm에 불과한 굴참나무가 40년이 넘었음을 확인했다.
ⓒ 최병성.엄태원교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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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교수는 지름 2cm 이상의 나무 2249그루를 조사한 후, 나무 굵기대로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지름 10cm 이하의 수목이 975그루, 20cm 이하 913그루, 30cm이하 295그루, 30cm 이상(대경목)이 69본이었다. 또 숲에 자라는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지름 10cm 정도의 신갈나무가 7등급 기준인 20살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7등급(나무나이 20살, 지름 10cm 미만)이 43.3%이고, 나머지 56.7%가 8등급인 숲이라는 결론이다. 

특히 엄 교수는 종합평가 의견서에서 환경부의 사전환경영향평가 매뉴얼을 강조했다. 7등급이라는 S사의 환경평가서조사 결과만으로도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사전환경영향평가 매뉴얼에 따르면, '도시지역의 7등급 이상 숲은 도시 외 지역 녹지자연도 등급 8등급에 해당된다'고 돼있다. 도시 지역의 녹지자연도 7등급 이상은 중점검토대상지역으로 개발을 위한 협의가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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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 숲이 조사 결과 개발이 불가능한 8등급이며, S사가 조사한 것처럼 7등급이라 할지라도 환경영향평가서 조사 매뉴얼 상, 도시지역의 7등급은 8등급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강조한 엄태원 교수의 종합 평가서.
ⓒ 엄태원 교수 종합평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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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 13일 주민들이 한강청에 들어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기준에 도시지역 7등급은 녹지자연도 등급 8등급에 해당되는 중점검토대상 지역이다, 개발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자 한강청 담당 과장은 그러면 어떻게 도시 개발이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 도시 개발은 어떻게 하냐?"는 말이 과연 환경부 공무원이 할 수 있는 말일까? 혹시 국토개발부 직원이 환경부에 파견 나온 것은 아닐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도시 개발이나 도로 건설이라면 주민들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바로 앞산을 깎아내고 콘크리트 혼화제라는 화학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을 꼭 이 숲에 세워야 할까?

'도시 개발은 어떻게 하냐?'는 한강청 직원의 주장처럼 누구든지 돈으로 숲을 사서 개발할 수 있다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연은 우리 곁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죽이기 사업도 환경부가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허가해준 덕분에 가능했다. 4대강 파괴 환경영향평가를 허가해준 당사자들이 아직도 환경부 고위직에 앉아 있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기준만 제대로 지켰어도 4대강사업은 결코 할 수 없었다.  

환경부가 언제까지 국토개발부 산하 기관으로 전락할 것인지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정연만 차관에게 묻고 싶다. 이제 환경부가 정신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도시지역 7등급은 8등급으로 개발이 어렵다'는 환경영향평가 지침을 환경부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환경영향평가법은 왜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환경영향평가가 업자들만 배불려 주는 일이라면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낫다. 

환경부 장관은 초등학교 앞산을 헐어 버리고, 매일 유독성 화학물질로 콘크리트 강도를 실험하는 혼화제를 개발하는 시설이 과연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곡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숲을 지키고, 아이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오는 27일 법원에 공사 중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 또 난개발 방지를 위해 잘못된 환경영향평가서를 협의해준 한강유역환경청 직원들을 직무유기로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이 기회를 통해 환경을 지키는 본연의 환경부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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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의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협의 덕에 초등학교 앞산이 몽창 잘려나간다. 사라지는 숲 면적이 초등학교보다 더 넓다. 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매일 화학약품으로 콘크리트 강도를 실험하는 시설이 들어섰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울고 있는 나무를 위로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자. 환경부와 용인시와 S사의 각성을 촉구한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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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초등학교 앞산을 헐어내고 건축하는 기업의 연간 순이익이 2012년 13억원, 2013년 37억원인데 부채가 296억원으로 자산 대비 부채비율 141%로 기업 신용도가 '불량'으로 평가된 기업입니다. 기업 평가서에 따르면, 수익성 '하위', 안전성 '하위', 성장성 '최하위' 등으로 대부분의 분야에서 기업평가가 '불량'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순이익 37억원의 보잘 것 없고, 부채가 많은 기업이 150억원짜리 연구소 설립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그 안에 감춰진 문제점들을 상세히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용인시의 잘못된 허가 과정도 그 다음에 이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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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버로 난방하고 온수로도 쓴다

 
조홍섭 2015. 02. 26
조회수 3051 추천수 0
 

구글·아마존, 태양광·풍력 등 클린에너지로 전기 공급 구상

네이버 데이터센터 자연풍·차가운 심층수 등으로 서버 냉각 

 

data1.jpg» 춘천에 있는 네이버의 데이터 센터 각 내부 모습. 사진=NHN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해도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된다. 검색지시가 네트워크를 타고 먼 데이터 센터의 서버를 움직이는데 전기가 들기 때문이다. 구글은 검색 한 번에 0.2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최대 검색사이트인 네이버엔 하루 평균 6억4000만 차례의 검색요청이 온다. 검색뿐 아니라 동영상, 음악,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메일 등을 할 때 우리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어딘가 멀리 떨어진 데이터 센터의 서버를 움직인다.
 

네이버의 서버 9만대를 관리하는 강원도 춘천 데이터센터의 공기는 이들이 내는 열로 50도까지 달궈진다. 아파트 9만 세대가 쓰는 양의 전력이 고스란히 열로 바뀌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센터가 2013년 바람길인 구봉산 자락에 들어선 까닭은 자연풍으로 열을 식히기 위해서였다. 이 밖에도 안개 분사, 심야전기를 이용한 빙축열, 인근 소양댐의 차가운 심층수 이용 등 분산형을 통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도 서버를 냉각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data2.jpg» 최근 지어진 가장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물인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그러나 열을 완전히 재활용하지는 못한다. 사진=NHN

 

세계의 정보통신기술 업계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항공산업에 필적해 세계 배출량의 2~3%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양은 앞으로 5년마다 곱절로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굴지의 정보기업들은 앞다퉈 정보센터를 추운 곳으로 옮기는가 하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애플은 2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20억 달러를 들여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조성하기로 하고, 여기에 드는 모든 전력을 7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해 대기로 했다. 아마존도  지난달 미국 인디애나주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를 세워 데이터 센터의 전기를 석탄화력 대신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마존은 지난해까지 환경단체 그린피스로부터 “가장 더러운 인터넷”을 쓰는 회사의 하나로 지목받던 회사다.
 

네이버의 춘천 데이터센터는 최고 등급의 미국 친환경 건물 인증(LEED)을 받았다. 그렇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여기서 쓰는 전기는 대부분 석탄과 원자력, 천연가스를 태워 만든 것이다. 식힌 열로 온실의 식물을 기르고 도로의 눈을 녹인다지만 폐열의 대부분은 그저 공기 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heater.jpg» 독일 클라우드 앤 히트 사의 서버 겸 난방 캐비닛. 사진=클라우드 앤 히트  

 

그런 점에서 최근 유럽에서 시도되고 있는 분산형 난방 겸용 데이터 센터가 눈길을 끈다. 독일의 ‘클라우드 앤 히트’란 컴퓨팅 회사는 서버를 한 곳에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열이 필요한 사무실 여러 곳에 분산시켜 서버에서 나오는 열을 난방용으로 쓴다.

 

열이 필요하지 않을 때 나온 열은 물을 데워 온수로 저장한다. 이 회사는 서버 캐비닛을 설치한 사무실에 전기와 인터넷 요금을 내 주니 사무실은 공짜로 난방을 하는 셈이다. 열을 오롯이 재활용한 덕분에 이 회사는 ‘녹색 인터넷’을 제공하는 명성을 얻고 냉방 비용을 아낀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가 2011년 제안한 ‘데이터 난로’의 개념이 벌써 실현된 것이다. 이런 디지털 난방에도 약점이 있다. 난방이 필요한데 데이터 고객이 컴퓨터를 쓰지 않거나, 더운데 컴퓨터가 많이 돌아가면 문제가 생긴다.

 

ordenadores-calefaccion-02.jpg» 카르노 컴퓨팅의 서버 겸 난방 라디에이터 모습. 사진=카르노 컴퓨팅

 

독일 회사는 온수탱크를 채용했지만, 더운 날에는 열을 방출해야만 한다. 프랑스 회사 카르노 컴퓨팅도 서버를 난방 라디에이터처럼 가정에 보급해 열원으로 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컴퓨터 능력이 남으면 대학연구소에 무료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채용했다.

 

가정과 사무실 수백곳에 무료로 난방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시장 가격보다 싼 상업 연산 서비스를 친환경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게다가 공공연구에도 기여한다. 공유와 협력의 정신이 엿보인다.
 

지난 연말 방한한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 마이클 슈나이더는 이런 ‘디지털 난방’을 제공하는 기업 사례를 들면서 세계는 핵발전소에 기댄 중앙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에서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분산형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가 당시 문재인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정보통신 혁신의 선두주자인 한국이 왜 에너지 혁명에는 이처럼 무관심한지, 정말 의문입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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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전투기(KFX)사업, 어디로 가나?

한국형전투기(KFX)사업, 어디로 가나?

김종대 2015. 02. 26
조회수 41 추천수 0
 

  KFX모형.jpg

    한국형 전투기(KFX)의 모형

 

   작년 12월 대한항공(KAL)의 최고위 관계자가 독일 뮌헨의 EADS(European Aeronautic Defence and Space Company 범유럽방위항공회사) 본사를 방문했다.  그 자회사인 에어버스 D&S사의 방위사업 담당인 피터 마우스 부사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대한항공과 EADS의 한국형 전투기사업(KFX) 참여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 피터 마우스는 유로파이터 전투기 개발을 총괄한 바 있는 인물로 이번 한국형전투기 사업에 관여하게 될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나서 한 달여가 지난 1월 중순에 에어버스 측은 방콕에 가 있는 아시아 지역의 항공방위사업을 총괄하는 피에르 자쿠르와 긴급 협의를 한 후 한국의 전투기 개발 사업에 본격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 한 바퀴 돈 KAL의 최고위층

 

  이 소식을 전한 EADS 관계자는 “12월 초 대한항공 최고위 관계자의 방문 당시에는 EADS 측이 한국형 전투기사업에 회의적이었으나 최근 사업을 수주할 것이 유력시 되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측과 기술이전 협상에 난항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라이벌인 대한항공과 손잡게 된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즉 기술이전에 있어 미국보다 자사가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이로써 총 8조7000억원이 소요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개발사업인 KFX는 대한항공․에어버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록히드마틴의 2파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2월 중 한국형전투기에 대한 업체의 제안서 접수를 즈음해서 한국국방과 대한항공 사이에 항공 방위산업의 대회전이 예고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KAL과 KAI가 KFX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제안서를 제출하게 되면 3월에 우선 협상대상업체를 선정한다. 이후 6~7월 중 KFX 개발 업체를 최종 선정하게 된다. 방위사업청은 반색하는 눈치다. 대형 국책사업에서 대한항공과 KAI의 경쟁구도를 형성하여 정부가 상당한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경쟁의 이면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난다. 우선 대한항공의 우왕좌왕하는 이상한 행보다. 앞서 말한 대한항공의 최고위 관계자는 작년 12월 뮌헨 방문 이전에 미국 시애틀의 보잉사 본사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서 차기 한국형 전투기를 보잉사의 F-18을 모델로 개발하는 방안을 협의하였으나 보잉사로부터 어떤 긍정적인 답변도 듣지 못했다. 한국에서 사업의 기반을 확장하려는 보잉의 입장에서는 자사의 여객기를 구매하는 A급 고객인 대한항공의 사업 제안을 소홀하게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이 이 사업제안을 거절한 것은 전투기 개발에 대한 대한항공의 능력을 의심했던 것은 아닌지, 그 배경에 의문이 생긴다. 최근 몇몇 언론에는 보잉이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공중급유기 판매에 전념한다는 소식이 실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만난 보잉 한국 지사의 최고위 관계자는 “일절 노코멘트”라면서도 “언론 보도는 대체로 맞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룬 밤’, 뮌헨으로 급회전

 

  시애틀에서 빈손으로 돌아 온 대항항공의 이 인사가 뮌헨으로 날아 간 시점은 그 직후였다. 이 때 EADS 측은 이미 대한항공이 보잉을 접촉했다는 것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대한항공 고위관계자가 돌아간 직후 EADS 측은 담당 임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겨우 8조원으로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국 정부의 사업계획에 대한 강한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프랑스가 라팔 전투기를 개발하고 200여 대를 양산하는 데 소요된 예산이 총 1000억 달러(100조원)을 상회한다. 그런데 한국의 개발비 8조원과 생산비용 10조원으로 새로운 전투기를 양산까지 하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피터 마우스 부사장은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한 장기적 포석 차원에서라도 대한항공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미지 전략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1월에 EADS․에어버스 측은 대한항공에 긍정적 회신을 이메일로 보내 왔다. 내심 한국의 전투기 사업에는 회의적이지만 파트너십은 유지하겠다는 이중전략으로 보인다. 이 긍정적인 회신에도 불구하고 유럽회사는 이 사업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입장이다. 만일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굳이 대한항공과의 협상을 거칠 것도 없이 “얼마를 내 놓겠다”는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제안이 있을 법 한데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국항공과 록히드마틴 사이의 사업 협력의 성과를 지켜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공격적인 마케팅이 있을 수 있다”며 여운을 남길 뿐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기에 바쁜 대한항공의 긴박한 행보도 무언가 이상하다. 항공기를 개발하는 전문기업 답지 못하고 사업 참여 그 자체에 매달리는 조급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 땅콩 회항 사태와 재무구조 악화라는 악재가 겹친 대한항공이 하락하는 주가를 관리하고 시장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전투기사업에 도전장을 내미는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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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론 내세운 KAL

 

  대한항공은 그동안 운수사업 위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항공기 개발 능력은 의심받아 왔다. 이런 세간의 우려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EADS․에어버스에 사업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경쟁사인 KAI는 한국에서 재계 순위 100위권에도 못 드는 중소기업이다. 어떻게 전투기사업을 할 수 있겠나. 반면 대한항공은 한국에서 재계순위 9위권으로 대형 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 아닌가.”
 대한항공 측이 내세운 건 이른바 덩치론이다.  “한 때 우리는 KAI를 인수하려고도 했고, 앞으로도 그 계획은 유효하다” 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최근 땅콩 회황에 이어 대한항공이 항공 산업에서도 재계 순위를 앞세워 갑으로 행세하려는 과욕을 부리는 것 아닌지, 또 다른 반발도 예상된다. 지금 대한항공이 처한 상황을 보면 재계 순위를 내세울 만큼 한가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항공기 개발의 기술이 축적되지 않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육군의 무인정찰기 사업에서도 각종 개발 차질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부채비율과 만성적인 적자는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덩치가 크다고 해서 KFX 사업에 대한 투자에서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KFX 기술이전 협상 난항의 틈새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EADS․에어버스 측이 관심을 보이는 대목은 최근 한미 간에 KFX 사업을 위한 기술이전 협상이 순조롭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한미 간의 사업관계자들이 만나 협상을 했으나 미 정부는 여전히 핵심기술에 대한 수출허가(E/L) 문제에 난색을 표명하였다. 미측은 KFX 사업 파트너로 들어와 있는 인도네시아가 미 동맹국이 아닌 이슬람 국가라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고, 전자식(EASA) 레이더나 체계통합 기술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미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으며, 기술을 이전하더라도 체계 통합은 한국 업체가 아닌 미 업체가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미국의 F-35A에 대한 구매의향서(LoA)를 체결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기술이전과 300여 명의 기술인력 지원에 대한 긍정적인 회신이 있었던 만큼 기술이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전을 낙관한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국방부에 전담 부서나 조직을 만들어 적어도 국방장관 수준에서 미 정부를 상대로 기술이전이 이루어지도록 직접 업무를 챙기지 않으면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부에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과거 1990년대에 T-50을 개발하면서 국방부에 사업단을 설치하여 정부-업체-군이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미국을 상대한 전례를 이번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기술이전 협상을 업체에 미루는 것처럼 보여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술이전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외부의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인해 미국이 한국의 전투기 개발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유럽 회사가 끼어들 틈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EADS를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EADS의 행보는  KAI-록히드 협력이 깨질 경우에 대비한 ‘기다리는 전략’과, 하다 안 되면 ‘아니면 말고’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지난해의 차기전투기(F-X)사업과 달리 KFX사업에서 EADS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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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질론을 내세운 KAI의 반격

 

  게다가 KAI 측의 반응은 의외다. 일단 경쟁사가 사업에 뛰어든 데 대해 경계하면서도 “대한항공과 유럽회사가 사업에 뛰어든 건 잘 된 일”이라고 오히려 반기는 반응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고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유럽 회사가 사업에 참여한다고 하면 우리는 이걸 미국에 ‘기술을 내 놓으라’고 압박할 수 있는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면 된다. 방위사업청도 이 점을 노려 경쟁구도를 만든 것 아니겠나”라는 것이다.
  KAI가 보이고 있는 이런 자신감은 이른바 자질론에서 오는 것이다. 우선 이제껏 T-50, FA-50, 수리온 헬기를 개발한 유일의 통합 법인은 KAI라는 것이다. 따라서 항공기 체계종합능력을 보유한 기업은 KAI 이외에 없다.  게다가 재무구조 역시 KAI는 흑자 기업으로 건실하다는 것이다. KAL의 ‘덩치론’에 대해 KAI는 ‘자질론’으로 응수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돈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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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항공의 대표적 전투기 T50(왼쪽) 대한항공의 무인기

 

  지난해까지 KFX를 진지하게 검토하던 청와대와 국방부는 2015년에 들어와서는 사업 추진에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 재정에서 세수 결함으로 인한 적자폭이 커지고 복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재정이 고갈될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는 대형 국책사업이 여전히 부담된다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작년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주재로 열리던 KFX 검토회의는 올해 들어 일절 열리지 않은 채 잠시 관심권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국방사업에도 먹구름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최근 국방부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지시로 중기국방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올해 중기국방계획이 국가 재정상황에 맞춰 하향 조정된다면 공군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올초로 기종선정 미뤄지긴 했지만 입찰이 예정되어 있는 공중급유기 도입사업이나 F-16 성능개량사업, 전투기사업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공군은 전력 공백을 메우는 일이 하루가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에 좌지우지 되는 고가의 전투기 구매사업에 매달리는 상황을 막고 한국이 자주적 방위역량을 구축하려면 한국형 전투기사업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어렵고 정책적 관심마저 멀어진 상황에서 공군 전체는 조직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 일대 시련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우리가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할 미국제 무기구매를 한국형 전투기 사업과 강력히 연계시키지 않은 채 각각 따로 추진하고 있다. 이 또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한국형전투기사업은 공군의 전력증강 사업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 작년에 추진한 차기전투기사업의 명분도 붕괴되며 자칫하면 공군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한국 항공 산업의 미래도 총체적 파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한편 항공 산업은 경쟁다운 경쟁으로 새로운 활력에 바탕해 성장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국가적 의지와 리더십이 요구된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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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의 8촌 때문에 처벌? 아니거든요!

 

참여연대 카드뉴스로 '김영란법' 제대로 알기

15.02.26 14:09l최종 업데이트 15.02.26 14:09l

 

김영란법, 제대로 알고 계신가요?  

국회에서는 이 법을 놓고 한창 논의가 진행 중이고, 언론에서도 연일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의 동향이나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임시국회에서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과 늦더라도 문제가 있는 부분은 다듬고 가야한다는 입장이 여전히 팽팽합니다. 

사실 이 논쟁을 지켜보는 입장에선, '도대체 어떤 법이길래 이리도 시끄러운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이 법의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참여연대가 준비했습니다. <김영란법, 그것이 알고싶다!> 이 법이 정말 필요한지, 문제가 있다면 실제로 그런지, 내용을 보고 직접 판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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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2012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하면서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제안자의 이름을 따서 '김영란법'이라 불리죠.

법안의 본래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었는데,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이해충돌에 관한 부분이 빠져 지금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습니다. 이해충돌에 대해서는 더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률을 심사한 국회의원들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부분만 먼저 통과시킨 것입니다. 

김영란법은 기존의 법과 제도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제대로 막지 못한 데서 나왔습니다. 형법에 '뇌물죄'로 불리는 여러 항목이 있지만 부정한 청탁과 뇌물을 받더라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이 되지 않는 허점이 있고, '공무원 행동강령'에서 공무원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구속력이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김영란법은 이런 기존 법제도의 허점을 보완해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입니다.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을 통해 "김영란법이 제정돼 이른바 '관피아'를 막고, 국민이 공무원을 신뢰할 수 있다면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이 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습니다(관련기사 : 김영란 "세월호 참사, 10년 전 '김영란법'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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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는 일반적인 공무원뿐 아니라, 공공성이 매우 강하고 사회적 영향력 등이 큰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종사자도 포함됩니다. 법에서는 이를 모두 '공직자'로 분류하고 있죠.

부정부패는 공립학교나 다름없는 사립학교에서도 심각합니다. 또 공적인 영향력이 매우 커진 언론기관을 규제대상에 넣는 것도 자연스럽고요.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기관 종사자들이 직무관련성이 있거나 또는 없더라도 석연찮은 금품을 받는 것을 금지하자는 것이 과도한 제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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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에서는 부정청탁에 해당하는 행위를 15개로 나누어 명시해 놓고 있는데요.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는 행위나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에서 제안하고 건의하는 행위는 부정청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민원인이 자신의 행위가 부정청탁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애매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는데, 15개의 부정청탁 유형이 일반적인 민원내용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민원인이 혼란스러워할 정도는 아닙니다.

부정청탁을 받고 이를 실행한 공직자는 형사처벌을, 부정청탁을 한 사람은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됩니다. 물론 부정청탁을 받더라도 이를 거절했을 경우에는 처벌받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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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품은 돈이나 선물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증권, 초대권, 상품권 등 그 범위가 넓습니다. 술이나 골프 접대도 금품에 해당하고요. 하지만 회사(공공기관)에서 포상이나 격려 등의 목적으로 제공하는 금품을 받거나 경조사비를 주고받았다고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허용되는 금품은 일정범위 내의 금액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액수는 차후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할 예정입니다.

처벌을 받는 기준은 1회 100만 원 이상, 또는 1년 300만 원 이상으로, 이는 동일인에게 받는 금액을 말합니다. 이 기준이 넘는 금품은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이 기준 이하, 즉 1회 100만 원 이하, 또는 1년 300만 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을 때에는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와 관련돼 있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됩니다. 또 금품을 받았다 하더라도, 다시 돌려주거나 받기 전 거부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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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가족이 금품을 받은 경우에도 처벌을 받게 되는데요. 이 경우 직무관련성이 있을때만 처벌을 받으며 처벌을 받는 사람은 금품을 받은 가족이 아니라 공직자입니다. 또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받은 금품을 돌려주지 않거나 그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가 처벌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 가족이 금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으면 처벌을 받지 않고, 설령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이 받은 사실을 알고 금품을 돌려주거나 신고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가족의 범위는 직계가족, 즉 배우자,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로 범위를 제한해놓고 있습니다. 만약 배우자의 직계가족, 그러니까 공직자 본인의 장인, 장모, 처남, 시동생 등의 사람들 중 공직자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가족에 해당하고요.

일각에서 우려하듯, 사돈의 8촌이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로, 또는 소식이 끊긴 친척이 금품을 받았다고 해서 공직자가 처벌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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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에 공감하는 국민은 70.6%에 달합니다. 우리사회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영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김영란법이 제정되면, 사건청탁을 대가로 외제차나 명품백을 받고도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처벌을 받지않은 '벤츠검사', '스폰서검사'나 자녀입학을 대가로 사례금을 받고도 법망을 피해 처벌받지 않은 '촌지교사'는 예외 없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또 김영란법이 공무원들에게 일종의 '매뉴얼'로 활용되어,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을 받게되었을 때 이를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법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 중입니다. 법사위원장과 양당 원내대표까지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논의는 제자리 걸음입니다.

법의 필요성이 크고, 국민들이 이에 공감하며, 국회도 수차례 약속을 했다면, 이제는 법을 통과시키는 게 마땅한 일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참여연대 홈페이지(www.peoplepower21.org)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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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군사력’ 비교했더니, 전쟁하면 패배

 
 
‘문제는 남북한 군사력이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이야’
 
임병도 | 2015-02-26 10:09: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24일 발표한 ‘2015년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 한 편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미국 군사력 지수이지만,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헤리티지재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서 엄청난 열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를 번역해 보도한 기사들에는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리고 있습니다. 
 
댓글 중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 중에는 ‘도대체 우리나라의 국방비가 얼마인데 북한보다 열세인가?’라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질타와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를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었습니다.

과연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하면 누가 우세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갑차와 헬기 빼고 모두 북한보다 열세인 한국’

헤리티지재단이 낸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해놓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전투병은 북한 119만 명의 54%인 63만명입니다. 예비군 병력도 한국 320만 명으로 북한 770만 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투기, 탱크,해군 전함, 잠수함, 수송함, 모든 항목에서 북한보다 열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장갑차와 헬리콥터 딱 2개 항목이었습니다.

사실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만 보면 걱정입니다. 그러나 군사력은 단순히 무기의 수량만 가지고는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1982년 레바논 분쟁 당시 F-15 전투기는 베카계곡 상공에서 수십 대의 미그기를 격추했지만, 단 한 대의 피해도 입지 않았던 기록도 있습니다. 그만큼 정확한 무기의 성능과 화력 등을 종합해서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해야 정확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남북한 군사력이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이야’
 
헤리티지재단도 재래식 무기의 수량을 단순히 비교해봤자 군사력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한국이 북한보다 열세라고 표현했을까요? 

핵심은 재래식 무기가 아닌 북한의 미사일입니다. 특히 헤리티지재단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10기가 있다고 보고서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려하는 가장 큰 무기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대포동미사일입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헤리티지재단 보고서의 원래 제목이 '2015년 미국 군사력 지수'입니다. 미국은 북한과 한국의 군사력 비교보다는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점을 보고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정치적 군사적 이용 수단은 두 가지입니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박이나 로켓발사대 규모가 4%에 불과한 한국이 발사대와 미사일을 계속 구매해 미국대신 전쟁 억지 효과를 나타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북한보다 국방비를 44배나 쓰고도 전쟁하면 진다니’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오면 엄청난 댓글이 올라옵니다. 각자 다른 생각 또는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가 수준의 매니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한국과 남한의 군사력을 정확히 비교하면 어떨까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 국방연구권이 비교한 결과를 보면 <육군: 80% 해군: 대등, 공군:106% 우세>로 나왔습니다.

2013년 비공개로 열린 국회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봉근 정보본부장은 '남과 북이 전쟁을 하면 어느 쪽이 우세한가?'라는 여야 의원의 질문에 “한미동맹에 기초해 싸우면 남측이 월등히 앞선다. 한미동맹을 배제하고 1대1로 싸우면 우리측이 진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한국이 북한보다 국방비가 44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비대칭전력을 제외하면 우세이지만, 감안하면 열세라는 의미는 우리가 잘못된 국방전략을 세우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보다 월등한 국방비를 사용하고도 북한과 1대1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국방비나 국방예산의 규모 문제가 아니라 운용과 선별 조건 등에 이미 문제가 드러나 있습니다.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만 알았지, 진짜 군사적으로 그들을 대하지 못하고 큰소리만 뻥뻥 치는 국방장관과 대통령을 보면 한국 전쟁 당시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를 외치던 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방어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북한이 도발만 하면 새로운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새로운 무기부터 구입하려고 해외 출장을 나갑니다.

국방력을 키우고 한국을 지켜야 할 한국군 장성들이 군사기밀을 빼돌리니 대한민국 군사력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합니다.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하기 이전에 우선 대한민국 국방에 대한 총체적인 감사를 해야 합니다. 외부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대한민국의 비리와 문제점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단순한 수치상의 국방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전쟁이 나고 몇십 년이 지나도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한국인들은 늘 남의 눈치만 보면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하는가 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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