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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인도 공동 전략 비젼의 한계와 모순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의 한계와 모순
 
 
 
이병진 교수 
기사입력: 2015/02/19 [15:2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6일에 인도공화국 건국기념일 열병식에 참석하고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US-India Joint strategic Vision for the Asia-Pacific and Indian Ocean)“을 발표하였다. 또한 미국과 인도의 군사협력을 보다 더 강화시키기로 하고 ”미국-인도 방위관계체계 2015(2015 Framework for the US-India Defence Relationship)"을 맺고 10년 동안 유지하기로 했다. 

 

이 군사협정은 1급기밀이라는 이유로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05 방위체계협약(2005 Defence Framework pact)"보다 강화된 미-인 군사협정이다. 

 

작년에 인도 정부는 방위사업을 외국자본에 개방하였고, 이번 ‘미-인 방위관계체계’로 미국군산복합체는 인도로의 무기수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냉전시기에 인도는 쏘련의 도움으로 현대무기체계를 갖추었는데, 미국산 무기들이 인도에 공급된다면 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인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이유가 중국을 억제하려하기 때문인데, 이런 미국의 전략변화는 미국과 함께 이슬람급진무장세력과 싸우고 있는 파키스탄의 반발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어떤 배경에서 미국-인도 방위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끼칠 영향을 분석하여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의 한계와 모순을 살펴본다. 

 

중국 포위전략

 

현재 미국의 핵심안보전략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to Asia)"이다. 중국의 성장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자, 중국을 억제하려고 아시아 국가들을 미국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인도방문 목적을 숨기지 않았는데, 뉴욕 타임즈(NYT 26 January 2015)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모디 인도 수상과의 첫 만남에서 무려 45분동안 중국문제 하나만 가지고 대화를 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성장으로 아시아-태평양-인도양 지역에 대한 안보영향을 우려했고, 모디 수상은 어떻게 이 문제를 미국과 함께 대응할지 의견을 나누었다. 그 결과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이 합의 발표된 것이다. 

 

이 공동전략비젼은 미국이 인도양에서 인도의 패권을 인정하고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인도가 협력하여 중국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인도의 해군력이 남중국해에서 얼마나 실효적인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 들지만, 이 공동전략비젼은 인도양과 말라카해협 그리고 남중국해에 이르는 해상교역로를 미국과 인도가 협조하여 통제하고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소위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동북아시아 지역은 일본, 남아시아는 인도, 서아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각각 지역의 골목대장으로 만들고 이들 국가들을 미국의 돌격대로 키워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속하려는 것인데, “2015년 미-인 공동전략비젼”은 남아시아판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표현이다. 

 

공허한 미-인 공동전략비젼과 그 한계

 

역사적으로 비동맹외교노선의 전통이 강했던 인도와 미국과의 군사협력이 그들의 바람대로 성공적으로 발전할지 또는 실패할지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이 추진하려는 “아시아 재균형”전략은 아시아 지역을 분할 지배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미-인 공동전략비젼”을 분석하면 그 한계와 모순이 또렷하게 보인다. 

 

가장 큰 한계는 인도 내부에 있다. 극우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이 작년 5월 정권을 잡고 강력한 힌두국가를 만들겠다며 미국과 적극 손잡으려 하지만, 극우힌두세력은 그런 정책전환에 따른 남아시아지역 내부의 불안을 수습하고 처리할 정치적 능력이 없다. 

 

만약에 미국과 인도의 군사협력 관계가 발전한다면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최악이 될 것이다. 

 

미국은 1961년에 결성된 비동맹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을 내세워 1969년에 이슬람협력기구(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를 조직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왕들은 막대한 자금으로 ‘성전(Jihad)'을 지원하였는데, 이것은 파키스탄 무자헤딘의 자금줄이기도 했다. 

 

미국의 중앙정보부(C.I.A)는 이들 무자헤딘을 훈련시키고 무기도 주어 쏘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시켰다. 이런 배경 때문에 파키스탄은 오랜 기간 친미구사독재정권이 들어섰고 지금도 미국이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동맹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인도의 군사협력이 현실화 된다면 파키스탄은 불안해할 것이고 카시미르 분쟁은 격화될 것이다. 이것은 인도 내부의 힌두-무슬림 갈등의 도화선이 되어 인도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극우힌두정권의 국방부 장관은 파키스탄의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떠들지만 인도 내부의 힌도-무슬림의 분열과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한편, 인도 국가안보보좌관(The national security advisor)은 공개적으로 인도의 대파키스탄 정책이 ‘방어’에서 ‘방어적 공세’로 바뀌었으며 따라서 인도는 필요하다면 파키스탄과 싸울 것이고 인도가 먼저 공격한 것이 아니므로 파키스탄은 핵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심한 이야기도 하였다(Srinath Raghavan, "'Modified' Foreign Policy;Interrogating Coherence, Finesse, Efficacy",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January 31, 2015, 11쪽).

 

가뜩이나 2002년 구자라트에서 수천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모디 수상에 대한 의구심이 큰데, 인도 안보부서 책임자들이 인도 내부의 무슬림을 자극하고 소외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것을 볼 때, 이런 정치적 지도력으로 미-인 공동전략비젼을 잘 이끌어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인도는 러시아와의 관계 뿐 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타격을 받게 된다.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최첨단 무기들을 들여오고 싶어 하지만 군사기밀 유출 우려로 러시아가 꺼려한다. 중국으로부터는 막대한 경제협력투자자금을 받기로 했는데 이것도 불확실해지거나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미국의 경제가 인도를 도와줄 형편도 못 된다. 

 

오히려 미국과 인도의 공동전략비젼으로 인도의 이익이 훼손되었다며 반대하는 여론이 인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Editorials, "No Transparency in Nuclear Deal",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January 31, 2015, 8쪽).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인도 방문기간에 핵협상을 하였는데,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는 인도에게 미국이 상용핵기술과 우라늄을 공급하는 대신 핵사고 발생시 미국기업들에게 면책의 범위를 넓히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도의 핵피해보상법(Civil Liability for Nuclear Damage Act 2010)을 무력화시키고 미국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일이어서 큰 파장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인도의 핵정책도 오락가락하면서 입지점이 쪼그라들었는데, 1995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강요하는 미국에 맞서 인도는 북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거론하며 1998년에는 핵실험까지 하였다. 

 

그런 조건에서 이번에는 북의 핵농축활동에 우려를 표명하고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평화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인도 스스로 미국의 앵무새임을 자임하는 꼴인데 국제적인 조롱과 망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그동안 인도가 비록 가난하지만 대국의 자존심과 신뢰로 발휘했던 국제적 영향력은 깡그리 무너졌다. 앞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우라늄을 수입해야 할 인도의 입장은 딱하게 되었다. 

 

분열과 갈등만 부추기는 미국의 정책

 

모디 수상은 미국의 꼬임에 맞장구치며 장밋빛 환상에 도취되어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을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인도의 현실을 살표 보면 과연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런 의문을 갖게 하는 근본 이유는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의 반동적 성격 때문인데, 그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전략과 인도 힌두극우정권의 강한 힌두국가전략은 근본적으로 힘에 의한 분리지배를 기본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원유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미제국주의의 이슬람 종파간 분열과 지배전략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예멘, 요르단 같은 중동지역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원유의 약탈을 반대하고 국유화하려는 노동자, 농민 혁명정권들을 쓰러뜨리고 미국에 추종하는 소수의 봉건지배세력을 지원하였다. 그리고는 이것을 종파간의 갈등으로 숨겼다.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봉건왕국은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으로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심지어 터키와 이라크 같은 공화주의 사상조차 서구의 사상이라며 적대시하였고 혁명이란공화국을 시아파 공화국이라며 종파갈등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미군의 충견이었던 이라크의 철부지 후세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부추김으로 이란과 전쟁을 하였지만 경제만 파탄났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약속했던 전쟁지원자금을 주지 않자 철부지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점령했지만 비극적으로 죽었고 이라크는 박살이 났다. 이런 피의 한맺힌 복수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오늘날 중동의 실상이다. 

 

우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과 개입이 결국 오늘날 중동지역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다. 미국-인도 공동전략비젼도 미국의 중동전략의 실패와 모순을 그대로 내포했기 때문에 남아시아의 발전은 물론 아시아지역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시아 대륙에는 수백 개의 민족과 다양한 국가들이 고유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배경으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 이런 아시아 대륙을 미국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분할하고 각 지구에 똘마니 국가 몇 개를 앞세워 아시아 국가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은 버려야 한다. 

 

또한 이라크의 후세인처럼 미국의 충견이 되어 보았자 비극적 죽음뿐이며 그 민족은 처절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음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인도인들도 지금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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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아먹는 기자들 잡아넣자는데 왜 반대하냐고?

[해설] 김영란법 흔드는 물귀신 작전… 부패 언론인 처벌하는 법은 따로 만들어라
 
입력 : 2015-02-20  03:58:08   노출 : 2015.02.20  03:58:08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는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지난달 27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마치 엄청난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이런 말을 했다.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 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진짜로.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그치? 욕 먹어가면서. 내 가만히 있으려고 해. 당해봐. 김영란법이 뭐냐, 이렇게 얻어 먹잖아요? 3만원이 넘잖아? 1년 해서 100만원 넘잖아? 김영란법 만들어지면, 요게 못 먹는거지. 하자 이거야. 해 보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건 기자들을 염려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언론인들을 핑계로 김영란법 통과를 막으려는 얄팍한 꼼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총리가 국회 인준을 통과했지만 갑자기 입장을 바꿀 거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들이 초비상이라거나 이 법이 통과되면 기자들이 줄줄이 붙잡혀갈 거라는 이 총리의 이날 발언도 다분히 과장된 것이다.

흔히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걸려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공직자(공무원)가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경우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100만원 이하의 경우에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여러 차례 나눠 받는 경우를 감안해 동일인에게 300만원을 초과해서 받는 경우도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JTBC 썰전의 한 장면.
 

언론인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정무위 논의 막판 단계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결론이 났다. 공직부패를 뿌리 뽑자는 김영란법의 취지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언론인을 과연 폭넓은 의미에서 공무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언론인이 공적 책무를 지는 건 맞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가 직간접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인도 김영란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언론인만 예외가 돼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언론인도 부정한 돈을 받으면 처벌돼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타당하게 들린다. 촌지는 사라졌다지만 취재원에게 밥 얻어먹는 언론인들은 여전히 많고 접대와 향응의 경계는 모호하다. 언론인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로 김영란법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고 언론인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김영란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JTBC의 손석희 사장이나 뉴스타파의 최승호 PD 등도 떳떳하면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다. 손석희 사장은 방송에서 “투명한 권력과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지키고 싶은 언론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언론인도 (김영란법에) 꼭 넣어주시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고 최 PD는 “뇌물·향응을 받을 자유를 언론자유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부에서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면 언론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데 대한 반론이다.

   
부정한 금품을 수수한 언론인들은 형법 375조의 배임수재죄로 처벌받는다. 김영란법은 대가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금품을 받으면 처벌된다는 게 차이다.
 

그러나 손 사장이나 최 PD의 주장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돈 받은 것 때문에 처벌 받을까봐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접대를 못 받게 될까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이완구 총리가 말했던 것처럼 겨우 김치찌개 정도 얻어먹고 검찰에 불려 갈까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형법에서는 공무원과 민간인의 금품 수수를 뇌물죄와 배임수재죄로 구분하고 있다. 뇌물죄(수뢰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또는 요구하는 죄를 말하고 배임수재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죄를 말한다. 수뢰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배임수재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양형도 다르다.

김영란법은 뇌물죄와 별개로 공무원들의 금품 수수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하는 법이다. 그동안 벤츠 여검사 사건처럼 일부 공무원들이 스폰서라는 형식으로 주기적으로 금품을 받고 있는데도 직무 관련성이나 부정청탁 여부를 입증하지 못해 처벌하지 못하는 등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직무 연관성을 따지지 않고 공무원의 금품 수수를 원천 금지시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법이다.

간단히 알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수뢰죄(형법 129조) : 공무원이 직무와 연관된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배임수재죄(형법 357조) : 일반인이 업무와 연관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김영란법 : 공무원은 직무와 연관되지 않았더라도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물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법을 만드는 김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들의 부정부패도 동시에 근절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언론인들도 공무원 만큼의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김영란법에 언론인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인들도 직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돈을 받은 언론인을 처벌하라는 주장은 언뜻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건 돈을 받은 회사원을 처벌하라는 주장 만큼이나 아찔한 이야기다.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민간인을 처벌하는 법은 이미 있다. 당연히 언론인도 기사를 써주는 걸 대가로 돈을 받거나 하면 배임수재죄로 감옥에 간다. 실제 사례도 많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김영란법은 대가성과 무관하게(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돈을 받으면 감옥에 가는 법이다.

취재원에게 김치찌개 몇 번 얻어먹은 정도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밥값·술값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골프 접대 한 번에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취재지원이나 광고 집행도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형법에서는 대가성이 있는 경우만 처벌하지만 김영란법은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일단 정해진 금액을 넘으면 무조건 처벌한다.

핵심은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개인들 사이의 거래, 이를 테면 언론인과 취재원 사이의 밥값·술값 계산까지 국가가 개입해야 하느냐에 있다. 돈 받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는 기자들을 두둔하거나 보호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과 그걸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정당성의 문제다.

   
YTN 뉴스 캡처 화면.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언론인만 예외로 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불쾌해서도 아니고 잡혀갈까봐 겁이 나서도 아니다. 굳이 언론자유 침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애초에 법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만들면 좋은 법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법만 만드는 게 맞다. 언론인도 포함하면 좋은 게 아니라 언론인을 포함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300만원어치 술을 얻어먹는 기자를 감쌀 이유는 없지만 그 기자를 처벌하려면 술 얻어먹는 행위의 불법성을 국가권력이 입증해야 한다. 불가근 불가원의 취재원에게 접대를 받는 행위는 분명히 취재윤리에 어긋나고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지만 그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언론인의 윤리를 법적으로 강제할 명분이 없다.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아무리 언론이 타락했다고 한들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나는 떳떳하니 우리 중에 타락한 자를 처벌해 달라는 손석희 사장이나 최승호 PD 등의 도덕적 우월감은 공무원들에게 요구되는 공적 책무와 규율을 언론인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게 만든다. 국가가 언론인의 취재 윤리를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면 김영란법과 별개로 법제화를 검토해야 한다. 공무원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막는 법에 언론인을 끼워넣는 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 밥값은 내가 낼 테니 밥 얻어먹는 기자들을 처벌하라는 일부 언론인들의 과장된 사명감도 문제지만 김영란법이 언론자유를 침해한다거나 언론탄압의 도구로 악용될 거라는 호들갑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언론자유를 핑계로 부패 언론인을 감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패 언론인은 퇴출돼야하고 당연히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김영란법이 부패 언론인을 처벌할 근거가 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논점이 뒤섞이는 걸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밥도 못 얻어먹게 된다고 기자들을 조롱하는 이완구 총리가 대표적이다. 김영란법이 통과돼도 떳떳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손석희 사장이나 최승호 PD도 논점을 뒤섞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알지도 못하는 친척 때문에 검찰에 불려가게 된다거나 언론인의 도덕적 책무가 유치원 교사보다 가벼운 건 아니지 않느냐는 등의 주장도 모두 핵심에서 벗어난 논리들이다.

공무원과 언론인에게 적용되는 법적 책무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건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윤리 기준이 더 느슨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법적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공무원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공직 유관기관으로 확대해도 언론인이 포함될 이유가 없다. 정무위 회의록을 보면 언론인도 ‘공적의무 종사자’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정무위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표현이 논란이 됐다.

정무위에서는 당초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KBS와 EBS, 연합뉴스 정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가 공영방송인 MBC와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서울신문 등이 논의되면서 형평성 차원에서 공적 책무를 지닌 모든 언론사로 확대됐다. 정무위에서도 “공직자 등”이라는 표현으로 언론인을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통과됐다. “이렇게 되면 ‘월간낚시’나 ‘여성조선’ 기자도 공무원으로 봐야 하는 것이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언론인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때문에 김영란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언론인을 포함시키고 가자는 주장은 잘못된 조건을 받아들여 오히려 김영란법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김영란법의 취지에 동의한다면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전제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은 입법 취지에 맞게 공직자의 부정한 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핵심에 충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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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당 정치국 확대회의 개최..

北 당 정치국 확대회의 개최..김정일 유훈 강조김 제1위원장 "일꾼들, 책임성 부족하다" 질책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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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9  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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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가 18일 평양에서 열렸다. 이날 확대회의에서는 김정일 유훈관철을 강조했다.  [캡쳐-노동신문]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가 지난 18일 평양에서 열렸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이날 확대회의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유훈관철을 강조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서가 채택, △김정일 유훈을 당과 혁명의 영원한 지도적 지침으로 틀어쥐고 끝까지 관철할 데 대하여, △조직문제 등이 다뤄졌다.

김정일 유훈 관철과 관련해, 결정서는 "김정일 동지의 유훈은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과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길을 밝혀주는 조선혁명의 교과서"라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활동을 강조했다.

결정서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당의 유일적 영도에 도전하여 나선 현대판 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적발분쇄하시고 전당과 온 사회의 사상적 일색화를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웠다"며 김정일 유훈 관철을 1차 사업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치사상 공세 강화, △유일적 영도체계 옹호고수, △세도,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행위 타파 등을 내세웠다.

결정서는 "인민생활에서 걸린 문제, 인민들이 가슴 아파하는 문제들을 푸는데 자기의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치도록 할 것"이라며 "해당 기관들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관철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며 행정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을 밝혔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 조직문제를 직접 결론내렸다. [캡쳐-노동신문]

두 번째로 조직문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어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지난 3년간의 투쟁을 통하여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노선과 방침, 장군님의 교시는 혁명의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일성-김정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과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나가야 한다"며 김정일 유훈관철을 위한 '장군님식' 구호를 언급했다.

그리고 "모든 당조직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와 지시를 전반적으로 빠짐없이 정립하고 일군들과 근로자들에게 깊이 침투시켜 그들이 장군님의 유훈을 환히 꿰들고 뼈에 새기도록 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은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 중의 유훈이고 평생소원이었다"며 "식량문제, 먹는문제, 입는문제와 관련하여 주신 유훈부터 먼저 집행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지도기관 일꾼들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일꾼들이 사업에서 책임성이 부족하고 주인 구실을 바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 "오늘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세계를 내다보면서 모든 사업을 새롭게 착상하고 혁신적으로 전개해나가라"고 다그쳤다.

그리고 "일꾼들은 고지식하고 청렴결백하여야 하며 양심적으로 일하고 생활하여야 한다"며 "인민들에게 부담과 불편을 주지 않게 조직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김 제1위원장. [캡쳐-노동신문]

김 제1위원장은 "오늘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으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지만 조선혁명은 당이 정한 승리의 이정표를 따라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며 김정일 유훈관철을 강조했다.

이날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는 김 제1위원장을 포함 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 등이 참가했으며, 내각 부총리, 당 중앙위 부장, 제1부부장, 각 부서 과장, 도당 책임비서 등이 방청했다.

그리고 최룡해 당 비서가 첫 번째 안건을 보고했고, 박봉주 내각 총리, 리재일, 현영철, 김춘섭, 리만건, 전용남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고 통신이 전했다.

한편,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 관련 기사를 4면에 걸쳐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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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시장 청년들의 도전...

'똥집맛나' '쾌·슈퍼'... 기발한 청년장사꾼들

서울 구로시장 청년들의 도전... "가장 중요한 건 지금"

15.02.19 20:44l최종 업데이트 15.02.19 20:4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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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 모인 젊은 장사꾼들 구로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영프라쟈'에 입주한 청년 장사꾼들. 왼쪽부터 김승현(28,아트플라츠), 변은지(28,쾌슈퍼), 윤지혜(29,쾌슈퍼), 김유진(25,아트플라츠), 윤혜원(29,구로는예술대학), 정근영(26,구로는예술대학), 박유석(35,똥집맛나), 전민정(25,아트플라츠).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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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석 사장 (35·똥집맛나)

2년 전, 박유석 사장은 3억 원을 빚내서 홍대 앞에 가게를 차렸다. 대구에서 직접 배워 온 '똥집튀김'을 만들어 팔았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고 여러 블로그에도 소개됐다. 장사가 잘 되나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다. 가게가 잘 되니까 건물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8월, 쫓겨났다. 더 이상 똥집을 튀기고 싶지 않았다. 

박 사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청년 장사꾼들에게 점포를 빌려주는 사업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 지금 만나, 똥집맛나'라는 콘셉트로 심사에 나섰다. 똥집 메뉴 하나만으로 자신있었다. 지원한 11개 팀 중 4팀이 뽑혔다. 물론 똥집맛나도 함께였다. 박 사장은 "세입자가 겪어야 하는 갈등 없이 즐겁게 일을 하고 싶었다"라면서 "또래의 청년들과 함께 더 큰 꿈을 키워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 김승현 사장(28·아트플라츠) 

"비어 있는 곳, 외진 공간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 손을 거쳐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이유로 이곳에 터를 잡게 됐어요."

김승현 사장은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무대 미술을 전공해 그림으로 공간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학교 후배인 김유진(25)·전민정(25)씨와 함께 초상화도 그렸고, 공장  벽화 그리는 사업도 벌였다. 구청이 창업 점포를 빌려준다는 소식에 시장 골목으로 들어왔다. 김씨는 "관광객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자연스럽게 시장 홍보가 된다"라면서 "시장을 물건 사러오는 소비 공간이 아닌 관광지로 변화시키겠다"라고 말했다. 

구로시장, '아날로그단지'로의 부활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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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과 어우러진 젊은 가게 '아트플라츠' 구로시장 '영프라쟈'에 입주한 아트플라츠. 골목 끝에는 구로시장의 먹자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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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5분 거리에 닿아 있는 구로시장. 한복 가게 골목에는 울긋불긋한 색동저고리가 상점에 진열돼 있다. 골목 좌우 건물에서 양쪽으로 내건 천막이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그늘을 선물했다. 먹자 골목에는 돼지고기 삶는 냄새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여느 전통 시장의 풍경과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는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눈에 띄었다. 50년의 시간이 지난 듯, 셔터에는 녹 자국이 진하게 베어 있다. 오랫동안 입주하지 않아 버려진 점포였다. 빈 점포 사이에 독특한 이름의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똥집맛나' '아트플라츠' '구로는예술대학' '쾌·슈퍼'. 바로 구로시장의 청년장사꾼 프로젝트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폐허의 시장 골목에 청년들의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됐다. 특히 문화예술 전문가의 '끼'와 청년의 '깡' 그리고 장사 '꾼'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한 것이다. 구로구청의 마을공동체 추진팀과 지역 예술문화 단체인 '구로는예술대학'이 진행하는 민관협력 사업이다. 구로는 예술대학은 지역의 문화, 지역 재생 등의 목적으로 만든 교육 프로젝트다. 3년 전부터 구로시장에서 활동해온 윤혜원(29)씨가 매니저가 돼 청년장사꾼 사업으로 이어졌다(관련기사 : 홍대 놀러가면 술 마시고 노래방... 구로에서는?).

구로구청은 청년들에게 월세(올해 12월까지)와 보증금(내년 6월까지)을 지원한다. 청년 장사꾼들이 자금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점포 크기는 모두 10제곱미터(3~4평) 남짓이다. 네 점포는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월요일 하루는 휴무일이다. 

문화·예술로 우리 지금 만나... "이웃을 잇는 작은 마을"

구로시장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1960년대, 산업화의 주역인 구로공단이 번창했다. 섬유·봉제공장의 여공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구로동 일대에 모여들어 상권을 형성했다. 이후 시장은 일꾼들의 쉼터이자 주요 생활공간이 됐다. 199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신경숙씨의 소설 <외딴방>과 시인 박노해씨의 <노동의 새벽>의 무대였다.

산업화는 정보화로 이름을 바꾸면서 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다. 또 인근의 쇼핑몰이 팽창하면서 시장 입지가 좁아졌다. 1990년대 후반, 현대화 사업을 추진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현재는 의류·식품·잡화 등으로 1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상인들은 60~70대 노령층으로 3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 주요 고객으로 대림동과 가리봉동에 사는 중국 동포들이 많다. 유동인구는 하루 1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청년장사꾼 프로젝트는 '영-프라쟈'라는 이름 아래에 모였다. 영등포역 인근의 백화점과 대항하겠다는 의도다. 부제는 '구로아날로그단지'다. 인근의 구로디지털단지와 차별화해 전통시장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다. 똥집맛나, 아트플라츠와 프랑스식 팬케익인 크레페를 파는 구로는예술대학과 슈퍼마켓 컨설팅 플랫폼인 쾌·슈퍼의 활약이 기대된다.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에 이들의 지향점이 잘 나타나 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빈점포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유는 지금을 있게 했던 과거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작은 마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오늘을 삽니다. 방문하시는 지금 옆 사람과 가장 즐거운 지금을 사세요."

속닥거리는 청년, 기웃거리는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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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팔고 있어요?" 쾌슈퍼에서 피자를 만들자 지나가던 한 상인이 질문을 던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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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속 꽃초상화를 그려 파는 아트플라츠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웃한 패션연구원 사장님은 옷 정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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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상인들은 청년장사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게 메뉴를 맛보기도 하고 장사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한다. 신호떡집 모상수(60) 사장은 "뭘 재밌게 하기에 속닥거리나 보려고 저희가 기웃거리게 된다"라면서 "30~40년 장사한 노하우도 알려주면서 잔소리도 하고 그런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 사장은 "젊은 장사꾼들이 구로시장에 와서 젊은 점포를 차려놓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다"라면서 "젊은 취향으로 바뀌게 되면 시장 전체가 활발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달성기름집 여영호(58) 사장은 "청년들의 점포는 여름이면 노숙자들이 와서 잠자고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우고 도망 가던 곳"이라며 "노인네들은 소비 능력도 적지만 젊은이들이 시장에 와야 돈도 많이 쓸 것 아니냐, 그래서 아주 반갑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과의 협업도 준비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상인과 축제, 공연 기획은 물론 야시장 등 이벤트 성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또 아트플라츠는 상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문패처럼 점포에 내 걸 생각이다. 칙칙한 골목, 때 묻은 벽에 그림을 그려 전통 시장의 이미지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김승현 사장은 "늙어버린 상인들에게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초상화를 그려낼 것"이라며 "간판을 대신해 초상화를 보여주면 사장 얼굴도 익히게 돼 홍보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쾌·슈퍼는 슈퍼마켓 대상 컨설팅을 기획하고 있다. 슈퍼에서 주는 검은 봉지 대신 이미지를 넣은 봉지를 제공하는 등 슈퍼의 문화적 변신을 꿰하고 있다. 변은지(28) 사장은 "슈퍼마켓은 한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문화의 집합체"이라며 "슈퍼마켓의 재해석을 통해서 소상공인들에게 개성을 불어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험 한 달째... 지속가능한 경쟁력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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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시장 좁은 골목 끝에 보이는 크레이프 가게 '구로는예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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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실험은 진행형이다. 입소문에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또 구청이 당분간 월세와 보증금을 지원하지만 약속 기간이 끝나면 그들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이들은 네 팀이 하나의 그룹을 이뤄 시장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운영 기금을 모아 주요 자재를 공동 구매하고 협업을 통해 앞으로의 난관을 극복해 나갈 계획이다. 구로구청은 올해에도 5~6개의 청년 점포를 유치해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윤혜원씨는 "구청의 지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면서 "문을 연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상인 공동체가 되길 지향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년장사꾼의 자체적인 운영회를 만들어 체계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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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플루트 연주하는 봄눈별

"서울서 월 60만 원으로 살기…가난해 행복하다"

[살림이야기] 인디언플루트 연주하는 봄눈별

 
'서울에서 살면 숨만 쉬어도 한 달에 75만 원이 든다'는 기사가 나왔다. 어느 취업 준비생의 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기자가 눈물을 뚝뚝 흘렸더란다. 학자금 대출한 것을 갚고 월세를 내는 것만 해도 그렇게 든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살기 힘든 서울에서 '자발적 백수'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봄눈별'은 2011년 잡지 <발밤발밤>에 '자발적인 가난뱅이 백수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글을 썼다. 
 
"가난뱅이 주제에 돈 안 되는 일만 한다고, 누구나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 세상에는 아주 많고, 나는 그것들을 직접 겪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 이것이 직장 다닐 때 얻지 못한 행복들이다.  
 
게다가 나는 시간이 넘쳐 나는 나머지 여기저기 공연과 여행을 다녔다. 사진을 찍었고, 글을 썼다.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삶의 자세를 바로잡곤 했다. 직장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던, 물질만능주의에 감춰져 있던 감수성과 상상이 풍부해져서, 가난해서 불행하다는 일반적인 논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오히려 가난해서 행복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봄눈별은 2015년인 지금도 가난하고 여전히 행복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그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악기 인디언플루트와 엄지피아노를 가지고 놀다가 밥을 해 먹고 또 악기를 가지고 놀거나 산책하다가 밥을 먹고 저녁에 글을 쓰고 또 악기를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든다. 공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오면 전국 각지 어디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지극히 소박한 일상을 보낸다. 그가 공연을 하는 기준 자체가 '세 명 이상이 모여 요청하면 어디든' 가는 것이라 그걸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 하지만 때로 공연비를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전국에 열리는 장터에 가서 사람들에게 '소울 카드'로 카드 점을 보면서 상담을 해 주기도 하고, 마사지를 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번 돈은 넉넉하지 않지만 한 달을 살 만큼 나온다.  
 
ⓒ봄눈볕

ⓒ봄눈볕  

 
 
60만 원으로 서울에서 부족함 없이 살기 
 
그래야 고작 60만 원 안팎이지만 봄눈별은 간소하게 살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우선 물건은 완전히 망가져 못 쓰게 될 때까지는 버리지 않는다. 면도기는 13년째, 핸드폰은 6년째, 냉장고는 25년째 쓰고 있다. 대형마트를 가지 않고 인터넷 쇼핑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합성세제를 쓰는 대신 맹물로 세수하고 머리 감고 몸을 씻는다. 휴지 같은 1회용품도 거의 쓰지 않는다. 쓰레기봉투를 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리수거를 철저히 한다.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난방과 냉방도 거의 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옷을 두껍게 입고 자는데, 몸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을 느낀다.  
 
미래에 닥칠 일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적금을 들거나 보험을 들지 않는다. 있던 보험도 일찍이 깼다. 그제야 비로소 미래 일을 걱정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살기보다 현재에 충실하기로 선택했다. 그때그때 돈이 더 필요할 때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팔기도 하고 때로 돈을 빌리기도 하고 필요만 만큼만 더 일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살게 되진 않았다.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 그리고 일을 그만두기까지, 직장인에서 반 백수, 그리고 백수가 되기까지, 생활 습관을 조금씩 바꾸기까지 2년이 걸렸다.  
 
먹는 것도 바꿨다. 덜 버는 대신 덜 쓰면서 살고, 대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기로 결심한 서른 살 즈음부터 담배와 술, 고기를 끊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문에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채식을 결심했다. 잔병치레가 잦았기에 건강하기 위해,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었는데 하면서 점차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몸과 머리가 맑아지고 요리하는 게 즐거워졌고 또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봄눈별은 두 주에 한 번 '언니네텃밭'에서 받는 꾸러미로 밥상을 차린다. 한 달에 5만 원을 내고 2주에 한 번씩 4인 가족 분량의 유기농 제철 채소와 과일, 두부와 계란 등을 받는다. 그렇게 먹을거리를 해결하는데 때론 너무 풍성해 이웃과 나누기도 한다. 
 
지금 당장 시작하기 
 
"음악을 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꾸었던 건 아니에요. 하고 싶어서 조금씩 했어요. 하루에 13시간씩 주 6일~7일을 피자 배달을 하면서 3년 동안 매일 밤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인디안 로드'라는 음악을 들었어요. 바람 소리 같이 여운을 주는 그 음색이 마음에 들어 인디언플루트를 사서 불기 시작했어요. 그냥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하루에 30분 하던 것이 1시간이 되고 또 몇 시간으로 늘다가 이렇게 지금 음악만 하게 되었죠." 
 
연주하면서 낮은 음역대부터 높은 음역대를 지닌 것까지 악기가 늘었고, 물방울 소리가 나는 엄지피아노나 하피드럼 같은 다른 악기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악기를 가지고 놀다 보니 잘하게 되었고, 그게 이렇게 직업이 되었단다. 뭔가를 시작할 때 거창하게 생각하기에 시작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춤을 배운다면 화려한 무대에 선 나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이 시간 때문에 얼마나 즐거울지,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대하는 게 좋다고. 
 
"하고 싶은 일은 쉽게 나타나요. 청년들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하는데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못 찾아요. 돈을 벌고 대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는 거죠. 그냥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거창하게 인생의 판을 갈아엎을 필요가 없어요." 
 
또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의 논리를 따르다 보면, 직업의 귀천을 따지다 보면 자기를 성찰할 수 없고 꿈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꿈을 응원하면 나의 꿈도 찾을 수 있다. 종종 택배나 배달 직원, 혹은 성매매 여성이나 청소부 등을 무시하는데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걸 기억하고 그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처음으로 촛불집회에 나간 이후 그는 블로그(http://blog.naver.com/bbesisi)에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록도에 가서 봉사하고 티베트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인 '록빠'에서 자원봉사하기도 했다. 2010년 4대강공사로 밭을 빼앗기게 된 팔당 유기농 두물머리 농부들과 함께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목소리를 내고 공연도 했다. 얼마 전부터는 집회 현장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대신 개인의 생활을 최대한 생태적으로 투쟁하며 사는 것 자체를 운동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울려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문제들도 있다. 지난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가 너무 마음이 아파 최근에 앨범 <바다에서 온 편지>를 만들었다.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글들을 노랫말로 묶고 치유를 소원하는 연주곡을 담았다. 후원들 받아 만든 450장의 음반을 광화문, 팽목항, 치유공간 '이웃'에 있는 유가족에게 2월 중에 전달하려고 한다. 이별의 아픔을 다 같이 위로하고 슬퍼했으면 한다. "이별을 겪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그의 방식이다.  
 
이별은 그의 삶의 화두이기도 하다. 봄눈별이 '마지막 그 길의 음악'을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이에게 찾아가 평온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생전 마지막 음악회를 열어 드리고 싶다. 누군가 부르면 어디로든 언제든 그저 찾아갈 생각이다. 일찍이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을 겪었던 그는 "모든 이별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허망하게 닥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마음공부 역시 죽을 준비를 잘 해나가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봄눈볕

ⓒ봄눈볕  

 
 
일한 만큼 쉬고, 함께하는 만큼 홀로 있고 
 
그가 생각하는 마음공부는 거창한 게 아니다. "일한 만큼 쉬라"는 게 그것. 하지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일이 끝나도 일을 생각하고 잘 쉬지 못하면 그 스트레스를 가까운 사람에게 풀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잘 쉬기 위해 지난해에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스마트폰을 없앴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가로워졌다. 스마트폰을 쓰면서는 '이것만 하고 페이스북을 확인해야지', '이것만 하고 카카오톡을 확인해야지' 하는 마음에 쫓겼다. 그리고 많은 정보에 시달렸는데 살펴보면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연예인이나 허무한 정보들이어서 공허했다. 그렇게 스마트폰 때문에 하게 되는 일에서 벗어나니 한가롭고 잘 쉴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하는 시간 대신에 목욕하고 자거나 음악 듣고 책을 읽는 것으로 잘 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가끔 안부를 맺는 인간관계 덕에 안 보이던 앞집 꼬마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모에 비해 이야기가 깊은 그에게 어른들이 가끔 "잘 자랐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그는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앞으로도 죽 잘 자랄 거다. 올해 타로점을 보았는데 "세계 인류에 공헌하게 된다"는 점이 나왔다. 봄눈별은 "세계에서 가장 다정한 아들이 되는 것"이 그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미래가 아닌 현재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그가 자기의 트위터에 남긴 글을 모아 낸 작은 책 <,>(자비 출판)에 있던 글귀가 생각났다.  
 
"생각날 때마다 후회바이러스 예방주사를 본인에게 접종하세요. 예방주사란 오늘,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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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 소방서 찾아간 이유는?

등록 : 2015.02.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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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장에 입장, 자리로 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설 연휴, 여야 정치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박 대통령 일정 없어…김기춘 후임 머리 아플 듯

성한용의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⑧

 

대구 북구갑 권은희 의원(56)은 새누리당 대변인입니다. 설 연휴 전날인 17일 오전 권은희 의원이 국회 브리핑룸에 붉은색 한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내일부터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됩니다. 모처럼 한복을 입었습니다. 조금 더 많은 국민들이 우리 옷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어린 시절 설날이 되면 우리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 명절 속에 한복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극과 전통 공연과 역사책에만 남아 있습니다. 한복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애환이 깃들어 있습니다. 정신으로 입고 정신으로 벗는 전통 계승의 상징입니다. 편리한 것과 편의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한복의 가치는 단순한 의상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번 설에는 국민들께서 장롱에 고이 보관하던 한복을 꺼내어 입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계승되어 한국의 전통미와 문화가 복원되길 바랍니다.”

 

권은희 의원은 1월1일 새누리당 단배식 때도 한복을 입었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의원들 모두 한복을 입고 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단배식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의원들이 한꺼번에 국민들에게 절을 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중랑갑 서영교 의원(51)은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입니다. 17일 오전 국회 브리핑룸에서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됩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설 명절입니다. 을미년 청양(靑羊)의 상징은 정의와 평화이며 더불어 따듯함입니다.”

 

“불의는 성공할 수 없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평범한 상식이 구현되는 새해, 분단 70년의 대립과 반목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되는 새해, 더불어 소외된 이웃을 찾고 보듬는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하는 새해를 기원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을미년 새해에도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며 국민과 함께 한 걸음씩 전진하겠습니다. 귀성길 안전하게 고향 방문하시고 국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명절 연휴입니다. 대부분 오랫만에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을 만나고 휴식을 취합니다. 명절 연휴에 더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떡집, 시장 상인, 택배기사가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정치인도 명절이 더 바쁩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노인정을 돌며 어르신들께 세배를 합니다. 명절이 더 서러운 소외계층을 찾아가서 돌보기도 합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서러움을 달래주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나 각 정당 대표들은 명절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겨우 국회 임명동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후임에 어지간한 사람을 내놓아서는 민심을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머리가 아플 것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연휴 기간에 갑자기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번 연휴에도 재래시장이나 소방서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근처에 대통령이 나타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대통령 일정은 경호 문제 때문에 사전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일정을 알게 되어도 보도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나타날 장소가 미리 공개되면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들이 그 장소에서 미리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설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신대방2동 동작소방서를 찾아 방화복을 입어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연휴에 뭘 하고 지낼까요? 문재인 대표는 2월8일 대표가 된 이후 지지율이 크게 올라 무척 고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문재인 대표는 17일 매우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먼저 동작소방서와 용산역파출소를 찾아 소방공무원과 경찰공무원을 위로했습니다.

 

용산역파출소에는 이충호 용산경찰서장, 박승환 생활안전과장, 박정규 파출소장이 나와서 문재인 대표를 맞았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우윤근 원내대표, 김영록 수석대변인, 김현미 비서실장과 함께 파출소를 찾았습니다. 주승용 정청래 전병헌 최고위원과 유대운 의원도 동참했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파출소 현황 보고를 받은 뒤 지구대 인력과 처우개선 수당, 근무교대 시스템 등에 관해 경찰관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파출소장의 고향을 물었고 파출소장은 해남이라도 대답했습니다. 마침 파출소에 와 있던 김영록 의원의 지역구가 해남·완도·진도였습니다. 김영록 의원이 파출소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 문재인 대표가 “제가 대흥사(해남에 있는 사찰)에서 고시공부를 했다고 했잖아요”라고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참여정부 때 (문재인 대표가) 민정수석을 하고 제가 법사위 간사였는데 참여정부에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나는 표현을 좀 바꾸고 싶더라고요. 국민의 입장에서는 왜 똑같은 조사를 두 번 받아야 되느냐. 일종의 수사일원화 이런 표현도 쓰고 싶고요”라고 전문가로서 견해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귀성인사가 있어서 이 문제는 다음에 얘기하지요”라고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문 대표는 파출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용산역으로 향했습니다.

 

용산역은 호남선 목포행 케이티엑스가 출발하는 곳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최근 서울역보다 용산역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호남의 달라진 민심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는 기차 앞에서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귀성길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서민경제가 특히 어려워서 고향을 찾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설 명절은 모처럼 가족 친지들과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 새정치가 서민들의 지갑을 지키겠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우리 경제를 살리고 서민들의 지갑을 두툼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유능한 경제 정당이 되겠습니다. 설 잘 쇠시고요. 청양의 기운 듬뿍 받으시고 올 한해 건강하고 희망찬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국민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오늘 소방서와 파출소를 방문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문재인 대표가 대답했습니다.

 

“국민들의 안전을 일선에서 책임지는 그런 공직자들 아닙니까? 우리 세월호 참사 이후에 안전한 나라, 돈보다 사람의 가치가 더 존중되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앞장서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분들에게 격려드리고 그분들은 우리 국민들의 행복한 연휴를 위해서 자신들은 희생하시기 때문에 더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갔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이어 서울노인복지센터로 가서 배식봉사를 하고 노인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기자들이 소감을 물었습니다.

 

“설은 우리 민족에게 참 기쁜 명절인데 그럴수록 우리가 좀더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명절을 명절답게 보낼 수 없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처럼 명절이 오히려 더 아픈 분들도 계시고 소외된 어르신들 외롭게 명절 보내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 분들을 우리가 정을 좀 더 나누는 따뜻한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 참 바쁘죠? 문재인 대표는 설 연휴에는 부산을 방문합니다. 대표에 선출된 이후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것인데요,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부평깡통시장, 국제시장 일원을 방문해 설 민심을 듣는 등 민생행보를 이어간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표는 최근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세를 탄 ‘꽃분이네’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문재인 대표의 부산 일정에는 김영춘 부산시당위원장, 배재정 부산시당 ‘을지킴이’위원장 그리고 해당지역 위원장 및 지방의원들이 함께 할 예정입니다.

 

문재인 대표는 실향민 및 상인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예정인데요 문재인 대표 자신이 실향민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표의 부모는 함경도 사람들인데 1·4후퇴 때 경남 거제로 피난을 내려와 문재인 대표를 낳았습니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설명절이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회 환경미화원 오찬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서울=연합뉴스)
김무성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국회 환경미화 노동자들과 떡국으로 점심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웃음꽃이 활짝 피는 화기애애한 자리였습니다.

 

“우리 국회를 항상 깨끗하게 해주시는 여러분들을 복도에서 뵐 때마다 감사함을 느꼈는데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설날 앞두고 여러분께 떡국 한그릇 대접하면서 오랫동안 감사했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706호 자신의 방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에게 “제 방이 제일 지저분하지요? 의원들 책상 위에는 중요한 서류들이 많은데 다 믿고 여러분께 맡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1의 보안요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마다 복도와 사무실이 잘 정리된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희망을 가지시고 저희들 보면 밝은 얼굴로 인사해 주시면 더더욱 힘내서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설 잘 맞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같이 온 이군현 사무총장, 김을동 삼둥이 할머니 이리로 오시지요. 김영우 대변인, 권은희 대변인 모두 여러분께 새배하는 마음으로 90도 인사하겠습니다. 차렷! 경례!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8년 9개월 최장수 근로자 정미희 미화원이 답사를 했습니다.

 

“저희는 각자 고향과 자라온 환경도 다르지만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국회 환경 미화에 전력을 다해 의정활동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앞으로도 성실히 일해 국회를 보다 빛나게 하겠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께도 저희들에게 지속적 관심 배려 부탁드리며 감사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의원들과 미화원들은 떡국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뒤늦게 도착해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지금 식사하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여야 격돌이 벌어지는 날은 퇴근도 못하고 있다가 대판 싸우고 아수라장이 되면 다 치우고 집에 가야 된다고 하네요. 그럴 때 제일 속상하지죠? 앞으로 그런 일 절대 안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박수가 타졌습니다.

 

미화원 두 사람이 건의사항을 내놓았습니다.

 

“국회 환경미화원은 모두 207명인데 사무실 직원 4명 빼고 203명입니다. 대기자가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병가를 내기고 어렵습니다. 꼭 해결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새벽에 차를 둔치에 주차합니다. 차를 후생관쪽 주차장에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가 행사를 끝내려 하자 김무성 대표가 제지한 뒤 두 가지 건의사항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사정을 정확히 파악한 뒤 국회 사무처와 상의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우리 새누리당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께서는 국회선진화법이 아주 잘 됐다고 하시네요. 여야가 싸움을 안하니까 청소할 거리가 적어졌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선진화법도 없어지고 청소할 일도 없어지고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5선 국회의원인데 제 앞에 6선도 계시고 7선도 계시네요. 12대부터 국회에 계신 분도 있고요. 이렇게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새해 맞이해서 모두 건강하시고 소원하는 일 다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오후에는 성남 판교 ‘스마트 교통센터’를 찾아가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귀성길 교통 상황과 교통량 증가 대비책을 점검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서울역 귀경길 인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상인과 시민들에게 불편만 끼친다는 것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오전에 국회에서 세월호가족협의회와 면담을 하고 유가족들로부터 요구사항을 들었습니다.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 활동과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세월호 인양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오후에는 경기도 안산의 4·16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 분향소를 이 지역구의 김명연 의원, 원내부대표 홍철호 의원과 함께 찾았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설연휴 직전 세월호 유가족을 집중적으로 챙긴 이유는 뭘까요? 그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제일 가슴아픈 분들이 세월호 유가족이니까 가서 분향하고 거기 계신 분들께 설 전에 위로를 해 드리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이렇게 따뜻한 가슴이 있습니다. 정치와 정치인들을 너무 미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못나도 ‘우리의 정치’이고 ‘우리의 정치인들’인 것입니다.

 

이제 설입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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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주기설’…올해 정권교체 서막 오를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2/19 10:58
  • 수정일
    2015/02/19 10:5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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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7 19:42수정 : 2015.02.1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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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보는 정국 기상도

임기에 따른 권력의 순환주기가 있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대략 1년 동안 가장 막강하다. 2년차에 접어들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3년차에는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4년차에는 레임덕이 시작되고, 5년차에는 식물정권이 된다.

 

임기 4년의 국회의원은 3년차 정도가 되면 모든 활동의 초점을 자신의 재선에 맞춘다. 재선을 위해서는 정권의 향배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집단탈당을 결행하는 시기도 총선을 앞두고서다.

 

5와 4의 최소공배수는 20이다. 따라서 ‘대선-총선 사이클’은 20년마다 동일한 모델이 출현한다. 다음 총선은 2016년 4월, 대통령 선거는 2017년 12월에 있다. 20년 전인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통령 선거 때와 간격이 같다.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을 전망하려면 2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눈길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딱 20년 전인 1996년
YS에 져 은퇴했던 DJ 복귀
야권분열한 가운데 총선 치러
YS정권 몰락하는데도 패배
하지만 대선에선 기적적 승리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했다. 그리고 20년 전인 1995년 6·27 지방선거 지원을 계기로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6년 4·11 총선은 야권이 새정치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분열한 가운데 치러졌다. 선거 결과는 신한국당 139, 국민회의 79, 자민련 50, 민주당 15석이었다. 김영삼 정권이 추락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야권의 분열로 집권여당에 어부지리를 안긴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책임론에 시달렸다.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추진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3후보 아니면 정권교체 못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97 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낸 것은 1997년 4월이었다. 19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선출된 직후 여론조사 가상대결은 ‘이회창 47% 대 야권단일후보 김대중 33%’였다. 정당지지도는 신한국당 31%, 국민회의 23%, 자민련 8%였다. 야당의 집권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5개월 뒤 1997년 12월18일 대통령 선거의 승자는 김대중 후보였다.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의혹, 외환위기, 디제이피 연합 성공, 이인제 후보 신한국당 탈당 및 출마 등 몇 가지 변수가 기적을 연출했다.

 

최근 야권 일각에서 ‘20년 주기설’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야당 후보가 보수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여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가설이다.

 

20년 전과 같은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대선에서 패배했던 야당 후보가 복귀했다. 둘째, 경제난이 매우 심각하다. 셋째, 10년 동안 집권한 보수기득권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어 있다. 넷째, 티케이(대구·경북)와 피케이(부산·울산·경남)가 분열 조짐을 보인다.

 

차이점도 있다. 첫째, 야당 대표의 정치력이 부족하다. 둘째, 호남의 집중력이 떨어져 있다. 셋째, 충청권에서 여당이 우세하다. 넷째, 여당에 유력 후보가 없어서 세대교체가 가능하다.

 

2017년 새정치민주연합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는 문재인 대표에게 찾을 수밖에 없다. 그가 지금 새정치연합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의원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긍정과 부정이 엇갈렸지만 어떤 경우든 문재인 대표에게 ‘야욕’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일치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2015년
다시 돌아온 문재인
경제난·10년집권 거부감 비슷

 

야당 후보 정치력 부족
충청서 여당 우세 등 차이점도

 

 

문재인 대표는 전당대회 직전 “위기의 야당 대표를 맡는 건 벼슬이 아니라 십자가라고 믿는다. 저를 다 던질 각오가 되어 있다”고 성명을 냈다. 또 “당대표가 안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다음 제 역할은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표의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의원들은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정치인은 종교인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욕심과 집념에 신뢰를 보낸다. 전당대회 당일 연설에서 문재인 대표는 ‘누가 우리 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 힘이냐’를 비롯해 12개의 질문을 던졌고 “문재인”이라는 연호를 이끌어냈다. 대의원들은 문재인 대표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메시지에 환호한 것이다. 그런데도 ‘십자가’ ‘다 던질 각오’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총선 승리라는 목표 설정에 문제가 있다. 총선 승리는 국회의원들의 희망이다. 야당 지지자들은 총선이 아니라 대선 승리를 갈망한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는 정권교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더구나 총선 승리는 불가능한 목표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와 영남 절대 우위의 선거 지형 때문이다. 호남·충청·강원·제주 의석을 다 더하면 영남 의석과 같다.

 

의원들은 문재인 대표가 ‘20년 주기설’을 완성하려면 우선 자신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인의 추진력과 지혜는 욕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후보 요인와 막판 집중력이 승부를 가른다. 1997년, 2002년, 2012년 대선이 그랬다.

 

물론 문재인 대표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권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정세균·김부겸·추미애·박영선 등 여러 예비주자들이 있다.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대선가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예비주자들 중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지율에서 가장 앞선다. 그러나 몇 개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첫째, 대선불출마 약속, 둘째, 정당정치 경험 부재, 셋째, 문재인 대표와 마찬가지로 ‘야욕’과 ‘경륜’의 부족이다.

 

누가 나서든 새정치민주연합이 2017년 정권교체를 이루려면 지금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을 재건축 수준으로 혁신해야 한다. 그 과제는 역시 문재인 대표의 몫이다. 가능할까?

 

‘20년 주기설’에 대해 여당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권을 도로 빼앗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을까? 어떻게 방어하려는 생각일까?

 

영남보다는 수도권 의원들이 훨씬 더 민감할 것이다. 초선의원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경기 성남분당갑 이종훈 의원은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다. <중앙일보> 출신 비례대표 이상일 의원은 경기 용인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개혁적 보수 성향인 두 사람은 현재의 상황이 여권의 정치적 위기라는 것을 인정했다. 특히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면 2017년 대선은 물론이고 2016년 총선도 패배할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각성하고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젊은 정치인들을 내세워 야당과 정면승부를 벌이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두 사람의 얘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경제가 가장 큰 문제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인데 정부의 태도는 안이하다. 위험하다. 2017년 시대정신은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시대정신에 가장 걸맞은 인물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양극화 및 저출산 고령화가 가장 큰 쟁점이다. 경제성장에도 뉴패러다임이 필요한데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진보보다는 보수가 유리할 것이다. 뉴패러다임 제시에 성공하면 20~30대 연령층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새누리당에는 ‘젊은 쇄신파 그룹’이 존재한다.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가 있다. 당내 기반은 취약하지만 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연대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여권의 대선후보가 야권에 비해 약해 보이지만 이들 젊은 쇄신파 그룹이 나서면 2017년 대선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이 다른 선택을 하는 상황은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다. 막아야 한다.”

 

“2012년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었다. 그런데 2016년 총선을 이끌 수 있는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 김황식·이완구 등 좋은 카드가 손상됐다. 다행히 국민들은 여전히 야권의 수권능력을 불신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다. 허를 찌르는 파격적 모습으로 국민들을 얼마든지 감동시킬 수 있다. 정치는 예술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분발을 기대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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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 “‘천안함 폭발원점 부정확할 가능성’ 합리적 의문”

[판결문분석] 추적60분 천안함편 “방통심의위 권한행사 신중해야…언론자유보장이 안보의 방책”
 
입력 : 2015-02-18  23:43:20   노출 : 2015.02.19  10:17:16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 결정을 받은 KBS <추적60분> 팀이 행정소송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고등법원에서도 방송 내용이 사실을 오인케 하거나 공정성에 위반된다는 당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고법 행정1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가 내놓은 판결문을 보면, 4년 여 전의 천안함 의혹 방송이 충분한 노력을 통해 언론사로서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한 것으로 판단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에 대해 △스크루조사에서 스웨덴 조사팀이 배제한 것처럼 방송 △엇갈린 백령도 초병 진술을 일치된 것처럼 방송 △흡착물질의 성질이 침전물인 것으로만 방송 △국방부가 재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방송 △마치 많은 이들이 조사결과를 못믿겠다고 한 것처럼 방송했다며 ‘경고’(중징계) 처분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방통심의위의 이 같은 처분 가운데 백령도 초병의 진술을 토대로 합조단이 발표한 폭발원점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제작진의 방송 내용이 합리적 의문이라고 판단했다.

방통심의위가 지적한 것은 “섬광을 목격한 초병의 진술에 차이가 있는데도 방송에서는 일치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해 폭발원점에 대해 객관성에 반하는 의혹을 제기했다(심의규정 14조)”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두무진 돌출부 쪽 2~3시 방향에 빛이 퍼졌다가 소멸하는 것을 봤다’는 백령도 초병 김승창 일병의 진술과 ‘초소를 기준으로 280도에서 불빛을 봤다’는 박일석 상병의 진술이 방위각까지 일치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초소를 기준으로 우측에 있는 두무진 돌출부 방향이라는 부분은 최소한 일치하고 합조단이 주장하는 폭발원점(초소 기준 220도 지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재판부는 “이들 초병 외에 남쪽의 다른 초소에서도 관측이 가능한데도 섬광이나 물기둥을 봤다는 보고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폭발원점에 관한 의문의 근거로 제시했다”며 “또한 국방부 관계자 역시 ‘남쪽 초소에서 아무도 섬광이나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합동조사단으로서도 의문’이라고 밝혀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는 점을 시인하기도 했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비춰보면 합조단이 제시한 폭발원점과 초병들의 섬광을 목격한 지점이 불일치하다는 사실을 기초로 합조단이 발표한 폭발원점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한 노력을 투입해 확인된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에 반박하는 윤종성 합조단장 진술 등 합조단 반론도 충분히 방송한 점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전달하거나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로 호도해 객관성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천안함 침몰원인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이른바 ‘흡착물질’의 성질을 두고 추적60분 팀이 폭발재가 아닐 수 있다고 방송한 것이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한 방통심의위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KBS가 이 분야 전문가인 정기영 교수의 실험결과를 통해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는 합조단 발표내용과 달리 비결정질 알루미늄 수산화 수화물이다’라는 점을 주장한 것일 뿐, 폭발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며 “또한 추가적인 실험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전달해 수중폭발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으며, 정 교수 자신의 의견에 방송에서 왜곡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제시했다.

‘합조단 내에서도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질일 가능성은 사전에 검토했으나 수중폭발에 의한 폭발재라는 점을 확인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로 통칭한 것’이라는 이근득 국방과학연구소 박사의 반론도 방송이 된 점도 재판부는 근거로 들었다. 특히 이 대목에 대해서는 “‘알루미늄 산화물과 알루미늄 수화물을 알루미늄 산화물로 통칭했다’는 합조단 설명대로라도 폭발로 ‘수화물’이 발생한다는 과학적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 합리적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반드시 합조단과 정부의 주장을 절반씩 방송해야 공정하다는 식의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합조단과 정부는 방송 외에도 다양한 의사전달 수단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합조단 주장과 방송의 의혹이 동등하게 반영해야만 공정성과 균형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런 점을 볼 때 공정성과 균형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천안함 스크루가 휘어진 것과 관련해 스웨덴 조사팀이 스크루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도해 ‘사실을 오인하게 하거나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해 시청자를 혼동케했다’(방송심의규정 9조 3항 및 14조 위반)는 방통심의위 주장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스크루 변형과 관련한 방송의 주된 내용은 누가 조사결과를 분석한 주체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방송에서 전달하고자 한 부분은 스웨덴 조사팀이 스크루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추진축의 밀림을 스크루 변형의 원인으로 밝혀낸 주체가 합조단의 노인식 교수라는 점’”이라며 “(제작진이) 노 교수를 만나 스웨덴 조사팀이 직접 스크루 조사를 담당했는지 확인했다고 밝혀 논의 대상이 조사주체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판단했다.

합조단 조사팀은 당시 ‘스크루 변형의 정밀분석을 위해 5000불이 소요된다’고 했으나 합조단은 이것이 주요단서라고 생각하지 않아 추가조사를 의뢰하지 않았으며, 그러다 시민사회에서 스크루 변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노 교수에 연구를 진행시켰다고 재판부는 지목했다. 이후 노인식 교수가 ‘급정지에 의한 관성력이 스크루 변형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고 추진축이 밀리면서 발생한 관성력이 주요하고 작용한 것’이라고 결론을 낸 것을 두고 재판부는 “그렇다면 스크루 주된 변형 원인을 규명한 것은 합조단의 노인식 교수로 봄이 정확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송을 한 의미에 대해 재판부는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관해 정부의 작은 실수가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정부 감시 비판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으로서는 구체적 사실에 관해 확인하고 정확한 설명을 구할 수 있다고 본다”며 “스웨덴 조사팀이 스크루 변형원인의 단서를 제공했을 뿐인데도 마치 직접 변형원인을 분석한 것처럼 조사보고서에 기술했기 때문에 실질적 조사주체를 확인하는 것이 유의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합조단이 재조사를 거부한 것처럼 방송해 방송의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방통심의위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방송한 내용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조단이 원론적 차원에서 토론과 토의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재조사나 재실험을 통한 검증에 대해서는 계속 완곡히 거절해 제작진과 합조단 공동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이유로 제작진이) 방송에 실을 수 없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합조단이 재조사 제안을 거절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방송에서 ‘상당수 국민들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고 있는 것처럼 방송해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방통심의위의 판단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천안함 함미
 

재판부는 “방송에서 합조단 조사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입장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신뢰한다는 취지의 인터뷰 사례들을 반복해서 방송했다”며 “정부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적잖이 확인돼 다른 언론 매체 역시 조사보고서 등에 대한 추가적인 토론과 검증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제작진이 방송 후반부에서 ‘국민들의 여론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부발표는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고 밝혀 북한소행을 부정하거나 조사보고서의 기본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며 “국민들의 보편적 신뢰형성을 위한 개방과 소통을 촉구했을 뿐이므로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방통심의위의 심의기능에 헌법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목을 끌었다. 재판부는 “정부여당이 그 구성을 주도하는 방송통신심의원회가 정부에 대해 불공정 또는 불균형하다고 제재할 때엔 △다수의 입법례에서 국가에 의한 공정성 심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언론은 공적 영역으로서 그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며 정부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언론 자유의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반면 국가가 보도자료나 홍보자료를 이용해 반박할 수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허위내용을 담고 있거나 진실을 오인케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권한 행사에 극히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정권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에 대해 북한정권의 허위변명에 빌미를 주는 부정적 견해를 집중 표출하는 보도방식’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런 방송이 극히 우려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미국의 설리번 판결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하에서는 미국 설리번 판결에서 제시된 것처럼 ‘공적인 토의는 우리 정부의 본질적인 원칙이자 정치적 의무이며, 이런 토의는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가끔은 불쾌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억제돼서는 안되며 가급적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보장돼야 할 것이다.”

재판부는 “개방된 정치체제와 언론자유의 보장이야말로 오늘날 지구촌에서 우리나라가 누릴 국가안보를 위한 최고의 방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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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거짓말과 국민학살 다룬 <국가의 배신>

읽을수록 열받는다...이런 사람이 대통령?

[서평] 정부의 거짓말과 국민학살 다룬 <국가의 배신>

15.02.18 21:09l최종 업데이트 15.02.18 21:09l

 

 

'반대로만 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무슨 사이비 종교의 외침 같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야 맞다. 그러나 이는 국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통령의 거짓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국가의 말을 거꾸로 들으면 산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들으면 죽는다. 사이비 종교에서나 있을 법한 논리를 국가나 대통령에게 적용해야 하다니.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있다. 놀랍게도.

독자들 중에는 아마 북한이나 그 어떤 미개 국가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아니면 지독한 독재국가를 떠올리든지. 그러나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바로 대한민국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이야기다.

당당한 민주공화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이 정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닌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주권이 정권에 있고, 그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살상을 지켜보며 손발을 놓고 있어야 했던 진짜 주인인 국민들의 아픈 이야기가 유독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대통령의 거짓말... 반대로 한 사람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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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배신>(도현신 지음 / 인물과지성사 펴냄 / 2015. 1 / 250쪽 / 1만3000원)
ⓒ 인물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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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몸서리쳐지는 이야기를 역사적 추적을 통해 규명한 책이 있다. 도현신의 <국가의 배신>(2015, 인물과지성사)이 그것이다. 저자는 '실미도에서 세월호까지, 국민을 속인 국가의 거짓말'이라는 부제를 달아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 때까지 국가가 저지른 잔인한 학살과 거짓말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언론인 이사도어 파인슈타인 스톤이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평론이 떠오르게 하는 사건이 유독 많았다. 차라리 스톤의 말을 알았다면 살았을 텐데, '정부가 거짓말을 하겠어?'라며 나라를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거나 빨갱이가 되기도 하고, 학살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말은 그 으뜸일 것이다. 요즘 뉴라이트 집단이 건국의 아버지라며 그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떠드는 그 이승만 말이다. 6·25 전쟁이 터지자 연일 매스컴은 (있지도 않은) 승전보를 알렸다. 이승만은 미국 대사 존 무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한 이튿날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그는 대전에서 이런 거짓말 방송을 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으며, 일선에서도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서 오늘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중이니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국가의 배신> 24쪽 중에서

이승만의 새빨간 거짓말을 믿고 서울에 남은 이들은 부역자나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가거나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사건은 지난해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도 있었다. 선장과 고위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가만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자신들은 구명정에 올라타 탈출했다. 결국 300여명의 승객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이승만의 방송이든, 선장의 방송이든 그 반대로 한 사람들은 다 살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 모른다. 선장은 자신이 빠져나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면, 이승만은 자신이 이미 빠져나와서 거짓말을 했으니 그 죄질로 보면 선장보다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전원 구조'라는 엄청난 오보로 시작한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의 사과(?)로 유명하다. 그러나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책임진 사람도 없고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었음에도 유가족들은 지금도 여전히 거리에 내몰려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학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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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미도> 스틸 컷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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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보며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했다. 맞다. 국민을 내팽개치는 국가는 나라도 아니다. 6·25 때 이승만 정권은 국민방위군이라는 미명 아래 선량한 국민을 강제 징집했다. 무려 그 수가 100만 명이었다. 중국군의 인해전술을 막아보자는 의도였는데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수가 수십만 명이 이른다. 국가가 국민을 끌어다 생매장한 꼴이다.

박정희 때 북파 공작원으로 특수훈련 중이던 실미도 부대원 서울난입 사건은 더 치를 떨게 한다. 죄수들의 죄를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공작원 훈련을 받고 김일성을 암살하는 임무를 주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협조하기로 했던 미국이 도와주지 않고 박정희도 이들을 모른 척하는 바람에 실미도를 탈출 청와대로 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박정희 정권은 그들이 무장공비라고 거짓말을 했다. 전원 사살됨으로 국가가 국민을 용도 폐기한 사건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 때 국민보도연맹 사건도 국가에 의한 국민 학살 사건이다. 전쟁 때 공산당에 협조했어도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수십만 명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갔다. 전쟁 후 거창·산청 양민학살 사건은 더 잔인하다. 동네에 들어 온 북한군에게 음식을 줬다는 이유로 공비로 몰아 죽였다.

전두환 정권 때는 삼청교육대를 결성하고 범죄자들을 교화한다는 목적으로 군대의 훈련보다 더 강한 훈련과 학대를 자행했다. 실은 범죄자가 아니라 정권에 비협조적인 이들도 많았다. 마을마다 할당을 했기에 무고한 시민들이 끌려가 학대당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후에 밝혀지기는 시체를 처리하는 공장(화장장)이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의 말대로 '인간교화'가 아니라 '인간 화장'이었던 것이다.

전쟁 때 적에 맞아 죽는 거야 나라를 위한 죽음이니 장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야말로 정권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인권을 유린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으로 내모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이제 국민은 정권의 말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정권이 감독자가 아니고 국민이 감독자란 걸 잊으면 안 된다.

정권의 거짓과 학살... 국민만이 막을 수 있다

책에서는 김영삼 정권 때 한보를 필두로 줄줄이 부도를 맞을 때도 '한국경제는 튼튼하다'고 거짓말을 하다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한 사건을 '결정장애 국가의 최후'라고 꼬집는다. 또, 저축은행 연쇄부도 사건을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국가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정비 사업은 눈 가리고 아웅 한 사기극이라며 한반도 운하 사업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이 나라가 내가 사는 나라가 맞나?' 내 눈을 의심했다.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혹은 잊었는지), 전두환의 광주학살 등은 건드리지도 않았지만, 책에 기록된 몇 가지 사건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그러나 엄연한 역사적 사실들이다.

현재 진행형인 ▶ 2013년 8월 8일 세법개정안 발표, ▶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과 이후 대책, ▶ 2014년 9월 22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발표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거짓, '증세 없는 복지' 등의 공약(空約)의 공약(公約)화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의 거짓말과 국가의 잔인한 국민 학살, 더 이상 이런 것들이 이 나라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이는 깨어있는 국민밖에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가가 하는 말을 맹목적으로 다 믿지 마라. 날카롭게 감시하고, 잘못되었을 때 거침없이 비판하고 반대하라'는 저자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국가의 배신>(도현신 지음 / 인물과지성사 펴냄 / 2015. 1 / 250쪽 /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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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의 합창으로 새로운 통일역사를


<광복 70주년을 준비하는 사람들 릴레이 인터뷰 ①>
황의중, ‘우리의 소원’ 천만 명 합창 제안자
김치관/이승현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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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9  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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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준비하는 사람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한.일협정 50주년과 6.15공동선언 15주년 등 중요한 사건들이 꺾어지는 해, 이른바 정주년을 맞는 해이다.
각 단체들도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고, SNS 시대의 추세에 맞게 다양하고 특색있는 행사들도 개인별, 모임별로 추진되고 있다.
5.24조치 등으로 남북간 민간교류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당장 남북이 함께하는 행사는 성사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6.15남측위원회가 8.15 민족공동행사를 계획하는 등 다양한 남북.해외 공동행사도 예정돼 있다.
<통일뉴스>는 ‘광복 70주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릴레이 인터뷰하여 그 내용을 공유하고 행사 추진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특히 남북 공동행사는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편집자 주

 
   
▲ <나비 날다> 제안자 황의중 불암고 교사와 17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모든 일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건데, 결국 다 움직일 겁니다.”

 

천만 명이 천 원을 내서 100억 원을 모금해 8월 15일 ‘천만의 합창 <나비 날다>’를 공연하겠다는 거창한 제안을 내놓은 황의중 불암고등학교 교사는 “한 마디로 어렵다”면서도 성사를 낙관했다.

“혼자 술을 마시다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속으로 읇조리고 변주도 시켜보다가, 내가 선생인데 요즘 아이들이 ‘우리의 소원’을 부른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국민이 다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자산이기도 한데, 젊은 아이들이 안 부르게 되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젊은 아이들도 부르고 전국방방곡곡에서 불러져서 살아남는다면 뭔가 통일에 대한 마음과 불씨가 계속 살아남는 것이고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황의중 선생이 17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털어놓은 ‘나비 날다’를 제안하게 된 동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되는 ‘우리의 소원’ 노래가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광복 70주년을 맞아 천만 명이 함께 이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 천만명이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인류사의 한 장면'을 꿈꾸는 황의중 교사.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계적인 작곡가가 멋있고 웅장한 노래로 작곡하고, 베를린이나 뉴욕필 오케스트라가 유엔본부 앞에서 연주하면 세계적 이슈가 되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아이들은 클래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나 그룹들이 이 멜로디를 주제로 해서 신나고 멋있는 음악을 만들어서 같이 공연하면 어떨까, 그러면 신나겠다. 좋겠다.”

 

그러나 막상 만 명, 백만 명도 아니고 무려 천만 명의 모금으로 ‘나비 날다’를 성공시키는 일을 추진하면서 그 역시 여간 걱정이 아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마디로 어렵다”고 하소연 하더니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라고 토를 달고 마침내 “반드시 해낼 거다”로 발전한다.

그가 이처럼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은 그저 막연한 것만은 아니다. 일본에서 교환교사로 일한 인연으로 에다가와 조선학교와 단바망간기념관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을 KIN(지구촌동포연대)을 중심으로 성공시킨 경험이 있고, 특히 단바망간기념관 모금은 일본측 사정으로 후원자들에게 모금액을 일일이 되돌려주는 한 단계 더 어려운 일까지 마무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돈을 정부나 기업에서 구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내 생각은 ‘없는 사람들’, 민초의 힘으로 이룩할 때 진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천만이 돈을 내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도 없고 인류역사에도 없는 일인데, 영화 관객이 천만을 넘기는 것을 보면 절대 불가능한 숫자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천만 명의 모금을 낙관하는 것은 성급할 터. “아이디어는 너무 너무 좋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는 그도 “자나 깨나 눈뜨자마자 천만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실제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SNS를 잘 활용하더라도 천만 명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정은 못 하더라”는 것.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 새로운 것이 생기는 것”이고, “역사라는 것이 전부 그렇게 씌여지는 것”이라는 믿음도 확고하다.

실제로 그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제안은 4명의 공동제안자, 33명의 준비위원으로 발전했고, 지금은 3월 1일까지 1만원을 내는 1,945명 추진단을 모집하는 단계에 있다.

 

   
▲ 네이버와 다음 카페에서 1945명 추진단을 모집하고 있다. <나비 날다> 카페 이름은 'wemadehistory'이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분단 7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에 1,945명이 천만을 설득해 구하자는 개념이다. 그것도 단지 1,945명이 아니라 반드시 3월 1일 세종문화회관에 꼭 참석해 천만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1차 관문이다.”

 

당장 1,945명을 모으는 일도 수월치 않은 상황이다. “시간과 힘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는 “빨리 신청해서 한갓 멋진 꿈이 아닌 통일사의 한 장면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신신당부했다.

추진단 모집에 허덕이면서도 그에게는 간절한 큰 꿈이 있기에 상상의 나래가 쉼 없이 펼쳐지고 있다.

“1,2부 정도로 나눠서 1부는 가능하다면 세계적인 밴드나 우리나라 밴드가 공연을 먼저하고, 2부에서는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가능하면 8시 15분에 맞춰서 ‘우리의 소원’ 대합창곡을 1만명 정도의 합창단이 노래하고, 잠실운동장에서 6,7만이 동시에 노래 부르는 행사계획이다. 인터넷으로 중계해 전국 각지와 세계에서도 동시에 부르고, 상황판으로 중계되는 그런 꿈이다.”

“남쪽과 북쪽과 해외동포가 합쳐서 곡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합창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지금 남북관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허가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 추진하고 5,6월쯤 세계적 합창제로 틀이 잡히면 북쪽도 합창제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 <나비 날다>가 성공해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한걸음 앞당겨질 수 있을까?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그의 낙관의 근거는 도대체 뭘까? 
“사람은 누구나 다 좋고, 바르고 그런 것에 대한 지향들을 가지고 있다. 그 지향들을 어떻게 끄집어내느냐가 문제다. 이 아이디어는 내가 봐도 재미있다.”

 

그가 제안하고 발벗고 나선 <나비 날다>라는 ‘새로운 역사 쓰는 일’이 진짜로 성공한다면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한걸음 성큼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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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맞은 노무현, '폭탄' 터뜨린 정몽준

 

[창간 15주년] 오마이뉴스를 만든 100대 기사·사건②

15.02.17 17:35l최종 업데이트 15.02.17 17:35l

 

 

언론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2월 22일로 창간 15주년을 맞이합니다. 돌이켜보면, 오마이뉴스가 헤쳐온 길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오마이뉴스 15년의 역사를 100대 기사와 사건으로 풀어 5회에 걸쳐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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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왼쪽)와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가 2002년 3월 2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새천년민주당 강원 경선을 생중계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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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 현장중계 (2002. 3. 16)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은 정당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 이벤트였다.

오마이뉴스는 광주 경선부터 동영상 생중계를 시작했다. 이날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의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1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고 오마이뉴스 생중계의 인기도 덩달아 뛰었다(http://omn.kr/bn5e). 

앵커와 해설자가 스포츠 중계를 하듯 5시간의 정당 행사를 전한 것도 새로운 형식의 실험이었다. 경선이 주말마다 열리면서 평일의 절반 수준이던 주말 조회수가 평일 조회수를 오히려 웃돌기도 했다. 페이지뷰는 16일 광주의 325만을 시작으로 24일 강원 367만, 30일 경남 427만, 4월6일 인천 512만 건으로 껑충 뛰었다.

당시 공중파 방송사들은 특정 정당의 내부 경선을 생중계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마이뉴스는 오프라인 매체가 파고들 수 없는,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틈새 시장을 개척했다.

[22] 오마이뉴스 종이신문 창간호 발간(200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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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4월 30일 발행된 <주간 오마이뉴스> 창간호 표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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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반의 오마이뉴스가 오프라인 종이신문으로 영역 확장을 시도한 사건이었다.

온라인 콘텐츠를 종이신문으로도 배포한다는 아이디어는 창간 초부터 나왔다. 하지만, 2001년 2월19일 열린인터뷰 재개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문화관광부에 오프라인 주간지로 <주간 오마이뉴스>를 등록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초대 편집장은 <시사저널> 출신의 김당 기자였고, 창간호 커버스토리는 '백악관에 건네진 노무현 비(秘) 파일-미국은 한국 대선에서 손떼라'였다.

타블로이드판 64면으로 발행된 <오마이뉴스 2002>는 그해 말 대선을 겨냥해 지면의 80∼90%를 정치 기사로 채우는 '대선 테마신문'이었다. 주간 오마이뉴스는 이듬해 6월 13일 무가지로 전환됐다가 2011년 말 폐간됐다.

[23] "97년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열었다"(2002. 5. 21) 

2002년 대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이회창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 보도는 고위층 병역 비리가 은폐되고 있다는 2001년의 연속보도에서 나왔다(http://omn.kr/bipz).

2001년 취재 과정에서 당시 군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입에서 "수사 보조요원 중에 김대업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고, 이듬해 봄 김씨의 입에서 "정연씨 병적기록표가 위·변조됐고 '은폐' 대책회의도 있었다"는 진술이 나온 것이다.

보도 후 5개월 뒤인 10월 25일 검찰은 "이정연이 27세 나이로 군에 입대하게 되었던 점 등에 비추어 고의감량의 증거는 없으나 체중으로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노력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병적기록표가 위·변조되었거나 은폐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이한 것은 검찰이 사건을 정식 수사가 아닌 '내사 종결'로 처리해 관련 당사자들이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수사기록에 접근할 길 자체를 막았다는 점이다.

2005년 4월 29일 대법원은 일련의 병풍 보도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민사소송에 대해 총 9000만 원의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한나라당과 오마이뉴스 모두 특검을 통한 재수사를 주장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만다.

[24] 지만원 대 시민기자... 표현의 자유 한계는?(2002. 8. 24) 

2002년 8월 시사평론가 지만원씨의 신문광고, 특히 "광주사태는 소수 좌익과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대목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권태윤 시민기자는 지씨에 대해 '분열적 정신상태', '야당이 집권하면 인정받고 출세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서 이성을 잃고 마구 울부짖는다'고 지적했다(http://omn.kr/3wgr). 이에 지씨는 "나를 정신병자로 낙인찍어 개인의 명예를 고의적-악의적으로 훼손했다"며 고소했다.

2004년 6월 15일 서울지법 민사소송 1심은 "원고의 인격은 언론 비판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며 권 기자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듬해 1월12일 서울고법의 판단은 또 달랐다. 문제의 기사가 일부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씨가 신문광고를 게재한 경위, 내용, 표현 정도 등을 감안하면 기사 수준은 언론 자유의 용인된 범위 내에 있다며 권 기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같은 해 6월 9일 대법원(주심 고현철 대법관)은 지씨의 패소를 확정했다.

[25] 종로서 경찰들과 한총련 학생들의 친선 축구 경기(2002. 11. 10) 

'경찰과 수배자의 친선 축구'라는 해외토픽 같은 일이 벌어진 2002년이었다. 

오마이뉴스 주최 '대화가 있는 축구시합'에서 종로경찰서 상대 서총련(한총련 산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팀에는 A급 수배자였던 서총련 의장 정종성, 서부총련 의장 이재희씨가 속해 있었다(http://omn.kr/bjm5).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이 수배자와 어울려 공을 찼다는 사실은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는 질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해 선거 바람 속에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고 묻혔다.

이듬해 5월 7일 한총련 수배자 문제 해결을 위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주최 간담회에는 정부를 대표해서 법무부 김경수 검찰3과장이 참여하기도 했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2012년 10월 19일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서로 다독여주며 끝난 토론회를 보면서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자리에 모여 수평적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회고했다.

검찰은 2003년 7월 25일 내사·지명수배 중인 한총련 대학생 152명 중 79명을 불구속 수사 하겠다고 발표해 이 문제를 매듭지었다.

[26] '달걀 맞는 노무현' 포착한 카메라(200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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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걀 맞은 노무현 후보 지난 2002년 11월 13일 여의도 둔치공원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가 연설하는 도중 군중들 사이에서 날아온 달걀이 얼굴에 맞고 있다. 이날 농민, 학생 등 집회 참석자 일부가 여야 후보들이 자리잡은 연단을 향해 돌과 달걀을 던지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후보가 직접 맞은 것은 노 후보가 유일했다. (주월간사진공동취재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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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5주 앞둔 2002년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둔치에서 농민대회가 열렸다. 3파전에서 1등을 달리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불참했고,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잇달아 연단에 올랐다.

노 후보가 "한국농업을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연단으로 날아온 달걀이 그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그날의 사건은 더 유명해졌다(http://omn.kr/bl2g).

이틀 뒤 노 후보는 인터넷신문협회 토론회에서 "내가 정치하면서 계란을 세 번 맞았는데, 내가 계란을 맞고 나면 그 문제는 반드시 풀린다"고 웃었다. 실제로 그 사건은 노 후보에 대한 동정 여론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27] 일일 페이지뷰 1000만 뷰 돌파(2002 11.22)

12월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 단일화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그리고 양자간 협상이 타결된 이날 오마이뉴스의 하루 페이지뷰는 1124만2139회를 기록했다. 방문객들이 갑자기 늘어나며 접속에 차질을 빚는 바람에 그해 11월 25일과 12월 9일 두 차례나 서버를 증설해야 했다.

[28] 오마이뉴스에 '촛불시위' 제안 기사 올린 앙마(2002. 11. 29) 

대선을 빼고 2002년 12월을 달군 가장 큰 이슈는 여중생 장갑차 사건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 심미선양이 훈련 중인 주한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사건이 한 여름인 6월 13일에 발생했다. 그러나 11월 20일과 22일 미 군사법원이 사건에 관련된 관제병과 운전병에게 잇달아 무죄 선고를 내리자 한미행정협정(SOFA)을 개정하자는 촛불시위가 불 붙었다.

11월 27일 온라인 공간에서 촛불시위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앙마'라는 닉네임을 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기보씨였다(http://omn.kr/bjr3). 그런데 문제는 김씨가 자신의 제안을 제3자의 주장인 것처럼 기사를 썼고, 오마이뉴스가 이 기사를 29일 정식 기사로 채택했다는 점이었다.

오마이뉴스는 그를 '200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해가 바뀐 뒤 누리꾼들의 지적이 있고서야 기사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오마이뉴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만큼 더 많은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 사건이었다.

[29] 오마이뉴스 여론조사 보도가 거짓이라고? (2002. 12. 9) 

2002년 대선까지만 해도 여론의 소재와 흐름을 파악할 수 없는 '깜깜이 기간'이 무려 22일에 달했다. 여론조사 결과의 보도금지를 명시한 선거법 108조를 악용해 정당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엉터리 선거 판세를 내놓기도 했다.

오마이뉴스가 용기를 내보았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이 이회창보다 표본오차 이상으로, 두 여론조사 기관의 경우 두 자리 수 격차를 보인다"고 투표일 10일 전의 여론조사 경향을 보도한 것이다(http://omn.kr/bipy).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는 이튿날 허위사실 유포 등 선거법 위반 혐의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기자 2명 등 4명을 고발했다.

2013년 8월 22일 서울고등법원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 오 대표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15년 6월30일 국회는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을 22일에서 6일로 크게 줄인 선거법을 여야 합의로 개정했다. 오마이뉴스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한나라당도 법 조항 자체의 전근대성은 뒤늦게 인정한 셈이다.

[30] 정몽준의 '폭탄'이 떨어진 날 1~24신(200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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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전박대 당한 노무현 후보 대선을 하루앞둔 2002년 12월 18일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노 후보가 정몽준 대표 집을 방문했으나, 정 대표가 자고 있다는 이유로 방문을 거부당해 발길을 돌렸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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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판은 투표일 직전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지지 철회 선언으로 다시 한 번 출렁이게 된다.

오마이뉴스는 18일 밤 10시30분 김행 국민통합21 대변인의 깜짝 발표 직후에 나온 1신부터 다음날 오후 2시의 24신까지 30분 단위로 속보를 쏟아냈다(http://omn.kr/bfoq). 기사를 본 독자들이 투표 종료 시점까지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전화를 돌리는 가운데 선거는 노무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31] 자발적 유료화 시작(2002. 12. 27) 

오마이뉴스는 '대선 특수'를 대비해 급히 데이터서버를 증설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중고 서버를 구입했다. 때문에 선거 이후에도 서버 하드디스크의 장애가 빈번했다. 오마이뉴스는 27일부터 30일까지 독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월 3000원의 자발적 유료화를 제안했다(http://omn.kr/7pqc). 그 결과, 5일 만에 6600만 원이 모이고, 2003년 4월까지 1억 6000만원이 적립됐다.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새 서버를 마련했음은 물론이다.

[32] "현대상선, 북한에 2240억 송금" 특종 보도(2003. 1. 29)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대가 북측에 수천억 원의 자금을 보냈다는 설이 분분했지만, 실체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국정원 취재 전문 김당 기자가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을 확인했다. 김 기자는 퇴임을 앞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마지막 확인을 시도했지만, 박 실장은 묵묵부답이었다. 현대의 대북송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본 김 기자는 정운현 편집국장에게 '확인했음'이라고 보고했고, 문제의 기사는 자정 직전 보도됐다(http://omn.kr/bndc).

박 실장은 "여기저기서 확인전화가 온다"는 박선숙 공보수석의 전화에 "응, (기자가) 여기 와있어. 근데, 기사를 다 써놓고 왔대"라고 남 말 하듯이 답변했다. 

김당 기자의 기사는 대북 송금 특검의 촉매제가 됐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해 7월부터는 특검으로 촉발된 '박지원 현대비자금 150억 원 수뢰' 사건의 무죄 가능성을 추적 보도했다. 대법원은 2006년 9월28일 박 실장의 수뢰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33] 노무현 대통령 첫 인터뷰 보도(200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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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취임식이 며칠 남지 않은 지난 2002년 2월 22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 집무실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연호 대표기자(가운데)와 김당 정치부장(왼쪽).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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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후 처음으로 인터뷰한 곳은 오마이뉴스였다(http://omn.kr/bnl6
).

"인터넷에 능숙한 세계 최초의 직선 지도자인만큼 인터넷매체와 인터뷰해야 의미가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요청에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당선 후 첫 인터뷰도) 노무현 방식으로 해야지"라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 인터뷰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정부의 가판신문 구독을 중단하고 소주 사주며 기사 빼달라는 얘기하지 않겠다"는 등 언론개혁에 대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언론의 '서열'을 무시한 그의 선택을 불편해했던 오프라인 매체, 특히 신문들이 크게 반발했다.

[34] 국정원 간부 단체사진 공개 파문(2003. 6. 20) 

오마이뉴스는 6월 20일 오후 7시경 노 대통령의 국정원 방문 스케치를 담은 김당 기자의 기사에 외부에 공개되서는 안 되는 중간간부 22명의 단체 사진을 게시했다가 39시간이 지나서야 삭제했다. 김 기자는 문제의 사진이 오마이뉴스에만 제공된 사실을 모르고 청와대의 보안의식을 질타하는 기사를 썼다가 더 큰 여론의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3일 뒤 회사 차원의 사과문을 내고 해당 기자(정직 1개월)와 편집국장(감봉 3개월)에게 자체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청와대가 출입기자 교체를 요구하는 등 양측의 긴장이 지속되기도 했다.

[35]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 6위(2003. 10. 20) 

시사저널이 매년 정·관·학·언론계 등 전문가 그룹 상대로 실시해 발표하는 '언론매체 영향력' 설문조사는 언론계의 관심거리였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첫해인 2000년 10위, 2001년 8위를 기록하다가 2003년 이후 3년 연속 6위까지 올라갔다. 상위 언론사는 KBS와 조선일보, MBC, 동아일보, 중앙일보였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내부에서 온라인매체 등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번 조사결과는 전문가 그룹에서도 SBS보다 온라인매체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의미 아니냐"며 8위를 기록한 SBS 보도국 기자의 우려 섞인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매체 영향력 조사에서는 14위에 머물렀다.

[36] 오마이TV 개국(2003. 11. 8) 

그 동안 외주 형태로 운영되던 오마이TV가 정식으로 개국했다. 지원자 168명 중 최종합격한 개국 요원은 4명이었다. 2015년 현재 오마이TV 상근기자는 8명으로 개국에 비해 두 배 늘어났다.

[37] 누리꾼들 성원으로 미국에 간 '백범 암살' 취재팀(2003. 11. 28)  

2007년 11월 16일 타계한 권중희씨는 생전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 행방을 찾아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박도 기자의 연재기사를 통해 그가 "죽기 전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있는 백범 관련 기밀해제 문서를 보고싶다"고 하자 그의 미국행을 돕자는 누리꾼 모금 캠페인이 시작됐다. 두 달 만에 4036만 원의 성금이 걷혔는데, 미국과 독일의 유학생부터 일당 노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http://omn.kr/bnme).

그러나 노근리 사건이 파장을 일으킨 후 김구 암살 사건의 내막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들 대부분은 미국 CIA와 국무성이 수거해간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그들의 취재는 시도에 만족해야 했다.

[38] 한-칠레 FTA 비준 경제5단체 배너광고 파문(2003. 11. 20) 

오마이뉴스 메인 화면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촉구하는 경제5단체(한국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배너광고가 걸리자 독자들과 시민기자들의 항의가 촉발됐다.

오마이뉴스의 논조는 FTA에 비판적이었으나 "독자들이 광고와 기사를 별개로 볼 수 있겠냐"는 반론은 편집국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하루 만에 팝업 대신 메인면 상단의 '의견' 형식으로 광고를 바꿔 걸었지만, 12월 3일 인권운동사랑방이 기자회원을 탈퇴하는 등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민언련의 기관지 <시민과언론> 2003년 11/12월호에서 건국대 언론홍보학과 황용석 교수는 "신문의 역사 자체가 이념형 정파지에서 대중지로 나아갔듯 '대안매체'로 출발한 매체들이 '주류매체'로 변모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며 "초기 오마이뉴스의 역할을 또 다른 대안매체가 대신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39] 온라인 생방송 '뉴스게릴라 라디오 습격사건'(2003. 12.11) 
 

기사 관련 사진
▲  2003년 12월 11일 오후 종로구 내수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뉴스게릴라 3만명 돌파를 기념하는 온라인 생방송 '뉴스게릴라 라디오 습격사건'이 오연호 대표기자와 송민성 뉴스게릴라의 진행으로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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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 3만 명 돌파를 기념하는 특별 이벤트의 진행은 오연호 대표와 송민성 시민기자가 맡았다. 3만 번째 시민기자는 목포의 퇴임 교원 장생주씨였다(http://omn.kr/bnnv).

[40] 오마이뉴스 노동조합 결성(2003. 12. 11)

"오마이뉴스에는 왜 노조가 없냐?"는 외부의 물음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왔다. 

노조원 32명이 참석한 창립 총회에서 임기 2년의 초대 노조위원장에는 당시 입사 3년차였던 황방열 기자, 회계감사에는 김미선 편집부 기자가 각각 선출됐다(http://omn.kr/2i1s). 황 위원장은 2010년 9월 29일 기자협회 오마이뉴스 초대 지회장에도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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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부처 부분개각… 그 내면을 본다

 
박근혜 특유의 고집스런 인사 시스템인 일단 버텨보자는 행태의 연속
 
임두만 | 2015-02-17 16:03:0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완구 총리가 간신히 인준을 받은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4개 부처 장관급 인사를 발표하는 부분개각을 단행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사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인사는 박근혜 특유의 고집스런 인사 시스템인 일단 버텨보자는 행태의 연속으로 보인다.

 

 

일단 이날 개각에서 신임 통일부 장관에는 홍용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이 임명되었다. 홍용표 내정자는 서울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이며 한양대 교수를 지냈다. 통일연구원의 연구원을 지낸 뒤 민주평통자문위 상임위원,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야 실무위원을 역임했다. 그리고 이어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으므로 박근혜식 통일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임으론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되었다. 서울출신인 유 의원은 예전 민한당 총재인 유치송씨의 아들로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여당 내 정책통이다. 한국 조세연구원장을 지낸 재벌위주의 세수정책을 지지하는 전형적인 보수진영 경제 테크노크라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 따라서 부동산정책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노리는 최경환 경제팀에서 원하는 장관후보로 볼 수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로는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됐다. 서울법대 법학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했으나 유신독재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정학처분을 받은 일로 판사의 꿈을 접고 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미국 뉴욕대 로스쿨에서 해양법을 전공, 국내에서 손꼽히는 해양법학자로 통한다.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의 부친 박정희가 단행한 유신을 반대한 학생운동권 출신이 정치권에 입문하여 친박계 핵심이 되었고, 장관후보로까지 내정된 점이다.

 

 

신임 금융위원장 후보로는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내정됐다. 임 내정자는 행시(24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1차관과 국무총리실 실장(장관급)을 지낸 뒤, NH농협금융지주 회장직을 맡아왔다. 전남 보성출신인데 특이하게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요직에 중용되고 있다.

한편 이번 유일호, 유기준 장관 내정자의 합류로 박근혜 정부 내각에서 현역 여당 의원 출신은 4명에서 6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완구 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장관 등 4명에다 유일호, 유기준 내정자가 추가된 것이다. 이는 어렵지만 이완구까지 인준을 받은 것에서 나타나듯 현역불패의 사례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현역을 선호한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모두 잡음 없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또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박근혜 정부에서 2세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은 2공화국에서 민의원을 지낸 김용주씨이며, 유승민 원내대표는 5공화국 시절 민정당 실력자를 지낸 유수호 의원의 아들이다.

수원에서 4선 의원을 지낸 뒤 경기도지사가 된 남경필 지사의 부친은 민정당 시절 3선 의원을 지내다가 임기 중 사망한 남평우씨이며, 새누리당 정책위부위원장인 김세연 의원은 5선의 김진재 전 국회 부의장 아들이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발언의 불씨를 낳게 하는 등 비판의 한 가운데 섰으며 이번에 이완구 청문특위 여당 측 간사였던 정문헌 의원의 부친은 정재철 전 의원이다.

그런데 정 전 의원은 3공 당시 실력자인 이후락의 비호로 산업은행 부총재를 지낸 뒤 한일은행장을 역임했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그는 5공 출범과 함께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재무위원장, 예결위원장을 지내는 등 중진급 정치인이 되었으나 한보비리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다가 2003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정운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우택 전 충북도지사, 허주 김윤환 전 의원이 동생이자 김동석 전 의원의 아들인 김태환 의원,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의 아들인 서승환 현 국토부 장관 등도 박근혜 정부에서 손꼽을 수 있는 2세들일 것이다. 따라서 서승환 장관이 그렇듯이 유일호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통과가 매우 주목되고 있다. 그의 후보 내정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당 측이 그의 경제관을 두고 벌써부터 맹공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완구를 보거나 이번에 내정한 장관 후보자를 보거나 “적재적소에 훌륭한 인물을 등용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특히 책임총리 운운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 통합에 앞장서겠다는 이완구 총리가 임명된 첫날 박근혜식 인사발표가 나오므로 이완구 또한 허수아비 총리라는 것을 박근혜 스스로 실증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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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촛불 때 죽었어봐…'글로벌 코리아' 못 외쳤지"

 

[MB의 시간과 비용] <3> 정의당 박원석 의원 "억하심정으로 쓴 책"

 
"기록물 자체로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읽는데 곤혹스럽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시간>을 읽으며 내놓은 총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화제다. 퇴임한 지 2년 만에 이런 회고록을 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 내용이 황당해서 그렇다. 누군가는 이를 '공상과학소설'로, 또 누군가는 이를 '공소장에 앞선 피의자 조서'로 표현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이 회고록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어디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대통령 회고록이 갖는 무게 때문이다. 이 회고록과 무관하게 <프레시안>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와 함께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자체적인 검증 작업을 벌여왔다. 그 작업을 묶어서 낸 책이 <MB의 비용>이다.  
 
'MB의 시간과 비용'이라는 기획은 철저하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 평가를 위한 기획이다. 회고록 중 크게 논란이 된 한미 쇠고기 협상, 대북 관계, 외교 안보 문제, 4대강 사업 평가 등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조목조목 따져봤다. 많은 독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의 시간>을 낱낱이 해체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MB의 시간과 비용' 3편에서는 정의당 박원석 의원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박 의원은 2008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 처장으로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 공동상황실장을 지냈으며, 그해 11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구속돼 5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편집자  
 
MB의 시간과 비용 
 
 

 

박원석 정의당 의원 "대통령의 시간? 자화자찬의 시간!" 

 

프레시안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어떻게 봤나. 
 
박원석 :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말하지 못했던 내용을 회고록을 통해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회고록이라면, 재임 당시에 공과(功過)에 대해서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MB의 회고록은 초지일관 자화자찬이다. 제목을 왜 <대통령의 시간>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자아도취의 시간'이나 '자화자찬의 시간'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회고록에도 나오지만, 이 대통령은 2008년 촛불 정국 이후 "국정지지율이 20퍼센트 초반으로 떨어지며 국정 운영의 동력이 급격히 상실됐다"(126쪽). 그로 인해 5년 임기 내내 제대로 된 통치 행위를 못한 데 대한 억하심정이 있는 것 같다. 
 
▲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김 본부장이 대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와 통화하면서 이면 합의를 했습니다. 그걸로 담화 발표까지 했습니다. 2007년 9월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또 한 번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그 내용과 문서가 유출됐답니다. 특정위험부위(SRM)를 제외하고는 월령 제한 없이 전부 수입하겠다는 내용이라 합니다. 보커스는 한국 정부가 그 합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대통령의 시간> 229페이지)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의 주장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면서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습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 직을 수행한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해서 국민들께서 모르는 이면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런 약속도 없었나?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국민들께서 모르는 숨어있는 약속이었나? 아닙니다. 국민들께서 모두 아시는 약속, 바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께서 2007.4.2.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혔던 내용입니다. 지금 불거진 오해는 한미 정상 간의 동일한 통화 내용을 두고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이면합의’라는 시각상의 차이 때문으로 보입니다.(김종훈 의원이 낸 2월 2일자 보도자료) 

 
프레시안 : 2008년 촛불 정국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논란이 있을 만한 부분을 꼽자면?
 
박원석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MB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과 이면 합의를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이 지난 2일 "국민들께서 모르는 이면 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 말이 맞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했던 기자회견도 행간을 가지고 이면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를 말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국민적 반발이 컸다. 특히 쇠고기 수입은 의약품, 자동차, 스크린 쿼터 등과 함께 미국이 제시한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였다. 2006년 3월 한국과 미국의 1차 사전준비 협의 당시 FTA보다 선결조건을 진행하는데 더 큰 후폭풍이 예상됐었다.(2006년 1월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생후 30개월 미만인 쇠고기 중 뼈를 제외한 부분에 한해 수입을 재개했다. 또 한국영화의 의무 상영일수인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했다. 이를 기점으로 참여 정부가 한·미 FTA 개시를 위해 미국에 '퍼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편집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PD수첩>이 방영되자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광우병 괴담이 퍼져 나갔다. 주로 연예인 팬클럽 등을 중심으로 유포된 내용은 "광우병은 공기로도 감염된다", "화장품이나 젤라틴 성분이 들어간 생리대, 기저귀로도 전염된다",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로 수돗물까지 오염된다" 등으로 그야말로 괴담이었다.(<대통령의 시간> 115~116페이지) 

 

(☞ "아이들 먼저 든 촛불, 어른들이 이어 받다") 

(☞ 한미FTA-美쇠고기 관계가 애매? 가카의 '인증샷' 보라) 

 
MB 회고록 중 촛불집회와 관련한 부분을 보면,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 미국이 2008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획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MB는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괴담'이라고 치부했다. 사실 광우병(BSE)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 다음으로 광우병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미국이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미국인이 인간광우병(vCJD)으로 사망한 사례는 지금까지 4명"이다. 영국은 1995년 최초로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177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편집자)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제기된 주장이다. 미국이 자국 내에서 판매하는 쇠고기는 30개월 이하 어린 송아지 고기다. 한·미FTA 협상 당시 일본은 뼈를 포함한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대만은 뼈를 제외한 살코기만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했다.(일본은 2013년 2월 생후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제한 월령을 확대했다. 편집자) 그러나 중국은 지금까지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 2008년 '100만 촛불집회'의 시작은 10대 소녀들이었다. ⓒ프레시안

▲ 2008년 '100만 촛불집회'의 시작은 10대 소녀들이었다. ⓒ프레시안  

 
 
두 번째는 추가 협상 부분이다. 국민의 요구에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였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구국의 결단을 한 것처럼 기술한 것도 어이없는 대목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 
 
 
고민 끝에 추가 협상에 관한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국민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6월 19일 나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광우병 사태에 대한 입장을 다시 밝혔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도 확실히 받아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미국과의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 이익을 지키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대통령의 시간> 124페이지)

 

'재협상 약속'은 국 끓여 먹었나! 
 
프레시안 :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 위기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인양 말하고 있다. 촛불집회 당시 나온 '한반도 대운하 반대', '공공부분 민영화 반대'와 같은 국민의 목소리를 전 정권을 비롯한 정치 세력의 개입으로 보고 있다.  
 
박원석 : 그렇다. 또 당시에는 '소통 부족'과 국민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뿐 아니라,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2008년 12월 '4대강 사업'이라고 말을 바꿈. 편집자)를 일방 추진하고, 일제고사 및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 공공부분 민영화(MB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말을 사용. 편집자) 등을 밀어붙였다.  
 
이런 것이 복합돼서 통치 초반부터 국민들의 반발과 반대가 있었던 것인데, 마치 전 정권이 부추겨서 벌어진 것처럼 말했다. 참여연대만 해도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그 어떤 후원도 받지 않는 단체였다. 당시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정말 잘못된 시각이다.  
 
오히려 당시 야당은 촛불집회 초반에 참여하지 못했다. 사실은 끝까지 무기력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오히려 국민에게 욕먹고 항의받는 상황이었다. 집회 후반에 가서나 개별적으로 조금씩 개입했다. 특히 전임 정부를 꾸렸던 노무현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개입했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통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얘길 늘어놓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집회가 정권 퇴진 주장 양상으로 변하자 일각에서는 17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대선 불복 세력'이 집회를 주도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선 불복 세력이 건강을 염려하는 순수한 국민들의 뜻에 편승해 대통령과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 세력들이 집회에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117페이지)  
 
 
그런데 시민단체의 지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전임 정부는 시민단체와 가까운 관계를 지속했다. 정권 교체로 이 두 주체가 다시 분리돼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우병 사태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됐다는 사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대통령의 시간> 129페이지)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논란의 정점에서 약속한 게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 등이 2008년 5월 "주변국과 미국이 한국과 동일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 협상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재협상한다"고 밝힌 것이다.(그해 8월 한나라당은 "일본, 대만 등 우리 주변국 간 쇠고기 협상 결과가 한·미 협상 결과에 비해 개방의 폭이 축소될 경우 (그 조건과 동일하게) 재협상하도록 한다"고 야당과 합의했다. 편집자)   
 
2009년 11월 대만은 월령과 부위 제한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다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에 부딪혔다. 이듬해 1월 대만 의회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 중 광우병 위험이 높은 6개 부위(내장, 분쇄육, 뇌, 척수, 눈, 머리뼈 등)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식품위생관리법을 수정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도 30개월 미만 소의 뇌, 눈, 머리뼈, 척수, 등배신경절, 척주, 회장원위부(소장 끝 50cm 부위)를 제외한 내장을 수입하고 있다.  
 
 
▲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타결을 풍자하는 패러디들. ⓒ디시인사이드

▲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타결을 풍자하는 패러디들. ⓒ디시인사이드

 
 
프레시안 : 2008년 7월 10일 이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 오찬에서 예정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가 갑자기 굴비로 교체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들도 내심 불안했던 것 아닐까? 
 
박원석 : 당시 청와대의 미국산 쇠고기 사용 여부가 화제가 됐다. MB가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던 약속을 지켰는지 모르겠다.(웃음) 2008년 11월 광우병 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돼 6개월 정도 교도소 생활을 했다. 그때 쇠고기 국이 나오면 먹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안내 방송이 나오더라.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다"며 "쇠고기는 호주산이고 돼지고기는 덴마크 산"이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못 미더워서 안 먹었다. 지금도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식당에 안 간다. 
 
오바마? 내 동생 아이가!  
 
프레시안 :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오바마와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216쪽)며 둘 사이 우정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한·미 FTA에 반대했"(217쪽)던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날(2009년 11월 19일) 회담을 계기로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은 큰 진전을 보였다"(221쪽)고 주장했다.  
 
박원석 :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 정부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조차 모른 채 무식한 얘길 한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부터 양자 간 무역협상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부합된 일괄된 정책이다. 약간의 기조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오바마는 자동차 공업이 발달한 동부와 북부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FTA 협상에서 '무엇을 더 강조할 것인가' 차이는 있었겠지만, 오바마가 한미 FTA에 회의적이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미국은 회의적이었는데 우리가 서둘러서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말밖에 안 된다. 스스로가 '천하의 매국노'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밖에 안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무엇보다 한·미 FTA 발효 후 대미 무역흑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협상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 2011년 107억 달러였던 대미 무역흑자는, FTA 발효 첫해인 2012년에는 152억 달러, 2013년에는 206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미 의회에서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조건으로 타결됐다"는 불만 섞인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도 한국에 대한 서비스 흑자가 2011년 54억 달러에서 2012년 65억 달러로 늘었다. 양국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낸 것이다.(<대통령의 시간> 234페이지)

 

프레시안 : 이 전 대통령은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 발효 후 대미 무역흑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의 서비스 흑자가 1년 새 10억 달러가 늘었다며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사실인가?
 
박원석 : 검증해야 하는 사안이다. 설사 대미 무역흑자가 상승했더라도, 한·미 FTA의 효과라고 단정하긴 쉽지 않다. 그리고 한·미 FTA처럼 이른바 개방의 폭이 높은 '고강도 FTA'의 영향이라는 것은 장기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 농업과 자동차, 서비스 분야 등 꼼꼼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쓴 것 같다. 한·미 FTA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도 평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많다. 그런데 한·미 FTA 이후 대미 무역 흑자가 크게 늘어 한국 경제가 어떤 계기를 맞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MB 말대로라면, 지금 한국 경제가 왜 이런가. 
 
* '한·미 FTA 반대 전도사'라고 불린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 창립 준비위원은 2013년 3월 <프레시안> 칼럼에서 한·미 FTA 발효 2년의 성과를 "성공적"이라고 자평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2012년과 2013년 대미수출 증가율이 대세계수출 증가율보다 높다는 점을 한·미 FTA의 성과로 꼽고 있다며, "발효 이전 2008년과 2009년의 대미 수출증가율이 각각 32.3%와 12.8%로, 지난 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처럼 단순 수치만 놓고 얘기한다면, 한미 FTA 때문에 수출증가율이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편집자
 
 
국민을 '사랑으로' 보우하사? 어디서 약을!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전한 에피소드 
 
 
대통령 : 이젠 내 의견을 좀 이야기하려 해요. () 다섯째는 좀 멜랑콜리해.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 여기에는 친서민정책, 복지, 신고졸시대까지 넣자 이거지. 일반 회고록에 쓰지 않는 용어로 말이야. (대통령은 칠판에 계속 써나갔다.) 
 
 
강만수 : 좋은 것 같습니다. (강 전 장관의 말에 참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통령 : ()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 이것도 이유가 있어요.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왜 강하게 밀고 나가기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힘이 있다고 때려잡는 건 군사독재 방식이지. 시위대를 전부 연행하고 구속하고, 그러다가 한두 명이라도 죽었다고 생각해봐요. 그랬으면 나는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코리아를 외칠 수 없게 됐을 거야.  
 
 
- <대통령의 시간> 부록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김두우 지음) 63~64페이지

 

프레시안 : 김두우 전 홍보수석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 회고록 제목이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가 될 뻔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를 과잉진압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사람이 죽었더라면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박원석 : 이른바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려고 강하게 진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사실 초반에는 MB 정부가 대응을 못했다. 더군다나 시위 주체가 시민사회단체나 재야단체가 아니라, 청소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파악도 못했다. '재협상만은 끝내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니까 '사실상 재협상'이라며 물러났다.  
 
(☞ "거짓말 대통령, 초반에 버릇 잡아야") 
 
ⓒ프레시안

ⓒ프레시안  

 
 
하지만 2008년 5월 말, 6월 초부터 사실상 폭력 진압을 했다. 경찰은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살수차와 사복 체포조를 동원해 20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연행했다. 경찰은 도로에 누운 집회 참가자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당시 이학영 YMCA 사무총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경우 어깨와 갈비뼈가 골절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입었다.(5월 31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참가자들과 경찰이 밤샘 대치를 했고, 6.10 민주항쟁 21주년이었던 6월 10일은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해 7월 31일 기준으로 1045명이 연행됐으며, 이 중 900여 명이 집시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편집자) 
 
 
이런 게 폭력 진압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폭력 진압이라는 말인가. '죽은 사람'이 있어야 폭력 진압을 인정할 것인지, 거꾸로 묻고 싶다. 이듬해 1월 용산 철거민에 대해 공권력이 폭력 진압을 해,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 등 아까운 생명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회고록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른바 '공안 통치'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사실 '공안 통치'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촛불집회를 겪은 후 통치 기조를 '공안 통치'로 바꿨고 임기 끝까지 계속됐다. 
 
프레시안 : '공안 통치' 기조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형철 전 대법관은 '촛불집회'와 관련한 재판 배당 방식을 바꾸는 등 재판에 개입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미네르바'는 전기통신기본법으로, 'G20 포스터 쥐 그림 사건'의 대학 강사는 형법 제141조 공용물손괴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사실상 잠자고 있던 법을 부활시켰다. 
 
박원석 : 촛불집회 후,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해 지면서 위와 같은 양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책 제목으로 고려했다든 '사랑이 있었다'라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 
 
 
9월 위기설이란 그해 5~6월의 광우병 파문이 진정되면서 곧바로 등장했다. 2008년 9월 14일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67억 달러인데, 외국인들이 이 채권을 모두 처분하면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미네르바'라는 네티즌이 중심이 되어 야당과 일부 언론, 심지어는 일부 학자들까지 이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2,400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67억 달러의 단기 채권으로 외환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9월 위기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광우병 사태를 주도하던 세력 중 일부가 9월 위기설을 매개로 인터넷을 이용해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만수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부를 비난했다.(<대통령의 시간> 134~135페이지) 

 

'미네르바' 박대성 씨는 2009년 1월 허위 사실 유포죄로 검찰에 구속됐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박 씨에 대한 구속 수사가 '정부의 심기가 불편해서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MB는 회고록에서도 박 씨가 주장한 '9월 위기설'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다. '미네르바 같은 비전문가에게 나라 경제가 휘둘렸다'는 식이다. MB가 국민을 우매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률을 적용해 입에 재갈 물리는 식으로 구속한 것 자체가 '공안 통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에 대한 정상적이고 건전한 비판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속 좁은 통치 행태를 보였다.   

 

(☞ 미네르바 구속, 국제적 논란거리로 확산 일로) 

 
▲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부 정책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촛불을 드는 시민을 국가 전복을 꾀하는 '위협 세력'으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시민들의 저항은 당연한데…. 반면, MB는 젊은 시절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것은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인식이 아닌가. 
 
 
박원석 : '국민주권'을 모르는 사람이다. 촛불집회 때 가장 많이 나왔던 구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현대 사회에서 '통치'는 거버넌스(governance), 즉 '협치(協治)'다. 이 전 대통령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 권력자로 가져야 할 태도가 없는 사람이다. 기업가 출신 출신으로, 국회의원 생활도 얼마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비즈니스로, 딜(deal)로, 장사하겠다는 습관이 강하다. 그래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나 '자원외교'와 같은 발상이 나온 거다. 특히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국가를 사유화하는 거대한 부정부패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MB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영 씨가 운영했던 금융회사가 가 각종 이권에 개입을 많이 했다는 의혹도 나왔지 않느냐.  
 
 
사실, 2008년 촛불 정국 마지막에 고민이 많았다. '이 세력을 어디로 귀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촛불집회의 성과는 2010년 지방선거 승리로 나타났다고 본다. 당시 무상급식 논쟁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MB 정부를 거치며 '우리가 이대로 물질적 가치에 연연하며 경쟁적으로 사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니구나. 함께 사는 삶이 더 나은 것이구나'라는 의식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자 되자'라는 뉴타운 광풍에서 '더불어 함께 살자'로 넘어온 것이다. 이런 변화가 박근혜 정부를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좌 클릭할 수 있게 견인한 것이다. 지금 보면 지키지도 않을 공약(空約)으로, 겉모습만 화장한 거였지만….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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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서울 사진집, 희소 사진 최초 공개


<책소개>서울역사박물관,『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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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7  1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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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표지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1900년대 초반의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희귀 사진 116점이 사진집으로 발간됐다.

서울역사발물관(관장 강홍빈)은 16일 1909년부터 1927년까지 동소문 일대에 있었던 백동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촬영하고 수집한 서울 사진을 모은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사진의 소장처인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은 독일의 뮌헨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1909년 동소문 일대에 백동수도원을 설립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조선의 언어,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자료를 수집, 수도원의 선교박물관에는 노르베르토 베버 총 아빠스가 두 차례 한국 방문을 통해 남긴 사진 및 영상자료를 비롯해 독일 최초의 한국학자 에카르트 등 여러 수도자들이 남긴 많은 민속품과 저작, 사진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을 방문해 백동수도원이 남긴 유물을 조사했으며, 지난해 8월 <동소문별곡> 특별전을 통해 선교박물관에서 소장한 한국관련 유물 34점을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선교박물관 소장사진 5,579컷을 디지털로 제공받아 정리한 후 그 중 서울관련 주요한 사진을 선별해 △궁궐 △한양도성 △시가 △순종 인산 △교량 △공원 △종교 △능묘 △불교 △산성을 주제로 분류, 이번에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이란 제목으로 사진집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측은 이번 사진집에는 처음으로 공개되거나 희소한 사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당시 서울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고 밝혔다.

사진집에는 사진자료 116점과 그림엽서 12점, 학술논고 3편이 수록돼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책방에서 구입(2만원)할 수 있다.

   
▲ <남산에서 바라본 시가>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으로 중앙에 보이는 것이 명동성당이다. 명동성당 우측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건물이, 좌측으로 사제관이 보인다. 사진의 우측 상단으로 종묘와 창덕궁이 보이며 화살표로 표기된 곳이 백동수도원이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1902년 한성부(漢城府) 관아> 지금의 서대문네거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서쪽 방향으로 설치된 옛 경기감영의 정문 누각에 ‘한성부’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1902년 4월 한성부는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그해 연말 평양진위대가 주둔했던 영문(營門, 서양식 2층 건물)이 들어서기 직전에 사진이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의 전찻길은 숭례문에서 칠패길과 의주로를 거쳐 서대문 전차종점으로 회기하는 순환선으로 1900년 7월 개통하였으나 2, 3년 뒤 폐선된 것으로 사진으로 남아있는 것은 매우 희귀하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백운동천(白雲洞川) 신교(新橋)> 청계천의 상류인 백운동천(白雲洞川) 물길에서 가장 위쪽에 해당하는 신교(新橋; 종로구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의 교차지점)의 모습이다. 이 물길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자수궁교(慈壽宮橋), 금청교(禁淸橋), 종침교(琮琛橋) 등은 다른 사진자료를 통해 익히 그 모습이 알려진 바 있지만,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난 신교의 사진은 처음 공개된다. 이 사진을 통해 현재 청운초등학교 운동장에 남아있는 난간석이 신교의 부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광희문(光熙門) 인근에서 바라본 신당리 공동묘지> 광희문은 서소문과 함께 도성안에서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었으며 광희문 밖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멀리 동묘의 정전과 정문이 곧장 보이고 그 옆으로 청계천에 걸쳐 있는 영도교(永渡橋)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한양도성 숙정문(肅靖門)> 성북동에서 백악산의 곡장(曲墻)을 향해가는 성곽의 모습이다. 사진의 중심부에서 문루(門樓) 없이 홍예만 남아있는 숙정문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남아있는 문루는 1976년 신축한 것으로 원형이 아니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혜화문 안>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혜화문 안> 혜화문의 안쪽을 촬영한 사진은 매우 드물다. 잡화점인 듯한 가게의 처마에 성 밖으로 길을 나서는 나그네들을 위한 집신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정겨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전깃줄과 석유가로등, 인력거 등과 같은 근대문물의 흔적들로 미루어 이곳에도 시대변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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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 미국 인권단체 관계자 고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2/18 08:51
  • 수정일
    2015/02/18 08: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시민단체, 미국인권재단 관계자 출입국 위반 혐의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2/17 [16:2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민권연대 회원들이 대북전을 살포한 미국인권단체 관계자들을 출입국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이하 민권연대)가 한국에서 탈북자들과 함께 대북전단을 살포한 미국인권단체(HRF)관계자들을 검찰에 출입국위반혐의로 고발 할 것을 촉구했다,

 

민권연대는 17일 오후 1시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토르 할보르센 미국인권재단(HRF) 대표 등 관계자들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것을 촉구하며이들에 대해 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권연대는 "미국인권재단(HRF)의 전단 살포 행위는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정치 활동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20조와 제24조 위반'이라며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12(체류자격의 구분법 제10조 제1항에 따른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정치활동에 속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위와 같은 불법 행위를 저지른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을 출입국관리법 제 101(고발)에 따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이 즉시 고발할 것을 촉구했다.

 

단체는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제46(강제퇴거의 대상자) 3호와 제11(입국의 금지 등) 3호에 따라 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를 요청하면서 법무부장관은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5년 동안은 물론영구적으로 대한민국 입국을 금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마지막으로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에 대해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민권연대 기자회견 전문을 게재한다.

 

대북전단살포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고발촉구와 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 요청 기자회견문

 

1.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과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관계자들은 1월 19일 밤 11시쯤 경기도 파주시 일대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전단 10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1월 15일 통일부는 탈북자 박상학에게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당시 박상학은 정부의 자제 요청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하지만 미국 인권재단 관계자들은 정부의 권고도 무시하고 국내에 들어와 박상학과 함께 직접 대북전단을 살포했습니다.

 

이들은 2월말 3월초 영화 인터뷰가 담긴 대북전단을 살포할 예정입니다심지어 미국인권재단(HRF)은 북한체제 비판 영화 인터뷰를 한글 자막으로 번역한 영화 10만 편을 북한에 보내기 위해 비용 전액을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관계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며 한반도 분쟁을 조성하고 있습니다더욱이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는 다음 대북전단 살포 때 무인기 '드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비행물체인 드론이 북한 상공으로 날아간다면 남북 간에 교전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미국인권재단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관계자들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것을 촉구하며이들에 대해 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를 요청합니다.

     

2. 미국인권재단(HRF)의 전단 살포 행위는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정치 활동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20조와 제24 위반입니다따라서 출입국관리법 제94(벌칙) 12호와 14호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야 합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12(체류자격의 구분법 제10조 제1항에 따른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정치활동에 속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하였습니다따라서 피의자들은 체류자격의 범위를 벗어난 활동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위와 같은 불법 행위를 저지른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을 출입국관리법 제 101(고발)에 따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이 즉시 고발할 것을 촉구하는 바 입니다.

 

3. 우리는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제46(강제퇴거의 대상자) 3호와 제11(입국의 금지 등) 3호에 따라 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를 요청합니다.

 

전단 살포를 하는 행위는 전쟁 위험을 고조시켜서 대한민국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나아가 생명권까지 위협하는 행위이므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입니다따라서 신속하게 강제퇴거 처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나아가 법무부장관은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5년 동안은 물론영구적으로 대한민국 입국을 금지하여야 합니다.

 

2015년 2월 17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진 정 서

    

사 건1월 19일 밤 11시쯤 경기도 파주시 대북전단살포의 건

피의자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성명불상의 관계자

피해자최동수

    

 

이 사건에 대하여 피해자는 다음과 같이 제출합니다.

 

   

대북전단살포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수사 촉구와 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 요청

 

 

1.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과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관계자들은 1월 19일 밤 11시쯤 경기도 파주시 일대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전단10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1월 15일 통일부는 탈북자 박상학에게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당시 박상학은 정부의 자제 요청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하지만 미국 인권재단 관계자들은 정부의 권고도 무시하고 국내에 들어와 박상학과 함께 직접 대북전단을 살포했습니다.

 

이들은 2월말 3월초 영화 인터뷰가 담긴 대북전단을 살포할 예정입니다심지어 미국인권재단(HRF)은 북한체제 비판 영화 인터뷰를 한글 자막으로 번역한 영화 10만 편을 북한에 보내기 위해 비용 전액을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관계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며 한반도 분쟁을 조성하고 있습니다더욱이 미국인권재단(HRF) 토르 할보르센 대표는 다음 대북전단 살포 때 무인기 '드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비행물체인 드론이 북한 상공으로 날아간다면 남북 간에 교전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미국인권재단 토르 할보르센 대표 등 관계자들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것을 촉구하며이들에 대해 정지활동 중지명령강제퇴거처분 및 재입국금지조치를 요청합니다.

 

2. 출입국관리법은 법무부장관의 허가 없이 체류자격의 범위를 벗어나는 활동을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출입국관리법 제94조 제12, 16). 그런데 체류자격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별표1에는 대북 전단 살포와 같은 정치활동은 애초부터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게다가 출입국관리법 제17조 제2, 3항은 외국인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이를 위반하였을 때에는 법무부장관이 그 활동의 중지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토르 할보르센 등 관계자들은 체류자격을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정치활동에 속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하였으므로법무부장관은 즉각적으로 토르 할보르센의 정치활동 중지를 명령하여야 하고관할 출입국관리소장은 토르 할보르센을 검찰에 고발조치하여야 하는바피해자는 토르 할보르센에 대한 정치활동 중지명령 및 형사 처벌을 촉구합니다.

 

3. 전단 살포를 하는 행위는 전쟁 위험을 고조시켜서 대한민국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나아가 생명권까지 위협하는 행위이므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입니다출입국관리법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를 한 외국인을 강제퇴거 시킬 수 있도록 정하고 있고강제퇴거 당한 외국인은 5년 동안 재입국이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출입국 관리법 제46조 제1항 제311조 제1항 제3, 6).

 

피해자는 토르 할보르센 등 범법자들에 대한 신속한 강제퇴거 및 영구입국금지 조치를 촉구합니다.

 

2015. 2. 17.

피해자 최 동 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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