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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7호]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리뷰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소식지 <진보부산> 7호 http://busan.kdlp.org/

<다시 태양의 시대로> - 이필렬 씀/양문/2004년/1만원


마음 한 구석에 빈자리가 느껴지고 더 이상 예쁜 꿈을 꿀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나이. 그런 나이가 되어야 알 수 있는 ‘맛’이 있다. 간만에 만난 친구와 주고받는 술잔의 맛이 그러하며, 진한 육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의 맛이 그러하다.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산행의 커피맛이 그러하며,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 조용히 라디오를 켜고 앉아 읽는 책맛이 그러하다.

그런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꿈을 꾸기 마련이다.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익숙하지만 힘겨운 짐들과 풍경들을. 그리곤 상상한다.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삶으로 돌아가는 꿈을. 이젠 내가 어제까지 접촉했던 하찮은 것들은 더욱 하찮아지고 결심은 굳어진다. 나 돌아갈래! 그 나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밀리고 밀려 내 등이 거대한 절벽에 맞닿은 나이. 그때서야 나타나 내 눈을 사로잡는 삶은 더 이상 어제의 삶이 아니다. 자본이라는 인공의 거대한 힘은 내 안에서 파괴된다.

그런 선택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꿈이 있다. 쭉 뻗은 아스팔트와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도시를 동경할 만큼 순진한 나이가 아니라면, 오르지 못할 타워팰리스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인생이 포기를 의미한다거나 인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흘러 들어가는 노파의 힘겨운 발걸음도 아니다. 태양의 강렬한 빛이 내리쬐고, 굳은 발 뒷꿈치에 시원한 흙의 감촉이 전해지는데 우울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쉽게 떠날 수가 없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더라도 내 주위는 자기장처럼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당장의 결정도 쉽지 않고 자신감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몸은 인공에 둘러싸여 매연을 마시면서 병원이나 들락거리면서 시멘트처럼 굳어져야 하는 것인가?

이필렬 선생이 쓴 <다시 태양의 시대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 준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잃어버린 꿈,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희망 말이다. 간단하다. 사람, 문명이 돌아가야 할 태양의 시대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화석연료 시대는 단지 생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 문화적 이유, 효율성인 이유 때문에라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화석연료 고갈은 눈앞으로 다가왔고, 미국과 한국 등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새로운 대체에너지,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경제성? 석유와 석탄에 의존한 에너지의 가격은 상승하고 있고, 태양에너지, 풍력에너지의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언제쯤? 2010년이면 태양광전기가 가스화력과 경쟁하고, 2030년이면 석탄, 원자력과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추세로는 이 시기는 더 빨리 단축될 수 있다. 난방, 전기생산, 조리 등 태양을 이용한 에너지전환은 생태계와 민중의 생활(어쩌면 자본주의에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04년 정부에서 제출한 2차 전력수급 계획을 보면 대부분의 전력소비 증가분을 화력과 원자력으로 채우고 있다. 석유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에너지 소비에서 매우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독일, 일본, 영국보다 더 많은 에너지 소비량을 기록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많은 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독일은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현재의 60% 수준으로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에너지 소비 구성에 있어서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70%로 채우고 원자력 의존은 2030년이면 없앨 계획이다. 야심찬 계획을 구상했다. 이미 많은 나라들과 초국적 석유회사들(예: Shell) 역시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 기후 재앙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해수 온도의 변화는 강수와 기온의 급격한 변동을 가져오고 있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는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기후도 가져다 줄 것이다.
얼마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에너지대안센터,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등이 모여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준비위’를 만들었다. 흔히들 노동과 환경이 대립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두 부문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를 상정하고들 한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관점은 현체제를 패배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효과를 생산한다. 노동과 환경, 두 부문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은 현 체제의 ‘극복’에서이다. 자본주의 내 근본모순 중 하나로 노자간 모순 뿐 아니라, 자연/사회 모순을 상정하는 (제임스 오코너와 같은) ‘생태 사회주의’ 관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는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 나의, 가족의, 이웃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는 이 땅, 이 공간을 우린 너무 일찍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멀리 떠나지 말자!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저항의 중심! 부러운 그들의 삶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자!



<추천사이트>
* 에너지 대안센터
http://energyvision.org/
*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http://haeseong.hs.kr/HMC/freiburg/main.htm


<추천도서>
* 환경 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 / 이후 /김해창
*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 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김현구 옮김 / 현실문화연구
* 생태적 경제기적 / 프란츠 알트 / 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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