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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동해면 동진대교 아래

경남 고성 창포리 동진대교 아래의 한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고성이 좋은 이유는 마산창원과 가깝다는 것. 그리고, 통영이나 다른 곳 못지 않게
풍광이 좋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남해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매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부산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호수 같은 잔잔함과 거칠지 않은 넉넉함이 있는 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창의 많은 활동가들도 이 레스토랑(펜션)를
다녀오거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바다를 보면서 고기 구워먹고,
바다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잠이 깼다.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 레스토랑(실은 숙박업)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설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경남 고성은 공룡서식지로 유명한 곳인데
얼마전, 조선특구로 선정되면서 아름다운 남해안에
크고 작은 골리앗크레인이 들어서고 있다.
이제 고성의 잔잔한 바다도 자본의 폭격에 끝장나겠지.
그 다음 차례는 어디일까? 통영일까? 남해일까?

경남 고성 동진대교 건너 내산리 or 외산리?

 

팬션 앞은 바다

 

날씨는 화창하고, 단풍은 물들고, 바다는 잔잔하다

 

바다를 보며 깨는 아침

 

 

 

두 개의 봉우리는 섬이 아닌 육지이며,

그 사이에 옅게 비치는 봉우리도 역시 섬이 아닌 육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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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 방문객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의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비평 복간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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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똘레랑스] 161회 (2006.12.20) 스쾃, 도시 공간을 다시 생각한다

[똘레랑스]  161회 (2006.12.20) 스쾃, 도시 공간을 다시 생각한다
 
 
□ 기획의도
‘스쾃(Squat)’이라는 말은 1835년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되었는데,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 소유의 빈집에 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유럽에선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하며, 도시의 공공 영역을 확대해 나가려는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심각한 공간의 소유 편중 상황을 맞은 우리나라에서 스퀏 운동이 공공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으로, 주거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행자부 발표에 따르면 인구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를, 상위 5%가 82.7%를 소유하고 있는 가운데, 연소득대비 주택가격은 서울이 7.2배로 동경(5.6), 런던(4.7)보다도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가운데 노숙인, 노점상, 철거민 등 도시 빈민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여 ‘집’이 주거 목적이 아닌 재산증식 수단으로 왜곡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스쾃 운동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돈이 없으면 결코 한 뼘의 땅도 소유할 수 없는 2006년 대한민국에서 ‘스쾃’을 통해 도시의 ‘공간’과 ‘집’의 의미를 고민해본다.

1. 스쾃, 도시에 질문을 던지다
서울 목동 예술인 회관 등을 점거하면서 공공건물을 놀리지 말고 예술가와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외치는 김윤환 화가. 그가 벌이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스쾃(Squat)' 운동의 일환이다. 남의 땅 또는 공유지에 무단으로 정착하거나, 불법으로 점유한다는 뜻을 지닌 스쾃.
한국의 또다른 스쾃은 ‘더불어 사는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노숙인 빈집점거는 정당하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의 권리이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보장하라‘ 외치는 ’더불어 사는 집‘. '더불어 사는 집'은 철거가 예정되어있던 삼일아파트를 지난해 2004년 7월부터 점거해서 만들어진 노숙인들의 생산 공동체다. 아파트의 빈 공간을 점유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구청과의 마찰을 겪다가 결국 2005년 9월 삼일아파트 철거가 시작되자 새로운 보금자리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서울도시개발(SH)공사 소유의 다가구 주택의 빈집을 찾아 점유하게 되었다.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을 보다 절실한 필요를 가진 사람이,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오히려 가치로운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 스쾃으로 부활하는 도시의 공공 공간
19세기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해,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 소유의 빈집에 사는 일을 가리키는 스쾃.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예술적 색채를 띠더니, 1990년대엔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작업실로 쓰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점거 아틀리에>란 말로도 통하고 있다. 현재 파리 근교에만 서른 여 군데의 점거 아틀리에가 자리해 있는 가운데, <로베르의 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지면서, 점거 아틀리에의 모든 것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인근 주민들의 문화적 숨통을 틔워주고 삶의 여유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스쾃은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그곳이 버려지고 방치된 곳이든, 더 가치로운 곳으로 운용되든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유지의 공공화라는 접근 자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비어 있거나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살아 있는 공공 공간으로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예술가들은 우리 도시에 질문을 던진다. 건물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는 경제적인 가치를 창조하며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아닌가 하고.

3. 한 평 땅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 서울
계속되는 도시의 재개발 속에서 우리나라 대도시 땅값은 40여 년 만에 7백80배, 서울은 9백54배 올랐고, 대한민국 전체 땅값은 2300조에 이르러 한국을 팔면 캐나다 6번, 프랑스 7번 사고, 미국 절반을 산다는 계산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평에 수 천 만 원에 이르는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개발업자에게 살 던 집을 내주고 밀려난 철거민들은 더 이상 밀려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서울역과 영등포역을 떠돌다 추위 속에서 죽어가는 노숙인과 생계 유지를 위한 한 평의 땅도 허락 받지 못해 쫓겨가는 노점상이 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어느 작은 한 공간도 공공의 영역으로 내주지 못하는 우리 도시의 닫힌 포용력을 짚어본다.

4. 스쾃, 주거권을 외치다
스쾃은 문화 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주거권 운동, 공공성 확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에 이어 포이동 골목을 ‘주거 공간’으로 점거하고 있는 넝마공동체.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함께 하는 주거 공간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며, 자립해 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스쾃이라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촌 사람들 역시 이제 단순한 점거가 아니라, 주택 협동조합을 법인화 하려 하는 등 공공 영역을 확장시키는 주거공동체를 꾸려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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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7회 노동영화제 상영작인 <점거하라!>

서울국제노동영화제 6월 정기 상영회

노동영화제 정기 상영회가 6월 26일 토요일 늦은 6시, 미디액트에서 열립니다.
6월의 상영작은 지난 2003년 제7회 노동영화제 상영작인 <점거하라!>입니다. 구조적인 실업과 가난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서 빈집을 점거해서 살아버리는 스쿼트 운동을 생생하게 담아낸 <점거하라!>는 2003년 Hot docs!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풍동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아직도 살인적인 철거가 진행되는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이 작품의 상영회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점거하라!>
(2003, 캐나다, 82분, 이브 라몽)
Squat!
(2003, Canada, 82min, Eve Lamont)
* 점거하라 ! (2003, 캐나다, 82분, 이브 라몽)
Squat! (2003, Canada, 82min, Eve Lamont)
집이 없어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극빈자들이 넘치는데 반해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도 넘나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 가난한 사람들이 빈 집에 들어가 살면 안되는 것일까? 어차피 빈 집인데? 2001년, 캐나다 몬트리얼의 실업자와 극빈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이 소박한 결론을 실천한다. 이른바 스쿼트 운동으로 불리는 이런 반자본주의적 직접 행동은 물론 엄청난 탄압을 초래하게 된다. 50명의 점거자들은 자신들의 주거 공동체를 건설하지만, 빌딩 조사관, 소방관, 전투경찰들, 그리고 미디어를 총망라하는 체제의 총공세에 맞서야 한다. <점거하라!>는 자율적인 주체들로 서고자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직한 실천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기록한다.



-감독사진

이브 라몽
Eve Lamont
이브 라몽은 15년에 걸쳐서 다큐멘터리 촬영자, 독립 영화 감독 등으로 활동해왔다. 그녀는 상업화된 현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무시되는 사람들의 관점에 서서 그들과 함께 민중의 현실, 자기표현, 권리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브 라몽은 특히 체제에 저항하고 대안적인 실천 영역을 개척하는 민중들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충돌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드라마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Hot Docs! 2003년 최우수감독상 / 인도주의상

*점거하라 도입부 비디오 클립
mms://media.cast.or.kr/lnp89/7th/Squat.WMV


노동자뉴스제작단 Labor News Production
노동자뉴스제작단은 1989년이래 노동영상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단체로서, 영상물 제작, 일상 촬영, 미디어 교육, 영상동아리 조직, 국내외 연대, 조사 연구, 배급 및 상영 등 을 활동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Seoul International Labor Film and Video Festival
1997년부터 시작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노동영화의 상영 공간으로서, 그리고 영상활동가, 투쟁 주체간의 상호 교류의 장으로서 그동안 7회에 걸쳐서 개최되었습니다. 2004년 1월부터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노동영화제 월례 정기 상영회를 개최합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주최하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 및 정기 상영회는 많은 자원활동가들의 참여를 통해서 준비되고 있으며, 정기 상영회 및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원활동가의 모임인 <노동영화제지원단>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홍보, 후원조직, 번역, 자막작업, 행사진행, 노동영상운동 연구사업 등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지원단의 활동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연락처 : 노동자뉴스제작단 02-888-5123 / http://www.lnp89.org/festiv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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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대신 '빈집' 공격한 '돈키호테의 아이들'

풍차대신 빈집 공격한 돈키호테의 아이들/한학수 문화방송PD 부동산/임대차문제

2007/02/06 10:12

 

http://blog.naver.com/urisaju/150014218975

 
'풍차' 대신 '빈집' 공격한 '돈키호테의 아이들'

[기고] '노숙인 없는 나라' 꿈꾸는 프랑스의 시도 - 한학수/문화방송 PD

프레시안  2007-02-02 오전 9:23:45



공공주택의 보급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미 100년 전부터 공공주택을 널리 보급해 온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까? 마침 프랑스는 연말연시에 노숙인, 근로 빈곤층에게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문제로 큰 논란에 휩싸였었다.

프랑스 현지에서 이 문제를 직접 취재한 문화방송(MBC) 국제시사 프로그램 한학수 PD가 취재 후기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한 PD는 "프랑스가 스코틀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민의 '주거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널리 보급된 공공주택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편집자>



  프랑스 파리 센 강을 가로지르는 생 마르탱 운하. 2006년 12월 16일부터 이곳에는 300여 개의 텐트가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다. 텐트 안에 사는 사람은 파리의 노숙인들. 이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공주택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 지난 한 달 동안 프랑스는 이 문제의 해결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 아메드는 "우리는 성을 원하는 것도 저택을 원하는 것도 아니"라며 "아무 곳이든 조그만 방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의 소박한 요구를 밝혔다. 또 다른 노숙인 크리스티앙은 "파리에는 1만300채의 빈 아파트가 있다"며 "우리에게 이 아파트를 한 채씩 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의 텐트촌에는 연일 노숙인을 만나고자 프랑스 현지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언론에서 취재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파리에서 시작된 시위는 어느덧 리옹, 마르세유, 니스 등 프랑스 주요 도시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텐트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시민단체 '돈키호테의 아이들(www.lesenfantsdedonquichotte.org)이다.




  생 마르탱 운하를 붉은 텐트들이 점령하다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2006년 12월 결성됐다. 영화배우 겸 제작자 오귀스탱 르그랑과 장 밥티스트 르그랑 형제가 산파 역할을 했다. 르그랑 형제는 노숙자 문제를 환기하고자 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다. 오귀스탕 르그랑은 노숙자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이런 단체까지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파리 생 마르탱 운하, 유명한 관광지인 이곳을 관광객 대신 노숙인의 텐트가 채우기 시작했다. 텐트 시위를 통해 빈곤층의 주거권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현장(왼쪽). 텐트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돈키호테의 아이들' 대표 오귀스탱 르그랑. 일반 시민도 하룻 밤을 노숙인 텐트에서 지내보라는 그의 제안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오른쪽). ⓒ문화방송



  "자기 집 옆에서 누가 죽어가도 모르는 체 하는 프랑스 사회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직접 찾아다녀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프랑스 사람에게 더 늦기 전에 충격을 줘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단체를 만들었다."
  
  노숙인에게 텐트를 무료로 나눠주는 활동은 돈키호테의 아이들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세계의 의사들(www.medecinsdumonde.org)이라는, 의사들이 중심이 된 인권단체가 여러 해 전부터 수백 개의 텐트를 노숙자에게 꾸준히 지원하고 있었다. 이번에 이 단체는 수백 명의 노숙자를 파리의 한복판에 집결시키고, 파리 시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단순히 노숙자에게 텐트를 나눠주는 것을 넘어선 이런 여론 환기에 파리 시민을 비롯한 프랑스인은 바로 화답했다. 텐트 시위를 찍은 사진에 인터넷에 통해 널리 전파된 것도 이런 여론 환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텐트의 수도 늘고 있다. 이 단체 리옹 지부장 마린은 "1월에 20개로 시작한 리옹의 텐트가 계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옹의 벨쿠르 광장에서 만난 노숙인 제리는 텐트를 방문했던 여성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 사실을 소개하며 기뻐했다. 얼마 전 우체부가 '리옹 시 벨꾸르 광장 텐트 번호 41번 제리'라고 적힌 겉봉에 주소가 정확히 적혀 있는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제리는 "노숙인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받아보는 편지"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은행 건물을 점거한 노숙인
  
  지난 1월 2일 파리 중심에 서 있는 한 은행 건물도 노숙인의 임시 보금자리가 됐다.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검은 목요일', 'DAL'이라는 다른 두 시민단체와 함께 노숙인을 지원해 이 건물을 점거한 뒤 '주택 위기 대책부'라고 적힌 상징적 문패를 내걸었다. 8만 명이 넘는 노숙인 문제를 내버려두고 있는 프랑스 정부와 사회에 건물 점거로 항의 표시를 한 것이다.
  
  리오네즈드방크 그룹이 소유한 이 건물은 매수자가 나서지 않아 몇 해째 비어 있는 상태였다. 열린 창을 통해 건물로 들어간 노숙인은 급한 대로 침실, 부엌, 욕실을 꾸며 놓고 총 8가구의 보금자리를 새로 마련했다. 두 아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할피다는 불법 점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 새해 이튿날인 1월 2일부터 노숙자와 무주택자들이 점거해 살고 있는 파리 증권가의 빈 건물. 이곳에 3개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주택 위기 대책부'를 꾸리고 8가구가 생활하고 있다(왼쪽). 프랑스 파리 인근의 공공주택. 지난해 프랑스에 건설된 43만 채의 주택건물 중 14만 채가 공공주택이다(오른쪽). ⓒ문화방송





  "한 달 전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대부분의 살림은 친구의 창고에 임시 보관돼 있다. 바깥에서 노숙인으로 지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불법 점거라도 해서 사는 게 낫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다. 물론 나도 아이들을 내 집에서 돌보기를 바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짜 집이다."


  서유럽에서 이렇게 비어 있는 건물을 점거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예술가들이 비어 있는 건물을 점거해 작업실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스콰트(squart)'라고 불리는 이런 흐름과는 다르다. 이번 점거는 생 마르탱 운하에서 진행되는 텐트 시위에 맞춰 노숙인 문제에 대한 여론 환기를 목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운동의 중심에 있는 생 마르탱 텐트촌에는 프랑스인 노숙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인 노숙인이 텐트 시위를 벌이는 한 쪽에서는 이주 노동자 노숙인이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국적도 없고 일정한 주거지도 없는 이들은 "사회로부터 두 번 소외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알제리인 노숙인 하산은 9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다. "8년 동안이나 가족을 못 보고 이렇게 지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잠도 못 자고 울기도 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는 정말 참혹한 삶을 보내고 있다." 하산에게 굶주림은 큰 고통이 아니었다. 주거권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첫걸음이었다.



  프랑스가 노숙인 문제에 답을 하다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노숙인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여 나가자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노숙인에게 국가가 살 집을 제공한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전선 파리지부장 마셜 빌드는 "노숙인 중에는 동유럽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온 이민자들이 있다"며 "프랑스가 이들 모두를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극우정당의 이런 주장에도 1월 한 달 동안 프랑스 여론은 노숙인 시위를 지지하는 쪽으로 점점 변해갔다. 먹을거리, 옷가지, 생필품을 모아서 노숙자에게 전해주는 시민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취재 중에도 많은 시민이 옷과 먹을거리를 노숙인의 텐트촌에 전해주고 있었다.



▲ 생 마르탱 운하 텐트 시위 현장에서 생활하고 있는 여성 노숙인(왼쪽). 각국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사회, 이주 노동자도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텐트 안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오른쪽). ⓒ문화방송



  부인과 함께 옷과 담요를 준비해 온 뒤바르브는 정부의 대책 마련을 거듭 촉구했다. "노숙인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집이 없으니 일자리를 얻을 수 없고 그러면 공공주택에도 들어갈 수 없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들이 지금 이렇게 시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도 더는 여론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위가 17일째이던 지난 1월 3일, 우파 정부의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은 노숙인의 주거 문제에 대한 법률적 보장을 약속했다. 빌팽은 "이 법안이 채택되면 2008년 말부터 노숙인, 가난한 노동자, 모자 가정에 주거권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또 하나의 혁명이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취재가 진행되던 지난 1월 17일 프랑스 국무회의는 '주거권 보장 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 법을 보면 2012년부터는 집 없는 사람은 국가를 상대로 고소를 할 수도 있다.



  공공주택 17%가 있어서 가능했다


  프랑스에서 공공주택은 전체 주택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도시마다 20%에 해당하는 주택을 공공주택으로 짓도록 하는 도시재건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2006년에도 14만 채의 공공주택이 공급되었다. 공공주택은 같은 크기의 민영주택보다 절반 이하의 낮은 가격에 공급된다.



  그간 노숙인의 경우는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공공주택에 들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지난 한 달 동안 프랑스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것인데, 정부가 마침내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 1억 유로(약 12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전체 주택 시장에서 20% 가까운 공공주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공주택이 확고하게 주택가격의 중심을 잡고 있으니, 민영주택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칠 수가 없다. 부동산 투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공공주택이 확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지난 100년간 공공주택 정책을 펴 온 프랑스에도 헤쳐나가야 할 과제는 있다. 1960~70년대에 늘어난 공공주택 수요를 감당하고자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어놓은 공공주택 지역이 슬럼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주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업과 차별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 파리 시내를 뜨겁게 달군 노숙인의 텐트 시위는 프랑스 주요 대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남동부 도시 리옹 벨쿠르 광장도 붉은 텐트들이 채우고 있다. ⓒ문화방송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재 프랑스는 공공주택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저밀도의 낮은 아파트를 짓고 있다. 또 근본적으로는 공공주택 지역의 계층적 특성을 다변화시키거나 혹은 차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한 '사회적 혼합(social mix)'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고민도 공공주택이 전체 주택의 3%도 안 되는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행복한' 것이다.


  프랑스 공공주택 영역의 모든 단체와 협회를 대표하는 '주거를 위한 사회연합'의 폴 루이스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영국이나 미국식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공공주택 정책은 일종의 자선사업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공주택 정책이 사회를 통합시키고 나라를 연대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한학수/문화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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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최초 점거운동 다룬 다큐 <192-399 더불아사는 집 이야기>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
노숙인 최초 점거운동 다룬 다큐 <192-399 더불아사는 집 이야기>
텍스트만보기   이도훈(mathoon) 기자   
 
 
 
▲ <192-399 더불어 사는 집>
ⓒ 서울영상집단
 
한국 영상자료원에서는 매달 독립영화를 한 편 선정하여 상영과 함께 관객과 감독의 만남을 주선해왔다. 2월 1일 올해 그 첫 작품으로 이현정 감독 작품이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2006년 서울 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이현정 감독의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은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노숙인들의 빈집 점거 운동을 다룬 영화다.

 
 
 
점거(squat)는 외국에서 예술가들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확보하는 형태로 종종 이루어져왔던 방식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5년 5월부터 8개월간 촬영된 것이다.

주된 내용은 청계천 8가 삼일 아파트 노숙인 단체 '더불어 사는 집'의 삶과 노숙인들의 얼굴을 담고 있다. 그와 함께 노숙인들이 자활적으로 생계유지와 점거운동(squat)을 시도하였다는 기념비적인 사건을 기록한 영화다.

우리의 생계가 위협받는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은 가슴 아프다. 서울역 및 청량리 일대의 노숙자들이 한 겨울 시린 바닥에서 동사하는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배를 곯아가면서 가난과 싸워나가고 있다.

동시에 그 가난보다 동정의 시선과 냉대는 그들을 더 버겁게 만든다. <더불어 사는 집>은 그런 노숙인들의 소외된 모습과 척박한 환경에서의 자활의지를 다룬 영화이다. 출발은 그렇다.

 
▲ 이현정 감독
ⓒ 이도훈
헌데 이 영화는 점거운동 및 점거의 시도를 다룬 부분에서 끝내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이 넘어서면서 삼일 아파트가 철거되려 하고, 성북구 정릉의 비어있는 임대아파트를 새벽에 기습점거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혁명을 완성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축제 분위기로 일변한다.

아마도 여타의 감독들이라면 그 부분에서 극적 연출을 조장하거나 혹은 그 부분만으로도 한국 노동사와 운동사에 역사를 썼다며 자축하면서 이들의 앞날에 희망의 빛을 보냈을 것이다. 헌데 이현정 감독은 그 역사적 시도를 지켜보았는데도 카메라를 공간에서 이탈시키지 않는다.

카메라는 여전히 청계천 8가와 정릉에 있는 '더불어 사는 집' 구성원들을 담는다. 이현정 감독은 '그래도 삶은 지속 된다'는 의지와 시선으로 그들을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카메라가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감독 스스로 그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과 동시에 노숙인들에 대한 애정과 걱정의 시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부분에서 영화를 끝마친다면 영화는 기록의 의의를 가진 다큐가 되었을 것이다.

감독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이 영화가 끝나면 노숙인 아저씨들의 다음 생은 어떻게 될까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감독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며 기록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된다.

영화 후반부는 외부와의 투쟁이 아니다. 공권력이나 사회집단 혹은 복지시설과의 대화와 타협보다는 내부적인 문제로 나아간다. '더불어 사는 집'을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양고문은 전형적인 민중투사이며 다혈질적인 사람이다. 그는 모든 것에 공격적이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며 입버릇처럼 "각을 세우라"고 말한다.

그의 눈에는 자기 일이 가장 급하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했다. 그런 양고문은 민노당의 승인과 지원 없이도 시청 앞에서 난동을 부리며 조직력 없는 시위를 벌이게 된다.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대처하는 그에게 과연 노동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양고문은 노동운동에서 필요한 리더십이 결여되어 보이며 스스로 혁명가의 꿈에 도취되어 있는 인물이다.

양고문과의 갈등은 양고문이 구성원들을 동지가 아니라 혁명의 소모품이자 전리품 정도로만 취급해 왔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을 위하는 행동과 실천의 의의는 인정할 수 있지만 양고문의 무소불위, 독단성은 눈뜨고 지켜볼 수가 없다. 구성원들은 양고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양고문으로 인해 오히려 주거공간이 불편해지게 된다. 운동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동시대적 고민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이다.

이현정 감독은 최근 독립영화 다큐멘터리의 도식과도 같은 일인칭 작가주의를 피했다. 이 영화는 감독이 개입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의도적인 인터뷰를 기피한다. 그리고 집요한 추적보다는 집요한 '머무름' 쪽을 선택한다. 영화는 여타의 다큐멘터리가 시간을 추적하거나 인물을 추적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다큐에서 맛볼 수 있는 카메라의 진정성을 몸소 느끼기 어렵다.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점점 고정되어 있다는 의식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 지점에서 카메라는 눈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에 동화되어 간다.

카메라가 공간이 된다는 것은 이 카메라가 노숙인들의 생활 터전인 청계천의 한 아파트가 되고 정릉의 다세대 주택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으며 또 빈번히 드나드는 노숙자들에 질문을 던지거나 그들의 터전 밖에서 삶을 추적하지 않는다.

영화는 눈물이 메말라 있다. 이현정 감독은 비극적 요소를 추적하고 촬영할 수 있음에도 과감히 그 방식을 거부한다. 현숙이 집을 나갔을 때 현숙의 처지를 궁금해하지 않는 카메라, 아들이 죽어가고 있어 병원에 내려간 아저씨를 뒤쫓지 않는 카메라, 집을 떠나가는 사람들의 근황은 내래이션으로만 처리될 뿐이다.

 
▲ 이현정 감독(좌),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 이도훈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은 노숙자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엄연히 가족은 있으며 언젠가는 마지막에 돌아갈 곳이 '가족'이 있다. 중간 중간 몇 몇 인물이 부모 때문에 돌아가고 죽어가는 이들 때문에 돌아가지만 감독은 그들을 뒤쫓는 것을 포기하고 '더불어 사는 집'에 머물면서 남은 자들을 관찰하게 된다.

감독 스스로 고민을 하였다고 하는 이 부분은 사실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노숙자들의 경향은 유럽과 다르게 가족 단위가 아니라(가족 단위의 노숙인을 다룬 영화는 근작으로 다른덴 형제의 <더 차일드>가 대표적이다) 단신인 경우가 많다.

남성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 가정으로 돌아갈 목표가 있거나 가장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남은 자들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최후의 안식처는 가정이기에 떠나는 자들을 말리지도 않으며 떠나는 것을 묻지도 않는다. 이현정 감독은 후반부로 갈수록 노숙인들과 하나가 되거나 동화되어간다. 어쩌면 다른 다큐에서 볼 수 없는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이 영화는 두 가지를 모두 잡는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최초의 점거시도를 기록한 영화이자, 형식적인 측면에서 최근의 한국 다큐멘터리들이 고집스럽게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기록영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반대편에 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현정 감독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현정 감독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화두를 던진다. 동시에 우리의 시선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세상과 다투고 그들 안에서 불협화음을 가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본다. 그녀의 고민은 최초 공개된 영화 마지막에 에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통해 담아내었다. 에니메이션이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시선을 가져달라는 요구와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감독 스스로의 따뜻한 다짐이었다.

비록 그 부분은 재편집 과정에서 철저히 객관적 거리 두기로 제외되었지만, 기록은 끝났으나 삶은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도 희망을 위한 날갯짓은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며 감독이 바라는 것은 그들의 자활적 운동이 하나의 연대를 통하여 동일한 목소리를 갖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진심과 감독의 진심이 세상과 소통하는 그날이 왔으면 한다.
 
 
2007-02-02 10: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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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반란, 빈집점거

노숙인들의 반란, 빈집점거 Agado(행동)

2005/05/12 03:43

 

http://blog.naver.com/solidareco/100012818313

노숙인들이 아파트를 점거했다. 현행법상 불법점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당하게 아파트를 점거하고 생활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의 빈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노숙인의 이러한 활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에 16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는 ‘노숙인들의 반란, 빈집점거(Squat)!’ 토론회가 열렸다. 부천의 철거예정지역인 삼일아파트를 무단 점거하여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 모임인, ‘더불어사는집’의 활동 의의와 앞으로의 노숙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해 마련된 이번 토론회는, 양연수 민노당 빈민위원회 대표, 임진택 ‘더불어사는집’ 구성원, 김장, 김윤환 오아시스 프로젝트 미술가, 남원식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얼마 전까지 노숙생활을 하다 ‘더불어사는집’에 참여, 빈집점거를 통해 자활을 준비 중인 임진택 씨는 자신이 노숙인이 된 계기와 노숙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노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이 가능한 집”이라며, “정부의 쉼터 등을 통한 자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장 미술가는 유럽 점거(Squat) 활동 역사와 의의를 설명하며, “도시빈민운동으로서 Squat을 지지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제기이자 혁신적 실천”이라고 역설하였다.

남원석 연구원은 “노숙인 점거를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첫째로 상징적 의미로 한국의 주거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될 수 있고, 둘째로 노숙인 운동 양식의 가능성으로 제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되었던 다른 운동의 형태와 전혀 다른 개념의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사회단체들은 빈집점거의 목표의 공유와 기존 운동과의 연계를 고민이 필요하고, 민주노동당은 한국의 전반적 주택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양연수 대표는 “‘더불어사는집’은 노숙자 자체의 모임으로, 일차적으로 노숙자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고자 형성된 것”이고, “앞으로 생산공동체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부의 주택정책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노숙인과 같은 빈민 문제는 사회의 책임”임을 강조하며, “노식인들은 주거권 확보를 위해 사회의 공간과 공공시설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빈집 점거 이후, 생산공동체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양연수 대표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장기적으로 안정적 운영이 가능한 형태를 고민 중이다”라고 답했으며, 이어 김윤환 미술가는 “점거 운동이 논리적이고 철저히 계획적이길 바랄 필요는 없다”고 설명하며, “점거 자체를 하나의 운동이자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사회에서 ‘점거’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다. 개발논리 속에서 빈민가 마을에서는 점거라는 방식을 통한 빈민들의 생존 방식이 있었고, 노점상들은 길거리 점거를 통해 생존권을 지키려 했었다. 이것의 연장선 상에서 현재의 ‘노숙인 빈집점거’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이 확대될 때, 빈민의 문제도 점거의 문제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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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진보운동의 전망 모색과 07년 대선(3) - 싱크탱크

 
200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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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포너-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부시

보스톤코리아  | 2006·12·12 20:37 | HIT : 204
이글은 지난 12월 3일 에릭 포너 교수가 워싱톤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번약한 것입니다.

By Eric Foner (콜롬비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
번역 윤희경(본지 칼럼니스트)


1948년 하버드 대학의 슐레징거 교수가 55명의 역사학자에게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위대한 대통령"에서 부터 최하위의 "실패한 대통령"까지로 그 순위를 매겨 달라고 요청한 이후, 미국의 역사학자들에게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이런 평가 순위조사는 흥미로운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순위가 바뀌어 진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를 반영한다.
첫 여론조사 당시에는, 미국의 남북전쟁직후의 재건 사업 기간에는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었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생겼고 부실한 행정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열렬한 백인우월권자로서 노예에게 기본권을 주는 것을 반대하였던 Andrew Johnson 대통령 (역자 주: 17대 대통령, 1865-1869)은 "준 위대한"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반대로 학자들은 이 재건사업이 노예제도의 잔재로 부터 인종화합에 의한 민주주의를 세우려는 숭고한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결함을 갖고 있었기에 Johnson 대통령은 "완전히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가 바뀌어 졌다.  
    
그렇지만 흔히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지나가도 놀라울 정도로 크게 바뀌지 않는다. Abraham Lincoln, George Washington 그리고 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항상 "위대한" 대통령의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중간" 혹은 좀 격하하면 "2류"의 평가를 받는다. Johnson, Franklin Pierce (역자 주: 14대, 1853-1857), James Buchanan (15대 1857-1861), Warren G. Harding (29대 1921-1923), Calvin Coolidge (30대, 1923-1929), 그리고 Richard Nixon (37대, 1969-1974)은 꼴찌 그룹에 속하고 있고 현 대통령인 부시가 이 그룹에 들어갈 영순위 후보자이다.
그 이유는 이들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부시의 정책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인 남북전쟁 전의 Pierce 와 Buchanan의 두 대통령, 전쟁 직후의 Johnson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고집통이고, 편협하고,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정적인 실수에 대한 대응책을 고려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이 대통령들은 아첨꾼들 속에 둘려싸였고, 퇴보적인 정치세력 (그 당시에는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주의에 찬동하는)에 영합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1854년, 1858년, 그리고 1866년에 있은 중간선거(역자 주: 금년 11월 의 선거와 같이 국회위원만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패배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통령들은 국민의 힘찬 여론을 무시하고 결함 있는 정책을 고집하였다. 부시 집권은 바로 이들 대통령을 상기하게 만든다.
Harding 과 Coolidge 대통령은 임기 중 (각각 1921-1923 그리고 1923-1929) 부패하였고, 돈과 특혜를 큰 기업으로 빼돌린 것으로 뚜렷히 기억되고 있다.  이 두 대통령은 자신의 소득과 기업의 세금을 절감하고 노동조합을 제거하기위한 기업주의 노력을 지원하였다. 행정부의 관리들은 로비이스트와 기업주로 부터 킥백과 뇌물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신문은 "정부가 기업과 이처럼 밀착된 적은 사상 전무하고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이들보다도 더 심하게 연줄을 따지고, 더 부패하고 더욱 친기업적인 부시정부를 미처 예견하지는 못했다.
Nixon은 국내적으로 그리고 외교정책에서 몇 가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였지만, 그는 오늘날 헌법을 무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것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철저한 비밀을 지키는 것과 언론에 새어나가는 것에 대한 근심에 사로잡혀 있어, 그는 모든 비판들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였고 미국시민에 대하여 불법적인 스파이 행위를 하였다. Nixon 자신은 법위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시는 한 술 더 떠 법을 무시하였다. 앵글로-아메리카의 법제도의 근본인 마그나 카타 (역자 주: Magna Carta는 대헌장이라는 뜻으로 1215년 영국의 왕 King John이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재판 없이는 투옥되거나 처벌되지 않는다는 인간의 기본권을  선언한 것) 시대에도 범죄혐의자가 가졌던 권리까지 빼앗으려고 하였다. 즉 공정치 못한 배심원에 의한 재판, 변호사를 고용할 권리와 혐의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증거물에 대하여 혐의자가 이를 알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부시는 제정된 법에 서명하면서 언급한  수십 번에 걸친 발언에서 그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법조항을 무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시행정부는 전쟁포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미국을 수치스럽게 하였고 사실상 전 세계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전쟁시에는, 대법원은 국방에 관계되는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자제하여 왔다. 그러나 전례 없이 부시의 전쟁포로에 대한 정책을 대법원이 힐책한 것은 부시행정부가 준법정신에서 얼마나 멀리 이탈되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부시와 비견되는 또 다른 대통령은 James K. Polk 이다. 몇 역사학자들은 Polk 대통령을 존경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Polk 대통령은 멕시코와 미국과의 전쟁 (1846-1848)을 치루면서 재임기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쉽게 연구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Polk 대통령은 미국에 도발하지 않은 멕시코에 침공을 개시하여 멕시코 영토의 1/3을 미국영토로 바꾼 대통령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당시 일리노이 주 출신 연방하원인 Lincoln은  Polk 대통령이 전쟁의 발단원인을 -멕시코가 미국을 침입하였다고- 국회와 국민에게 오도한다고 비난하였다.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나" 다른 나라를 침공할 권리를 가진 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하여 "어떤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Lincoln은  언급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Lincoln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고 바란다.
역사가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꺼린다.  부시가 예를 들면 2050 년에는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확실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부시의 첫 6년 재임 기간 동안에 그는 "실패" 판정을 받은 전임 대통령들이 가졌던 ( 역자 주: 위에 열거한 다섯 대통령을 칭함) 리더십의 결여, 잘못된 정책과 권력 남용을 모두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집무하였다. 따라서 나로서는 부시를 미국 역사상 최하위의 대통령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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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류장(노포동)->남마산(창원등)

동래에서 남마산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노포동,동래 경유,진동,배둔,고성,통영)

(20분을 빼면 노포동  출발 시간임)

 

동래->남마산

 

오전>

 

8:00

8:45

9:45

10:15

11:25

 

오후>

 

12:15

1:15

3:00

4:30

5:25

6:00

6:30

7:50

 

 

 

---------------------------------------------------------

노포동->창원

(20분을 더하면 동래정류장->창원 가는 시간이 된다)

 

06:40

07:00

08:30

09:10
09:50

10:50

12:30

13:50
15:50

16:50

18:10

19:10
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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