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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포너-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부시

보스톤코리아  | 2006·12·12 20:37 | HIT : 204
이글은 지난 12월 3일 에릭 포너 교수가 워싱톤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번약한 것입니다.

By Eric Foner (콜롬비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
번역 윤희경(본지 칼럼니스트)


1948년 하버드 대학의 슐레징거 교수가 55명의 역사학자에게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위대한 대통령"에서 부터 최하위의 "실패한 대통령"까지로 그 순위를 매겨 달라고 요청한 이후, 미국의 역사학자들에게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이런 평가 순위조사는 흥미로운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순위가 바뀌어 진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를 반영한다.
첫 여론조사 당시에는, 미국의 남북전쟁직후의 재건 사업 기간에는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었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생겼고 부실한 행정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열렬한 백인우월권자로서 노예에게 기본권을 주는 것을 반대하였던 Andrew Johnson 대통령 (역자 주: 17대 대통령, 1865-1869)은 "준 위대한"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반대로 학자들은 이 재건사업이 노예제도의 잔재로 부터 인종화합에 의한 민주주의를 세우려는 숭고한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결함을 갖고 있었기에 Johnson 대통령은 "완전히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가 바뀌어 졌다.  
    
그렇지만 흔히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지나가도 놀라울 정도로 크게 바뀌지 않는다. Abraham Lincoln, George Washington 그리고 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항상 "위대한" 대통령의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중간" 혹은 좀 격하하면 "2류"의 평가를 받는다. Johnson, Franklin Pierce (역자 주: 14대, 1853-1857), James Buchanan (15대 1857-1861), Warren G. Harding (29대 1921-1923), Calvin Coolidge (30대, 1923-1929), 그리고 Richard Nixon (37대, 1969-1974)은 꼴찌 그룹에 속하고 있고 현 대통령인 부시가 이 그룹에 들어갈 영순위 후보자이다.
그 이유는 이들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부시의 정책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인 남북전쟁 전의 Pierce 와 Buchanan의 두 대통령, 전쟁 직후의 Johnson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고집통이고, 편협하고,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정적인 실수에 대한 대응책을 고려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이 대통령들은 아첨꾼들 속에 둘려싸였고, 퇴보적인 정치세력 (그 당시에는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주의에 찬동하는)에 영합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1854년, 1858년, 그리고 1866년에 있은 중간선거(역자 주: 금년 11월 의 선거와 같이 국회위원만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패배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통령들은 국민의 힘찬 여론을 무시하고 결함 있는 정책을 고집하였다. 부시 집권은 바로 이들 대통령을 상기하게 만든다.
Harding 과 Coolidge 대통령은 임기 중 (각각 1921-1923 그리고 1923-1929) 부패하였고, 돈과 특혜를 큰 기업으로 빼돌린 것으로 뚜렷히 기억되고 있다.  이 두 대통령은 자신의 소득과 기업의 세금을 절감하고 노동조합을 제거하기위한 기업주의 노력을 지원하였다. 행정부의 관리들은 로비이스트와 기업주로 부터 킥백과 뇌물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신문은 "정부가 기업과 이처럼 밀착된 적은 사상 전무하고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이들보다도 더 심하게 연줄을 따지고, 더 부패하고 더욱 친기업적인 부시정부를 미처 예견하지는 못했다.
Nixon은 국내적으로 그리고 외교정책에서 몇 가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였지만, 그는 오늘날 헌법을 무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것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철저한 비밀을 지키는 것과 언론에 새어나가는 것에 대한 근심에 사로잡혀 있어, 그는 모든 비판들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였고 미국시민에 대하여 불법적인 스파이 행위를 하였다. Nixon 자신은 법위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시는 한 술 더 떠 법을 무시하였다. 앵글로-아메리카의 법제도의 근본인 마그나 카타 (역자 주: Magna Carta는 대헌장이라는 뜻으로 1215년 영국의 왕 King John이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재판 없이는 투옥되거나 처벌되지 않는다는 인간의 기본권을  선언한 것) 시대에도 범죄혐의자가 가졌던 권리까지 빼앗으려고 하였다. 즉 공정치 못한 배심원에 의한 재판, 변호사를 고용할 권리와 혐의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증거물에 대하여 혐의자가 이를 알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부시는 제정된 법에 서명하면서 언급한  수십 번에 걸친 발언에서 그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법조항을 무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시행정부는 전쟁포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미국을 수치스럽게 하였고 사실상 전 세계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전쟁시에는, 대법원은 국방에 관계되는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자제하여 왔다. 그러나 전례 없이 부시의 전쟁포로에 대한 정책을 대법원이 힐책한 것은 부시행정부가 준법정신에서 얼마나 멀리 이탈되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부시와 비견되는 또 다른 대통령은 James K. Polk 이다. 몇 역사학자들은 Polk 대통령을 존경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Polk 대통령은 멕시코와 미국과의 전쟁 (1846-1848)을 치루면서 재임기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쉽게 연구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Polk 대통령은 미국에 도발하지 않은 멕시코에 침공을 개시하여 멕시코 영토의 1/3을 미국영토로 바꾼 대통령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당시 일리노이 주 출신 연방하원인 Lincoln은  Polk 대통령이 전쟁의 발단원인을 -멕시코가 미국을 침입하였다고- 국회와 국민에게 오도한다고 비난하였다.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나" 다른 나라를 침공할 권리를 가진 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하여 "어떤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Lincoln은  언급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Lincoln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고 바란다.
역사가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꺼린다.  부시가 예를 들면 2050 년에는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확실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부시의 첫 6년 재임 기간 동안에 그는 "실패" 판정을 받은 전임 대통령들이 가졌던 ( 역자 주: 위에 열거한 다섯 대통령을 칭함) 리더십의 결여, 잘못된 정책과 권력 남용을 모두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집무하였다. 따라서 나로서는 부시를 미국 역사상 최하위의 대통령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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