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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영화제 울산 상영장소와 시간표(16,17,18,19일)

제10회 국제노동영화제 울산지역 상영장소와 시간표

16~17일(목금)

현대자동차 문화회관 2층 대강당(양정동)


18~19일(토일)

전교조울산지부 2층 교육관 (삼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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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이여 힘을 내시라-민주노총 대의원동지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게 경고함
-송경동 시인이여 힘을 내시라-민주노총 대의원동지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이해삼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게 경고함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송경동 시인(당원)에게 경찰로부터 출두요구서가 날아왔습니다.

지난 8월 4일 포항에서 있었던 포스코 건설노조 하중근 씨 사망에 항의하는 민주노총결의대회에 참석해서 아래와 같은 시를 마무리 집회에서 낭송했다는 이유입니다.
낭송된 장소는 바로 하중근 열사가 폭력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었습니다.

하중근 열사는 뒷머리에 3곳의 상처가 있고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앞머리로 밀려와서 뇌출혈 증상으로 사망한 것이 직접적 원인입니다.
갈비뼈가 두개가 부러졌고 온몸이 피멍으로 짓이겨졌습니다.

이런 야만적 폭력앞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을 승리한다는 것, 어쩌면 과거로 세상을 돌리려는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이라크 양민을 학살하고 미제의 꼬붕인 이스라엘을 시켜 중동전쟁을 획책하고 무기 팔아 먹는 부시정권이나 삼성의 국민소득 이만불 이데올로기에 젖어 개혁나부랑이 거둬 치우고 제국의 논리대로 전 민중 다 죽이고 사회양극화 확대하는 한미fta 관철하려는 매판 정권과 관료들이 그들입니다.

재벌독재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집권하고 있다는 것 사실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대통령입니다. 이제 레임덕이 아니라 있으나마나한 대통령입니다.
아니, 국민의 세금이 아까운 직에 있는 자입니다.

자본독재의 시대, 재벌공화국의 시대 국제투기자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노동부,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모든 관료들은 헌법상의 노동3권조차 지키지 않는 것으로 가고 있습니다.
비정규 날치기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중입니다.
모든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하향 평준화 한다는 생각으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마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양 언급하면서 전체 국회의원에게 서한을 보낸 바 있습니다.
공무원의 노동3권은 커녕 노동2권 조차 용납할 수 없다고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문화일보의 모기자는 경남도 지사인 42세 김태호가 소신있는 태도로 불법 공무원노조를 일관되게 정리해 나가고 있다고 칭찬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공무원노조와 전국교직원노조을 죽이려고 칼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비상한 시기입니다.

민주노총은 최은민부위원장이 열사대책위 활동으로 구속되었고 조준호 위원장도 포항 경찰서로 부터 출두요구서를 3차례 이상 받고 있고 포항건설노조를 지원하는 주변의 동지들에게 까지 10여명 더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에 이 기회에 민주노조의 씨를 말리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정권과 자본에 순응하는 노조가 참다운 노조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김근태씨가 파시즘의 부활을 이야기 했지만 그가 속한 정권이 노동3권조차 용납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파시즘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 조합원들의 실리추구 경향이 그렇게 상황을 만든다고 이야기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연대도 안되고 간부들이 민주노총 대대 가는 일보다 사소한 신변의 일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되는 지경까지 와 있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실리도 일정한 힘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년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 하여 순응하는 노조에게 더 많은 떡고물이 돌아 가는 양 정세를 조성해 놓고 2007년을 맞아하려고 자본은 총체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가하게 앉아서 난국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송경동의 양심적인 시 한편이 우리의 갈길을 알려 줍니다.
포항건설노조의 싸움의 중요함을 알려 줍니다.
하중근 열사를 가슴에 묻지 맙시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

전체 노동진영의 힘을 집중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대대가 정족수 부족으로 열리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치용입니다.
지난 시절 피와 땀과 눈물이 묻어 있고 민주노조와 민주노총이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열사가 돌아 가신 것을 생각하면 정말 민주노총의 치욕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상 가장 중대한 기로입니다.

만주노총 대의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민주노총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특히 민주노총에서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당원 동지여러분!!

진정어린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민주노조운동의 기강을 다시 세웁시다.
산별노조 전환 투표를 성공시켰듯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벽을 허물고 드넓은 노동의 바다에 함께 합시다.
정규직 우리 처지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 한구석 편치 못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노동운동의 진정성은 사회적 휴머니즘의 기초로 부터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파 분파는 이 움직임에 모범이어야지 다 죽는데 소속의 이익이란 없습니다.

동지들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를 드립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 故 하중근 동지 영전에 바침

송경동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너희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버릴 하수구를 만들어주었고
학교와 공장과 교회를 만들어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배관을 타고 앉아서야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전선을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상의 모든 천장과 벽과
계단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불법다단계 하청인생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던
일용공의 날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쇳가루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거나 공업용기름끼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쓰미끼리1) 인생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줘도 되는 근로기준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못나고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되는 불량표지판
말 안 듣고 버릇없는 것들이 가는 인생 종착역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옷 갈아입을 곳이라도 있다면
점심시간 몸 누일 곳이라도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일한 돈 떼이지 않을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원청사용자들과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못배우고 더러운 노가다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자본의 왕국 포스코를 점거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58명 구속에 가담자 전원 사법처리
그리고 시범케이스로
하중근 동지의 머리를 깨부셔놓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하청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원청이 되는 투쟁이다
우리의 노동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인간기생충들을 박멸하는 투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건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투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망치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그라인더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이 성스런 건설노동자의 투쟁 앞에
돌이켜라. 썩은 시대여
항복하라. 낡은 시대여

 
 
 
2006-08-28 05: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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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폐가, 시간에 갇힌 기억의 공간

폐가, 시간에 갇힌 기억의 공간

 

인천 부둣가 작가의 외할머니집
무너진 천장·벗겨진 벽 그대로
“고민하는 관객과 교감하고파“

 
 
한겨레 노형석 기자
 
 
유럽파 설치작가 양혜규씨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

젊은 설치작가 양혜규(35·왼쪽)씨의 전시장은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진 옛 왜식 집이다. 삭을 대로 삭은 천장의 나무 이음매 곳곳에 구멍이 뚫려 햇살이 들어온다. 벽에는 벗겨진 벽지가 너덜거렸다. 먼지와 폐자재가 깔린 다다미 방들의 폐허 같은 바닥 위에 방울등과 사이키델릭 조명등이 깜빡거린다.

유럽에서 호평받으며 활동해온 이 유학파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은 항도 인천의 부둣가 부근 폐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9일 시작한 전시 ‘사동 30번지’는 으레 하는 개막 행사도 없었다. 서울에서 1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린 뒤 물어물어 사동 주택가에 파묻힌 폐가를 찾은 관객들은 좁은 실내에서 또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을 찾느라 발품 들였던 일상의 시간들이 폐가 속에서 숨쉬어온 또다른 심연의 시간 속으로 잠기는 듯한 환각이다.


 

“이 폐가는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가 8년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어릴 적 크고 풍성하게 보였던 이 집이 이제는 왜소하게 보이더군요. 신기하지 않아요. 시간 속에서 기억이 변질된 거죠. 그 신비스런 변화를 머금은 공간 속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굴절을 이야기해보려고 한 겁니다. ”

작가는 지난겨울 유년의 기억이 깃든 폐가를 답사한 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관계를 담은 일종의 판타지아를 만들겠다고 구상했다. ‘새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인 폐가 안팎의 쓰레기를 치워내면서 만들었다’는 이 역설적 설치작업은 그래서 이젠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폐가 곳곳에 넘실거리는 결핍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부서지고 벗겨진 벽들로 이어지는 폐가의 이미지는 거칠고 남루하지만, 조형물과 조명등의 배치는 뜻밖에도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다. 낮게 내려온 백열등이 비추는 문간방 바닥의 스프레이 칠한 나뭇조각들, 마루와 건넌방에 흩어진 기하학적 모양의 색종이 조형물과 방울등, 사물을 정지사진처럼 비추는 스트로보 조명, 관객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등이 작가의 의도를 연출하는 적절한 소품이 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칫 진부한 향수로 덧입혀질 수 있는 집에 얽힌 구체적인 사연을 일부러 비워내고, 다분히 추상화한 조형물들을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린 옷장과 소파에 천으로 감싼 건조대를 놓은 안방, 숫자가 뒤죽박죽된 시계, 거울 등이 등장하는 마루와 건넌방 등의 모습들을 통해 작가는 시간의 질곡을 피할 수 없는 인간존재와 공간의 함수관계를 차분하게 되짚어 보고 있다.

일상 사물, 현상의 뒤안에 도사린 보이지 않는 구조와 힘들 사이의 간극은 작가 양씨가 유학시절부터 패션, 음성 등의 다른 영역을 아우른 개념적 설치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관심사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소우주를 지니고 있으며, 시간은 바로 그들 소우주들을 은연중 소통시키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작가는 폐가란 매체를 빌려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네덜란드에서 같이 활동한 기획자 김현진씨와 의기투합한 이 전시를 두고 작가는 “관객들이 쇼핑하듯 작품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전시장 대신, 발품 들이더라도 고민하고 숙고하는 관객들과 교감하는 전시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천/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사등록 : 2006-08-22 오후 07:35:28 기사수정 : 2006-08-22 오후 07: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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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그 의자에 앉고 싶다

의자, 그 의자에 앉고 싶다
<2006년04월04일 제604호 한겨레21>
디자이너가 사랑하는 소품, 건축가의 아이콘, 가구 양식사의 표준모델… 인테리어를 일관된 스타일로 꾸미려 한다면 이제 의자에 눈을 떠라

 

▣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100개의 의자가 전시되고 있다. 또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각각 열리고 있는 핀란드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르 알토 전과 일본의 거장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 전은 의자를 중심으로 한 가구 전시회다. 동숭동의 쇳대박물관에서 열리는 ‘건축가의 가구’전에서는 국내 건축계에서 잘 알려진 13명의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와 소파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의자 전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전시회가 아니더라도 최근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유명 의자들이 대중잡지에 부쩍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고급 식당과 사무실,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인간이 의자에 앉도록 진보한 역사

 

옛날부터 의자는 다른 물건과 달리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즉, 의자는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자의 ‘권좌’(權座), 영어의 ‘체어맨’(chairman)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의자는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최고 권력자만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에 앉기는커녕 구경도 못했다.


△ WW 스툴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 1990. 이 의자의 모티브는 인삼이다. 인삼은 서양에서도 인간의 모습을 닮은 두 갈래의 뿌리 모양 때문에 성욕을 촉진하는 정력제로 알려졌는데, 이런 인삼의 성질을 모티브로 한 에로틱한 의자다.

 

의자란 몸을 수고롭게 움직이지 않은 채 앉아서 세상을 통치하는 자들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권력이 점차 더 많은 사람에게 분산되는 쪽으로 흘렀듯이 의자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절대 권력자만이 앉을 수 있었던 의자는 시대가 흐르면서 귀족에게로, 다시 자본가로, 그리고 일반 시민에게까지 보급됐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의자를 소유하고 거기에 앉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헤겔은 “역사는 인간이 자유를 쟁취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의자 역사가의 눈으로 볼 때, 역사는 인간이 의자에 앉도록 진보해왔다.

특히 기계의 등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계의 등장과 대량생산 시스템은 노예를 노동자로 바꾸고 수많은 육체노동자들을 의자에 앉도록 했다. 힘든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실 근로자가 대거 등장했다. 이에 따라 이들에게 오랫동안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의자가 필요해졌다.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들은 어떻게 하면 튼튼하면서도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의자를 대량으로 생산해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러한 연구가 오늘날 단지 앉는다는 기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백 가지의 디자인을 낳은 원동력이 됐다.


△ 토네트 의자

 

 

왜 뛰어난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의자를 디자인하고 싶어 안달일까. 왜 많은 인테리어 품목 가운데 의자에 집착할까. 의자는 조형적인 표현 가능성이 가장 풍부하기 때문이다. 의자는 머리 받침대, 등 받침대, 팔걸이, 엉덩이 받침대, 다리로 구성돼 있다. 다른 가구들과 견주어볼 때 의자는 그 구조가 대단히 입체적이다. 재료도 어떤 물건보다 많이 사용된다. 나무, 금속, 섬유, 플라스틱, 여기에 돌까지.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한꺼번에 쓰인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의자는 형태 변형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100개의 의자’전을 보면 바로 그 조형과 재료의 다양성에 감탄하게 된다.

또 의자는 어떤 가구보다 개인적이다. 대부분의 가구는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의자는 대개 한 사람의 것이다. 따라서 의자는 그것을 소유한 개인의 인격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구성 요소도 사람의 몸과 많이 닮았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함부로 남의 의자에 앉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의자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권력의 정도나 지위를 보여준다.

 

아직도 파리 카페의 의자는 150년전 모델

 

이런 특별한 의자를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건축가들은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의자에 압축해서 표현하길 좋아한다. 건축가들은 건축과 함께 그 건물의 내부에 쓰이는 물건들도 통일된 스타일로 디자인하고 싶어한다. 그 대표적인 물건이 바로 의자인 것이다. 근대 건축을 탄생시킨 4명의 대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발터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는 저마다 자기 건축의 아이콘 같은 의자를 이 세상에 남겼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생산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 개미 의자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 1955. 야콥센이 디자인한 여러 개미 의자 시리즈 가운데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의자.

 

 

4명의 거장이 디자인한 의자와 함께 오늘날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의자들은 유행에 따라 스타일이 수시로 바뀌는 가전제품이나 패션, 자동차와 달리 그 디자인이 바뀌지 않은 채 수십 년 동안 똑같은 재료와 모양으로 생산되고 있다. 아직도 파리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아한 곡선의 토네트 의자는 무려 150년 전부터 생산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을 뭔가 지적이고 남다르게 꾸미려는 사람들이 꼭 갖고 싶어하는 초기 모더니즘 의자들은 대개 1920~30년대에 디자인된 것들이다. 바실리 의자, 바로셀로나 의자 등이 그것이다.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이 엄선한 100개의 의자에 포함된 이 의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단 가격이 좀 세다. 적게는 30만~40만원대부터 비싼 것은 수백만원이 넘는다. 물론 한 개의 가격이 그렇다. 마니아들을 위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어처도 10만원대 안팎이다. 의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는 이 의자들이 적게는 10년, 많게는 80여 년 동안 똑같은 디자인으로 생산되고 인기를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혁신성이다. 모던 의자가 나오기 전의 의자들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재료는 거의가 나무, 또는 나무와 천을 혼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결같은 과다한 장식. 우리가 예식장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의자들 말이다. 그런데 모더니스트들은 강철관이라는 재료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다리도 4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희한한 구조를 창조했다. 무엇보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채 재료와 구조만이 의자의 외관을 결정짓게 디자인했다. 아주 단순하고 거추장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의 의자들과 완전히 결별하고 있다. 아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외계에서 온 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수십 년 전의 혁신적인 디자인이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 눈에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돼 보인다는 점이 의자의 명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다.

 

늘 식탁이나 책상에 딸려오는 부수품?

 

둘째는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량생산품들은 익명성으로 만들어진다. 즉, 그걸 누가 디자인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의자들은 반드시 제조사와 함께 디자이너의 이름도 밝힌다. 왜냐하면 대부분 의자는 디자이너 개인의 아이디어고, 또 디자이너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판매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필리프 스타르크, 론 아라드, 재스퍼 모리슨, 마크 뉴슨 등의 스타 디자이너들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어 그들이 디자인했다고 하는 것이 큰 프로모션이 된다. 아르네 야콥센, 찰스 레이 임스, 베르네르 판톤 등 이미 고인이 된 거장들의 의자는 말할 것도 없다.


△ 록히드 라운지 의자 디자이너: 마크 뉴슨, 1986. 차가운 금속과 거친 이음새가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의자.

 

 

서구의 가구 디자인 역사를 볼 때, 의자는 분명 그 중심에 서 있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가구 양식사에서 표준 모델은 장이나 테이블, 침대가 아닌 바로 의자다. 그러나 좌식 생활을 한 한국인에게 의자는 그렇게 대수로운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양식이 서구화돼 식탁과 책상이 보편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자는 욕망이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의자를 단독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의자는 늘 식탁이나 책상에 딸려오는 부수품이다. 또 우리 기억 속의 의자들이란 학교의 나무 책상, 사무실의 철제 의자, 구멍가게 앞의 널빤지 의자, 식당에서 막 쓰는 동그란 의자 등으로 고급스럽거나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아니다. 고급스런 의자에 속하는 것이래야 부잣집 거실이나 사장님 방에 놓이는 가죽 소파 정도인데, 장식적이거나 비싼 재료를 썼을 뿐 세련된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좌식 생활을 한 문화여서 우리에게는 의자의 전통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어도 의자를 고르는 안목이 부족해 구조나 기능, 디자인보다 그저 가죽 같은 비싼 재료로 껍데기를 씌운 의자를 선호했다. 1990년대 이후 명품 열풍이 불었지만 의자에만은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의류나 가방, 구두, 시계, 자동차와 달리 집 안에 있는 가구나 의자는 남들에게 자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 바르셀로나 의자 디자이너: 미스 반데어로에, 1929.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인 미스 반데어로에가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의 독일 전시장 인테리어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인데, 오늘날에도 꾸준히 사랑받아 많은 사무실의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패션·자동차처럼 욕망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

 

그러나 고급 인테리어 정보가 꾸준히 보급되면서 거장들의 의자도 점차 한국에 소개됐다. 특히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는 집안 인테리어를 일관된 스타일로 꾸미는 데 눈뜨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모던한 스타일로 집안을 장식하므로 이들 의자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유층도 이제는 원목이나 앤티크 가구에만 열광하지 않고 산뜻하고 세련된 모던 가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 또 고급 식당에도 이런 의자들이 많이 보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덴마크의 거장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개미 의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의자가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런 세계적인 모던 의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건축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사진 스튜디오 등으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패션이나 시계, 자동차에 열광하듯 의자가 소유하고픈 주요 욕망의 대상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 애론 의자 디자이너: 빌 스텀프·돈 채드윅, 1992. 애론 의자는 미술 이념의 수단이나 창작자의 조형 의지를 분출하는 대상이 아닌 진정 사람의 몸을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의자의 전형을 제시했다. 사용자의 편리성을 위해 인간공학을 접목한 의자 가운데 최고의

 

 


△ 바실리 의자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 1925. 의자 역사상 최초로 강철관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강철관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해서 네 개의 다리 없이도 이처럼 우아하면서도 튼튼한 의자 조형을 가능케 했다. 이후 강철관은 단순함을 이상으로 여기는 모더니스트의 가장

 

 


△ 짧은 다리 의자, 버드나무 의자,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받이(왼쪽부터 시계 방향)목수 김씨(김진송)는 어쩌다 생긴 나무들로 의자 만들기를 즐긴다.

 

 


△ 라 셰즈 의자 디자이너: 찰스 & 레이 임스, 1948. 유기적인 형태의 독창적인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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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 소설집「속된 인생」…'우물 안' 활동가들에게 들려주는 충고

'우물 안' 활동가들에게 들려주는 충고
김하경 소설집「속된 인생」…"총연맹위원장 되는 게 성공?"
 
 
 

「내 사랑 마창노련」의 저자 김하경 씨가 소설가로 돌아왔다. 소설집 「속된 인생」(삶이 보이는 창)을 들고 다시 작가의 길에 발을 내딛은 그는 이 소설집에서 철거민과 노동운동가, 그리고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면서 이 시대의 운동을 향해 화두를 던진다.

   
 
 ▲ 김하경 씨의 소설집 「속된 인생」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인간관계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좁아지는 것 같았다. 조급해지고, 각박해져갔다. 심지어는 노동조합이 세상 전부인 것 같고, 세상이 노동조합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부정하면 화가 났고 그런 사람들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노동조합 이외의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노동조합 하나에만 빠져 산 것이다. 이런 걸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하는 걸까? (「젊은 날의 선택」, 151쪽)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외면 받는 지금의 현실에서 한 노동운동가의 자기 고백이다. 창원의 ‘일산중공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오직 노동조합만을 위해 앞으로 달려온 건이가 해고되고, 주위의 동료들과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동지의 정’보다 ‘차이의 벽’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주인공들은 노동조합의 전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믿었던 동료에게서는 하청업체 사장을 시켜준다는 회사의 유인책에 넘어가 회사 부품을 몰래 빼내는 배신마저 당한다.

운동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에 빠져 살지도 않으니 말이다. 아니 그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산다고나 할까? (「젊은 날의 선택」,150쪽)

“확실하게 살란 말이다! 운동도, 사랑도 어쩌다 하게 된 식으로 떠밀려서 억지로 하듯 하지 말고, 제발 확실하게 자신이 결단 내리고 자신이 책임지며 살란 말이다!” (「청비리」181쪽)

노동운동가의 내면의 심경을 깊숙이 꿰뚫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를 접할 때면 마치 자신의 마음을 들킨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가 르뽀집에 이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연유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4일 소설가 김하경 씨(62)를 홍대부근에서 만났다.

마산에 거주하며 마산과 창원지역에서「내 사랑 마창노련」(갈무리, 1999)을 텍스트 삼아 노동조합 강연과 교육을 틈틈이 하며 소설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근황을 소개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마창노련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운동의 역사를 생생한 보고문학적 필치로 그려낸 ‘문학적 역사서’인 이 책은 여전히 노동운동가들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마창노련이 사무실을 정리한 돈으로 1년의 기간동안 취재하고 기록을 남기고자 시작했던 작업은 5년이 훌쩍 넘어서야 작품의 탄생을 보게 됐다. 이후에 그는 경남도민일보의 논설주간으로 일하며 분주하게 1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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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의 서술이 문학작품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그에게는 내내 소설로 말하고자하는 욕망이 늘 떠나지 않았다. 리얼리즘으로 노동자와 민중, 운동을 그려내고자 했던 그는 다시 펜을 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실천문학> 봄호로 등단하고, 장편소설 「그 해 여름 」(1991), 「눈 뜨는 사람」(1994)을 출간한 바 있다. 이후에 쓴「내 사랑 마창노련」의 취재와 신문사 논설주간의 경험은 그에게 ‘지시적 언어’ 서술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내면의 목소리인 문학적 언어의 목소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앉아 처음부터 다시 문학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리얼리즘이었죠. 사회주의 리얼리즘부터 마르께스, 보르헤스의 환상적 리얼리즘까지 읽었어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스탈린 시대의 문학적 형식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면, 그 때의 리얼리즘은 폐기되었을지 몰라도, 리얼리즘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사라질 수 없는 없는 문학의 형식이죠.”

그가 리얼리즘을 자신의 문학적 글쓰기의 한 축으로 잡고 놓지 않았다면, 내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난 수십년동안 경험한 철거민, 노동, 교육운동의 현장과 경험이 그에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학적 말 트기를 서서히 익혀갔고,「속된 인생」이 나왔다.

그의 소설의 주된 소재는 운동 속에도 운동의 길을 묻는 이들이다. 그것은 때로는 전망을 찾지 못하는 운동가들의 내적 고민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지도부의 무능, 부패 그리고 운동가들의 이기심에 비롯되기도 한다.

나는 왜 당에 뛰어들었는가. 과연 원칙과 기본방향에 동의하는 걸까. 단순히 인간적 안면에 이끌려온 건가.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식으로 따라다닌 건가. 그도 저도 아니면 단순히 우쭐하고 싶은 영웅심 때문인가. 그러나 지난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경쟁과 싸움을 보면서 이게 아니다 생각했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더욱 심해서 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부침했다. 운일은 당의 오류를 지적하고 동지의 불순한 탐욕을 비판했다. 그리고 당과 동지에 대한 실망과 후회가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 당을 떠났다. (「청비리」, 226쪽)

주인공 운일은 노동조합 지도부의 비리에 실망하고, 당을 선택했지만 당에서도 조직 내부의 분열과 경쟁을 참지 못하고 떠난다. 이제 그에게는 ‘왜 운동을 하는가’라는 원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주인공은 다시 ‘공장의 노동자’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개인의 갈등에서 나아가 운동 전체의 전망의 부재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우리는 계급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습니다. 부장 되면 국장되고, 실장 되면 위원장 돼야 하고, 총연맹 위원장까지 가면 성공한 운동가로 평가받는 우리 내의 위계질서 말입니다. 공장으로 돌아가면 퇴보한다고 생각하는 ‘선진 운동가’는 그래서 점점 대중과 섞이지 못하고 고립돼 갑니다. 운동과 삶은 유리되지 않고 자기 삶에서 운동을 해나가는 것인데, 운동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는 것이죠.”

갈등은 때로 운동의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에서도 온다. 지금 당장에 이뤄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조금씩 이뤄나가야 하는가. 철거민 투쟁에서 보상비를 더 올려 받아 현재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철거촌 주민 수녕과 임대주택을 얻을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남아 싸워야 한다는 운동권 대학생 보배의 대화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벽창호야! 그건 당장 될 일이 아니니까. 주민들이 요구하는 건 당장 어떻게 할 거냐야. 내년이나 10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살 거냐 이거야.”

“그게 바로 기회주의라는 거야. 현실이니 대중의 요구니 하는 건 다 핑계고 변명이야. 사실은 싸우는 게 무섭고 싫은 거지. 돈 더 많이 받고 싶고 편하고 싶은 거 아냐? 적당히 싸우다 보상비나 타고 나가자 그거지. 핑계는 그럴 듯하지만 그게 다 기만이란 말이야.” (「속된 인생」40쪽)

작가는 두 사람의 주장에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않는다. 임대주택이라는 ‘꿈’과 보상비라는 ‘현실’적 타협 가운데서 두 주인공은 끝내 의견의 일치를 보내 못하고 결별하게 된다. 두 주인공이 “혼자 꿈을 꾸면 몽상에 불과하지만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됩니다”라는 대사를 함께 읊조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꿈꾸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작가가 던지는 ‘운동의 길’에 관한 물음의 답은 작품 속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현실처럼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할 뿐이다. 그래서 수녕과 보배는 끝내 만나지 못하고, 조합활동으로 해고된 상기는 자신의 진정한 적성이 무엇인지를 내내 고민한다. 운일은 십여년 가까이 운동을 해왔지만, 자신이 운동의 흉내만 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것은 ‘속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마주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맑고 깨끗한 복을 누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너는 함부로 그런 것을 달라고 하지 말라.” ( 「속된 인생」, <서유구> 10쪽 인용부분)

 
2006년 06월 06일 (화) 23:03:08 문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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