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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그 의자에 앉고 싶다

의자, 그 의자에 앉고 싶다
<2006년04월04일 제604호 한겨레21>
디자이너가 사랑하는 소품, 건축가의 아이콘, 가구 양식사의 표준모델… 인테리어를 일관된 스타일로 꾸미려 한다면 이제 의자에 눈을 떠라

 

▣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100개의 의자가 전시되고 있다. 또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각각 열리고 있는 핀란드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르 알토 전과 일본의 거장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 전은 의자를 중심으로 한 가구 전시회다. 동숭동의 쇳대박물관에서 열리는 ‘건축가의 가구’전에서는 국내 건축계에서 잘 알려진 13명의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와 소파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의자 전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전시회가 아니더라도 최근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유명 의자들이 대중잡지에 부쩍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고급 식당과 사무실,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인간이 의자에 앉도록 진보한 역사

 

옛날부터 의자는 다른 물건과 달리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즉, 의자는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자의 ‘권좌’(權座), 영어의 ‘체어맨’(chairman)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의자는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최고 권력자만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에 앉기는커녕 구경도 못했다.


△ WW 스툴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 1990. 이 의자의 모티브는 인삼이다. 인삼은 서양에서도 인간의 모습을 닮은 두 갈래의 뿌리 모양 때문에 성욕을 촉진하는 정력제로 알려졌는데, 이런 인삼의 성질을 모티브로 한 에로틱한 의자다.

 

의자란 몸을 수고롭게 움직이지 않은 채 앉아서 세상을 통치하는 자들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권력이 점차 더 많은 사람에게 분산되는 쪽으로 흘렀듯이 의자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절대 권력자만이 앉을 수 있었던 의자는 시대가 흐르면서 귀족에게로, 다시 자본가로, 그리고 일반 시민에게까지 보급됐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의자를 소유하고 거기에 앉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헤겔은 “역사는 인간이 자유를 쟁취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의자 역사가의 눈으로 볼 때, 역사는 인간이 의자에 앉도록 진보해왔다.

특히 기계의 등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계의 등장과 대량생산 시스템은 노예를 노동자로 바꾸고 수많은 육체노동자들을 의자에 앉도록 했다. 힘든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실 근로자가 대거 등장했다. 이에 따라 이들에게 오랫동안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의자가 필요해졌다.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들은 어떻게 하면 튼튼하면서도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의자를 대량으로 생산해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러한 연구가 오늘날 단지 앉는다는 기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백 가지의 디자인을 낳은 원동력이 됐다.


△ 토네트 의자

 

 

왜 뛰어난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의자를 디자인하고 싶어 안달일까. 왜 많은 인테리어 품목 가운데 의자에 집착할까. 의자는 조형적인 표현 가능성이 가장 풍부하기 때문이다. 의자는 머리 받침대, 등 받침대, 팔걸이, 엉덩이 받침대, 다리로 구성돼 있다. 다른 가구들과 견주어볼 때 의자는 그 구조가 대단히 입체적이다. 재료도 어떤 물건보다 많이 사용된다. 나무, 금속, 섬유, 플라스틱, 여기에 돌까지.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한꺼번에 쓰인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의자는 형태 변형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100개의 의자’전을 보면 바로 그 조형과 재료의 다양성에 감탄하게 된다.

또 의자는 어떤 가구보다 개인적이다. 대부분의 가구는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의자는 대개 한 사람의 것이다. 따라서 의자는 그것을 소유한 개인의 인격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구성 요소도 사람의 몸과 많이 닮았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함부로 남의 의자에 앉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의자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권력의 정도나 지위를 보여준다.

 

아직도 파리 카페의 의자는 150년전 모델

 

이런 특별한 의자를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건축가들은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의자에 압축해서 표현하길 좋아한다. 건축가들은 건축과 함께 그 건물의 내부에 쓰이는 물건들도 통일된 스타일로 디자인하고 싶어한다. 그 대표적인 물건이 바로 의자인 것이다. 근대 건축을 탄생시킨 4명의 대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발터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는 저마다 자기 건축의 아이콘 같은 의자를 이 세상에 남겼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생산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 개미 의자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 1955. 야콥센이 디자인한 여러 개미 의자 시리즈 가운데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의자.

 

 

4명의 거장이 디자인한 의자와 함께 오늘날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의자들은 유행에 따라 스타일이 수시로 바뀌는 가전제품이나 패션, 자동차와 달리 그 디자인이 바뀌지 않은 채 수십 년 동안 똑같은 재료와 모양으로 생산되고 있다. 아직도 파리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아한 곡선의 토네트 의자는 무려 150년 전부터 생산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을 뭔가 지적이고 남다르게 꾸미려는 사람들이 꼭 갖고 싶어하는 초기 모더니즘 의자들은 대개 1920~30년대에 디자인된 것들이다. 바실리 의자, 바로셀로나 의자 등이 그것이다.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이 엄선한 100개의 의자에 포함된 이 의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단 가격이 좀 세다. 적게는 30만~40만원대부터 비싼 것은 수백만원이 넘는다. 물론 한 개의 가격이 그렇다. 마니아들을 위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어처도 10만원대 안팎이다. 의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는 이 의자들이 적게는 10년, 많게는 80여 년 동안 똑같은 디자인으로 생산되고 인기를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혁신성이다. 모던 의자가 나오기 전의 의자들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재료는 거의가 나무, 또는 나무와 천을 혼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결같은 과다한 장식. 우리가 예식장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의자들 말이다. 그런데 모더니스트들은 강철관이라는 재료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다리도 4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희한한 구조를 창조했다. 무엇보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채 재료와 구조만이 의자의 외관을 결정짓게 디자인했다. 아주 단순하고 거추장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의 의자들과 완전히 결별하고 있다. 아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외계에서 온 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수십 년 전의 혁신적인 디자인이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 눈에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돼 보인다는 점이 의자의 명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다.

 

늘 식탁이나 책상에 딸려오는 부수품?

 

둘째는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량생산품들은 익명성으로 만들어진다. 즉, 그걸 누가 디자인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의자들은 반드시 제조사와 함께 디자이너의 이름도 밝힌다. 왜냐하면 대부분 의자는 디자이너 개인의 아이디어고, 또 디자이너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판매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필리프 스타르크, 론 아라드, 재스퍼 모리슨, 마크 뉴슨 등의 스타 디자이너들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어 그들이 디자인했다고 하는 것이 큰 프로모션이 된다. 아르네 야콥센, 찰스 레이 임스, 베르네르 판톤 등 이미 고인이 된 거장들의 의자는 말할 것도 없다.


△ 록히드 라운지 의자 디자이너: 마크 뉴슨, 1986. 차가운 금속과 거친 이음새가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의자.

 

 

서구의 가구 디자인 역사를 볼 때, 의자는 분명 그 중심에 서 있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가구 양식사에서 표준 모델은 장이나 테이블, 침대가 아닌 바로 의자다. 그러나 좌식 생활을 한 한국인에게 의자는 그렇게 대수로운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양식이 서구화돼 식탁과 책상이 보편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자는 욕망이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의자를 단독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의자는 늘 식탁이나 책상에 딸려오는 부수품이다. 또 우리 기억 속의 의자들이란 학교의 나무 책상, 사무실의 철제 의자, 구멍가게 앞의 널빤지 의자, 식당에서 막 쓰는 동그란 의자 등으로 고급스럽거나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아니다. 고급스런 의자에 속하는 것이래야 부잣집 거실이나 사장님 방에 놓이는 가죽 소파 정도인데, 장식적이거나 비싼 재료를 썼을 뿐 세련된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좌식 생활을 한 문화여서 우리에게는 의자의 전통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어도 의자를 고르는 안목이 부족해 구조나 기능, 디자인보다 그저 가죽 같은 비싼 재료로 껍데기를 씌운 의자를 선호했다. 1990년대 이후 명품 열풍이 불었지만 의자에만은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의류나 가방, 구두, 시계, 자동차와 달리 집 안에 있는 가구나 의자는 남들에게 자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 바르셀로나 의자 디자이너: 미스 반데어로에, 1929.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인 미스 반데어로에가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의 독일 전시장 인테리어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인데, 오늘날에도 꾸준히 사랑받아 많은 사무실의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패션·자동차처럼 욕망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

 

그러나 고급 인테리어 정보가 꾸준히 보급되면서 거장들의 의자도 점차 한국에 소개됐다. 특히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는 집안 인테리어를 일관된 스타일로 꾸미는 데 눈뜨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모던한 스타일로 집안을 장식하므로 이들 의자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유층도 이제는 원목이나 앤티크 가구에만 열광하지 않고 산뜻하고 세련된 모던 가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 또 고급 식당에도 이런 의자들이 많이 보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덴마크의 거장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개미 의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의자가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런 세계적인 모던 의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건축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사진 스튜디오 등으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패션이나 시계, 자동차에 열광하듯 의자가 소유하고픈 주요 욕망의 대상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 애론 의자 디자이너: 빌 스텀프·돈 채드윅, 1992. 애론 의자는 미술 이념의 수단이나 창작자의 조형 의지를 분출하는 대상이 아닌 진정 사람의 몸을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의자의 전형을 제시했다. 사용자의 편리성을 위해 인간공학을 접목한 의자 가운데 최고의

 

 


△ 바실리 의자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 1925. 의자 역사상 최초로 강철관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강철관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해서 네 개의 다리 없이도 이처럼 우아하면서도 튼튼한 의자 조형을 가능케 했다. 이후 강철관은 단순함을 이상으로 여기는 모더니스트의 가장

 

 


△ 짧은 다리 의자, 버드나무 의자,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받이(왼쪽부터 시계 방향)목수 김씨(김진송)는 어쩌다 생긴 나무들로 의자 만들기를 즐긴다.

 

 


△ 라 셰즈 의자 디자이너: 찰스 & 레이 임스, 1948. 유기적인 형태의 독창적인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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