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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2
    [詩] 그의 부재
    챈챈

[詩] 그의 부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5년...

엄마에게는 그 빈자리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였던 남편이었고...

자식의 죽음을 아직도 모르시는 병든 할머니에게는 그리움이 뼛 속에 사무쳐 이제 원망만 남은 못된 자식놈이다.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가 문득 문득 아빠의 기억을 들추는 나와는 달리

엄마와 할머니에게 남편과 자식의 부재는

살 떨리게 아픈 상처고 미련스러울만치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그의 부재

                                                                황영선


화양면 이천리에 가면 햇볕이 잘드는 언덕 위에
사랑으로 담을 쌓은 사랑의 집이 있습니다.
그곳엔 저의 시어머님이 계시고 자식없어 오갈 데 없으신 노인분들께서
풀기없는 눈망울 껌벅이신 채 종일 어두운 귀 열어 놓으시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찾아올 자식도 없지만 오늘은 행여나 내일은 오겠지 하는 맘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님을 모셔놓고 몇 해 동안 잊고 있다
지난 추석무렵에야  그 사랑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님을 뵈면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하나.
이제야 왔다고 내치시지는 않으실까?
그 보다 세상 떠난 애비를 물어보시면 뭐라고 대답해 드리지?
두근거리는 맘으로 어머님 계신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 새 몰라보게 작아지신 어머님,
한참만에야 저를 알아보신 어머님은
"아이고 이게 누구여? 오메 창렬이 엄니 아니여? 반갑네 반가와"
어머님은 제 손을 잡으시고 금방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시상에 자식보다 낫네그려 우리 자식들은 에미가 죽어도 모를것이여.
  창렬이 엄니가 우리 자식들한테 말좀 전해 주소.
  에미가 날마다 지달린다고.  
  그라고 우리 큰 아들 말인디 나가 그놈을 어찌 키운지 창렬이 엄니는 다~알제잉.
  근디 시상에 설을 다섯번이나 쇤는디 여그를 한번도 안 온당께.
  멀리 발령이 났다고 들었는디 징허게 무심한 놈이여."

어머님은 뼈만 앙상해진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나 죽기전에 우리 큰 아들을 꼭 봐야헐건디.
  우리 며느리는 아그들 키우니라고 꼼짝도 못 헐 것이고.
  근디 창렬이 엄니도 인자 많이 늙어부렀네. 각시 때는 영 고왔는디."

어머님은 불효한 이 며느리를 예전에 옆집살던 창렬이 어머니로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 가슴 속에 내내 품고 계신 말씀을 죄다 쏟아 놓으신 게지요.
만약 저를 알아보셨더라면 정작 하시고 싶은 말씀 속에 접고
그간의 원망을 침묵으로 대신 하셨겠지요.
어머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기어들어간 제 목소리에

"아이고 나보고 어머니라니 창렬이 엄니 노망들었구만.
나 용산떡이여 채은이 할매"
큰 손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 어머님은 정신을 놓으신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을 뵈면 꼭 알려 드려야할 말이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시고 오년 동안 아니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실 큰 아들의 부재를
이제는 알려드려야겠다고 벼르고 별렀던 오늘이었는데
끝내 못하고 다시 가슴에 담아야 했습니다.

모시지 못한 불효도 큰 데 어머님 가슴에 자식까지 묻으시게 할 순 없어
그냥 옆집 창렬이 어머니인 채로 무거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머님, 천하에 몹쓸 불효를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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